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는 말]
덕을 세운다는 말은 이웃들에게 덕을 세운다는 뜻입니다. NIV 성경에서는 '건설적'(constructive)’이란 말로 ‘세운다’를 번역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 덕을 세우는 일은 교회 유익을 건설하는 것이니, 교회를 세우는 것이요, 건강한 교회를 이루는 지름길입니다.
기독교인이 세상에서 힘쓰는 일이 무엇입니까?
[로마서 14:19]
그러므로 우리가 화평의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 일을 힘쓰나니
화평의 일이요 다른 한 편에는 덕을 세우는 일입니다.
세상에 덕을 construction하는 일입니다.
세상에 덕을 세우기 위해 믿는 성도들이 무엇을 합니까?
1. 자기의 유익보다 남의 유익을 구합니다.
[고전10:23-24]
23.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은 아니니 24.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
[고전10:33]
33.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하라
오늘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개인적인 차원의 자유보다는 교회 공동체의 유익을 위한 통해 구원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8장에서 우상에게 드려진 제물을 먹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는 아무것도 아님을 말씀하셨습니다.
[고전8:1]
1. 우상의 제물.에 대하여는 우리가 다 지식이 있는 줄을 아나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
=남의 유익을 구하는 사랑이 바로 덕을 세웁니다.
성숙한 기독교인이 우상의 제물을 능히 먹을 수 있는 자유가 있다는 지식으로 교만하게 쓰지 아니하고,
그 자유를 연약한 이웃의 신앙적 유익을 위하여 먹지 않았다면
그것은 남의 유익을 위하는 사랑이요,
이는 나아가 덕을 세우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사랑하여
연약한 지체의 유익을 위하여
덕을 세워갈 때
하나님께서 인정하십니다.
[고전8:3]
3. 또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면 그 사람은 하나님도 알아주시느니라.
남의 유익을 구하는 삶은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 안에서 가능합니다.
남의 유익을 구하는 삶은 모든 이기적인 욕심을 극복하게 합니다.
남의 유익을 구하는 삶은 구원으로 인도하는 덕입니다.
타인을 위하여 자유를 사용하는 것은 공동체를 위해 지켜야 할 원리이자 그리스도인이 덕을 세우는 방법입니다.
(롬 14: 7)
7.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8.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9.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라
누가 그런 사람일 수 있겠습니까?
바나바가 그런 사람일 수 있겠습니다.
그는 초대교회가 서는 과정에 자기의 밭을 팔아 사도들의 발아래 놓은 사람입니다.
일어나는 교회에 파괴적인 역할을 하던 사울이 주님을 만나 회심하고 교회에 돌아오자 그를 보호하고 변호하고 사도들에게 접목시키는 '건설적인'(constructive)’ 역할을 하도록 세하였습니다.
마가는 신앙 초기에 제1차 선교여행에 동행하는 저력을 발휘했으나 중도에 포기하고 돌아옴으로 말미암아 부덕한 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바나바를 만나 교회를 세우는 사람 마가를 우리는 만나게 됩니다. 바나바는 그를 '건설적인'(constructive)’ 역할을 하도록 세웠습니다.
이런 ‘남을 위하는 사랑’은 초대교회를 세우는 덕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바나바를 덕이 있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2. 양심의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토요일 밤 설교를 준비하다가 언론에 보도된 흥미 있는 글을 하나 읽게 되었습니다.
(2013.11.16 조선일보)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마이클 노턴(Norton) 교수는 최근 출간한 책 '당신이 지갑을 열기 전에 알아야 할 것들(원제 Happy money)'이란 책을 출간했습니다.
그는 통념과 달리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다만, 소비를 통해 만족을 느끼는 법을 배워야 한다며 이런 말을 합니다.
“행복이란 쌀쌀한 가을날 몸을 따뜻하게 덥혀주는 커피 한 잔처럼 소소하지만 즐거운 체험을 통해 얻을 수 있다.”
체험은 추억으로 남아 훨씬 오래 지속된다는 것입니다. 좋은 사람 만나 대화하는 사소한 체험으로도 행복감 느낄 수 있다는 겁니다.
“양손에 쇼핑백이 가득 들릴 정도로 돈을 써도 마음속 공허감은 쉽사리 채워지지 않는다. 그렇게 충동적으로 사들인 물건도 장롱 속에 처박힌 채 서서히 잊히기 십상이다.”
돈을 많이 벌면 벌수록 점점 더 많이 소비를 하게 되고, 결국엔 그러기 위해서 더 많은 일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럴수록 스스로 즐길 수 있는 시간을 박탈당합니다. 이건 마치 덫에 걸린 것과 같아요. 악순환이 이어지는 거지요. 더 많은 돈을 벌어서 더 큰 집을 사게 되면 그 큰 집을 유지하기 위해 더 많은 시간을 일해야 하고, 그렇게 되면 자신을 위해 투자할 시간은 줄어드는 겁니다.
대신 그는 체험을 구매하라고 권합니다.
그는 사람들이 물건을 구매할 때보다 체험을 구매할 때 더 큰 행복감을 느낀다고 말합니다.
물질을 통해 얻는 기쁨은 빨리 사라지는 반면, 체험에서 오는 기쁨은 훨씬 오래 지속됩니다.
"소소하고 짧은 시간의 경험이라 할지라도 물건을 구매하는 것보다 더 행복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먼저 지불하고, 나중에 소비하라
先지불 後소비 법칙 비용을 권합니다. 먼저 다 치른 뒤 지출 부담 잊을만한 2주 후 물건 배달받으면 기쁨이 배가 된데요.
우리는 소비를 할 때도 충분히 훈련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답니다. '지금 내가 하는 소비가 정말 나를 행복하게 해 줄 것인가' '이것이 나에게 꼭 필요한 소비인가'라고 점검하는 것이지요.
우리 사회에선 일반적으로 집을 소유하는 것이 행복해지기 위한 필수 조건이라고 간주된다. 하지만 노턴 교수는 "살고 있는 집과 행복 지수는 비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집을 사느라 엄청난 빚을 져야 하고, 빚을 갚아야 한다는 스트레스와 경제적 부담감이 매일 나를 압박한다면 그래도 그 집을 가져야 할까요? 그런데 집 때문에 매일 스트레스를 받아야 한다면 그건 당신의 행복 지수에 커다란 악영향을 줄 수밖에 없어요. 게다가 교외에 집을 사는 바람에 매일 몇 시간씩을 출퇴근길에 버려야 한다면 스트레스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장시간 출퇴근 교통 정체에 시달려야 하는 많은 직장인은 고급 승용차를 사서 스트레스를 줄여보려 하지만, 고급 자동차는 통근 시간의 고통을 완화하는 데 별로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동차 할부금을 갚기 위해 더 많은 시간을 일해야 하는 악순환에 빠지기 쉽습니다. 차라리 '시간을 구매해서' 만족감을 느끼라는 것입니다."
이런 글을 쓰고 살아가는 사람을 양식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는 2007•2009년 '뉴욕타임스 매거진'이 선정한 '올해의 아이디어'에 이름을 올리고, 작년엔 미국 월간지 '와이어드(Wired)'에서 '세상을 바꿀 50인' 가운데 한 명으로 뽑힌 사람입니다.
우리는 이런 양심의 소리를 듣는 것이 흥미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양심의 소리를 들으라 말씀하십니다.
[고전10:25-29]
25. 무릇 시장에서 파는 것은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
26. 이는 땅과 거기 충만한 것이 주의 것임이라
27. 불신자 중 누가 너희를 청할 때에 너희가 가고자 하거든 너희 앞에 차려 놓은 것은 무엇이든지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
28. 누가 너희에게 이것이 제물이라 말하거든 알게 한 자와 그 양심을 위하여 먹지 말라
29. 내가 말한 양심은 너희의 것이 아니요 남의 것이니 어찌하여 내 자유가 남의 양심으로 말미암아 판단을 받으리요
믿음이 강한 자는 고기를 먹더라도 자유함으로 인하여 양심의 거리낌을 받지 않습니다. 제물로 바쳐진 동물의고기도 우상의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는 하나님의 것이기에 그 제물 자체는 더러운 것이 아닙니다. 또한 우상 제물로 쓰여진 고기를 먹는다 해도 그 음식이 본래 의도된 목적대로 사용된 것이므로 조금도 거리낄 것이 없습니다.
어떤 분이 우리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묵상하며 이런 글을 썼습니다. 말만 들어도 가슴이 뛰는 내용이라 나눕니다.
1. 지구가 태양의 주위를 약 10만 5천Km의 속도로 회전한답니다. 비행기보다 1000배 이상이 빠릅니다. 맞습니까?
그것도 정확히 365일에 한 바퀴 돌고 있습니다.
2. 또 24시간에 한 바퀴 자전합니다. 일 분도 늦거나 빠르지도 않게 돕니다. 태양과 조금 더 가까이 가면 우리는 타 죽게 되고, 조금 더 멀리 떨어지면 얼어 죽는답니다.
3. 그렇게 빠르게 도는데도 바닷물이 쏟아지지도 않고 사람이 떨어지지도 않습니다.
그 지구 위에 하나님이 햇빛.공기. 비까지 내려주시고 오곡백과가 열매 맺어 우리가 살 수 있게 하십다.
이 놀라운 창조주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아 마땅하지요. 천상천하에 우리 하나님 같으신 분이 어디 계시겠습니까?
우리 하나님만 예배를 받으실 일입니다. 다른 모든 우상은 헛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고기를 사먹는 일에 있어 거리낄 것이 없습니다. 이것이 믿는 자의 양심입니다.
그러나 여기 또 하나의 양심이 있습니다. 믿음이 약한 자를 위한 양심입니다.
곧, 우리 믿는 성도의 양심은 29절에서 말씀하시는 것처럼
'내가 말한 양심은 너희의 것이 아니요 남의 것’입니다.
믿음이 강한 자들은 개의치 않고 사먹을 수 있는, 시장에서 파는 고기가 우상의 제물임을 믿음이 약한 자가 알게 되었을 때가 문제입니다.
여기서 ‘남의 것’ 곧 믿음이 약한 자들을 위한 양심이 살아야 합니다.
이 지점에서 믿음이 강한 성도의 양심이 working해야 합니다.
믿음이 약한 자를 위한 양심입니다.
믿음이 약한 자들은 우상 제물 안에 무슨 신비한 능력이 있는 것처럼 여겨서 먹는 것에 특별한 의미를 두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는 것이 지혜롭습니까? 양심을 따라 사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3. 감사함으로 참여할 일입니다.
[고전10: 30-31]
30. 만일 내가 감사함으로 참여하면 어찌하여 내가 감사하는 것에 대하여 비방을 받으리요
31.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기독교인이 이교도의 집에 초청받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될 때 그것을 하나님께서 주신 음식으로 생각하고 감사하며 먹는다면 윈리적(原理的)으로는 합당합니다.
고국에서는 이번 주일에 추수감사주일로 예배를 드립니다.
짐 스토벌의《최고의 유산 상속받기》에서 이런 명언을 남기고 있습니다.
“감사란 참 아이러니컬한 것이다.
정말 감사해야 될 것 같은 사람들은 감사할 줄 모르고,
거의 아무 것도 없는 사람들은 많은 경우 감사하면서 살거든. ”
로빈슨 크루소는 배가 파선된 후 이리저리 표류하다가 무인도에 이르렀습니다.
절체절명의 순간에 그는 무엇을 하면서 이 난관을 헤쳐 나갈 것인가를 생각하였습니다.
외로운 섬에 던져진 절망이 다가왔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죽었는데 자신은 살아있다고 생각하니 소망이 생겼습니다.
사람 사는 세상에서 단절되었고 고 생각하니 절망이 다가왔습니다. 하지만 굶어죽지 않았다고 생각하니 소망이 생겼습니다.
옷이 없다 절망이 다가왔습니다. 하지만 날씨가 따뜻하다고 생각하니 소망이 생겼습니다.
외부의 공격을 방어할 도구가 없다고 생각하니 절망이 다가왔습니다. 하지만 공격을 해오는 짐승이 없다고 생각하니 소망이 생겼습니다.
필요를 채워줄 상대가 없다고 생각하니 절망이 다가왔습니다. 하지만 해안이라 필요한 것을 채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셨다고 생각하니 소망이 생겼습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인해 그는 비참해서 감사하지 못할 것은 없다 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주어진 모든 일에 감사함으로 참여하면 덕을 세우게 됩니다.
주의 일에 감사함으로 참여하는 것은 덕을 세웁니다.
주의 일에 참여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행하신 일에 대한 감사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Moody 선생이 어느날 시편 103편 2절에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하는 구절을 읽고 묵상하다가 문득 깨닫기를
“하나님께서 주신 그 은택을 모두 기억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 은혜를 다 잊어서는 안된다. 그 중 얼마라도 기억하자.”
그리고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에 반응해야 합니다.
교회에서 성도들은 여러 가지로 헌신합니다.
물질로 봉사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시간을 내어 봉사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달란트를 가지고 헌신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직분을 맡아 충성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완전히 헌신적으로 삶을 드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복음전함으로 덕을 드러낼 수 있다고 베드로 사도는 은혜 중 전합니다.
[벧전2:9]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선한 행실로 덕을 드러낼 수 있습니다.
보석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이 은혜 충만한 잠언은 그 마지막 부분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잠언31:31]
31. 그 손의 열매가 그에게로 돌아갈 것이요 그 행한 일로 말미암아 성문에서 칭찬을 받으리라
덕을 세우는 언어로 반응할 수 있어요.
[엡4:29]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세상에서는 일하는 대로 보수가 나옵니다.
그러나 교회에서의 봉사는 철저히 헌신입니다.
감사는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릴 수 있는 아름다운 반응입니다.
나아가 감사하기에 삶의 여러 가지로 반응할 수 있는 것은 큰 특권입니다.
[마무리하는 말]
1.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
2. 양심의 소리를 존중하라.
3. 감사함으로 참여하라
바울 사도는 바로 이러한 덕을 세우는 일에 헌신하였습니다.
[고전10:33]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하라
이 결과는 무엇입니까?
연약한 자가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에 이르게 됩니다.
[성경본문]
23.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은 아니니
24.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
25. 무릇 시장에서 파는 것은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
26. 이는 땅과 거기 충만한 것이 주의 것임이라
27. 불신자 중 누가 너희를 청할 때에 너희가 가고자 하거든 너희 앞에 차려 놓은 것은 무엇이든지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
28. 누가 너희에게 이것이 제물이라 말하거든 알게 한 자와 그 양심을 위하여 먹지 말라
29. 내가 말한 양심은 너희의 것이 아니요 남의 것이니 어찌하여 내 자유가 남의 양심으로 말미암아 판단을 받으리요
30. 만일 내가 감사함으로 참여하면 어찌하여 내가 감사하는 것에 대하여 비방을 받으리요
31.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32.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고
33.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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