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의를 따르지 아니한 이방인들이 의를 얻었으니 곧 믿음에서 난 의요
31. 의의 법을 따라간 이스라엘은 율법에 이르지 못하였으니
32. 어찌 그러하냐 이는 그들이 믿음을 의지하지 않고 행위를 의지함이라 부딪칠 돌에 부딪쳤느니라
33. 기록된 바 보라 내가 걸림돌과 거치는 바위를 시온에 두노니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함과 같으니라
[들어가는 말]
내일은 원주민 마음에 우리 청년 약 20명이 떠납니다.
Henvey Inlet이란 원주민 보호구역 안에 Magnetwan이란 마을이 있는데, 그 마을 사람들을 섬기는 사역을 하게 됩니다.
캐나다 인구의 1/10을 차지한다는 원주민들을 이야기 할 때, 많은 사람들은 이땅의 사마리아라는 표현을 합니다. 온통 섞여져서 타락한 방향으로 기울어져가는 지역입니다.
종교가 섞였습니다.
원주민과 백인이 섞였습니다.
원주민끼리도 아무렇게나 섞였습니다.
마약과 담배 술이 섞였습니다.
이런 열악한 지역에 우리는 청년들을 보내고, 陋殆?가지 않는 사람들은 한 주간 기도함으로 선교에 동참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어떤 소원을 가지고 그곳에 나가야 합니까?
이곳에 남아 있는 우리는 저들을 위해 어떤 기도를 해야합니까?
1. 이 땅의 원주민이면서도 이방인으로 살고 있는 인디언들에게도 하나님의 의를 주시도록 기도하고 사역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을 진정 옳거나 선한 존재가 되게 해주는 그 무엇' 곧 '선의 정체'를 '의'라고 하였습니다.
이런 '의'에 대한 관심은 인간의 근본문제입니다.
이방인들도 이런 '의'를 얻기 위해 많은 생각과 연구와 노력을 기울여 왔습니다.
플라톤은 그 대표적인 사람입니다. 그의 먕저 '국가론(Republic)'에서 인간 영혼에 대한 즉, 인간이 의를 행하며 행복하게 살려면 영혼이 어떤 상태가 되어야 하는가에 대하여 깊이 연구하였습니다.
이 요구되는 상태를 바로 디카이오수네라는 단어에 담았습니다.
헬라어에서 의에 해당하는 말은 '디카이오수네'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덕'(아레테, virtue)이란 개념에 담아, 인간 자체의 힘과 선한 의지추구하였다면, 플라톤은 영혼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출발점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방인들은 하나님의 의를 따르지 않았다고 오늘 말씀은 선포합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사실이 있습니다.
"의를 따르지 아니한 이방인들이 의를 얻었"다는 선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이방인들이 의를 얻는 길"을 열었다는 말씀입니다.
이는 영혼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의와는 거리가 먼 이방인들이 의롭게 변화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말씀입니다.
불의한 이방인이 의의 옷을 입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 의인으로 나타난다는 사실입니다.
2. 율법의 한계를 넘어 오는 하나님의 '의'입니다.
31절
의의 법을 따라간 이스라엘은 율법에 이르지 못하였으니
이런 비극이 왜 이스라엘 민족 가운데 있어야 했을까요?
1] 율법이 잘못 되어서가 아닙니다.
율법은 하나님께서 그 백성을 사랑하셔서 모세를 통해 주신 특별한 법입니다.
그 중심은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이요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그 율법을 매우 소중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5:17-18]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을 책망하신 것은 율법을 배척하신 것이 아니라 그들이 율법의 중심을 훼손하였기 때문입니다.
2] 율법을 맡은 사람들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23:23]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찌니라
[미태복음23:25-28]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26. 소경된 바리새인아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
27.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28.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
잔의 내면을 닦으면 겉을 그냥 두기 힘듭니다.
안을 닦으면 겉도 닦게 마련입니다.
[야고보서3:12]
내 형제들아 어찌 무화과 나무가 감람 열매를, 포도 나무가 무화과를 맺겠느뇨 이와 같이 짠 물이 단 물을 내지 못하느니라
그렇습니다.
사람이 변하여야 법을 지키고 행위가 변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의를 얻기 위해 이방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입니까?
3] 먼저 율법의 행위로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로마서 3: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율법은 선하지만 이 좋은 하나님의 법이 그 백성이 그 율법을 온전히 행할 능력이 없습니다.
[로마서 7:12]
이로 보건대 율법도 거룩하며 계명도 거룩하며 의로우며 선하도다
[로마서 7:14 ]
우리가 율법은 신령한 줄 알거니와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 팔렸도다
그 율법의 기준이 충족될 때 율법은 의미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 율법을 충족시킬 수 없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율법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조차 광야 40년 동안 하나님의 율법을 알고 있었지만 온전히 지킨 사람이 없었습니다.
광야 40년이 끝났을 때, 여호수아와 갈렙 이외에는 그 백성 중 내놓을 자가 없었습니다.
율법이 사람을 변화시키지 않습니다.
율법은 좋은 것이로되 사람을 구원하는 힘이 없습니다.
4] 이방인들을 구원하기 위한 방편은 율법을 넘어가는 하나님의 의입니다.
[롬3:21]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이 하나님의 의는 율법을 넘어가지만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입니다.
[로마서 4:16]
그러므로 후사가 되는 이것이 은혜에 속하기 위하여 믿음으로 되나니 이는 그 약속을 그 모든 후손에게 굳게 하려 하심이라 율법에 속한 자에게 뿐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에 속한 자에게도니 아브라함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 모든 사람의 조상이라
[예화]
곽선희 목사님의 글에서 읽은 남아공에서 있었던 실화입니다.
남아공은 인종차별이 심한 나라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습니다.
예배도 백인과 흑인이 따로 드리는 나라가 바로 남아공입니다.
어느 고난 주일, 'The Holy Church of Zion'이란 흑인 교회에서 세족 예가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서로 발을 씻겨주면서 죽으시기까지 섬기신 주님의 마음을 나누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때 올리버 대법원장이 그 교회를 찾아왔습니다.
그는 백인이었습니다.
백인 가운데서도 신분이 최상에 속하는 분이었습니다.
그는 마르다라고 불리우는 흑인 자매를 지명하여 앞으로 나오게 한 후, 그녀 앞에 무릎을 꿇고 그녀의 발을 정성껏 씻겼습니다.
마르다는 올리버 대법원장 집에서 하녀로 일하던 자매였습니다.
놀라는 사람들 앞에서 올리버 대법원장은 담담히 고백했습니다.
마르다는 자기 집에서 아이들의 발을 수백 번도 더 씻겼는데 난 한 번 씻겼을 뿐이라고.
이 일로 인하여 올리버 대법원장은 파면을 받았습니다.
남아공 사회의 율법을 어겼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의 의로운 행위는 율법을 잘 지킨 많은 사람들보다 훨씬 감동을 주었습니다.
우리가 받은 의는 세상의 율법을 훌쩍 넘어오는 복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율법은 사랑하십시오. 특히 율법의 정신인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강하게 붙들 수 있기 바랍니다. 무엇보다 그 율법 속에 담긴 사랑의 의미를 삶 속에 꽃 피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3. 행함의 한계를 넘어 이방인에게 오는 하나님의 '의'입니다.
32-33절 어찌 그러하냐 이는 그들이 믿음을 의지하지 않고 행위를 의지함이라 부딪칠 돌에 부딪쳤느니라
33. 기록된 바 보라 내가 걸림돌과 거치는 바위를 시온에 두노니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함과 같으니라
행위가 따르는 신앙은 사람을 건강하게 합니다.
행위가 없는 신앙은 열매가 없는 과목과 같아서 하나님과 사람을 기쁘게할 수 없습니다.
테레사 수녀와 같은 분의 삶을 보면 행위가 그 신앙의 전부처럼 느껴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위를 의지하였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부끄러움을 당했습니다.
하물며 이방인에게 있어서이겠습니까?
이방인에게는 구원으로 인도하게 할 만한 행위가 없습니다.
이방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구원을 이루기 위해 여러가지 극한 행위를 합니다.
바알 선지자 앗세라 선지자 850명이 온종일 몸을 상하기까지 하면서 무엇인가를 합니다.
그러나 행위를 통해 구원을 얻을 수 없습니다.
행위를 통해 의롭다함을 얻으려는 것은 이방종교의 공통점입니다.
수가성의 여인의 행위 속엔 구원으로 인도하게 할 만한 행위가 없습니다.
수로보니게 여인의 행위를 주님께서 보셨을 때, 구원으로 인도하게 할 만한 행위가 없습니다.
우리 민족을 보아도 지난 수천 년 동안 행해온 우상숭배와 부도덕하고 허랑방탕한 세월을 많이 보냈습니다.
지금 우리가 제 3 세계에 나가보면, 수많은 행위를 만납니다.
그런 행위들로 구원을 받을 이방인이 없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일
행위가 옳고 아름다운 일
이런 것들은 인간이 피워낼 수 있는 아름다운 꽃들입니다.
이 모두가 의롭게 살기를 원하는 우리 인간에게 피어나야 할 아름다운 꽃들입니다.
그러나
이런 아름다운 꽃들이 우리 가운데 피어나기 위해서는 우리가 우선 붙들어야 할 본질이 있습니다.
본질로부터 나오는 지엽이 있기 때문입니다.
뿌리가 있어야 줄기가 있고 그 줄기로 부터 나오는 가지가 있습니다.
뿌리에 연결된 가지에 열매가 있습니다.
믿음이란 뿌리와 같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께 접목된 뿌리와 같습니다.
하나님의 의를 이루기 위해서는 믿음이란 본질에 충실해야 합니다.
그 믿음의 뿌리에서 하나님의 법을 지킬 수 있는 에너지가 나옵니다.
믿음의 뿌리에서 하나님의 의의 열매를 맺을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엔소니 드 멜로우란 분이 쓴 '종교박람회'란 작품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을 믿은 지 얼마되지 않은 주인공에게 불신자 친구가 조롱하듯이 묻습니다.
자네 요즈음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며?
그렇다네.
그럼 그리스도에 대하여 많이 배워 알겠구만.
글쎄 뭐 내놓을 만큼 아는 것은 없네.
그리스도가 어디서 태어났나?
모르겠네.
몇살 때 돌아가셨지?
글쎄.
설교를 몇 번이나 하셨나?
그것도 모르겠네.
자네는 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 아는 것이 없구만.
그런데도 예수님을 믿느나고 할 수 있나?
한심하다는 듯이 말하는 친구에게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나는 아는 것 배운 것 별로 없지만 예수님을 믿고 교회에 다니면서 달라진 것이 있네.
하나님께서 계신 것을 알게 되었고
하나님께서 무엇을 기뻐하시는 지도 알게 되었네.
무엇보다 내 자신이 달라지고 있는데, 나 자신도 놀라고 있네.
자네도 알다시피 3년 전만 해도 나는 주정뱅이였고 빚쟁이였네.
가정은 박살이 났고, 가족과 아이들은 나를 무서워하고 있었지.
모든 사람들이 나를 반기지 않았고, 그런 사람들을 보는 나는 더 포악해져 있었지.
그러나 지금은 달라.
사람들은 나를 반갑게 맞아주고
나도 내가족과 아이들을 만나는 것이 이렇게 기쁘다네.
이제 내가 안 사실이지만, 오래 전부터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고 계셨음을 깨닫고 있네.
이런 일들로 인하여 내 삶은 감사로 넘치고
나의 하루 하루의 삶은 소중함으로 채워지고 있네.
사람이 바뀌었을 때, 행위란 열매가 달라진 것입니다.
그의 믿음이 아름다운 행위 열매를 나타낸 것입니다.
4. 믿음으로 난 의입니다.
30절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의를 따르지 아니한 이방인들이 의를 얻었으니 곧 믿음에서 난 의요
성경에는 이방인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약속이 힘있게 흐르고 있습니다.
[창 17:12]
대대로 남자는 집에서 난 자나 혹 너희 자손이 아니요 이방 사람에게서 돈으로 산 자를 무론하고 난지 팔 일 만에 할례를 받을 것이라
[출애굽기 12:49]
본토인에게나 너희 중에 우거한 이방인에게나 이 법이 동일하니라 하셨으므로
[여호수아 8:33]
온 이스라엘과 그 장로들과 유사들과 재판장들과 본토인뿐 아니라 이방인까지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레위 사람 제사장들 앞에서 궤의 좌우에 서되 절반은 그리심산 앞에, 절반은 에발산 앞에 섰으니 이는 이왕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축복하라고 명한 대로 함이라
[열왕기상 8:41-43]
또 주의 백성 이스라엘에 속하지 아니한 자 곧 주의 이름을 위하여 먼 지방에서 온 이방인이라도 42. 저희가 주의 광대한 이름과 주의 능한 손과 주의 펴신 팔의 소문을 듣고 와서 이 전을 향하여 기도하거든
43. 주는 계신 곳 하늘에서 들으시고 무릇 이방인이 주께 부르짖는 대로 이루사 땅의 만민으로 주의 이름을 알고 주의 백성 이스라엘 처럼 경외하게 하옵시며 또 내가 건축한 이 전을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줄을 알게 하옵소서
[이사야 42:1]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나의 택한 사람을 보라 내가 나의 신을 그에게 주었은즉 그가 이방에 공의를 베풀리라
[이사야 42:6]
나 여호와가 의로 너를 불렀은즉 내가 네 손을 잡아 너를 보호하며 너를 세워 백성의 언약과 이방의 빛이 되게 하리니
[이사야 49:6]
그가 가라사대 네가 나의 종이 되어 야곱의 지파들을 일으키며 이스라엘 중에 보전된 자를 돌아오게 할 것은 오히려 경한 일이라 내가 또 너로 이방의 빛을 삼아 나의 구원을 베풀어서 땅 끝까지 이르게 하리라
-여호와 하나님께 연합한 이방인을 하나님은 귀히 여기십니다.
[사56:6-7]
6. 또 나 여호와에게 연합하여 섬기며 나 여호와의 이름을 사랑하며 나의 종이 되며 안식일을 지켜 더럽히지 아니하며 나의 언약을 굳게 지키는 이방인마다
7. 내가 그를 나의 성산으로 인도하여 기도하는 내 집에서 그들을 기쁘게 할 것이며 그들의 번제와 희생은 나의 단에서 기꺼이 받게 되리니 이는 내 집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이 될 것임이라
[스바냐 2:11]
여호와가 그들에게 두렵게 되어서 세상의 모든 신을 쇠진케 하리니 이방의 모든 해변 사람들이 각각 자기 처소에서 여호와께 경배하리라
[누가복음 2:32]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 하니
[사도행전 10:28]
이르되 유대인으로서 이방인을 교제하는 것과 가까이 하는 것이 위법인 줄은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께서 내게 지시하사 아무도 속되다 하거나 깨끗지 않다 하지 말라 하시기로
[사도행전 10:45]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 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 주심을 인하여 놀라니
[사도행전 11:18]
저희가 이 말을 듣고 잠잠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가로되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 하니라
[사도행전 13:47]
주께서 이같이 우리를 명하시되 내가 너를 이방의 빛을 삼아 너로 땅 끝까지 구원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니
[사도행전 15:7]
많은 변론이 있은 후에 베드로가 일어나 말하되 형제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이 이방인들로 내 입에서 복음의 말씀을 들어 믿게 하시려고 오래 전부터 너희 가운데서 나를 택하시고
[사도행전 22:21]
나더러 또 이르시되 떠나가라 내가 너를 멀리 이방인에게로 보내리라 하셨느니라
[로마서 1:5]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그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케 하나니
[로마서 3:28]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로마서 3:29]
하나님은 홀로 유대인의 하나님 뿐이시뇨 또 이방인의 하나님은 아니시뇨 진실로 이방인의 하나님도 되시느니라
[에베소서 3:6]
이는 이방인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후사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예하는 자가 됨이라
[골로새서 1:27]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어떻게 풍성한 것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예루살렘 성전에는 [이방인의 뜰]이 있었습니다.
믿음이란 이런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이방인이 의롭게 되는 유일한 길입니다.
[마무리하는 말]
우리 모두의 즐거움 중의 한 가지는 교회 뜰에 있는 화단에서 피어나는 꽃을 감상하는 일입니다.
어떤 정원은 조경을 잘 연구한 사람들에 의하여 깔끔하게 단장되어 아름답습니다.
그런데 반하여 우리 화단은 다양합니다.
교우들이 이런 저런 화초를 가져다가 심어서 화초박물관이 되어갑니다.
값비싼 화초는 없지만, 저마다 나름대로의 미를 꽃피웁니다.
요즈음에는 접시꽃도 아름답습니다.
하아련도 피어납니다,
양귀비가 작년 극적으로 한 그루 살아남아 씨를 뿌렸는지 금년에는 소담스럽게 꽃망울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아마 다음 주일엔 여러분도 그 현란한 양귀비 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코스모스가 숲을 이룬 화단에 각양 화초들이 다투어 꽃을 피웁니다.
어는 이런 화단이 싫지 않습니다.
교회라는 곳이 그렇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나 오게 아무나 오게 어서 와서 주의 말씀 들어라
그렇습니다.
아무나 와서 하나님의 정원에 심어지고 그의 아름다움을 꽃피우는 곳이 교회라는 생각이 듭니다.
나름대로 꽃을 피워서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 아닐까요?
그런 의미에서 사람마다 관심을 갖고 화단을 가꾸는 일에 대하여 감동이 있습니다.
저는 어제도 모든 사람이 돌아간 정원에 서서 꿈같은 행복을 누렸습니다.
그리고 원주민 마을로 내일 떠나는 우리 청년들이 그 선교지에 가서 무슨 일을 해야 하는 것일까 생각해 보았어요.
원주민들도 하나님 정원에 심겨져서 나름대로의 아름다움을 꽃피울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바로 선교라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행위는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믿음에서 피어난 열매일 때, 진가를 확인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방인들이 어떻게 의롭게 될 수 있습니까?
원주민들이 의롭다함을 얻을 수 있는 길은 무엇일까요?
오늘 우리는 청년들을 이방의 세계로 파송하면서 그분들이 하나님의 의를 덧입을 수 있는 비밀을 나누고 오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귀한 말씀을 통해, 우리가 먼저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 허락하신 의를 알고, 그 의를 힘입어 살아갈 뿐만 아니라, 이 의를 가지고 이 세상을 섬기는 자리까지 나아가는 축복이 임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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