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는 말]
우리 고국의 최초의 현대 대중가요라고 말하는 윤심덕씨가 작사 노래한 '사의 찬미'를 아시지요?
광막한 광야를 달리는 인생아
너는 무엇을 찾으려 왔느냐
이래도 한 세상 저래도 한 세상
돈도 명예도 사랑도 다 싫다
1919년, 윤심덕은 조선 총독부가 '일선융화' 정책에 따라 실시하던 관비 유학생 시험에 최초로 여자장학생으로 뽑힌 사람입니다. 그리하여 우리나라 여성으로서는 처음으로 토쿄음악학교 사범과에서 성악을 전공하였습니다. 1923년에 일본 생활을 마치고 귀국하여 음악교사와 소프라노로 활동하였습니다.
1923년 6월에는 김우진의 고향 목포에서 콘서트를 하는 등 전도 유망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1926년 8월 5일자 동아일보 사회면의 기사는 윤심덕과 천재요, 당대 재벌이던 김우진 함께 현해탄에 뛰어들어 동반자살로 생애를 마감 하였습니다.
윤심덕이란 분이 쓴 원래 '사의 찬미' 가사는 이렇습니다'
광막한 광야에 달리는 인생아 너의 가는 곳 그 어데이냐
쓸쓸한 세상 험악한 고해에 너는 무엇을 찾으려 하느냐
눈물로 된 이 세상이 나 죽으면 고만일까
행복찾는 인생들아 너찾는 것 허무
웃는 저 꽃과 우는 저 새들이 그 운명이 모두 다 같구나
삶에 열중한 가련한 인생아 너는 칼 우에 춤추는 자도다
눈물로 된 이 세상이 나 죽으면 고만일까
행복찾는 인생들아 너찾는 것 허무
허영에 빠져 날 뛰는 인생아 너 속였음을 네가 아느냐
세상에 것은 너에게 허무니 너 죽은 후는 모두 다 없도다
눈물로 된 이 세상이 나 죽으면 고만일까
행복찾는 인생들아 너 찾는 것 허무
구원을 찾지 못해 절망하는 인생의 눈물 없이는 부르기 힘든 서글픔이 듣는 이의 심금을 울립니다.
저는 이 노래와 작자의 생애를 보면서 예수님을 만나지 못한 수가성 여인을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비슷한 시대 광야와 같은 세상을 살았던 또다른 한 사람 존 겜벨은 보이는 것은 산악밖에 없는 삶의 현실 속에서 그를 구원하러 오신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 구원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살로 생애를 마감하는 대신 빅토리아 여왕의 사위가 되고
이 캐나다 총독의 지위에도 올라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삶을 살다 천국에 가셨습니다.
찬송가 73장에는 이런 찬송이 있습니다.
내 눈을 들어 두루 살피니 산악이라
날 돕는 구원 어디서 오나 그 어디서
하늘과 땅을 지은 여호와
날 도와주심 확실하도다
세상은 언제 어디서나 곤고함이 있습니다. 그래서 어느 민족이나 공동체나 사람이나 피조물까지도 구원을 기다립니다.
구원은 어떻게 오는 것입니까?
어떻게 이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까?
1. 어떤 사람들은 윤리,도덕(율법)을 더 열심히 행함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유대인들은 그 대표적인 민족입니다. 율법을 행함과 열심을 통하여 구원을 추구하는 민족이 유대인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선택을 받았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율법을 받았습니다.
따라서 율법은 선한 것입니다.
율법을 행함이 있는 삶에 열매가 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은 선민의식을 가지고 있었고, 율법을 행하는 일에 늘 열심을 내었습니다.
율법은 하나님께서 그 사랑하는 백성에게 주셨던 선물입니다.
하나님과 그 사랑하는 백성과의 언약이 담겨 있는 선물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이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본질입니다.
이 선물을 바라보면서 하나님 사랑과 언약을 이웃 사랑을 실천해갈 때, 하나님 자녀다운 아름다움이 인생에 꽃으로 피어납니다.
그러므로 다윗과 같은 믿음의 용장은 이런 하나님의 율법을 사랑하였습니다.
[시119:12-16]
12. 찬송을 받으실 주 여호와여 주의 율례들을 내게 가르치소서
13. 주의 입의 모든 규례들을 나의 입술로 선포하였으며
14. 내가 모든 재물을 즐거워함 같이 주의 증거들의 도를 즐거워하였나이다
15. 내가 주의 법도들을 작은 소리로 읊조리며 주의 길들에 주의하며
16. 주의 율례들을 즐거워하며 주의 말씀을 잊지 아니하리이다
그러나 오늘 말씀을 보면, 이 선한 율법을 열성과 행함으로 인간에게 구원을 가져오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율법 자체가 구원을 가져오는 것은 아닙니다
율법이 구원을 가져오는 것이었으면 당연히 광야 백성들은 구원을 받았어야 합니다.
그러나 율법을 받은 후, 그 백성들은 여호수아와 갈렙 두 사람을 제외하고는 모두 광야에서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1]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2절]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인류 역사상 성공적인 인생을 손에 꼽으라면 몇 번 째 손가락에 꼽히는 사람이 벤자민 플랭클린(Benjamin Franklin)입니다.
우리는 학창시절 교양학부에서 필독서적으로 그를 읽은 기억이 납니다.
그는 22세였을 때, "도덕적 완전함에 도달하겠다는 대담하면서도 야심에 찬 각오"를 세웠습니다. 그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그는 몇 가지 지배적인 '가치들'(values)-그는 이를 '미덕'이라고 지칭했습니다-을 정하고 그것을 매일 지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벤자민 플랭클린이 정한 가치들은 바로 이런 것이었습니다:
절제,
침묵,
질서,
각오(마땅히 해야 할 일을 수행하기로 작정함),
절약,
근면,
진실됨,
정의로움,
중용,
청결,
침착함,
정절,
겸손.
그는 한 주에 한 가지 가치를 실천하기로 작정하고, 그것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50년이 지난 뒤, 플랭클린은 그의 자서전에서 자신의 이런 결단을 이렇게 평가합니다.
"나는 완전함에 이르는 데는 실패하였다. 그러나 평생에 걸친 노력으로 인하여 좀더 나은 그리고 더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었다."
그렇습니다. 솔직한 그의 표현대로 율법에 대한 열정은 좀더 나은 사람이 되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고백대로 완전함, 곧 구원에 이르는 데 실패하였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2절]을 함께 봉독하시겠습니다.
2.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인간을 구원할 지식은 인간을 만드신 하나님이 가지고 계십니다.
기독교적인 내용이 아니어서 인용하는데 좀 부담스럽습니다만
여러분이 그 속뜻을 잘 이해하시니까 인용합니다.
우리 속담에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병을 고쳐보자고 무당을 찾아갔는데 이 무당이 선무당입니다. 고치기는 커녕 더욱 병을 악화시킨다는 말입니다.
바른 지식이 없는 열심이 이렇습니다.
구원은 커녕 패망을 가져온다는 뜻이지요.
유대인들이 이런 우를 저질렀습니다. 왜입니까?
[2절]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유대인들은 구원에 대한 바른 지식이 없었기 때문에 구원의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아버렸던 것입니다.
요즈음 많은 이단이 창궐하고 있습니다.
저들의 열심이 구원을 가져오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2절]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그러므로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열심을 가지고 하나님께 충성하십시오.
그러나 바른 가르침을 따라 열심을 내시기 바랍니다.
지식이 있는 열심만이 구원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이 선한 율법을 열성과 행함으로 인간에게 구원을 가져오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2] 사람들이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기 때문입니다.
[3절]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
IBM은 1987년부터 1992년까지 품질과 효율 향상은 물론 생산 기간을 50%나 단축시키는 성과를 내었습니다. 모든 부서에서 품질 향상의 경쟁이 치열했고 그 어느 때보다 좋은 팀워크가 만들어졌다고 평가되었습니다. 가장 성과가 우수하였던 부서는 미국의 권위 있는 볼드리지(Baldrige) 품질 대상을 수상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개별 팀의 성과가 회사 전체의 성과나 주주의 가치로 잘 연결되지 못했던 것으로 분석되었습니다.
여기서 얻은 교훈으로 IBM에서는 개별 조직의 책임자를 평가할 때 상위 조직의 성과를 반영합니다. 팀의 리더는 팀 자체만 생각해서는 안 되며 조직 전체, 더 나아가 조직의 여러 이해 관계자까지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팀워크의 성공 여부는 팀 자체로만 판단해서는 곤란합니다. 팀을 둘러싼 다양한 이해관계와 조화를 이루어 궁극적으로 전체 조직의 성과로 이어질 때 비로소 진정한 팀워크라 할 수 있습니다.
각 팀들이 회사 조직 전체의 유익을 모르고 자기들의 의를 세우기 위해서 열정으로 행했기 때문입니다.
[3절]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
자동차가 낡아졌다고 해서 그냥 새 엔진을 장착시키면 잘했다고 못합니다.
새로운 엔진은 좋으나 그 다른 부속들이 그 새 엔진의 힘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지요.
바리새인들이 '나는 잘했다, 선을 행했다, 율법을 잘 행했다, 자기 의를 내세우는데, 당시에 그렇게 살지 못했던 다수의 계층이 창기나 세리와 같은 고통 속에 살아야 했습니다.
율법은 좋으나 그 율법을 인간이 열심을 내어 행할 때, 자기 의만 나타날 뿐 하나님의 의는 나타나지 않는 것입니다.
[3절]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
그러므로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 하나님의 백성들은 나 자신의 의보다 하나님 나라의 의를 먼저 생각할 수 있기 바랍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하나님의 의가 나타날 때, 우리 의도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어디서 하나님의 의를 얻을 수 있습니까?
율법을 열심으로 행한다 해도 하나님의 의를 얻을 수 없다면 어디서 하나님의 얻을 수 있다는 말입니까?
하늘에 올라가야 합니까?
땅 속에 내려가야 합니까?
[6-7절]을 함께 읽어봅시다.
6.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이같이 말하되 네 마음에 누가 하늘에 올라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올라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모셔 내리려는 것이요
7. 혹 누가 음부에 내려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내려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모셔 올리려는 것이라
2. 입과 마음에 가까이 두신 그리스도(하나님 말씀) 안에 있습니다.
1] 그리스도는 율법의 완성입니다.
4절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말씀이 육신을 입어 우리 가운데 오신 그리스도는 아무리 인간이 열심으로 행하기 원하여도 이룰 수 없는 율법의 완성이십니다.
2]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자의 가까운 곳에 두셨습니다
8. 그러면 무엇을 말하느뇨 말씀이 네게 가까와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다 하였으니 곧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
어느 무더운 여름 주말 저녁, 미국 텍사스의 한 가정에서 사위의 방문에 장인은 외식을 제안합니다. 모두들 시원한 집에서 쉬고 싶었지만 다른 식구들이 외식을 원할 것이라는 생각에 마지못해 찬성합니다. 결국 가족들은 무더위에 에어컨도 없는 낡은 차를 타고 흙먼지를 뒤집어쓰며 집에서 세 시간 떨어진 애벌린이라는 곳에 가서 저녁 식사를 하고 돌아옵니다. 그날 저녁, 아무도 입을 열지 않는 침묵을 깨기 위해 “오늘 저녁 괜찮았죠?”라고 사위가 운을 떼자, 장모가 먼저 “난 사실 가고 싶지 않았지만 가족을 위해 찬성했을 뿐이야”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모두 마음속에 있었던 외식 결정에 대한 불평불만을 쏟아 놓기 시작합니다. 모두가 찬성하였으므로 최상의 선택으로 여겨졌던 결정이 사실은 어느 누구도 원하지 않았던 최악의 선택이었던 것입니다.
온 가족을 만나게 하신 분의 뜻은 무엇이겠어요. 그 아름다운 교제를 갖기 위해 그 멀고 먼 길을 찾아왔거든요.
이제는 그 깊고 친밀한 교제를 나눌 수 있는 기회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저는 우리 만남 가운데 하나님의 비밀이 있다고 믿습니다.
부부지간이든
부자지간이든
모자지간이든
형제지간이든
교우지간이든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만 거하면
하나님께서 우리 가까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입이나 마음만큼이나 가까운 예수 그리스도 안에
하나님의 의를 듬뿍 담아두신 줄 압니다.
어떤 관계에 있든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나아가 그 의를 덧입기 바랍니다.
3. 주의 이름을 부르십시오. 구원을 얻습니다.
8. 그러면 무엇을 말하느뇨 말씀이 네게 가까와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다 하였으니 곧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
9.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나는 용서 받았습니다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_ 사 43:25
슬프게도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께서 주러 오신 풍성한 생명을 경험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용서를 받아들이고 영생의 선물까지 받았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용서를 ‘경험’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스스로를 용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흠이 많은 우리가 어떻게 완전하시고 거룩하신 하나님의 용서는 받아들이면서 스스로를 용서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만약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동이 서에서 먼 것”(시 103:12)과 같이 던져 버리셨다면, 우리가 왜 우리의 실패들을 되새기고 있어야 할까요? 용서는 우리로 하여금 스스로를 과거에서 벗어나게 해 줍니다. 용서는 우리를 괴롭히는 분노와 고통과 불안에서 벗어나게 해 줍니다.
나는 구원받았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소명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의 뜻과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_ 딤후 1:9
우리가 하나님의 완벽한 기준에 도달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셨다는 사실을 진정으로 이해할 때, 우리의 자존감은 하늘을 향해 치솟아야 마땅합니다. 우리는 그런 희생을 받을 만한 가치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독생자를 우리를 위해 죽게 하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눈에 엄청난 가치를 가진 존재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가 어떤 상황에 있습니까?
주의 이름을 부르십시오.
하나님께서 용서하십니다.
주의 이름을 부르십시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구원의 옷을 입혀주십니다.
나는 용서 받았다!
나는 구원 받았다!
힘차게 주의 이름을 부르며 일어나시기 바랍니다.
[10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그리스로마 신화에 보면 자신을 과신하다 낭패를 당하는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이카루스는 자신을 미로에서 탈출시켜준 날개를 지나치게 과신하여 태양을 의식하지 않고 높이 날다가 결국 날개를 붙인 밀랍이 녹아내려 추락합니다. ‘이카루스 패러독스’는 탈출이라는 당초 목적을 잊은 채 높이 날아오르는데만 열중하다 정작 목표 달성에 실패한 경우 적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의를 덧입은 백성은 추락하지 않습니다.
[11절]
성경에 이르되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의 주가 되십니다.
12.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저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하나님께서는 온 우주에 그 불변의 언약을 선포하셨습니다.
[13절]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마무리하는 말]
김소월의 시 가운데 초혼이란 시가 있습니다.
초혼(김소월詩)
산산히 부서진 이름이여
허공(虛空) 중(中)에 헤어진 이름이여
불러도 대답 없는 이름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심중(心中)에 남아 있는 말 한마디는
끝끝내 마저 하지 못하였구나.
사랑했던 그 사람이여
사랑했던 그 사람이여.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부르는 소리는 비켜 가지만
하늘~과 땅사이가 너무 넓구나.
하늘과 땅사이가 너무 넓구나
선 채로 이 자리에 돌이 되어도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사랑했던 그 사람이여.
사랑했던 그 사람이여.
후렴~
저녁 하늘 산 마루에 걸리었다.
사슴의 무리도 슬피 운다.
떨어져 나가 앉은 산(山) 위에서
나는 그대이름 부르노라.
나는 그대이름 부르노라.
부르고 불러도 대답이 없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구원을 줄 수 없는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구원을 줄 수 있는 분은 오직 한 이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분을 사랑을 받아들이십시오.
주님으로 모시고 그분의 이름을 부르십시오.
반드시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우리가 소년 시절부터 부른 복음 송이 있습니다.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로다(X2)
할 렐 루 야 (X2) 구원을 얻으리로다
하나님의 의로 우리가운데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습니다.
베드로는 이 놀라운 진리 앞에 압도 되어 이렇게 외쳤습니다.
[행4:8-12]
8 이에 베드로가 성령이 충만하여 이르되 백성의 관리들과 장로들아
9. 만일 병자에게 행한 착한 일에 대하여 이 사람이 어떻게 구원을 받았느냐고 오늘 우리에게 질문한다면
10. 너희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느니라
11. 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12.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성경본문]
1. 형제들아 내 마음에 원하는 바와 하나님께 구하는 바는 이스라엘을 위함이니 곧 저희로 구원을 얻게 함이라
2.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3.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
4.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5. 모세가 기록하되 율법으로 말미암는 의를 행하는 사람은 그 의로 살리라 하였거니와
6.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이같이 말하되 네 마음에 누가 하늘에 올라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올라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모셔 내리려는 것이요
7. 혹 누가 음부에 내려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내려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모셔 올리려는 것이라
8. 그러면 무엇을 말하느뇨 말씀이 네게 가까와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다 하였으니 곧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
9.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11. 성경에 이르되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12.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저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13.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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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나눔의 시간]
[오늘 설교 말씀으로 나눌(적용할) 주제]
1. 내 인생의 구원을 위해 나는 무엇을 해왔는가?
내 인생의 구원을 위해 어떻게 할 것인가?
2. 우리 민족(특히 북한)의 구원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3. 원주민들이 구원 받을 수 있는 길은 무엇일까?
결론] 기도, 선교헌금으로 후원, 방문, 헌신
[기도하는 시간]
1. 기도할 제목을 나눈다.
개인 기도제목, 교회 기도제목(주보에 실림)
2. 서로를 위해 기도하는 시간을 갖는다.
예] 짝기도, 인원이 많지 않을 때는 돌아가면서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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