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17 March 2015

골로새4:7-18 주님 역사에 쓰임받은 일꾼의 특징

 [들어가는 말]

    성경은 사람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책은 아닙니다.
하나님과 하나님께서 하신 일에 대하여 알려주시는 책입니다. 성경은 사람을 위해 하나님과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기록한 책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골로새서를 마무리하는 말미에는 여러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남기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곳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주역이 아닙니다. 주역은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이곳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주역이신 하나님께서  그분의 역사, 곧 하나님 나라의 구속 역사를 이루어 가시는 현장에 쓰임받은 인물들입니다.
착한 일을 시작하신 하나님께 쓰임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현장에서 어떤 일정 역할을 부여받아 그 일에 쓰임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오늘 말씀은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무대에 부름을 받은 사람들이 그 무대에서 어떻게 사명을 감당하였기에 하나님의 생명책에 그 이름과 사역을 남길 수 있었는가 알려주십니다.

    이 말씀을 만나는 우리들이 오늘이라 일컫는 삶의 무대에서 어떻게 사명을 감당해야 할 것인가를 알려 주시기 위함입니다.

   어떤 사람이 어떤 삶으로 하나님의 생명책에 그 이름과 사역을 남길 수 있었습니까?


   1. 우리는 주 안에서 형제요, 일꾼이요,  종입니다.

    [7-8절]

    두기고가 내 사정을 다 너희에게 알려 주리니
그는 사랑 받는 형제요
신실한 일꾼이요
주 안에서 함께 종이 된 자라
내가 그를 특별히 너희에게 보내는 것은 너희로 우리 사정을 알게 하고 너희 마음을 위로하게 하려 함이라.

    오늘 말씀을 바로 이해하려면, 우리는 오늘 말씀과 동일한 내용을 담고 있는 엡6:21 말씀을 보는 것이 좋습니다.

    "나의 사정 곧 내가 무엇을 하는지 너희에게도 알리려 하노니 사랑을 받는 형제요 주 안에서 진실한 일꾼인 두기고가 모든 일을 너희에게 알리리라"(엡 6:21)

    그리고 이 말씀의 배경 사건을 담고 있는 사도행전19-20장을 읽어보는 것이 좋습니다.

    3차 선교여행 중 바울은 에베소에 들렀습니다.
     -눈에 띄는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 회당에 들어가 3개월간 담대히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전파하였습니다. 이번에는 비방하는 사람들이 일어났습니다.
    - 두란노 서원을 세우고 2년 동안 집중적으로 주님의 말씀을 교육하였습니다.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행19:10)

"아시아에서 사는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듣더라"  
   하나님께서 바울의 손으로 놀라운 능력을 행하게 하셨기 때문에 바울의 손에 있는 손수건만 가져다가 환자 위에 얹어도 병이 떠나고 악귀가 떠나가는 역사가 일어나고 있었습니다.(행19:17-20)

    에베소에 사는 유대인과 헬라인들이 다 이 일을 알고 두려워하여 주 예수의 이름을 높이고 믿은 사람들이 많이 와서 자복하여 행한 일을 알리며 또 마술을 하던 많은 사람이 그 책을 모아 가지고 와서 모든 사람 앞에서 불사르니 그 책값을 계산한즉 은 오만이나 되더라.
이와같이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얻으니라


    사도 바울의 마음 가운데 담대함이 생겼습니다.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내친 김에 유럽지역과 로마까지 복음으로 휩쓸어버리고 싶은 열정으로 가득차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이 있었는데요, 그것은 어두움의 권세도 가만히 침묵하고 있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당시 우상 숭배에 빠져 살던 수많은 사람들의 개종으로 인해 생업을 잃고 생계가 막막해진 실업자들이 생겨났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에베소 지역 사람들을 우상으로 호도하여 생계를 이어가던 우상숭배 종교지도자들과 그 우상을 만들어 파는 수많은 장사들이 실업자로 나앉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직공들을 두고 은으로 아데미의 신상 모형을 만들어 적지 않은 벌이를 하던 사람들이 주님의 복음이 흥왕하며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들은 신이 아니라 하니" 졸지에 그들은 생업을 놓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에 분개한 자들이 수많은 사람들을 충동질하여 온 회중을  분노 속으로 몰아넣었습니다.
에베소 온 시내가 걷잡을 수 없는 혼란 속에 휩쓸렸습니다.

  "크다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

    결국 바울 사도의 동역자인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는 붙들려 연극장으로 끌려가 봉변을 당하였습니다.

    이런 터무니없는 소요가 2시간 이상 계속되었습니다.

    가까스로 에베소를 탈출한 바울 사도는 유럽 선교를 어느 정도 마무리하고 예루살렘을 거쳐 로마에 갔지만 그는 당당한 복음 전도자 이전에 감옥에 갇힌 죄수의 신분이었습니다.

    에베소 교회와 에베소 사역에 의해서 생겨난 골로새 교회는 바울로 인하여 작지 않은 근심에 빠졌습니다.

    외부적으로는 비기독교 세력의 반발과 핍박에 맞닥뜨려야 했습니다.
   사도는 로마 감옥에 죄수의 신분으로 갇혀 있었습니다. 에베소 교회와 골로새 교회는 모두 바울 사도를 통한 하나님의 역사를 엄청 나게 체험하는 가운데 일어난 교회였기 때문에 바울 사도에 대한 의존도가 매우 컸습니다.


    이런 역사적 배경 속에서 에베소 교회와 골로새 교회 사정에 정통한 두기고란 인물이 역사적인 무대에 등장합니다.

    우선 그는 베드로도 아니고, 바울도 아닌 두기고입니다.

   요즈음도 서양 사람들은 자녀 이름을 지을 때, 피터니 폴이니 하는 이름을 많이들 사용합니다.
그러나 두기고란 이름을 들어보셨나요?

    지난 주간에 우리 교회에 두기고란 익명을 사용하는 선교사님께서 다녀가셨습니다. 그렇지만, 흔치  않은 이름인 것만은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두기고는 뚜렷이 내세울만한  무엇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름만 가지고 보면, 별로 자랑할 것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를 이렇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 사랑을 받는 형제요
- 신실한 일군이요
- 주 안에서 함께 된 종이라.

    두기고는 내외적으로 위기에 처한 초대교회에 구원투수로 부름을 받은 격이었습니다.
    두기고가 무엇을 할 수 있었습니까?

    [7-8절]을
    함께 읽어보시겠습니다.

    두기고가 내 사정을 다 너희에게 알려 주리니
그는 사랑 받는 형제요
신실한 일꾼이요
주 안에서 함께 종이 된 자라
내가 그를 특별히 너희에게 보내는 것은 너희로 우리 사정을 알게 하고 너희 마음을 위로하게 하려 함이라.

   바울 사도가 로마 감옥에 억류되어 있는 동안에 그는 바울 사도를 통해 기록된 에베소서와 골로새서를 가지고 오네시모와 함께 에베소교회와 골로새 교회를 찾아갔습니다. (골4:7-9)

 
    "나의 사정 곧 내가 무엇을 하는지 너희에게도 알리려 하노니 사랑을 받는 형제요 주 안에서 진실한 일꾼인 두기고가 모든 일을 너희에게 알리리라"(엡 6:21)


   두기고는 소아시아 지역에서 출생하여 성장한 정통 유대인으로 (행20:4), 사도 바울의 3차 전도 여행 때에 함께 유럽지역 선교 여행에 동참하였습니다.
   이런 연유로 하는 그는 바울 사도와 아시아 지역 교회에 다리 역할을 하는데 적임자였던 것입니다.
     
    두기고가 골로새에 가게 된 것은, 그가 본 서신을 전달하는 동시에 사도 바울의 정황(情況)을 교회에 알려주어 성도들을 위로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바울 사도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옥에 갇혀 있다는 사실은 에베소교회나 골로새 교회가 실망할 일이 아니었습니다.
    바울 사도는 그곳에서 몸만 부자유할 뿐, 복음 전하는 일은 효과적으로 잘 감당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로마에 살고 있는 유대교 지도자들을 초대하여 그가 전하는 하나님의 대하여 설명할 수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사도바울을 찾아와서 그가 전하는 복음에 대하여 듣고 돌아갔습니다.
그곳에서도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는 바울 사도의 모습은 초대 교회의 자랑일 망정 부끄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바울사도의 사역하는 생활은 모든 교회에 큰 감동과 격려(激勵)를 줄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에게 부여된 세 가지 호칭을 살펴봅시다.

    1] '사랑을 받는 형제'입니다.

  하나님의 가족이요 구성원입니다.

- 사랑을 받는 형제요

    그는 아데마와 함께 그레데에 있는 디도에게로 급히 가라는 사도의 부탁을 즐거운 마음으로 수행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인들 간의 실제적인 관계는 바로 이런 형제요 자매입니다(롬 15:14 ; 고전 15:58 ; 빌3:1, O' Brien).

    2] '신실한 일꾼'입니다.


    특별한 사역을 부여받은 사람입니다.('디아코노스')

   - 신실한 일군이요

    이방인 교회들이 예루살렘 교회에 구제금을 보낼 때, 그 구제금을 가지고 사도 바울과 동행하였던 7인 중의 한 사람으로 부름을 받은 바 있던 그였습니다.(고전 16:3)

    (골4:8) 바울 사도는 저를 특별히 골로새 교인들에게 보냅니다. 왜냐하면 그가 신실한 일꾼이었기 때문입니다.
신실은 "하나님의 비밀"곧, 복음을 맡은 사역자의 필수적인 자격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두기고는  "주 안에서 함께 된 일군의 자격"에서 신실하였습니다. 그리고 주님 종이 반드시 갖추어야 할 자격"인 신실함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두기고는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알고 절대로 충성하고 순종하는 자였습니다.

고전 4:1-2은 말하기를,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군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신실)이니라"

주님 일군의 신실은,
(1) 복음에 신실함입니다.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복음을 가감(加減)하지 않고 그대로 보수하여 전하려면 신실해야 합니다(고후 2:17),
(2) 인격 생활에 있어서 진실하여 거짓이 없는 것입니다.(고후 1:18-20),
(3) 주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다가 고통과 난관을 당하여도 변절하지 않는 신실입니다(엡 6:24).


3] '주안에서 함께 된 종'입니다.

- 주 안에서 함께 된 종이라.

    사도 바울이 감옥 생활 중에 있을 때, 그는 함께 옥중에  머물렀습니다.
    바울 사도의 지시로 에베소 교회에 사자로 가야했을 때 바울 사도가 준비한 에베소에 전하는 서신을 가지고 에베소로 나아갔습니다. 골로새서를 가지로 골로새에 가 전해주었습니다.(딤후 4:12 ; 딛 3:12).

    이런 사역이 보여주고, 경력이 말해 주듯이
두기고는 바울 사도의 손발이 되어 전적인 신뢰를 나눌 수 있는 주 안에서 함께 된 종이었습니다.


    두기고가 골로새 교회를 찾게 된 사명(=바울이 두기고를 골로새 교회에 보낸 목적)은

    [1] 바울 자신과 동역자들이 처한 상황을 알리기 위함이었습니다.
    [2] 바울 사도가 투옥된 사실로 인해 상심에 빠져 있는 골로새 교인들에게 사도의 가르침을 되새기게 하여 상심된 마음을 위로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바울 사도와 함께 갇힌 또 한 사람을 들자면, '나와 함께 갇힌'이란 말씀에서 보는 바대로 아리스다고가 있습니다.


    그는 '데살로니가 출신으로 에베소에서 소요가 일어났을 때 바울과 함께 투옥되었습니다.(행 19:29)
    바울과 더불어 예루살렘 회의에 참석(행 20:4)한  할례당입니다.
    바울 사도가 죄수 신분으로 가이사랴에서 로마로 항해할 때 그는 누가와 함께 바울 사도와 동행하였습니다.(행 27:2).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함께 역사하는 자들이란 말을 들을 만큼 지근 거리에서 바울 사도의 위로가 되었습니다.[골4:11]

    그는 사도 바울과 함께 갇힌 자의 자리에 머묾으로 그리스도에게 사로잡힌 자로서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한 자가 되었습니다. 바울이 받는 환난에 동참한 때가 적지 않았습니다.
이리스다고가 자발적으로 바울과 함께 갇혔습니다(Ramsay, Bruce).
때로는 아리스다고가 바울을 돕는 자로서순번제로 투옥되었습니다(Abbott).

   요즈음 저의 이메일에는 우리 주일학교 학생들로부터 오는 소식으로 가득합니다.
    Facebook이란 것이 어느 날 저를 찾아오기 시작하였는데요. 주로 우리 청년들이 저를 친구로 초대해 주었습니다.
as a friend!
친구로 받아들이겠습니까?
저는 50대 후반의 젊은 할아버지도 친구로 받아들여주는 것이 너무 고마워서 예스를 하였습니다.
하다보니 우리 청년들 대부분이 저의 친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며칠 지나니까 우리 EM 학생들이 저를 친구로 초대해 주었습니다.
as a friend!
친구로 받아들이겠습니까?
저는 50대 후반의  젊은 할아버지도 친구로 받아들여주는 것이 너무 고마워서 예스를 하다보니 우리 EM학생들 대부분이 저의 친구가 되었습니다.
    지난 주에는 우리 유초등부 학생들이 저를 친구로 초대해 주었습니다.
친구로 받아들이겠습니까?
저는 50대 후반의  젊은 할아버지도 친구로 받아들여주는 것이 너무 고마워서 예스를 하다보니 우리 유초등부 아이들 대부분이 저의 친구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저는 태희는 말할 것도 없고 정익이까지 친구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한국에 간 안나가 군대생활을 하고 있는 재경이랑 어떤 대화를 나누는가까지 읽고 재미있어 하는 친구가 되었어요. 재경이와 안나는 결코 친구가 될 수 없는데.....  .
안나는 근래에 서머나에 왔고 재경이는 작년에 군대에 갔는데 어떻게 이 사람들이 저렇게 다정한 친구가 되었는가 놀랍습니다.


    지난 주일 우리 교회 모처럼 나왔던 제니퍼 윤이 몸만 나오지 않았지 우리 어린 학생들과 얼마나 깊게 사귀고 대화하는지 깜짝 놀랐어요.

     이게 어디 옛날에는 상상이나 했던 일입니까?

    오네시모가 변화될 것을 믿고 사역하던 바울 사도처럼

    마가 요한이 성숙할 것을 믿고 기도한 바나바처럼

    우리 곁에 있는 연약한 자들을 받아들여 기다리며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하늘 아버지 사랑 안에서 우리는
기다리며 기도하네 우리의 삶에 사랑 넘치도록



    2. 우리의 연약함은 믿음 안에서 성숙해 갑니다.

    자연의 섭리를 보세요.
봄날의 여린 잎들이 여름에 신록으로 우거집니다.
여름의 작은 열매들은 가을에 영글어갑니다.
믿음 안에 있는 우리 지체들도 성숙해 갑니다.

    1] '골로새에서 온 자' 오네시모는 원래 골로새에서 도망쳐 나온 빌레몬의 노예였습니다.
로마로 도피해 있던 중 바울을 만나 복음을 받고 주님께 돌아온 자입니다.
"갇힌 중에서 낳은 아들 오네시모"(몬 1:10)라 적혀 있습니다.
그는 로마에서 어떤 혐의로 감옥에 갇혔다가 거기서 바울 사도를 만나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오내시모는 주 안에서 아주 소중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바울은 오네시모를 골로새 교인들이 따뜻한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추천장을 쓰고 있습니다.
'신실하고 사랑을 받는 형제', 저가
전에는 네게 무익하였으나 이제는 나와 네게 유익하다"(몬1:11) 적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오네시모란 사람이 얼마나 놀랍게 변화되었는가 하는 점과

     나아가 두기고와 함께 골로새 교회를 방문하여 교회 대표로 사명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2] 마가는 과거의 연약함을 아름답게 승화시킨 성공적인 사역자입니다.

      '이 마가에 대하여 너희가 명을 받았으매 그가 이르거든 영접하라'

    마가의 어머니는 바나바의 친 자매였습니다.
    "요한"이라고도 하는 "마가"는 바나바의 생질로  이 경건한 모친 슬하에서 성장하였습니다.(행 12:12)

   - 바울의 1차 전도 여행 도중에 바나바와 바울의 선교 사역에 종들다가(행 13:5),바울 일행을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갔습니다.  중도에 사역을 포기하고 돌아온 것입니다.(행 13:13),(행 13;13).
    그러므로 바울은 2차 전도 여행 때에 마가를 데리고 떠나자는 바나바의 제안을 거절하였고 이 일로 인해 바나바와 결별하게 되었습니다.(행15:36-41).

    그러나 연약한 마가는 과거 연약함 속에 머물러 있지 않았습니다.
건설적으로 변화 되었습니다.

    자신의 약함을 극복하고 뒷날 베드로의 조사로 일하게 됩니다.(벧전 5:13)
베드로를 대신하여 마가복음서를 기록한 것입니다. (행 12;12,25).

   더 감사하고 놀라운 사실은 그를 강하게 배척하였던 바울 사도까지 훗날 그를 불러오게 합니다. 마가를 '동역자'로 부르고 있습니다. (딤후 4:11 ;몬24)  돕는 사역자로 인정하였습니다(딤후 4:11).

    하나님의 택함을 입은 참된 사람은 혹시 실패가 있을지라도 그것이 그에게 영원히 치료될 수 있습니다.
    다시 출발한 마가의 신앙생활과 사역은 분명 큰 진보를 이루었습니다.

(이 마가에 대하여 너희가 명을 받았으매 그가 이르거든 영접하라)

    그러나 모든 사람이 좋게 변화되는 것만은 아닙니다.
    이어 나오는 데마를 보십시오.  비교가 됩니다. 데마는 14절에 보면 분명  골로새 교회와 빌레몬에게 문안한 바울사도의 동역자였습니다.
(몬1;24)
    그러나 후에 바울이 재차 옥에 갇혔을 때 바울 곁을 떠나 데살로니가로 가버렸습니다.(딤후 4:10)
    데마가 세상을 사랑함으로써 사역을  뒤로 하고 퇴장한  것입니다.

   이는 사역이 너무 힘에 버거워 사역 현장을 떠날 수밖에 없었지만, 좀더 성숙하고 필요한 사람이 되어 사역에 복귀한 마가와 비교가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곁에는 마가와 같이 연약한 지체가 있습니다. 그러나 바나바처럼 변화될 그의 진보된 모습을 생각하며 위하여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또한 데마와 같이 퇴보할 수 있음을 기억하고 경성해야 합니다.




3. 성도를 위하여 수고 합시다.

    1] 에바브라는 그리스도 예수의 종으로 수고하였습니다.

    이 호칭은 바울 자신 (롬 1:1)과 디모데 (빌 1;1)에게 사용한 말인데요, 특히 복음 사역을 위해서 많이 수고하는 자에게 어울리는 말입니다.

[13절]
그가 너희와 라오디게아에 있는 자들과 히에라볼리에 있는 자들을 위하여 많이 수고하는 것을 내가 증언하노라"

    에바브라는 바울의 대리자로서 골로새 교회의 설립에 앞장 선 창립 멤버입니다.(1:7)
그런 신실한 종이 골로새 교회에서 바울에게 복음을 위해 왔습니다.
그 골로새 교회에게 문안하고 있습니다.
    그는 골로새 교인들을 위해 끊임없이 중보기도를 합니다.

항상 너희를 위하여 서기를 구함

    에바브라가 골로새교회를 극히 사랑한 증거는 그 교회를 위하여 기도하되 "항상"하였던 일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또 "애써" 기도한 것으로 나타납니다. "애써 기도"한다 함은, 하나님의 응답을 받기까지 기도에 노력함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의 겟세마네 기도는 그 모범입니다. 교회가 온전히 설수 있기를 위해 "항상""애써" 기도하는 일은  수고라는 말로 바꿀 수 있습니다.
성도를 위해 이렇게 수고하는 자를 하나님은 그 생명책에 담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성도를 온전히 확신있게 세우시도록, 하나님의 뜻으로 채우시도록 항상 애써 기도하시는 수고자 되시기 바랍니다.


    2] 누가는 사도 바울을 위해 수고하였습니다.

    '누가'는 바울과 함께 2차 전도 여행 때 드로아와 빌립보에 있었습니다.
    3차 전도 여행 때 빌립보에서 바울과 합류하여 예루살렘까지 동행하였습니다(행 16:10-17 ; 20:6-16 ; 21: 1-18 ; 27:1-28:16).      누가는 이방인이었으며 바울의 선교 여정에 그의 몸을 돌보는 사역을 하였습니다. 특히 투옥 기간 동안 바울의 주치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하였을까를 생각하는 일만으로도 은혜가 됩니다.    
    "누가"는 사도 바울에게 가장 귀한 조사였습니다. 그는 바울과 함께 전도 여행의 대부분을 동반(同伴)한 자로서, 특히 옥중에서 바울의 임종시(臨終時)까지 시종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딤후 4:11에는,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고 씌어 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누가에 대해 특별히 '사랑을 받는 의원'이라고 골로새 교인에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데마"는 누가와 같이 나중까지 바울과 동고(同苦)하지는 못하고 이 세상을 사랑하여 고향으로 돌아간 사람입니다(딤후 4:10).

    매우 대조적인 사람입니다.


    3] 라오디게아의 가정 교회를 여기서 한 번 생각해 보는 일도 은혜가 됩니다.

    [골4:15-16]

    15. 라오디게아에 있는 형제들과 눔바와 그 여자의 집에 있는 교회에 문안하고
16. 이 편지를 너희에게서 읽은 후에 라오디게아인의 교회에서도 읽게 하고 또 라오디게아로부터 오는 편지를 너희도 읽으라

    눔바의 집에 있는 교회는 가정 교회입니다. 당시 골로새 상황을 볼 때, 눕바와 같이 헌신된 자매님, 요즈음으로 말하면 눔바 권사님, 혹은 눔바 집사님께서 가정을 개방하여 성도들이 예배드리는 처소로 개방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로서 골로새 교회 내에서 친교를 위해 모이는 다락방 모임이거나 가정교회로 보입니다.




    [마무리하는 말]

   오늘 말씀은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무대에 부름을 받은 우리들이 그 무대에서 어떻게 사명을 감당하여야 하나님의 생명책에 그 이름과 사역을 남길 수 있는가 알려주셨습니다.

   어떤 사람이 어떤 삶으로 하나님의 생명책에 그 이름과 사역을 남길 수 있었습니까?


   1. 우리는 주 안에서 형제요, 일꾼이요,  종입니다.
   2. 믿음 안에서 성숙해 갑니다.
   3. 성도를 위하여 수고 합시다.

    "주 안에서 받은 직분"은 주님께서 세우시고 주님께서 감독하십니다.
    주님께서 함께 하십니다.
    '거룩한 직분'입니다.. 그것을 맡은 자는 "삼가 이루"어야 합니다.


[성경본문, 골4:7-18]


7. ○두기고가 내 사정을 다 너희에게 알려 주리니 그는 사랑 받는 형제요 신실한 일꾼이요 주 안에서 함께 종이 된 자니라
8. 내가 그를 특별히 너희에게 보내는 것은 너희로 우리 사정을 알게 하고 너희 마음을 위로하게 하려 함이라
9. 신실하고 사랑을 받는 형제 오네시모를 함께 보내노니 그는 너희에게서 온 사람이라 그들이 여기 일을 다 너희에게 알려 주리라
10. ○나와 함께 갇힌 아리스다고와 바나바의 생질 마가와 (이 마가에 대하여 너희가 명을 받았으매 그가 이르거든 영접하라)
11. 유스도라 하는 예수도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그들은 할례파이나 이들만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함께 역사하는 자들이니 이런 사람들이 나의 위로가 되었느니라
12. 그리스도 예수의 종인 너희에게서 온 에바브라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그가 항상 너희를 위하여 애써 기도하여 너희로 하나님의 모든 뜻 가운데서 완전하고 확신 있게 서기를 구하나니
13. 그가 너희와 라오디게아에 있는 자들과 히에라볼리에 있는 자들을 위하여 많이 수고하는 것을 내가 증언하노라
14. 사랑을 받는 의사 누가와 또 데마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15. 라오디게아에 있는 형제들과 눔바와 그 여자의 집에 있는 교회에 문안하고
16. 이 편지를 너희에게서 읽은 후에 라오디게아인의 교회에서도 읽게 하고 또 라오디게아로부터 오는 편지를 너희도 읽으라
17. 아킵보에게 이르기를 주 안에서 받은 직분을 삼가 이루라고 하라
18. ○나 바울은 친필로 문안하노니 내가 매인 것을 생각하라 은혜가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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