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4 April 2015

(장 례) 고후 5:1-5 영원한 집

고후 5:1-5

   01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나니 02 과연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니 03 이렇게 입음은 벗은 자들로 발견되지 않으려 함이라 04 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 진것 같이 탄식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오직 덧입고자 함이니 죽을 것이 생명에게 삼킨바 되게 하려 함이라 05 곧 이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라


1. 우리 몸은 장막집과 같습니다.


장막집은 쉽게 무너집니다. 영구한 집이 아니라 장막, 곧 텐트이기 때문입니다. 좋은 곳으로 옮겨가기 위해 임시로 세운 값싼 천막을 거둬버립니다.

‘인생이라는 시간의 태엽은 단 한 번 감깁니다. 그리고 그 시간의 바늘은 어디서 멈출지 아무도 모릅니다. 한 시간 더 빨리 설 수도 있고 한 시간 더 늦게 설 수도 있습니다(바이올라 왈덴). ’ 그 바늘이 멈춰짐으로 해서 사람들은 모든 것을 잃어버립니다. 재산, 건강, 지위 들을 모두 잃어버립니다.

    그래서 지혜로운 사람은 이 세상의 보배를 절대시하지 않습니다.
    1903년 퀴리부인은 부군과 함께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하였습니다. 그것도 부족하여 8년후 노벨 화학상을 단독으로 수상하였습니다. 영국왕립아카데미는 그 공을 치하하며 금메달을 상품으로 주었습니다. 어느 날, 찾아온 친구가 그 금메달을 좀 보여달라고 했습니다. 퀴리 부인은 방바닥에서 놀고 있는 어린 딸을 가리켰습니다. 아이가 그 소중한 금메달을 가지고 놀고 있는 것을 본 친구는 너무 놀랐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는 친구에게 퀴리 부인은 대답했습니다.
"영예란 잠깐 가지고 놀 수 있을 뿐, 그 이상의 의미는 없습니다."
영국왕립아카데미가 하사한 금메달이란 것도 잠깐 가지고 놀다 두고 갈 장난감에 불과함을 퀴리 부인은 딸에게 알려주고 싶었는지 모릅니다.
그것이 그 이상의 명예와 부와 경제적 풍요함이라 하더라도 바늘이 멈춰서면 모두 무로 돌아가는 것이 인생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너질 장막에 너무 많은 소망을 가져서는 안됩니다. 장막이 무너질 그날을 준비해야 합니다. 병상에 든 어떤 임금이 사랑하는 신하에게 마지막 유언을 남깁니다.

“나는 이제 세상을 떠나노라.”
“폐하, 떠날 준비는 되셨습니까?”

왕은 말이 없었습니다.

일국의 대왕도 자신의 무너지는 장막집에 대하여 아무런 준비를 하지 못할 수 있는 것이 인생입니다.

저는 어떤 집사님께서 세상을 떠나며 남긴 말씀을 기억합니다.

“이렇게 무너지는 것이 인생인데, 나는 빌딩 하나라도 더 살리려고 많은 시간을 그렇게 애쓰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나는 그 모든 것이 참으로 부질없는 몸부림이었음을 압니다.”

이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자신도 언젠가 죽어야 한다는 사실을 압니다. 그러나 죽음 뒤의 문제에 대하여는 준비를 하지 않습니다.  몇 년이 될 지 모르는 노후 준비는 열심히 하면서도 영원(永遠)한 사후의 준비를 하지 않습니다. 천국 갈 준비를 해야 합니다. 지옥에 가서 영원한 형벌을 받아서는 안됩니다. 인생의 삶은 잠깐이요, 그 후에 영원한 세계가 있는데 이에 대한 준비를 하셔야지요. 마치 이 세상이 전부인 양 살아갑니다. 복지국가도 좋고, 환경친화적인 웰빙 사회도 좋지만. 더 중요한 천국 시민권을 받아야 합니다. 짧은 여행만 떠나도 몇 시간 동안 여행준비에 바쁜 사람들이 영원한 집으로 가는 준비를 하지 않아서 되겠습니까?

   최동규 집사님의 70세란 연세는 우리들에게 많은 아쉬움을 남깁니다. 감사한 것은 그분의 인생의 바늘이 멈추기 전에 최집사님은 하나님을 기억하셨습니다. 영혼을 하나님께 의탁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만날 준비를 나름대로 하셨습니다.



2. 무너지지 않은 영원한 집을 준비했습니다.

   그러나 장막집이 무너지면 끝이 아닙니다. 그 후에는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시면 언제든지 장막을 던져버리고 훌훌 하나님께로 떠나는 것이 인생입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곳에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나라가 있습니다.

중병이 걸린 사람이 믿음을 가진 의사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난, 죽음이 두렵습니다. 죽음 저편에 무엇이 있는지 선생님은 아십니까?”
“저는 자세히 말해드릴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때 열린 문틈으로 뛰어들어온 개를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이 개는 이 방에 처음들어 오지만 자기 주인이 여기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두려움 없이 뛰어들어 온 것입니다. 죽음 저 편을 자세히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우리 주님과 그분의 천국이 그곳에 있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영원한 집을 보장받은 사람은 죽음이 두렵지 않습니다.
   시카고의 유명한 정신병학자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는 의학적으로 사망선고를 받았다가 12시간 이상 지나서야 다시 살아난 사람들만 찾아다니며 인터뷰를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공통점 몇 가지를 발견했습니다.
   죽음 이후의 세계를 인정합니다. 그들은 그 세계의 소중함을 인식합니다. 그리고 그 세계에 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생의 불꽃이 서서히 사위어 가던 황혼녘에 St. Josep 병원에서 저는 이사야41장10절 말씀을 읽어드린 적이 있습니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이사야 43:1절에는 이런 말씀도 있습니다.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조성하신 자가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나니 02 과연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니

사랑하는 유가족과 친지 여러분!

캘빈은 세상을 떠나는 그 중요한 시간에 롬8:18절 말씀을 스무 번 이상 암송했습니다.죽는 순간까지 암송하고 있었습니다.
"생각컨데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그렇습니다. 믿는 자에게는 장차 나타날 영광을 이 세상 무엇으로도 비교할 수 없습니다.

       
땅에 있는 장막집이 무너지는 사건은 하늘에 있는 영원한 생활의 시작입니다.  이 일로 인하여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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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단강을 건너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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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21:1-4 01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02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03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0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들어가는 말]

   윌리엄 할스트란 미국 부호는 60세가 되었을 때, 자녀 친지를 불러 놓고 자신에게 죽음에 대해 말하지 못하도록 당부했습니다.
   그에 반하여 로마의 한 황제는 아침 조회시마다 신하들에게 '폐하, 죽음을 기억하옵소서!' 이렇게 기도하도록 당부하였습니다.
   그런데 죽음을 준비하였던 그 황제는 고통 없이 세상을 떠났는데, 할스트는 죽을 때 너무 많은 고통을 받았습니다.

   죽음은 피한다고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피할 수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 누구도!
죽음을 잘 준비하는 사람은 평안과 안식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고 최동규 집사님과 우리들은 바로 이런 현실 앞에 있습니다.

   “죽음이란 무엇입니까?"


   1. 죽음이란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을 떠나는 것입니다.

   동양 사람들은 사람이 죽으면 황천강을 건넌다고 하였습니다.
서양 사람은 사람이 죽으며스타익 강을 건넌다고 합니다.
떠나는 것이 죽음입니다.
포구에 매어있던 배가 떠나는 것처럼 떠나는 것이 죽음입니다.


   사람들은 죽음으로 이 강을 건너 무섭고 험한 세계로 들어가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불신자들에게 있어 죽음은 비극이요, 애통한 일입니다.
 
   ***** 죽음은 처음하늘과 처음 땅을 벗어나게 하는 것입니다.
새로은 출발을 하는 것이 죽음입니다.
고 최동규 집사님께서 좋아하셨던 본 훼퍼는 반나치 운동을 하다가 마지막 죽음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간수가 '나갑시다' 말했을 때, 죽음을 직감하고 이렇게 유언을 남겼습니다.

   "친구 여러분, 이제 저는 새로운 여행을 떠납니다. 이것은 결코 저의 마지막이 아닙니다. 저는 새로운 여행을 위해 출발합니다."

"
    하나님께서는 죽음을 통해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을 벗어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죽음을 통해 육신을 가진 성도들이 처음 하늘과 처음 땅에서 당하는 고통을 벗어나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죽음을 통해 육신을 가진 성도들이 처음 하늘과 처음 땅에서 당하는 질병을 벗어나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죽음을 통해 육신을 가진 성도들이 처음 하늘과 처음 땅에서 당하는 노쇠함으로부터 벗어나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죽음을 통해 육신을 가진 성도들이 처음 하늘과 처음 땅에서 당하는 죽음을 벗어나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죽음을 통해 육신을 가진 성도들이 처음 하늘과 처음 땅에서 당하는 슬픔과 애통을 벗어나게 하십니다.
  홍해바다를 건넜을 때 이스라엘 백성의 400년 노예 생활이 끝난 것처럼, 죽음이 다가왔을 때 처음 하늘과 처음 땅에서 만나는 모든 고난도 끝이 났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 있었을 때 목마름이 있었습니다. 배고픔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죽음이 다가왔을 때, 이 모든 목마름과 배고픔이 끝난 것처럼 죽음이 우리에게 다가올 때, 처음 땅에서 만나는 배고픔과 목마름이 사라집니다.
죽음은 처음하늘과 처음 땅에서 사람들이 만나야만 하는 갈증으로부터 해방시킵니다.

   하나님께서는 죽음을 통해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을 벗어나게 하셨습니다.

   911 사건 때 너무 안타까운 떠남이 생각납니다. 어떤 형제는 죽음 앞에서 사랑하는 사람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없습니다. 그래서 목사님께 전화를 드렸습니다. 전해달라고. 정말 사랑했다고 전해달라 말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천국에서 만나자고 유언을 남기고 떠난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가 죽는다는 것은 육신의 장막을 벗는다는 일이고 이 고통스런 세상을 떠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영원한 땅으로 떠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세상의 모든 굶주림과 목마름에서 떠나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도 광야와 같은 이 세상에서 여러 가지로 쓴 맛을 보고 삽니다. 타는 목마름이 있습니다. 주림이 있습니다. 죄 아래 사는 사람들 중에 거하면서 물고 먹히는 고통이 있습니다. 그러나 요단강 저 건너편에는 이 모든 고통이 없습니다.

    0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는 말씀대로입니다.



   2.  그러나 죽음 후에는 하나님의 심판이 있습니다.

영국의 유명한 무신론자 토마스 홉스는 임종시에

“나는 암흑 가운데로 뛰어들려 하고 있다. 두렵다”고 했습니다.

프랑스의 무신론 철학자 볼테르는

“나는 하나님과 인간에게 버림을 받았구나! 나는 지옥으로 가게 될 것이라!”

고 몸부림쳤습니다.

   왜 믿음 없는 사람들이 이렇게 죽음 앞에 두려움을 갖습니까?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한 번 죽는 것은 정하신 일이요 그 후에 심판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이 그들이 두려워하는 이유입니다.
죽음 후에는 분명 그들이 몸서리칠 만큼 고통스러운 심판이 있습니다.
   - .[잠언 15:11] 말씀을 보면, 지옥은 환히 열려 있습니다

   요즈음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심판과 지옥에 무감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지옥을 거듭 말씀하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지옥은 절대 가서는 안될 곳으로 알려주십니다.

   "만일 네 손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버리라 불구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을 가지고 지옥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나으니라"
[마가복음 9:43]

   - 지옥에 보내실 권세자 하나님을 두려워하라 경고하십니다.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마태복음 10:28]

   - 부자가 지옥에서 고통을 당하다가 눈을 들어서 보니, 멀리 아브라함이 보이고, 그의 품에 나사로가 있었습니다.[누가복음 16:23]

   - 마귀들은 이 지옥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곳인가를 압니다. 그래서 자기들을 지옥에 처넣지는 말아달라고 애원하고 있습니다.[누가복음 8:31]

   - 지옥이 얼마나 무서운 곳이면 하나님께서 외아들을 보내서 십자가에서 대신 죽게 하셨겠습니까?

   믿지 않는 자들이 죽은 후, 그곳에 지옥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정말 우리 성도들이 지옥가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시고 십자가에 돌아가게 하신 가장 큰 이유는 믿는 성도들에게 지옥 가지 않도록 하시기 위함입니다.

   처음 하늘과 땅의 결국은 지옥입니다.



   3. 죽음은 새로운 만남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를 위해 새하늘과 새땅을 약속하셨습니다.

   성도들은 죽음을 통해 새하늘과 새땅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소중한 분들을 만나게 됩니다.
우리를 그렇게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내어 주신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돌로 치라 말씀하셨던 사랑의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우리보다 앞서 천국으로 떠난 그 좋은 분들을 만나게 됩니다.

“저 요단강 건너편에 화려하게 뵈는 집
예루살렘 새집에서 주의 얼굴 뵈오리
빛난 하늘 그집에서 주의 얼굴 뵈오리
한량없는 영광 중에 주의 얼굴 뵈오리“

   동방의 의인이라는 믿음의 사람 욥까지도 처음 하늘과 처음 땅에서 고난을 당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처음 하늘과 처음 땅에서 이해난망한 고난을 당하면서 신비로운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욥23:10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정금처럼 나올 것을 믿었습니다.

이 세상은 어느 곳을 가도 눈물과 아픔과 한숨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영육간의 질병으로 고통을 당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슬픔과 고통은 사라지고 아픔과 괴로움은 치유되고, 기쁨과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한 곳입니다.

계21:27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 뿐이라

   그래서 우리 믿는자들은 죽음 앞에서 Good Bye!라고 인사하지 않습니다.

   미국 어떤 아버지가 네 자녀를 두고 죽음 앞에 호흡을 고르고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아이들에게 차례로 다시 만나자"See you again!"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쟈니에게는 다시 만나자(See you again!)이라고  말하는 대신 Good Bye!라고 인사하였습니다.
   자니는 울먹이며 물었습니다. 아빠 왜 다른 형제들에게는 다시 만나자"See you again!"이라고 말씀하시고 제게만 Good Bye!라고 말씀하세요?"
   "얘야 넌 아직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만날 소망이 없단다. 자니야 아빠가 너에게 다시 만나자고 말할 수 있도록 해줄 수 없을까?"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의 죽음은 다시 만날 소망 가운데 있습니다.    
천국에는 사망이 없기 때문입니다. 부모를 여윈 슬픔이 없습니다.  아내나 남편을 먼저 보내는 애통함이 없습니다. 사랑하는 자녀를 먼저 묻어야 하는 비통함이 없습니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라

  오직 아름다운 만남의 환희가 우리를 사로잡아 올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주 안에서 잠자는 사람이 복되다고 하십니다.

계14:13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가로되 `기록하라 자금 이 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가라사대 `그러하다 저희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저희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

성도의 죽음은 광야와 같은 이 세상의 수고와 염려로부터 떠날 뿐만 아니라 놀라운 만남을 의미합니다.

사11:9 나의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이렇게 볼 때, 성도의 죽음은 새하늘과 새땅에서 만남입니다.

   죽음이란 불신자들에게 있어 끝장나는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 신자들에게는 생명의 시작입니다.
죽음이란 불신자들에게 있어 비극적인 이별입니다. 그러나 우리 신자들에게는하나님과의 새로운 만남입니다.
죽음이란 불신자들에게 있어 영원히 떠나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신자들에게는 새로운 천국에 도착하는 것입니다. 저주가 완전히 소멸되고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가 온전히 회복된 새로운 세계입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그 백성들과 함께 지내시는 것입니다.


어떤 소년이 기차 안에서 너무 흥겨워 합니다.
곁에 계신 아저씨가 궁굼해서 묻습니다.

“얘야, 뭐가 그렇게 신이 나니?”
“아저씨, 이 열차는 지금 아빠가 께시는 스프링필드 역으로 달려가고 있어요. 거기엔 아빠가 나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아빠를 만나는데 어찌 기쁘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천국으로 먼저 떠난 여러 친지와 친구들을 기억할 수 있습니다. 그중에 저의 가슴에 깊이 남아 있는 김금주 권사님도 계십니다. 저는 오늘과 같은 아픈 마음을 가진 유족들에게 김권사님의 유언을 자주 소개합니다. 그분은 울고 있는 자손들에게 이런 말씀을 남겼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초청을 받아 하나님께 간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성도의 죽음을 귀중히 여기십니다.

시116:15 성도의 죽는 것을 여호와께서 귀중히 보시는도다

성도의 죽음을  천국의 새로운 시민권을 받은 사람들이 만남을 갖는 날입이기 때문입니다.

빌3:20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21 그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

D.L. 무디는 그러므로 임종시에 이렇게 유언을 남겼습니다.

“세상은 물러가고 내 앞에 하늘이 열리고 있다. 하나님게서 나를 부르고 있다. 나는 이제 가야만 한다”
불신자들의 몸부림치며 남긴 유언과 얼마나 다릅니까?

우리가 먼저 보내드리는 이복진 집사님 또한, 임종시에 아들에게 아름다운 유언을 남겼습니다.

“천국이 저기 보인다. Mark야,  예수님을 잘 믿어라.”

요단강을 건너 천국으로 건너가는 이민자는 이렇게 아름답습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미국 시카고에서 신앙운동을 일으키고 계시는 Joseph Mathew 박사는 그에게 신앙지도를 받으러 오는 사람들에게 반드시 한 질문으로 시작과 끝을 맺는답니다.

“당신은 죽을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이 준비가 되어야 그 학교에 입학도 가능하고 졸업도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조지 스윈녹이란 분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성도에게는 죽음이 갑작스럽게 임하지 않는다. 항상 식탁을 준비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불현 듯 찾아오는 손님이 있을 수 없다”
미국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는 이런 작품을우리에게 남기고 있습니다


   숲은 아름답고 어둠은 깊다
   하지만 내게 지켜야할 약속이 있어
   잠들기 전에 몇 마일을 걸어야 한다
   하지만 아직도 내게는 지킬 약속이 있다(But I have promise to keep}

   그것은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분과의 만남입니다.
그날을 위해 준비하시는 오늘이 되시길 바랍니다.
믿음으로 준비하십시오.
좀더 큰 충성으로 준비하십시오.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요계21:0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예수 그리스도를 생명의 구주로 영접하심으로 새하늘과 새땅을 영접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올립니다.



하 관 식


개 식 사
이제부터 고 최동규 집사님의 하관식을 거행하겠습니다.

찬 송...........188장{만세반석 열리니}...........다같이
기     도...............................................다같이
생사화복을 주장하시는 주님
고인의 시신을 안장하고자 합니다.
육신은 흙에서 왔다가 흙으로, 영혼은 하나님께 감
유족들에게 위로를 ! 부활의 날에 만날 소망과 믿음을!

성경봉독...............요한14:1-3.............................노목사

0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02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03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하리라

말씀선포.....................................................노목사

예수님을 보내는 제자들은 근심에 잠겨 있었습니다. 기등이 되고 반석이 되는 예수님이 없으면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 정말 예수님이 계시지 않는 10여명의 제자들이 존립하는 것을 상상이나 할 수 있겠습니까? 정말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근심하지 말라고 명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고 최동규 집사님이 계시지 않은 그분의 가정을 우리는 생각하는 것이 마음 아픕니다. 그러나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고 최동규 집사님께서 땅에 묻쳐버리는데, 이제 더 이상 만날 수 없는 데 근심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근심하지 않아도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약속하셨습니다.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과 함께 거하시기를 원하십니다. 부모가 자녀들과 함께 지내기를 기뻐하듯이 하나님은 그 자녀와 함께 살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자녀들과  풍성한 교제(Fellowship)를 나누기 원하십니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03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하리라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26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

신앙고백.........................................................다같이
찬 송............{364 내 주를 가까이}.............다같이
축 도.........................................노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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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예배

찬양 : 예수가 거느리시니 (찬 444장)  - 다같이
        주안에 있는 나에게 (찬 455장)
예배인도: 노하덕 목사
기도 : 이정문 장로(교구장)
성경봉독: 살전 4:13-18
말씀제목: 주의 강림과 죽은 자의 부활

성경본문:

    13. 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는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14. 우리가 예수의 죽었다가 다시 사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저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15.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 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단코 앞서지 못하리라
16.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17.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18. 그러므로 이 여러 말로 서로 위로하라

노부부가 평화롭고 아름답게 살아가고 있었다. 이 때 남편이 아내에게 “여보, 우리는 한 번도 싸우거나 다툰 일이 없는데 싸우면 정이 더 깊어진대요. 우리도 한번 싸워봅시다” 했더니 “그래요. 그렇게 해 봅시다”고 하면서 싸우기로 합의를 했다. 먼저 남편이 아내 지갑을 갖고는 “이거 내거야!” 하고 고집피우려 한다. 이 때 아내가 “이게 당신거라구요? 그럼 가지시구려” 했더니 두 사람은 웃으면서 “우리는 싸움도 못하네” 했단다.

말씀 : 믿음 속에서 위로합시다 - 인도자
찬송 :
고인회상: 이용우, 이지나 집사
중보기도 : 다같이
축도 : 노목사

* 자는 자들’을 기억할 때 슬픔보다는 소망을 생각해야 합니다.주 안에서 ‘자는 자들’이 경험하는 유익은 이제 다시는 세상에서 죄를 범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과 마지막 부활의 때에 예수님의 말씀처럼 ‘생명의 부활’로 일어선다는 것입니다.(요 5:29) 남아 있는 자들이 이것을 기억할 때, 자신의 남은 생애가 예수님과 함께 하게 될 것과 자신이 귀한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을 믿으며 소망을 키워가는 삶을 살 수 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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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 없이 살다가 세상을 떠난 분들의 장례 예배에 나눌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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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90:3- "너희 인생들은 돌아가라."
시 90:10- "우리의 년 수가 70 이요 강건하면 80 이라도 그 년 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 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사 57;1-2 "의인이 죽을 지라도 마음에 두는 자가 없고 자비한 자들이 취하여 감을 입을지라도 그 의인은 화액 전에 취하여 감을 입은 것인 줄을 깨닫는 자가 없도다."

삼상 2:6-8 "여호와는 살리기도 하시고 죽이기도 하시며, 낮추기도 높이기도 하시며, 부하게도 가난하게도 하시는 하나님"

전 12:5-8   "사람이 자기 영원한 집으로 돌아가고 조문자들이 왕래하게 됨이라. 은 줄이 풀리고, 금 그릇이 깨어지고....


하나님께서는 모든 인생은 돌아가야 한다고 말씀하셨다.(시 90:3)
때문에 인간은 누구나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이제 모든 것이 정지 되었다. /
개인의 운명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 집행 되었다.
인생의 삶은 너무나 빨리 지나간다.

2. 죽음은 하나님이 얼마나 공평하신 하나님이신가를 알려주십니다.
가장 적시에 데려가신다.

아쉬운 가운데 슬퍼함을 받으면서 매장되는 것도 아무나 가지지 못하는 분복입니다.


죄와 고통과 슬픔과 수고와 갈등과 저주로부터 완전히 해방되는 것이다.

3) 불완전한 집(육체)을 헐어버니는 일이다.

4) 전쟁과 싸움을 마치는 날입니다.(딤후 4:7)



딤전 6:7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져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렘 16:4 아쉬운 가운데 슬퍼함을 받으면서 매장되는 것도 아무나 가지지 못하는 복이다.

약 4:14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이제 모든 것을 마지막 정리하는 시간이 되었다.
인생은 공수래 공수거이다.


하나님만이 이별의 슬픔을 위로할 참 위로자시다.
우리도 몇 년 안에 다 죽게 되어 있다.


딤후 4:6-8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웠도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전 12:5-8   "사람이 자기 영원한 집으로 돌아가고 조문객들이 거리로 왕래하게 됨이라. 은줄이 풀리고, 금 그릇이 깨어지고, 항아리가 샘 곁에서 깨어지고 바퀴가 우물 위에서 깨어지고 흑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신은 그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
"전도자가 가로되 헛되고 헛되도다 모든 것이 헛되도다"

"
사 40:6-8 "말하는 자의 소리여 외치라 대답하되 무엇이라 외치리이까? 가로되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영히 서리라"


약 4:13-17 "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아무 도시에 가서 거기서 1년을 유하며 장사하여 이를 보리라 하는 자들아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하고 이 것 저 것을 하리라 할 것이거늘 이제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자랑하니 이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 이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치 아니하면 죄니라."


인간의 모든 꿈과 계획은 다 놓고 간다.

가는 사람들을 보면 누구나 다 이루지 못한 것, 다 지켜보지 못한 것, 다 행하지 못하고 가게 된다
그런데 수많은 사람들이 왔다가 가면서도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 지를 알지 못하고 왔다


계 14:13 "또 내가 들으니 자금 이후로 주안에서 죽은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가라사대 그러하다. 저희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저희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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