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는 말]
어떤 종교신문 기사 보니 이런 게 보입니다.
"2007년 9월 처음교회는 재정난에 휩싸인 상동처음교회(당시 진솔교회)를 합병했다. 윤대영 목사는 상동처음교회를 6년간 맡아 주는 대신 유명근 목사를 미국 뉴욕으로 유학을 보내 줬다. 윤 목사는 "충북 제천에 있는 한 교회가 재정 문제로 이단에 넘어간 것을 안 뒤로부터 교회 살리기 운동을 시작했다" 이를 두고 <국민일보>와 부천 지역의 한 신문은 "빚더미에 쌓인 이웃 교회를 구한 교회"라며 일제히 보도했다. 그러나 당사자들은 이행 각서와 반환 합의서 문제로 진통을 겪고 있다."
"반대 측 교인들, 검찰에 진정서 제출!"
이런 기사도 보입니다.
"강북제일교회의 앞날은 결국 사회 법정에서 가려질 전망이다."
이런 내용도 보입니다.
"봉천교회 분쟁, 결국 대법원으로"
저는 그분들의 사정을 잘 모릅니다. 더구나 형제교회의 고통을 비난할 의도는 전혀 없습니다.
다만 우리가 사는 주변에 이런 서글픈 기사가 존재한다는 걸 소개하였을 뿐입니다.
그 기사는 이렇게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교회를 지나가는 시민들은 마찰 광경을 지켜보며 핸드폰으로 사진과 동영상을 찍기도 했다. 시민들의 반응은 대체로 부정적이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이래도 되는 건가?"
"한국교회가 신도 수 증가에 있어서 정체 내지 퇴보하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 그는 “교회 이미지 때문”이라고 소강석 목사는 말했습니다.
“개신교는 이미지 메이킹에 실패한 겁니다. 왜냐하면 교회 내분이 언론에 비치게 되고 사회법정에도 가고 하는 것이 일반 국민에게 교회가 거룩한 줄 알았는데 세속적으로 비치게 된 거죠."
이런 연약한 교회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 우리는 고린도 전서에서 치료의 말씀을 구할 수 있기 바랍니다.
1. 세상을 판단할 자로서의 정체성 회복입니다.
[고전6:2-3]
2. 성도가 세상을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세상도 너희에게 판단을 받겠거든 지극히 작은 일 판단하기를 감당하지 못하겠느냐
3. 우리가 천사를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그러하거든 하물며 세상 일이랴
고린도 교회에서 불거진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으로 고린도 교회는 교인이 다른 교인을 세상 법정에 고소하며 법정소송을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1) 그리스도인의 공동체 안에서 있을 수 없는 분쟁이 발생했다는 것입니다.
(2) 그 분쟁을 스스로 해결하지 아니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송사하였습니다.
(3) 결정적인 잘못은 그 분쟁을 제소한 법정이 불신자의 법정이었습니다.
고린도교인들은 형제를 사랑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형제를 해치고 모욕하는 악을 행하였습니다. 그들은 형제의식이 마비되어 있습니다.
소송을 제기하는 자나 소송으로 말미암아 고발된 자나 모두 지체의식이 마비되어 있을 뿐 아니라, 지체를 이방의 법정에까지 고소하고 이교도로 하여금 성도를 판단하게끔 하는 큰 죄를 범하였습니다.
적은 누룩이 온 떡 덩어리를 부풀게 하는 것처럼 그들 가운데 발생한 작은 악은 점진적(漸進的)으로 성장하여 개인과 이웃과 교회 공동체 전체를 멍들게 하는 엄청난 결과를 초래하였습니다. 오늘 말씀은 이런 교인들의 행동이 있어야 하느냐 반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도들이 세상을 판단할 특권이 있는 존귀한 신분이라는 사실을 상기시켜주면서 불의한 이방 법정에 소송을 제기하는 고린도 교인의 행위를 책망하고 있습니다.
고린도 교회는 “다른 이와 더불어 다툼이 있는데 구태여 불의한 자들 앞에서 고발하고” 있습니다.
지체들 간에 다툼이 있다는 것이 교회가 병들었다는 증거입니다.
그 갈등을 구태여 불의한 자들 앞에서 고발하는 것은 교회가 중병에 걸렸다는 증거입니다.
이런 교회의 질병을 회복할 처방은 무엇입니까?
성도들이 세상을 판단할 자로서의 정체성 회복입니다.
'판단할'(크리누신)은 미래 능동태로서 세상 끝날에 그리스도께서 행하시는 마지막 심판에 성도들이 참여한다는 가르침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마19:28]
28.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따르는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들은 그날에 세상에 대한 왕권 행사하게 됩니다.
천사까지도 이 성도의 왕권 아래 들어갑니다.
(벧전 2:9)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판단 한다'(크리노)라는 말은 히브리적 사고에서 '통치한다'라는 의미로서
(1) 현재적으로는 성도들이 빛된 생활로 세상을 교훈하고 복음을 통해 세상의 불의를 심판하게 되는 것이며(요 3:18-20)
(2) 종말론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성도들이 주와 함께 세상을 심판하고 왕 노릇하게 될 것을 의미합니다(계 20:4).
이를 현실에 적용할 때, 세상의 크고 작은 일들을 오늘 날 스스로 알아서 판단하는 일은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그래서 성도들이 현실 속에서 크고 작은 일들을 말씀에 따라 판단하고 해결할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장차 세상과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유 1:6) 곧 범죄한 천사들(벧후 2:4)까지도 심판할 수 있는 신분에 있는 성도들이 일상 생활의 사소한 일들 조차도 해결하지 못하여 세상 법정에 송사하며 그 권위에 굴복하는 것이 마땅하냐는 말씀입니다.
'만일 너희가 세상과 천사들을 심판할 위치에 있는데도 이러한 세상 사건으로 논쟁해야 한다면 차라리 교회에서 교인들 중에 가장 경히 여김을 받는 자를 세워 이런 작은 일을 처리하도록 하라 !'
매우 풍자적인 이 말씀은 '교회는 분쟁의 사건이 사소한 생활의 문제이든지 아니면 큰 분쟁이든지 교회 자체 내에서 공동체(共同體)의 능력으로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는 중심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이 세상 어떤 사건도 믿음 안에서 판단할 수 있다는 특권을 상기시켜주고 계십니다.
법관들에게 양도되어 판단받는 일들이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형제와 형제 사이에 발생한 분쟁은 재판의 판결이라는 것보다는 서로를 이해하고 협력하려는 의지와 조정자의 중재에 의하여 원만하게 해결되는 것이 보다 더 바람직합니다.
분쟁 문제를 꼭 처리해야 할 필요가 있다면 이런 일을 충분히 처리할 만한 지혜를 가진 교인을 찾아서 해결하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세상의 소송을 통하여 서로 다투고 판단받는 것보다 훨씬 좋습니다.
그리스도의 공동체 안에 속한 두 형제는 세상 법정에 제소하는 그 순간 모두 패배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도덕적 패배이며 그리스도인이 가져야 할 공동체 의식, 즉 한몸 의식(지체 의식)의 패배이기 때문입니다(롬 12:5;엡 4:4). 그들은 자신의 이기심과 욕망을 채우기 위해 사랑의 원리를 저버리고 세상의 법정을 선택함으로써 더 이상 그리스도인이기를 포기하는 영적 패배를 선택하였던 것입니다(Harris).
그러므로 오늘 말씀은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못을 박고 있습니다.
"차라리 불의를 당하는 것이 낫지 아니하며 차라리 속는 것이 낫지 아니하냐?"
교인들 사이의 문제를 법적 소송에 의해서 해결하려고 하는 그 자체가 악한 일이며 나아가서 완연한 허물입니다.
교인들은 이런 싸움에 휩쓸려서는 안될 뿐만 아니라 동료 그리스도인들에게 해를 주거나 속이기 보다는 차라리 스스로 어려운 고통을 기꺼이 감수하는 것이 낫습니다
이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 자신을 희생하고 양보하는 것입니다(마 5:39-42). 그 희생은 눈에 보이는 물질적인 손해일 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 '자신이 불의한 자가 되는 고통'을 감수해야만 하는 양보입니다.
공평하고 평등한 해결이 아니라 할지라도 그 불공평을 감수해야 합니다.
형제에게 양보하는 것이 마치 강도에게 약탈당하는 것과 같은 불이익(不利益)을 당하는 것이라 할지라도 양보할 일입니다.
참된 하나님의 백성은 자신의 이기적인 추구보다는 희생적인 사랑의 실천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일을 삶의 원리와 목표로 삼기 때문입니다.
2. 불의한 옷을 벗어버려야 합니다.
[고전6:8-10]
8. 너희는 불의를 행하고 속이는구나 그는 너희 형제로다
9.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행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10. 도적이나 탐욕을 부리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모욕하는 자나 속여 빼앗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지난날 고린도 교인들이 이방인 가운데서 살 때의 여러가지 죄악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주께 돌아왔을 때, 그리스도의 피는 성도들을 정결케 하였으며 그의 죽음과 부활은 우리를 의롭게 하시고 성화(聖火)의 소망을 갖게 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은 '하나님의 성령'과 더불어 그리스도와 연합한 성도들이 영위하게 하였습니다.
성화의 소망을 갖게 하였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그러한 죄악 을 벗어버리지 못하고 그 가운데 있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교인이란 하나님의 가족이오, 형제인제 그들에게
1] 불의를 행합니다.
2] 속입니다.
3] 음행하는 자가 있습니다.
4] 우상 숭배하는 자가 있습니다.
5] 간음하는 자가 있습니다.
6] 탐색하는 자(자기 욕심에 의하여 이웃의 것을 탐하는 자)가 있습니다.
7] 남색하는 자가 있습니다.
8] 도적질하는 자가 있습니다.
9] 탐욕을 부리는 자가 있습니다.
10]술 취하는 자가 있습니다.
11] 모욕(남을 비방)하는 자가 있습니다.
12] 속여 빼앗는 자(완력뿐만 아니라 가능한 모든 방법을 총동원하여 '남의 재산을 강탈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고린도 교회에 만연하던 죄상(罪狀)을 지적하여 그들의 수치를 자각시키고 성도 본연의 사랑과 순결의 중요성을 깨우치며 이런 죄악들을 가지고는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을 수 없음을 명백히 선포하고 있습니다.
불의한 옷들입니다.
속이고, 음행하고 우상숭배하고 간음하고 탐하고 동성연애 도적질 탐욕 술취함 남의 재산을 빼앗는 일들은 우리 성도들에게는 입으면 더럽게 되는 옷들에 불과합니다.
벗어버려야 합니다.
이런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말씀하십니다.
이러한 불의함은 벗어버려야 할 옷이오, 이런 옷을 입고는 하나님 나라의 유업을 얻을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22장에서 예수님은 [혼인 잔치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1. 예수께서 다시 비유로 대답하여 이르시되
2.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으니
3. 그 종들을 보내어 그 청한 사람들을 혼인 잔치에 오라 하였더니 오기를 싫어하거늘
4. 다시 다른 종들을 보내며 이르되 청한 사람들에게 이르기를 내가 오찬을 준비하되 나의 소와 살진 짐승을 잡고 모든 것을 갖추었으니 혼인 잔치에 오소서 하라 하였더니
5. 그들이 돌아 보지도 않고 한 사람은 자기 밭으로, 한 사람은 자기 사업하러 가고
6. 그 남은 자들은 종들을 잡아 모욕하고 죽이니
7. 임금이 노하여 군대를 보내어 그 살인한 자들을 진멸하고 그 동네를 불사르고
8. 이에 종들에게 이르되 혼인 잔치는 준비되었으나 청한 사람들은 합당하지 아니하니
9. 네거리 길에 가서 사람을 만나는 대로 혼인 잔치에 청하여 오라 한대
10. 종들이 길에 나가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만나는 대로 모두 데려오니 혼인 잔치에 손님들이 가득한지라
11. 임금이 손님들을 보러 들어올새 거기서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보고
12. 이르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그가 아무 말도 못하거늘
13. 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손발을 묶어 바깥 어두운 데에 내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하니라
14.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여기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천국은 혼인잔치로 비유되고 있습니다.
임금되신 주님께서 혼인잔치에 사람들을 초청합니다.
"혼인 잔치에 오소서 하라!"
하지만 사람들은 자기 일에 분주하여 초청을 뒤로 합니다.
임금은 말씀하십니다.
8. 이에 종들에게 이르되 혼인 잔치는 준비되었으나 청한 사람들은 합당하지 아니하니
9. 네거리 길에 가서 사람을 만나는 대로 혼인 잔치에 청하여 오라 한대
10. 종들이 길에 나가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만나는 대로 모두 데려오니 혼인 잔치에 손님들이 가득한지라
요즈음 말로 바꾸면, 교회에 사람들이 가득했습니다.
참으로 감격스러운 장면입니다.
천국 혼인잔치는 이렇게 아름답게 끝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최소한 한 가지를 점검하십니다.
혼인잔치에 걸맞는 예복 착용여부입니다.
세상에서 입었던 옷을 그대로 입고 혼인잔치에 참여하는 것만은 견딜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한 사람이 예복을 입지 않은 채, 혼인잔치에 참여하고 있음을 보셨습니다.
임님께서는 그것에 대해 묻습니다.
[마22:12]
이르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그가 아무 말도 못하거늘
임금은
[마22:13]
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손발을 묶어 바깥 어두운 데에 내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하니라
그렇습니다,. 우리 성도들이 세상에서 벗어나 천국백성으로 살아갈 것을 이해하게 될 때, 벗어버려야 할 옷이 있습니다.
불의한 옷들입니다.
속이고, 음행하고 우상숭배하고 간음하고 탐하고 동성연애 도적질 탐욕 술취함 남의 재산을 빼앗는 일들은 우리 성도들에게는 입으면 더럽게 되는 불의한 옷들입니다.
이런 옷들은 모양이라도 취해서는 안됩니다.
그리고 성도들은 천국백성으로서 걸맞는 마땅히 입어야 할 옷이 있습니다.
3. 씻음과 거룩함과 의의 옷을 입을 일입니다.
[고전6:11]
11.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았느니라
성령 안에서 죄로부터 씻음을 받은 사람이 있습니다(행 22:16;계 1:5). 보통 신약성경에서는 '세례를 받았다'는 말을 사용하여(행 19: 5) 그 의미를 전달하였습니다. '예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령' 으로 죄를 씻음 받았기 때문입니다.
세례는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사역에 의하여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일이 성취됩니다.(행 2:4;롬 6:3).
세례는 세례받는 자의 선택과 고백에 의하여 행해지는 것입니다.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은 모두 부정 과거 수동태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용서하시고 정결케 하시는 하나님의 능동적 사역을 말합니다.
그들이 의롭게 된것과 거룩하게 된 것은 이미 과거의 시점에서 하나님의 주도적(主導的)인 은혜로 이루어졌음을 보여줍니다.
세 동사를 사용하여 그들의 현재적 신분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근본적인 의미에 있어서 세 단어는 모두 동일한'의'의 개념 선상에 있습니다. 즉, '죄 씻음'과 '거룩'과 '의'는 그들의 죄가 아무리 컸을지라도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으로 인하여 그리스도와 연합하게 되었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새로운 의의 삶을 지향하게 된 것을 가리키는 법정적 선언의 개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무리하는 말]
건강한 사람은 지체가 서로 다른 지체의 약함을 알아 약점을 잘 보완해 줍니다.
위가 좋지 않을 때, 입은 음식을 잘 씹어서 위에 보냄으로 위의 부담을 도와줍니다.
온타리오 북쪽 지역에 갔더니 표독스러운 파리가 머리 속을 파고 듭니다. 피를 빨아먹습니다. 그런데 머리로서는 속수무책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때 건강한 사람이라면 즉각 팔이 동원됩니다. 그 파리를 때려 위기를 벗어납니다.
쇠파리가 머리카락 사이로 파고 들어 피를 빨아 먹는데 오히려 쇠파리를 도와 주고 있습니다.
이런 손이 있다면, 그런 손은 바른 정체성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건강하지 못한 경우는,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교회가 건강 하다는 증거는 형제사랑입니다.
연약한 형제가 있으면 돕고, 연약한 형제 중에서 갈등이 일어나면, 다른 지체들이 그 갈등을 해결할 수 있어야 건강하다는 증거입니다.
1. 세상을 판단할 자로서의 정체성 회복입니다.
2. 불의를 벗고 의의 옷을 입습니다.
3. 씻음과 거룩함과 의의 옷을 입을 일입니다.
[고전6:1-11 성경본문]
1. 너희 중에 누가 다른 이와 더불어 다툼이 있는데 구태여 불의한 자들 앞에서 고발하고 성도 앞에서 하지 아니하느냐
2. 성도가 세상을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세상도 너희에게 판단을 받겠거든 지극히 작은 일 판단하기를 감당하지 못하겠느냐
3. 우리가 천사를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그러하거든 하물며 세상 일이랴
4. 그런즉 너희가 세상 사건이 있을 때에 교회에서 경히 여김을 받는 자들을 세우느냐
5.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 하여 이 말을 하노니 너희 가운데 그 형제간의 일을 판단할 만한 지혜 있는 자가 이같이 하나도 없느냐
6. 형제가 형제와 더불어 고발할 뿐더러 믿지 아니하는 자들 앞에서 하느냐
7. 너희가 피차 고발함으로 너희 가운데 이미 뚜렷한 허물이 있나니 차라리 불의를 당하는 것이 낫지 아니하며 차라리 속는 것이 낫지 아니하냐
8. 너희는 불의를 행하고 속이는구나 그는 너희 형제로다
9.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행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10. 도적이나 탐욕을 부리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모욕하는 자나 속여 빼앗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11.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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