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6 March 2015

로마서 7:7-25 육신의 한계와 참된 소망

  [ 들어가는 말 ]

    제가 타는 차는 현대 소나타입니다. 265,000Km를 달리고 나니 외모가 많이 상했습니다. 나이가 들어가는 저의 모습처럼 여기저기 녹이 슨 곳이 많이 있습니다.
겨울의 나라 캐나다에서 긴 겨울을 나면서 본의 아니게 소금에 상한 곳도 있습니다.
    아직 엔진 상태가 좋아서 body shop에 맞겼습니다.
며칠간 여기 저기 수선과정을 거친 차는 외면이 새차와 같이 산뜻해졌습니다. 내면은 아직 그대로인데 외모가 매우 새로워졌습니다.
    아들 위로가 새로워진 차를 보더니 자기가 성인이 되어 차를 몰게 되면 자기에게 이 차를 물려줄 수 있겠는가 질문합니다.

    저는 이 과정을 보면서 인간에게 주신 율법과 차의 외적 상태를 비교해보게 되었습니다.


1. 율법은 인간의 외면 상태를 보여줍니다.

    1] 율법은 죄를 알려줍니다.

        7.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

    "율萱막灌?죄를 깨달음이라."(롬3:20)

    율법은 우리의 죄된 상태를 보여주는 거울과 같습니다. 내가 얼마나 깨끗한가 혹은 더러운가를 보여주는 그런 영적 거울이 바로 율법입니다.

    그 한 예로 '탐심이란 죄'를 들어봅니다.

    십계명의 마지막은 이렇게 마칩니다.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지니라. "

    지난 주일 함께 나눈 말씀처럼, 먹는 탐식에서부터 물질이나 육신을 탐하는 탐욕에 이르기까지 탐심은 끝이 없습니다. 누가 이 무서운 탐심을 알려줍니까?

    "탐내지 말지니라!"

율법이 바로 이 탐심을 알려줍니다.

    "탐내지 말지니라!"

    많은 사람들은 자신 안에 있는 탐심이란 죄를 인식하지 못합니다.
그것이 자신을 멸망시킬 대죄라는 사실에 눈멀어 있습니다.

    부자 청년 역시 그런 자신의 탐심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래서 율법에 대해 아느냐고 물으셨던 것입니다.
율법이란 거울을 통해 자신을 비추어 보았느냐고 물으신 것입니다.
물론 그 청년은 다 지켰노라 말합니다. 율법이란 거울로 자신을 돌아보지는 않고 외면적인 행위에 근거하여 율법을 다 지켰다고 선언합니다.

    자신은 누구도 죽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제6계명을 지켰습니다.
간음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제7계명을 지켰습니다.
자신은 누구의 것을 도적질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제8계명을 지켰습니다.
이웃에 대하여 거짓증거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제9계명을 지켰습니다.
이웃의 것을 탐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제10계명을 지켰습니다.

    이런 식으로 계명을 다 지켰노라 대답한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이란 거울에 비친 그의 탐심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막10:21]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 가라사대 네게 오히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시니

    그 청년의 태도는 거울에 비추인 자신의 탐심을 보면서 슬픈 기색을 띠고 예수님을 떠나갑니다.

    [막10:22]

    22. 그 사람은 재물이 많은고로 이 말씀을 인하여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가니라

    "재물이 많은 고로!" 좀더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재물에 대한 탐심이 많은 고로" 예수님을 떠나갔습니다.

    이와 같이 율법은 거울과 같아서 자신의 죄를 알려줍니다.


    2] 율법은 죄로 심히 죄되게 합니다.

        13. 그런즉 선한 것이 내게 사망이 되었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오직 죄가 죄로 드러나기 위하여 선한 그것으로 말미암아 나를 죽게 만들었으니 이는 계명으로 말미암아 죄로 심히 죄되게 하려 함이니라

    죄가 악한 것임을 깨닫게 해주는 것이 바로 율법입니다.
이 시대의 심각한 현상 중의 하나가 죄가 악한 것임을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소돔 사람들과 같이 경건한 것과 거룩한 것을 농담스럽게 받습니다.
대신 죄의 악함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바울 사도는 이러한 자신의 심각한 영적 상황을 이렇게 탄식합니다.

    "23.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요즈음 사람들은 살인을 어렵지 않게 자행하는 기사를 만납니다.
조승희란 한국인 청년이 버지니아공대에서 자행한 살인 기사를 우리는 불과 몇년 전에 보았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살인을 장난처럼 생각하지 않은가 의심이 들 때가 있습니다.
가장 무서운 죄악 중의 하나인 살인에 대해서 쉽게 생각합니다.
사람 죽이는 일을 어렵지 않게 행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율법에 충실할 때 살인이란 죄는 참으로 악한 것임을 알게 됩니다.
인간의 근본적 본성, 곧 뿌리에서부터 썩어있음을 알려주는 것이 율법입니다.

    "죄로 심히 죄되게 하려 함이니라."



    3] 율법은 내 육신의 한계를 알려주십니다.

        18.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19.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도다

        21.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22.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23.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저희 교회 어떤 어른이 몸이 좋지 않으셔서 병원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가정의란 분이 검사를 한 후에
연세가 드신 분은 늘 죽을 준비를 하고 살아야 한다고 하더랍니다.
그 말이 틀린 말이 아닙니다.
그 어른이 그 말이 틀린 말이 아닌 것을 더 잘압니다.
그러나 그 말이 환자로 의사를 찾아가신 분에게는 불쾌한 말입니다.
병을 치료받을 길이 있을까? 건강을 회복할 길을 찾아서 그 귀한 시간을 내어서 의사를 찾아 간 것이지, 죽을 준비하자고 의사를 찾아간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율법이 바로 그렇습니다. 율법은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검사하는 것이란 말이 있습니다.
율법은 인간의 한계를 알려주는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1] 사울은 선을 행하기 원하는 소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악이 사로잡아 왔습니다.
사울이 왕이라도 한계가 있음을 율법은 알려줍니다.

    [2]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선을 행하기 원하는 소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재물을 사랑하는 악이 그 가정을 사로잡았습니다.
재물의 반을 하나님께 바친 사람이 이정도입니다.

    이는 우리들의 현실로 나타날 때가 많습니다.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19.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도다"


    왜 사람들이 이단에 쉽게 넘어갑니까?

    육신의 한계를 간과하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완벽한 무엇을 사람에게서 찾으려 합니다.
하나님께 완벽한 것을 찾아야 옳습니다.
인간은 인간일 뿐입니다.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19.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도다"

    이것은 인간의 연약함입니다.

그러나 이단은 자신들은 약하지 않은 것처럼 위장하고 교회에 파고듭니다.

    요즈음 신천지란 이단이 고국에서는 횡행하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그들의 전략은 이렇습니다.

    첫째는 교회 생활에 최선을 다하여 헌신한다는 것입니다. 기도회와 찬양 집회에 누구보다도 앞장서서 행동합니다. 그리고 온갖 종류의 헌금을 냄으로 인하여 교회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게 합니다.
교회로부터 인정을 받고 중직에 오른 뒤에 목사를 내쫓고 교회를 통째로 먹거나 교회는 무너뜨리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더 무서운 전략이 있습니다. 그것은 설교를 듣지 말라는 것입니다. 교회의 모든 행사와 물질의 봉사를 열심히 하되 결코 설교는 듣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를 위한 구체적인 방법도 제시 되었습니다. 설교를 듣지 않기 위하여 설교 시간에 주보를 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딴 생각을 하거나 아니면 때때로 졸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설교 시간에 성경을 봄으로써 설교 듣는 것을 회피하라는 지침입니다. 설교를 듣게 되면 회심할 수 있기 때문에 절대로 설교를 들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물질과 열심을 가지고, 교회를 흔들고 교회를 삼키려 듭니다.
하나님의 일꾼들을 내쫓고 하나님 말씀을 듣지 못하게 합니다.
하나님의 법은 이런 면에서 아주 소중합니다.

    인간의 한계를 알려주는 율법!
이는 자동차의 '깨끗하지 않는 외면'을 알려주는 검사관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인정해야만 하는 일이 있습니다. 자동차 외적 상태나 엔진과 내적 상태가 더욱 중요합니다. 아무리 바디가 깨끗하다고 해도 엔진과 같은 내적상태가 나쁘면 자동차는 잘 달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성도들에게 율법을 잘 지킨다는 것은 외면을 새롭게 단장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율법을 잘 지킨다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사람이 한 사코 율법화 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것은 비극입니다.
그러나



2.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23.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1] 율법의 거울로 우리를 진단할 때, 우리 민족에겐 민족적인 곤고함이 있습니다.

    우리의 고국의 사회상을 전해 들을 때 우리 민족에겐 민족적인 곤고함이 있습니다.

    북한 동족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고백할 수밖에 없는 한 마디가 있습니다.

    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2] 가정들을 돌아볼 때도 우리에겐 곤고함이 있습니다.

어제는 한 부부가 저를 찾아왔습니다.
너무 삶이 곤고하다고 우십니다.
얼마나 삶이 힘들었으면 자신이 몸담고 있는 교회 담임목사도 아닌 저를 찾아와 눈물을 흘리겠습니까?

    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3] 자녀들에게도 곤고함이 있습니다.

    4] 사업을 하는 어른들에게도 곤고함이 있습니다.

    5] 교회를 맡아 충성하시는 주의 종들에게도 곤고함이 있습니다.

    저는 우리 교회 주변의 몇 목사님들과 월요일마다 읽은 책에 대한 이야기도 하고,
함께 기도를 나누고,
식사를 나누고
운동도 하는 시간을 가집니다.

    크고 작은 교회를 섬기는 일에 있어 저마다 곤고한 일들이 너무 많습니다.
누구에게 어떤 말을 할 수 없는 곤고한 일들이 많습니다.
교인 수가 많으면 많은대로 교인 수가 적으면 적은 대로 곤고한 일들이 많습니다.

         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우리들은 우리의 주님의 집에 모여 신앙의 용장들이 남긴 간접 경험들을 책을 통해 나누면서 새로운 힘을 얻습니다.
기도와 교제와 음식을 나누면서 곤고한 일들을 이겨나갈 힘을 얻습니다.


    이 세상에 근심된 일이 많고 참 평안을 몰랐구나 내 주예수 날 오라 부르시니 곧 평안히 쉬리로다

이 세상에 공고한 일이 많고 참 쉬는날 없었구나 내 주예수 날 사랑하시오니 곧 평안히 쉬리로다

이 세상에 죄악된 일이많고 참 죽을일 쌓였구나 내 주예수 날 건져 주시오니 곧 평안히 쉬리로다

[후렴] 주 예수의 구원의 은혜로다 참 기쁘고 즐겁구나 그 은혜를 영원히 누리겠네 곧 평안히 쉬리로다

    474장의 가사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곤고한 이 세상에서 오호라 탄식하는 피조물들의 고통을 들으시는 영적 축복을 받으시는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율법의 요구를 충족하셨습니다.

    2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어떻게 이 곤고함을 이길 수 있습니까?

    1] 하나님께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답을 두셨습니다.

    율법으로 해결할 수 없는 답을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 두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곤

    찬송 464장에는 이런 찬양이 있습니다.

    곤한 내 영혼 편히 쉴곳과 풍랑 일어도 안전한 포구 폭풍까지도 다스리시는 주의 영원한팔 의지해

세상 친구들 나를 버려도 예수 늘함께 동행하므로 주의 은혜가 충만하리니 주의 영원한 팔 의지해

나의 믿음이 연약해져도 미리 예비한 힘을 주시며 위태할때도 안보하시는 주의 영원한 팔 의지해

능치못한것 주께 없으니 나의 일생을 주께 맡기면 나의 모든짐 대신 지시는 주의 영원한 팔 의지해

[후렴] 주의 영원하신 팔 함께하사 항상 나를 붙드시니 어느곳에 가든지 요동하지 않음은 주의 팔을 의지함이라


    2]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사랑을 알 수 있는 속사람을 우리 내면에 두셨습니다.

    18.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19.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도다

    21.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22.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선을 행하기 원하는 속사람,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는 속사람을
하나님 께서는 우리 내면에 두셨습니다.

    '네페쉬’(nepesh)는 구약에서 사람을 나타내는 가장 일반적인 단어로, ‘인간의 내적 존재’, ‘살아있는 존재’, ‘인간 그 자체’, 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신약에서는‘루아흐’에 해당하는 헬라어 ‘프뉴마’(pneuma)는 ‘영’으로 번역되었습니다. 영어에서 보통 ‘영’(spirit)으로 번역는 말입니다.

    구약에서 흔히 육체를 가리킬 때 사용된 ‘바사르’(basar) ;육신에 속한 존재(시 73:26; 렘 17:5)- 헬라어 ‘프쉬케’(psyche)와 구분이 했지요.

   성경은 사람이 육체적인 면과 비육체적인 면을 모두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만 이 둘을 독립적으로 다루지 않고 전체로서의 한 인격체로 보고 있습니다.

    피조된 인격체로서의 사람은
겉사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속사람이 있습니다.
겉사람은 후패되어 갑니다.
그러나 속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임으로 날로 새로워질 수 있습니다

인간이 어떤 존재입니까?

기원- 하나님의 직접적인 창조 행위에 의해 지음을 받은 존재입니다.
정체성-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구성 요소- 몸, 영혼으로 구성되어 한 인격체(全人)를 이룹니다.
관계-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자기 자신과 이웃, 나아가 자연과 바른 관계를 가질 수 있는 역량이 있습니다.
타락- 인간의 본성은 죄로 인하여 부패되었습니다.
구속-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로 말미암아 회복하셨습니다.
목적-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창조되었으며, 영원히 그분을 기뻐하는 것입니다.


    엡3:16절에는 사도 바울의 간절한 기도가 압축되어 나옵니다.

    "16. 그 영광의 풍성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 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시며"

하나님께서는 속사람을 강건케 할 수 있습니다.
성령으로 임재하시는 하나님께서 속사람을 강건케 하십니다.
우리의 하나님을 향해 열린 믿음이 우리의 속사람을 강건케 할 수 있습니다.




[마무리하는 말]

    우리 성도는 그리스도와 결혼한 사람들입니다.
신랑이신 주님의 영께 순종하고 봉사하는 신부는 늘 그분께 힘을 얻습니다.
비록 율법이란 거울에 비추어 볼 때,
오호라 탄식할 수밖에 없는 존재라 할지라도
율법이란 의사에게 검진을 해 볼 때,
우리는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 할지라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 안에 속사람을 두시고
믿음 안에서 승리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령 안에서 승리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경본문]

7.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
8. 그러나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내 속에서 각양 탐심을 이루었나니 이는 법이 없으면 죄가 죽은 것임이니라
9. 전에 법을 깨닫지 못할 때에는 내가 살았더니 계명이 이르매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었도다
10. 생명에 이르게 할 그 계명이 내게 대하여 도리어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 되었도다
11.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나를 속이고 그것으로 나를 죽였는지라
12. 이로 보건대 율법도 거룩하며 계명도 거룩하며 의로우며 선하도다
13. 그런즉 선한 것이 내게 사망이 되었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오직 죄가 죄로 드러나기 위하여 선한 그것으로 말미암아 나를 죽게 만들었으니 이는 계명으로 말미암아 죄로 심히 죄되게 하려 함이니라
14. 우리가 율법은 신령한 줄 알거니와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 팔렸도다
15. 나의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원하는 이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그것을 함이라
16.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내가 이로 율법의 선한 것을 시인하노니
17. 이제는 이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18.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19.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도다
20.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21.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22.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23.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2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