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3 April 2015

(성 탄) 이사야9:1-7 여호와의 열심, 성육신!

  [들어가는 말]

    2천 7백년 이사야 선자자가 살던 시대에도
2천년 전 주님께서 오신 그 시대에도
지금 우리들이 살고 있는 시대에도
변함없이 드리운
그늘이 있습니다.
멸시가 있습니다.
고통이 있습니다.
흑암이 있습니다.
사망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런 인간들을 구원하시기 원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열심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며 보이신 열심은 무엇입니까?
로마나 유다의 정치개혁을 위함이 아닙니다.
위기를 치닫고 있던 유대경제 회복을 위함도 아닙니다.
새로운 문화창달을 위함은 더욱 아닙니다.

"저희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함입니다.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특사로 보내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 구원의 열심이 감사하여 성탄절이란 절기를 기념하고 예배를 올려드립니다.

    "기쁘다 구주 오셨네. 만백성 맞으라!"

우리가 생일에 'Happy birthday to you!' 축하드리는 마음에 감사를 더하여 예배와 찬양을 올려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우리를 찾아오셨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 위해  행하신 여호와의 열심은 무엇입니까?


    1. 참 빛이 되어 주셨습니다.

    [사9:2]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하던 자에게 빛이 비취도다

    오늘 아침엔 새벽기도를 마치고 몇 분과 함께 온타리오 호수로 나갔습니다.
해돋이를 보기 위해서입니다.
아침 8시 경에 해가 떠오릅니다.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무수한 빛이 구름 사이로 내리 비추는 모습은 그야말로 환상적입니다.
이 빛이 어두움에 잠겼던 세상에 비추기 시작하면서 온 세상이 화안해집니다.

    1] 하나님의 열심이 닿기 [전] 우리는 [흑암]이었습니다.[무의미]

    [사9:1]

    전에 [고통]하던 자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으로 멸시를 당케 하셨더니 [후]에는 해변 길과 요단 저편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창1:2-4] 말씀처럼 우리는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었습니다.

    2] 여호와의 열심이 우리에게 닿았을 때[후], 우리에겐 빛이 비추었습니다.[의미]

    [사9:2]

    1b [후]에는 해변 길과 요단 저편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2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하던 자에게 [빛]이 비취도다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에 빛이 없어서 깜깜하였을 때, 하나님께서 빛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습니다.
갈릴리 땅에 흑암이 가득하여 고통당하고 있었을 때 하나님의 열심이 참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습니다.

    [요1:9]

    참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

     독생자를 세상의 빛으로 보내신 것입니다.


    3] 여호와의 열심은 이 빛을 영접한 자를 열매 있게 하셨습니다.

    [이사야9:3]

    주께서 이 나라를 창성케 하시며 그 [즐거움]을 더하게 하셨으므로 추수하는 즐거움과 [탈취물]을 나누는 때의 즐거움 같이 그들이 주의 앞에서 즐거워하오니

    [요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예]

    - 수가성 여인

    - 삭개오

    빛을 받은 과일이 맛있는 것처럼, 참 빛을 받은 결과,
맛없는 인생이 맛있는 인생으로 변화하였습니다.



    2. 한 아기[성육신]로 찾아 오셨습니다.

    [사1:6]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것임이라

    성탄절은 하나님의 열심이 성육신하신 날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우리 인류의 역사 속으로 보내신 중대하고 뜻깊은 날입니다.
하나님께서 인류의 역사 속으로 찾아오셨습니다.

    1]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 인류의 역사 속으로 들어 오셨을 때 , 한 ‘아기’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당시 아기는 사람 수에 계수하지도 않던 시대]

    천사의 모습으로 오실 수 있는데, 한 ‘아기’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그것도 빈 방 하나 없어서 말구유에 뉘이셨습니다.]

    동방박사들은 아기로 오신 아기 예수님을 이렇게 만나뵈었습니다.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 모친 마리아의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마 2:11).

    2] ‘아기’는 사랑스런 존재입니다.

    예수님께서 로마 황제나 힘 쎈 어른이나 천사의 모습으로 오시지 않고 한 ‘아기’로 오신 이유는 범죄한 우리 인간들에게 무서운 존재가 아닌 친근하고 사랑스런 분이시기를 원하셨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3] 아기는 약한 존재로 오셨습니다.

    연약 한 한 '아기’의 모습으로 오셨기에 늘 연약한 우리에게는 얼마나 친근감이 있고, 고맙고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동병상린이란 말이 있지 않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가난한’ 천민들이 모여 사는 갈릴리 나사렛 마을에서 사셨습니다. 그곳에서 예수님께서는 '가난하게’ ‘약하게’ 사시다가 '가난하고' ‘약한’ 모습으로 죽으셨습니다.
    아기처럼 연약하게 찾아오신 예수님은 아기처럼 연약한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연약하지만, 이런 성탄의 정신을 가지고 누구에게나 친근하게 그리고 따뜻하게 찾아갈 수 있는 까닭은 아기로 우리를 찾아 오신 예수님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4] 그러나 아기 예수님은 우리에게 가장 보배로운 선물입니다.
   
   첫 번 크리스마스에 구유 위에 누이신 아기 예수님은 너무나 초라해 보이는 하나님의 선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속에 보화가 담겨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담겨있었고, 인류의 미래가 담겨 있었습니다.
영생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은 이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선물입니다.
우리가 나눠야 할 가장 소중한 선물입니다




    3. 하나님께서는 한 아기를 평화의 [왕]으로 삼으셨습니다.


    1] 당시의 정치적 상황은 열악했습니다.

불완전한 인간이 신적인 권력을 행사하던 때였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로마 제국이나 그 통치하에 있던 팔레스타인 총독과 같은 위정자들의 권력자들은 인간의 목숨을 가볍게 생각하는 무법한 자들이었습니다.
   이사야와 같은 하나님의 선지자나 세례 요한과 같은 선지자가 참수를 당하는 통탄할 만한 세상이었습니다.

    오늘 날도 정치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너무 두렵고 무서운지 모릅니다.
어디 정치가들뿐이겠습니까?
경제인들의 모습이 너무 탐욕스러워서 무섭고 우리 기독교인들의 모습마저 상당히 두렵고 무서운 존재가 되어갑니다.


    2]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구원할 평강의 왕으로 삼으셨습니다.

    [사9:6b]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것임이라

    왕 중 왕이신 예수님께서는 정사를 어깨에 메셨습니다.
기묘하신 분이셨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셨습니다.
영존하신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통치 방법은 평화였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왕으로 임하실 때에 로마 황제와 같은 모습이 아닌 종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빌 2:6-7) 가지고 찾아오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왕직을 섬기시는 왕으로 그 왕직을 수행하시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가신 곳에는 평강이 넘쳤습니다.
    빌라도의 잔인한 진압의 피가 갈릴리 주변에 강을 이루고 있었고,
    그 식민정권의 하수인 헤롯왕은 2세 미만의 아기를 다 죽이고, 무죄한 선지자 요한의 목을 법없이 베는 만행이 대낮에 자행되고 있었지만 예수님께서 가시는 곳에는 평화가 넘쳤습니다.

    3] 예수님을 왕으로 모신 성도 안에 왕의 통치가 이루어집니다.

    [기묘자이신 왕 예수님을 모신 심령에 기묘한 일을 이루십니다.
    [전능하신 왕 예수님을 모신 심령에 전능한 일을 이루십니다.]
    [평화의 왕 예수님을 모신 심령에 평화가 이루어집니다.]
    [영존하신 왕 예수님을 모신 심령에 영생의 일을 이루십니다.]
   

    [마무리하는 말]

    참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영접하셨습니까?
이 어두운 세상의 빛으로 나타납시다.
    아기처럼 연약하게 찾아오신 예수님을 영접하셨습니까? 아기처럼 연약한 이웃을 영접하십시다.
    평화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을 영접하셨습니까? 평화를 이루는 그 백성으로 세상에 나타납시다.

    [사9:7]

    7.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위에 앉아서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자금 이후 영원토록 공평과 정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여호와의 열심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빛과 사랑과 평화를 이 땅에 이루신 것처럼, 여호와의 열심이 믿는 우리 안에서도 이 세상의 작은 빛과 사랑과 평화를 이 땅에 이루실 것입니다.





  [설교 본문]

  1.  전에 고통하던 자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으로 멸시를 당케 하셨더니 후에는 해변 길과 요단 저편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2.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하던 자에게 빛이 비취도다
  3. 주께서 이 나라를 창성케 하시며 그 즐거움을 더하게 하셨으므로 추수하는 즐거움과 탈취물을 나누는 때의 즐거움 같이 그들이 주의 앞에서 즐거워하오니
  4. 이는 그들의 무겁게 멘 멍에와 그 어깨의 채찍과 그 압제자의 막대기를 꺾으시되 미디안의 날과 같이 하셨음이니이다
  5. 어지러이 싸우는 군인의 갑옷과 피묻은 복장이 불에 섶 같이 살라지리니
  6.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것임이라
  7.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위에 앉아서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자금 이후 영원토록 공평과 정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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