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변화
[들어가는 말]
오늘은 3월 1일입니다.
고국에서는 3.1절 경축일입니다.
일본에 의해 자유를 강탈당하고 종노릇하고 있던 고국 백성들이 전국적으로 우리는 노예일 수 없다고 힘을 합쳐 일어난 그 날입니다. 3.1절 독립운동을 기점으로 하여 독립과 자유를 향한 방향 전환을 이룬 날입니다.
집회회수 1,542회, 참가인원수202만3,089명, 사망자수7,509명, 부상자1만5,961명, 검거자5만2,770명, 불탄 교회 47개소, 학교2개교, 민가715채나 되었습니다. (일본측발표). 이를 통하여 당장 자유독립국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대내외적으로 우리 민족 자유와 독립정신을 선명히 드러낸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우리 민족이 일본에서 돌아서서 자유를 향한 터닝포인트가 된 것입니다.
이 일에 기독교인들이 중심을 이루고 있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기초한 33인 가운데 절반이 기독교인이었습니다.
34인으로 불리우는 스코필드 박사도 한국국적만 없었을 뿐 누구보다 그 일에 앞장 섰습니다.
왜 당시 그렇게 많지 않던 기독교인들이 이처럼 어제와 이제 그리고 내일이 뚜렷한 것입니까?
기독교인만 하나님의 주신 은혜를 따라 변화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인생에서 가장 극적인 변화를 이룸으로 축복의 근원이 된 사도 바울의 변화를 봄으로 우리도 참 변화를 주님으로부터 받는 하루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예수님을 믿기 전:
1] 유대교에 대한 맹목적 헌신한 사람이었습니다)
바울 자신이 과거에 유대교에 속하여 유대교를 위해 일했던 사실을 회상(回想)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지키고 있었던 율법은 두 가지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절대적(absolute)이며 지상 명령의 성격을 띤 십계명이 있었습니다. 이는 예배시에 낭송되거나 암송하였습니다.
또한 실제 생활 속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을 해결하는 관습법과 같은 '유전'(tradition)이 있었습니다. 랍비들은 613개 조항의 법 조문을 만들었는데 이것은 바로 전자를 실생활에 확대 적용하여 세분화(細分化)한 것입니다(Lenski). 이 '유전'들은 인간이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그는 이런 율법과 유전에 자신의 인생을 걸었습니다.
지나치게!
무슨 말입니까? '지나치게'란 '숲에서 앞서서 길을 개척하다'란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Robertson).
유대교에 속한 어떤 사람들보다 앞장 서서 적극적으로 유대교를 수호했고, 대변했고, 반 유대교적인 요소를 배척하는 일에 앞장서서 나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는 당시 유대교의 대학자인 가말리엘 문하이었습니다.
모세 율법을 삶의 절대적 표준으로 삼고 이를 따라 하나님을 열심히 섬기고자 했습니다.
2] 바울 사도는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입장에 서 있었습니다.
[13-14절]
13. 내가 이전에 유대교에 있을 때에 행한 일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하나님의 교회를 심히 핍박하여 잔해하고
14. 내가 내 동족 중 여러 연갑자보다 유대교를 지나치게 믿어 내 조상의 유전에 대하여 더욱 열심이 있었으나
예수님을 만나기 전 바울 사도는 그리스도의 원수로 행하였습니다.
유대교에 있을 때에 행한 일은 역사적인 사건뿐만 아니라 그가 행한 일들과 근본적인 삶의 태도와 방식을 포함합니다(Huxtable).
하나님의 교회를 심히 핍박하였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기 전의 사울은 인간이 만든 유전의 울타리에 갇혀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였습니다.
바울은 교회를 핍박하는 일에 있어서 가히 광신적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편견과 교만을 가지고 그리스도의 교회 성도들을 집요하게 핍박했습니다.
메시야이신 예수를 향한 도전이었습니다. 그것은 결국 메시아를 보내신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바울은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열심으로 하나님께서 메시야를 통해 세우신 교회를 핍박하고 주인이신 하나님을 대적하였습니다.
사람이 참 똑똑해 보여도 그렇지 못한 것이 인생입니다.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예화] 35년을 노숙인으로 살아온 고현길씨!
“신부님, 나는 누구예요? 내가 누군지 좀 알려주세요.” 이렇게 물은 사람은 서울역을 기반으로 35년을 살아온 노숙인 고현길씨다. 일곱 살 때 그의 어머니는 서울역에서 그를 두고 떠나며 “잠깐 다녀올게. 절대로 딴 데 가면 안 돼”라고 말했다. 이후 그는 경찰서·시립아동보호소·고아원·교도소를 전전했지만 그의 삶의 중심은 여전히 서울역이다. 임 신부는 이렇게 적었다. “‘절대로 딴 데 가면 안 돼’ 라던 어머니의 말, 혹시 지금까지 그의 발목을 잡고 있는 걸까.”
2. 오늘 변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변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어거스틴의 후반기 일생은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던 전반기 인생으로부터의 분명한 단절이 존재합니다.
이런 예를 우리는 바울 사도에게서 만납니다.
성도들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던 과거의 나와 예수님을 구주로 모시고 사는 현재의 나 사이에 분명한 단절이 존재한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우리들은 사도 바울 자신이 소개하는 자신의 생애를 만납니다.
이 말씀 속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만나기 전의 자신의 모습이 기술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만난 후, 그가 어떤 모습으로 변화되었는 지를 고백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변화를 이룰 수 있습니까?
- 내 힘이 아닌 외부의 힘을 통해서입니다.
바울의 경우, 주님께서 그를 찾아와 메시야와 그분의 메시지를 만남으로서입니다.
[예화]
"전쟁 중에 캘리포니아의 모제이브 사막 근처의 육군 훈련소에 배속된 사람이 있었습니다.
화씨 125도라는 뜨거운 더위는 가히 살인적이었습니다.
음식물은 물론이고 숨쉬는 공기도 모래투성이었습니다.
편지를 부모님께 보냈습니다.
'여기선 도저히 살 수 없어요. 이런 곳에서 사느니 차라리 교도소가 나을 것 같아요'.
아버지로부터 편지가 왔습니다.
'교도소에서 두 사나이가 창 밖을 보았다.
한 사람은 창살을 보고
또 한 사람은 별을 보았다."
불과 두 줄로 된 짧은 답장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는 그의 인생관에 변화를 주었습니다.
이것이 사도 바울이 예수님을 믿게 된 과정입니다.
1] 주님께서 사울에게 은혜로 찾아오셨습니다.
[15절]
"그러나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실 때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바울의 영혼과 마음속에 계시를 통하여 자신을 나타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를 찾아오셔서 그분이 누구시며 죽음을 이기신 주님과 부활의 주님을 보여 주셨습니다.
사도행전에서는 이 사건을 좀더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9:1,3-4]
사울이 주의 제자들을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사장에게 가서
사울이 행하여 다메섹에 가까이 가더니 홀연히 하늘로서 빛이 저를 둘러 비추는지라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 있어 가라사대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하시거늘
2] 바울 사도는 다메섹 도상에서 나타나신 주님과의 만남으로 그 인생에 일대 변혁이 일어났습니다.
"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행26:14)
부활하신 주님께서 그를 찾아오심으로 죽음의 권세에 사로잡혀 가시채를 뒷발질하면서 살아온 헛된 인생을 정리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 그를 찾아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남을 기점으로 살아나신 부활의 주님과 접목되었습니다(행 9:4-26).
- 만약 바울이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유자가 되지 못했다면 할례와 율법 안에 갇힌 자(행 15:5)가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리스도와 그분의 계시를 만남으로(12절) 그 높은 율법의 벽을 훌쩍 넘어설 수 있었습니다.
[예화]
윌 로저스는 웃음으로 유명하지만 어떻게 울어야 하는지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루는 그가 LA에 있는 밀튼 베리 요양소에서 공연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곳은 소아마비 환자, 척추 환자와 그 밖의 심한 신체 장애자를 치료하는 전문 재활원이었습니다.
물론 그는 모든 사람들을 웃겼습니다. 심지어는 정말 상태가 좋지 않은 환자들까지 웃게 했습니다. 그러더니 갑자기 그는 무대를 떠나 휴게실로 갔습니다. 밀튼베리가 그에게 수건을 건네주려고 뒤따라가 문을 열자, 윌 로저스는 벽에 기대어 어린아이처럼 울고 있었습니다. 베리는 다시 문을 닫고 왔습니다. 몇분 후 로저스는 방금 전처럼 익살스러운 얼굴로 다시 무대에 나타 났습니다. (정직의 위기/워렌위어스비)
만왕의 왕이신 주님께서 우리를 변화시키기 위해 우리를 찾아오셨습니다.
주께서 찾아오신 사건은 병든 우리에게는 무엇보다 큰 소망입니다.
3] 살아계신 하나님의 꿈을 이루는 사명인이 되었습니다.
[행 26:16-18]
16. 일어나 네 발로 서라 내가 네게 나타난 것은 곧 네가 나를 본 일과 장차 내가 네게 나타날 일에 너로 사환과 증인을 삼으려 함이니
17.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서 내가 너를 구원하여 저희에게 보내어
18.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두움에서 빛으로 사단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케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바울은 다메섹의 도상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직접 만나 이방인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12. 이는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
다메섹 도상에 찾아오신 까닭은(행 9:1-9) 바울을 이방인 가운데에 그리스도를 전파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율법과 랍비들의 전승에서 해방되어 복음으로 말미암은 완전한 자유를 선포하게 되었습니다.
3. 예수님을 믿은 다음에 일어난 변화:
사도 바울은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아 이방인의 사도가 되기 전에 중요한 결단이 있었습니다.
구태여 먼저 사도된 자들을 만나지 않았습니다.
혈육과도 의논하지 않았습니다.(16절)
16절]
그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실 때에 내가 곧 혈육과 의논하지 아니하고
사도 바울의 경우 변화는
1] 오직 아라비아로 갔습니다.
[갈라디아서 1:17]
또 나보다 먼저 사도 된 자들을 만나려고 예루살렘으로 가지 아니하고 오직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갔노라
또한 적합한 장소가 필요하였습니다.
'아라비아'는 매우 광범위한 지역입니다.
아무튼 '아라비아'는 예루살렘과 상관없는 장소입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 시험을 받으시러 성령에 이끌리어 광야로 나아가신 것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예수께서 그의 사역을 준비하시면서 세례를 받으시고 광야에 나가 기도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바울 사도는 그런 광야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깊이 정리하였습니다. 바울 사도는 다메섹 도상에서 만난 예수 그리스도께 그 인생을 접목시키는 데 광야에서 자신을 드렸습니다.
2] 바울에게는 옛 사람과 옛 사람에 속한 모든 것을 내려놓을 수 있는 시간으로 3년이 필요하였습니다.
18절]
그 후 삼년만에 내가 게바를 심방하려고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저와 함께 십 오일을 유할새
혈육과 분리되고, 예루살렘에 있는 다른그리스도인의 영향도 받지 않고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교제를 통하여 자신에게 주어진 특별한 계시, 즉 이방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그 사역을 위하여 준비하는 기간이 필요하였습니다.
[3] 바울은 게바를 만나기 전에 아라비아란 광야와 3년이란 일정 기간 동안 하나님과의 깊은 영적 교제를 통해 자신의 신앙과 신학을 재정립(再定立)하였습니다.
주님이 변화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 그의 하나님이 되신 것입니다.
[4] 형제들이 달라졌습니다.
'게바와 가까워지려고'(to get know) 예루살렘을 방문하였습니다. 본 구절은 행9:26-30에 기록된 사건으로 바울은 바나바에 의하여 예루살렘 교회에 소개된 이후에 베드로를 찾아갔습니다.
[갈1:18-19]
18. 그 후 삼년만에 내가 게바를 심방하려고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저와 함께 십 오일을 유할새
19. 주의 형제 야고보 외에 다른 사도들을 보지 못하였노라
예수님을 만난 후, 바울은 형제가 달라졌습니다.
그의 형제는 믿기 전 그리스도인들이 아니었습니다. 적대세력이었습니다.
바울 사도는 갈라디아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형제로 부르고 있습니다. 그들 가운데는 바울의 사도권을 인정하지않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연합한 가족'(마 23:8;롬 1:13). '그리스도의 동역자'(고후 1:1)로 그들을 형제라고 부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참된 복음의 진리를 따르는 모든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의 입장에서 보면 이 방문이 사적인 방문이며 어떤 인간적인 권위의 지지를 얻으려는 방문이 아니었음을 밝히려 합니다. 이렇게 하여 바울은 자신의 사도권이 주께로부터 유래되었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물론 15일 동안 머무르며 게바를 통하여 예수에 대한 지식과 경험을 들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바울은 그때에 그리스도에 관한 사실들과 가르침을 바르게 정립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을 이방인의 사도로 부르신 주님의 섭리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5] 자신의 정체성이 달라졌습니다.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갈1:23-24]
23. 다만 우리를 핍박하던 자가 전에 잔해하던 그 믿음을 지금 전한다 함을 듣고
24. 나로 말미암아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니라
"나로 말미암아 영광을...돌리니라"
얼마나 아름다운 말씀입니까?
바울 사도의 초기 선교 사역의 소식을 듣고 매우 기뻐하며 하나님께 영광과 감사를 돌리는 유대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이 대조적으로 조명되고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후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인물이 된 것입니다.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신의 사도권이 왔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전승이나 인위적인 교육등에 의한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왔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6] 그의 메시지가 달라졌습니다.
잔해하던 그 믿음을 이제는 오히려 전파하는 사도가 되었습니다"
- "잔해하던 그 믿음을 지금 전한다"는 말은 변화된 바울을 두고 유대 그리스도인들은 이구동성으로 했던 말입니다(Ernst Bammel).
과거 바울로부터 직접 핍박을 받았던 유대지역의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하나님의 기적적인 역사,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 복음을 박해하던 자가 변하여 복음을 전하는 자로 변화되었습니다.
[마무리하는 말]
미국 남북전쟁 때의 일화 한편을 나누기 원합니다.
군목이 죽어가는 한 청년을 찾아갔습니다.
“형제여, 제가 무엇을 해드릴까요?”
군목은 그 사람도 역시 보통 사람들처럼 극한 상황에 처한 자신을 위한 기도를 요청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달랐습니다.
“목사님, 무릎을 꿇으시고 저 대신에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주세요”
“무엇을 감사하라는 것입니까?”
“제게 귀한 어머니를 주신 것입니다. 어머니의 교훈과 영향을 통해서 제가 그리스도인이 된 것을 감사해 주십시오. 제가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면, 지금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리고 영광의 집을 주신 것을 감사드려 주십시오. 저는 곧 그곳에 가서 앞으로 오실 어머님을 기다리고 오시면 환영하겠습니다.”
ㅇ예수님께서 얼마나 놀라운신 분인가를 배우게 됩니다.
우리는 무엇이 어떻게 변화되길 원하십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 일을 행하실 수 있는 유일한 구주가 되십니다.
할렐루야!
[성경본문]
11.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내가 전한 복음이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라
12. 이는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
13. 내가 이전에 유대교에 있을 때에 행한 일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하나님의 교회를 심히 핍박하여 잔해하고
14. 내가 내 동족 중 여러 연갑자보다 유대교를 지나치게 믿어 내 조상의 유전에 대하여 더욱 열심이 있었으나
15. 그러나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
16. 그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실 때에 내가 곧 혈육과 의논하지 아니하고
17. 또 나보다 먼저 사도 된 자들을 만나려고 예루살렘으로 가지 아니하고 오직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갔노라
18. 그 후 삼년만에 내가 게바를 심방하려고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저와 함께 십 오일을 유할새
19. 주의 형제 야고보 외에 다른 사도들을 보지 못하였노라
20. 보라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거짓말이 아니로라
21. 그 후에 내가 수리아와 길리기아 지방에 이르렀으나
22. 유대에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교회들이 나를 얼굴로 알지 못하고
23. 다만 우리를 핍박하던 자가 전에 잔해하던 그 믿음을 지금 전한다 함을 듣고
24. 나로 말미암아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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