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6 May 2015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 / 노하덕칼럼


예수님이 생각나는 소중한 아빠,
사랑해요. 주 안에서

건강하게 오래오래 제 마음 속에 있어 주세요.
저에게는 이미 잊혀질 수 없는 커다란 의미가 되었어요.
감사드려요.

자녀에게 그 아빠가  받아들여진다는 것은 기쁨입니다.
삶을 넉넉하게 하는 축복입니다.


저의 집, 장남 노위로 군이 ETOBICOKE SCHOOL OF THE ARTS에 받아들여졌습니다.
세상 사람들에게는 너무도 흔한 일이지만, 노위로에게는 엄청 큰 기쁨인가봐요. 여러모로 자신이 생각해 보아도 받아들여질 만한 무엇이 별로 없던 터라 더 기쁜 모양입니다.

'I'VE GOT IN!'

환호하며 온 방안을 돌고 돕니다.
받아들여진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기쁨입니다.


          세례 요한의 목을 베어버린 헤롯을 아시지요?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여러 차례 좋은 기회를 받았습니다.
일국을 받았습니다.
그 국가를 다스릴 왕권을 받았습니다.
그는 세례 요한과 같은 귀한 선지자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 선지자로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세례 요한을 의롭고 거룩한 선지자로 인정하였습니다.
그분의 말이 옳은 줄을 알아 그 말을 달게 들었습니다.
그 말씀에 부합치 않은 자신을 보며 크게 번민하였습니다.
그의 일로 심히 근심하였습니다.
그러나 결국, 그는 세례 요한의 목을 잘라버렸습니다.
빌라도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것처럼.
받아들일 수 있었는데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를 잘라버렸습니다.
구원에 이르는 회개를 이룰 수 있었는데, 세상 근심만 하다가 그 놀라운 기회를 날려버렸습니다. 그 질긴 욕심 때문에.
쥐꼬리만한 자기 의에 사로잡혀 탕자를 배척하던 그 형님처럼,
그 귀한 사람을 잘라버렸습니다.
속되고 깨끗치 아니한 물건을 먹지 않았다는 베드로처럼 하늘에서 내려온 선물에 마음이 열리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깨끗케 하신 것을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내가 죄인이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외아들을 주셨는데
내가 경건치 못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받아들이셨는데
연약한 걸 아시면서도 십자가에 죽으시기까지 나를 받아들이셨는데,
성령이 친히 우리가 하나님 자녀임을 증거하시는데,
그리고 처소를 예비하면 다시 오신다 약속하셨는데
나는 왜 그 놀라운 사랑을 받아들일 수 없는지……..    .

김춘수 시인의 ‘꽃’이란 작품이 생각납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나도 그에게로 가서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

마리아와 마르다가 예수님을 받아들였을 때, 죽은 나사로는 무덤에서 나오고, 예수님은 부활과 생명이 되셨습니다.
회당장 야이로가 예수님을 그 집안에 모셔들었을 때, 죽은 어린 딸이 일어났고, 온 집안의 향기로운 꽃이 되었습니다.
삭개오가 예수님을 받아들였을 때, 예수님은 그에게 하나님 나라가 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받아들임으로 어느날부터인가 사랑의 꽃, 희락의 꽃, 온유의 꽃, 감사의 꽃들이 내  화단에 피어나기 시작했던 것처럼
다가온 내 형제 자매를 받아들임으로, 그 형제자매가 내게 잊혀지지 않는 나의 꽃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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