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6 March 2015

로마서 6:1-11 죄의 권세를 극복하는 법

[들어가는 말]

    리브무어 박사는 “아프리카의 소국 르완다는 1990년대 단기간에 기독교인이 급속도로 성장한 국가 중 하나였으며 당시 총인구의 약 80~90%가 기독교인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서로 같은 기독교인들에게도 잔인무도한 행위를 자행했으며 지금도 분열되어 있다. 르완다 국민 대부분이 기독교인이었지만 이들은 서로 총부리를 겨눴고 사람들을 학살했다”

    이런 기가 막힌 현실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그들은 대부분 가짜 기독교인이었을거야!'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할까요?
"아프리카 크리스천이라는 것이 그렇고 그렇지 뭘"
이렇게 말해야 합니까?

    아닙니다.

    우리도 현실 속에서 그들과 같이 죄의 권세에 굴복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들과 비슷한 실패를 삶의 현장에서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상황이 전쟁에 있지 않고, 감옥 대신 교회당에 앉아 있을 뿐입니다.


     오늘 말씀은 이런 연약하고 허물많은 우리가 어떻게 죄의 권세를 극복할 수 있는가에 대한 해답을 주십니다.



   1. 성도는 그리스도와 연합된 존재임을 알아야 합니다.

    3.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성도란 어떤 존재입니까?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셨습니까?
이는 그리스도 예수님과 연합되었다는 표시입니다.

세례를 받음으로 우리 성도가 그리스도와 연합되었습니다.
세례는 우리 성도가 그리스도와 하나가 된 사건의 표시입니다.


   [연합]의 사전적 의미는?

    1] 두 개 이상의 것을 합하거나 잇는 것을 말합니다. 히브리어 ‘라와’(lawah)는 희락이 사람과 일평생‘더불어 머물러야 함’(연합)을 말할 때 사용하고 있습니다.

    [전 8:15]

15. 이에 내가 희락을 칭찬하노니 이는 사람이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는 것보다 해 아래서 나은 것이 없음이라 하나님이 사람으로 해 아래서 살게 하신날 동안 수고하는 중에 [[이것이 항상 함께 있을 것이니라]]

    2] 또한 이 단어는 [[군사적인 동맹]]에 가담하는 연합으로 사용됩니다(시 83:8),

    3] 남편과 아내가 결합하는 하나됨이 또한 연합입니다(창 29:34).

    4] 머리와 몸의 관계를 사도 바울은 연합으로 설명합니다.

    [골2:19]

    머리를 붙들지 아니하는지라 온 몸이 머리로 말미암아 마디와 힘줄로 공급함을 얻고 연합하여 하나님이 자라게 하심으로 자라느니라
   골로새 교인들에게 그리스도 안에서 성도들이 어떤 연합을 누리고 있는지 연합의 비밀과 능력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골2:1-5]

    1. 내가 너희와 라오디게아에 있는 자들과 무릇 내 육신의 얼굴을 보지 못한 자들을 위하여 어떻게 힘쓰는 것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2. 이는 저희로 마음에 위안을 받고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원만한 이해의 모든 부요에 이르러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라
3.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취어 있느니라
4. 내가 이것을 말함은 아무도 공교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
5. 이는 내가 육신으로는 떠나 있으나 심령으로는 너희와 함께 있어 너희의 규모와 그리스도를 믿는 너희 믿음의 굳은 것을 기쁘게 봄이라

   머리와 몸의 지체들(엡 4:15-16)의 연합에 비유될 수 있습니다.

    5]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포도나무와 가지와의 관계를 연합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요 15:5),

    6] 베드로 사도는 '건물의 기초와 건물'의 연합을 말씀하십니다(벧전 2:4-5),

    7] 남편과 아내의 관계도 연합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엡 5:23-32)

   
    동생동사(同生同死)입니다. 공급하심을 얻습니다. 연합한 지체로 하나님께서‘함께 자라게 하십니다’ 이는 그리스도와 성도가 접붙임이 되어 하나가 되었음을 암시해 줍니다(롬 6:5). 우리는 세례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연합하고 그럼으로써 그의 죽으심과 부활에 동참한다는 뜻이다.

   그리스도와의 신비적 연합을 말하지요

    이와 같은 신비한 연합은 은혜 언약의 중보자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시작됩니다.
그리스도와 신자의 연합은 신비적이며 초자연적인 방식으로 성령에 의해 이루어집니다.신비적 연합입니다. 나아가 이 연합은 그리스도 안에서 성도간의 친밀하고 생동적이며 영적인 연합으로 나아갑니다.

    Willard의 명저 가운데 '영성훈련'The Spirit of the Disciplines; Understanding How God Changes Lives)이란 책이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믿는다면 그분의 생활방식을 신뢰하고 그 방식과 연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신 생활방식을 따라 사는 것이 영성훈련의 기본입니다.

세례란 바로 그리스도의 삶의 방식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랑하는 창기 세리들을 용납하셨습니까? 그렇게 해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죄인들을 용서하셨습니까? 그렇게 해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새벽기도를 하셨습니까? 그렇게 해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청빈한 삶을 사셨습니까? 그렇게 해보시기 바랍니다.

이런 연합한 삶이 우리로 하여금 죄의 권세를 극복하게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풍요함을 누리게 합니다.



2. 성도는 '죄에 대하여 죽은 자'임을 알아야 합니다.

1.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뇨
2.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죄에 대하여 죽은 자'

    이는 성도의 정체를 알려주는 말씀입니다.

   과거의 우리는 첫사람 아담의 '죄 안에서 죽은 자'였습니다. 죄로 인하여 영벌이란 사망선고를 받은 자였습니다.

    죄란 무섭습니다.
암 세포와 같아서 가는 곳마다 인간의 선기능을 마비시키고 파괴합니다.
인간의 지정의뿐만 아니라 생활 전반을 지배합니다.
암세포처럼 무서운 죄가 우리 영혼을 잠식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어떤 존재가 되었습니까?

    이 무서운 죄의 권세 가운데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내어 주심으로 피를 흘리셨습니다.
죄 없으신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죄는 더 이상 권세를 발휘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제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가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대신 지심으로 인하여 '죄에 대하여 죽은 자'가 된 것이지요.

원죄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극복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공로를 힘입어 '죄에 대하여 죽은' 성도가 된 것입니다.

    이는 세례의 근본 의미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세례를 받습니다. 이는 우리 성도들이 죄에 대하여 이미 죽은 자가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죄는 우리를 다스리기 위해 찾아오지만, 우리 성도란 존재는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죄가 역사할 인자를 지워버림을 당했습니다.

    우리가 죄에 대하여 죽었다는 것은 우리 인생을 완전히 망가뜨린 죄의 권세가 더 이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게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그것은 죽은 사람은 죄의 세력에서 해방되었기 때문입니다."(7절)

할렐루야!

     기독교인은 세례라는 그리스도의 죽으심 사건에 연합됨을 통해 새로운 인생을 시작합니다.



    그러나 한 가지 더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영혼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원죄를 사함받았지만,
육신에 있는 성도가 죄에서 전적으로 자유로운 것은 아닙니다.

    교만, 분노, 두려움, 이기심, 실패, 죄된 성품이 육신을 늘 사로잡아 옵니다.
어떤 사람도 죄를 짓고 싶은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실재 현실 속에서는 죄의 영향권에 있습니다.
힘으로 되지 않고 능으로 되지 않습니다.

    그러면 답은 없습니까?
르완다의 기독교인들처럼 죄의 권세에 대책없이 패망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누군가 그렇게 말하더라구요.
죽은 자는 말이 없다구요. 죽은 자는 반응이 없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음을 깨닫고 죽는 수밖에 없습니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왜 말이 없냐고 묻지는 않겠지요? 죽었으니까 그렇지요.
그렇게 보면, 우리가 죄의 권세에 조롱당하는 까닭은 죽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죽지 않아서 조그만 일들에 자존심을 세웁니다.'
왜들 그렇게 화를 냅니까? 죽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왜들 그렇게 자기를 자랑합니까? 죽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왜들 그렇게 자존심에 생명을 겁니까? 죽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인간 세계에서 가장 치열한 전투는 내면 세계의 전투라는 말을 하는 분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죄에 대하여 죽을 수 있다면. 우리의 옛사람을 내려놓음이 된 것입니다.

    죽어보세요. 바울 사도와 함께 이렇게 외칠 것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세례를 통해 육체와 함께 그 정욕을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이 말씀에 동의하는 우리 성도들은 자신이 죄에 대하여 죽은 자로 여길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기독교의 위대한 진리가 '이신칭의'입니다.
인간의 행위로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십자가 위에 아들을 주시기까지 이루신 하나님의 의로움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진리입니다.
이렇게 되다 보니 엄청난 죄를 지은 자들도 하나님의 의를 힘입고 의롭게 되었습니다.
"죄가 더 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죄를 많이 지은 사람이 죄를 적게 지은 사람보다 하나님께 받은 은혜는 더  넘쳤습니다.

    죄에 대하여 죽은 바로 그곳에서 주님께서는 의의 옷을 입혀주십니다.


죄의 권세를 극복하시기 원하십니까?

    죄에 대하여 죽었다!

    나는 이미 세례 받던 날,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

선포하시기 바랍니다.

    그 지점에서 주님께서는 의의 옷을 입혀주시고, 새로운 삶이 시작됩니다.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산 것이라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2:20)



    3. 성도는 하나님께 대하여 산 자임을 아셔야 합니다.

    11.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로 여길지어다
 
성도가 죄에 대하여 죽었다는 것이 전부의 사망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성도의 다른 면은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입니다.
이는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에서 한 걸음 나아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란 의미입니다.

    '하나님을 대하여 산 자'란 어떤 사람을 말합니까?
예수님께서 죽음에서 다시 사셨을 때, '하나님을 대하여 산 자'셨습니다.
우리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연합할 때, '하나님을 대하여 산 자'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기도 가운데 이런 말씀을 만납니다.

   [요17:4]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와 부활의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일을 완성하셨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런 사람이 '하나님을 대하여 산 자'입니다.



    "나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와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가장 악독한 노예상인 아이삭 뉴톤이 은혜를 넘치게 받은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에는 이신칭의를 수정처럼 빛나게 하는 또하나의 교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성화(聖化)입니다. 의롭다함을 받은 자가 구현해야 하는 생활원리입니다.

    의롭다함을 받은 성도의 삶이 '감사'로 가득해야 함을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은혜를 받은 모든 사람이 감사하느냐는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누가복음 17장에는 [나병환자 열 명이 깨끗함을 받은] 이야기가 나옵니다.

11.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에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가시다가
12. 한 촌에 들어가시니 문둥병자 열 명이 예수를 만나 멀리 서서
13. 소리를 높여 가로되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 하거늘
14. 보시고 가라사대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하셨더니 저희가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지라
15. 그 중에 하나가 자기의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16. 예수의 발아래 엎드리어 사례하니 저는 사마리아인이라
17.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18.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고
19.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

    진정한 구원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감사하는 자리까지 나아간 이방인 한 사람에게 임하였습니다.

18.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고
19.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그 이방인 한 사람이 하나님께 대하여 산 자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함으로 항상 기뻐하고 쉬지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사람이 하나님께 대하여 산 자입니다.


    존 키츠란 영국시인은 명언을 남기고 있습니다.

    "경험하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현실이 될 수 없다. 훌륭한 금언일지라도 삶으로 확인하기 전까지는 아직 사실이 아니다"


    [마무리하는 말]

    고국의 현대차가 제네시스란 고급차를 개발하였습니다. 운전에 좀 익숙치 못한 사람이 앞 차를 들이 받을 상황에서도 그 차는 그 간격을 유지해주는 제어장치까지 되어 있는 고급차입니다.
    이런 차를 누가 선물로 여러분에게 주셨다 합시다. 그분이 단 한 가지 조건을 말합니다. 최상급 연료만 사용하라구요.
    누구나 동의하겠지요. 빌하이벨스 목사님의 책에서 원용한 예화입니다.

    하나님께 대하여 산 성도들은 이 세상 어떤 고급차보다 더 값진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이 귀한 천국차 관리를 잘하셔야 합니다.

함부로 말하지 마세요. 걸맞는 언어생활이 필요합니다.
아무거나 생각하지 마세요. 걸맞는 생각을 하셔야지요.
몸도 함부로 굴리지 마세요. 운동도 잘해주셔야 합니다. 음식도 깨끗하고 영양이 있는 것을 섭취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께 대하여 산 성도다웁게 하나님의 영광을 드리내는 복된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514장]에는 이런 찬송이 있습니다.

누가 주를 따라 섬기려는가
누가 죄를 떠나 주만 따를까
누가 주를 섬겨 남을 구할까
누가 주의 뒤를 따라 가려나
부르심을 받아 주의 은혜로 주를 따라 가네 주만 따르네

    우리가 죄에 대하여 죽었으니, 우리는 죄의 종노릇을 청산합시다.
그리고 하나님께 대하여 살았으니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삽시다.




[설교본문]

1.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뇨
2.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3.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4.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5.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
6.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7.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니라
8.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
9. 이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사셨으매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줄을 앎이로라
10. 그의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의 살으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으심이니
11.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로 여길지어다
12. 그러므로 너희는 죄로 너희 죽을 몸에 왕노릇 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을 순종치 말고
13.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의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14.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니라


[465장]


구주와 함꼐 나 죽었으니 구주와 함께 나 살았도다 영광의 기약이 이르도록 언제나 주만 바라봅니다

맘속에 시험을 바등ㄹ때와 무거운 근심이 있을때에 주께서 그때도 같이하사 언제나 나를 도와주시네

뼈아픈 눈물을 흘릴떄와 쓰라린 맘으로 탄식할때 주께서 그떄도 같이하사 언제나 나를 생각하시네

내몸의 약함을 아시는주 못고칠 질병이 아주없네 과로운 날아니 기쁜때나 언제나 나와 함께 계시네

[후렴] 언제나 주는 날 사랑하사 언제나 새생명 주시나니 영광의 기약이 이르도록 언제나 주만 바라봅니다 아-멘


[이만열교수의 지적]

민족운동 33인 중 16명이 기독교인이었는데 당시 크리스천 비율이 전체 인구의 약 1.5%였던 점을 감안하면 엄청난 숫자였다”며 “그 이후 창씨개명, 신사참배 강요 등에 저항한 유일한 종교가 바로 기독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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