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추수 감사주일이라 할 추석이 지나고, 캐나다의 추수감사주일이 한 주일 앞으로 다가 왔습니다.
추수감사주일이면 우리는 다락방 별로 과일도 올려드리고, 감사헌금도 하면서 정성껏 준비한 애찬도 나눕니다.
그러나 추수감사주일의 본질은 우리 인생에 열매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올리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바울 사도는 그의 인생을 마무리하는 단계에서 이렇게 감사하고 있습니다.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추수감사주일을 맞는 우리에게 무엇을 구체적으로 감사해야 하는가를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1.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신 일입니다.
[12절]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1] 나를 능하게 하시었습니다.
'능하게 하셨다'는 말씀은 '힘있게 하셨다'(has given me strength, NIV)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울이 그리스도 밖에 있었을 때, 그는 영적으로는 죽은 자와 방불하였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다메섹으로 가는 길로 찾아오셔서 그에게 능을 주셨습니다.
바울 사도를 찾아오신 주님께서는 그에게 빛 되신 주님을 영접할 능을 주셨습니다.
그로 거듭날 능력을 주셨습니다.
복음을 영접할 능력을 주셨습니다.
믿음 안에서 성장하게 하셨습니다.
주님을 위해 살도록 삶의 목표를 수정할 힘을 주셨습니다.
모든 사역 중에서 잘 감당할 '힘을 주셨습니다.'(has given me strength, NIV),
성령을 통해 하나님의 특별한 능력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바울 사도가 거듭나서 여러 가지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담대하게 말씀을 전할 수 있는 사도로 서게 된 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주신 능력 때문입니다.
그는 믿음의 경주를 거의 마치고 옥중에 있었을 때 빌립보 교인들에게 이런 고백을 남겼습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분명 주님께서는 나를 찾아오셔서 거듭나게 하시고, 믿음 안에서 자라게 하시고, 삶의 목표를 갖게 하시고, 하나님 사도로 서게 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2] 직분을 맡기셨습니다.
[1] 오늘 말씀에서 하나님께서 맡기신 '직분'이란 '하나님께서 교회의 각 지체에게 맡기신 직무상의 본분 또는 그 직책이나 직위'를 말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직원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구약 시대에는 제사장의 직분이 있었습니다.(대상 24:2; 대하 7:6),
성소의 일을 다스리는 직무도 있었습니다.(대상 24:3),
여호와의 전의 직원도 있었습니다.(대하 23:18)
창세기에 보면, 애굽의 바로 왕 밑에 술이나 떡을 맡은 관원직이 있었습니다. (창 41:9)
신약에서는 바울이 사도로서의 직분을 주님께 받았습니다.(롬 11:13)
지역 교회에는 목사, 장로, 감독, 집사를 비롯한 여러 직분이 있습니다.(딤전 3:1)
[2] 어떤 특별한 교회에서는 직분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직분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받은 직분은 사람이 임의로 세운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맡기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직분을 무시하면 직분을 맡기신 주님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 직분'(*, 디아코니안)이란 말은 '봉사'(service,NIV, JB)와 깊은 연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직분을 존중한다는 것은 직분을 맡기신 주님을 존중하는 것이요, 나아가 봉사를 잘 감당한다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3] 주님께서는 직분의 주인이 되십니다.
이 직분은 주님께서 깊은 뜻을 가지고 만드셔서 그것을 사울이란 사람에게 맡기셨습니다.
잘 사용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도록 맡기셨습니다.
이 직분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사용하다가 돌려주도록 맡기신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 직분을 충성스럽게 감당한 사울을 사도 바울로 두고두고 부르는 것입니다.
[4] 주님께서 바울에게 사도의 직분을 맡기셨다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13절]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사울이 누구입니까? 주님을 정면으로 대적하던 사울이 아닙니까?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습니다.
주님과 그 교회를 파멸시키기 위해 뒷발질하던 그런 악한 자였습니다.
스데반을 비롯한 수많은 기독교인들에게 '상해를 입혔습니다'
'모독하였습니다'
'거만(倨慢)한 사람'으로 믿는 사람을 학대하였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인들을 훼방하고 핍박하는 것이 하나님을 제대로 섬기는 것인 줄 알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지 못하는 영적무지상태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보통 직분도 아닌 사도의 직분을 맡기셨다니 놀라운 일이 아닙니까?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징계 대신에 긍휼을 베푸셔서 복음 사역을 감당하는 사도로 불러주시다니 이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권능자가 아니고서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생각해 보면, 주님께서 직분자를 임명하시는 방법은 좀 놀랍습니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를 사도로 부르신 것을 보면 그렇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 정도의 직분자를 부를 때는 정말 굉장한 사람들을 부릅니다.
고국에서 국무총리 하실 분을 찾는데 많은 고심을 한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능력과 청렴도에서 탁월하지 않으면 청문회를 통과할 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것만 봅니까?
가문을 보고, 학력을 따지고, 인격을 보고, 언어 행실 등 어지럽습니다.
그런데 주님의 열두 제자를 보면, 정말 무엇을 보셨는지 감이 가지 않습니다.
그냥 아무 조건을 고려하지 않으신 것처럼 느껴집니다.
세리여도 좋습니다.
어부여도 좋습니다.
아무나 와도 좋습니다.
더구나 사도 바울의 경우는 더욱 놀랍니다. 바울 사도가 고백한 것처럼
"원수중에 괴수니라."
적장이었다는 말씀입니다.
이런 적장을 아군의 사령관으로 주님은 임명한 것입니다.
온 우주의 절대 주권을 가지신 분이시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원수의 앞잡이 노릇을 하는 사울의 항복을 받아 그를 하
나님 나라 시민권자로 개종시키고
그에게 사도의 직분을 부여하신 다음에 능력까지 부여하신 것입니다.
그가 결코 위대하거나 행위의 온전함 때문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그를 압도할 수 있는 능력과 주권을 가진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 스스로 자신의 무가치성을 스스로 인정하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위대성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3] 충성되이 여기셨습니다.
또 하나의 감사한 일은, 바울 사도를 찾아오셔서 능하게 하신 주님께서 직분을 주실 때 그의 충성도 보신 것이 아닙니다.
이사람 사울은 충성되구나 이렇게 보신 것이 아닙니다.
사실 사울은 그가 고백한 바에 따르면 하나님께 충성된 자가 아닙니다.
원수에게 충성되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그를 충성된 것처럼 여기셨습니다.
'나를 충성되이 여'기셨다.
충성되지 않은 자를 충성된 것으로 인정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참 놀라운 말씀입니다.
지난 월드컵에서 박주영 선수가 자살골을 넣고 말았습니다.
그때 얼마나 원성을 들었는지 모릅니다.
상대팀에 가서 골을 넣어야 할 선수가 우리 편 골대에 골을 넣은 셈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사울은 이보다 훨씬 심각한 사람 이었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충성한다고 자신은 확신하고 있었는데요.
실상은 자살골 전문가였던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잘 모르고 속을 수 있지만 하나님은 아시지 않습니까?
주님께서는 그것을 누구보다 더 잘 알면서도
우리 선수로 부르신 것입니다.
왜입니까?
주님께서 충성된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계3:14]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이르시되
충성되신 주님께서는 다른 사람들을 충성된 사람을 충성되게 보셨습니다.
진실한 사람은 다른 사람을 진실한 것으로 봅니다.
마음이 착한 사람은 다른 사람도 마음이 착한 것으로 봅니다.
주님은 누구보다 사울을 잘 아시는데, 그를 충성된 자로 인정하셨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여러분은 어떤 직분을 맡으셨습니까?
충성되이 여기셔서 맡기신 주님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충성되이 여기셨기 때문입니다.
직분은 충성된 사람에게 적합한 옷과 같습니다.
날개를 달아주신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2:2]
또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그들이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
어제는 순장 모임을 하던 가운데 직분자들의 충성에 관한 의견을 나누게 되었습니다.
우리 서머나 교회에는 직분자들이 비교적 충성됩니다.
그러나 어떤 부분에서는 반성할 부분이 없지 않습니다.
우리 교회 장로님들은 특별한 일이 아닌 한 당회에 늘 참석하십니다.
피치 못할 일이 있으면 미리 말씀해 주셔서 시간을 조정하거나 위임합니다.
기도 순서를 맡으신 장로님은 반드시 기도를 하십니다.
특별ㄱ한 일이 있으신 장로님은 미리 순서를 바꿉니다.
장로님이 당회를 이유없이 불참하고, 기도를 펑크내고 하신다면 불충한 것입니다.
제직이 제직회 참석을 전혀 하지 않는다고 합시다. 그것은 참 웃음거리가 될 수 있습니다.
국회위원이 국회에 전혀 참석을 하지 않는다 그는 국회의원이 할 수 없지요.
국회위원직을 내려 놓든지 국회를 참석하든지 해야 합니다.
수요예배 때 집사들이 돌아가면서 기도를 드립니다. 일 년에 한 번 얻을 수 있을까 하는 기회입니다. 충성된 집사라면 그 기도 시간을 자신의 년간 계획 속에 적어 두고 준비하고 있다가 기도 시간을 은혜롭게 감당할 것입니다.
예배부에서 그렇지 못한 분도 있다는 말을 듣고 말씀드립니다.
내년도 제직을 임명할 때에는 그것을 묻고 그렇게 하는 것이 좋겠다는 건의가 있어서 말씀드립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고 수납하는 분들에게 직분을 맡겨야 되겠다는 건의입니다.
충성된 자를 사랑하시는 충성되신 주님께서는 주님의 일꾼들에게 충성을 구하십니다.
[고전4:1-2]
1.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2.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우리 성도는 마땅히 그리스도의 직분자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라는 것입니다.
이 그리스도의 직분자에게 주님께서 구하시는 것이 있는데요.
바로 충성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바울에게 사도를 맡기실 뿐 마니라 충성되이 여기셨다 하십니다.
지혜있고 충성된 종이 되어 때를 따라 주님의 사람들에게 양식을 나누어 줄 잘 여기셨다는 말씀입니다.
[마태복음 24:45]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냐
주님의 몸된 교회를 핍박했던 바울에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를 '충성되이 여겼다'
주님께서 사랑과 헌신의 정신으로 충성스럽게 봉사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추수 감사주일을 맞아 우리가 주께 감사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2. 주님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풍성하기 때문입니다.
[14절]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주의 은혜가 무엇입니까?
바울 사도는 그리스도를 훼방하는 죄인 이었지만 하나님은 그에게 은혜를 베푸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얻게 되었습니다.
주의 은혜를 이해하기 위해서 주님께서 말씀하신 탕자의 비유가 적합합니다.
자기 아버지의 재산을 먹어버린 아들,
아버지를 떠나 제 멋대로 살았던 아들
더 이상 살 소망이 없어서 품군으로라도 써주시길 원하면서 돌아온 아들을
아버지는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아들을 맞아들이고
성대한 잔치를 베풉니다.
자신의 반지를 그에게 끼워줍니다.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리는 주님의 무한한 은혜를 이해하게 됩니다.
사울을 받아들여서 그 죄를 용서하시고 사도로 삼으신 주님의 은혜를 이해하게 됩니다.
요즈음 젊은이들 가운데 불리는 '은혜로다'란 찬양이 있습니다.
시작됐네 우리 주님의 능력이
나의 삶을 다스리고 새롭게 하네
자유하네 죄와 사망으로부터
나의 삶은 변하고 난 충만하네
은혜로다 주의 은혜
한량없는 주의 은혜
은혜로다 주의 은혜
변함없는 신실하신 주의 은혜
사도 바울은 이 놀라운 주님의 은혜를 생각하며 어떻게 노래하고 있습니까?
그는 하나님의 은혜에 놀라 이렇게 외칩니다.
[15절]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믿음과 사랑은 은혜로부터 옵니다. 바울은 여기서 '함께'(*, 메타)라는 전치사를 사용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의 믿음과 사랑과 함께 합니다. 분리된 것이 아닙니다. 마치 잔에 뚜껑이 열려 있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은혜를 부어주시고, 우리 성도는 믿음으로 받아누리는 것입니다.
추수 감사주일을 맞아 우리가 주께 감사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3. 긍휼을 입어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는 삶을 살기 때문입니다.
16절]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체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체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감사한 최고의 경지는 죄인 중의 괴수가 주님을 믿고 영생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는 자리까지 이르렀다는 것입니다.
1] 본받아서는 안될 부분이 있습니다.
[1] 이방인의 기도를 본받지 말아야 합니다.
[마태복음 6:8]
그러므로 그들을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2] 외식하는 자들의 행위를 본받지 말아야 합니다.
[마태복음 23:3]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그들이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그들이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그들은 말만 하고 행하지 아니하며
[3] 이 세대를 본받아서는 안됩니다.
[로마서 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2] 예수님을 본받아야 합니다.
[에베소서 5:1]
그러므로 사랑을 받는 자녀 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
[1] 예수님께서는 본을 보이시려고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찾아오셨습니다.
[요한복음 13:15]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로마서 15:5]
이제 인내와 위로의 하나님이 너희로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아 서로 뜻이 같게 하여 주사
[16절]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체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3] 사도를 본받아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4:6]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이 일에 나와 아볼로를 들어서 본을 보였으니 이는 너희로 하여금 기록된 말씀 밖으로 넘어가지 말라 한 것을 우리에게서 배워 서로 대적하여 교만한 마음을 가지지 말게 하려 함이라
[고린도전서 4:16 ]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권하노니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고린도전서 11:1]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야고보서 5:10]
형제들아 주의 이름으로 말한 선지자들을 고난과 오래 참음의 본으로 삼으라
4] 본이 되는 성도가 있는가를 보고 그분을 본받아야 합니다.
[빌립보서 3:17]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 그리고 너희가 우리를 본받은 것처럼 그와 같이 행하는 자들을 눈여겨 보라
5] 그와 같이 행하여 다른 사람이 본받을 수 있는 본이 되는 자리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2:21]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디모데전서 4:12]
누구든지 네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고 오직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있어서 믿는 자에게 본이 되어
[베드로전서 5:3]
맡은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양 무리의 본이 되라
- 데살로니가 교회는 본이 되는 교회를 본받았을 뿐 아니라 나아가 본이 되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2:14 ]
형제들아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유대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들을 본받은 자 되었으니 그들이 유대인들에게 고난을 받음과 같이 너희도 너희 동족에게서 동일한 고난을 받았느니라
[데살로니가전서 1:7 ]
그러므로 너희가 마게도냐와 아가야에 있는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느니라
6] 본이 되는 신앙생활 속에 평강의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빌립보서 4:9 ]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마무리하는 말]
어제 일간 신문에서 감사로 충만한 한 자매의 기사를 보았습니다.
'미국의 대표적 우범지역인 캘리포니아주 이스트 오클랜드지역에서 10년 넘게 거주하며 활발한 지역 봉사활동을 해온 한국계 여성 소아과의사 조앤 정(39·한국이름 김지은)은 아들에 대해 말하면서 얼굴이 잠시 어두워졌다. 그러나 정씨는 “지역사회가 모두 함께 돌보고 있기 때문에 (이곳이) 그렇게 위험하진 않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녀가 남편 러셀 정(47), 아들 매튜(6)와 함께 사는 이스트 오클랜드 내 빈민가는 주민의 25%가 절대빈곤 상태에 있다. 해외 태생도 40%를 넘는다.
정씨는 지난 1999년 이곳으로 들어와 ‘뉴 호프 커버넌트 교회(New Hope Covenant Church)’의 일원으로 의료봉사와 함께 이곳에서 자라는 청소년을 대상으로 방과 후 과외학습, 멘토링, 선교활동 등을 병행하면서 지역사회 내 빈곤퇴치와 폭력추방 등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또 영어소통이 어려운 아시아 이민자들을 위한 병원인 아시안 헬스서비스 산하 프랭크 캥 메디칼센터에서 소아과 의사로도 근무하고 있다.
그녀는 “16살 때 처음 로스앤젤레스(LA)로 이사 왔을 무렵 친구가 없이 외로웠다”며 “가난한 사람들에게 하는 행동이 바로 예수님께 하는 행동이라는 구절을 보고 (봉사활동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하버드대 사회학과를 졸업한 정씨는 워싱턴 D. C. 빈민가에서 어린이들을 위한 방과 후 활동을 하면서 이것이 내가 갈 길이라고 확신하게 됐다. '
추수감사주간을 앞두고 주님께 감사해야 하는 이유를 찾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감사 이유를 적어서 하나님께 올리실 수 있기 바랍니다.
무엇을 감사할까요?
1.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신 일입니다.
2. 주님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풍성하기 때문입니다.
3. 긍휼을 입어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는 삶을 살기 때문입니다.
[성경본문]
12.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13.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14.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15.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16.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체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17. 영원하신 왕 곧 썩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고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이 영원무궁하도록 있을지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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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윤선 목사님의 설교 내용
1. 배경
바울은 AD 57년경에 예루살렘에서 체포되어 2년 동안 가이사랴의 감옥에 수감되었다(행 21:9-26:32). 그리고 가이사 앞에서 재판을 받기 위해 로마로 떠난 것은 59년 9월이었다. 그런데 배가 파손되어 3개월간 멜리데에서 머물렀고 60년 2월에 로마에 도착했다(행 27-28장). 거기서 그는 자신이 빌린 집에서 기거하면서 사역을 자유로이 할 수 있었다.
후에 바울은 고소가 취하되어 무죄로 풀려나 자유로운 몸이 되었다. 그후 2년 동안 여러 지역에서 사역을 했고 디모데전서와 디도서를 썼다. 약 65년경에 그는 다시 체포되었고 지하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이때 그의 마지막 편지인 디모데후서를 썼다.
2. 중심사상
바울은 자신에게 주의 은혜가 임하였음을 감사, 찬양하고 있다.
3. 중심요절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15절).
4. 바울의 프로필
1)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하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것을 강요한 훼방자였다. 그는 교회를 멸하고자 물리적인 힘을 사용한 핍박자였다. "살기 등등한 위협"은 그에게 있어서 불가결한 것이었다(행 9:1). 그는 그리스도의 교회를 핍박했는데(고전 15:9), 그후 메시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이 붙잡고자 했던 것임을 깨달았다(행 9:4). 바울이 랍비 사울이었을 때 그는 스데반을 돌로 치는 것에 동의했고 교회를 크게 파괴시켰다(행 7:58, 8:1-4).
바울은 포행자였다. "포행"이란 말의 원래 뜻은 "거만한, 고집불통의"이다. 현대어로 "윽박지르는 자"라 할 수 있다. 그 말에는 폭력으로 "권력을 행하는" 거만한 자의 개념이 있다. 그러나 그가 불경한 행위를 했던 근본적 이유는 "무지"와 "불신"이었다. 비록 사울이 영민하고 학식이 많은 사람이었다고 할지라도(행 22:3), 그의 심령은 진리에 대하여 눈이 멀어 있었다(갈 1:13-14). 그는 종교적인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천국을 향하고 있지 않았다. 그가 구원받은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된 때부터이다(빌 3:1-11).
2) 어떻게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스스로 의롭다 하는 그런 죄인을 구원하시고 용서하실 수 있었는가? 이에 대해 그 열쇠가 되는 말은 "긍휼"과 "은혜"이다. 긍휼의 하나님께서는 바울이 마땅히 받아야 할 죄책을 내리지 아니하시고 대신 그가 받을 자격이 없는 것을 은혜의 하나님으로서 그에게 베푸셨다. 은혜와 긍휼은 행동으로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이요, 죄인들을 구원하시고자 값을 치르신 하나님의 사랑인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랑만으로 우리를 구원하신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온 세상을 다 사랑하시기 때문이다(요 3:16 ). 우리가 구원받은 것은 은혜로 말미암음이요(엡 2:8-9), 이는 하나님께서는 긍휼(2:4)과 은혜(2:7)가 풍성하시기 때문이다.
바울의 "무지"와 그의 구원은 어떤 관계가 있는가? 무지가 하나님 앞에서 변명이 될 수 있는가? 물론 그럴 수 없다. 그가 무지하다는 사실은 유대의 특별한 율법과 관계가 있다(레 5:15-19). 만일 어떤 사람이 이스라엘에서 알면서도 "고의적으로" 죄를 범하였다면 그는 자신의 죄를 보상하기 위하여 적당한 희생을 바치는 것이 허락되었다. 예수께서는 이 원리를 십자가에 달려 기도하실 때 인정하셨다.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34).
그들의 무지는 그들을 구원하지 못했으며, 그리스도의 기도도 즉각적으로 그들을 구원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그 둘의 결합은 하나님의 심판을 연기시키고 그들에게 구원받을 기회를 주었다.
3) 하나님의 은혜는 박해자를 변화시켜 전도자가 되고 했고, 살인자를 사역
자요 선교사가 되게 했다. 바울의 삶에 일어난 변화는 너무도 극적이어서 예루살
렘 교회는 그것이 계략이라고 의심했고 그를 받아들이는데 어려움을 겪어야 했
다(행 9:26-31). 하나님께서는 바울에게 사역을 맡기셨다. 즉 그는 베드로에게
나 다른 사도에게서 사역을 받은 것이 아니었다(갈 1:11-24). 그는 하늘에 계
신 그리스도께 부르심을 받아 위임받은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바울의 신실함을 보시고 그에게 복음을 맡기신 것이다. 비
록 믿지 않고 복음에는 무지한 랍비였지만 바울은 자신이 갖고 있는 빛을 기준하
여 살면서 선한 양심을 유지하고 있었다. 우리 중 누구도 바울이 다메섹으로 올
라가던 중에 당했던 것과 같은 경험을 갖지는 못한다. 우리는 빛을 보거나, 땅바
닥에 쓰러지거나, 하늘로부터 예수의 음성을 듣지도 못했다. 그러나 바울은 모
든 죄인들에 대해 한 전형이 된다. 왜냐하면 그는 죄인 중에 괴수였기 때문이
다. 그는 하나님의 은혜가 어떤 죄인이라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증거가 되는 것
이다.
5. 본문 분할
주제 : 바울에게 임한 주의 은혜
12-14 :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였다.
12 - 직분 맡기심을 감사
13 - 긍휼 입었음을 감사
14 - 풍성한 주의 은혜를 감사
15-17 : 바울은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렸다.
15 - 죄인을 구하시려고 성육신하신 예수 그리스도께 영광
16 -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신 예수 그리스도께 영광
17 - 오직 하나이신 하나님께 영광
6. 강해설교 아웃라인
본 문 : 딤전 1:12-17
제 목 : 바울의 간증
중심내용 : 바울은 자신을 구원하여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 찬양하였
다.
설교목적 : 하나님은 어떤 죄인이라도 회개하면 용서하시고 사랑해 주시
는 분이시며, 또한 귀한 직분까지도 허락하시는 은혜의 하나님
이심을 성도들에게 소개하기 위함이다.
서 론
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고 하였다.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느냐에
따라 그의 운명은 행복할 수도, 불행할 수도 있다.
2) 바울은 지금 현재 매우 고달픈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는 가족도 없었고
주님처럼 집 한채, 방 한칸조차 마련되지 못한 최악의 환경에서 악전고
투하고 있었다.
3)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하며 감사하는, 매
우 감격스러운 신앙을 간증하고 있다. 무엇이 바울을 이렇게 만들었
는가?
I.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였다(12-14).
A. 직분 맡겨주심을 감사드렸다(12절).
1) 직분은 아무나, 모든 사람이 다 받는 것은 아니다. 오직 능력이 있어
야 직책이 주어진다.
2) 그런데 하나님은 바울을 능한 자로 만들어 주셔서 직분에 합당한 자
로 만들어 주셨다.
3)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직분은 성도의 직분(이는 제자의 직분, 전도
자의 직분을 전제)이다.
4)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직분은 무엇인가?
B. 하나님의 긍휼을 감사드렸다(13절).
1) 긍휼이란 값없이 주는 하나님의 은혜를 말한다.
2) 바울은 그리스도의 이름을 조롱하던 훼방자였다(행 26:11).
3) 그는 핍박자였다(행 9:1-5, 22:4-5).
4) 그러나 하나님은 이러한 바울을 불쌍히 여기셔서 그에게 자비를 베푸
셨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우리도 사랑하신다.
C. 풍성하신 주의 은혜를 감사드렸다(14절).
1) 바울이 받은 은혜는 물질이 아니었다.
2) 그것은 명예도 아니었다.
3) 바울이 받은 은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신령한 것이었다. 그에
게는 오히려 육신의 가시가 있었다(고후 12:7).
4) 나의 감사는 무엇에 대함인가?
II. 바울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15-17).
A. 그리스도의 성육신은 죄인 구원을 위해서였다(15절).
"구원하기 위하여"라는 말은 두 가지의 의미로 생각할 수 있다.
* 첫째로, 죄책감으로부터의 구출이다. 죄의 노예로부터의 구출을 의미
하며, 죄의 형벌로부터의 구출을 의미한다.
* 둘째로, 죄로부터의 구원은 우리를 하나님의 "의"로 인도하였고, 자유
를 주었고, 축복을 주었다.
B.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겨주신 은혜를 깨달았다(16절).
1)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삶은 입으로만 형식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
라,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삶이어야 한다.
* 바울은 자신이 긍휼 입은 자임을 깨달았다.
* 이것은 다른 사람에게 본이 되게 하려는 하나님의 섭리임을 알았다.
2)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하나님께 돌아오기를 원하신다.
* 나의 죄가, 나의 죄책감이 어떻든 회개하면 하나님은 용서하신다.
* 궁극적으로 하나님은 나를 들어 전도자로 쓰고자 원하신다.
C. 인생의 참된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삶이다(17절).
1) 바울은 자신의 과거에도 불구하고 현재와 미래를 허락하신 하나님
께 영광을 돌렸다.
2) 하나님은 우리에게 현재와 미래를 주셨다. 그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삶은 무엇인가?(박윤선목사 주석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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