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4 February 2020

고후4:6-11 예수 생명이 내 몸에 나타나게


 
[들어가는 말]
 
우리 신앙의 꼭지점은 어디입니까?
 
예수의 생명이 우리 몸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존 맥아더의 하나님의 뜻이라는 책에 보면 성령의 능력을 피지라는 조그만 알약으로 예화를 듭니다.
피지는 탄산음료를 만드는데 들어가는 작은 알약입니다. 그것이 맹물에 들어가면 거품을 내고, 톡 쏘는 맛을 일으키고, 물의 맛을 완전히 바꾸어 좋습니다. 한 알의 피지지만 그것은 물의 성질을 완전히 바꾸어 놓는 것입니다. 얼마나 강력한지, 음료수를 마시고 트름을 해보신분들은 다 아실거예요. 코끝이 찡하고 눈물이 나잖아요.
성령이 이와 같다고 말합니다.
 
성령의 사람은 작은 피지를 사랑으로 심을 수 있습니다.
 
죄로 죽은 우리 몸에 예수의 생명이 나타난다는 것! 그것은 맹물같은 세상에 피지를 넣은 것처럼 세상을 행복하게 바꾸는 일일 수 있지 않을까요?
 
 
 
1.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생명의 빛으로 찾아오셨습니다.
 
[고후4:6]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
 
1] 창조시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빛이 있으라 명하셨습니다.
 
[1:2-4]
2.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3.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4.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땅은 혼돈하고 흑암이 깊음 위에 있는 세상에 빛이 있으라 명하셨어요.
빛이 말씀을 따라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습니다.
 
2] 선지자를 통해 흑암의 땅에 찾아오실 예수님에 대하여 예언되었습니다.
 
[마태복음 4:13]
13. 나사렛을 떠나 스불론과 납달리 지경 해변에 있는 가버나움에 가서 사시니
14.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15.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과 요단 강 저편 해변 길과 이방의 갈릴리여
16.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치었도다 하였느니라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통해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메시야께서 약속하신대로 그 흑암의 땅 갈릴리에 찾아오셨습니다.
 
3] 세상에 와서 비추는 빛이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찾아오셨습니다.
 
[1:1-5]
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5.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1:9-10]
9.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10.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예수님께서 갈릴리에 찾아오심으로 이방의 갈릴리는 스블론과 납달리는 피지를 넣은 생수처럼 하나님의 빛으로 인하여 행복해질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게 된 것입니다.
 
우리를 찾아오셔서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이 참빛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바로 우리 몸에 예수의 생명이십니다.
 
갈릴리 땅 사람들에게 구원의 피지가 된 것입니다.
 
한국 여정에서 제가 하는 일 중 한 가지는 후원자들을 방문하여 그분들이 우리와 함께 사랑에 참여하기 위해 준비한 사랑을 어린이들에게 전해 주는 일입니다.
저는 나귀 역할을 하기로 마음을 정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떤 분이 아름다운 쿠키를 손으로 만들어 카페에 공급하는 일을 한다면서 그 쿠키를 만들어 원가에 전해주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 쿠키들은 너무 아름다워서 카페에서 커피 한 잔 값이라고 했습니다.
 
한 잔의 커피와 아름답고 멋있는 쿠키를 먹는 낭만을 한국 분들이 누린다는 것인데요. 그 쿠키를 보내주고 싶다는 것입니다.
엄청 비싼 것을 말입니다.
글씨는 다 없애고 예쁜 그림만 담아서 두 개씩 봉지에 담아 전했습니다.
야 이거 생전 처음 보는 것이다.
이 돈을 그냥 주지 왜 이렇게 비싼 것을 어린아이들에게 주나?
 
가방도 여러분이 보는 이 좋은 것들을 사서 주었습니다.
그곳에서는 아무나 사서 매고 다닐 수 없는 가방들입니다.
그러나 그 비싸고 아름다운 가방들을 아이들 수만큼 사서 차에 가득 싣고 가서 전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것을 받아들고 기뻐하는 선생님들의 해처럼 밝은 웃음을 보았습니다.
 
처음에 볼 수 없었던 웃음들입니다.
 
 
2. 이 보배를 나의 질그릇에 모실 때, 하나님의 능력을 소유합니다.
 
[고후4:7]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다시 한 번 확인하십시다.
 
우리가 가진 '보배'가 무엇입니까?
 
1] 참 보배는 하나님의 의로 오신 참빛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구원의 복음'이 온 인류의 보배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 보배는 추상이상이어야 하고
이념 이상이어야 합니다.
보배는 구체적인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이 보배를 어디에 가지고 살아갑니까?
 
"질그릇"입니다.
 
이 보배를 질그릇 같은 우리 몸에 담고 살아가야 하나님의 심히 큰 능력을 체험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중국을 방문하면서 선물을 생각할 때 tea를 살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티를 포장한 봉지가 너무 좋습니다.
포장하는 값이 내용물보다 더 좋겠다는 생각이 때로 스쳐갑니다.
 
어디 중국 차에 한정된 것입니까?
세상 물건들이 대부분 이 포장이나 디자인에 의해서 가치를 평가받습니다.
 
미국이나 일본에서 가장 비싸고 많이 팔리는 제품은 애플 아이폰이나 아이패드입니다. 그 이유가 여럿 있겠지만 그 중 한 가지가 디자인이 좋다는 말을 합니다.
 
특히 골드 색상을 입힌 애플 아이폰은 중국에서 없어서 못판다는 기사를 본적이 있습니다. 그릇을 잘 포장하였기 때문에 값비싸게 인정을 받는 것입니다.
 
세상에 이런 일이 많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 신문 기사를 보니까 놀라운 소식이 실려 있습니다.
 
삼성 스마트폰, 고객평가 첫 1위를 차지 했다는 기사가 나옵니다. 고객 만족도, 고객 기대 수준, 품질, 고객 인지 가치, 불만 접수율, 고객 충성도 등 6개 평가 항목 전 영역을 석권했다는 것입니다.
 
또 이런 기사도 있습니다. 컨슈머 리포트는 비영리단체인 미국 소비자협회가 1936년부터 발간해 온 잡지로 업체로부터 독립적으로 제품을 평가하기 때문에 소비자 신뢰도가 높습니다.
그 보고서에 삼성전자의 전략 스마트폰 갤럭시S5가 최고 권위의 소비자 잡지인 미국 컨슈머리포트에서 최고의 스마트폰으로 인정받았다는 기사를 읽었습니다.
갤럭시S5는 화질, 사용성, 메시징, 웹브라우징, 전화, 배터리 수명 등에서 모두 최고점인 '탁월(Excellent)'을 받았고, 카메라와 휴대성 평가에서도 우수한 점수를 받았다고 합니다.
출시한 지 1년이 지난 전작 갤럭시S47981점으로 갤럭시S5에 버금가는 평가를 받으며, 4대 이동통신사 모두 2위 자리에 올랐다는 기사입니다.
 
포장지를 보면 환경 친화적으로 만들었다고 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참 촌스런 나무 무늬 포장으로 둘러쌓여 있습니다.
질그릇 같아요.
그러나 그 속에 스마트폰 질이 뛰어나다고 평가를 받은 것입니다.
 
질그릇이 무엇입니까?
 
질그릇이란 바로 스마트폰 포장지와 같습니다.
 
 
성경에는 질그릇에 대한 비유가 종종 사용됩니다.
 
이사야64:8에서는 하나님과 그의 백성을 도공(토기장이)질그릇(진흙)에 비유하면서 스스로를 빚을 수 없는 질그릇의 한계와 빚으시는 하나님의 존귀함을 비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여, 이제 주는 우리 아버지시니이다 우리는 진흙이요 주는 토기장이시니 우리는 다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이니이다"
 
4:2에서는 질그릇의 깨어지기 쉬운 속성을 말씀하십니다.
 
딤후 2:20-21에는 금그릇이건, 은그릇이건, 나무그릇이건, 질그릇이건 간에 주인이 쓸 수 있도록 깨끗해야 한다는 점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이런 것들 가운데, 공통적인 것은 질그릇의 가치가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도 질그릇은 앞에서 언급된 '보배'와 대조되어 보배에 비하여 질그릇은 가치 없는 것으로 비유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비하여 사도 바울 자신과 성도들이 비교할 수 없는 무가치함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표현은 인간의 육체가 갖는 한계성과 연약성을 나타내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람의 육체를 부정하거나 인간의 인격을 무시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이것은 복음의 무한한 가치와 영원함에 비교된 인간의 무가치성을 표현한 것입니다. 이처럼 복음의 존귀함과 그것을 전파하는 사람의 비천함에 대한 대조는
(1) 복음의 능력이 오직 하나님께 있음을 깨닫게 합니다.
(2) 인간의 무가치함을 통해 하나님의 완전한 능력이 나타남을 보여줍니다.
(3) 인간의 교만과 자랑을 내려놓게 합니다.
 
 
내가 얼마나 가치 있는 그릇이냐가 나를 평가하는 기준이 아닙니다.
내 안에 계신 보배가 얼마나 가치있고 존귀한 분이신가에 따라 나의 평가 기준이 달라지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이 보배를 나의 질그릇에 모실 때, 나란 질그릇은 별로 가치가 없을 지라도 생명의 능력을 소유하고 있음으로 인하여 가치있는 존재로 드러납니다.
 
2] 예수님의 세 제자는 예수 그리스도 얼굴에 있는 영광의 빛을 보았습니다.
 
[9:2-3]
2.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그들 앞에서 변형되사
3. 그 옷이 광채가 나며 세상에서 빨래하는 자가 그렇게 희게 할 수 없을 만큼 매우 희어졌더라
 
저는 예수님의 그 얼굴에 있는 영광의 빛을 꿈에도 본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번 여정에서 시장을 방문하면서 명태를 파는 아주머니의 얼굴에서 기!쁨으로 빛나는 얼굴 빛을 볼 수 있었습니다.
 
시장에 갔는데요.
북한에서 나온 명태 열 마리를 샀습니다.
 
한국에서 중국까지만 온 이장로님이 북한에서 황태를 사오라는 부탁을 하였습니다.
그 황태를 사러 시장을 갔어요.
그런데 한 사람에게만 사니까 옆에 있는 사람에게 안되었어요.
그래서 제가 이 명태를 사준 것입니다.
제가 돌아 나오면서 그분들을 돌아보며 웃으니까 그 아주머니들이 다 같이 웃는 모습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고후4:10]를 함께 읽어요.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저의 어머나는 6남매를 키우면서 시장에서 장사를 하신 적이 있습니다.
저는 그분들에게서 제 어머니의 모습을 본 것처럼 기쁘더라구요.
 
우리가 방문하고 베푸는 작은 사랑은 탄산음료를 만드는데 들어가는 작은 피지입니다.
 
그러나 그 피지가 들어 있는 음료를 마시는 사람들은 큰 행복을 누립니다.
그리고 피지를 전해준 여러분들을 기억합니다.
 
 
3] 흑암 속에 살던 사람들이 참빛이신 예수님을 체험하였습니다.
 
수가성 여인에게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습니다.
삭개오에게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습니다.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힌 여인에게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습니다.
 
 
 
 
3.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지는 사람에게 예수의 생명이 나타납니다.
 
[고후4:10-11]
10.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11. 우리 살아 있는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이 말씀을 좀 이야기 식으로 풀어볼까요?
 
우리가 항상 (우리의 보석인) 예수의 죽음을 (우리) 몸에 짊어(지면)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됩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은 질그릇 같은 우리가 몸에 담아야 할 보배거든요.
보석이거든요.
 
어떤 분이 천국 만들기 9일이란 이야기를 보내왔습니다.
제가 부분적으로 좀 교정을 했습니다.
 
어느 날 한 부인이
가정생활을 비관하며 간절히 빌었습니다.
 
"주님! 빨리 천국에 가고 싶어요.
정말 힘들어요."
 
그때 주님이 나타나 말씀하셨습니다.
 
"살기 힘들지? 네 마음을 이해한다.
이제 소원을 들어줄 텐데
그 전에 몇 가지 내 말대로 해보겠니?"
 
그 부인이 "!" 하자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얘야! 집안이 지저분한 것 같은데
네가 죽은 후 마지막 정리를 잘 하고 갔다는
말을 듣도록 집안청소 좀 할래?"
 
그 후 며칠 동안 그녀는
열심히 집안 청소를 했습니다.
 
3일 후, 주님이 다시 와서 말했습니다.
 
"얘야! 애들이 맘에 걸리지?
네가 죽은 후 애들이
엄마가 우리를 정말 사랑했다고 느끼게
3일 동안 최대한 사랑을 주어볼래?"
 
그 후 3일 동안 그녀는 애들을
사랑으로 품어주고
정성스럽게 요리를 만들어주었습니다.
 
다시 3일 후 주님은 말했습니다.
 
"이제 갈 때가 됐다. 마지막 부탁 하나 하자!
너 남편 때문에 상처 많이 받고 미웠지?
그래도 장례식 때 '참 좋은 아내였는데...'
라는 말이 나오게 3일 동안
남편에게 최대한 친절하게 대해줘 봐라"
 
마음에 내키지 않았지만 천국에 빨리
가고 싶어 그녀는 3일 동안 최대한
남편에게 친절을 베풀어 었습니다 .
 
다시 3일 후 하나님께서 말했습니다
 
"이제 천국으로 가자!
그런데 그 전에 네 집을 한번 돌아보려무나!"
 
그래서 집을 돌아보니까 깨끗한 집에서
오랜만에 애들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고,
남편 얼굴에 흐뭇한 미소가 있었습니다 .
 
그 모습을 보니까 천국으로
떠나고 싶지 않았고 결혼 후 처음으로
"내 집이 천국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부인이 말했습니다.
"주님! 이 행복이 어디서 왔죠?"
 
주님이 말씀했습니다.
"지난 9일 동안 네가 만든 거야 ! "
 
그때 부인이 말했습니다.
"정말이요? 그러면 이제부터
여기서 천국을 만들어가며 살아볼래요!"
 
9일 동안 천국 만들기
이런 십자가는
우리들이
어디에서나
누구나 해볼만한 일입니다 .
 
희생의 길은 행복으로 가는 밝은 길입니다 .
희생의 짐을 지면 인생의 짐이 가벼워집니다.
 
나 너를 위해 모든 것을 걸 때
너 나를 위해 모든 것을 겁니다.
 
희생은 부담스럽지만
그 부담을 각오할 때
행복의 신비가 찾아옵니다 .
 
자기몰입의 신비주의자는
되지 말아야 하지만
희생의 신비를 아는 자는 되어야 합니다 .
 
살고자 하면 죽고 죽고자 하면 삽니다.
더 나아가 죽이고자 하면 죽고
살리고자 하면 삽니다 .
 
이 역설의 진리를 잘 소화하는
소화력이 있을 때 행복의 키가
부쩍 자라있음을 보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항상 (우리의 보석인) 예수의 죽음을 (우리) 몸에 짊어(지면)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됩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은 질그릇 같은 우리가 몸에 담아야 할 보배거든요.
보석이거든요.
 
그리스도인의 존재 양식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죽으심과 다시 부활하심에 의해 규정됩니다.
이는 고난을 통한 영광이고 죽음을 통한 생명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은 단순한 죽음 외에 '죽는 과정'을 함축하고 있습니다(Barrett).
이는 성도로서 신앙적 삶을 지켜나가고자 할 때 예수의 죽음과 같은 고난의 과정이 계속해서 반복된다는 의미를 내포합니다.
 
예수님처럼 십자가를 져야 그가 전하는 보석의 가치가 올라갈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과 같은 믿음의 선진들은 이것을 몸으로 체험했습니다.
이분들의 실존에는 이런 십자가의 흔적이 남아있습니다(6:5;고전 4:11)
 
[6:17]
이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
 
 
우리 성도들에게도 십자가의 고난을 감당할 때 예수의 생명이 나타납니다.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십자가의 고난을 기꺼이 감내하는 성도들에게 부활을 통한 궁극적인 구원이 주어질 것이라는 예시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성도들은 주를 위한 고난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합니다.
종말론적으로는 그리스도의 재림 때 부활함으로써 영원히 승리하게 됩니다.
 
[8:35-36]
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36.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1:24-25]
24.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25. 내가 교회의 일꾼 된 것은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직분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니라
 
 
이런 의미에서 그리스도인의 고난은 패배의 표징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생명을 소유하게 되는 승리의 표징입니다
 
[3:13]
그러므로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를 위한 나의 여러 환난에 대하여 낙심하지 말라 이는 너희의 영광이니라
 
스데반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이로 인해 그는 돌에 맞아 순교했습니다.
그러면 끝입니까?
예수의 생명이 그 몸 안에서 일어났습니다.
바울 사도가 그 증인입니다.
 
성 프랜시스는 십자가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오히려 자랑하며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저는 이번 동족을 방문하면서 그분들의 소박한 웃음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그분들이 웃는 모습을 생각하면 가슴이 뜁니다.
 
 
[고후4:10]를 함께 읽어요.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이번 여행의 목적 중에 한 가지는 작년에 부탁한 일들을 부탁대로 해 놓았는지 확인하는 일입니다.
 
탁아소를 짓도록 부탁했는데요.
그것을 확인하는 것이 필요했습니다.
 
3년만에 화장실을 지어주었어요.
3년 동안 화장실이 없이 지냈습니다.
처음 저는 화장실이 그 안에 있는 줄 알았어요.
그러나 건물 주위에 화장실에 있어야 할 것들이 때로 있는 것을 보고 어떻게?’ 라는 생각이 들어서 물었어요.
아니나 다를까 화장실이 없어요.
 
우리가 지어준 화장실 아직도 너무 열악해요.
원래 그보다 더 좋게 지어주고 싶었는데 내년에는 변기를 사가지고 가야겠어요.
 
우리가 항상 (우리의 보석인) 예수의 죽음을 (우리) 몸에 짊어(지면)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됩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은 질그릇 같은 우리가 몸에 담아야 할 보배거든요.
보석이거든요.
 
석탄 창고가 없어서 이웃 보건소 석탄 창고를 빌어 사용합니다.
석탄 창고를 지어주었습니다.
 
많은 돈이 들어가지 않아요.
 
우리가 갈 때마다 그분들에게 묻습니다.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이번에는 화목(火木)을 말합니다.
아이들이 누워서 잠을 자는데 땔 나무가 필요하다구요.
얼마나 드냐니까
한 달에 50원이면 된데요.
10불이 안되요.
한 달에 10불이면 아이들이 따뜻한 온돌 방에 잘 수 있습니다.
 
그런 일들을 해주고 왔습니다.
그분들이 얼마나 기뻐하는지 몰라요.
 
우리가 항상 (우리의 보석인) 예수의 죽음을 (우리) 몸에 짊어(지면)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됩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은 질그릇 같은 우리가 몸에 담아야 할 보배거든요.
보석이거든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용해주실 때 저는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이를 통해서 저는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의 기도 들어주신 것을 인하여 제가 기뻐하고 감사할 때, 하나님께서도 기뻐하실 거란 생각을 해봅니다.
 
저는 이런 기쁨에 충만해서 돌아옵니다.
사역은 피곤하지만 그 보람을 가지고 그곳을 다녀옵니다.
 
 
 
그들은 우리의 작은 사랑으로 얼마나 행복해 하는 지 모릅니다.
 
 
 
[마무리하는 말]
 
우물 사역에 대하여 받은 은혜를 나누고 싶습니다.
 
3년 전 가을에 윤장로님과 박영덕 목사님 일행이 탁아소를 방문하였습니다.
 
그 때, 그 마을 당서기와 마을 대표가 찾아와서 떡과 두유를 접대하며 마을의 물 사정을 나누었습니다.
그 후 아버지께서 그 응답으로 우물사역을 할 만한 돈을 마련해 주었습니다.
작년 윤장로님께서 가셨을 때는 미국에서 그곳에 와 귀한 일하는 분들이 우물을 파주겠다는 말씀을 듣고 왔습니다.
우리는 그 물을 주민들이 받아 마실 수 있는 시설을 하면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다행이지요. 우리는 돈이 많은 사람들이 아닌데 너무 사업이 크면 감당할 수 없거든요.
 
이번 저는 그분을 찾아갔어요.
그리고 만났습니다.
그분은 우물 파는 기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7-8월에 우물 파는 전문가가 미국에서 온답니다. 우물 파는 데 필요한 모든 부품들을 준비해서요.
그분들은 미국에서 우물 파는 전문가들이랍니다.
그 때 아래 마을에 우물을 파는데 탁아소가 있는 마을도 함께 파겠다고 했습니다.
 
더욱 놀라운 이야기하나 할까요?
지난 번 TEE 세미나 강사로 오셨던 서영오 목사님이 세미나 강사로 와서 받은 수고비와 우리 서머나 교회에서 받은 사례비를 내놓았어요. 어린이들 돕는 일에 쓰임을 받고 싶다고.
그러면서 그가 그곳에 가서 만난 사람 이야기를 한 적 있습니다.
저는 그분에게 말했어요. 혹시 내가 그곳에 가서 그 사람을 만날 수 있다면 목사님이 주신 헌금 중 얼마라도 그분께 전해주고 싶다고.
그런데 말입니다.
 
그분이 바로 우물을 파주는 사람이더라구요.
 
저는 차를 돌려서 다시 그분에게 갔습니다. 그리고 그분 이야기를 하고 얼마를 전해 주었습니다.
 
그분이 기뻐하는 웃음을 저는 잊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항상 (우리의 보석인) 예수의 죽음을 (우리) 몸에 짊어(지면)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됩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은 질그릇 같은 우리가 몸에 담아야 할 보배거든요.
보석이거든요.
 
성령의 사람은 작은 피지를 사랑으로 심을 수 있습니다.
 
죄로 죽은 우리 몸에 예수의 생명이 나타난다는 것! 그것은 맹물같은 세상에 피지를 넣은 것처럼 세상을 행복하게 바꾸는 일일 수 있지 않을까요?
 
 
[설교 성경 본문, 고후4:6-11]
6.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
7.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8.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9.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10.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11. 우리 살아 있는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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