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24 February 2015

한경직목사(10) - 결론

결론: 삶이 깨끗한 청빈의 사람

인간 한경직과 목회자 한경직의 삶과 사역의 면모를 살펴보았다. 결국 그분은 예수님처럼 사신 분이었고 성 프랜시스처럼 사신 분이었다. 예수님은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시고 친히 가난하게 사셨고 성 프랜시스도 "나는 가난이란 여인과 결혼했다"고 선언하고 친히 가난하게 살았는데 한경직 목사도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면서 평생 깨끗하고 가난하게 살았다. 한경직 목사는 1982년 8월 11일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하나님께서 언제 저를 부르실지 모르지만 빈손 들고 왔다가 빈손 들고 갈 인생입니다." 한경직 목사는 본인의 말 그대로 빈손 들고 왔다가 빈손 들고 간 깨끗한 청빈의 사람이었다.
한경직 목사가 2000년 4월 19일 오후 1시15분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우리 곁을 떠났을 때 세상은 입을 모아 그를 가리켜 "청빈의 사람"이었다고 말하며 그를 높이 기렸다. 명예욕과 물욕과 정욕에 사로잡혀 살아가는 부끄러운 오늘의 시대가 가장 보고 싶어한 사람의 모습이었는지 모른다. 그래서 청빈과 봉사의 사람 장기려 박사가 세상을 떠났을 때 "작은 예수"가 우리 곁을 떠났다고 아쉬워 했듯이 청빈과 봉사의 사람 한경직 목사가 세상을 떠났을 때에도 "작은 예수"가 우리 곁을 떠났다고 모두들 아쉬워 했다. 「신앙계」는 한경직 목사를 기리며 그를 가리켜 "3무의 삶"을 실천한 분이라고 지적했다. 즉 "통장, 집, 재산이 없는 3무의 삶을 실천했다"는 것이었다. 청빈이 그분의 삶의 전부는 아니었지만 그분의 삶의 중요한 부분이었다.
김준곤 목사는 한경직 목사의 삶의 피안적 청빈성을 이렇게 묘사했다. "그는 어머니를 9세 때 여의고 폐 수술로 한쪽 폐가 없다고 들었는데, 일제치하의 망국의 한도 있어 예수님께 헌신하는 어느 날부터인가 세상의 강을 건너버리듯이 출세니 명성이니 돈이니 에로스의 낭만 같은 것과는 옛날옛날 아주 담을 쌓아버리고 피안 같은 마음이 가난하게 사는 것 같다." 정진경 목사는 이렇게 요약했다 "그 분은 어떤 물욕이나 명예욕이나 사사로운 욕심도 없는 깨끗하고 청빈한 삶을 사셨습니다. 손봉호 교수는 한경직 목사처럼 청렴하고 철저하게 절제하는 성화된 삶을 산 사람은 "전 세계 역사에서도 찾아보기 힘들 것"이라고 평했다. 이우근 부장판사는 이렇게 솔직하게 묘사했다. "그는 바보처럼 살다 가셨습니다. 가장 좋은 옷을 입고 가장 멋진 자동차를 탈 수 있었는데도, 그는 바보처럼 좋은 옷 대신에 소매가 닳아 빠진 옷을 입었고 멋진 차 대신에 버스를 타거나 남의 차를 빌려 타곤 했습니다. 가장 안락한 아파트에 살 수 있었는데도, 바보같이 그것을 마다하고, '월셋방에 사는 교인들이 얼마나 많은데..' 하면서 산꼭대기 20평짜리 국민주택[교회사택]에 들어갔습니다." 박호성 장인숙 부부는 한경직 목사의 청빈한 삶의 모습을 바라보는 숙연한 행복감을 이렇게 피력했다. "남한산성에서 뵈올 때에는 팔목이 헤진 쉐터를 입고 계셔 가난한 할아버지를 뵙는 것 같아서 그 검소함에 머리가 숙여졌습니다. 목사님을 생각만 해도 행복했습니다."
한경직 목사는 기독교계뿐 아니라 한국 사회 전반에 넓고 깊은 감화와 영향을 미쳤고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다. 불교의 송월주 스님은 한경직 목사를 민중의 목자로 존경한다고 말했다. "한경직 목사는 이 나라 민중을 사랑과 자비의 정신으로 돌보신 목자와 같은 분이다. 특히 월남 피난민들과 6.25 전쟁으로 폐허가 된 이 땅의 민중들에게 사랑의 손길을 펴서 가난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시고 도덕적으로 일깨워 올바로 살도록 지도하신 민족의 지도자셨다. 종교간의 대화와 교류를 증진하여 종교간의 갈등을 해소하는 데에도 선구적 역할을 하신 분이고, 사회정의와 안정을 위해서도 크게 애쓰신 분이다. 어려운 여건에서도 오늘날의 자유민주주의와 안보를 바탕으로 하는 남북간 화해와 교류, 대화의 물꼬를 트는 일에도 기초를 마련하신 분들 중의 한 분이시다. 개인적으로 나는 한경직 목사를 존경한다." (2002년 9월 17일). 천도교의 김재중 교령도 한경직 목사를 민족의 지도자요 20세기의 성자로 존경한다고 말했다. "그분은 한 마디로 성자였어요. 한경직 목사는 나라와 민족을 참으로 사랑하고 지도하신 민족의 지도자였고 20세기의 성자였지요."(2002년 10월 4일).
필자는 인간 한경직과 목회자 한경직의 면모를 살피고 나서 처절한 고뇌를 느낀다. 절망적인 부끄러움을 느낀다. 위대한 참 목자 한경직 목사를 존경하고 예찬하고 흠모하는 것이 도대체 나와는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진실도 없고 겸손도 없고 청빈도 없고 참회도 없고 눈물도 없고 숨김도 없고 사랑도 없는 나와는 도대체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진실 대신 거짓, 겸손대신 교만, 청빈대신 탐욕, 참회대신 위선, 눈물대신 강퍅, 숨김대신 자랑, 사랑대신 비난 등으로 가득한 내가 설 곳은 어디란 말인가? 처절한 고뇌와 절망적인 부끄러움과 깊은 탄식을 느낄 뿐이다. 단지, 이런 분을 이 땅에 아니 우리들에게 주신 하나님께 부끄러운 감사를 드릴 뿐이다. 내가 지금 살아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 때문이고 주기철 목사님, 손양원 목사님, 박윤선 목사님, 한경직 목사님들과 같은 고귀한 신앙의 선배들의 제물된 삶과 죽음 때문임을 고백하며 다시 한번 하나님께 부끄러운 감사를 드릴 뿐이다. 하나님 아버지,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글:김명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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