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28 April 2015

아직도 멍멍한 유혹의 펀치 / 노하덕칼럼


           나는 70년대 초 국어국문학을 공부했기 때문에 1920-1950년대의 창작 시집과 소설집 같은 책을 많이 모았었다. 한글로 창작 활동을 한 국문학의 역사는 길지 않기 때문에, 당시 나는 상당히 의미 있는 책을 많이 모을 수 있었다.
              어떤 시집은 100부 한정판 이렇게 찍는다. 유명한 시집들은 시간이 갈수록 희귀본이 되고, 값은 천정부지로 오른다. 예를 들어 서정주의 '화사집' 같은 경우는 천만 원을 호가하고 있다
           주님께서 나를 부르셨을 때, 책을 모으는 일을 접었다. 고국을 떠나 유학길에 오르는 그날, 나는 그 동안 모은 수십 박스의 국문학 고서를 누님께 맡기고 한국을 떠났다. 그리고 17년이 지났다. 나는 아직도 문학을 상당히 좋아하기 때문에 언젠가 그 책과 함께 있을 그 날을 생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책은 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윤길수란 친구는 내가 그분야를 떠나 있는 동안에도 계속 그런 국문학 책을 모아서 만 여권의 장서를 구비했다. 그의 초청을 받아 그의 장서를 돌아보고 난 후, 그는 내가 모았던 책의 행방에 대해서 관심을 표시했다. 지난 날 제가 그와 더불어 그 작업에 취미가 있었던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꼭 무값인 그런 시집이 아니더라고 웬만한 책들은 2-30만원씩 주어야 살수 있다는 말과 함께.

    집에 돌아온 저는 매형에게 그 책의 행방에 대해서 여쭈었다.
    매형은 간단히 대답했다.
    "아, 그 책들 다 버렸구만."
         
    누님이 하나님 나라로 가시기 3개월 전에  아파트 관리인이 지하에 쌓아 둔 책 박스들을 치워달라고 했단다. 누님이 암으로 사경을 헤매고 있어 경황이 없던 중이라 그 책에 대한 깊은 생각까지 할 겨를이 없으셨던 매형은 명확한 입장을 세우지 못하셨던 것 같다. 그 책들은 모두 버려지고 말았다. 고 서점에 내놓았으면 많은 돈을 받을 수도 있었겠고, 도서관에 기증을 했으면 이름을 남겼을 만한 좋은 책들이었고, 휘귀한 어떤 시집은 나만 가지고 있을 것으로 확신이 되는 책도 있었는데 말이다.
         
  나는 그 소식을 들으면서 쓰라림 같은 것을 느꼈다. 그 책을 사기 위해 청계천과 인사동을 헤맸던 수많은 밤이 스쳐갔다. 어떤 책은 그것을  사기 위해 버스값을 아끼려고 수유리에서 명륜동까지 며칠을 걸어다녀야 했고, 라면으로 한 달을 때우던 때가 생각이 났다.
           누님을 먼저 보내고 슬픈 매형에게 쓰라린 마음을 토할 수도 없고 해서 혼자 화를 새기느라고 상당히 마음 고생을 했다.
           이 일을 겪으면서 내가 아직도 세상 재물을 사랑하는 마음이 상당히 강하구나 생각했다.

           재리의 유혹은 이렇게도 강하다는 생각을 했다. 하마터면 영적 요소들을 막아버림으로 질식할 뻔 했다. 내가 이렇게 재리의 유혹에 노출되어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나는 신앙이 자랐다고 상당히 뿌듯하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말이다. 재리의 유혹은 내 신앙보다 더 빨리 자랐었나 보다. 가시떨기가 농부가 뿌린 씨앗보다 더 빨지 자란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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