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16 March 2015

갈2:1-10 예수님을 제대로 만난 사람

  [들어가는 말]

    "누구를

    그리고

    어떻게 제대로 만났는가?"

이는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사울이란 청년은 젊은 날에 예수 그리스도를 다메섹 도상에서 만났습니다. 공교롭게도 그는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하는 자들을 체포하여 옥에 넘겨주겠다는 사명을 가지고 가던 길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분께 꼼짝 달싹을 못하도록 그렇게 잡혔습니다.
그리고 그 만남을 통해 그의 인생은 완전히 뒤집어졌습니다.

    오늘은 그가 예수님을 제대로 만난 사울이 개척하여 세운 갈라디아 교회 위기를 극복해 가는가를 살펴보겠습니다.

     그리고 우리 또한 예수님을 제대로 만나서 마땅히 해야 할 일, 곧 교회를 지키는 일을 남은 생애 동안에 이룰 수 있기 바랍니다.



1. 교회의 위기를 기회로 바꿉니다.(3-5)

    1] 갈라디아 교회에는 당시 초대 교회의 교리적 위기를 고스란히 안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율법을 지켜야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유대주의였습니다.
할례를 행하여야 구원을 얻는다는 것이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구약에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시고 '언약의 표징'으로 할례를 자손 대대에 이르기까지 거행하도록  명령하셨습니다(창17:10-14).
    그러나 세월이 경과하면서 이스라엘 백성은 할례의  언약적인  의미보다는 종족적이며 문화적인 우월감의 상징으로서 외적인 할례에 중요한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급기야는 구원을 위해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사상을 배경으로 하는 교회안의 유대주의자들은 율법을 준수하는 것과 함께 할례를 시행하는 것이 구원의 조건이 된다고 주장하여 이방인 신자들에게까지 할례를 강조했습니다.

    이제까지 갈라디아 교회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가르쳐왔는데, 유대주의자들이 교회 안에 들어와서 선동을 하고 사람들을 회유합니다.

    사울이 어디 사도냐?
예수 그리스도께 사도직을 받았나? 핍박자가 아니냐?
엉터리다. 그래서 잘못 가르친 것이다.
할례를 받아야 구원을 얻는거다

    이러한 유대주의 자들로 인하여 교회는 위기에 놓여 있었습니다.
이단의 공격은 바울의 달음질을 헛되게 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위기를 어떻게 극복해 나가고 있습니까?



    2] 바울 사도는 갈라디아 교회에서 아름답게 사역하는 디도를 소개함으로 할례가 아닌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이신칭의(Justification by faith) 신앙'을 나누었습니다.


    디도는 이방인으로서 개종하여 교회 지도자가 된 사람입니다.
요즈음 말로하며 선교지에 세운 목사님입니다.
그 디도는 바울과 바나바가 예루살렘 총회에 데리고 갔었습니다.

  디도는 갈라디아 교회의 유력한 영적 지도자였습니다.
이방인으로 복음에 접목된 사람입니다.
고린도 교회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목회자입니다(고후 8;23;12:18).
그러나 그는 할례를 받지 아니하였습니다.

    [고후8:16-17]

16. 너희를 위하여 같은 간절함을 디도의 마음에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17. 저가 권함을 받고 더욱 간절함으로 자원하여 너희에게 나아갔고

    [고후8:23-24]

.    디도로 말하면 나의 동무요 너희를 위한 나의 동역자요 우리 형제들로 말하면 여러 교회의 사자들이요 그리스도의 영광이니라
24. 그러므로 너희는 여러 교회 앞에서 너희의 사랑과 너희를 대한 우리 자랑의 증거를 저희에게 보이라


그를 바울 사도는 '나의 참 아들 디도'라고 말합니다.
바울 사도의 마음에 합한 사역을 하였습니다.

    (딤후 4:10)에 따르면 그는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 로마에서 달마디아로 갔습니다.

     당시 갈라디아 교인들이 거짓 교사들의 회유(懷柔)에 말려들어 할례를 중요하게 생각한 상황에서  바울이 할례받지 않은 디도를 유력한 증인으로 내세우는 이유는 디도가 갈라디아 교회의 신임을 받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디도는 어떤 할례를 주장하는 유대주의자라도 부끄럽게 할만한 본이 되는 지도자였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할례를 행해야 한다는 유대주의과 당당히 맞서서
그들의 잘못된 인식을 깨뜨리게 한 표본적 인물이었습니다.

 
    오늘 날도 이단과 이단적인 요소들이 교회에 침투하여 교회를 어지럽게 하는 일들은 계속됩니다. 이것들은 교회에 위기로 작용합니다.

       이단이란, “기독교의 근본적인 신앙에서 어긋나는 악마적인 자기주장”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1] 이단의 분별 기준이 무엇입니까?

    (1) 성경에다 무엇인가를 더하거나 빼는 일이 있습니다

     <외경>, <유다복음>, <내가 본 천국> 등에 참고해 볼만한 내용이 있다고 하여, 그런 책들을 성경처럼 여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성경에다 무엇을 더하는 사람들입니다.
이해하기 힘들고 틀린 것같이 생각된다고 해서, 신약이나 복음서만을 받아들이는 사람들도 있다. 성경의 일부를 빼내는 사람들있습니다.
그들은 모두 성경에 기록된 재앙을 받을 사람들이요, 거룩한 성에 참여하지 못할 사람들입니다(계 22:18,19).
그러므로 만일 성경에다 무엇을 더하거나 빼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는 그를 이단이라고 분별해야 합니다.

2) 성경의 모든 부분을 균형에 맞도록 강조하지 않습니다.

    성경에는 책망과 경고의 말씀이 있는가 하면, 위로와 격려의 말씀도 있습니다.
율법을 기록한 책이 있는가 하면, 역사를 기록한 책도 있습니다.
예언의 책도 있고, 문학적인 책도 있습니다.
예수님의 행적에 관한 책이 있고,
사도들의 편지들도 있습니다.

    이 모든 성경은 균형에 맞도록 고루 강조되어야 합니다. 만일 어느 한두 부분에만 매달리며 강조하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는 그를 이단이라고 분별해야 합니다.


3) 사도신경의 내용을 가감하거나, 왜곡하여 믿습니다.

4) 사람을 성경만큼 높이는 일이 있습니다.

    이단은 흔히 특별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나 교주 또는 지도자를 지나치게 높이고 따릅니다. 사람은 아무리 능력이 많아도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능력을 받아 하나님을 위해 일하는 존재에 불과합니다.
또 성경을 아무리 심오한 것처럼 풀어 가르치는 사람이라도, 성경만큼 높임을 받을 만한 권위를 가지고 있지는 못합니다.
여전히 허물과 오류가 있는 사람이요, 따라서 그도 역시 성경의 가르침에 복종해야 할 사람입니다.
우리는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성경의 가르침에 따른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특정한 사람을 지나치게 높이고, 그 사람의 옷깃이라도 만지려 하고, 손 씻은 물이라도 마시려 해서는 안됩니다.
만일 사람을 성경이나 하나님처럼 높이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는 그를 이단이라고 분별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주님의 몸된 지상 교회는 이 땅에서 위기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 디도와 같은 분명한 신앙고백과 인격과 삶을 가지고 신앙경주를 할 때, 하나님께서 교회에 다가오는 위기를 도리어 기회로 바꾸어주실 줄을 믿습니다.

 

2. 복음에 견고히 뿌리를 내림으로 외부의 바람을 이겨냅니다.

    2. 계시를 인하여 올라가 내가 이방 가운데서 전파하는 복음을 저희에게 제출하되 유명한 자들에게 사사로이 한 것은 내가 달음질하는 것이나 달음질 한 것이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1] 복음의 진리('헤 알레데이아 투 유앙겔리우')는 본절과 14절에 나오는 것으로  '결함이 전혀 없는 복음'(Lightfoot) 또는 '진리가 담겨 있고 진리에  속해  있는  복음'(Burton)이라는 의미입니다. 이러한 의미를 가진 복음을 들어 언급하는 것은 디도의  할례 문제는 한 개인 문제에만 제한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복음의  진리  문제에 직결된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갈라디아 교회에는 계속해서 교인들을 미혹하는 유대주의자들이 존재했으며 이들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자유케 된 성도들을 다시 율법 아래로 끌어들이려고 하였습니다. 더욱이 그들은 신자인 것처럼 가장하여 열심은 있으나 실제로는 복음을  거부하고 교회를 파괴하려고 하였습니다(고후 11:26;벧후 2:1).

     [2] 이런 사람들에 대하여 바울 사도는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사명을 당시 달음질(운동 경기)하듯 하였습니다.
그의  복음 사역(달음질)은  향방없는  것이  아니라(고전9:26) 분명하고 확고한 목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 지도자들을 사사로이 만나는 면밀한 계획을 추진했습니다.

     바울 사도의 복음에 뿌리를 견고히 내리는 열정이 갈라디아 교회를 살립니다.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다가온 혼돈도  바울 자신의 복음 안에 견고히 내린 뿌리를 흔들지 못합니다.

복음에 견고히 뿌리를 내림으로 외부의 바람을 이겨냅니다.


    3] 하나님께로부터 직접 복음을 맡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외모로 취하지 않으십니다.
사도 바울은 유명하다는 이들로부터 복음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베드로, 요한,야고보 등 예루살렘의 사도에 유래한 복음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직접 받은 복음입니다.

    이는 신비입니다. 그러나 믿음 안에서 이해가 가능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외모를 취하지 않는 하나님'의 속성 때문에 어떤 유명한 사도들을 통하지 않고서라도 복음을 받고 또 전하는 일이 가능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유명한 사람을 너무 의지하지 마세요.
유명한 사람을 시기해서 하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복음을 주시는 것이지 유명한 사람이 여러분에게 복음을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제대로 만날 때, 하나님께서는 어떤 경로를 통해서도 우리에게 말씀을 주십니다.

구태어 유명하다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여러분의 마음과 머리를 디밀 필요가 없습니다.

    매일 말씀을 묵상하십시오.
말씀을 묵상할 때 하나님께서 복음을 주십니다.

    매주 강단에서 선포되는 설교에 집중하십시오.
설교에 집중할 때, 하나님께서 복음을 주십니다.



3. 교회와 선교 사역의 조화를 잘 이룹니다.

    [8절]

    베드로에게 역사하사 그를 할례자의 사도로 삼으신 이가 또한 내게 역사하사 나를 이방인에게 사도로 삼으셨느니라

     오늘 말씀에는 여섯 사람의 존귀한 이름이 등장합니다.
베드로 야고보 요한은 사도의 대표로 등장합니다.
그런데 다른 세 사람의 존귀한 이름이 등장합니다.
바울과 바나바와 디도입니다.
세 사람씩 짝을 이루고 있는 이 여섯 사람은 당시 기독교계를 대표하는 분들입니다.

    앞 세분은 예수님의 삶에 접목되어 예루살렘 교회를 중심으로 하여 활발히 복음 사역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베드로가 이방선교를 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주로 유대인들을 중심으로 사역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이방인 고넬료의 가정에 복음을 전했습니다.
또한 베드로는 가이사랴와 다른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바울 사도는  이방인들에 예루살렘에 있는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였습니다(행 23:11). 바울 사도는 자신이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이방인에게까지  복음을  전하는 것이 자신의 사명임을 잘 알고 실천하고 있었습니다.(행 26:20ff.)

    베드로와 바울은 동일한 복음을 받았고, 같은 복음을 전파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 사도는 자신이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자신에게 두신 하나님의 뜻을 받아 강조하고 있습니다(행 15:7).

    복음의 동질성 아래서 두 사도의 가치는 같지만 사역하는 field가 다른 것입니다. 주님께서 그를 이방인의 사도로 부르셨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 교회에서 복음 사역을 하던 사도들과 함께 조율함으로 적에 향한 공동 전선을 구축하였습니다.
바울 사도는 사도들과 복음 안에서 좋은 동역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새롭게 주목하게 되는 뒤에 나오는 바울과 바나바와 디도입니다. 이들은 안디옥 교회를 중심으로 이방인의 선교에 앞장서서 유럽까지 복음화하는 일에 쓰임을 받고 있습니다. 이분들로 말하면, 바로 세계 선교를 이끌어가는 선봉장들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내게 더하여 준 것이 없고"란 말씀에서 보듯이 바울은 예루살렘 교회의 사도들을 통해 복음을 받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으로부터 복음을 직접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루살렘 교회 지도자들이 가르치는 것과 전혀 다른 복음을 가르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이 두 그룹을 총 지휘하는 총 사령관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복음 안에서 하나인 것입니다.


    [8절]

    베드로에게 역사하사 그를 할례자의 사도로 삼으신 이가 또한 내게 역사하사 나를 이방인에게 사도로 삼으셨느니라

    총 사령관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베드로에게 역사하사 그를 할례자의 사도로 삼으셨습니다.
    총 사령관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베드로에게 역사하사 또한 바울사도에게 역사하사 그를 이방인에게 사도로 삼으셨습니다.

    이 두 그룹은 14년이란 시간을 사이에 두고 총 사령관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가운데 예루살렘에서 상봉하게 됩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었습니까?

1] 총 사령관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때문입니다.

2] 선교사역팀이 예루살렘을 방문하여 보고함으로 이루어집니다.

    [갈2:1-2]

    1. 십 사년 후에 내가 바나바와 함께 디도를 데리고 다시 예루살렘에 올라갔노니
2. 계시를 인하여 올라가 내가 이방 가운데서 전파하는 복음을 저희에게 제출하되 유명한 자들에게 사사로이 한 것은 내가 달음질하는 것이나 달음질 한 것이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사도행전에 의하면 바울은 세 번에 걸쳐 예루살렘을 방문하였습니다. 첫번째 방문은 그가 회심한지 삼년 후에 베드로를 만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행 9:26),

    두번째 방문은 안디옥 교회의 구제 헌금을 전달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행 11:29,30).

    세번째 방문은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자신의 사역을 변증하러 예루살렘 공의회에 참석한 것이었습니다(행 15:1 이하).

    하지만 본절에 나타난 바울의 예루살렘 방문이 사도행전에서 말하는 이차 방문인지 삼차 방문인지, 아니면 사도행전에서 밝히고 있지 않은 다른 방문인지에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중요한 사실을 우리는 봅니다.
선교팀과 예루살렘 교회에서 사역하는 팀들이 총 사령관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아래서 하나로 연결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복음 사역과 선교 사역을 잘 조화시킵니다.
복음사명 감당하는 교회 지도자와 선교사명 감당하는 선교사가 복음 안에서 하나됨으로 위기를 잘 극복하였습니다.

    [9절]

    또 내게 주신 은혜를 알므로 기둥같이 여기는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도 나와 바나바에게 교제의 악수를 하였으니 이는 우리는 이방인에게로, 저희는 할례자에게로 가게 하려 함이라


    [적용]  

    지금도 선교사역은 어렵습니다.
교회 또한 만만치 않습니다.

    환율로 선교비 1/3 사라졌다는 기사를 봅니다.

"高환율로 '반토막'이 되었습니다.
선교비" 삭감으로 선교사들 고통이 큽니다.

    전 세계를 강타한 경제난으로 세계경제가 충격에 빠져 들고 있는 가운데 국내 교회들의 선교 후원에 의존해 온 선교현장 또한 고환율 쓰나미로 인해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대책 마련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습니다.
    태국에서 사역 중인 한 선교사는 "(전달되는 실제 후원 규모가 줄어든 뒤) 생활비를 줄여 사역을 이어가고 있지만 매우 심각한 상황"이라며, "현지 화폐로 인출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환차손도 고스란히 선교사들의 몫이다 보니 전에 비해 절반 가까이 줄어든 현실입니다.

    이런 때에 우리 교회 당회원들이 모두 선교지를 향해 갑니다.
선교지를 바로 이해하고 돕는 것이 바로 주님의 기쁨입니다.

이 시대 또한 교회와 선교지는 여전히 위협을 당하고 있지만 주님께서 이 선교를 추진하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제대로 만난 사람은 이 주님의 뜻에 순종합니다.







    [마무리하는 말]

         김익두 목사님은 인생의 고비에서 예수님을 제대로 만난 후, 인생에 놀라운 열매가 맺혔습니다.

    김익두 목사는 1874년 1월 3일 황해도 안악군 대원면에서 농부 김응선의 독자로 태어났습니다.
    어려서부터 총명하였으며, 입신양명을 위해 열심히 공부해서 16세에 과거에 응시하였습니다. 그러나 당시는 매관매직이 판을 치고 있던 때라, 돈 없고 배경 없던 김익두에게 과거급제란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에 좌절하지 않고 17세가 되자 장사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 사업도 여의치 않아 곧 망하게 되었습니다.

    연속되는 실패와 좌절로 인해 인생에 낙담한 그는 술독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김익두는 술만 즐기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패기와 힘 역시 좋아서, 한다하는 싸움꾼도 한 주먹에 쓰러뜨리곤 했습니다. 술집이건, 국밥집이건, 냉면집이건 그에게 외상을 주지 않은 집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는 말 그대로 무전취식자였습니다.

    이런 이유로 어떤 사람들은 하루가 시작할 때마다 이렇게 빌었다고 합니다.

    “오늘 하루 동안 김익두 만나지 않고 무사히 보내게 해주옵소서”

     그런 김익두가 어느 날, 장에 나갔다가 서양 여자가 전도하며 전해준 전도지를 받았습니다.
     전도지를 받은 김익두는 '뭐 나더러 양 귀신을 믿으라고' 하며 전도지로 코를 풀어 길바닥에 팽개치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그 여자는 "청년 전도지로 코를 풀면 코가 썩어요"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후 그는 '어느 모로 보나 자기보다 개화되어 있는서양 여자가 멀리 이국 땅에 와서 저러는 것을 보면 무언가 있다' 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소안련 선교사의 집회를 지나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만남을 계기로 회심하게 되었습니다.

    “사람은 죄 지은 대로 보응을 받습니다. 그래서 죄인은 지옥으로, 의인은 천국으로 가게 됩니다.”

     죄라는 말이 김익두의 가슴에 파고들었습니다. 죄라면 누구보다도 많이 지은 사람이 바로 자신임을 깨달았던 것이었습니다. 그는 선교사 앞에 털썩 무릎을 꿇고 주저앉아 하염없는 눈물을 흘리며 참회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친구인 박태후의 전도를 받아 교회엘 나가게 된 것입니다.

    기독교인이 된 김익두는 10개월 동안 말과 행동을 조심하며, 자신의 생활과 습관을 정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무려 성경을 100독 하였습니다. 그가 세례를 준비하며 성경을 읽고 있을 때 평소 친하게 지냈던 친구가 찾아왔습니다.

    “이 사람아, 방구석에서 무슨 청승인가? 우리 주막에 가서 대포나 한잔 하지.”
   “내가 요새 약을 복용중이서 술을 못먹겠네그려.”
   “무슨 약인데?”
   “응, 지금 구약과 신약을 먹고 있거든. 술은 절대 금물이라는 처방이 있어서 안되겠네그려”

    1901년 1월, 김익두는 그의 나이 27세에 소안련선교사로부터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매서인(賣書人)이 되어 예수 그리스도를 전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안악의 한 주먹이던 그도 이 때, 많은 조롱도 당했고, 돌질도 맞아 피도 흘렸다고 합니다. 그러나 과거의 잘못을 뉘우치며 겸손히 참고 전도에 임했습니다.

    그는 순 한문 신약성서를 100번 읽으며 신앙에 심취했고 그 과정에서 가슴을 칼로찢는 것 같은 불세례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가 삼일 간 금식을 하고 산에서 내려 올 때 큰 불덩어리가 가슴에 떨어져 화끈거리는 체험을 하였습니다. 하늘에서 "김익두야! 김익두야!"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자신을 부르는 소리임을 깨달았고 하염없이 울며 감사의 찬송을 불렀습니다.

    이렇듯 열심인 김익두를 보고 소안련선교사는 그에게 신천교회의 개척을 맡겼습니다. 헌신과 기도로 교회에 봉사하니 신천교회는 곧 수십 여명의 신도들이 모였습니다. 그리고 그 후로도 날로 부흥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김익두는 1906년 평양신학교에 입학하여 1910년 3회로 졸업했고, 신천교회 강단에서 자신의 생을 마감할 때까지 봉사하였습니다. 그 신천교회에서만 11명이나 되는 목회자가 배출되었습니다.

    김익두 목사님이 부흥회를 인도하려고 고개 너머의 교회로 가는데, 너무너무 날이 더워서 산꼭대기에 올라가서는 그만 웃옷을 다 벗고 나무 그늘에서 평안히 쉬게 되었습니다. 그 때 맞은편에서 술이 건아하게 취한 사람이 비틀거리며 올라오는 것이었습니다.

그 사람이 김익두 목사께 오더니, 시비를 걸었습니다.

"왜 당신이 여기 먼저 올라 왔느냐?"

말 같지 않은 소리로써 자꾸 시비를 거는 것이었습니다. 말대꾸를 안 하니까 이 사람이 김익두 목사님을 장작 패듯이 그냥 패는 것이었습니다.  이때 김익두 목사님은 한마디 말없이 다 맞았습니다.

힘이 없어서 맞는 거야 어쩔 수 없겠지만 주먹이 있는 사람이 말없이 맞는다는것이 그 심정은 어떠했을까!
얼마동안 때리더니, 이 사람이 그 때리던 것을 멈추었습니다.

"형님 다 때렸소? “
"다 때렸다 왜?"
또 때리려고 했습니다.
그 때 김익두 목사님이 정색을 하고, 그 사람에게 이야기했습니다.

"예수는 내가 믿고 복은 자네가 받았네."

그랬더니 이 사람이 눈이 휘둥그래지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김익두라는 사람이요."
"내가 예수 믿기 전이라면 당신 오늘 장례식 날이요. 내가 예수 믿은 덕에 당신이 오늘 산 줄을 아시오"

이 사람이 김익두라는 말을 듣더니, 얼굴 안색이 변하여 그냥 초죽음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이 사람이 그냥 머리를 땅에다 대고

"형님, 저 어찌하면 되겠습니까?"
"무얼 어떻게 해, 따라와. "

그래서 자기 부흥회 하는데 데리고 가서 자리에 앉혔습니다. 이 사람 나중에 예수 믿고 훌륭한 장로가 되었습니다.


    [김익두 목사님의 업적]

    그는 150여 곳에 교회를 세웠고, 설교횟수 이만팔천번, 결신자 28만명, 치병자 일만여명이였고, 그의 감화로 목사가 된 사람이 200여명이 있는데 그 중에 이성봉, 주기철, 김재준 등 한국교회사에위대한 발자취를 남긴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는 신사참배를 거부하여 사경에 이르도록 고문을 당했고, 목사직을 박탈당했습니다.

    1950년 6․25가 발발했고, 그해 10월 14일 새벽, 신천교회에서는 가슴을 저미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공산군이 교회당 안으로 난입하여 새벽기도를 드리던 김 목사를 향해 무차별 사격을 가하였고 청중들을 향해서도 무참히 난사하기 시작했습니다. 임성근 전도사를 비롯하여 청년들이 그 자리에서 즉사하였고, 수십 명의 부상자가 발생하였습니다. 그렇게 김익두 목사는 주님의 품으로 떠났습니다.


    [예화]

    영국 런던에서 북쪽으로 150㎞가량 떨어진 레스터 지역. 그곳에서도 인도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벨그레이브 구역 중심부에 들어서면 사브라스(Sabras) 라디오 방송국이 눈에 띈다. 인도인과 남아시아인 등을 대상으로 한 힌두교 방송국인데, 2005년부터 본격적인 전파를 타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건물은 100년 넘게 영국 교회로 사용되던 곳이다. 건물 꼭대기에는 십자가가, 출입구 옆 벽면에 박힌 머릿돌에는 'TO THE GLORY OF GOD(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라는 문구가 선명하다.

불과 수년 전만 해도 찬양과 설교가 울려퍼지던 교회가 힌두교를 전하는 방송국으로 바뀌었다는 사실은 기독교인들에게 충격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영국에서 교회의 용도가 바뀌는 사례는 이미 흔한 일이 돼버렸다. 레스터 시내에는 웅장한 교회 건물이 웨딩센터로, 무도회장으로, 심지어 이슬람사원 등으로 바뀐 곳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런던의 웨일스 교회와 웨스트 켄싱턴의 교회들은 나이트클럽이나 댄스! 교습소로 팔렸다.

한마디로 영국 교회의 '수난시대'를 보는 듯하다. 국제선교단체에 따르면 영국 교회는 1990년 4만9600개에서 2000년 4만8700개 정도로 줄어들었다. 2010년쯤에는 4만7000개로 감소할 것으로 추정된다.

"영국 크리스천 중에서도 정기적으로 주일예배를 드리는 신자들은 10%도 되지 않습니다. 예배에 참석하는 이들도 60, 70대 노인들이 대부분이죠."(박금일 레스터 인터내셔널 처치 담임목사)

영국 교회의 쇠퇴 원인은 다양하게 분석된다. 그 중에서도 영국 교회가 젊은이들을 붙잡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선교전문가들의 지적이 많다. 그 이면에는 포스트모더니즘을 비롯한 다문화 사회로 변모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반기독교·다종교 지향적인 사회·문화적 영향도 배제할 수 없다.

예수님의 설교 중에 믿음과 구원에 관한 말씀이 400여절이라면, 돈과 재정에 관한 말씀은 2489절이나 된다.
신구약을 모두 합쳐 돈과 재정에 대한 이야기는 1만5600여구절에 달한다.

사람들이 하나님보다 돈을 더 쫓는 행위에 대해서는 엄중히 경고하고 있다.

결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눅 16:13)'는 것이다.
사람들이 하나님보다 돈을 더 쫓는 행위에 대해서는 엄중히 경고하고 있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그 재물의 관리를 위임받은 청지기이며, 경영자에 불과하다.
결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눅 16:13)'는 것이다.

그렇다면 돈을 쓰는 방법에 대해서는 어떻게 말하고 있을까. 성경은 세속적인 경제와 달리 돈을 버는 것보다 쓰는 것, 주는 것을 먼저 가르치고 있다.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행 20:35)'는 말씀이 대표적이다.

또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해질 것이라'며 구제에 힘쓸 것을 강조한다.
고아와 과부를 돌보라는 말씀도 많다.
더불어 '자족하는 삶'을 중시한다.

성경은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 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돈을 사랑함이 일만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딤전 6:8∼9)'라며 탐욕을 경계하고 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4장에서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다"며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그렇다면 돈을 쓰는 방법에 대해서는 어떻게 말하고 있을까. 성경은 세속적인 경제와 달리 돈을 버는 것보다 쓰는 것, 주는 것을 먼저 가르치고 있다.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행 20:35)'는 말씀이 대표적이다.

또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해질 것이라'며 구제에 힘쓸 것을 강조한다.
고아와 과부를 돌보라는 말씀도 많다.
더불어 '자족하는 삶'을 중시한다.

성경은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 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돈을 사랑함이 일만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딤전 6:8∼9)'라며 탐욕을 경계하고 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4장에서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다"며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설교본문]

    1. 십 사년 후에 내가 바나바와 함께 디도를 데리고 다시 예루살렘에 올라갔노니
2. 계시를 인하여 올라가 내가 이방 가운데서 전파하는 복음을 저희에게 제출하되 유명한 자들에게 사사로이 한 것은 내가 달음질하는 것이나 달음질 한 것이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3. 그러나 나와 함께 있는 헬라인 디도라도 억지로 할례를 받게 아니하였으니
4. 이는 가만히 들어온 거짓 형제 까닭이라 저희가 가만히 들어온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의 가진 자유를 엿보고 우리를 종으로 삼고자 함이로되
5. 우리가 일시라도 복종치 아니하였으니 이는 복음의 진리로 너희 가운데 항상 있게 하려 함이라
6. 유명하다는 이들 중에 (본래 어떤이들이든지 내게 상관이 없으며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취하지 아니하시나니) 저 유명한 이들은 내게 더하여 준 것이 없고
7. 도리어 내가 무할례자에게 복음 전함을 맡기를 베드로가 할례자에게 맡음과 같이 한 것을 보고
8. 베드로에게 역사하사 그를 할례자의 사도로 삼으신 이가 또한 내게 역사하사 나를 이방인에게 사도로 삼으셨느니라
9. 또 내게 주신 은혜를 알므로 기둥같이 여기는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도 나와 바나바에게 교제의 악수를 하였으니 이는 우리는 이방인에게로, 저희는 할례자에게로 가게 하려 함이라
10. 다만 우리에게 가난한 자들 생각하는 것을 부탁하였으니 이것을 나도 본래 힘써 행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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