[암송할 말씀]
[살후3:16]
평강의 주께서 친히 때마다 일마다 너희에게 평강을 주시기를 원하노라 주는 너희 모든 사람과 함께 하실찌어다
[들어가는 말]
2010년 8월 23일 필리핀 최대 빈민가 지역에서 12년간 사역하던 조태환 선교사님께서 아까운 43세의 나이로 괴한이 쏜 총에 맞아 순교했습니다.
작년 태풍 캐사나가 도심지를 강타하여 엄청난 피해를 입었는데, 그 고통당하는 사람들을 위해 사랑의 집을 지어주러 오는 단기선교팀을 공항에서 픽업해오시던 중 뒤에서 미행해 오던 차량에서 쏜 총탄 4발에 의해 순교한 것입니다.
그 부인 오순옥 선교사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아이와 함께 다시 그곳으로 돌아갈 뜻을 정하였다는 기사가 있어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아프게 합니다.
이분을 추모하는 설교를 한 박종근 목사님이 29일 행한 설교에서 "바라보는 십자가인가, 지고가는 십자가인가?" 묻고 있습니다.
바라보는 십자가든 지고가는 십자가든 우리에게 그 십자가를 통해서 오는 한 가지 열매가 있는데 그것은 평강이란 열매입니다.
종말을 살아가는 우리가 여러가지 환난도 있지만, 세상이 줄 수 없는 평강을 소망하면서 어떻게 평강을 누릴 수 있는가 하는 답을 찾을 수 있기 원합니다.
1. 규모있는 생활 속에 평강이 있습니다.
사람이 규모없게 행하는 이유는,
1) 심한 열등감에 쌓였거나,
2) 너무 자고하여 자만에 빠졌기 때문입니다.
생활의 우선권을 하나님 중심 말씀 중심에 맞추어야 합니다.
1] 규모없이 생활하는 자들에게서는 떠나라 말씀하십니다.
[6절]
○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명하노니 게으르게 행하고 우리에게서 받은 전통대로 행하지 아니하는 모든 형제에게서 떠나라
데살로니가 교회에는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하여 잘못 깨달아 "규모없이" 행하는, 생활의 균형을 잃어 버린, 신앙생활이 한 쪽으로만 치우친 그런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 그래서 말씀은 강하게 권하기 위해 "명한다"는 말로 권면하고 있습니다.
- 주로 권면으로 부탁하는 바울 사도인데 이번에는 "명한다"고 하였습니다.
- 이는 이 문제를 다루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한다 하였으니 사도 바울 개인의 권위가 아닌 주님의 권위로 명하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 개인의 권위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의 권위, 예수 그리스도의 권위로 권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권위로 명할 때는 주님의 권위가 있습니다.
"규모없이 행하는 것"이 어디에서 나왔습니까?
재림 신앙이 잘못되어 생활에서 자기 책무를 다하지 아니하고 편견된 열심을 가지고 마땅히 행할 일을 돌보지 않는 사람들에게서 나온 것입니다.
주님의 재림만 바라보면서 살림, 교육, 직업등을 팽개치고 믿는 일만 하겠다는 사람들이 그 때도 있었습니다.
신앙이 이렇듯 한 면으로 치우치면 문제가 됩니다.
재림 신앙뿐이겠습니까?
교회봉사, 전도, 기도, 특별성회, 등 모두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규모없이 생활하는 것을 합리화하는 것은 위험 천만입니다.
조화있는 신앙형태를 이루지 못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성경은 이런 사람들에게 어떤 자세로 대할 것을 말씀하십니까?
"이들에게서 떠나라"
- "떠나라" 함은 그들을 닮지도 말고 교제하지도 말며 고립되게 하라는 것입니다.
- 멀리하고, 경계하라는 것입니다.
- 14절에는 규모없이 행하는 자를 지목하여 사귀지 말고 저로 부끄럽게 하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이 시대에서 떠나야 할 많은 숙제들을 안고 있습니다.
신비주의 신신학, 인본주의, 세속주의가 근처에 있습니까?
떠나십시오. 미련없이 떠나십시오.영향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게으르게 행하고 우리에게서 받은 전통대로 행하지 아니하는 모든 형제에게서 떠나라"
무엇이 규모없이 행하는 것입니까?
그리고 그 결과는 무엇입니까?
[1] 게으르게 행하는 것입니다.
[6절]
○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명하노니 게으르게 행하고 우리에게서 받은 전통대로 행하지 아니하는 모든 형제에게서 떠나라
[11절]
우리가 들은즉 너희 가운데 게으르게 행하여 도무지 일하지 아니하고 일을 만들기만 하는 자들이 있다 하니
탈 권위를 표방하는 많은 경우는 게으름이 밑바닥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잠언 19:15]
게으름이 사람으로 깊이 잠들게 하나니 태만한 사람은 주릴 것이니라
[디모데전서 5:13]
또 그들은 게으름을 익혀 집집으로 돌아 다니고 게으를 뿐 아니라 쓸데없는 말을 하며 일을 만들며 마땅히 아니할 말을 하나니
[디도서 1:12]
그레데인 중의 어떤 선지자가 말하되 그레데인들은 항상 거짓말쟁이며 악한 짐승이며 배만 위하는 게으름뱅이라 하니
게으르게 행하여 도무지 일하지 아니하고 일을 만들기만 하는 자들이 있을 때 평강이 깨집니다.
말보다 부지런히 일하는 곳에 평강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게으르게 행하는 자들에게서 떠나라 하십니다.
[2] 전통대로 행하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6절]
○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명하노니 게으르게 행하고 우리에게서 받은 전통대로 행하지 아니하는 모든 형제에게서 떠나라
전통을 깨뜨리는 것이 규모없이 행하는 것입니다.
전통을 깨뜨리면 평강이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하나님의 계명보다 전통을 위에 두는 것을 경계하셨습니다.
[마가복음 7:9]
또 이르시되 너희가 너희 전통을 지키려고 하나님의 계명을 잘 저버리는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의 전통이 아닌, 하나님의 계명에 접목된 교회의 전통은 존중되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1:2]
○너희가 모든 일에 나를 기억하고 또 내가 너희에게 전하여 준 대로 그 전통을 너희가 지키므로 너희를 칭찬하노라
[데살로니가후서 2:15]
그러므로 형제들아 굳건하게 서서 말로나 우리의 편지로 가르침을 받은 전통을 지키라
말씀에 접목된 아름다운 전통을 우리가 존중하고 지켜갈 때 평강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에 접목된 전통대로 행치않는 사람에게서 떠나야 합니다.
[3] 무질서하게 행함 속엔 규모가 없습니다.
[7절]
어떻게 우리를 본받아야 할지를 너희가 스스로 아나니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무질서하게 행하지 아니하며
하나님께서 질서의 하나님이시므로 질서를 존중하십니다.
[고린도전서 14:33]
하나님은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니시요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니라
그러므로 질서를 존중하는 것이 믿음의 좋은 표지입니다.
[고린도전서 14:40]
모든 것을 품위 있게 하고 질서 있게 하라
[골로새서 2:5 ]
이는 내가 육신으로는 떠나 있으나 심령으로는 너희와 함께 있어 너희가 질서 있게 행함과 그리스도를 믿는 너희 믿음이 굳건한 것을 기쁘게 봄이라
무질서한 곳에서 평강이 깨지지만, 질서가 존중되는 곳에 평강이 있습니다.
[예화]
'깨진 유리창 이론(Broken Windows Theory)'이란 말을 들어보셨습니까? 이 이론은 미국의 범죄학자인 제임스 윌슨과 조지 켈링이 1982년 3월에 공동 발표한 깨진 유리창(영어: Fixing Broken Windows: Restoring Order and Reducing Crime in Our Communities)이라는 글에 처음으로 소개된 사회 무질서에 관한 이론입니다.
깨진 유리창 하나를 방치해 두면, 그 지점을 중심으로 범죄가 확산되기 시작한다는 이론이지요. 사소한 무질서를 방치하면 큰 문제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루돌프 줄리아니가 1944년, 뉴욕 시장으로 재직할 시절 뉴욕의 범죄율을 줄이고자 슬럼을 중심으로 도심 환경을 대대적으로 정비할 때 깨진 유리창 이론을 정책의 토대로 삼았습니다. 그는 뉴욕을 가족적인 도시로 만들기 위해 지하철의 낙서, 무임승차, 성 매매 근절과 같은 경범죄를 방지하기로 선언하고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그런데 몇 년 후, 통계 수치에 의하면 살인, 폭력, 강도 같은 강력 범죄가 급감했다는 발표가 나왔습니다.
'깨진 유리창 이론'이 네덜란드 연구팀에 의해서도 입증됐습니다.
네덜란드 그로닝겐대학 연구팀은 주간 과학 학술지 '사이언스' 최근호에 실린 논문을 통해 주위 환경이 인간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입증, 깨진 유리창 이론을 뒷받침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 등이 보도했습니다.
이 대학의 대학원생 케스 카이제르가 이끈 연구팀은 6가지 상황을 놓고 주변 환경이 깨끗한 경우와 벽에 낙서가 된 지저분한 경우에 사람들의 행동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관찰했습니다.
일례로 쓰레기통이 설치되지 않은 좁은 골목길에서 사람들이 자전거 손잡이에 부착된 광고전단을 어떻게 처리하는지를 관찰할 결과, 골목길 벽이 단일 색으로 깔끔하게 칠해진 공간에서는 광고전단이 길바닥에 버려진 비율이 33%였습니다.
반면, 골목길 벽에 낙서가 된 공간에서는 광고전단 10장 가운데 7장(69%)이 길바닥에 버려졌음을 연구팀은 확인했습니다.
골목길 벽에는 "낙서금지"라는 경고문구가 쓰여 있었으며 이러한 경고문에도 불구하고 낙서가 된 곳에서는 보통 사람들도 준법의식이 약해졌음을 보여준다.
연구팀은 또 주위가 말끔하게 정돈된 곳에 설치된 '깨끗한' 우체통과 쓰레기가 널브러진 곳에 설치된 '깨끗한' 우체통, 지저분한 환경 속의 '낙서투성이' 우체통에 5유로 지폐가 든 편지봉투를 걸쳐놓았습니다.
수신자 주소가 적히는 부위의 투명비닐을 통해 봉투 안에 5유로 지폐가 든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상황에서 행인들이 편지봉투를 슬쩍 집어가는지 여부를 관찰한 것입니다.
관찰 결과, 편지봉투를 집어간 비율이 깨끗한 주위 환경의 깨끗한 우체통의 경우는 13%였으나 지저분한 환경의 깨끗한 우체통에서는 25%로 높아졌고 지저분한 환경의 낙서투성이 우체통에서는 27%로 더 높아졌다고 연구팀은 설명했습니다.
연구팀은 6가지 상황 관찰에서 모두 유사한 패턴이 나타났다면서 깨진 유리창 이론은 현실적으로 타당성을 갖는다고 강조했습니다.
[적용]
우리 서머나 교회가 처음 이곳에 이사왔을 때, 참 고약스러운 일이 교회 근처에서 많이 일어났습니다. 마약, 담배, 술 도난 등 여러가지 지저분한 일들이 많이 일어났습니다.
서머나 교회가 이사오고 난 후, 대대적인 정비작업이 이루어졌습니다. 화단을 아름답게 가꾸고, 파킹장을 정돈하고, 쓰레기가 나타나면 바로 주워서 버렸습니다.
교회 주변은 깨끗하여졌고, 지금은 옛날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이런 원리는 신앙인의 교회 생활에서도 적용이 됩니다.
우리 신앙인들이 교회에서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질서를 지키고 살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무질서하게 행하지 아니하며'
가정이나 학교나 사회나 국가나 교회에도 법도가 있습니다.
가정이나 학교나 사회나 국가나 교회에도 질서가 있습니다.
가정이나 학교나사회나 국가나 교회에도 전통이 있습니다.
가정이나 학교나 사회나 국가나 교회에도 위아래가 있습니다.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구세대적인 권위를 세우려고 하는 말이냐고 할 일이 아닙니다.
2. 본이 되는 삶 속에 평강이 있습니다.
[3:7] 어떻게 우리를 본 받아야 할 것을 너희가 스스로 아나니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규모 없이 행하지 아니하며
신앙적으로 건강한 사도들은 본이 되었습니다.
특별히 잘못된 말세신앙으로 동심되고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주님을 만나고 주님의 부활을 영접한 사도들은 재림 신앙에서 흔들림이 없었습니다.
주님 오실 그날을 대망하면서 복음을 전하고 믿음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바로 그런 본이 되는 신앙인이었습니다.
1] 본이 되지 않는 신앙인들이 있었습니다.
[11절]
우리가 들은즉 너희 가운데 게으르게 행하여 도무지 일하지 아니하고 일을 만들기만 하는 자들이 있다 하니
머리만 움직이는 사람이 있습니다.
입만 움직이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일을 만들기를 잘합니다.
그런데 일을 만드는 것도 때로는 좋지만, 일을 만든다는 것이 일을 완성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이라는 것입니다.
일은 완성하는 것에서 열매가 있습니다.
금년 저의 뜰에 호박을 두 그루 심었는데요.
계속 자랍니다.
계속 잎이 납니다.
계속 꽃이 핍니다.
계속 열매가 열립니다.
여름이 다가고 가을이 오는데 아직도 잎이 납니다.
여름이 다가고 가을이 오는데 아직도 꽃이 핍니다.
여름이 다가고 가을이 오는데 아직도 계속 열매가 열립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입니다.
몇 Cm 열매가 자라지 않아서 떨어집니다.
그래서 저는 호박을 하나도 따보지 못했습니다.
이제 며칠 있으면 그 호박넝쿨을 거두어야 합니다.
머리를 움직이는 사람이 있습니다.
입을 움직이는 사람도 있습니다.
말을 열심히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다 좋습니다.
그런데
손 발이 움직이지 않는 사람은 열매가 맺히는 일이 전혀 다른 일임을 알아야 합니다.
행동이 따르지 않는 사람은 열매가 맺히는 일이 전혀 다른 일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제 추신수 선수가 홈런을 셋이나 날렸습니다.
혼자 7점을 얻어서 그 게임을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저도 추신수 선수가 토론토에 오던 날 야구 경기를 보러 간 적이 있습니다.
추신수 선수가 공 앞에 서는 자세가 얼마나 진지한 지, 하나님 앞에 진지하게 서는 신앙인의 자세 같더라구요.
투수가 던지는 공을 받아치는 모습을 보니까 절대 침묵이 흐릅니다.
응원하는 사람들은 시끄럽지만, 선수 자신은 말이 없습니다.
대개 일하는 사람은 말할 겨를이 없습니다.
운동에 집중하는 분을 보면 입을 굳게 다물고 있습니다.
조용합니다.
말을 하다가도 행동에 들어갈 때보면 침묵에 빠집니다.
두 가지를 다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일 해 본 사람은 그 일이 얼마나 힘들고 사람의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는 점을 아는 모양입니다.
3:10] 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도 너희에게 명하기를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 하였더니
아무리 시대가 혼란할지라도 언제나 성실하게 일해야 하는 것이 성도의 본분입니다.
우리 성도는 주님 앞에 가는 날까지 또는 주님 오시는 날까지 열심히 일해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우리 성도는 살기 위해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일하기 위하여 사는 자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제가 느끼는 것이 있습니다.
세상에서 열심히 일하던 사람이 은혜를 받으면 교회에서도 열심히 일을 합니다.
그런데 세상에서 일하지 않는 사람은 은혜를 받아도 일하지 않습니다.
무디는 "집에서 놀고 있는 사람은 교회 일을 시켜서는 안된다고도 하였습니다.
교회는 일꾼이 많아야지 말꾼이 많아서는 안된다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생각입니다.
[3:12] 이런 자들에게 우리가 명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권하기를 종용히 일하여 자기 양식을 먹으라 하노라
엡 4:28에는, 자급자족할 뿐 아니라 구제 할 것이 있기 위하여 제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 하였습니다.
2] 본이 되는 사람은 행동하는 사람입니다.
열심히 자기일에 충성하는 사람이 본이 됩니다.
바울 사도는 자기의 신앙을 본삼으라는 합니다.
바른 지도자, 바른 선진들을 보세요.
본이 됩니다.
바울 사도는 성도들에게 본받게 하기위해 "스스로 본을 보였다"고 하였습니다.
좋은 지도자는 성도의 모델이 됩니다.(.
바울 사도는 규모를 지키는 분이었고, 교회의 모본이 되었습니다.
부지런하였습니다.
전통을 존중하였습니다.
질서를 존중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온 교회가 자신의 규모 있는 생활을 본 받으라고 했습니다.
[3:8]
누구에게서든지 양식을 값없이 먹지 않고 오직 수고하고 애써 주야로 일함은 너희 아무에게도 누를 끼치지 아니하려 함이니
바울은 사도로써 전도만 해도 되었지만(9절) 그는 신생교회에 짐을 안 지게 하기 위해 일하면서 자급자족를 하며 전하였던 것입니다.
바울은 사도는 주님이 오신다면서 일하지 않고 빈둥거리면서 말만 만드는 사람들 사이에서 일함으로써 노동의 귀함과 근면을 보여주었습니다.
복음을 행동으로 보여주었습니다.
[3:9]
우리에게 권리가 없는 것이 아니요 오직 스스로 너희에게 본을 주어 우리를 본받게 하려 함이니라
바울 사도는 사도의 권세를 사용할 수 있었고 신자들에게 생활비를 받을 권리가 있었습니다(고전9:4-6).
고전 9:6에서 바울 사도는 분명히 자비량하고 병정에 다닐 수가 없음을 말씀하십니다.
포도를 심은 농부는 실과를 먹는 것이 마땅하다 선포합니다.
양 떼를 기르는 농부는 양의 젖을 먹는 것이 마땅하다 선포합니다.
고전 9:8-10에도, "곡식을 밟아 떠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라" 선포합니다. 이것은 교역자를 위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밭 가는 자들은 소망을 가지고 갈며, 곡식 떠는 자는 함께 곡식을 얻을 소망을 가지고 떠는 것임을 말씀하십니다.
사실 빌립보서4:10-19에 보면 바울이 빌립보 교회에서 보내준 생활비를 받은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환경이 되지 않은 상황 속에서 자신에게 생활비를 강권하지 않았습니다.
① 신자들에게 누를 끼치지 않았습니다.
대신 자기 손으로 노동을 하면서 전도하였습니다.
② 신자들에게 모본을 보였습니다.
[3:8]
누구에게서든지 양식을 값없이 먹지 않고 오직 수고하고 애써 주야로 일함은 너희 아무에게도 누를 끼치지 아니하려 함이니
본이 되는 일은 이래서 어렵습니다.
그는 설교를 능하게 하였기 때문에 좋은 사도가 된 것이 아닙니다.
주님 말씀에 순종하여 죽기까지 충성하는 행함이 있었기에 좋은 사도입니다.
본이 되는 일은 행동을 해야 하기에 어렵습니다.
10월 말에 서머나 교회에 성회가 있습니다.
이번에 강사로 오시는 분은 김명혁 목사님이십니다.
그분은 말주변이 뛰어난 분이 아닙니다.
그분과 5년을 함께 지내면서 저는 그 때 교사였고, 집사였습니다.
요즈음 요셉 형제님이 새벽마다 예배를 함께 드리는데요.
저도 그분이 인도하는 새벽 예배에 반드시 참여하였습니다.
그리고 끝난 후에 학교 교편을 잡기 위해 달려가곤 하였습니다.
저는 그분과 함께 지내던 오년 동안 한 번도 그분이 병을 고치는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설교를 뿅 가게 하는 분도 아닙니다.
방언이나 무슨 은사 집회를 한 것을 본 적도 없습니다.
그래서 지난 수 년 간 그분을 강사로 모시고 싶었지만 마지막 결심을 하지 못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부흥회에서 뭔가 보기를 원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부흥회에서 뭔가 느끼기를 원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부흥회에서 병이 낫기를 원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부흥회에서 뭔가 변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그 분은 그런 것을 당장에 충족시켜 줄 수 있는 분이 아닙니다.
그래서 저는 좀 능력이 있다는 분을 모시기도 했습니다.
설교에 감동이 있다는 분을 모시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번에 김명혁 목사님을 모십니다.
그 어느 것이 없을 지 모르지만 그분은 본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연약한 민족 곁에 있습니다.
그분은 소외된 자 곁에 있습니다.
그분은 약한 어린이 곁에 있습니다.
그분은 작은 교회를 찾아갑니다.
그분은 한국 교회가 존경하는 본이 되는 어른입니다.
한국 교회가 은사를 좇아 정신 없이 달려갈 때에도 그분은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갔습니다.
참 성도는 말세시대에라도 규모있게 하나님을 경외하여야 합니다.
직장, 가정, 일 등에서 규모있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3. 낙심없이 선을 행하는 곳에 평강이 있습니다.
13. 형제들아 너희는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라
14. 누가 이 편지에 한 우리 말을 순종하지 아니하거든 그 사람을 지목하여 사귀지 말고 그로 하여금 부끄럽게 하라
15. 그러나 원수와 같이 생각하지 말고 형제 같이 권면하라
무엇이 선입니까?
데살로니가 교회는 규모없이 행하여 일하지 않고 먹으려는 사람들이 있어서 교회나 여러 사람들에게 많은 폐를 끼치고 있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여러가지 불온한 일을 일으켜서 교회에 시험거리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악입니다. 선이 아닙니다.
그러면 무엇이 선입니까?
그 소식을 전해들은 바울이 "종용히 일하여 자기 양식을 먹으라"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권하며 명령하였습니다.
은혜 받았다고 떠들고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왔다고 하면서 일하지 않는 것은 믿음이 아님을 경고하였습니다. 그것은 악입니다.
종용히 일하여 자기 먹을 양식을 자기가 벌어서 먹고 가정에 대해서, 교역자나 교회에 대해서, 복음운동에 대해서 마땅히 자기가 해야 할 의무와 책임을 잘 감당하는 것이 선입니다.
말세에 행함으로 믿음 지키는 것이 선입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준비하는 선입니다.
믿음을 바르게 쓰고 규모있게 생활하며 선을 행하는 경건한 성도들에게 규모없이 일만 만들며 설쳐대는 악한 자들을 보고 낙심치 말라 권합니다.
때가 되면 열매를 거둘 줄 믿고 계속하여 선을 행하라 명합니다.(갈6:9-10)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아무리 규모없는 자들이 악을 행하며 교회가 좀 흔들리는 것 같더라도 낙심하지 말고 하나님만 의뢰하고 선(善)에 서서 하나님의 뜻대로만 꾸준히 걸어가면 하나님이 아름다운 열매를 거두게 해 주실 것입니다(갈 6:9참조).
그러나 선을 행하지 않고, 악을 행하는 자들을 만날 때 성도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14-15절]
누가 이 편지에 한 우리 말을 순종하지 아니하거든 그 사람을 지목하여 사귀지 말고 그로 하여금 부끄럽게 하라
15. 그러나 원수와 같이 생각하지 말고 형제 같이 권면하라
무엇보다 동조하면 안됩니다.
동조하는 것은 같은 악을 행하는 일입니다.
악을 행하는 자에게는 선한 의미의 징계가 필요합니다.
징계 하는 목적은
① 교회에 덕을 세우기 위함이요
② 구원운동에 손해가 나지 않고 하나님께 욕이 돌아가지 않기 위함이요
③ 그 사람을 회개시키기 위함이다.
지목하고 사귀지 않아야 그 사람이 고립되어 반성하고 회개할수 있습니다.
또 그 사람을 부끄럽게 할 때에 더욱 회개하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게 됩니다.
그러나 원수같이 취급하지 않아야 다음에 회개하고 돌아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원수와 같이 생각지 말고 형제같이 권하라"
거리는 두되 원수지지 말고 형제의 사랑으로 지혜롭게 권면하라는 말씀입니다.
성령의 사람은 알아 채리고 고쳐 갑니다.
그러나 악한 사람을 아무리 대 놓고 말해 주어도 깨닫지 못합니다.
[마무리하는 말]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십니까?
[16절]
○평강의 주께서 친히 때마다 일마다 너희에게 평강을 주시고 주께서 너희 모든 사람과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
평강의 주께서는 친히 때마다 일마다 우리 성도들에게 평강을 주시고 우리 모든 사람과 함께 하시기를 원하십니다.
1. 규모있는 생활 속에 평강이 있습니다.
2. 본이 되는 삶 속에 평강이 있습니다.
3. 낙심없이 선을 행하는 곳에 평강이 있습니다.
규모 있게 사십시오.
본이 되는 삶을 사십시오.
낙심없이 선을 행하십시오.
평강의 주께서는 친히 때마다 일마다 우리 성도들에게 평강을 주시고 우리 모든 사람과 함께 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주께서 친히 주시는 평강과 은혜를 누리는 삶입니다.
[성경본문]
6. ○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명하노니 게으르게 행하고 우리에게서 받은 전통대로 행하지 아니하는 모든 형제에게서 떠나라
7. 어떻게 우리를 본받아야 할지를 너희가 스스로 아나니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무질서하게 행하지 아니하며
8. 누구에게서든지 음식을 값없이 먹지 않고 오직 수고하고 애써 주야로 일함은 너희 아무에게도 폐를 끼치지 아니하려 함이니
9. 우리에게 권리가 없는 것이 아니요 오직 스스로 너희에게 본을 보여 우리를 본받게 하려 함이니라
10. 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도 너희에게 명하기를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 하였더니
11. 우리가 들은즉 너희 가운데 게으르게 행하여 도무지 일하지 아니하고 일을 만들기만 하는 자들이 있다 하니
12. 이런 자들에게 우리가 명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권하기를 조용히 일하여 자기 양식을 먹으라 하노라
13. 형제들아 너희는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라
14. 누가 이 편지에 한 우리 말을 순종하지 아니하거든 그 사람을 지목하여 사귀지 말고 그로 하여금 부끄럽게 하라
15. 그러나 원수와 같이 생각하지 말고 형제 같이 권면하라
[축복]
16. ○평강의 주께서 친히 때마다 일마다 너희에게 평강을 주시고 주께서 너희 모든 사람과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
17. ○나 바울은 친필로 문안하노니 이는 편지마다 표시로서 이렇게 쓰노라
18.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무리에게 있을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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