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15 March 2015

고전4:14-21 그리스도 안에서 본받는 자가 되라 - 건강한 교회 13

     [들어가는 말]

     지난주일 설교 결론 부분에서 쓰나미 생존자 '마리아 벨론'
[cafe.daum.net/dm3179/9q2j/326]을 함께 보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 작품 속에서 가족의 소중함을 만난 줄 압니다.
제가 특히 감동한 장면은 덮쳐오는 쓰나미 속에서도 어린 두 자녀를 양팔에 끝까지 붙들고 선 아버지였습니다. 그리고, 자기도 살기 힘든 상황 속에서 어머니를 향해 헤엄쳐 가는 아들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들 중 누구도 완벽하게 그 쓰나미 속에서 살아남는다는 보장이 없었지만, 위기속에 있는 지체들을 지키기 위해 몸을 던지는 그 사람들을 보면서 감동이 되었습니다.

      교회란 지상에 두신 하나님의 가족입니다. 그러나 이 하나님의 가족은 세상에서 쓰나미와 같이 밀려드는 죄의 권세 앞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우리 중 누구도 안전지대에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연약하여 이 죄의 권세를 넉넉히 이길만한 힘이 없습니다. 언제든지 덮쳐오면 우리는 당할 수밖에 없는 연약한 자들입니다. 그러나 건강한 교회에게는 연약한 지체들이 덮쳐오는 쓰나미와 같은 어두움의 권세 앞에 지체들을 보호하기 위해 뛰어들 수 있는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를 궁극적으로 구원하실 분은 주님이시지만, 우리는 주님께서 허락하신 주님의 몸된 교회에서 다른 지체를 희생과 헌신으로 사랑하는 지체의식이 필요합나다.

      건강한 교회는 지체를 살리기 위해 생명을 던지는 감동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이런 감동적 헌신을 보여주는 몇 가지 사례를 만납니다.
고린도교회를 향해 일어서 바울 사도와 디모데, 그 이면에서 역사하시는 주님을 만납니다.

     이 시대에 주님의 몸된 교회의 지체로 선 우리는 어떤 분야에서 본이 될 수 있는지 답을 찾을 수 있기 원합니다.

건강한 교회란 이런 본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선물을 사용하는 특별한 가족의 모임이기 때문입니다.



1. 스승보다 아버지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내가 복음으로써 너희를 낳았음이라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비는 많지 아니하니"

    '스승'으로 번역된 '파이다고구스'는 크게 두 가지의 의미를 지니는데
(1)하나는 지식을 '가르친다'는 지식적 개념입니다. 가르치는 가정 교사라는 말입니다.
(2) 또 하나는 '지도한다'는 지도권의 개념입니다. 아버지의 지도에 따라 아들을 지도하는 교사입니다.
자녀에게 예의 범절을 잘 지키도록 지도하는 교사이지만, 신분은 노예였습니다.
종의 신분으로 아버지의 위임을 받아 교사직을 수행하는 스승(slave-guide)입니다.
그들은 수가 많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수행하는 역할이 중요합니다.

     갈라디아서에서는 초등교사로 번역된 되었습니다.

     (갈 3:23-26)

23. ○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는 율법 아래에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
24.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
25. 믿음이 온 후로는 우리가 초등교사 아래에 있지 아니하도다
26.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일만 율법이 와서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할지라도 우리를 의롭게 하는 것은 율법입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만 가지 율법을 완성하는 것입니다.

     자녀가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는 것은 일만 스승에 의한 것이 아닙니다.
자녀는 일만 스승이 있을지라도 이루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그 자녀가 이 세상에 있을 수 있는 것은 아버지가 있음으로 인하여 가능한 것입니다.

      오직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있는 것 같이
아버지가 있음으로 자녀는 태어나고 아버지로부터 자녀 교육을 위임 받은 '초등교사' '스승'은 의미를 갖게 됩니다.

      교회에는 일만 선생이 있을 수 있습니다.
윤리를 가르치는 선생이 있을 수 있습니다.
교회 생활을 가르치는 선생이 있을 수 있습니다.
세상 지혜를  가르치는 선생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단 교리를 가르치는 선생이 있을 수 있습니다.
자유주의 신앙을 가르치는 스승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일만 스승을 참고로 할 뿐입니다. 우리들은 그들을 롤 모델로 삼아서는 안됩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내가 복음으로써 너희를 낳았음이라"

      사도 바울과 같이 복음으로 사람을 낳는 영적 아비가 우리의 본이 되어야 합니다.


[적용]
      사도바울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복음으로써 디모데를  낳았습니다.
      사도바울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복음으로써 디도를  낳았습니다.
      베드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복음으로써 마가 요한을  낳았습니다.




     2. 예수 되려 말고 예수님이 생각나게 하는 사람 됩시다.

     [고전4:17]

17.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 안에서 내 사랑하고 신실한 아들 디모데를 너희에게 보내었으니 그가 너희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행사 곧 내가 각처 각 교회에서 가르치는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디모데는 제2차전도 여행을9999999999999999999999 하던 중 루스드라에서 복음을 전파할 때, 만났습니다.
유대인 어머니와 헬라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나 그 외조모와 어머니의 신앙을 이어받았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을 만나 가르침을 받으면서 그리스도의 충실한 일꾼이 되었습니다.

      바울 사도는 제3차 전도여행 중 에베소에서 고린도 교회의 분쟁 소식을 듣고 디모데를 파송합니다.

어려운 상황속에서 디모데를 파송하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고린도 교회에서 사역했던 지난 날의 가르침의 내용을 그들 가운데 상기 시키면 되었습니다.
새롭게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가르치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바울 사도를 통해 선포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가운데 교회가 든든히 서면 되었습니다.
바울사도는 디모데를 특수한 임무로 파송(派送)함에도 불구하고 새롭고 특수한 처방법을 명령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단지 실루아노와 디모데와 함께 고린도 교회에서 사역했던 지난 날의 가르침의 내용을 생각나게 하는 방법을 통하여 그들의 잊어버린 진리를 다시 회복되기를 기대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그가 누렸던 복음의 능력들을 상기시키려고 하였습니다(1:18). 왜냐하면 사람을 교훈하고 책망하며 바르게 하는 것 중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보다 더 효과적인 것은 없기 때문입니다.

     [딤후 3:16, 17]

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17.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그가 전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의 가르침을 디모데가 고린도 교회에서 생각나게 하면 되었습니다.

     [행4:12]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바울 사도는 '신실한 아들' 디모데가 사도의 가르침을 생각나게 함으로 교회의 문제가 해결될 것을 확신했습니다

     [적용]

     해 아래 새 것이 없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새로운 것, 신기한 것, 깜짝 놀라게 하는 무엇을 기대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사도들이 각처 각 교회에서 가르치는 것을 생각나게 해주는 말씀으로 만족할 수 있기 바랍니다.
그 안에 길이 있고
그 안에 생명이 있고
그 안에 진리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생각나게 하는 신앙인]

     장기려 박사는 일제시대 경성제국대학 의대를 졸업하고 29세에 박사학위를 받은 수재였습니다. 그는 의대 입학시험을 볼때 하나님께 이런 서원을 했다고 합니다.

     "하나님, 이 학교에 입학시켜 주시면 한평생 불우하고 가난한 사람을 위하여 몸을 바치겠습니다."

     졸업 후, 그는 서원 대로 가난하고 병든 이웃을 위하여 무료 진료소인 복음 병원을 개설하여 영세민 의료구호 사업에 전생애를 바쳤습니다.




     3. 말보다 능력입니다.

     [고전4:20]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


     고린도 교회에 파도를 몰고 온 사람들은 바울의 사도권을 부정하려 하였습니다.(9:17)
그들의 달변으로 다른 지체들을 부끄럽게 하였습니다.
그들의 이방 철학으로 복음을 변질시켰습니다.
인본주의적 세상 사고로 하나님께서 사도들을 통해 전해주신 진리를 세속화시키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사도 바울에 대한 공격은 천박하고 치졸하였습니다.

 '그의 몸은 약하고 그의 말은 시원치 않다'(고후10:10)

그들은 지체 조소(嘲笑)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고린도 교회 내의 거짓 교사들의 사주를 받고 있었습니다.

      바울 사도는 그런 사람들에게 말씀을 선포합니다.

     [고전4:20]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

     '하나님의 나라'(헤 바실레이아 투 데우)는 그리스도의성육신과 재림으로 성취될 메시야 왕국을 의미합니다(막 1:15).
이 세상 끝날에 도래하게 될(마19:28; 25:31) 하나님의 새하늘과 새땅을 의미하기도 합니다(계 21장).
그러나 본문에서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땅에 오심으로 인해 이미 성도들간에 실현되고 있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현재 영적으로 지배하시며
그들의 삶 속에 그의 능력을 나타내 보여주신다는 의미로서의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개념을 도입하여 저들을 책망한 것은 고린도 교인들이 1:5,6과 본장8절이 시사한 대로 모든 구변과 지식에 풍족한 수준에 있었으나 생활의 실제적인 모습은 하나님의 나라의 모습과 거리가 먼 시기(猜忌)와 심한 분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화]

     5년동안 성도 한 명의 생기지 않을 정도로 미신이 강한 곳에서 가난과 핍박의 고통을 견디며 사랑을 실천했던 나가노 목사님 집에 결핵에 걸려 죽을 날만 기다리던 가난한 신학생 한 명이 찾아왔습니다. 결핵에 걸리면 죽어야 했던 시절,가난한 살림살이와 아이들이 전염될지도 모를 위험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시도 때도 없이 각혈하는 이 신학생을 나가노 목사님은 가족으로 받아들여 지극한 사랑으로 돌보았습니다.

     이때 이 신학생은 나가노 목사님을 통해 ‘신앙은 곧 사랑이다. 그리고 사랑은 말이 아니라 실천하는 것’임을 깊이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어차피 죽을 거라면 자신도 사랑을 실천하다가 죽기로 결심한 이 신학생은 빈민굴을 찾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생명을 던지는 심정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았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병이 낫게 됩니다. 그는 자신이 죽을 고비에 처해 있었을 때 그리스도의 참사랑을 보여준 나가노 목사님의 삶을 따라 빈민굴을 떠나지 않고 계속해서 살아갔습니다. 이 신학생이 바로 훗날 20세기의 성자로 불리게 되는 가가와 목사님입니다.
     패전 후 많은 일본인들이 피살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일본군에 의한 피해가 가장 컸던 중국 거주 200만명의 일본인들은 오히려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일본을 분할시키려던 연합국의 당초 계획이 취소된 것입니다. 평소 가가와 목사님의 삶을 깊이 존경하고 있던 중국의 장개석 총통이 오직 이 가가와 목사라는 일본인 1명 때문에 200만명의 일본인들을 무사히 돌려보냈고 일본 분할에 적극 반대함으로써 이루어진 일이었다고 합니다.
     장개석 총통은 “일본인들은 내 민족의 원수이다. 그러나 우리 민족을 위해 지금도 뜨겁게 눈물 흘리며 기도하고 있을 가가와를 생각할 때 나는 그들을 미워할 수만은 없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가가와 목사님이 위대했던 것은 자신이 받았던 사랑을 남에게 더 크게 갚았던 사랑의 삶을 실천했기 때문입니다. 가가와 목사님은 이렇게 말하곤 했습니다. “신앙은 사랑이다. 사랑은 실천이다. 사랑은 뒤치다꺼리를 하는 것이다.”


     몇 년 전 한 기독교계 잡지에서 발표한 설문조사 결과에서 비기독교인들의 눈에 비친 기독교인의 모습은

     "교회에선 어떤지 몰라도 이기적인 경우가 많았다"라는 응답에 31.4%
    "생활에 성실하기는 하나 인격적으로는 문제가 있었다"라는 질문에 응한 사람의 비율은 22.9%
    "비기독교인들 보다 위선적이고 자기 중심적으로 보였다" 18.6 %
    "모범적인 생활태도와 인격이 느껴져 사귀고 싶었다"고 응답한 사람은 17.1%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가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을 기억하십시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성도들의 새로운 삶과 그 능력 속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십니다.

     [고후5:17-19]

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18.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
19.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새로운 피조물이 된 성도들이 그리스도께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받아 하나님과 화목하고 또 교우들 간에 화목할 수 있는 것은 말이 아니라 능력입니다.

     이는 고린도 교인들의 삶의 공동체 곧 교회 속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복음의 능력과 사랑의 실천을 요구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헛된말', 인간의 공허한 웅변에 있지 않습니다.

     곧 하나님 나라에 대한 지식으로 인해 변화된 품성, 새 사람으로서의 옛 사람을 벗어 버린 의와 거룩함과 화평을 이루는 실제적인 모습입니다.

     따라서 바울은 인격과 삶의 변화, 즉 행동으로 나타나는 능력을 강조함으로써 헛된 말과 지식 즉 영적 교만 속의 열매없는 신앙 생활을 고발하고 있습니다.




     [마무리하는 말]

1. 복음으로 사람을 낳는 사역자를 본받읍시다.
2. 가르침을 생각나게 하는 사역자를 본받읍시다.
3. 말보다 능력으로 사역하는 사역자를 본받읍시다.




[성경본문]

14.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고 이것을 쓰는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내 사랑하는 자녀 같이 권하려 하는 것이라
15.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버지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내가 복음으로써 너희를 낳았음이라
16.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권하노니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17.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 안에서 내 사랑하고 신실한 아들 디모데를 너희에게 보내었으니 그가 너희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행사 곧 내가 각처 각 교회에서 가르치는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18. 어떤 이들은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지 아니할 것 같이 스스로 교만하여졌으나
19. 주께서 허락하시면 내가 너희에게 속히 나아가서 교만한 자들의 말이 아니라 오직 그 능력을 알아보겠으니
20.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
21. 너희가 무엇을 원하느냐 내가 매를 가지고 너희에게 나아가랴 사랑과 온유한 마음으로 나아가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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