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2 February 2020

고전1:10-17 건강한 교회 -2



 
 
 
[들어가는 말]
 
서머나교회는 4 년 후, 교회설립 20주년을 맞습니다.
교회설립을 전후해서 태어난 아이들이 자라서 입교 교인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20세 성년을 준비하는 시기를 맞고 있습니다.
 
우리 자녀들 세대에서도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교회,
이 시대에 필요한 건강한 교회로 세우는 것입니다.
 
어떻게?
 
우리는 지속적이고 본질적인 이 답변을 계속 우리 안에 찾아갈 수 있기를 원합니다.
 
 
 
 
1. 분쟁보다 마음과 뜻을 합하라.
 
[고전1:10-12]
 
10.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모두가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
11. 내 형제들아 글로에의 집 편으로 너희에 대한 말이 내게 들리니 곧 너희 가운데 분쟁이 있다는 것이라
12. 내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너희가 각각 이르되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한다는 것이니
 
 
'형제들아(avdelfoi,)'라는 호칭은 바울 서신에서 자주 사용되는 부드럽고 사랑이 가득 담긴 말입니다.
 
고린도 교회의 구체적인 문제는 분열입니다. 예수님이나 바나바, 바울, 베드로의 의도와는 전혀 상관없이 자신들이 멋대로 따다가 만들었던 것으로 고린도교회를 45열 시켰던 것입니다.
그들은 자기 입장을 세우기 위해 분열을 취하였습니다.
 
아볼로는 알렉산드리아 출신의 유대인학자로 학문이 많고 성경에 능한 분이었고 웅변적인 사람이었습니다.
 
[18:24-28]
24. 알렉산드리아에서 난 아볼로라 하는 유대인이 에베소에 이르니 이 사람은 언변이 좋고 성경에 능통한 자라
25. 그가 일찍이 주의 도를 배워 열심으로 예수에 관한 것을 자세히 말하며 가르치나 요한의 세례만 알 따름이라
26. 그가 회당에서 담대히 말하기 시작하거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듣고 데려다가 하나님의 도를 더 정확하게 풀어 이르더라
27. 아볼로가 아가야로 건너가고자 함으로 형제들이 그를 격려하며 제자들에게 편지를 써 영접하라 하였더니 그가 가매 은혜로 말미암아 믿은 자들에게 많은 유익을 주니
28. 이는 성경으로써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증언하여 공중 앞에서 힘있게 유대인의 말을 이김이러라
 
[3:13-14]
13. 율법교사 세나와 및 아볼로를 급히 먼저 보내어 그들로 부족함이 없게 하고
14. 또 우리 사람들도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하여 필요한 것을 준비하는 좋은 일에 힘 쓰기를 배우게 하라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라는 말씀이 있는 것으로 보아 그는 말씀을 교육하는 일에 은사가 있었던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아볼로는 그의 박식한 지식과 웅변술로 인해 제자 양육을 잘 하였을 것이라는 것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의 풍부한 학식으로 인해 고린도 교회지식층의 사람들 사이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고전3:16)란 말씀에서 보듯 협력자였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가 머리요 성도들은 그 머리에 붙은 지체들입니다. 그리고 모든 성도들이 한 몸, 그리스도의 몸을 이룹니다.
 
분열이나 파당은 비가 새는 집과 같이 천박하게 만듭니다.
건강한 교회는 서로 연약한 곳을 채워주는 관계를 유지해야 합니다.
 
그물을 수선하는 어부처럼 형제 신앙의 부족함을 채워주며 하나로 온전한 통일된 몸을 이루도록 힘쓸 일입니다.
 
어떻게요?
 
교회에서 분쟁을 없애려면 성도들 간에 합할 것이 있습니다.
 
1] 그 하나가 같은 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주님을 높이는 말입니다. 주님 말씀으로 위로하고 격려하는 말입니다. 이 같은 말로 하나가 되면 분쟁이나 파당이 생기지 않습니다.
 
2] 같은 마음을 품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이 품어야 할 마음은 그리스도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의 본체시지만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자리에 오신 예수님의 겸손한 마음입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낮추시되 종의 모습으로 세상에 오셨습니다.
성도들이 이 같은 겸손한 주님의 마음을 가진다면 무슨 일을 하든지 분쟁이 있을 수 없습니다.
 
3] 손발을 맞추어야 합니다.
 
자기가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다른 사람을 대접하는 마음, 다른 사람을 나보다 낫게 여기는 마음을 갖는다면 분쟁이 있을 수 없습니다.
 
안디옥교회는 같은 마음으로 바울과 바나바 두 사도를 안수로 기도케 한 후 선교사를 파송하였습니다.
 
 
건강한 교회는 같은 마음’, ‘같은 뜻’, ‘같은 말로 합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2. 사람보다 하나님께 속하라.
 
[고전1:12-13]
 
12. 내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너희가 각각 이르되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한다는 것이니
13. 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냐 바울이 너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혔으며 바울의 이름으로 너희가 세례를 받았느냐
 
바울에게 속한 자라는 교인들이 있었습니다.
바울에게 속했다고 하는 자들은 주로 바울이 전한 복음을 듣고 기독교 신앙으로 개종한 자들이었을 것입니다. 바울은 이방인의 사도였기 때문에 이방인 개종자들이 이 부류에 속했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하여튼 그들은 바울을 통해 은혜를 받은 때문에 다른 길이 있음을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바울의 사도적 권위에 절대적 신뢰를 보냈습니다.
 
베드로에게서 크리스천의 정체성을 찾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수제자였던 베드로와 접목되는 것이 신앙의 본질로 생각하였을 수 있습니다. 지금도 캐톨릭은 얘수님께서 베드로 위에 캐톨릭을 세우셨다는 주장을 붙들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신앙 지도를 받은 유대인 신자들이 그의 권위를 중심으로 모여 그룹을 이루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것은 베드로의 이름을 헬라식으로 부르지 않고 아람어인 게바로 부른 사실이 이런 추론을 뒷받침합니다.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는 교인들도 있었습니다. 이런저런 제자들에게 자신의 정체성을 의탁하지 않는 이들 중에, 그리스도에게만 속하였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매우 순수하고 고상하게 생각되지만,
복음이 베드로든 바울이든 아볼로든 사람을 통해서 전해지는 것을 인정할 때, 이 또한 치우진 생각임을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런 인간적인 사고를 그대로 가지고 신앙생활하는 자들에게 하나님 말씀은 전합니다.
 
[고전1:13a].
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냐 바울이 너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혔으며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구속사역을 이룰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아무도 그리스도의 자리에 설수 없음을 강하게 전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이미 나눠지셨고 지금도 회중 안에서 계속 나눠진 상태로 있느냐' 묻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나눠진다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다는 말씀입니다.
그가 누구든지 인간 지도자를 중심으로 신앙을 세우고, 분쟁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값을 무효화(無效化)시키며 그리스도만이 가지는 구주로서 권위를 무시하는 짓입니다.
 
스위스 제네바에서 종교개혁을 힘차게 추진하였던 장로교 창시자로 존경을 받고 있는 칼빈(Calvin)의 일생을 지배했던 중요한 삶의 좌우명은가 코람데오(Coram Deo)’였습니다.
'coram''앞에'라는 뜻이오, 'Deo''하나님'입니다.
교황 앞에서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선 신앙이 옳다는 확신이었습니다.
'In front of God.
before the face of God'입니다.
16세기 종교개혁자들은 당시 크리스천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이름을 높이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하나님의 권위아래 살며
하나님 안에 사는 삶의 방식을 압축해서 이렇게 전했습니다.
오직 하나님 앞에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한 뜻이 무엇인가를 알아 그것을 구하며(12;2) 사는 삶입니다.
 
Sola Scriptura 오직 성경
Sola Fide 오직 믿음
Sola Gratia 오직 은혜
Solus Christus 오직 그리스도
Soli Deo Gloria 오직 하나님께 영광
 
이런 개혁신앙의 중심 원리가 우리 중심에서 불타오를 때, 하나님의 몸된 교회와 그 지체된 성도들의 건강은 온전할 것입니다.
리이튼 포드라는 지금 미국에서 아주 유명한 목사가 있습니다. 그는 자기 생애에 잊을 수 없는 사건 하나를 "사귀는 전도, 나누는 전도"에서 공개를 합니다. 그가 서부 아프리카 다카 공항에서 비행기에 기름을 넣기 위하여 잠시
기다리는 동안 프랑스 출신 선교사가 찾아와 교제를 나누었답니다. 그 선교사가 자신은 모슬렘 지역에서 10 년 동안을 일했다고 자신을 소개하자,리이튼 포드 목사의 일행 중 한 사람이 그에게 묻기를 "그동안 얼마나 많은 회심자가 있었는가?"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사람이 "두 명"이라고 말했습니다. 십년 선교활동 중에 2 명이 구원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또 다시 일행중 한사람이 불쑥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였답니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곳에 있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때 그 프랑스 출신 선교사가 매우 놀란듯 다음과 같이 대답을 하였답니다. "
이곳에 왜 있느냐구요.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이곳에 두셨기 때문입니다. "
리이튼 포드 목사는 공항에서의 그 경험을 자신의 생애 속에 일어난 일 중에 잊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3. 세례보다 복음을 전합니다.
 
[고전1:17]
 
17. 그리스도께서 나를 보내심은 세례를 베풀게 하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복음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로되 말의 지혜로 하지 아니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고린도 교인들에게 세례를 베푸는 일은 중요합니다.
 
세례는 믿음으로 인친 성도에게 있어서는 구원받은 성도임을 증명하는 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당신은 회개하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었으므로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자입니다.
 
 
세례는 주님과 합하게 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64]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구원을 받을 믿음이 있는 사람에게 세례는 그리스도와 하나 된 표입니다.
 
(3:27)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2]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에 함께함압나더.
 
(2:12)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베드로전서 3:21]
 
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이는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간구니라
 
 
세례는 옛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장사지내고, 속사람이 그리스도그리스도 부활에 동참하는 구원의 표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히고,
내 안에서 그리스도가 함께 사는 존재의 출발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 되는 권세 얻은 자에게 있어, 세례는 그리스도와 하나로 함께함을 나타내는 표가 됩니다.
 
세례는 단지 의식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영적인 결합의 상태로 들어가서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에 참여함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이런 세례를 고린도 교인들이 받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리고 바울 사도가 고린도 교인들에게 세례를 더 많이 주는 일에 쓰임을 받을 수 있으면 그것은 감사한 일이지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바울 사도를 보내심은 세례를 주게 하심이 아니라 오직 복음을 전케 하려 하심이라고 합니다.
 
고린도 교회에서 이 복된 세례를 다툼에 악용하는 죄를 범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고전1:12]
12. 내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너희가 각각 이르되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한다는 것이니
 
바울사도께서 제한적으로 몇 사람들에게만 세례를 베푼 것을 '감사한' 것을 보면 고린도 교회에서는 분쟁을 위하여 서로 다투는 몇 사람들이 세례를 악용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들은 세례의 본래 의미를 잃고 세례를 단순히 분쟁의 도구로 사용했습니다.
 
바울 사도는 이런 악에 세례가 이용당하지 않도록 자신의 사명이 세례를 베푸는데 두지 않고, 세례 준비 단계인 복음을 전파하는 일에 전념하였습니다.
 
[고전1:14-15]
14. 나는 그리스보와 가이오 외에는 너희 중 아무에게도 내가 세례를 베풀지 아니한 것을 감사하노니
15. 이는 아무도 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말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아무도 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말하지 못하게 하려 세례를 베풀지 않는 것입니다.
대신 복음을 전한 것입니다.
 
교회가 다툼에 휘말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세례를 주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세례주도록 하고 자신은 복음을 전하는 자로 선 것입니다.
 
안타까운 것은 내가 세례를 많이 주지 못해서가 아닙니다.
세례까지 분쟁에 악용당하는 현실입니다.
 
[고전1:13]
 
13. 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냐 바울이 너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혔으며 바울의 이름으로 너희가 세례를 받았느냐
 
그는 복음을 전하는 일에 사역을 집중하였습니다.
 
복음이 무엇입니까?
 
김세윤 박사의 설명 일부를 참고로 소개합니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피조물들의 모든 문제들, 그 문제들로 현상화하는 근본 문제, 곧 죽음을 해결하는 창조주의 사랑의 나타남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죽음이 "복음," 좋은 소식 또는 기쁜 소식인 것입니다.
 
믿음은 근본적으로 복음, "그리스도가 우리 ()를 위해 죽고 부활했다"는 선포를 받아들이는 것인데 (이것을 축약하여 "그리스도를 믿음"/to believe in Christ이라고 함), 이 받아들임은 우리를 우리들의 대신이요 대표로 죄에 대해 죽고 신적 삶에로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연합시키고("그리스도와 함께"/with Christ) 그 안에 내포시켜("그리스도 안에"/in Christ), 하나님 앞에 그의 됨됨(what he is)이 우리의 됨됨이 되게 하고, 그가 하신 일(what he has done)이 우리가 한 일이 되게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죄에 대해 죽고 새로운 삶에로 부활하게 되는 것이며, 하나님의 아들 됨에 참여하여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복음은 세례를 받기를 원하는 사람이면 반드시 들어야 합니다.
 
이런 복음을 듣고 믿으면 구원을 받습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는 것이니, 복음을 들을 때 믿음이 생깁니다.
 
바울 사도는 이 복음 전하는 일을 전생애에 집중하였습니다.
 
[1:15-17]
15.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
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복음의 핵심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말의 지혜와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고린도 교회에 들어온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말의 지혜에 젖어온 사람들입니다. 고린도의 어떤 신자들은 인간의 지혜와 달변을 지나치게 높이 평가하였습니다. 그들은 전형적인 헬라인으로서 수사학과 철학 연구에 지나칠 정도로 몰두하였습니다.
 
그러나 바울 사도는 말의 지혜로 하지 않고 그리스도 십자가의 도()” 전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 함입니다.
 
 
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복음을 전하는 일에 먼저 나의 시간과 물질을 배정하는 지혜로운 성도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어떤 할머니가 도시에 살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베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도시에 부모가 없는 고아 소년이 신문팔이를 하고 있었는데 눈보라가 치는 거리를 걷다가 무척 굶주려 있었습니다.
 
그때 지나가는 경찰관을 붙들고 무얼 얻어먹고 몸을 녹일 수 있는 곳을 부탁했습니다. 그랬더니 경찰관은 유명한 예수 믿는 할머니 집을 소개하면서 그 집에 도착하여 초인종을 누르고 `누구냐`고 묻거든 `요한복음 316`이라고 대답해 보라고 했습니다.
 
그 소년은 가서 시키는 대로 초인종을 누르고 `요한복음 316` 하니까 문이 열립니다. 소년은 생각하기를 요한복음 316절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그것은`닫힌 문을 여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후 문이 열리고 할머니는 소년의 얼어붙은 몸을 보고서 따뜻한 난로가에 불을 쬐라고 말합니다. 몸을 다 녹인 다음에 고기 국물이 있는 좋은 식사를 제공받으면서 요한복음 316절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이것이 춥고 배고픈 것을 해결해 주는구나 라고 생각했습니다.
 
드디어 할머니는 성경을 들고 나오시더니 요한복음 316절을 읽으시면서 소년에게
이 귀절의 뜻을 아느냐고 물었습니다. 소년은 대답하기를 `잘 모르겠지만 그것은 사람들에게 닫힌 문을 열어 주고, 추운 사람을 따뜻하게 하고 더러운 사람을 깨끗케 하고, 피곤한 사람에게 안식을 주는 것`이라고 대답했습니다.
 
할머니는 `하나님의 사랑은 이 모든 것을 하신다. 그리고 그보다 중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래서 이 소년에게 하나님의 사랑의 복음이 전달되었다고 합니다.
 
 
[마무리하는 말]
 
애리조나의 피닉스에서 살고 있던 사람이 형기를 마치고 출감되어 나왔습니다. 이 사람은 자기가 형무소에서 나가는 날 에는 반드시 자기를 그곳에 보낸 사람을 찾아 쏘아 죽이기로 작정하고, 하루하루 출감되는 날만 기다렸습니다.
자유의 몸으로 풀려나오는 날 집에 가보니 어린 아들 둘만이 있었습니다. 두 아들을 바라보는 이 사람의 마음에는 이제 자기가 한 사람을 쏘아죽이면 아이들을 다시는 볼 수 없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자기는 불행한 운명으로 이러한 길을 가지만 자식들만은 잘 되기를 원해서 그날 저녁에 아이들과 함께 교회를 찾아갔습니다. 마침 톰프손 이라는 목사가 부흥집회를 인도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이 사람의 가슴을 파고들었습니다. 그는 어찌할 줄 모르는 상태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제 말씀을 끝낸 강사 목사는 그리스도를 모시고 새로운 인생으로 살 사람은 앞으로 나 와서 주님을 영접하라고 했다. 성령의 감동을 받은 이 사람은 복음말씀에 순종하여 두 아들의 손목을 양편에 잡은 채로 중앙 통로를 걸어서 강단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줄줄 흘리며 이 사람은 품에 품고 온 권총을 꺼내서 목사에게 내놓았습니다.
 
` 여러분, 나는 오늘밤에 한 사람을 쏘아 죽이려고 총을 품에 품고 나온 악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의 복음은 나를 새사람으로 오늘 이후로 나는 권총을 들고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들고 나를 감옥에 보냈던 사람을 계속 찾아다니겠습니다.
 
 
 
[고전1:10-17]
 
10.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모두가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
11. 내 형제들아 글로에의 집 편으로 너희에 대한 말이 내게 들리니 곧 너희 가운데 분쟁이 있다는 것이라
12. 내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너희가 각각 이르되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한다는 것이니
13. 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냐 바울이 너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혔으며 바울의 이름으로 너희가 세례를 받았느냐
14. 나는 그리스보와 가이오 외에는 너희 중 아무에게도 내가 세례를 베풀지 아니한 것을 감사하노니
15. 이는 아무도 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말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16. 내가 또한 스데바나 집 사람에게 세례를 베풀었고 그 외에는 다른 누구에게 세례를 베풀었는지 알지 못하노라
17. 그리스도께서 나를 보내심은 세례를 베풀게 하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복음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로되 말의 지혜로 하지 아니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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