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15 March 2015

고후4:12-18 속사람이 새로워지는 비밀

26장 구세주를 아는 이들
436장 나 이제 주님의 새생명 얻은 몸
510장 하나님의 진리 등대

[들아가는 말]

     몸무게가 줄어듭니다.
살도 빠집니다.
요즈음도 달리기를 곧잘 하는데요.
젊은 때와 다른 점이 있습니다.
진보가 별로 없다는 점이에요.
늘 그 속도 그 수준 그 자리에 머무릅니다.
속도가 나아지는 것이 없는 것은 물론 다리 근육이 생긴다거나 하는 외형의 변화가 별로 없어요.
그래서 속으로 생각합니다.

"아, 늙어간다는 것이 이런 것이로구나!"

낙심이 살짝 스쳐갑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오늘 우리는 소망이 넘치는 메시지를 듣습니다.

[고후4:16]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는 데 낙심하지 않는데요.

겉사람이 낡아지는 것이지 내 인생 전체가 낡아지는 것은 아니다는 것이지요.
인생의 모두가 낡아지는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겉사람'이 낡아져 가는 것은 이 세대의 인간들에게 적용되는 생성 소멸의 원리입니다.

우리에게는 속사람이 있습니다.
이 '속사람'은 복음을 통해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중생한 영적 실존입니다.

날로 새로워질 수 있다는 것이지요.

할렐루야!

어떻게 속사람은 날마다 새로워질 수 있을까요?



1. 주 예수를 다시 살리신 주 앞에 나아가고 있음을 알 때입니다.

[고후4:14]
14. 주 예수를 다시 살리신 이가 예수와 함께 우리도 다시 살리사 너희와 함께 그 앞에 서게 하실 줄을 아노라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부활의 소망을 아는 값진 삶을 받았습니다(1절).

우리 믿는 성도들이 낙심하지 않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주 예수를 다시 살리신 이가 예수와 함께 우리도 다시 살리"시는 날이 다가오고 있다!

이것은 소망입니다.

"주 예수를 다시 살리신 이가 예수와 함께 우리도 다시 살리사 너희와 함께 그 앞에 서게 하실" 날이 다가오고 있다는 소망입니다.

주 예수를 다시 살리신 주 앞에 서려고  나아가고 있음을 알 때, 우리 성도들의 속사람을 새로워지게 합니다.

이러한 부활과 재림의 신앙은 우리 성도들의 낡아지는 겉사람을 이기게 합니다.
속사람을 새로워지게 합니다.

그날,
성도들은 함께 구원의 기쁨을 나누며 그리스도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그날,
믿는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승리에 참여하게 됩니다.

무엇보다, 죽음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승리에 동참할 소망은 우리 성도들의 속사람을 새롭게 합니다.

그날,
성도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소망하기 때문입니다.

이 '새로와짐'은 종말론적 재림의 때에 완성되는 것이지만,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인해 이미 현재에 준비가 진행됩니다.

오늘 말씀은 이것을 '날마다 새롭다'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예수와 함께 우리를 다시 살리사 성도와 함께 주 앞에 서게 하실 줄 알고 살아갑시다.

우리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집니다.


이런 찬송이 있습니다.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날마다 나아갑니다.



어떻게 속사람은 날마다 새로워질 수 있을까요?

2. 감사로 은혜가 넘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때입니다.

[고후4:15]
15. 이는 모든 것이 너희를 위함이니 많은 사람의 감사로 말미암아 은혜가 더하여 넘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우리 시대의 가장 큰 병이 무엇입니까?

물질적으로 풍요함은 넘치는데 영적으로는 피폐하여 있다는 것입니다.

친구간 사소한 한마디에 죽고 죽이는 살벌한 세상입니다.

물질에 눈멀어 부모를 죽이고 보험금을 타려는 자식의 기사가 번연히 세상 메스컴에 튀어나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지금 절망과 자살과 원망과 불평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사람마다 더 물질이 풍요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정작
우리 시대의 불행은 ‘감사’가 없다는 데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들에 대하여 감사를 못하니까 하나님의 은혜에 눈이 멀어요.

하나님의 은혜에 눈먼 사람들은 부모, 스승께 감사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하나님께서 주신 것들에 대하여 감사를 못합니다.

감사로 돌아가야 합니다.


많은 사람이 감사를 통해 풍성한 은혜를 체험합니다.
그렇습니다.
감사하는 인생에 은혜가 넘칩니다.

한나도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러나 한나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며 노래하기 시작했을 때,
그 열매가 달라졌습니다.

사무엘을 하나님의 손에 올려드렸습니다.
사무엘의 동생들이 다섯이나 되었습니다.
한나는 우리처럼 평범한 성도의 길을 걸어간 사람입니다. 한나는 슬픔과 어려움을 안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했습니다. 한나는 브닌나로부터 받는 고통을 감당할 수 없어서 주님 앞에 나아가 눈물로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 저에게 아들을 주시면 이 아들을 하나님께 바치겠습니다!”라고 서원했습니다. 한나의 기도는 하나님께 상달되어 사무엘이라는 귀한 아들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한나는 은혜를 받았습니다. 한나는 하나님께서 주신 아들을 기도로 잘 길렀습니다. 믿음 안에서 잘 양육하였습니다. 어느덧 3년이 흐르고, 이제 어머니와 아들의 정은 깊을 대로 깊어졌습니다.
하지만
한나는 귀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감사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고 하나님 은혜에 감사로 반응하였습니다.

한나는 실로에 올라가서 사무엘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한나는 주님의 큰 은혜에 감사했습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은혜를 주신 것을 감사하며 사무엘을 맡기고 돌아옵니다.

은혜가 넘치게 되면
감사가 나옵니다.
은혜가 감사로 꽃 피어난 곳에
하나님께 영광이 되지요.

교회와 가정을 위해 기도할 때, 은혜를 구할 일입니다.
교회와 가정이 감사로 충만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와 가정이 하나님의 은혜를 모르고 삽니다.
교회와 가정에 은혜가 넘칠 때, 하나님의 영광이 됩니다.

은혜와 감사가 넘치는 가정은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납니다.

감사하고
은혜가 넘치고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삶이 이어지면
우리의 속사람은 강해지게 마련입니다.

조선시대 세종 때 장영실이라는 인물이 등장합니다.
그의 신분은 천민입니다. 기생의 아들이었습니다. 전혀 값이 나가지 않은 신분입니다
그래서 그는 고을 원님댁에서 원님부인의 잔심부름을 하며 자랐습니다.
일을 성실히 잘합니다.

원님이 불러다가 그에게 일을 시켰습니다.
그에게도 인정을 받습니다.
장영실은 저수지를 마련해 두었다가 가뭄이 들었을 때 마을 논밭에 물을 대주었습니다.
고을 원님은 감동하여 물었습니다.

“네 소원이 무엇이냐?”
“저는 소원이 없습니다. 다만 우리 어머니하고 같이 살고 싶습니다”

마음이 예쁘지요.
장영실은 어머니와 함께 살게 되었습니다.

이 원님은 장영실이 머리가 비상한 인재임을 알고, 인재를 찾는 세종대왕에게 장영실을 천거하였습니다.
그는 세종대왕의 부름을 받아 계속 연구하게 되었습니다.
해시계, 물시계, 측우기, 풍향계 등 많은 발명품을 만들어냈습니다.
세종대왕은 장영실을 노비에서 면천시키고 벼슬을 주었습니다.
장영실 인생이 만개했습니다.

감사하는 인생
왕의 은혜 속에 사는 인생
사랑하며 사는 인생
참 아름답습니다.



어떻게 속사람은 날마다 새로워질 수 있을까요?

3. 잠시 받는 환난은 크고 영원한 영광의 불씨가 됩니다.

[고후4:17]
17.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다 보면 도리어 다른 사람들보다 더 환난을 당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해서 모든 어려움에서 면죄부가 주어진다거나 하는 일마다 형통하며 아무런 어려움과 문제를 겪지 않는다 말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 세상에서 나그네요 아직 본향에 이르지 못하였기에 오히려 환난을 당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도 이 세상 삶에서 여러 가지 어려움과 문제를 경험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잠시'와 '영원'
 '경한 것'과 '중한 것'

대조로 나타나는 환난과 영광이란 말씀으로 잘 표현되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받을 크고 영원한 영광에 비하면 우리가
잠시 받는 그 환난은 아주 가볍다는 것입니다.

사실 바울 사도의 경우 사도직을 수행하면서 그가 당한 환난은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고후1:8-9에서 어떤 고백을 남기고 있습니까?

8.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9.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


그가 당한 환난은 너무 심하여 살 소망까지 포기해야 하는 상황에 있었습니다. 사형선고를 받은 줄 알았음에도 그는 이것을 '경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사도 바울이 그날 주 앞에서 받을 크고 영원한 영광을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과 부활에 참여할 성도들로 더불어 주 앞에서 누릴 크고 영원한 영광에 비하면 잠시 받는 환난은 오히려 가볍다는 뜻이지요.

더구나 우리가 고난을 당할 때,
그 고난은 크고 영원처럼 느껴집니다.

요셉이 어린 시절
보디발의 집에서
옥중에서 받은 환난이 있습니다.
요셉에게 그 고난은 영원처럼 길게 느껴졌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가 국무총리가 되어 세상에서 누린 엄청난 영광에 비하면 그 당한 고난이 작다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렘29:11]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 하는 생각이라.

하나님께서는 그 상대적으로 작은 고난을 불꽃으로 삼아
크고 영원한 영광을 키우십니다.




[마무리하는 말]

13. 기록된 바 내가 믿었으므로 말하였다 한 것 같이 우리가 같은 믿음의 마음을 가졌으니 우리도 믿었으므로 또한 말하노라

'속사람'이 도리어 새로와지는 것은 중생한 영혼이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지식이 새로와지며 결국에는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이르게 됩니다(엡 4:15;골 3:10).




[성경본문]
12. 그런즉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역사하느니라
13. 기록된 바 내가 믿었으므로 말하였다 한 것 같이 우리가 같은 믿음의 마음을 가졌으니 우리도 믿었으므로 또한 말하노라
14. 주 예수를 다시 살리신 이가 예수와 함께 우리도 다시 살리사 너희와 함께 그 앞에 서게 하실 줄을 아노라
15. 이는 모든 것이 너희를 위함이니 많은 사람의 감사로 말미암아 은혜가 더하여 넘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16.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17.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18.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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