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02.12.24)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 성 프랜시스의 기도이다. 그는 기독교와 세계 역사에 가장 깊은 감동과 영향을 미친 사람이었다. 한경직 목사가 가난과 사랑과 봉사와 화평의 사람이 된 데는 그 누구보다 성 프랜시스의 영향을 받은 데 있었다. 한경직 목사가 폐결핵 3기라는 진단을 받고 하나님만 바라보며 처절한 기도를 드릴 때 성 프랜시스의 글을 읽으며 깊은 감동에 사로잡혔다. 한경직 목사의 비움과 버림과 청빈의 삶과 함께 그의 가난과 사랑과 봉사와 화평의 삶은 거기서부터 시작되었다. 어떻게 살 것인가? 지금 우리들에게 필요한 삶은 ‘평화의 도구로 쓰임 받는’ 삶이다. 동서와 남북의 화해를 이루고 아시아와 세계의 평화를 이루며 사는 것이 대통령 당선자와 우리 모두에게 요구되는 삶이다.
첫째, 프랜시스는 버림과 청빈의 삶을 살았다. 평화의 도구로 쓰임 받으려면 우선 자기 자신과 관련된 권욕, 물욕, 정욕을 버리는 비움이 필요하다. 프랜시스는 앗씨시의 부유한 포목상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자기의 유익과 관련된 모든 것을 버렸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이상한 방식으로 태어났다. 산모가 너무 오래 진통을 했지만 아기가 태어나지 않았다. 지나가는 한 순례자의 말대로 산모를 호화로운 침실에서 마구간으로 옮기자 아기가 곧 태어났다. 프랜시스가 21세 되던 해 어느 동굴 속에 들어가서 깊은 명상과 기도에 빠졌는데 그 때 그리스도를 깊이 만나 자기를 헌신했고 세상의 것을 모두 포기하기로 결심했다.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을 포기했고 아버지의 유산과 상속권과 아버지 자신까지도 포기했다. “나는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것들을 모두 돌려드리겠습니다. 나의 참된 아버지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옷을 모두 벗어버렸다.
둘째, 프랜시스는 모두를 사랑하는 동정과 사랑의 삶을 살았다. 프랜시스는 가난하고 병들고 불행한 사람들을 찾아가서 그들을 동정하고 품고 사랑했다. 그에게 있어서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은 마땅히 섬겨야 할 주인이었고 특히 문둥병자나[한센병자라고 고치지 말 것] 버림 받은 사람들은 모두 그리스도를 대리하는 자들이었다. 그는 문둥병자 수용소를 찾아가서 그들의 손에 일일이 입을 맞추며 그들을 품었다. 그의 사랑은 산적 같은 흉악한 자들에게도, 이슬람교도들에게도 아니 이단들에게도 미쳤고 사나운 이리에게도 모든 동물들과 식물들에게도 아니 해와 달과 별들에게도 미쳤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대들에게 찾아온 사람은 그가 친구이든, 원수이든, 살인자이든, 강도이든 반드시 형제로서 맞아 들여야 한다.”
셋째, 프랜시스는 가난과 고통 자체가 되면서 살았다. 그는 우주와 모든 것을 사랑했는데 고통과 죽음까지도 사랑했다. “나는 가난이란 이름의 여인과 결혼했습니다. 비애는 나의 자매이고 고통과 죽음은 나의 형제입니다.” 그는 가난과 고통을 사랑하는데 그치지 않았고 가난과 고통 자체가 되었다. 가난하게 살았고 고통스럽게 살았다. 주님의 삶을 문자 그대로 닮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가난을 옷으로 삼고 고난을 양식으로 삼아야겠습니다.” 물론 그는 고행 자체를 예찬한 것은 아니었다. 사랑이 궁극적인 동기와 목적이었다. “꼭 필요한 것은 고행이 아니라 사랑입니다.” 주님과 가난한 사람들을 너무 사랑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는 만년에 그리스도와 꼭 같은 상처를 그의 손발과 옆구리에 가지게까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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