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를 본받아
(들어가는 말)
몇 년 전에는 제 아들 위로가 머리를 빨갛고 노랗게 물을 들이고 나타났습니다.
아이가 상처받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그러나 좀 단호하게 ‘좀 그렇다!’는 나의 마음에 차지 않는 의사를 말했습니다.
“어른들도 머리를 까맣게 물들이지 않아요?”
가까스로 그 대화를 빠져나왔지만, 그렇구나 하고 생각이 바꾸어졌어요. 사실 어떤 분이 좀 까만 물을 염색하고 다니시지만 나쁘게 생각되지 않거든요. 좀 불편하시겠구나! 정도지요.
이제는 청소년들도 유행처럼 머리를 물들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누가 물을 들였다 하더라도 그러려니 하는 분위기에요.
오늘 본문은 좀 이렇게 외형적인 문제를 소재로 삼고 있습니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여성들이 머리에 수건 쓰고 예배를 드리고 기도를 하고 말씀을 나누고 하는 일들을 소재로 삼았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본문을 대하면서 명심할 것은 여성들이 교회에서 예배를 드릴 때, 수건을 써야 하는가 아니면 그냥 머리로 예배를 드리는 것이 좋은가의 시비를 가리자는 것이 아닙니다. .
머리에 수건을 두르지 않은 수녀보다는, 수녀가 머리에 수건을 두르니까 좀더 단정해 보입니다.
이 정도입니다.
수건을 쓰지 않는 수녀는 수건을 쓴 수녀보다 저급하다 이렇게 몰아가면 안 되겠지요.
오늘 본문 말씀은 예배 시에 여성들이 착용하는 몸차림을 소재로 성도들이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영광을 세상에 드러낼 수 있는가 하는 주제를 전해주고 계십니다.
1. 그리스도를 본받은 선진들을 본으로 삽시다.
[고전11:1]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
고린도 교회는 왜 바울 사도를 본받아야 할까요?
어떤 점에서요?
우리는 요즈음 우리 주변 교회에서는 좀 익숙하지 않은 말씀 내용을 만나게 됩니다.
[고전 11:5-6]을 한 번 보십시다.
[고린도전서 11:5]
무릇 여자로서 머리에 쓴 것을 벗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니 이는 머리를 민 것과 다름이 없음이라
[고린도전서 11:6]
만일 여자가 머리를 가리지 않거든 깎을 것이요 만일 깎거나 미는 것이 여자에게 부끄러움이 되거든 가릴지니라
본문 말씀을 보면, 고린도 교회에서 일부의 여자들이 머리에 쓴 수건을 벗어던지고 기도를 하고 예언을 하였다는 것을 만나게 됩니다.
우선 교회에서 여자들이 머리에 수건을 쓰는 일은 천주교에서 보는 모습들입니다. 수녀들이 하얀 수건을 쓰고 활동하는 것을 보는 것은 매우 눈에 익은 모습입니다.
이슬람의 히잡까지 들먹이지 않더라도 메노나이트와 같은 상당히 보수적인 교파에서 여자들은 머리에 수건을 씁니다.
오늘 말씀과 같은 성경이 근거가 되지요.
그런데 왜 좀 생소하게 들리는 이 말씀이 본문에서 등장할까요?
일부 고린도 교회의 여성들이 은혜를 받았습니다.
남성들처럼 수건을 벗어 던지고 공중 앞에서 기도하고 또 예언하였기 때문입니다(5절).
참고로 당시 유대교에서는 여성들이 외출할 때에 머리에 수건을 쓰고 나갔습니다.
물론 남성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지 못하였습니다.
유대 성전에는 황금문을 지나 이방인의 뜰을 만나고, 다음 미문을 지나면 여인의 뜰이라는 곳에 이르렀습니다. 이어 니가노르문을 지나면 남자의 뜰에 도달했습니다.
이어서 제사장의 뜰이 있구요. 이어서 성소와 지성소가 이어집니다.
이방인의 뜰이 따로 있는 것처럼 여인의 뜰이 따로 있었습니다.
고린도 교회에 이런 여인의 뜰이 있기는 힘들었겠지만, 아마 머리에 수건을 쓰는 일만은 보편화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고린도 교회에 다니던 여인들이 이른바 은혜를 받았어요. 기도문이 열리구요. 예언하는 분들도 일어났습니다.
우리는 예언하면 점쟁이가 앞 일을 말하는 그런 것만 생각하기 쉬운데 그건 아니에요. 프로페토이우사란 말을 쓰고 있는데요. 예언자, 바로 선지자를 말하지요. 이사야와 예레미야와 같이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사람입니다. 우리 성경 번역도 ‘미리 예’를 쓰고 있지 않습니다. 본문에서의 예언은 말씀을 선포한다는 뜻이 있습니다. 구약 성경을 적용하는 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일, 등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일에 쓰임받는 사람 정도로 생각하면 됩니다.
그런데 이 분들이 은혜를 받고 좀 오버했어요. 수건을 벗어던지고, 교회 질서를 넘어버린 것입니다.
교회 질서는 존중해서 나쁠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주에 우주의 질서를 두셨습니다.
가정에는 가정의 질서를 두셨어요.
거리를 가면 교통질서가 있습니다.
이런 질서를 존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많이 교만해진 것이지요.
몇 년 전에는 배꼽티가 유행하던 때가 있었는데, 우리 교회 학생이 그런 비슷한 옷을 입었다고 해서 어른들이 조심스러워하던 것을 보았습니다.
어떤 젊은이가 어른들의 예배드리는 복장이 너무 답답하게 생각되어 스커트를 아주 짧게 착용하고 교회에 나올 수 있습니다.
외적 복장의 변화가 신앙의 본질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는가 입니다.
그리스도는 인류의 머리이십니다. 하나님과 동등된 분이십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하지 않으십니다. 종의 형체를 입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머리인 것 같이 그리스도는 전 인류의 머리이십니다.
바울 사도가 베푼 이적이나 선교하기 위해서 여행한 거리나, 복음 전한 시간들을 계산하면 아마예수 그리스도를 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철저히 예수님의 겸비를 본받습니다. 그리고 종으로 주님을 영화롭게 합니다.
1] 바울사도는 그리스도의 권위 아래서 겸손을 본받았습니다.
바울은 결코 원래 겸손한 자가 아니었습니다.
기고 만장하여 기독교인의 씨를 말리겠다는 교만으로 가득한 사람입니다.
지식을 자랑한 사람입니다.
혈통을 자랑한 자입니다.
율법으로 무장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후, 그는 낮아졌습니다.
그리스도를 본으로 삼아서 낮아졌습니다.
근본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종의 형체를 입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이오, 가말리엘의 문하생이오, 따르는 것처럼 그들이 자기를 따르기를 원했습니다. 그리스도의 본은 흠이 없지만 사람은 그렇지 못합니다.
그리스도를 위해 누구보다 고난을 당하고 충성을 한 사람입니다.
바울 사도는 그리스도를 만난 후, 자신이 배설물에 불과한 것을 깨달았습니다.
여전히 바울은 열심 있는 자였습니다, 유대인 중에서도 내놓을 만한 베냐민 지파였고, 영적인 체험으로 보더라도 3층천까지 경험한 자였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한없이 겸비하여졌습니다.
그리스도의 겸비함을 본받은 것입니다.
대부분의 바울 서신은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란 바울 사도 자신을 표현한 말입니다.
그는 예수님을 만났을 때, 겸손하신 하나님 나라의 왕이셨습니다.
그는 그분의 종으로서 주인의 겸손함을 체 받기 위해 전심을 기울였습니다.
바울 사도는 자신의 정체성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 표현하였을 뿐만 아니라,
삶 자체를 철저히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 살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후진들에게 자신이 그리스도의 겸비를 본받은 것처럼 자신을 본받으라 합니다.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인정하고 종의 직분을 감당하는 것은 건강한 일꾼의 자세입니다.
2. 사도가 전해 준 가르침을 본받읍시다.
[고전 11:2]
너희가 모든 일에 나를 기억하고 또 내가 너희에게 전하여 준 대로 그 전통을 너희가 지키므로 너희를 칭찬하노라
오늘 말씀은 고린도 교회가 칭찬받을 만한 교회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먼저 믿음의 길을 간 사도를 기억하는 것 때문입니다.
고린도 교회가 어떻게 세워졌습니까?
사도의 헌신과 희생을 통해서 세워졌습니다.
먼저 된 분들의 신앙을 기억하고 지키는 자세는 중요합니다.
서머나 교회 젊은이들이 어른들에게 인사를 잘한다고 합니다.
좀더 잘했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시는 분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어른들의 신앙경주에 경의를 표하는 것입니다.
오늘의 서머나 교회가 어떻게 서 있습니까?
먼저 된 귀한 분들을 통해서입니다.
앞장서서 헌신하신 분들을 통해서입니다.
서머나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
진리에 순종함으로
하나님 가족답게 사랑함으로
세상에 나가 선교함으로
하나님의 꿈을 이루어갑니다.
이런 교회 비전을 두고 지난 16년을 경주해 왔습니다.
진리 사랑 선교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남기신 명령입니다.
어떻게 진리애 반응하는 삶을 살 것인가?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을 실천하고
직접 선교에 참여하는 길을 열어 가자!
그렇게 하면 하나님의 꿈에 동참할 수 있다.
이 일을 위해 교회는 그동안 나름대로 노력을 기울여 왔습니다.
1]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진리로 받는 축복을 주셨습니다.
성경은 우리 모두에게 천국 가는 지도가 되었습니다.
우리에게 유일한 권위는 성경입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2]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지난 16년간 사랑하는 마음을 가장 귀한 가치로 삼게 해주셨습니다.
우리들 모두가 서로 다른 생각과 생활 습관을 가지고 만났습니다.
그러나 싸우고 나누어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사랑이 가장 소중한 유산으로 삼았고
형제 이웃 사랑을 가장 소중한 가치로 삼고 살아왔습니다.
3] 원주민 마을에 한 해도 빠짐없이 찾아갔습니다.
우리 2세들이 앞장 서서 이제는 많이 친구가 되었어요.
동족들을 찾아갔습니다.
동족 찾아가는 일을 형제 찾아가는 것처럼 자연스럽습니다.
어떤 특정한 사람의 전유물이 아니에요.
우리 중 누구도 이상한 사상을 가진 분은 없어요.
그냥 동족을 형제로 만나가는 것입니다.
2020 서머나 교회는"예수님이 생각나는 교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예수님이 생각나는 교회"가 되면 하나님의 꿈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샨텔은 위로의 친구입니다.
교회에 나와
한글을 배우고
예배에 참석하고
이제는 영어를 가르칩니다.
저는 이 친구들이 정말 잘 사귀고 결혼도 하고 서머나 교회의 기둥이 되었으면 합니다.
서머나교회의 집사가 되고
장로도 될 만한 성장을 이룰 수 있었으면 합니다.
이 일을 이루기 위해 기도해주시지 않겠습니까?
우리 어른들은 애를 써왔습니다.
오늘 저녁 은퇴하시는 장로님 집사님 권사님들도 "예수님이 생각나는 교회"가 되는 꿈을 안고 기쁨으로 우리 자신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오늘 취임하는 피택장로님들도 "예수님이 생각나는 교회"가 되기 원하면서 임직을 받습니다.
오늘 서머나 교회는 은퇴 예배를 드립니다.
우리 서머나 교회는
사도가 전해 준 진리
사도가 전해 준 사랑
사도가 전해 준 선교
에 굳건히 뿌리를 내리고 사도들이 걸어간 길로 나아갈 것입니다.
3.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고전 11:7]
남자는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이니 그 머리를 마땅히 가리지 않거니와 여자는 남자의 영광이니라
오늘 말씀의 내용을 간단히 살펴보니 이렇습니다.
남자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화가의 위대한 작품은 그 화가의 영광입니다.
최후의 만찬이란 작품은 바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영광입니다.
천지창조는 그 그림을 그린 미켈란젤로의 영광입니다.
만종은 밀레의 영광입니다.
황소머리란 작품은 피카소의 영광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남자는 바로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범죄하기 전 아담, 하나님의 형상대로 빚은 바 된 아담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그 아담은 하나님의 형상을 드러내고 있었기 때문에 영광의 빛이 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유대신학을 연구한 분에 의하면, 아담이 범죄함으로 얼굴의 광채를 잃어버렸다고 합니다. 원래 범죄하기 전의 아담 얼굴은 하나님의 영광으로 가득 차 있어서 태양보다 더 빛이 났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가 범죄한 후, 하나님의 영광을 잃어버렸답니다.
그리고 보면,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려는 것은 사탄의 유혹이 얼마나 아담을 초라하게 만들었는지 모릅니다.
아담은 범죄한 후, 땅이 열매 식물의 열매만 잃어버린 것이 아닙니다. 그가 땀을 흘리며 땅을 파야 겨우 소득을 얻는 초라한 삶은 죄로 인해 온 것입니다.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은 변화산 상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 하나님의 영광으로 빛나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사도 바울도 다메섹 도상에서 하나님의 영광으로 가득 찬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습니다.
우리가 죄 아래서는 땅에 속한 아담의 형상을 반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회복된 하나님의 형상을 반사하게 된 것입니다. 이는 놀라운 소식입니다.
따라서 남자는 머리를 가리지 말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때문이라는 말씀입니다.
더구나 구원받은 사람은 구원의 주님께서 베푸시는 그 신비하고 오묘한 죄 용서와 사랑, 놀라움을 나타내 하나님께 칭송을 가져옵니다. 아담이 잃어버렸던 하나님의 영광과 형상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김세완 교수는 이렇게 말합니다.
“예배 때는 모자를 벗어라. 예배 때 우리는 하나님과 만나고,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하고, 그래서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를 통해서 환히 반사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본질이 찬란히 빛나도록!”
남자가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한 가지 사실은 머리를 수건으로 가려서는 안 되는 이유입니다.
여성은 왜 모자를 써야 합니까?
하나님의 영광을 직접 드러내는 것이 여성의 사명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여성의 사명은 남자의 영광을 드러내도록 지음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한 단계 더 나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높고 위대하심과 지혜, 사랑, 오묘하심을 구원받은 남자가 드러내는 것입니다.
예배드릴 때 남자가 모자를 벗는 이유입니다.
신학교에서 졸업식 때, 모자를 쓰고 하다가도 하나님께 기도드릴 때는 모자를 벗는 경우도 있는데 이런 신학적인 배경을 깔고 있습니다.
여자는 '남자의 영광'입니다(7절).
그러므로 여자는 남자와 같이 될 필요가 없습니다.
권세 즉 베일은 여자가 남자의 권세 아래 있다는 계급적인 표시라고만 생각할 일이 아닙니다.
여자가 남자의 영광이라는 표입니다.
오늘 성경에서 여자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는데 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영광일 수 있는데, 중간에 한 단계를 더 거칩니다. 왜냐하면 여자는 남자에게서 났기 때문입니다. 남자가 여자에게서 난 것이 아니라, 여자가 남자에게서 났습니다.
남자가 여자를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것이 아니라, 여자가 남자를 위하여 지으심을 받았습니다.
창2:18-23은 무엇을 말합니까?
돕는 배필로 여자가 지음을 받았다고 말씀하십니다.
아담의 갈비뼈로 지음을 받았다고 말씀하세요.
그래서 여자는 남자의 영광입니다.
남자는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이고, 여자는 남자의 영광이다(7). 남자는 하나님의 영광으로 살아가고, 여자는 남자의 영광으로 살아갑니다. 남자는 하나님의 얼굴이고, 여자는 남자의 얼굴입니다.
남자와 여자에 나타난 영광을 해의 영광과 달의 영광으로 비유하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달의 영광은 해의 빛을 받아 반사하는 영광입니다. 햇빛처럼 강렬하지는 않지만, 은은하고 아름답습니다. 해를 직접 바라볼 때, 아름답다기보다 눈이 부십니다. 햇빛은 달에 비추든지 호수에 비추든지, 구름에 반사될 때 아름답습니다.
그래서 달을 바라보는 것은 부담이 없습니다.
그런데 여자는 왜 머리를 가립니까?
예배에서 남편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 아름답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직접 드러내는 일이라면 얼마든지 수건을 벗어야겠지만, 남편의 영광이 드러나기 때문에 여자는 머리를 가린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야 할 예배에서 남편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는 말씀입니다.
여자도 남자와 같이 마땅히 드러내야 할 것은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다만 달이 태양의 빛을 받아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처럼 여자는 남편의 영광을 드러냄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좀 은은하고 강렬하지는 않지만 얼마든지 아름답고, 의미 있는 것입니다.
[마무리하는 말]
지난 주 서머나 교회의 어른 한 분이 교회에서 젊은이들의 인사예절에 대해 말씀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젊은이들이 믿음의 선진들게 허리를 굽혀 인사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겠습니까?
어른들이 젊은이들에게 다가가 따뜻한 미소로 손을 잡아주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겠습니까?
우리 유아부 부모님들 가운데 아름다운 인사를 아이들에게 가르칩니다.
“배꼽인사!”
쬐그만 아이들이 허리를 90도로 굽혀서 인사를 하니 참 귀엽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데 어린 아이들이 인사하는 것과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깊이 생각해보면,
겸손하여지는 것을 배워가는 것이니 하나님께 영광이 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전통이 되어 서머나에 오시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런 인사가 계속된다면 서머나 교회에 다니면서 구원받을 사람도 늘어날 것이니 하나님께 영광이 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인사하는 자리에 늘 머물면 달의 영광을 드러낼 것이니 하나님께 영광이 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 성도들이 교회는 하나님께서 세상 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뽑아 하나님과 그 나라를 위해 구별한 거룩한 공동체입니다.
어떤 공동체보다 품위 있고, 구별된 모임입니다.
그리고 교회의 존재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을 세상에 드러내는 것입니다.
[설교성경본문]
1.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2. ○너희가 모든 일에 나를 기억하고 또 내가 너희에게 전하여 준 대로 그 전통을 너희가 지키므로 너희를 칭찬하노라
3. 그러나 나는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
4. 무릇 남자로서 머리에 무엇을 쓰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요
5. 무릇 여자로서 머리에 쓴 것을 벗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니 이는 머리를 민 것과 다름이 없음이라
6. 만일 여자가 머리를 가리지 않거든 깎을 것이요 만일 깎거나 미는 것이 여자에게 부끄러움이 되거든 가릴지니라
7. 남자는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이니 그 머리를 마땅히 가리지 않거니와 여자는 남자의 영광이니라
8. 남자가 여자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여자가 남자에게서 났으며
9. 또 남자가 여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지 아니하고 여자가 남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은 것이니
10. 그러므로 여자는 천사들로 말미암아 권세 아래에 있는 표를 그 머리 위에 둘지니라
11. 그러나 주 안에는 남자 없이 여자만 있지 않고 여자 없이 남자만 있지 아니하니라
12. 이는 여자가 남자에게서 난 것 같이 남자도 여자로 말미암아 났음이라 그리고 모든 것은 하나님에게서 났느니라
13. 너희는 스스로 판단하라 여자가 머리를 가리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마땅하냐
14. 만일 남자에게 긴 머리가 있으면 자기에게 부끄러움이 되는 것을 본성이 너희에게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15. 만일 여자가 긴 머리가 있으면 자기에게 영광이 되나니 긴 머리는 가리는 것을 대신하여 주셨기 때문이니라
16. 논쟁하려는 생각을 가진 자가 있을지라도 우리에게나 하나님의 모든 교회에는 이런 관례가 없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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