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6 March 2015

로마서 1: 8-15 그곳에 가고픈 이유를 아는가?


 가. 사도바울에게는 로마교회를 생각할 때, 깊은 감사가 있습니다.(8)

   "8 첫째는 내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너희 모든 사람을 인하여 내 하나님께 감사함은 너희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됨이로다 

   1] 하나님께서 로마 교회 성도들에게는 세상을 진동하는 믿음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요즈음도 많은 기독교인들은 로마의 카타콤을 찾아가 그들이 고난 중에서 묘지에 들어가서까지 지킨 믿음의 흔적을 보고 감사하고 있습니다. 여행자들이 공동묘지를 들어갈 일이 없지만, 기독교인들이 그곳을 구태어 찾아가는 까닭은 그곳에 이러한 기독교인들의 믿음의 유적이 2천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생생하게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카타콤은 로마교인들이 외곽도로를 따라 가며 지하에 만들어 놓은 묘지입니다.  "카타콤의 벽화는 양이나 물고기로 그리스도를 표현하는 등 그리스도교적 상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4세기가 되면서 부터는 성서(聖書)의 장면을 많이 그렸습니다. 초기그리스도교 미술을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윱求?"
   

   2]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로마 교회를 사랑하고 늘 기도하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9 내가 그의 아들의 복음 안에서 내 심령으로 섬기는 하나님이 나의 증인이 되시거니와 항상 내 기도에 쉬지 않고 너희를 말하며 

   이 세상에 65억 이상의 인구가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 가운데 몇 사람이나 위해 기도하겠습니까? 정말 사랑하지 않으면 기도하지 않게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게서 바울에게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아무런 관계도 없어 보이는 로마교회를 사랑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로마교회에 관심을 갖게 하십니다. 그리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게 하십니다.
이것은 로마교회가 받은 큰 은혜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1] 우리 안에 누구를 향한 사랑과 기도가 있습니까?

그것을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서 하실 일이 있으셔서 그런 착한 마음을 주시는 것입니다.

   [2] 또 누군가가 우리를 위해 사랑과 기도를 보내주시는 분이 계십니까?

    그것을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서 하실 일이 있으셔서 그런 착한 마음을 주시는 것입니다.


   3] 하나님께서 로마를 선교 전략적으로  매우 소중한 요충지로 사용하셨습니다.

   10 어떠하든지 이제 하나님의 뜻 안에서 너희에게로 나아갈 좋은 길 얻기를 구하노라 

   당시 '세계는 로마로!'란 말처럼, 로마엔 세계 모든 나라를 향해 모든 길이 열려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세계 모든 민족에게 복음을 전하고 싶어하는 바울로서는 믿음이 있는 로마교인들을 만나서 그들과 동역하고 땅끝까지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장점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바울에게 로마에서 복음 전하시도록 명하셨던 것입니다.

   [사도행전 23:11]

   그날 밤에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되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거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거하여야 하리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는 만민에게 복음을 전하시기 위해 로마를 전략적으로 사용하시기 원하시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바울 사도를 로마에 파송하시고 복음을 전하기 원하셨습니다.로마는 하나님 나라를 이루기 위해 매우 소중한 땅이었기 때문입니다. 


  나. 사도 바울에게는 이런 하나님의 사랑에 뜨거운 반응이 있습니다.

  "어떠하든지 이제 하나님의 뜻 안에서 너희에게로 나아갈 좋은 길 얻기를 구하노라"( 10 )

   바울은 이러한 하나님 마음을 알아서 그에게 맡겨주신 사명을 따라 자신의 생애를 내어드렸습니다. 예루살렘에서 나를 증거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거해야 할 것이라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로 결단하였습니다.



   1. 하나님께서 주신 신령한 은사를 나누어 주어 교회를 견고케 하기를 원했습니다.

   11 내가 너희 보기를 심히 원하는 것은 무슨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눠 주어 너희를 견고케 하려함이니 
12 이는 곧 내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와 나의 믿음을 인하여 피차 안위함을 얻으려 함이라 

   [1]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에게는 놀라운 은사를 주셨습니다. 

   바울 사도는 깊은 영적 체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3층천에 다녀온 경험을 말하면서 그 신비의 깊이를 입에 담기를 망서립니다.
   그러나 그 은사를 자랑하지 않았습니다. 그 은사는 오직 교회를 견고하게 세우는 도구로 사용하였습니다. 

   [2] 그는 산을 움직이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그 믿음을 가지고 형제를 위로하는 일에 사용하였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는 어떤 은사와 믿음을 주님으로 부터 받고 있습니까?
그 은사와 믿음이 교회를 견고히 세우고 형제를 위로하는 일에 쓰임을 받고 있습니까?


2. 다른 이방인에게서처럼 열매 맺기 원하였습니다.

   13 형제들아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가고자 한것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이는 너희 중에서도 다른 이방인 중에서와 같이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로되 지금까지 길이 막혔도다 


   1] 주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목적은 과실을 맺기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5:16]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 또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 

   2] 과실을 맺을 때 영광을 받으십니다.

   [요한복음 15:8]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

   3] 주님께서는 열매 맺지 않는 가지를 기뻐하지 않습니다.

   [요한복음 15:2]

   무릇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해 버리시고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하여 이를 깨끗케 하시느니라

   어떤 목사님 댁에 감나무가 한 그루 있었습니다. 가지마다 얼마나 벌레가 갉아놓았는지 감이 제대로 열리지 못합니다. 잘라 버리기에는 감나무가 너무 아깝고 해서 그대로 놔두고 있었는데, 우리 집을 방문한 어떤 분이“목사님, 이럴 때는 가지를 다 쳐주세요.” 했습니다. 
그분의 말대로 벌레먹은 가지를 다 잘라버렸습니다. 
일 년이 새해, 감나무에 감이 실하게 열렸습니다. 
   나쁜 것, 잘못된 것은 과감히 잘라내야 우리 삶 속에 열매가 주렁주렁 알차게 열릴 것입니다. 
부정적이고 미온적인 생각을 잘라내 열매가 주렁주렁 열릴 것입니다.
나태한 신앙과 삶을 잘라내 열매가 주렁주렁 알차게 열릴 것입니다.
세상 적이고, 세속적인 것을 과감히 잘라낼 때, 열매가 주렁주렁 알차게 열릴 것입니다.


   4] 주님 안에 거할 때만 과실을 맺을 수 있습니다.

   [요15:4-5]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3. 복음을 전해줌으로 빚을 갚는 기쁨을 가졌습니다.


   14 헬라인이나 야만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15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 

   1] 바울의 심중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 대한 빚진 자란 의식이 있었습니다. 

   그 크신 사랑을 덧입은, 그러나 그 사랑이 너무 커서 도무지 갚을 수 없는 고뇌를 범하고 있다는 '거룩한 채무의식'이 있었습니다.
   그는 이 큰 사랑을 아직도 하나님의 사랑을 등지고 사는 사람들, 곧 '헬라인이나 야만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갚아야 할 빚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우장춘, 정주영, 박태준 이런 사람들을 한국 경제 발전의 상을 받아야 할 사람이라고 손꼽는 말을 들었습니다. 박태준이 세계적인 조선산업, 자동차 산업의 근간이 되는 세계 제일의 제철소를 한국 땅에 세우는 데는 고 박정희 대통령에게 입은 은덕이 컸었다는 기사를 봅니다. 
   박태준의 귀한 점은 그가 받은 은혜를 박정희 대통령의 자녀를 돕는 일로 갚고 싶어한다는 것입니다. 마약사범으로 수차례 감옥 신세를 질 수밖에 없었던 연약한 박지만을 그 곤고한 자리에서 빼어내서 좋은 규수감을 짝지어 결혼시켜 주고, 후손을 보게 하는 일에 앞장섬으로 고 박정희 대통령에게 빚을 갚는 것이지요. 

   하나님의 사랑에 악수한 바울은, 하나님을 알지 못한 채 여전히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배신하고 하나님께 주먹질하고 살아가는 못난 '이방인'들에게 그 빚을 갚고 싶어한다는 사실입니다.


   2] 하나님께 갚아야 할 빚이 크다는 의식!은 사도 바울 삶의 우선 순위를 바꾸었습니다.

빚이 있는 사람이 삶의 모든 소비형태를 바꾸는 것을 봅니다. 빚을 갚는 일에 일의 우선 순위를 집중합니다. 재물을 사용할 때에도, 다시 한 번 생각해봅니다. 왜냐하면, 갚아야 할 빚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도바울은 3차 여행 중에서 줄곧 이 로마 교회를 생각하면서 빚을 진 채무자의 심정 앞에 서 있습니다. 그는 예루살렘에 가지 말라는 주변 사람들의 압박을 받습니다. 결박과 환난이 그를 기다린다는 그런 압박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 길을 갑니다. 그 길을 달려갑니다. '나의 달려갈 길''주예수께 받은 사명의 길''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전하는 길'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는 그곳을 거쳐 빚을 갚을 수 있는 로마로 가길 원하는 것입니다.



   3] 기쁨으로 빚을 갚기 위해 달려가는 바울을 우리는 본문에서 만납니다.

   자신의 힘으로는 온전히 갚을 길이 없는 엄청난 빚이지만, 그 중 얼마라도 갚을 수 있다는 기쁨이 그의 가슴에 가득 차 있음을 만납니다.

   정말 빚을 갚고 싶은데 그 방법을 찾지 못하다가 얼마만큼이라도 갚을 수 있는 길을 발견한 사람이 그 얼마의 돈을 가지고 달려가는 감격어린 모습을 바울은 보여주고 있습니다.

   일만 달란트의 빚을 탐감 받은 사람이 그 은혜는 까마득하게 망각한 채, 500데나리온 빚는 동관을 잡아 때리고 감옥에 넘기는 그 철면피와 비교해 보십시오.

   바울의 중심은 참으로 아름답지 않습니까?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여러분은 이 교회에 무엇을 하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까?
빚진 자의 심정으로 충성하십니까?
아니면 500데나리온 빚진 동관의 멱살 잡는 일에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까?
천국으로 가는 길에 있는가
지옥으로 가는 길에 있는가의 차이를 여기서 보는 것 같지 않습니까?

받은 은사로 교회를 견고케 하시기를 바랍니다.



   4] 하나님의 빚은 복음 전함으로 갚을 수 있습니다.

      15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 수 있겠습니까?

   복음을 전하는 일이 하나님의 빚을 갚는 효과적 방법입니다.

   [1] 예수님께서는 공생애 중에 복음 전파하는 일에 전념하셨습니다.

   [마태복음 9:35]

   예수께서 모든 성과 촌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

   [2] 제자들에게 명한 사역의 본질이 바로 복음을 전하는 일이었습니다.

   [마가복음 16:15]

또 가라사대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3] 주님께서는 지상 명령을 남기셨습니다.

   [마28:18-20]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의 삶의 초점이 어디를 향하고 있습니까?
서머나 10주년이 다음 주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우리의 가지에 지난 10년 동안 어떤 전도의 열매가 맺혀 있는가?     
살펴볼 수 있기 바랍니다.

   저는 봄이 되면 새로운 가지가 나는 나무의 줄기를 봅니다.
어떤 가지는 계속 새로운 가지와 잎을 냅니다.
살아있는 가지입니다.
   가을이 오면 좋은 열매를 맺는 가지를 봅니다.
실한 열매를 많이 맺는 가지가 살아있는 가지입니다.

   우리 인생의 가지에는 새로운 가지가 나고 있습니까?
실한 열매가 많이 맺히고 있습니까?

   10년이 가도 가지도 없고 열매도 없다면 우리는 병들었다는 생각을 해보신 적 있습니까?

   이번 서머나 10년 발자취가 책이 되어 나옵니다.
CD도 준비됩니다.
전도하는 자료로 사용하실 수 있기 바랍니다.
우리 가지에도 새로운 가지가 나고 싹이 나야 합니다. 그것이 산 가지거든요.
중요한 것은 우리 인생의 가지에도 열매가 맺혀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에게 고합니다.

열매를 맺는 신앙생활이 될 수 있기 바랍니다.
이 일을 위해 빚진 자의 의식을 가지고 할 수 있는 대로 복음을 전하기 바랍니다.



[ 마무리하는 말]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 질 수 있도록 자신의 삶을 내어드리는 삶!
바울에게는 참으로 큰 감동이 있음을 봅니다.


   바울에게는 로마 교회에서 할 사명이 있었습니다.
[설교할 성경본문]
7 로마에 있어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입고 성도로 부르심을 입은 모든 자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8 첫째는 내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너희 모든 사람을 인하여 내 하나님께 감사함은 너희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됨이로다 
9 내가 그의 아들의 복음 안에서 내 심령으로 섬기는 하나님이 나의 증인이 되시거니와 항상 내 기도에 쉬지 않고 너희를 말하며 
10 어떠하든지 이제 하나님의 뜻 안에서 너희에게로 나아갈 좋은 길 얻기를 구하노라 
11 내가 너희 보기를 심히 원하는 것은 무슨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눠 주어 너희를 견고케 하려함이니 
12 이는 곧 내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와 나의 믿음을 인하여 피차 안위함을 얻으려 함이라 
13 형제들아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가고자 한것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이는 너희 중에서도 다른 이방인 중에서와 같이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로되 지금까지 길이 막혔도다 
14 헬라인이나 야만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15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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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더 8장(수요예배설교)

[성경본문]

1  당일에 아하수에로왕이 유다인의 대적 하만의 집을 왕후 에스더에게 주니라 에스더가 모르드개는 자기에게 어떻게 관계됨을 왕께 고한고로 모르드개가 왕의 앞에 나아오니 
2 왕이 하만에게 거둔 반지를 빼어 모르드개에게 준지라 에스더가 모르드개로 하만의 집을 주관하게 하니라 
3 에스더가 다시 왕의 앞에서 말씀하며 왕의 발아래 엎드려 아각 사람 하만이 유다인을 해하려 한 악한 꾀를 제하기를 울며 구하니 
4 왕이 에스더를 향하여 금홀을 내어미는지라 에스더가 일어나 왕의 앞에 서서 
5 가로되 왕이 만일 즐겨하시며 내가 왕의 목전에 은혜를 입었고 또 왕이 이 일을 선히 여기시며 나를 기쁘게 보실찐대 조서를 내리사 아각 사람 함므다다의 아들 하만이 왕의 각 도에 있는 유다인을 멸하려고 꾀하고 쓴 조서를 취소하소서 
6 내가 어찌 내 민족의 화 당함을 참아 보며 내 친척의 멸망함을 참아 보리이까 
7 아하수에로왕이 왕후 에스더와 유다인 모르드개에게 이르되 하만이 유다인을 살해하려 하므로 나무에 달렸고 내가 그 집으로 에스더에게 주었으니 
8 너희는 왕의 명의로 유다인에게 조서를 뜻대로 쓰고 왕의 반지로 인을 칠찌어다 왕의 이름을 쓰고 왕의 반지로 인친 조서는 누구든지 취소할 수 없음이니라 
9 그 때 시완월 곧 삼월 이십 삼일에 왕의 서기관이 소집되고 무릇 모르드개의 시키는대로 조서를 써서 인도로부터 구스까지의 일백 이십 칠도 유다인과 대신과 방백과 관원에게 전할쌔 각 도의 문자와 각 민족의 방언과 유다인의 문자와 방언대로 쓰되 
10 아하수에로왕의 명의로 쓰고 왕의 반지로 인을 치고 그 조서를 역졸들에게 부쳐 전하게 하니 저희는 왕궁에서 길러서 왕의 일에 쓰는 준마를 타는 자들이라 
11  조서에는 왕이 여러 고을에 있는 유다인에게 허락하여 저희로 함께 모여 스스로 생명을 보호하여 각 도의 백성 중 세력을 가지고 저희를 치려하는 자와 그 처자를 죽이고 도륙하고 진멸하고 그 재산을 탈취하게 하되 
12 아하수에로왕의 각 도에서 아달월 곧 십이월 십 삼일 하루 동안에 하게 하였고 
13 이 조서 초본을 각 도에 전하고 각 민족에게 반포하고 유다인으로 예비하였다가 그 날에 대적에게 원수를 갚게 한지라 
14 왕의 명이 심히 급하매 역졸이 왕의 일에 쓰는 준마를 타고 빨리 나가고 그 조서가 도성 수산에도 반포되니라 
15 15 모르드개가 푸르고 흰 조복을 입고 큰 금면류관을 쓰고 자색 가는 베 겉옷을 입고 왕의 앞에서 나오니 수산성이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고 
16 유다인에게는 영광과 즐거움과 기쁨과 존귀함이 있는지라 
17 왕의 조명이 이르는 각 도, 각 읍에서 유다인이 즐기고 기뻐하여 잔치를 베풀고 그 날로 경절을 삼으니 본토 백성이 유다인을 두려워하여 유다인 되는 자가 많더 


   [들어가는 말]

   에스더는 유대인들에게 가장 사랑 받고 가장 널리 알려진 책입니다.
중세 유대 신학자 Maimonedes는 에스더서를 성경 가운데 최고의책으로 여겼고 다른 모든 것이 사라지더라도 율법과 에스더서는 끝까지 남을 것이라고 가르쳤습니다.
유대인들 중에는 부림절 늦은 오호의 축제와 만찬을 유월절 축제 다음으로 중요하게 여기며 기념합니다.
왜 입니까?
하나님 백성의 생존에 대한 영원한 기적을 기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1. 하나님의 은혜가 에스더에게 임하였습니다.


   "우리가 아름다운 존재로 용납된다면, 생명의 연장을 허락받는다면, 증오와 거부감으로부터 벗어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자비하심과 섭리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2. 에스더는 임한 하나님의 은혜가 그 백성에게 미치도록 하였습니다.
기독교 공동체는 세상과 이질적인 집단이다. 기독교 공동체의 본질이나 실페와 비슷한 것을 주변 세상에서는 도저히 찾아볼 수 없다. 따라서 세상에는 신앙 공동체를 이해하기 위한 틀이 전혀 형성되어 있지 않아서 신앙 공동체를 아무 소용없는 것으로 여긴다"(칼 바F?

  아담은 하와가 있고 난 다음에야 비로소 완전해졌다. 인간은 관계성의 존재다. 인간은 공동체를 부인하든 시인하든 공동체의 일부다. 성경은 인간을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공동체 속의 한 존재로 보고 있다. 공동체에서 배제되는 것이 가장 무서운 형벌이었다.

   그리스도의 몸인 지체란 개념은 그리스도인을 이웃들로부터 갈라놓자는 애기가 아니다. 오히려 다른 모든 사람들 그리고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꾸러미 속에 그리스도인들을 묶어놓는 것이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이웃과의 관계에서 완전히 단절된 고립된 개인이라는 신분으로는 하나님께 온전히 응답할 수 없다.(존 로빈슨; 'The Body')

   신앙인들은 복음의 완전성을 경험하기 위해 소위 개인주의라 부르는 누더기를 벗어던져야 한다. 

   사회가 교회라는 신앙 공동체에 대하여 원하는 것(의사협회,볼링단체, 암센터 등)과 하나님께서 교회에 원하시는 것을 아는가? 하나님께만 '예!' 하라.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백성들의 공동체를 보존하려고 행동하셨다. 그 결과 널리 기념되는 기쁨과 감사가 부림절에 넘치게 되었다.
친구들은 서로 선물은 교환하고 가난한 이웃에게 자선을 베풀었다. 지옥과 죽음의 문턱에서 가까스로 벗어난 이들이 누리는 기쁨을 함께 누리며, 생명있음을 기쁜 선물로 기념했다. 공동체는 축제 속에서 찬양과 예배와 음식과 웃음으로 기뻐했다.



3. 백성들은 임한 하나님의 은혜를 기뻐하였습니다.


   따라서 이 기쁨은 행운을 당한 개인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공동체가 하나님의 구원에 참여함으로써 누리는 것입니다.

   [에스더8:15-18]

   모르드개가 푸르고 흰 조복을 입고 큰 금면류관을 쓰고 자색 가는 베 겉옷을 입고 왕의 앞에서 나오니 수산성이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고 
유다인에게는 영광과 즐거움과 기쁨과 존귀함이 있는지라 
왕의 조명이 이르는 각 도, 각 읍에서 유다인이 즐기고 기뻐하여 잔치를 베풀고 그 날로 경절을 삼으니 

   부림절은 바로 이런 신앙전통 속에서 세워진 것입니다.


   헨리 나우웬은 

   "현대 문화는 생명을 얻은 것을 기뻐하는 기회를 제외한 다른 무수한 기회들을 활용해 움직이고 서두르며 걱정하는 문화다."

   "에스더와 부림절은 하나님으로 인해 창조되고 구원받은 생명이라는 선물을 자유롭게 공유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감사와 기념의 실존을 표현하는가에 대한 모델을 제공해준다."


   적대적인 세상에서 신앙 공동체가 하나님의 백성으로 순수하게 존재하는 것은 가능한가?

   부림절의 축제는 멸망의 위기에 처한 하나님의 백성의 승리를 전한다.

   사형집행을 앞둔 도스토예프스키가 죽음의 면전에서 느꼈던 인간의 고귀함과 인생의 깊이 있는 색조를 집행유예 속에서 누린 것처럼.



   기쁨의 경험을 하나님으로부터 분리하는 일은 고통의 경험을 하나님으로부터 분리시키는 것만큼 쉽습니다.
하나님과 상관없이 느끼는 고통의 경험은 쓰라림이라는 결과를 가져온다면, 하나님과 떨어진 상태로 느끼는 기쁨은 결과적으로 지루함과권태감을 가져옵니다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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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가이사랴에 고넬료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달리야대라 하는 군대의 백부장이라 
2. 그가 경건하여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 
3. 하루는 제 구시쯤 되어 환상 중에 밝히 보매 하나님의 사자가 들어와 가로되 고넬료야 하니 
4. 고넬료가 주목하여 보고 두려워 가로되 주여 무슨 일이니이까 천사가 가로되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하여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 
5. 네가 지금 사람들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6. 저는 피장 시몬의 집에 우거하니 그 집은 해변에 있느니라 하더라 
7. 마침 말하던 천사가 떠나매 고넬료가 집안 하인 둘과 종졸 가운데 경건한 사람 하나를 불러 
8. 이 일을 다 고하고 욥바로 보내니라 
9. 이튿날 저희가 행하여 성에 가까이 갔을 그 때에 베드로가 기도하려고 지붕에 올라가니 시간은 제 육시더라 
10. 시장하여 먹고자 하매 사람이 준비할 때에 비몽사몽간에 
11. 하늘이 열리며 한 그릇이 내려오는 것을 보니 큰 보자기 같고 네 귀를 매어 땅에 드리웠더라 
12. 그 안에는 땅에 있는 각색 네 발 가진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있는데 
13. 또 소리가 있으되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 먹으라 하거늘 
14. 베드로가 가로되 주여 그럴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지 아니한 물건을 내가 언제든지 먹지 아니하였삽나이다 한대 
15. 또 두번째 소리 있으되 하나님께서 깨끗케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하더라 
16. 이런 일이 세번 있은 후 그 그릇이 곧 하늘로 올리워 가니라 

[들어가는 말]

   오늘로 서머나 교회는 10주년을 맞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서머나 10년 동안 얼마나 놀라운 은혜를 베풀어주셨는지 모릅니다.
우리는 연약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연약한 우리를 늘 붙들어 주셨습니다.
우리는 흔들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흔들리는 우리를 붙들어 견고한 반석 위에 세우셨습니다.
우리는 체계적이지도 못하였고, 조직적이지도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주도면밀하게 하나님의 계획표 속에서 우리를 인도하셨습니다.


1. 하나님께서는 기도가 열린 성도 가운데서 일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시대, 그 지역에서 특별한 구원계획을 시작하셨습니다.
독생자를 보내셔서 십자가와 부활을 체험케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 그 제자들이 복음을 전파하기 시작하고 있떤 때였습니다.
사도들에게 성령을 충만케 하셔서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증인이 되게 하셨습니다.
이제 이방인들이 저들을 통해 하나님의 구원계획에 들어와야 합니다.
이방인까지 하나님 나라의 영원한 축복을 받아야 합니다.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누가 주님의 이 크고 비밀한 일에 동참하겠습니까?

기도하는 고넬료입니다.

    그는 유대인의 입장에서 보면, 별로 값이 없는 이방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유대인들이 주를 이루는 식민지 팔레스틴 지역을 다스리는 로마 군인이었습니다.
그는 로마의 군대 장교 중 한 사람으로 백부장의 위치에 있었습니다. 
AD 40년 경 로마 식민지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로마 백부장으로 직무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을 경외하였습니다. 
고넬료는 경건한 신앙심을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진리에 대해서 깊은 구도심을 가지고 있았어요.
자신뿐만 아니라 가족의 구원에도 깊은 관심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 대하여 활짝 열린 고넬료가 기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향해 자신과 그 심령을 활짝 열고 하나님을 고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그 인생에 찾아오십니다.
하나님의 크고 비밀한 일을 고넬료 안에서 베푸십니다.

    5. 네가 지금 사람들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하나님께서 왜 베드로를 청하라고 하십니까?
베드로가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가까운 욥바에서 기도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고넬료는 하나님의 꿈을 이루기 위해 분주히 사역하고 있는 틈을 내어 기도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 
   3. 하루는 제 구시쯤 되어 환상 중에 밝히 보매 하나님의 사자가 들어와 가로되 고넬료야 하니 
   4. 고넬료가 주목하여 보고 두려워 가로되 주여 무슨 일이니이까 천사가 가로되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하여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 

   기도하는 고넬료에게 기도하는 베드로를 청하라 명하셨던 것입니다.

   고넬료는 즉각 순종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기도하는 사람의 특징은 순종입니다.

   7. 마침 말하던 천사가 떠나매 고넬료가 집안 하인 둘과 종졸 가운데 경건한 사람 하나를 불러 8. 이 일을 다 고하고 욥바로 보내니라 

    그리고 순종하며 기도하는 자는 하나님의 응답을 받습니다.
보십시오.

   9.이튿날 저희가 행하여 성에 가까이 갔을 그 때에 베드로가 기도하려고 지붕에 올라가니 시간은 제 육시더라 

   베드로 안에서  고넬료와 공통적인 면을 만납니다. 바로 기도하는 모습입니다.
한 사람은 이방인입니다. 
다른 한 사람은 예수님의 사도입니다.
그들의 공통점은 같은 하나님께 마음을 열고 기도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주님께서는 기도하는 저들의 응답이 되십니다.
인도하십니다.
한 치 오차도 없이 인도하십니다.


   

2. 하나님께서는 이웃에 열린 성도 가운데서 일하십니다.

그가 경건하여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 

   고넬료는 하나님을 경외하였습니다. 그런데 고넬료의 하나님 경외는 수직적인차원에 머물지 않습니다. 백성을 많이 구제하였습니다. 고넬료에게 있어 하나님 경외는 구제와 분리되어 있지 않고 연합하여 나타납니다

   경외란 '주권자이신 하나님의 권위와 거룩함에 대해 피조물인 인간이 공경하는 마음에서 갖게 되는 두려움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경외는 공포같은 두려움과는 다르며(출 20:20), 죄인된 인간이 하나님의 거룩을 대면했을 때 갖게 되는 자연스러운 반응입니다(출 19:16). 하나님에 대한 경외는 율법을 들을 때 생기며(신 4:10), 지식의 근본이며 생명의 샘이요, 사람의 보배라고 말씀하십니다.

   경외는 무엇보다 하나님께 열림을 전제로 합니다. 그런데 그 열림은 이웃과 열릴 때 의미가 있습니다.

  [레위기25:35-38]

   네 동족이 빈한하게 되어 빈손으로 네 곁에 있거든 너는 그를 도와 객이나 우거하는 자처럼 너와 함께 생활하게 하되 
너는 그에게 이식을 취하지 말고 네 하나님을 경외하여 네 형제로 너와 함께 생활하게 할것인즉 
너는 그에게 이식을 위하여 돈을 꾸이지 말고 이익을 위하여 식물을 꾸이지 말라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려고 또는 가나안 땅으로 너희에게 주려고 애굽 땅에서 너희를 인도하여 낸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

    아브라함은 경건한 사람인데, 패역한 소돔땅을 향해 열려 있습니다.

   선한 사마리아인은 경건한 사람입니다. 그는 강도 만난 이웃을 향해 그 시간이 열려 있습니다. 주머니가 열려 있습니다.

   트루니에는 이렇게 말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말하는 경건한 영성은 장식용 영성이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삶은 평범하고, 혼란스럽고, 단조롭고, 격변이 있는, 두려움과 배신감과 환멸을 느끼는 상황, 자녀들은 말을 안듣고, 친구들은 나를 실망시키는 그런 상황, 말구유와 십자가 속에서 끈기있게 기도하고 순종하는 매일 생활 속에 숨어 있다."

   느헤미야는 경건한 사람이었습니다. 경건은 무엇으로 입증하고 있습니까? 백성을 사랑하고 그들에게 자신의 소중한 것을 나눔으로 그의 경건이 입증되고 있습니다.


   [느5:15]

   "이전 총독들은 백성에게 토색하여 양식과 포도주와 또 은 사십 세겔을 취하였고 그 종자들도 백성을 압제하였으나 나는 하나님을 경외하므로 이같이 행치 아니하고"

   말라기 선지자는 이웃에게 술수, 간음 거짓맹세 삯 탈취, 과부 고아 압제, 나그네를 돌아보지 않는 것을 경외치 아니하는 자로 연결하고 있습니다.

   [말3:5]

   "내가 심판하러 너희에게 임할 것이라 술수하는 자에게와 간음하는 자에게와 거짓 맹세하는 자에게와 품군의 삯에 대하여 억울케 하며 과부와 고아를 압제하며 나그네를 억울케 하며 나를 경외치 아니하는 자들에게 속히 증거하리라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3. 하나님께서는 열방을 품는 교회 가운데서 일하십니다.

    세상은 하나님께서 지으신 피조물입니다.
세상은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품으실 뿐만 아니라 사랑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된 하나님의 성도들은 세상을 품을 필요가 있습니다. 
   아브라함을 하나님께서 택하신 이유는 그로 인하여 천하가 복을 얻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아브라함의 후손 가운데 이스라엘을 세우시고 축복하신 목적은 바로 세상이 그들을 통해 복을 받기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선민의식의 포로가 되어서 이방인들을 무시하고 상종하지 않았습니다. 세상을 품은 것이 아니라 세상을 대적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땅에 오신 목적은 세상을 하나님의 품에 올려드리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의 생애를 따라 그려진 명화를 몇 분씩 둘러본 후, 일과를 시작합니다. 세상을 지극히 사랑하신 하나님의 마음을 만날 수 있습니다.
말구유와 같은 세상을 찾아오신 예수님 모습이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풍랑이는 세상이지만 그런 곳에서 몸부림치며 노를 젓는 제자들 곁으로 찾아오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봅니다. 
예수님께서는 포도주가 동이 난 혼인집에도 찾아오십니다.
먹을 빵이 동이난 집회에서 5병 2어로 5천명을 먹이시고 남을 빵을 만드십니다.
귀신들려 몸부림치는 세상을 품으십니다.
죄와 악으로 몸부림치는 세상을 품고 그들을 위해 끝내는 대신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시기까지 하십니다.
세상은 예수님께 있어서 남남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세상을 품으실 뿐만 아니라, 세상을 위해 존재하시는 구세주이십니다. 모든 생명까지 바쳐 세상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행1:8]에서 주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땅끝까지 세상을 품으라는 말씀입니다.




   베드로는 이방민족을 품으라는 환상을 보았습니다. 

   11. 하늘이 열리며 한 그릇이 내려오는 것을 보니 큰 보자기 같고 네 귀를 매어 땅에 드리웠더라 
12. 그 안에는 땅에 있는 각색 네 발 가진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있는데 
13. 또 소리가 있으되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 먹으라 하거늘 
14. 베드로가 가로되 주여 그럴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지 아니한 물건을 내가 언제든지 먹?아니하였삽나이다 한대 
15. 또 두번째 소리 있으되 하나님께서 깨끗케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하더라 

   베드로는 이 환상을 통해 세상을 품는 사도가 됩니다.

   베드로 사도가 이방인 고넬료의 집으로 나아가는 사건을 기점으로 초대교회는 세상을 품는 교회로 변화되어 갑니다.

  [행11:18]

  저희가 이 말을 듣고 잠잠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가로되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 하니라 


   사도 바울은 유대인 중에 유대인이었습니다. 그는 세상을 품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나 주님의 뜻을 접하였습니다.

   [사도행전 13:47]

   주께서 이같이 우리에게 명하시되 내가 너를 이방의 빛으로 삼아 너로 땅 끝까지 구원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니

   세상을 품는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갈라디아서 2:8]

   베드로에게 역사하사 그를 할례자의 사도로 삼으신 이가 또한 내게 역사하사 나를 이방인에게 사도로 삼으셨느니라


   요나는 하나님께서 품으시길 원하는 니느웨를 품지 못하겠다고 몸부림치다가 하나님께 야단을 맞았습니다.

   요나는 니느웨를 품어서는 안되는 대상으로 분류하였습니다.
니느웨는 너무나 비인격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잔인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그 백성을 대적하는 존재였기 때문입니다. 심판을 받아야 마땅한 존재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니느웨를 품어야 할 대상으로 분류하였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에게 세상은 품어야 할 대상입니다.
사랑해야 할 대상입니다.
세상에서 무엇을 기대하기 때문에 세상에 빠지라는 말이 아니라 세상을 하나님의 통치 아래 두기 위함입니다.


   교회는 예수님의 몸입니다. 교회가 세상을 품을 때 비로소 교회는 제구실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서머나 교회가 10년간 하나님의 은혜를 풍성히 받았습니다. 그 가운데 한 가지가 비록 연약하기는 하지만 세상을 위해 존재하려고 애를 쓴 적이 많습니다.
   기도할 때에도 북한 동족과 세계 열방을 품으려고 힘을 썼습니다.
교회적으로, 다락방 별로, 가정별로 선교비를 감당하기  위해 마음과 물질을 기울였습니다.

   선교하는 공동체로 주님께 쓰임 받기를 원하는 중심이 우리 대부분 교우들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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