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15 March 2015

고전11:17-34 기다리는 덕

[들어가는 말]

     로마를 방문하여 카타콤을 가본 적이 있습니다.
성찬 흔적이 남아 있었습니다.

     96년도에 중국을 처음 갔을 때입니다.
성례를 그리워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지금도 고난을 받는 땅에 성도들이 가장 그리워하는 건 성례입니다.

     성례는 그래서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설렘 자체였습니다.
그리고 현대교회 성도들에게 설렘 자체입니다.

     오늘 우리는 기독교 보배인 성례란 의식을 소제로 펼치는 기다림

     왜입니까?



1. 성찬은 성도의 유익이 됩니다.

[고전11:17]
17. 내가 명하는 이 일에 너희를 칭찬하지 아니하나니 이는 너희의 모임이 유익이 못되고 도리어 해로움이라


1] 성찬은 유월절 무교병과 구원의 피에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참된 백성이 됩니다.
그런데 성찬은 유월절 무교병과 구원의 피에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유월절에 받는 떡과 양의 피는 바로 '영적인 이스라엘'이 받을 구원의 예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흘리신 보혈과 찢기신 몸은 구원받은 백성이 그 받은 구원을 성찬을 통해 기념하고 전하는 상징적 예식입니다.  

2] 성찬은 예수님께서 잡히시던 날 밤 제정하셨습니다.

[고전11:23-24]
23.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24. 축사하시고 떼어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예수님께서는 배반당하시던 그날 밤에 가룟 유다가 함께 있는 상황에서 자신의 죽음에 대한 성만찬 규례를 제정하셨습니다.

      떡이 한 덩어리인 것처럼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몸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몸을 상징하는 한 덩어리의 떡을 떼는 의식을 통하여 그리스도와 더불어 모든 교인들이 하나를 이루게 됩니다

3] 성찬은 성령강림절에 풍성해졌습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오순절 성령강림절에 시작됩니다. 교회는 성령 받은 하나님의 백성된 사람들이 성령께서 임재하심으로 시작된 모임입니다.
그날에 성령의 사람들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주님 몸된 교회를 이루고 주님께서 명하신 성찬에 참여하였습니다.

[행2:44-46]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주며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성찬의 목적은 하나님을 예배하고 명하신 그리스도의 규례를 따라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기념하고 나아가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4] 성찬이 분쟁으로 훼손됩니다.

[고전11:18-19]
18. 먼저 너희가 교회에 모일 때에 너희 중에 분쟁이 있다 함을 듣고 어느 정도 믿거니와
19. 너희 중에 파당이 있어야 너희 중에 옳다 인정함을 받은 자들이 나타나게 되리라

그러나 고린도 교회에서는 성찬의 바른 정신에서 멀리 떠나갔습니다.
가난한 자와 부자 사이에서 생겨난 대립이란 인간의 죄가 성찬에서 표출된 것입니다.
사탄의 공격이 영적 이스라엘인 하나님의 참된 백성 가운데 침투한 것입니다.
고린도 교인들 가운데 일부가 자신의 이기적인 욕망을 채우기 위해 연약한 지체를 무시한 채 육신적인 만족을 추구하였던 것입니다.

이것은 명백한 죄입니다.

[고전11:27]
27.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하지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에 대하여 죄를 짓는 것이니라

성령 충만 속에 주님의 임재 가운데 이루어진 교회가 성도의 본분을 잃자, 주의 성찬은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기념하고 전하기는 커녕 욕되게 하게 되고,  결국 하나님의 백성을 무시하는 결과를 낳고 있었습니다.

     당시 주의 만찬은 '애찬'과 '성찬'(Eucharist)이 결합된 형태였습니다. 교인들은 모일 때 애찬을 나누며 교제를 나누었습니다. (행 2:46;고후 8:14).
     애찬 후에 성만찬이 행해졌습니다.

     그런데 무엇이 문제입니까?

그런데 고린도 교인들은 애찬에서부터 성도간 교제를 나누는 본질을 무시하고 먼저 먹고 취하였습니다(21절).
애찬과 성찬을 세속화시켜 버렸습니다.
그들의 성찬의 본질은 망가졌습니다.
사랑을 실천하고 교제가 이루어져야 할 기독교인들의 모임은 분쟁으로 얼룩진 것입니다.

[고전11:20-22]
20. 그런즉 너희가 함께 모여서 주의 만찬을 먹을 수 없으니
21. 이는 먹을 때에 각각 자기의 만찬을 먼저 갖다 먹으므로 어떤 사람은 시장하고 어떤 사람은 취함이라
22. 너희가 먹고 마실 집이 없느냐 너희가 하나님의 교회를 업신여기고 빈궁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무슨 말을 하랴 너희를 칭찬하랴 이것으로 칭찬하지 않노라

칭찬대신 책망을 들어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들의 성찬이 책망 받을 일임을 말씀하십니다.

[고전11:29]
 29. 주의 몸을 분별하지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

     5] 회개가 필요했습니다.

[고전11:28]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지니”


성령의 임재를 기다리는 믿음이 필요했습니다.


   
2. 성찬의 본질은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기념하고 전함입니다.

[고전11:25-29]
25. 식후에 또한 그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26.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성만찬의 의미는 '떡'이나 '포도주'가 어떤 것이냐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죽음에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죽으심은 하나님께서 우리 성도들에게 주신 은혜의 핵심입니다.

성만찬의 규례에서는 떡을 떼는 것은 고난을 당해서 찢길 그리스도 자신의 몸을 상징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자기 백성을 위해서 직접 십자가에서 내어주실 몸을 상징적으로 행한 것입니다.

 '이것을 행하여' 성만찬이 영구한 제도로서 사도들뿐만 아니라 믿는 자들까지도 영원히 하나님 사랑에 접목되게 하신 것입니다.
성만찬이 우리 성도들이  행하여야 할 규례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기념하라'하십니다.
'상기시켜 기억하라'하십니다.
유대인들이 유월절 규례를 계속 지켜왔던 것처럼 성만찬 규례를 기억하고 지키게 하셨습니다.

너희가 성만찬을 기념하며, 너희를 구원한 십자가에서 몸을 찟기시고 보혈을 흘리신 사랑을 희생을 기억하라 하십니다.

하나님의 '새 언약'은 하나님의 법을 마음에 새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바로 우리 하나님이시며,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인 관계를 맺게 하십니다.
이 은혜를 덧입은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알게 함으로 죄를 기억지 않게 하십니다.

예레미야가 말한 '새 언약'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한 예수의 '새 언약'에 대한 예표입니다.
더 이상 동물의 희생의 피로 맺는 언약이 아닌 그리스도 자신의 죽음을 통해 영원히, 단번에 이룬 새 언약입니다.

'새 언약'은 바로 예레미야가 예언한 바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취하신 새 언약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의 명령에 따라서 성만찬을 통해 이를 기념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입니다.

성찬정신은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전파하는 것입니다.


     '12 제자의 순교'란 동영상을 보면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기념하고 전하기 위해 얼마나 제자들이 치열한 삶을 살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그날까지 우리 성도들은 그분의 죽으심을 전함으로 성찬을 헛되지 않도록 기념하고 전해야 합니다.

나아가 삶에서 다비다처럼 성찬 정신을 실천해야 합니다.



     3. 성령께서 임재하시도록 서로 기다립시다.

[고전11:33]
33. 그런즉 내 형제들아 먹으러 모일 때에 서로 기다리라
34. 만일 누구든지 시장하거든 집에서 먹을지니 이는 너희의 모임이 판단 받는 모임이 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그밖의 일들은 내가 언제든지 갈 때에 바로잡으리라

     떡을 먹거나 잔을 마시는 두 가지 행위 중에 어느 하나라도 합당치 않게 행하면 범죄하는 것입니다.
먹고 마시는 것 자체에 관심을 갖고 성만찬에 참여하려면 집에 가서 먹을 일입니다.
성만찬의 목적을 분명히 이해하고 참여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
우리를 살피지 않고
성찬에 참여하면 판단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고전11:30-32]
30. 그러므로 너희 중에 약한 자와 병든 자가 많고 잠자는 자도 적지 아니하니
31. 우리가 우리를 살폈으면 판단을 받지 아니하려니와
32. 우리가 판단을 받는 것은 주께 징계를 받는 것이니 이는 우리로 세상과 함께 정죄함을 받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판단'은 하나님의 징계를 의미합니다.

(1) 회개하지 않은 악한 양심을 가지고 참여할 수 있습니다.
(2) 가난한 자들을 멸시하고 참여할 수 있습니다.
(3) 주어진 말씀에 대한 믿음이 없이 참여할 수 있습니다.
(4) 자기 성찰(self-examination))이 없이 참여할 수 있습니다.
(5) 예수의 죽음에 대해서 감사함으로 기념하지도 않고, 그를 경외하지도 않으며 타인들을 사랑하지 않고 참여할 수 있습니다.
(6) 죄인을 구원하신 그리스도의 고난에 대해 기억함과 감사함이 없이 참여할 수 있습니다.

     이 어떤 경우도 성찬식을 하기 위한 모임에서 주님을 영화롭게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판단'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징계를 받습니다.


     외적으로 떡을 떼고 잔을 받는다고 해서 그 모임이 사명을 다한 것이 아닙니다.

교인들이 성만찬을 그리스도의 고난과 성도들간의 교제로 생각지 않고 성만찬에 참여할 때, 주의 몸과 피를 범하는 죄가 있습니다.

     성만찬을 합당하게 참여하기 원한다면 해야 할일이 있습니다.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리스도의 고난에 대해 감사함으로 기념하며 고난에 동참하기를 원하는 지 살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나타내는 성별된 떡과 포도주를 존중할 일입니다.


     성만찬에 합당치 못하게 참여하면 영적 병약함과 죽음뿐만 아니라 육체적인 연약함과 죽음까지 초래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징계'는 잘못한 자식을 회개케 하기 위한 아버지의 사랑의 표현입니다.
하나님의 구속의 수단입니다.

연약한 형제들이 참여하기를 기다리는 믿음이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기다리지 못할 때 분쟁이 일어납니다. 기다리지 못할 때, 파당이 일어납니다.

     [적용] 교회 내에 존재하는 견해의 차이와 파벌은 때때로 심각한 위기를 초래합니다.

교회 내에 모든 모임에서 성령께서 임하시기를 기다리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먼저 먹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나의 어떤 견해가 관철되는 것이 우선이 아닙니다.
성령께서 임하시고
형제들이 그 견해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임을 동의하는 시간이 중요합니다.

     내가 많이 알 수 있습니다.
내가 많이 가질 수 있습니다.
내가 힘이 셀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임하셔야 합니다.

그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그러나 많은 경우에 이런 기다림이 없어요.
그 결과 위기들은 옵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인정하는 가운데서 자신들의 가난함이든 부유함이든 기다림이란 쿠션을 가질 때, 결국 성령께서 그 임재하십니다.
그 과정을 통해서 그리스도인들은 성숙한 신앙인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마무리하는 말]

성찬 속에는 기독교의 본질이 담겨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통한 구원이 담겨 있습니다.
성찬을 통하여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기억합니다.
감사합니다.
전합니다.

성찬의 참 정신은 훼손되어서는 안될 보배입니다.

우리의 삶에서 성찬이 성찬답게 열매 맺기 위해서는
첫째는 성령충만을 받아야 합니다.
둘째는 마음에 쿠션을 마련하고 연약한 형제를 기다려야 합니다.

      기다리지 못하는 까닭이 무엇입니까?

조신영 작가의 책에서 소개받은 쿠션이란 말이 생각납니다.

쿠션은 고단한 삶을 자유롭게 하려는 목적으로 쓰여진 글입니다. 쿠션이라는 제목이 의미하듯 언제나 포근하게 모든 것을 감싸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우리 독자는 이 책을 읽으면서 소원을 갖게 됩니다.

'내 안에 커다란 쿠션 하나와 커다란 조각배를 하나 가지면 어떨까? 그래서 모든 사람을 품어줄 수 있도록.'

'쿠션'이라는 마음의 자유를 가장 잘 설명한 것 중 하나가 바로 아래의 시(詩)입니다.

어떤 돌도 꽃처럼 물 위에 뜰 수 없다.
하지만 만일 그대가 배를 갖고 있다면,
그 배는 수십 킬로그램의 돌을 실어도
물 위에 뜰 것이다.
마찬가지로 그 정도의 고통이 그대 안에 있어도
배만 갖고 있다면
그대는 여전히 뜰 수 있다.

"만일 그대가 배를 갖고 있다면"

마음의 쿠션, 어떠한 돌들(자극)도 능히 띄워낼 수 있는 최고의 쿠션 '배'
중요한 것은 내 안에 조각배를 띄우는 일이다.
강과 바다가 온갖 시냇물의 왕이 될 수 있는 것은 자기를 낮추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것들은 겸손의 우물이 깊은 쪽으로 모이게 되어 있음을 명심하라.

얼마나 단순한 논리입니까?
그러나 얼마나 설득력 있는 말입니까?

강에 돌을 던지면, 돌은 강바닥에 가라앉습니다. 어떤 돌도 꽃처럼 물 위에 뜰 수 없습니다.
하지만 만일 우리가 배를 갖고 있다면, 그 배는 수십 킬로그램의 돌을 실어도  물위에 뜰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그 정도의 고통이 그대 안에 있어도 배만 갖고 있다면 그대는 여전히 뜰 수 있습니다.
우리는 즐거운 마음으로 배를 저으며 강이나 호수를 가로지를 수 있습니다.

     이 책의 저자는 우리에게 한 해답을 제시합니다.  

감싸안고, 실어나르고, 변화시킬 수 있는 마음은 쿠션을 기다립니다.
가난하고 병들고 삶이 버겁고, 유리되고 방황하는 상대방이 그들의  고통과 슬픔, 어려움이란 돌맹이를 가지고 다가올 때도  너무 걱정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들을 껴안고 물 위에 띄울 수 있는 배를 물위에 띄울 수  있다면
그 돌맹이들이 우리의 배 안에 온전히 실리기까지 기다릴 수 있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꽃피울 수 있습니다.
여전히 행복하게 살아 수 있습니다.

    작가는 적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마음에 쿠션을 가지고 있다면 조금 더 여유 있게
 조금 더 느긋하게 조금 더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거다.
어떤 한 부정적인 말이나 나의 감정을 상하게 하는 것에 대한 반응도
 이 쿠션으로 인해 정화되고 다듬어져  이 세상을 좀 더 아름답고 풍요롭게 만들 것이다.?”

     우리는 이런 기다림을 예레미야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선포한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묵상하게 됩니다.

[애가3:24-28]

24. 내 심령에 이르기를 여호와는 나의 기업이시니 그러므로 내가 그를 바라리라 하도다
25. 기다리는 자들에게나 구하는 영혼들에게 여호와는 선하시도다
26. 사람이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
27. 사람은 젊었을 때에 멍에를 메는 것이 좋으니
28. 혼자 앉아서 잠잠할 것은 주께서 그것을 그에게 메우셨음이라

[사30:15+18]
  15 주 여호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가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가 돌이켜 조용히 있어야 구원을 얻을 것이요 잠잠하고 신뢰하여야 힘을 얻을 것이거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고 18 그러나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나니 이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심이요 일어나시리니 이는 너희를 긍휼히 여기려 하심이라 대저 여호와는 정의의 하나님이심이라 그를 기다리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하나님을 기다리는 자는 복이 있습니다].

     이 두 선지자에게는 개인적으로 감당하기 힘든 바윗덩어리들이 그들을 향해 굴러오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 바윗덩어리에 깔려 납작하게 죽을 수밖에 없는 연약한 존재들이었습니다.
현실이란 바위덩어리는 너무 컸어요.

     그러나 그들은 기다렸습니다.

잠잠하고 신뢰하며 여호와를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은혜를 베풀려 일어나시는 하나님을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을 기다렸습니다.

든든한 쿠션을 가지고 기다린 것이지요.

우리 믿는 성도들은 기다리며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응답하시기까지 기다립니다.

19절을 읽습니다.

[사30:19]
시온에 거주하며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백성아 너는 다시 통곡하지 아니할 것이라 그가 네 부르짖는 소리로 말미암아 네게 은혜를 베푸시되 그가 들으실 때에 네게 응답하시리라


[성경본문]
 17. 내가 명하는 이 일에 너희를 칭찬하지 아니하나니 이는 너희의 모임이 유익이 못되고 도리어 해로움이라
18. 먼저 너희가 교회에 모일 때에 너희 중에 분쟁이 있다 함을 듣고 어느 정도 믿거니와
19. 너희 중에 파당이 있어야 너희 중에 옳다 인정함을 받은 자들이 나타나게 되리라
20. 그런즉 너희가 함께 모여서 주의 만찬을 먹을 수 없으니
21. 이는 먹을 때에 각각 자기의 만찬을 먼저 갖다 먹으므로 어떤 사람은 시장하고 어떤 사람은 취함이라
22. 너희가 먹고 마실 집이 없느냐 너희가 하나님의 교회를 업신여기고 빈궁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무슨 말을 하랴 너희를 칭찬하랴 이것으로 칭찬하지 않노라
23.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24. 축사하시고 떼어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25. 식후에 또한 그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26.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27.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하지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에 대하여 죄를 짓는 것이니라
28.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지니
29. 주의 몸을 분별하지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
30. 그러므로 너희 중에 약한 자와 병든 자가 많고 잠자는 자도 적지 아니하니
31. 우리가 우리를 살폈으면 판단을 받지 아니하려니와
32. 우리가 판단을 받는 것은 주께 징계를 받는 것이니 이는 우리로 세상과 함께 정죄함을 받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33. 그런즉 내 형제들아 먹으러 모일 때에 서로 기다리라
34. 만일 누구든지 시장하거든 집에서 먹을지니 이는 너희의 모임이 판단 받는 모임이 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그밖의 일들은 내가 언제든지 갈 때에 바로잡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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