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 14:13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가로되
기록하라 지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가라사대 그러하다 저희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저희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
[들어가는 말]
"지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자들은 복이 있도다"
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이 복이 있습니까?
주 안에서 성도의 죽음이 왜 복이 있습니까?
1, 수고를 그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범죄한 이후에 한 평생 동안 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 수고입니다.
1] 해산이 축복이나 어머니는 해산하는 수고가 있습니다.
[창세기 3:16]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잉태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2] 노동이 축복이지만 그 소산을 먹기 위하여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합니다.
[창세기 3:17 ]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더러 먹지말라 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3] 노아가 의인이지만 평생 수고로이 일을 해야 했습니다.
[창세기 5:29 ]
이름을 노아라 하여 가로되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시므로 수고로이 일하는 우리를 이 아들이 안위하리라 하였더라
수고를 그치고 초대를 받았습니다..
[마태복음 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그리고 마음이 온유하신 주님께서 그를 위해 편히 쉬게 하시려고 마련하신 천국의 맨션으로 이사를 떠났습니다.
아브라함이 수고를 그치고 쉬임을 갖고 있는 곳
노아가 수고를 그치고 쉬임을 받고 있는 그곳으로
이사갔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더 이상 수고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래서 주 안에서 죽는자들은 복이 있다 하십니다.
주 안에서 죽은 성도의 죽음이 왜 복이 있습니까?
2. 하나님의 영원한 안식 가운데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성령이 가라사대 그러하다 저희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성도가 죽는 것이 복이 있는 까닭은 수고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쉬임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요계21:0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인생이라는 시간의 태엽은 단 한 번 감깁니다. 그리고 그 시간의 바늘은 어디서 멈출지 아무도 모릅니다. 한 시간 더 빨리 설 수도 있고 한 시간 더 늦게 설 수도 있습니다(바이올라 왈덴). ’
그리고 쉬게 됩니다.
- 잠깐 쉬는 것이 아닙니다. 영원한 안식이 있습니다.
- 불완전한 안식이 아닙니다. 부전한 안식입니다.
- 부분적인 안식이 아닙니다. 완성된 안식입니다.
그리하여 시편에서는 이렇게 그 쉬임을 감사하고 찬양합니다.
[욥23:10]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정금처럼 나올 것을 믿었습니다.
장막은 목적을 위해 임시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텐트를 영구적으로 사용하려는 사람이 없습니다.
목적을 위해 임시로 세웁니다.
그 목적이 여행이든, 임시 거쳐든, 세운 목적이 달성되면 무너뜨리는 것이 장막입니다.
어떤 사람이 텐트 속에서 영구히 살려는 사람이 있다면 건강한 사고의 소유자라고 말하기 힘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에 사는 많은 사람들이 이 육신의 장막에 전력투구를 합니다.
- 더 건강한 장막을 세우기 위해 각종 보약을 쏟아붓습니다.
- 더 아름다운 장막을 세우기 위해 많은 물질을 아낌없이 투자합니다.
- 더 오래 살기 위해 엄청난 연구들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좀더 건강하고
좀더 아름답고
좀더 오래 사는 것이
나쁘다는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인생의 목적인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땅에 있는 장막집은 임시적이기 때문입니다.
결국은 무너지게 마련입니다.
3] 텐트의 목적을 위해 존재하는 장막입니다.
인생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그 이름을 영원토록 즐거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땅 위에서 존귀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임시로 이 세상에 텐트를 치고 사는 것입니다.
[모본]
예수님의 삶을 생각하면 우리는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육신을 입으시고 이땅에 찾아오셨습니다.
33년간 이 육신을 잘 사용하시고
하나님의 꿈을 이루시기 위해 십자가에 이 육신을 내어 주셨습니다.
이 육신을 더 아름답게 하시기 위해
더 건강하게 하기 위해
더 오래 살기 위해
무엇을 투자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장막을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묘사합니다.
[이사야 53:2]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그러나 예수님의 인생이 온 인류 가운데 영원한 구주가 되시는 까닭은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신 일에 몸을 내어놓았기 때문입니다.
[시116편 7-8졸]
7. 내 영혼아 네 평안함에 돌아갈지어다 여호와께서 너를 후대하심이로다
8. 주께서 내 영혼을 사망에서, 내 눈을 눈물에서, 내 발을 넘어짐에서 건지셨나이다
[히4:9]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약속된 하나님의 안식은 가나안 땅을 정복하고 그곳에 정착하는 것이었습니다.
여호수아는 모세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가나안 땅을 정복한 믿음의 사람입니다. 그는 가나안을 정복한 뒤 이스라엘 각 지파에게 하나님의 약속의 땅을 분깃으로 나누어 주었습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리라고 한 약속은 성취된 것입니다.
그런데 시편에 의하면 그 분깃은 참된 안식을 위한 분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약속의 땅을 분깃으로 받았는데도 그 후에 하나님은 다윗을 통해 다시 안식을 주겠노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7절).
이미 안식에 들어갔다고 생각했는데 또 다른 안식을 주시겠다는 것은 현재의 안식이 참 안식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가나안 땅은 결코 하나님이 주시는 영원한 안식처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그 땅은 장차 폐하여지고 말 이 세상에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안식의 분깃으로 받은 땅은 장차 영적 이스라엘 백성들인 성도들이 분깃으로 받을 하나님 나라를 예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장차 폐하여지고 말 이 세상과 달리 영원히 폐하여지지 아니할 새 하늘과 새 땅이며 모세나 여호수아로 말미암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것입니다.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는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완성될 것이며 그때 성도들은 그 나라에 들어가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토록 거하는 참된 안식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9절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
사랑하는 유족 여러분, 우리가 고 김정근 집사의 죽음을 조심스럽게 감사하는 까ㅤㄹㅏㄺ은 그가 이땅에서 제대로 누리지 못한 안식을 그가 지금 아브라함을 품에서 누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를 옭아매고 있는
사망의 줄과 환난과 힘듦
그리고 책임감과 무거운 죄짐들
이 모든 고통과 묶임에서
참된 자유를 주시고
쉼을 주실 분은 주님 밖에 없습니다.
사랑의 주님!
짧게 사는 이 세상살이에서
수많은 줄들이 저를 옭아매고 있습니다.
경제적인 문제
자녀 양육의 문제
건강의 문제
죄의 문제
맡은 일에 대한 책임감...
모든 것들이 저를 결박하여
자유와 평화를 빼앗아 가려고 합니다.
저의 모든 결박들을 풀어 주옵소서!
주님으로 인해 참 자유와
참 평화를 얻고 누리게 하옵소서!
저의 기도를 들으실 줄 믿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3. 행한 일에 대한 상급이 따르기 때문입니다.
"이는 저희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
영국의 유명한 무신론자 토마스 홉스는 임종시에
“나는 암흑 가운데로 뛰어들려 하고 있다. 두렵다”고 했습니다.
프랑스의 무신론 철학자 볼테르는
“나는 하나님과 인간에게 버림을 받았구나! 나는 지옥으로 가게 될 것이라!”
고 몸부림쳤습니다.
왜 믿음 없는 사람들이 이렇게 죽음 앞에 두려움을 갖습니까?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한 번 죽는 것은 정하신 일이요 그 후에 심판이 있기 때문입니다.
병상에 든 어떤 임금이 사랑하는 신하에게 마지막 유언을 남깁니다.
"나는 이제 세상을 떠나노라.”
지혜로운 신하가 왕에게 묻습니다.
"폐하, 떠날 준비는 되셨습니까?”
왕은 말이 없었습니다.
무너지는 장막 집에 대하여 준비하지 못하면 일국의 대왕도 어찌할 길이 없는 것입니다.
윌리엄 할스트란 미국 부호는 60세가 되었을 때, 자녀 친지를 불러 놓고 자신에게 죽음에 대해 말하지 못하도록 당부했습니다.
그에 반하여 로마의 한 황제는 아침 조회시마다 신하들에게 '폐하, 죽음을 기억하옵소서!' 이렇게 기도하도록 당부하였습니다.
그런데 죽음을 준비하였던 그 황제는 고통 없이 세상을 떠났는데, 할스트는 죽을 때 너무 많은 고통을 받았습니다.
죽음은 피한다고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피할 수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 누구도!
윌리엄 할스트란 미국 부호는 60세가 되었을 때, 자녀 친지를 불러 놓고 자신에게 죽음에 대해 말하지 못하도록 당부했습니다.
그에 반하여 로마의 한 황제는 아침 조회시마다 신하들에게 '폐하, 죽음을 기억하옵소서!' 이렇게 기도하도록 당부하였습니다.
그런데 죽음을 준비하였던 그 황제는 고통 없이 세상을 떠났는데, 할스트는 죽을 때 너무 많은 고통을 받았습니다.
죽음은 피한다고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피할 수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 누구도!
죽음을 잘 준비하는 사람은 평안과 안식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평안과 안식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행한 일에 대한 보상이 따르기 때문입니다.
[마무리하는 말]
[시116:15-16]에는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는 말씀 대신에 "15. 성도의 죽는 것을 여호와께서 귀중히 보시는도다
16. 여호와여 나는 진실로 주의 종이요 주의 여종의 아들 곧 주의 종이라 주께서 나의 결박을 푸셨나이다
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D.L. 무디는 그러므로 임종시에 이렇게 유언을 남겼습니다.
“세상은 물러가고 내 앞에 하늘이 열리고 있다. 하나님게서 나를 부르고 있다. 나는 이제 가야만 한다”
조지 스윈녹이란 분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성도에게는 죽음이 갑작스럽게 임하지 않는다. 항상 식탁을 준비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불현 듯 찾아오는 손님이 있을 수 없다”
1, 수고를 그치기 때문입니다.
2. 영원한 안식에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3. 수고한 일에 대한 상급이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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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21:1-4
하나님 나라 시민권자
죽음의 의미
[새 하늘과 새 땅]
01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02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03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0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들어가는 말]
윌리엄 할스트란 미국 부호는 60세가 되었을 때, 자녀 친지를 불러 놓고 자신에게 죽음에 대해 말하지 못하도록 당부했습니다.
그에 반하여 로마의 한 황제는 아침 조회시마다 신하들에게 '폐하, 죽음을 기억하옵소서!' 이렇게 기도하도록 당부하였습니다.
그런데 죽음을 준비하였던 그 황제는 고통 없이 세상을 떠났는데, 할스트는 죽을 때 너무 많은 고통을 받았습니다.
죽음은 피한다고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죽음을 피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 누구도!
“죽음이란 무엇입니까?"
동양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사람이 죽으면 황천을 건너는 것입니까?
서양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사람이 죽어 스타익 강을 건너는 것입니까?
믿음 없는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죽음으로 이 강을 건너 무섭고 험한 세계로 들어가는 것입니까?
이런 경우 죽음은 비극이요, 애통한 일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어떻게 말하고 있습니까?
1. 죽음은 처음 하늘과 처음 땅, 바다가 있는 세상을 떠나는 것입니다.
[계21: 01]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몸담고 있는 하늘 땅 바다가 있는 세상에 육신을 두고 떠나는 것이 죽음입니다.
포구에 매어있던 배가 떠나는 것처럼 영혼이 육신으로부터 떠나는 것이 죽음입니다.
이 경우 죽음은 끝장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입니다.
본 훼퍼는 반나치 운동을 하다가 마지막 죽음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간수가 '나갑시다' 말했을 때, 죽음을 직감하고 이렇게 유언을 남겼습니다.
"친구 여러분, 이제 저는 새로운 여행을 떠납니다. 이것은 결코 저의 마지막이 아닙니다. 저는 새로운 여행을 위해 출발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죽음을 통해 육신을 가진 성도들이 처음 하늘과 처음 땅에서 당하는 고통을 벗어나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죽음을 통해 육신을 가진 성도들이 처음 하늘과 처음 땅에서 당하는 질병을 벗어나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죽음을 통해 육신을 가진 성도들이 처음 하늘과 처음 땅에서 당하는 노쇠함으로부터 벗어나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죽음을 통해 육신을 가진 성도들이 처음 하늘과 처음 땅에서 당하는 죽음을 벗어나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죽음을 통해 육신을 가진 성도들이 처음 하늘과 처음 땅에서 당하는 슬픔과 애통을 벗어나게 하십니다.
홍해바다를 건넜을 때 이스라엘 백성의 400년 노예 생활이 끝난 것처럼, 죽음이 다가왔을 때 처음 하늘과 처음 땅에서 만나는 모든 고난도 끝이 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 있었을 때 목마름이 있었습니다.
배고픔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죽음이 다가왔을 때, 이 모든 목마름과 배고픔이 끝난 것처럼 죽음이 우리에게 다가올 때, 처음 땅에서 만나는 배고픔과 목마름이 사라집니다.
죽음은 처음 하늘과 처음 땅에서 사람들이 만나야만 하는 갈증으로부터 해방시킵니다.
하나님께서는 죽음을 통해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을 벗어나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죽는다는 것은 육신의 장막을 벗는다는 일이고 이 고통스런 세상을 떠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영원한 땅으로 떠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세상의 모든 굶주림과 목마름에서 떠나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도 광야와 같은 이 세상에서 여러 가지로 쓴 맛을 보고 삽니다. 타는 목마름이 있습니다. 주림이 있습니다. 죄 아래 사는 사람들 중에 거하면서 물고 먹히는 고통이 있습니다.
0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는 말씀대로입니다.
2. 성도들에게 죽음은 새하늘과 새땅의 시작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를 위해 새하늘과 새땅을 약속하셨습니다.
[계21:2]
02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그곳에서 우리는 우리를 그렇게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내어 주신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돌로 치라 말씀하셨던 사랑의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우리보다 앞서 천국으로 떠난 그 좋은 분들을 만나게 됩니다.
“저 요단강 건너편에 화려하게 뵈는 집
예루살렘 새집에서 주의 얼굴 뵈오리
빛난 하늘 그집에서 주의 얼굴 뵈오리
한량없는 영광 중에 주의 얼굴 뵈오리“
동방의 의인이라는 믿음의 사람 욥까지도 처음 하늘과 처음 땅에서 고난을 당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처음 하늘과 처음 땅에서 이해 난망한 고난을 당하면서 신비로운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욥23:10]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정금처럼 나올 것을 믿었습니다.
이 세상은 어느 곳을 가도 눈물과 아픔과 한숨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영육간의 질병으로 고통을 당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슬픔과 고통은 사라지고 아픔과 괴로움은 치유되고, 기쁨과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한 곳입니다.
[계21:27]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뿐이라
그래서 우리 믿는 사람들은 죽음 앞에서 Good Bye!라고 인사하지 않습니다.
"See you again!"
이렇게 인사합니다.
[예화]
미국 어떤 아버지가 네 자녀를 두고 죽음 앞에 호흡을 고르고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아이들에게 차례로 다시 만나자"See you again!"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쟈니에게는 다시 만나자(See you again!)이라고 말하는 대신 Good Bye!라고 인사하였습니다.
자니는 물었습니다. 아빠 왜 다른 형제들에게는 다시 만나자"See you again!"이라고 말씀하시고 제게만 Good Bye!라고 말씀하세요?"
"얘야 넌 아직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만날 소망이 없단다. 자니야 아빠가 너에게 다시 만나자고 말할 수 있도록 해줄 수 없을까?"
처음 하늘과 새 땅이 지나갔다고 누구에게나 새 하늘과 새 땅이 오는 것은 아닙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나라 백성일 때, 그 나라의 시민권을 가지고 있을 때, 새 하늘과 새 땅이 열리는 것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의 주인이신 예수님 나라의 시민권자들은 새 하늘과 새 땅의 소망 가운데 있습니다.
천국에는 사망이 없습니다.
부모를 여윈 슬픔이 없습니다.
아내나 남편을 먼저 보내는 애통함이 없습니다.
사랑하는 자녀를 먼저 묻어야 하는 비통함이 없습니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라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자에게는 새 하늘과 새 땅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만날 환희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주 안에서 잠자는 사람이 복되다고 하십니다.
[계14:13]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가로되 `기록하라 자금 이 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가라사대 `그러하다 저희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저희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자인 성도의 죽음은 광야와 같은 이 세상의 수고와 염려로부터 떠날 뿐만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서 신랑이신 주님과의 놀라운 만남을 의미합니다.
[사11:9]
나의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이렇게 볼 때, 성도의 죽음은 새 하늘과 새 땅에서 그 나라의 주인이신 신랑되신 주님과의 만남입니다.
죽음이란 불신자들에게 있어 끝장나는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 신자들에게는 생명의 시작입니다.
죽음이란 불신자들에게 있어 비극적인 이별입니다. 그러나 우리 신자들에게는하나님과의 새로운 만남입니다.
죽음이란 불신자들에게 있어 영원히 떠나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신자들에게는 새로운 천국에 도착하는 것입니다. 저주가 완전히 소멸되고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가 온전히 회복된 새로운 세계입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그 백성들과 함께 지내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자에게 있어 죽음은 기쁨일 수 있습니다.
[예화]
어떤 소년이 기차 안에서 너무 흥겨워 합니다.
곁에 계신 아저씨가 궁굼해서 묻습니다.
“얘야, 뭐가 그렇게 신이 나니?”
“아저씨, 이 열차는 지금 아빠가 께시는 스프링필드 역으로 달려가고 있어요. 거기엔 아빠가 나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아빠를 만나는데 어찌 기쁘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천국으로 먼저 떠난 여러 친지와 친구들을 기억할 수 있습니다. 그중에 저의 가슴에 깊이 남아 있는 김금주 권사님도 계십니다. 저는 오늘과 같은 아픈 마음을 가진 유족들에게 김권사님의 유언을 자주 소개합니다. 그분은 울고 있는 자손들에게 이런 말씀을 남겼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초청을 받아 하나님께 간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성도의 죽음을 귀중히 여기십니다.
[시116:15]
성도의 죽는 것을 여호와께서 귀중히 보시는도다
성도의 죽음을 천국의 새로운 시민권을 받은 사람들이 천국에 입국하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빌3:20]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21 그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
D.L. 무디는 그러므로 임종시에 이렇게 유언을 남겼습니다.
“세상은 물러가고 내 앞에 하늘이 열리고 있다. 하나님게서 나를 부르고 있다. 나는 이제 가야만 한다”
불신자들의 몸부림치며 남긴 유언과 얼마나 다릅니까?
요단강을 건너 천국으로 건너가는 이민자는 이렇게 아름답습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미국 시카고에서 신앙운동을 일으키고 계시는 Joseph Mathew 박사는 그에게 신앙지도를 받으러 오는 사람들에게 반드시 한 질문으로 시작과 끝을 맺는답니다.
“당신은 죽을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이 준비가 되어야 그 학교에 입학도 가능하고 졸업도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조지 스윈녹이란 분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성도에게는 죽음이 갑작스럽게 임하지 않는다. 항상 식탁을 준비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불현 듯 찾아오는 손님이 있을 수 없다”
미국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는 이런 작품을우리에게 남기고 있습니다
숲은 아름답고 어둠은 깊다
하지만 내게 지켜야할 약속이 있어
잠들기 전에 몇 마일을 걸어야 한다
하지만 아직도 내게는 지킬 약속이 있다(But I have promise to keep}
그것은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분과의 만남입니다.
그날을 위해 준비하시는 오늘이 되시길 바랍니다.
믿음으로 준비하십시오.
좀더 큰 충성으로 준비하십시오.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요계21:0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예수 그리스도를 생명의 구주로 영접하심으로 새하늘과 새땅을 영접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올립니다.
D.L. 무디는 그러므로 임종시에 이렇게 유언을 남겼습니다.
“세상은 물러가고 내 앞에 하늘이 열리고 있다. 하나님게서 나를 부르고 있다. 나는 이제 가야만 한다”
불신자들의 몸부림치며 남긴 유언과 얼마나 다릅니까?
성도들은 죽음을 통해 새하늘과 새땅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소중한 분들을 만나게 됩니다.
우리를 그렇게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내어 주신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돌로 치라 말씀하셨던 사랑의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우리보다 앞서 천국으로 떠난 그 좋은 분들을 만나게 됩니다.
“저 요단강 건너편에 화려하게 뵈는 집
예루살렘 새집에서 주의 얼굴 뵈오리
빛난 하늘 그집에서 주의 얼굴 뵈오리
한량없는 영광 중에 주의 얼굴 뵈오리“
죽음이란 불신자들에게 있어 끝장나는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 신자들에게는 생명의 시작입니다.
죽음이란 불신자들에게 있어 비극적인 이별입니다. 그러나 우리 신자들에게는하나님과의 새로운 만남입니다.
죽음이란 불신자들에게 있어 영원히 떠나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신자들에게는 새로운 천국에 도착하는 것입니다. 저주가 완전히 소멸되고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가 온전히 회복된 새로운 세계입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그 백성들과 함께 지내시는 것입니다.
신랑되신 주님과의 신혼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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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23편} --------------- 노하덕목사
1.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2..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3.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5.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6.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미국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는 이런 작품을우리에게 남기고 있습니다
숲은 아름답고 어둠은 깊다
하지만 내게 지켜야할 약속이 있어
잠들기 전에 몇 마일을 걸어야 한다
하지만 아직도 내게는 지킬 약속이 있다(But I have promise to keep}
성도의 죽음은 혼자 가는 것이 아니라 주님과 함께 가는 것입니다.
목자이신 주님은 죽었다고 해서 혼자 두시지 않습니다.
요14:2에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하셨습니다. 외롭게 혼자 버려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주님이 환영단을 이끌고 데리러 오십니다. 이것이 불신자와 크게 다른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어떠한 정황 가운데서도 언제나 선한 목자가 되어 주신다. 그는 항상 우리를 푸른 목장. 잔잔한 시냈가로 인도하신다.
1, 사망의 음침한 곯짜기에서 보호하신다.
이 성도는 한 평생을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를 받으면서 살아왔다. 오늘까지 인도해 주신 그 하나님께서는 이제 사망의 음침한 골각기에서도 능히 인도해 주실 것이다. 여기 참석한 우리 모두도 잔잔한 물가, 푸른 초장으로 인도해 주실 것이다. 주님의 강한 능력의 팔은 어떠한 원수 마귀외 권세도 물리칠 수 있으시기 때문이다.
2, 여호와의 집으로 인도하신다.
우리의 영원한 인도자가 되신 하나님께서는 성도의 영혼을 소생시키실 뿐만 아니라 그를 하나님의 영원한 집으로 인도하신다. 그의 인도와 보호는 잠시 잠깐 동안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스런 나라에 오를 때까지 안전하게 보호하시고 인도하신다.
3, 영원히 거하게 하신다.
이 땅에 사는 나그네는 잠시 잠깐 거하다가 거처를 다른 곳으로 옮겨야만 한다. 돈이 많아 좋은 집을 소유했다 해도 그 집은 나의 영원한 소유가 될 수 없다. 쉽게 말해 그것은 임대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예비해 놓으신 집은 영원히 거할 수 있는 집이다.
하나님은 성도를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시고, 한 천국을 기업으로 주셨다.
외롭게 혼자 버려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주님이 환영단을 이끌고 데리러 오십니다. 이것이 불신자와 크게 다른 것입니다.
이 날은 천국의 빵빠레가 울리고 우리를 환영하기 위해 수많은 천사들과 성도들이 주님과 함께 영접하러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후5:8에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는 그것이라” 했고, 또 빌1:23에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욕망을 가진 이것이 더욱 좋”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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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14:13-
[들어가는 말]
15절]
성도의 죽는 것을 여호와께서 귀중히 보시는도다
성도의 죽는 것을 여호와께서 왜 귀중히 보실까요?
1. 내 영혼을 건지시기 때문입니다.
3. 사망의 줄이 나를 두르고 음부의 고통이 내게 미치므로 내가 환난과 슬픔을 만났을 때에
4. 내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기도하기를 여호와여 주께 구하오니 내 영혼을 건지소서 하였도다
2. 우리 성도의 영혼을 사망에서 구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성도의 죽음은 그의 영혼이 평안함에 돌아가는 날입니다.
[7-8절]
7. 내 영혼아 네 평안함에 돌아갈지어다 여호와께서 너를 후대하심이로다
8. 주께서 내 영혼을 사망에서, 내 눈을 눈물에서, 내 발을 넘어짐에서 건지셨나이다
3. 사망의 결박을 푸시는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16. 여호와여 나는 진실로 주의 종이요 주의 여종의 아들 곧 주의 종이라 주께서 나의 결박을 푸셨나이다
17. 내가 주께 감사제를 드리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리이다
1. 여호와께서 내 음성과 내 간구를 들으시므로 내가 저를 사랑하는도다
2. 그 귀를 내게 기울이셨으므로 내가 평생에 기도하리로다
3. 사망의 줄이 나를 두르고 음부의 고통이 내게 미치므로 내가 환난과 슬픔을 만났을 때에
4. 내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기도하기를 여호와여 주께 구하오니 내 영혼을 건지소서 하였도다
5.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며 의로우시며 우리 하나님은 자비하시도다
6. 여호와께서는 어리석은 자를 보존하시나니 내가 낮게 될 때에 나를 구원하셨도다
7. 내 영혼아 네 평안함에 돌아갈지어다 여호와께서 너를 후대하심이로다
8. 주께서 내 영혼을 사망에서, 내 눈을 눈물에서, 내 발을 넘어짐에서 건지셨나이다
9. 내가 생존 세계에서 여호와 앞에 행하리로다
10. 내가 믿는고로 말하리라 내가 큰 곤란을 당하였도다
11. 내가 경겁 중에 이르기를 모든 사람은 거짓말장이라 하였도다
12.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
13. 내가 구원의 잔을 들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14. 여호와의 모든 백성 앞에서 나의 서원을 여호와께 갚으리로다
15. 성도의 죽는 것을 여호와께서 귀중히 보시는도다
16. 여호와여 나는 진실로 주의 종이요 주의 여종의 아들 곧 주의 종이라 주께서 나의 결박을 푸셨나이다
17. 내가 주께 감사제를 드리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리이다
18. 내가 여호와의 모든 백성 앞에서 나의 서원을 여호와께 갚을찌라
19. 예루살렘아, 네 가운데서, 여호와의 전 정에서 내가 갚으리로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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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14:13-
[들어가는 말]
15절]
성도의 죽는 것을 여호와께서 귀중히 보시는도다
성도의 죽는 것을 여호와께서 왜 귀중히 보실까요?
1. 내 영혼을 건지시기 때문입니다.
3. 사망의 줄이 나를 두르고 음부의 고통이 내게 미치므로 내가 환난과 슬픔을 만났을 때에
4. 내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기도하기를 여호와여 주께 구하오니 내 영혼을 건지소서 하였도다
삼상20:3 - 나와 사망의 사이는 한 걸음뿐이니라.
다윗은 자신의 생명이 죽음의 경계선에 접근하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저희는 잠깐 자는 것 같으며 아침에 돋는 풀 같으니 이다 풀은 아침에 꽃이 피어 자라나다 저녁에는 벤 바 되어 마르나이다.
연한 풀잎, 새싹, 활짝 핀 꽃 부는 바람 언제나 날아다니는 그림자는 인생이 짧고 불확실하다는 점과 죽음의 확실성에 대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바가 많습니다. 우리 인간의 육체적인 기관들도 우리에게 동일한 진리를 말해 줍니다. 심장의 고동도 메시지들이며 혈액의 맥박도 죽음에 대해 알려주며 조용한 숨소리도 생명의 마지막을 예고해 줍니다.
향기로운 공기는 파괴적인 태풍으로 돌변합니다.
시원한 빗방울과 은빛 실개천은 무서운 홍수를 일으키기도 하며
따뜻하고 안락하게 하는 불은 잔인한 화염으로 일변하기도 합니다.
말씀, 우리의 육체적인 기관 그리고 우리의 환경은 우리에게 나와 죽음 사이는 한 걸음 뿐이니이다.
육체적인 죽음, 영혼이 하나님에게서 분리되는 즉 영원한 죽음, 구제 불능의 악인의 상태입니다.
죽음은 멸절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자연은 물질의 없어짐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어떤 물질이 다른 물질로 변형된다는 것은 멸절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말씀과 이성은 영혼의 동질적인 존재로서 영혼과 의식의 불멸 성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인간의 기관이 기능을 수행하지 못할 때 생명이라 불리는 현상의 종식을 불러일으키며 그 결과 일어나는 상태를 죽음이라 부릅니다.
그것은 보다 평이하고 정확하게 말하자면 죽음이란 육체가 삶을 종식시킬 때 그 육체로부터 영혼이 떠나는 상태입니다. 영혼은 육체를 세내어 잠시 거주합니다.
2. 우리 성도의 영혼을 사망에서 구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성도의 죽음은 그의 영혼이 평안함에 돌아가는 날입니다.
하나님은 사망을 멸하시는 분이십니다.
봄이면 세상을 생명으로 충만케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인간의 죽음 위에 승리를 쟁취하신 그분을 바라보게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부활로 말미암은 최초의 승리를 주시합니다.
유대 산헤드린 공의회는 로마 권력과 결탁하여 그리스도를 죽이고
무덤에 넣고 굳게 지키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일어났습니다.
사망을 부수어 열어 놓았으며
죄인들로 새롭고 영광된 승리의 세계로 나아가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인간에게서 사망의 공포를 몰아내신 그분의 다음의 승리를 주시해야 합니다.
위대하신 정복자 예수님은 지금도 이일들을 계속해서 행하시며 앞으로도 세상 종말 때까지 계속하실 것입니다.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7-8절]
7. 내 영혼아 네 평안함에 돌아갈지어다 여호와께서 너를 후대하심이로다 8. 주께서 내 영혼을 사망에서, 내 눈을 눈물에서, 내 발을 넘어짐에서 건지셨나이다
3. 사망의 결박을 푸시는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전개될 장래는 우리가 육체 가운데 살았던 생활에 좌우됩니다.
죄의 생활은 죽음 이후 즐거움의 근원에서 끊어지게 하고 영혼을 형용할 수 없는 상태에 빠지게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사는 삶,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는 거룩한 삶, 그러한 삶은 하나님의 영원한 왕국 가장자리에서 안식을 누리게 하는 삶이며 영광 세계의 밝은 빛 아래 사는 삶입니다. 그것은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을 위한 삶이며 죽음은 영원한 생명의 날에 이르는 출입구에 불과한 것입니다.
죽음의 사자가 평온한 가정에 일격을 가한 날 아침, 태양은 밝은 빛을 잃었었습니다. 그러나 떠나 보내고 하염없이 슬퍼하던 밤은 영광스런 영생의 햇빛을 받게 되는 확신과 소망을 갖는 자리에 서게됩니다.
믿는 자에게 죽음은 하나의 그림자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죽음은 우리를 해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만일 그리스도의 소유라면 죽음은 두려울 수 없습니다.
그분은 권세로써 원수들을 정복하셨으며 사망을 정복하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우리에게 평안과 위로를 주시는 주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가장 위대한 문제는 하나님을 찾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파괴자 아니라 창조주이시며, 무덤을 만드는 자가 아니라 생명을 주는 자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우리는 모든 축복이 풍부한 물줄기를 타고 흘러 내려오는 근원을 발견케 될 것입니다.
그는 우리를 보존하시는 자이십니다.
먹고 입을 것을 공급해 주십니다.
그가 우리를 위하여 아낌없이 내려 주시는 모든 선하심에 대해 잠시 동안만이라도 생각 해보십시오.
그리스도는 우리의 구세주이십니다.
죽음으로 인해 우리는 더욱 십자가로 나아가게 됩니다.
우리의 세상 죄, 허물, 과오로 인하여 자원하여 나무에 달리신 성자 하나님은 우리에게 꿈이나 사색적 이론의 대상이 아니라 새로운 생명을 일으키는 축복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인생의 짧고 불혹 실성, 개개인의 책임, 우리의 곤궁함 등은 우리로 예수님을 의지하게 합니다.
우리는 저 천국의 문을 통과하기 위해 노크할 때 그의 자비하심에 의지합니다.
여기 모인 모든 분들은 여러분들이 가는 길과 인생 행로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과연 나는 흑암의 캄캄한 곳으로 내려가고 있지 않은가 한번 자문자답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를 찾으라. 아모스가 하나님을 철저히 찾으라고 권면 하는 그 외에 어떤 다른 것이 없다고 믿습니다.
그는 진실히 찾는 자에게 만나 주실 것입니다.
믿음대로 살기를 다짐하는 우리의 가정에도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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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슬퍼하지 않는 까닭
살전 4 : 13-18
13. ○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14. 우리가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그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15.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께서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 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코 앞서지 못하리라
16.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17.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18. 그러므로 이러한 말로 서로 위로하라
[들어가는 말]
13. ○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1. 죽음은 쉼표를 찍는 것입니다.
죽음을 자는 것에 비유하였습니다.
임종은 마침표가 아닙니다.
죽음은 쉼표입니다.
우리가 마냥 일에 매달려 살 수 없습니다.
한 순간 쉬임은 이어오는 삶을 생동감 있게 하고 큰 힘을 줍니다.
따라서 쉼표는 우리 인생이란 문장에서 매우 중요한 순간입니다.
좋은 글을 쓰는 사람들은 쉼표를 잘 찍어요.
쉼표 찍는 것을 인하여 낙심할 필요는 없습니다.
쉬임을 바라고 눈을 붙이는 사람이 조용히 쉬임에 들어가는 것처럼 우리는 쉼표를 두려워해서는 안됩니다.
쉼표는 그 다음 이어질 내용으로 인하여 소망이 있습니다.
2. 주님과 함께 사는 삶의 시작입니다.
[14절]
우리가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그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인생이 사실은 고독합니다.
영적으로 보면, 홀로 사는 것이 인생입니다.
주님과 함께 산다고 하지만, 에녹같은 용장의 이야기지 사실은 고독합니다.
아브라함의 품에 안겨 있는 나사로를 생각해 보십시오.
믿음 없는 사람은 죽음에 대한 공포증에서 도저히 헤어날 수 없어 낙심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또한 그 죽음을 모면하기 위하여 얼굴을 찡그리고 악을 쓰면서 고통스런 표정을 짓는 것이 옳습니다.
하지만. 믿는 우리는 복된 생애를 다 청산하고 천국에 간다는 확신으로 오히려 그것을 감사하여야 합니다. 주님의 영접을 받는 가장 위대한 순간이다.
3. 새 생활의 출발.
16절]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믿는 자의 임종은 임종 그 자체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세계로 도약하는 위대한 삶의 새로운 전기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죽음은 약속된 하나님 나라 입성이므로 엄숙하고 확신 있게 맞이해야 한다.
그러므로 성도는 항상 천국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임종 때 부를 찬송과 기도로 언제나 연습하고 준비해 두어야 한다.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과 연합하여 다시 살 뿐만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삽니다.
나를 옭아매고 있는
사망의 줄과 환난과 힘듦
그리고 책임감과 무거운 죄짐들
이 모든 고통과 묶임에서
참된 자유를 주시고
쉼을 주실 분은 주님 밖에 없습니다.
사랑의 주님!
짧게 사는 이 세상살이에서
수많은 줄들이 저를 옭아매고 있습니다.
경제적인 문제
자녀 양육의 문제
건강의 문제
죄의 문제
맡은 일에 대한 책임감...
모든 것들이 저를 결박하여
자유와 평화를 빼앗아 가려고 합니다.
저의 모든 결박들을 풀어 주옵소서!
주님으로 인해 참 자유와
참 평화를 얻고 누리게 하옵소서!
저의 기도를 들으실 줄 믿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4. 주님과 항상 함께 있게 됩니다.
[17절]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마무리하는 말]
18절]
그러므로 이러한 말로 서로 위로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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