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20 March 2015

히11:17-22 믿음의 가문을 세우려면

[들어가는 말]

    매튜 헨리(Matthew Henry)는 이런 믿음을 남기고 있습니다.

    "마지막에 해야 할 큰 일이 있다. 곧 신자들이 마지막을 잘 장식하도록, 즉 주님을 위하여 죽도록 도와주는 일이다. 바꾸어 말하자면, 인내와 소망과 기쁨으로 (죽음을 맞을 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이 참되다는 증거를 후세에 남길 수 있다. 이를 위하여 죽음을 담대히 맞이하라."

    오늘 등장하는 아브라함 가문은 4대에 걸쳐 믿음으로 죽음을 통과합니다.

그 특징은 무엇입니까?


   1. 부활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히11:19]

   그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믿음은 우리 신앙인들의 보배로운 재산입니다.
그러나 기독교가 자랑하는, 다른 종교가 갖지 못한 특별한 믿음이 있는데 바로 부활신앙입니다.
종교에 창시자가 있게 마련인데, 그 종교가 숭배하는 창시자는 모두 죽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죽으심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셔서 하나님 우편에 앉히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를 다스리지요.

이 부활신앙은 우리를 생동감 있게 합니다.
부활 신앙은 하나님께서 살아계심을 믿는 것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죽은 아들을 살리심을 믿는 신앙입니다.
그 믿음 안에 있는 우리 성도들을 그날에 살리실 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4천년 전에 아브라함이 이 믿음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이 믿음으로 가문을 세웠습니다.


   1]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가문을 세웠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은 것은 우리가 잘 압니다.
그런데 단지 아브라함만 믿은 게 아닙니다.
오늘 말씀을 보십시오.
이삭도 믿음으로,'
야곱도 믿음으로,
요셉도 믿음으로,
자자손손이 믿음으로 행하는 것을 봅니다


    2] 일상 생활 중에 믿음을 가지고 행하였습니다.

    믿음을 가지고 그들이 행한 일을 살펴보면, 대단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영웅적인 일이 아니었습니다.
역사에 남을 만한 일도 아니었습니다.

   이삭은 우물하나 파는 일에 있어서도 믿음으로 팠습니다.

   야곱은 양 몇 마리 치는 일에 있어서도 믿음으로 양을 쳤습니다.

   요셉은 노예생활 감옥생활을 하면서도 믿음으로 살았습니다.
믿음으로 노예생활과 감옥 생활을 한다? 좀 이상해 보입니까? 그런데도 요셉은 믿음으로 그런 삶을 채웠어요.


     3] 하나님께서는 그런 저들의 믿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으시고 저들의 하나님이 되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을 무조건 믿는데 하나님께서 하신 일과 하나님의 말씀을 무조건 믿는데 하나님께서 저들을 그대로 두시겠습니까?
저들을 축복하지 않으시겠습니까?
당연히 축복하시지요.
당연히 책임지지 않으시겠어요?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십니다.

    아브라함은 단지 하나님을 신뢰한 것으로 끝난 것이 아닙니다.
.


    4] 부활신앙의 꽃을 피웠습니다.

   저들의 믿음이 아름답지만, 오늘 말씀에 아브라함이 이삭을 모리아 산에서 제물로 바치는 현장에 가보면, 단지 잘 믿는데서 끝나는 그런 믿음이 아닙니다.
    이것은 생사가 걸린 믿음이오, 가문의 장래가 달린 믿음이오, 일에 어떤 믿음이 있었는가를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시겠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으로부터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창 22:1-18).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독생자가 이삭을 바치라고 명하셨을 때 이와 같은 하나님의 명령은  그에게 이겨내기 어려운 혹독한 믿음의 시험이었을 것입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에게 하늘의 뭇별과 같은 자손을 허락해 주신다는 약속의 성취 여부가 이삭을 통해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일찍이 아브라함에게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라고 약속하셨습니다.(창 12:2),
이러한 아브라함의 민족은 오직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한다고 약속하셨습니다(창 21:12).
그런데 그 외아들 이삭을 모리아 산에 가서  바치라 명하십니다.
하나님의 약속과 명령 사이에 커다른 모순이 생기게 됨에 따라 아브라함은 갈등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삭을 통해 아브라함의 민족을 이루시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께서 그 이삭을 바치라고 요구한 것은 하나님 자신의 약속에 상치되는 듯 보였습니다.

   그러나 이런 모순을 제거하는 일은 아브라함이 처리할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이 하셔야 할 문제였습니다(Bruce).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어떠한 방법을 통해서라도 반드시 그 약속하신 바를 이루신다는 믿음이 있었기에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은 단호한 내적인 확신과 신념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아브라함의 믿음 즉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것'이라는 그의 믿음은 아브라함 자신의 과거 경험으로부터 비롯된 것일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죽은자와 다름없는 자신의 몸에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생명인 이삭을 낳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11, 12절). 아브라함의 이러한 경험은 자신의 아들 이삭이 죽는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그를 다시 살리실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해 주었을 것입니다.
이런 확신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종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 내가 아이와 함께 가서 경배하고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창 22:5).

만약 아브라함이 이삭이 다시 살 것을 믿지 못하였다면 이런 말을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시킬 독생자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독생자를 하나님께 드릴 때, 하나님이 다시 살리실 것을 믿었다는 것이지요.
부활신앙을 가지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 부활신앙은 아직 희미한 면이 있습니다.
    이삭이 사실 죽지도 않았고, 더구나 죽지 않았기에 다시 산 것도 아닙니다.
다만 아브라함이 그렇게 믿고 순종했는데 하나님께서는 이를 그의 부활신앙으로 인정해 주셨던 것이지요,

   하나님은 산 자의 하나님이십니다.

    이런 부활신앙은 예수그리스도에서 온전히 이루어졌습니다.

    공관복음서는 동일하게 이 부활신앙을 전하고 있습니다.


    5] 예수님께서는 부활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부활을 믿지 않는 사두개인들의 변론을 반박할 때, 하시던 말씀이 생각나십니까?

   어느 날, 부활이 없다 하는 사두개인들이 예수님께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어처구니 없는 올무로 예수님을 시험하였습니다.

   [마태복음22:24-28]

24. 선생님이여 모세가 일렀으되 사람이 만일 자식이 없이 죽으면 그 동생이 그 아내에게 장가 들어 형을 위하여 상속자를 세울지니라 하였나이다
25. 우리 중에 칠 형제가 있었는데 맏이가 장가 들었다가 죽어 상속자가 없으므로 그 아내를 그 동생에게 물려 주고
26. 그 둘째와 셋째로 일곱째까지 그렇게 하다가
27. 최후에 그 여자도 죽었나이다
28. 그런즉 그들이 다 그를 취하였으니 부활 때에 일곱 중의 누구의 아내가 되리이까

   그 때 예수님께서는 살아계신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이시오, 산 자의 하나님이심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마태복음 22:30-32]

   30.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
31. 죽은 자의 부활을 논할진대 하나님이 너희에게 말씀하신 바
32.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것을 읽어 보지 못하였느냐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니라 하시니

   이는 다른 공관복음에서도 동일하게 보도하고 있습니다.

   [마가복음 12:26]

   죽은 자가 살아난다는 것을 말할진대 너희가 모세의 책 중 가시나무 떨기에 관한 글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말씀을 읽어보지 못하였느냐


   [누가복음 20:37]    

   죽은 자가 살아난다는 것은 모세도 가시나무 떨기에 관한 글에서 주를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시라 칭하였나니

   아브라함 때도, 이삭의 때도, 야곱의 때에도 변함없이 살아계신 하나님께서는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산 자의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살아계신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이시오,'산 자의 하나님이심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6] 예수님은 몸으로 부활하셨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기독교인들에게 주와 그리스도시요, 만왕의 왕이시오, 만 주의 주가 되십니다.


   7] 사도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전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고난 받으시고 죽으신 지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셨을 때, 이를 은폐하기에 급급하는 종교지도자들에게 사도들은 담대하게 전파합니다.

   [사도행전 3:13]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곧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그의 종 예수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너희가 그를 넘겨 주고 빌라도가 놓아 주기로 결의한 것을 너희가 그 앞에서 거부하였으니

        초대 교회 그리스도인들은 이삭이 제물로 바쳐진 사실을 그리스도의 희생에 대한 상징으로 간주하였습니다(Bruce)

    사도들은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부활하게 하셨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스데반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담대히 전하다가 순교하였습니다.'


   [사도행전 7:32]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 즉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라 하신대 모세가 무서워 감히 바라보지 못하더라

[라이트 목사의 부활 신앙]

1827년 스코트랜드의 항구에서 배에 올라탄 노인 목사가 있었다.
성 안드레 교회에서 50년간 설교한 라이트 목사 (Henry Francis Lyte)였다.
건강을 위하여 따뜻한 곳에 살아야 하겠다는 의사의 지시를 따라 프렌치 리비에라로 떠나는 길이었다. 첫번 기항지인 프랑스의 북부 항구에서 하룻밤을 자는데 아침 출항 시간에도 라이트 목사가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여관방을 열었더니 노인 목사는 방바닥에 쓰러져 있었으며 책상에는 밤사이에 쓴 시 한 편이 놓여 있었다.
그것은 오늘날 전세계가 애송하는 찬송가 "때 저물어 날 이미 어두니"
(Abide with me, 531장)이다. 원문을 직역하면 이런 내용이다.

날은 빨리 저물고 어둠이 짙어가는데 주님,
내 속에 거하소서
아무도 나를 위로해 줄 수 없을 때
오직 나를 도와주실 수 있는 주여,
나와 함께 거하소서


작은 인생은 썰물처럼 멀어가고
땅의 기쁨과 영광은 점점 희미해집니다
변하지 않는 주님 내 속에 거하소서
주님의 축복이 내 곁에 있으면
병도 힘을 못쓰며 눈물도 쓰지 않습니다

주님이 나와 함께 계시면
죽음도 무덤도 승리의 개가가 되리이다
내 눈을 감기 전에 십자가를 보게 하소서
하늘의 새벽이 밝아올 때
허망한 땅의 그늘은 사라질 것이오니
사나 죽으나 주님 내 속에 거하소서



    예수님의 부활이 우리를 부활로 인도하십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부활시키셨음을 알수 있습니다.
성경은 예수님을 부활의 첫 열매라고 했습니다.(고전15:20)
이 말씀은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누구든지 부활시켜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시켜 주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도 죽은자 가운데서 부활시켜 주실 것입니다.(롬8:11)

예수님의 부활은 사망의 권세를 이긴것입니다.

영생이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죽은자 가운데서 영광스러운 몸으로 부활시켜 주실 것을 확실히 믿습니다.
이 믿음을 부활신앙이라고 부릅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살아있는 믿음은 부활신앙에서 나옵니다.


예화: [이상재장로님의 부활신앙]

우리  나라의  독립운동가로  이름을  남긴  월남  이상재(李商在,1850-1927) 장로님에게 한 번은 일본 신문 기자가 질문하기를 "간디는 평소에 100세를 산다고 하였고 누구는  몇 세를 산다고 하였는데,선생님은 몇 년이나 사실 작정이십니까?" 하였습니다.

이상재 장로님은 그 기자를 물끄러미 바라보시다가

"사람이 한  번 났으면 영원히 살지,죽기는 왜 죽어!"
라고 했습니다.


   이 부활의 주님께 나의 모든 미래와 삶을 맡기고 영원한 삶을 살아가시는 부활신앙 가지시길 축원합니다.


   2.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세상 무엇보다 중요시해야 합니다.

   [히11:17-19]

   17.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그는 약속들을 받은 자로되 그 외아들을 드렸느니라
18. 그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아브라함에게 이삭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입니다.
그러나 이삭은 하나님의 약속이요 선물입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하나님의 손에 올려드렸습니다.
가장 소중한 이삭을 하나님의 손에 올려드렸을 때 하나님은 그분의 약속을 영원 속에 빛나게 하셨습니다.

   이삭의 생애는 오늘로 말하면 지극히 평범한 소시민적인 삶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감동적인 것이 거의 없고, 전체의 삶을 볼 때에 화려한 그 어떤 것이 없지만 이런 평범한 이삭을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약속이기에  인정하시고 부르시고 그 위대한 구원의 역사의 통로로  쓰셨습니다. 이 놀라운 사실 앞에 우리들은 위로와 소망을 가집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산 생애가 길든지 짧든지 굵든지 가늘든지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고 있는 믿음의 생애냐 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손에 들려주신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임을 믿고 하나님의 손에 올려드릴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그 소중한 것을 약속을 이루시는 도구로 사용하실 때, 나의 소중한 선물은 영원할 수 있습니다.



3. 축복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히11:20-21]

    20. 믿음으로 이삭은 장차 있을 일에 대하여 야곱과 에서에게 축복하였으며
21. 믿음으로 야곱은 죽을 때에 요셉의 각 아들에게 축복하고 그 지팡이 머리에 의지하여 경배하였으며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던 하나님은 이삭에게 그 약속을 다시 확인시켜 주셨습니다.(창 26:2-5)
    이삭은 장차 이루어질 이 약속받은 축복을 그의 두 아들 야곱과 에서에게 축복해 주었습니다(창 27:27-29, 39, 40). 이 때 합법적인 축복의 상속자는 맏형인 에서로 보였으나 야곱은 그 축복을 가로챘습니다.
에서는 그 나머지 축복을 받아야 했다(창 27:39, 40).
중요한 것은 이삭이 미래에 이루어질 하나님의 축복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두 아들에게 축복하였다는 사실입니다.
    이삭의 축복은 믿음에 근거한 것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1절)라는 것에 대한 실증적인 예(例)입니다(Bruce).

     야곱이 장자의 축복을 받은 사실이 비합법적인 것은 아닙니다.
복중에 있을 때, 리브가는 하나님의 약속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큰 자가 작은 자를 섬기리라는 약속입니다.
나중에 이삭이 알게 되었을 때, 이삭 역시 그 축복을 무효화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그가 정녕 복을 받을 것이니라"(창 27:33)고 야곱을 인정해 주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섭리에 의한 것이었음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창 25:23).


    믿음으로 야곱은 죽을 때에 요셉의 각 아들에게 축복하였습니다. 족장 야곱이 미래에 이루어질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를 믿고 아들들에게 축복하였습니다 야곱은 자신의 임종이 가까왔을 때 손자인 에브라임과 므낫세에게 축복하였습니다(창 48:13-20).
    이 때 요셉은 장자의 축복을 장자인 므낫세가 받을 수 있도록 하였으나 야곱은 팔을 어긋나게 하여 오른손으로 차자인 에브라임 머리에 얹고 왼손으로 장자인 므낫세의 머리에 얹어 장자의 축복을 차자에게 해주었습니다(창 48:14, 19, 20).
    이는 인간 세상에서 장자에게 축복과 혜택을 부여하지만 하나님은 인간의 관습에 구애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그중의 주관대로 뜻을 이루는 분이십니다.


     야곱이 그의 임종이 가까왔을 때 지팡이 머리에 의지하여 경배하였다는 것은 지상에서 '외국인과 나그네'(9, 13절)같이 살았던 그의 삶을 특징짓는 상징적인 의미가 함축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히브리인들에게 있어서 지팡이는 순례자의 상징적인 물건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복의 근원으로 삼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축복하셨을 뿐만 아니라, 복의 근원이 되게 하셨으므로 축복하는 사람이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론을 제사장으로 세우시고 제사장에게 주신 특별한 사명이 바로 축복입니다.

    [민6:22-27]

2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3.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이렇게 축복하여 이르되
24.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25.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26.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27. ○그들은 이같이 내 이름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축복할지니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

    복의 근원이 되신 예수님께서는 축복을 주시는 삶을 사십니다.
산상 설교의 머리를 8복으로 장식합니다.
혼인잔치 집에서 물을 포도주로 만드셔서 축복하십니다.
성육신에서 십자가까지 예수님은 모든 것을 주심으로 우리를 축복하십니다.

    성경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를 왕같은 제사장이라고 합니다.
이는 기도해주는 사람이 되라는 의미도 있지만, 축복해주는 사람이라고 선포하십니다.

    다음 주일에는 민욱 형제와 정현 자매가 우리 교회에서 결혼을 합니다.
청춘 남녀가 때가 되어 결혼하는 일이 당연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두 젊은이를 축복하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우리 장로님들이 당회에서 이 문제를 나누는데 모두 축복해주고 싶어하시더라구요,
우리 교회에서 세례 받고 서로 만나서 아름답게 봉사한 두 젊은이를 축복하여 주고 싶은 것은 단지 우리 장로님들만은 아닐 것입니다.
온 교인들이 다 그 마음이지요.

   오늘은 서머나 교회 장로 투표가 있는 날입니다.
우리는 그분들을 투표로 축복할 수 있습니다.

어떤 분이 XX 로 표시한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 분이 좀 특이하다 싶었습니다.
OO표를 하였더라면 훨씬 축복의 의미가 있었을텐데............    .

    제가 체험한 주관적인 이야기를 하나 말씀드려도 될 지 모르겠습니다.
    토론토에서 총회장으로 출마한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저는 그분을 축복해주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 일로 저는 어떤 분에게 30분 이상 곤욕을 당했습니다.
놀라운 일은 축복하지 못하던 그분은 목회지에 몇 년 있지 못하셨어요. 그리고 그 좋은 목회지에서 떠나야 하셨어요.
그때 저는 생각했어요.
축복해주는 일을 하나님은 더 기뻐하시는 구나 하구요.

    축복하여 줄 수 있는 마음이 우리 가문의 전통이 될 수 있다면 그 가문은 복 있는 가문입니다.

    내가 축복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도 축복하십니다.

   우리는 주님으로부터 이런 말씀을 들을 때, 마음이 아픕니다.

   [마7:3-5]

   3.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4.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5.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

    자손을 축복하는 부모님이 됩시다.
이웃을 축복하는 좋은 이웃이 됩시다.
교우들을 축복하는 복의 근원이 됩시다.

대통령은 국민을 축복하고
국민들은 대통령을 축복하고
스승과 부모님은 제자와 자녀를 측복하고
제자와 자녀들은 스승과 부모님을 축복하고
그럴 때 우리 중에는 축복이 넘칠 것입니다.




   [마무리 하는 말]

    1]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되 특별히 부활신앙으로 무장한 가문을 세워갑시다.
첫사람 아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고, 우리도 그리스도 안에서 부활할 것을 믿읍시다.

  부활신앙이 우리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가문을 이룰 수 있게 하십니다.

   2]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을 신뢰합시다.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을 세상에 두신 어떤 선물보다 우선시 합시다.
축복하는 삶의 양식을 생활화 합시다.

     3] 여기에 한 가지 더하여 축복하는 가문을 만들어 갑시다.




   [성경본문]

   17.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그는 약속들을 받은 자로되 그 외아들을 드렸느니라
18. 그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19. 그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20. 믿음으로 이삭은 장차 있을 일에 대하여 야곱과 에서에게 축복하였으며
21. 믿음으로 야곱은 죽을 때에 요셉의 각 아들에게 축복하고 그 지팡이 머리에 의지하여 경배하였으며
22. 믿음으로 요셉은 임종시에 이스라엘 자손들이 떠날 것을 말하고 또 자기 뼈를 위하여 명하였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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