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24 February 2015

“손양원 목사님처럼”

국민일보(02.12.17)

한경직 목사는 1992년 4월 29일 템플턴 상을 수상하면서 수상 연설을 다음과 같이 마무리했다. “인간을 지탱해 주는 세 다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믿음, 소망, 사랑입니다… 손양원 목사는 이 세계가 필요로 하는 사랑의 본보기를 손수 보여 준 것입니다. 그가 보여준 사랑의 실상은 원수까지도 용서해 주는 사랑이었습니다. 이러한 사랑이 세계에 평화를 가져다 줄 수 있을 것입니다.” 나의 삶과 사역에 깊은 영향을 미치고 나를 빚어준 여러분들 중의 한 분이 손양원 목사이다. 내가 고등학생 시절, 1955년 어느 여름날 아침 남대문 네거리의 한 서점에서 「사랑의 원자탄」이란 책을 사 가지고 내가 자주 찾아가던 남산 어느 숲 속에 가서 해 질 때까지 종일 읽으며 울고 기도하면서 깊은 감동에 사로잡힌 일이 있었다. 그 날 이후 손양원 목사는 나의 삶의 이상과 목표가 되었다. 오늘의 나를 나 되게 만든 것은 설교나 신학이라 기 보다는 나에게 감동과 감화를 끼친 몇몇 사람들이다. 그래서 나는 설교는 은이고 신학은 동이고 삶은 금이란 말을 자주 한다. 
첫째, 손양원 목사는 사랑과 봉사의 삶을 살았다. 손양원 목사는 여수의 애양원에서 6년 동안 나환자들에게 사랑을 실천하면서 살았다. 어느 날 손 목사는 나환자 어린이들과 함께 소풍을 갔다. 어린이들은 손 목사님을 너무나 좋아했고 손 목사님도 어린이들을 너무나 사랑했다. 손 목사님은 아이들에게 섞여서 아이들이 손잡기 꺼려하는 것을 억지로 잡고는 밀고 끌고 하면서 올라갔다. "아 그런데, 나 밥 안 가져 왔는데 누가 나 밥 좀 줄까?" 하면서 사방을 살펴보았다. 그러나 누구 하나 우리 것 같이 잡수세요 하는 이가 없었다. 자기들이 가지고 온 것을 송두리째 라도 드리고 싶었으나 잡수시라고 말을 못하는 것은 자기들을 아는 까닭이었다. 그러나 손 목사님은 그 중에서도 가장 험상궂은 아이가 가지고 온 음식을 향해서 쫓아가셨다. 그 애가 안 줄려고 하는 것을 억지로 빼앗아서 함께 잡수시고 자기가 가져온 물병의 물을 나눠주시는 것이었다. 
둘째, 손양원 목사는 사랑과 용서의 삶을 살았다. 손양원 목사는 1948년 여순 반란 사건 때 두 아들 동인과 동신을 잃고 두 아들을 총살한 청년을 사랑으로 용서하고 그를 자기의 양아들로 삼기까지 했다. 손 목사는 두 아들의 장례식 때 다음과 같은 감사의 기도를 눈물로 드렸다. "나 같은 죄인의 혈통에서 순교의 자식을 낳게 하셨으니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삼남 삼녀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두 아들 장자 차자를 바치게 된 나의 축복을 감사합니다. 내 두 아들을 총살한 원수를 회개시켜 내 아들 삼고자 하는 사랑하는 마음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과분한 큰 복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영광을 돌리나이다."
셋째, 손양원 목사는 사랑과 충성의 삶을 살았다. 손양원 목사는 일정 시에 신사에 무릎을 꿇지 않다가 옥고를 치루며 고난을 당했고 공산군 침공 시에는 그들에게 무릎을 꿇지 않다가 인민군에게 끌려가며 심한 매를 맞고 1950년 9월28일 순교를 당했는데 자기를 총살한 인민군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다가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그는 자기 주인에 대한 신앙의 절개를 지키다가 순교한 충성의 삶을 살았다. 사랑과 봉사와 용서와 충성을 설교로 신학으로 외치는 사람들은 많지만 몸으로 조용히 실천하여 보여주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든 이 시대에 손양원 목사는 그것을 우리들에게 몸으로 조용히 실천하여 보여주며 살았다.  (글:김명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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