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는 말]
현관에 들어오니 새삼 본당으로 가는 계단이 아름답습니다. 새로 타일을 깐 지 거의 1년이 되었는데 왜 오늘 새롭게 아름답게 보이는가 생각하여 보았습니다.
현관 등불을 밝게 교체하였기 때문입니다.
밝은 빛 가운데 보니, 그 빛 아래 있는 계단이 전과 다르게 아름답습니다.
오늘 말씀에는 세 그룹의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우리는 사도 바울 일행입니다.
너희는 고린도교회 교인들입니다.
그들은 고린도교회에 침투한 대적자들입니다.
우리, 사도 바울 일행은 고린도 교회를 개척하고 세운 후 다른 지역에 나아와서 그 곳에서도 복음 전하는 일에 전념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들(대적자들)은 바울 대적자들입니다.
<2>“우리를 육신에 따라 행하는 자”로 여기는 사람들입니다.
<5>“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사람들입니다.
<6>“모든 복종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7>“자기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줄을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 사도 일행은 “자기가 그리스도에게 속하지 않은 줄을 믿”고 말합니다.
<10> “그들의 말이 그의 편지들은 무게가 있고 힘이 있으나 그가 몸으로 대할 때는 약하고 그 말도 시원하지 않다 하니” 사람들입니다.
<12><18> “자기를 칭찬하는” 사람들입니다.
<15>“남의 수고를 가지고 분수 이상의 자랑을 하”고 있습니다.
<16>“남의 규범으로 이루어 놓은 것으로 자랑” 사람들입니다.
너희,고린도교회 교인들은 대적자들의 그럴듯한 외모만 보고 혼란에 빠져 있습니다.
이런 혼란한 교회에 무엇이 옳은가를 알려주기 위해 오늘 말씀을 주고 계십니다.
오늘 말씀을 받는데 꼭 명심할 일이 있습니다.
나나 누구를 쉽게 어느 편에 넣지 말 것입니다.
누가 그들이다 라고 단정하지 맙시다.
대신 말씀을 함께 읽어봅시다.
7절 말씀입니다.
“7. 너희는 외모만 보는도다 만일 사람이 자기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줄을 믿을진대 자기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것 같이 우리도 그러한 줄을 자기 속으로 다시 생각할 것이라”
대신 이런 기도하는 분의 생각은 우리 생각에 균형을 줍니다.
“인간들은 하나님의 도구다. 교회는 더 나은 도구를 찾고 있지만 하나님은 더 나은 인간들을 찾고 있다.”
(E. M. 바운즈)
하나님이 찾으시는 더 나은 교인이 되길 원해서 오늘 말씀을 주시는 줄 압니다.
옳다 인정함을 받는 더 나은 자가 누구입니까?
1. 그리스도의 온유와 관용을 입은 사람입니다.
[고후10:1]
1. 너희를 대면하면 유순하고 떠나 있으면 너희에 대하여 담대한 나 바울은 이제 그리스도의 온유와 관용으로 친히 너희를 권하고
1] '온유함'과 '관용'을 비굴하고 우유 부단하다고(?)
사도 바울은 멀리 떨어져 있어 편지를 쓸 때는 담대하고 강한 어조로 말하지만 막상 얼굴을 대면하고 있을 때는 비굴하고 우유 부단하다(?)는 비난을 받았습니다.(10절; 고전 2:3)
본문에서 바울은 이에 대해 해명을 하고자 합니다.
사도 바울이 사람들과 마주 대할 때 자신의 태도 및 요구를 분명히 말하지 못하는 비굴한 사람이라는 평은 사실 바울 사도의 온유와 관용을 잘못 이해한 것이었습니다.
온유(溫柔)와 관용(寬容)은 그리스도의 성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는 온유하니” 소개하셨습니다(마 11:29).
“온유한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마 5:5).
혹자는 예수에게 있어서 '온유함'은 이기적인 사랑이 아닌 이타적인 사랑에서 생겨나는 힘으로 영적인 차원의 것이라고 보았습니다(Lowery).
또 혹자는'온유함'을 기독교의 특징적인 덕목 또는 은사로 여겼습니다(Barrett, 갈 5:23;6:1; 골3:12).
온유함은 다른 사람에 대한 관대한 태도로 나타납니다.
사도 바울 자신의 삶이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규정된다고 할 때 그는 예수를 본받아 '온유함'과 '관용'의 덕목으로 규정되는 삶을 살고자 했고 인내와 용서의 삶을 살고자 했습니다. 바로 이러한 그의 삶이 적대자들에 의해 오해된 것입니다.
관용[寬容]은 너그러울 관, 얼굴 용으로 이루어진 말이니,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의 잘못이나 죄를 너그럽게 받아들이거나 용서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온유와 관용은 이웃을 향한 성도의 사랑입니다.
2] 육신에 따라 싸우지 아니하노니
[고후10:2-3]
2. 또한 우리를 육신에 따라 행하는 자로 여기는 자들에 대하여 내가 담대히 대하는 것 같이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나로 하여금 이 담대한 태도로 대하지 않게 하기를 구하노라
3. 우리가 육신으로 행하나 육신에 따라 싸우지 아니하노니
'육체에 있어'(엔 사르키)라는 말은 육의 지배를 받는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의 영이 거하는 사람은 육신에 있지 않고 영에 있기 때문입니다(롬 8:9).
다만 인간 존재의 일반적인 상황 안에서 살아가는 것일 뿐입니다.
'인간 존재의 일반적인 상황 안에서' 바울 사도는 그리스도를 본받아 온유하고 관대하게 살아가려고 합니다.
그러나 바울 사도에 대해 터무니없는 악선전을 하여 교회에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바울 사도는 자기 중심적인 동기나 자신의 능력으로, 자신의 권세(權勢)를 확립하기 위하여 싸우지 않았습니다.
바울 사도는 그리스도를 본받아 온유하고 관대하게 대하였습니다.
3] 하나님의 능력으로
[고후10:4-5]
4. 우리의 싸우는 무기는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어떤 견고한 진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1] 모든 이론을 무너뜨리며
5.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2]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3]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니
육체대로 싸우지 않는 것에 대한 구체적인 이유는 바울이 싸우기 위해 지닌 무기가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무기는 아무리 견고한 성이라도 파괴하는 강력한 것이었습니다(엡 6:11-17).
사도 바울을 대적하는 자들은 육체에 속한 병기 즉 세상적 학문, 인간적인 영향력, 권위있는 추천서(3:1), 사람을 현혹시키는 수사학적 달변(고전 2:1)등 인간적인 것들을 가지고 맞서지만 바울은 하나님의 병기 곧 믿음과 하나님의 말씀, 그리고 온유하고 관대한 예수의 성품을 가지고 대응(對應)하였습니다.
세상적인 기준으로 볼때 바울의 무기는 약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역사와 하나님의 전능으로 덧입혀질 때 그 어떤 대적도 당할 수 없게 됩니다(고전 2:4, 5).
4] 오직 그리스도의 온유와 관용으로
[고후10:1]
너희를 대면하면 유순하고 떠나 있으면 너희에 대하여 담대한 나 바울은 이제 그리스도의 온유와 관용으로 친히 너희를 권하고
하나님의 능력은 하나님과 분리된 세상 사람들의 모든 생각과 도모(圖謀), '허황된 이론'이나 '궤변'적 사고 등을 무너뜨리는 겁니다.
사막의 교부들은 성령의 신비적인 은사가 아니라 온유를 영적인 사람의 표지로 가르쳤습니다. 교부 에바그리우스는 온유가 그리스도를 인식하는 원천이라고 말합니다.
“성경을 많이 읽고 어려운 수행을 할지라도 온유가 없다면 결코 그리스도의 신비를 이해할 수 없다”라고 말합니다.
또 “음식과 음료를 절제하지만 마음속에 부당한 분노를 품고 있는 사람은 바다 한가운데서 분노의 악마가 조종하는 배와 같다.”
온유함을 잃어버린 신앙 생활은 외식적인 바리새인이 되는 지름길입니다.
매튜 헨리는 이 단어의 특징을 기초로 해서 온유한 사람을 이렇게 정의합니다.
“온유한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그의 말씀과 그의 징계에 복종하는 사람들이며, 하나님의 길을 따르며, 그의 계획에 동의하며, 인간들에게 관대하게 대하는 사람들이다.”
[빌4:5]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
이안 맥라렌 (Ian MacLaren)으로 잘 알려져 있는 존 왓슨 목사가 처음으로 목회를 시작했을 때 일입니다.
그는 원고 없이 설교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래서 간단한 메모만을 적은 종이 한 장을 들고 강단에 서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중간에 말할 내용이 떠오르질 않아 여러 번 당황하게 되었고 그럴 때면 "여러분, 이 부분이 잘 생각나지 않는군요. 지난 토요일, 설교 준비를 할 때는 분명했었는데... 자, 다시 하겠습니다."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그런데도 교인들은 초조해 하거나 짜증내는 일이 전혀 없었습니다.
어느 날, 주일예배가 끝났을 때였습니다. 바싹 마르고 나이가 꽤 든 어떤 교인이 그에게 다가와 말했습니다.
"목사님, 앞으로 설교 내용이 잘 기억나지 않을 땐 우리에게 찬송가를 한 곡 지정해 주십시오. 목사님이 설교에 대해 생각하는 동안 저희들은 찬송을 부를게요. 저희 모두는 목사님을 사랑하고 목사님을 위해 기도한답니다."
그로부터 오랜 세월이 흐른 뒤 왓슨 목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오늘날, 내가 이렇게 목회자로 설 수 있었던 것은 그 때 그 시골 교인들이 보여 주었던 자비심과 온정 때문이었다. 그들이야말로 진정한 신자며 기독교인이었다." (Gospel Herald)
관용의 모습은 아름다운 것입니다.
온유와 관용은 이웃을 향한 성도의 사랑입니다.
2.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는 사람입니다.
[고후10:5-7]
5.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니
'외모'는 외형적인 것으로(5:12) 천거서(3:1), 수사학적 언변(11:6), 권위에 찬 태도(11:20), 환상을 보는 것과 같은 신비적 체험(12:1-7)등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습니다(Harris).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외부적인 징표(徵表)들에 쉽게 현혹되는 것처럼 고린도 교인들이 그러한 외부적인 요소들에 현혹되는 것이었습니다.
생각의 관리가 필요합니다.
외모에 생각이 빼앗길 때.
[고후10:7]
너희는 외모만 보는도다. 만일 사람이 자기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줄을 믿을진대 자기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것 같이 우리도 그러한 줄을 자기 속으로 다시 생각할 것이라
낙심에 생각이 빼앗길 때.
[시편 43:5]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불안에 생각이 빼앗길 때.
[시편 18:1-2]
“나의 힘이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내가 그 안에 피할 나의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
고린도에 들어온 적대자들은 자신들이 특별한 관계 속에서 그리스도에 속한 사람들이라고 말했고 그럼으로써 자신들이야말로 권위 있는 사도라는 것을 과시했으며 그에 비해 바울은 권위 있는 사도가 아니라고 말했거나 아니면 적어도 고린도 교인들로 하여금 그렇게 생각하도록 악선전을 하였습니다.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할 일이지요.
하나님의 무기를 가지고 임하는 싸움의 최종적 목적은 자신의 유익이나 자신의 사도적 권위로써 적대자들을 굴복시키려는 것이 아닙니다.
목적은?
오직 그리스도에게 복종시키려 합니다.
방법은?
그리스도의 '온유와 관용'을 따르는 것입니다.
육체의 병기를 가지고(4절) 육체의 방식으로(3절) 싸우는 자들이 상대를 완전히 파탄(破綻)시키는 것과 달리 선한 목적으로 상대를 오직 그리스도에게 복종시켜 구원으로 이끄는 것입니다.
[고후10:8]
8. 주께서 주신 권세는 너희를 무너뜨리려고 하신 것이 아니요 세우려고 하신 것이니 내가 이에 대하여 지나치게 자랑하여도 부끄럽지 아니하리라
진정한 생각은 성도들을 잘 양육(養育)하는 데 있습니다.
분명한 증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의 구원을 위하여 고난 받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1:6;11:21-23).
하나님의 진리만을 전하였습니다.(2:17)
항상 공평하게 행하였습니다.(11:1-15)
무엇보다도 고린도 교인들과 운명을 같이 하고자했습니다(7:3).
앗시시의 성 프랜시스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에 가장 근접했던 사람으로 잘 알려진 인물이다. 그와 관련된 감동적인 이야기들도 많아서 듣는 이들로 하여금 고개가 수그러지게 한다. 프랜시스와 그의 제자들은 산속에서 살고 있었다. 어느 날 한 소년이 혼자 남아 집을 지키는데 악명 높은 산적 셋이 찾아왔다. 그들의 방문 목적에 대해서는 물어볼 필요가 없었다. 도적은 도적질하고자 하는 한 가지 목적을 가지고 활동하기 때문이다. 이 소년은 마음속으로 기도하면서 용기를 다하여 큰소리로 호통을 쳤다.
“남들은 땀 흘려 일하는데 너희들은 남의 것을 훔쳐 먹으려는 것이냐!”
도적들은 마음이 찔렸는지 그대로 돌아갔다. 선생님이 돌아오시자 이 소년은 자랑스러운 듯이 있었던 일을 고했는데 프랜시스가 섭섭한 투로 말했다.
“그건 네가 실수했다. 지금 곧 도적들에게 가서 이 빵과 포도즙을 주고 오너라.”
소년은 선생님의 말씀대로 그들을 바로 쫓아가서 빵과 포도즙이 든 선물을 전달했는데, 그들은 그것을 먹지 않고 소년을 따라 수도원으로 왔으며, 회개하고 프랜시스의 제자들이 되었다. 성도가 관대함을 보일 때 이러한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
이렇게 보면,
온유와 관용이 이웃을 향한 성도의 사랑이라면
모든 생각을 오직 그리스도에게 복종시키는 일은 하나님을 향한 마음입니다.
[마무리하는 말]
옳다 인정함을 받는 자는 자기를 칭찬하는 자가 아니요 오직 주께서 칭찬하시는 자입니다.
어떻게 옳다 인정함을 받을 수 있습니까?
1. 그리스도의 온유와 관용을 입을 때
2.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할 때
옳다 인정함을 받습니다.
[고후10:17-18]
17.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할지니라
18. 옳다 인정함을 받는 자는 자기를 칭찬하는 자가 아니요 오직 주께서 칭찬하시는 자니라
주께서 칭찬하십니다.
현관에 전등을 밝게 바꾸었습니다.
그것이 현관에서 본당까지 들어오는 작년에 새로 깔았던 타일을 아름답게 보이게 합니다.
온유와 관용으로 옷입고
그 생각을 사로잡아 주께 복종시킬 때,
주님께서 칭찬하십니다.
그가 옳다 인정함을 받습니다.
[누가복음 16:1-9]
옳지 않은 청지기의 비유가 나옵니다.
1. 또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떤 부자에게 청지기가 있는데 그가 주인의 소유를 허비한다는 말이 그 주인에게 들린지라
2. 주인이 저를 불러 가로되 내가 네게 대하여 들은 이 말이 어찜이뇨 네 보던 일을 셈하라 청지기 사무를 계속하지 못하리라 하니
3. 청지기가 속으로 이르되 주인이 내 직분을 빼앗으니 내가 무엇을 할꼬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빌어 먹자니 부끄럽구나
4. 내가 할 일을 알았도다 이렇게 하면 직분을 빼앗긴 후에 저희가 나를 자기 집으로 영접하리라 하고
5. 주인에게 빚진 자를 낱낱이 불러다가 먼저 온 자에게 이르되 네가 내 주인에게 얼마나 졌느뇨
6. 말하되 기름 백 말이니이다 가로되 여기 네 증서를 가지고 빨리 앉아 오십이라 쓰라 하고
7. 또 다른 이에게 이르되 너는 얼마나 졌느뇨 가로되 밀 백 석이니이다 이르되 여기 네 증서를 가지고 팔십이라 쓰라 하였는지라
8. 주인이 이 옳지 않은 청지기가 일을 지혜 있게 하였으므로 칭찬하였으니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
9.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없어질 때에 저희가 영원한 처소로 너희를 영접하리라
옳지 않은 청지기의 비유에서 주인의 칭찬은 미래를 준비했다는 것입니다.
자기 재물을 제 마음대로 사용한 종을 도덕적으로 보면 나무래야 마땅하지요.
우리가 영원한 처소를 구원을 준비하고 칭찬받도록 말씀하신 것이지요.
[고린도전서 4:5]
5.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 것도 판단치 말라 그가 어두움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그 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께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
[성경본문]
1. 너희를 대면하면 유순하고 떠나 있으면 너희에 대하여 담대한 나 바울은 이제 그리스도의 온유와 관용으로 친히 너희를 권하고
2. 또한 우리를 육신에 따라 행하는 자로 여기는 자들에 대하여 내가 담대히 대하는 것 같이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나로 하여금 이 담대한 태도로 대하지 않게 하기를 구하노라
3. 우리가 육신으로 행하나 육신에 따라 싸우지 아니하노니
4. 우리의 싸우는 무기는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어떤 견고한 진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모든 이론을 무너뜨리며
5.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니
6. 너희의 복종이 온전하게 될 때에 모든 복종하지 않는 것을 벌하려고 준비하는 중에 있노라
7. 너희는 외모만 보는도다 만일 사람이 자기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줄을 믿을진대 자기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것 같이 우리도 그러한 줄을 자기 속으로 다시 생각할 것이라
8. 주께서 주신 권세는 너희를 무너뜨리려고 하신 것이 아니요 세우려고 하신 것이니 내가 이에 대하여 지나치게 자랑하여도 부끄럽지 아니하리라
9. 이는 내가 편지들로 너희를 놀라게 하려는 것 같이 생각하지 않게 함이라
10. 그들의 말이 그의 편지들은 무게가 있고 힘이 있으나 그가 몸으로 대할 때는 약하고 그 말도 시원하지 않다 하니
11. 이런 사람은 우리가 떠나 있을 때에 편지들로 말하는 것과 함께 있을 때에 행하는 일이 같은 것임을 알지라
12. 우리는 자기를 칭찬하는 어떤 자와 더불어 감히 짝하며 비교할 수 없노라 그러나 그들이 자기로써 자기를 헤아리고 자기로써 자기를 비교하니 지혜가 없도다
13. 그러나 우리는 분수 이상의 자랑을 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이 우리에게 나누어 주신 그 범위의 한계를 따라 하노니 곧 너희에게까지 이른 것이라
14. 우리가 너희에게 미치지 못할 자로서 스스로 지나쳐 나아간 것이 아니요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너희에게까지 이른 것이라
15. 우리는 남의 수고를 가지고 분수 이상의 자랑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 믿음이 자랄수록 우리의 규범을 따라 너희 가운데서 더욱 풍성하여지기를 바라노라
16. 이는 남의 규범으로 이루어 놓은 것으로 자랑하지 아니하고 너희 지역을 넘어 복음을 전하려 함이라
17.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할지니라
18. 옳다 인정함을 받는 자는 자기를 칭찬하는 자가 아니요 오직 주께서 칭찬하시는 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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