셈 레벤슨의 어록에 이런 의미있는 말이 있습니다.
아름다운 입술을 갖고 싶습니까? 그러면 친절한 말을 하세요.
사랑스러운 눈을 갖고 싶습니까? 그러면 사람들의 장점을 보세요.
날씬한 몸매를 갖고 싶습니까? 그러면 배고픈 사람을 대접하세요.
아름다운 머리결을 갖고 싶습니까? 그러면 어린이 머리를 쓰다듬으세요.
아름다운 자세를 갖고 싶습니까? 그러면 혼자서 걷지 마세요.
베리에 계시는 박심 목사님으로부터 지난 주일에 들었던 셈 레벤슨의 어록입니다. 참 아릅답지요? 여러분과 나누고 싶어 받아왔습니다.
믿는 사람은 믿지 않는 사람들과 다른 삶의 특징을 가졌습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은 무엇인가 분명 다를 법한데 그것은 무엇일까요?
오늘 말씀을 따라가면서 묵상하면서 그리스도 예수님의 사람이 이 세상에서 누리는 남다른 특징을 헤아려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1. 결코 정죄함이 없습니다.
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사람은 두 가지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1] '죄와 사망의 법' 아래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첫 사람 아담 안에서 온 인류가 범한 죽음을 가져오는 법입니다.
사53:6 말씀처럼 우리는 다 양같아서 각기 제 길로 가다가 죽을 수밖에 없는, 롬3:23말씀처럼 한번 죽는 것이 정해진, 그래서 결국 그 후에 심판에 이를 그런 인생입니다.
아담 안에서 태어나 아직 죄의 형벌 아래 있는 인생입니다.
롬6: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히9:27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이는 생리학적인 인간의 모습입니다. 아담 안에 있는 백성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결국 죄로 인하여 정죄를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정죄 : Condemn >가 무멋입니까?
죄가 있는 것으로 유죄 판정을 받는 것을 말합니다. 성경의 정죄는 하나님의 공의의 법에 기초한 것으로, 구약은 대부분 율법을 어겼을 때 그에 상응하는 죄의 결과로 형벌을 받게 되며 분리나 소외, 추방 등을 당하게 됩니다.
2] '생명의 성령의 법' 아래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돌아와서 그 안에 두신 구원받고 생명을 얻은 사람입니다.
딛3:05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난 인생이요, 성령으로 새롭게 된 인생입니다.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돌아온 사람입니다.
구약에서 정죄당한 자는 제사를 통하여 속죄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레 4-6장 참고). 신약에서는 의인과 악인을 구별하고 정죄하는 개념이 더 확장되었는데(요 3:18; 5:24; 롬 3:19-20), 그 기준은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믿음 여부에 따른 것이었습니다(요 3:16).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어느 누구도 송사할 수 없다고 강력하게 주장함으로써 그리스도를 통하여 얻을 수 있는 용서와 칭의를 선포합니다(롬 8:33).
[시편 32:2]
마음에 간사가 없고 여호와께 정죄를 당치 않은 자는 복이 있도다
믿는 성도들이 정죄를 당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우리 대신 정죄를 당하셨기 때문입니다.
[마가복음 16:16]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로마서 5:18]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것 같이 의의 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성령에 있는 자에게는 정죄 대신 의롭다하시는 생명에 이르렀습니다.
그 결국은 영생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아담 안에서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하였기 때문에
결코 정죄함이 없는 것입니다. 지옥에 갈 수 없다는 말입니다.
영생을 누리며 사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의롭다하심을 얻은 백성의 특성은 자신의 생명 얻음을 감사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을 정죄하지 않습니다.
베드로식으로 칼을 든 사람에 의해서 세상이 변화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처럼 떨어진 귀를 붙여주시는 역사를 통해 세상이 변합니다.
바리새인식으로 삭개오를 정죄해서 삭개오가 변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처럼 삭개오를 찾아가고 그 곁에 머무는 사랑을 통해 삭개오가 재산의 반을 세상에 내어 놓는 변화가 옵니다.
삼성의 비리를 밝히겠다고 김 모변호사가 칼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김 모 변호사에 대한 시선이 곱지만은 않습니다. 이건희 회장이 퇴진해서가 아닙니다. 그런 방식으로 삼성이 변할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는 호숫가에 나가면 때로 돌던지기를 합니다. 물 위로 돌이 통통 튀어 나가는 것을 보면 상쾌합니다. 어떤 때는 9번까지도 뛰어 갑니다. 그런데 어떤 야구 사람은 자기가 가진 돌로 갈매기나 오리에게 던집니다. 어떤 야구 선수는 야구 공을 던져서 갈매기가 맞아 즉사했답니다.
어떤 사람이 꿈에 하나님 앞에 갔습니다. 하나님의 천사가 그 앞에 두터운 책 네 권을 가져다 놓습니다.
맨 위 책을 들추어보니 자신의 행한 죄가 빼곡하게 가득 쓰여 있었습니다. 정말 부끄러웠습니다.
다음 책은 더 두껍습니다. 글씨는 더 작게 쓰여있습니다. 무슨 책인가 물었습니다. 그가 말로 지은 죄를 기록해두었답니다.
세 번째 책은 더 두껍습니다. 깨알처럼 작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무슨 책인가 물었습니다. 그가 생각으로 지은 죄를 기록해두었답니다.
마지막 책은 더 두껍습니다. 아주 까맣습니다. 무슨 책인가 물었습니다. 그의 마음이라고 하였습니다.
세상에 돌이 너무 많습니다. 그러나 그 돌들은 던져서 새를 죽이라는 돌이 아닙니다. 죄를 정죄하겠다고 사람에게 던지면 더욱 안됩니다.
정죄의 돌을 이웃에게 던지지 말고,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고 말씀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다칩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그리스도 예수를 영접한 내 인생이 이제 하나님의 정죄를 벗어났습니까?
이제 더이상 이웃을 정죄하는 마음을 내려놓으셨습니까?
나는 생명의 법 안에서 영생을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성령의 법이 내 인생을 인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놀라운 일을 내 안에 행하신 하나님께 찬양을 올리시기 바랍니다.
이 일로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이는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 감옥에서 벗어난 것보다 더 감격스러운 영적 해방이기 때문입니다
2. 영의 일을 생각합니다.
5.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성령의 사람이 가진 삶의 특성 중 하나는 영의 일을 생각한다는 점입니다.
1] 육신의 일을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타고난 인간의 본성대로 살아갑니다.
부패하고 타락한 인간의 본성을 따라 생리학적으로 살아갑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염려하며 살아갑니다.
육신의 생각이지요.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이런 육신의 생각의 결국은 사망입니다.
지난 달 말, 이스라엘에서 뉴캐슬 대학 연구진이 동물 중에서 소를 골라, 암컷의 난소세포에 인간의 핵인 DNA를 투입해 ‘세포질 교잡배아’를 세계 최초로 성공했다는 발표가 공개되었습니다. 영국 뉴캐슬 대학의 존 번 생물유전학장은 이번 연구의 성과를 축하하면서 질병치료의 획기적 대안으로 발돋움 되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뉴캐슬 대학의 연구 책임자들은 이런 과학의 진보가 실생활에 커다란 편의를 가져다 줄 것이라 강조하면서 자신들의 연구를 변호하고 나섰습니다.
유전자 핵을 이용해 도저히 풀리지 않을 것 같았던 질병의 해결 방법을 밝혀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영국 기독교계는 “드디어 넘지 말아야 할 선(line)을 넘고 말았다고 개탄하고 있습니다.
‘뒤 섞인 배아’가 출현하게 되는 현실이 된 작금의 상황이 너무나 염려스러워 합니다. 소위 신경핵을 제거하고 그 안에 인간의 유전자 본체를 심어 넣는 행위에 대하여 개탄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유전자 핵을 동물의 생식기관에 심는 행위를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은 것"이라는 입장입니다.
지금 이 과학자들이 무슨 일을 하였습니까?
엄청난 재능과 물질과 시간을 쏟아부어 무엇을 한 것입니까?
5. 육신을 좇는 자들이 육신의 일을 생각한 결과입니다
그리고 이런 육신의 생각은 사망일 뿐입니다.
육신을 좇고 육신의 일을 생각하는 것은 이런 사람들에게만 있는 일이 아닙니다.
- 가인이 육신을 좇고 육신의 일을 생각하다가 사망을 낳습니다.
- 에서가 하나님의 기업을 생각하지 못하고 육신을 좇고 육신의 일을 생각하다가 대성통곡하는 날에 이릅니다.
- 사울 왕이 왜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고 결국 사망에 이릅니까?
하나님께 드려질 예배(제물)를 육신적으로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선물로 만나게 하신 다윗을 육신적으로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내려주신 왕권을 육신적으로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섬기게 하신 이스라엘이란 나라를 육신적으로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입니다.
2] 영을 좇아 살며 영의 일을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사람은 영으로 살리심을 받은 사람입니다.
벧전3:18 그리스도께서도 한 번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그리스도께서 그를 위해 죽으셨음을 믿는 의인으로 하나님 앞으로 인도함을 받는 영의 사람입니다.
[1] 이런 성령의 사람은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율법의 요구)을 하나님께서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주십니다.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4.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습니까?
3.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4.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2] 또한 영의 일을 생각하는 그는 생명과 평안을 누립니다.
영의 일을 생각하여 보십시오.
영의 일을 생각할 때, 생명과 평안이 있습니다.
육의 일을 생각하면 사망이 올 수밖에 없지만 영의 일을 생각하면 생명과 평안이 있습니다.
사울왕이 그렇게 육신적으로 다윗을 생각하며 죽이려 하지만 다윗은 사울왕을 영적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그에게는 생명과 평안이 있습니다.
요셉이 자신에게 다가온 현실을 육신적으로만 생각했다면 그는 자살을 했을 것입니다.
형들에게 팔려가서 노예로 전락한 사건을 육신적으로 생각했다면 살 소망이 끊어졌을 것입니다.
보디발의 아내에게 중심을 지키고도 억울하게 감옥에 갇힌 것을 육신적으로 생각했다면 감옥 안에서 살 소망을 잃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육신을 좇아 육신의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영의 생각을 놓지 않습니다.
영을 좇는 요셉은 영의 일을 생각하였습니다.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었습니다.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걱정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당신들의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
영의 생각을 놓지 않습니다.
그 결과 생명과 평안이 있습니다.
릭 워렌 목사님은 '목적이 이끄는 삶'이란 책으로 엄청난 부를 얻었습니다.
그는 시편 72편을 읽고 그는 솔로몬이 궁핍과 강포 아래 놓인 백성들을 위해 자신을 더 강하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간청했듯 “내 명성은 스스로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이들을 위해 쓰여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워렌 목사님과 사모님은 기도 끝에 그들이 수천만 달러를 벌어들였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의’ 삶을 바꾸지 않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워렌 목사는 “나는 아직도 8년 된 포드를 몰고 있으며, 같은 집에 살면서, 같은 손목시계를 차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출애굽기를 묵상하면서 중요한 메시지를 전합니다. “모세의 지팡이는 어떤 특별한 점도 없는 평범한 지팡이었지만 그것을 하나님께 내어드렸을 때 ‘하나님의 지팡이’가 됐다”며 “여러분의 손에 무엇이 들려있든, 그것이 어떤 부든, 어떤 명성이든 하나님께 맡기면 그 분은 그것을 살아 움직이게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상상도 못했던 일들을 여러분의 삶에 행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나의 손에 무엇을 들려 주셨는가”
“나의 목표는 무엇인가?"
"책을 쓰기 전이나 후나 더 많은 영혼을 구원하는 것이다”
성령을 좇는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성령을 좇아 사는 사람의 마음에는 늘 생명이 있고 평안이 있습니다.
부활이요 생명이신 주님께서 살아서 믿는 우리를 영원히 죽지 않는
그런 생명과 평안을 주실 줄 믿습니다.
[마무리하는 말]
지난 수요일 예배 때에 나눈 성 어거스틴과 C.S.루이스의 명언을 간추려 마무리하는 말씀으로 나누고자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언가를 주고자 하시지만 우리 손이 꽉 차 있기 때문에 - 무언가를 주실 자리가 전혀 없기 때문에 - 주지 못하십니다.
(성 어거스틴)
C.S. 루이스는 이런 명언을 남기고 있습니다.
"우리는 비행기 조종사가 낙하산을 대하듯 하나님을 대합니다. 위기 상황에 대비해 마련해 두긴 하지만, 그것을 사용해야 할 기회는 오지 않기를 바랍니다."
믿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과 적당한 거리를 두고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안타까운 일이지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거하며, 성령의 인도함을 받으며 사십시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의 사람이 될 때, 정죄함이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의 사람이 될 때, 영의 일을 생각함으로 생명과 평안을 얻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의 사람이 될 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성경본문]
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3.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4.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5.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7.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8.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9.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10.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영은 의를 인하여 산 것이니라
11.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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