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 주시마고 약속하신 땅,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가나안 땅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도착했습니다.
하지만 그 땅에서 누구도 그들을 환영하는 사람들은 없었습니다. 대신 하나님을 대적하는 완악한 백성들과 견고한 성들이 버티고 서 있습니다.
1. 견고한 성을 극복하였습니다.
[히11:30]
믿음으로 칠 일 동안 여리고를 도니 성이 무너졌으며
여리고 성은 난공불락의 요새였습니다(수 2:1).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변함없이 말씀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수6:2-]
2.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여리고와 그 왕과 용사들을 네 손에 넘겨 주었으니
3. 너희 모든 군사는 그 성을 둘러 성 주위를 매일 한 번씩 돌되 엿새 동안을 그리하라
4. 제사장 일곱은 일곱 양각 나팔을 잡고 언약궤 앞에서 나아갈 것이요 일곱째 날에는 그 성을 일곱 번 돌며 그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 것이며
5. 제사장들이 양각 나팔을 길게 불어 그 나팔 소리가 너희에게 들릴 때에는 백성은 다 큰 소리로 외쳐 부를 것이라 그리하면 그 성벽이 무너져 내리리니 백성은 각기 앞으로 올라갈지니라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였습니다.
여리고 성 주위를 엿새 동안 하루에 한번씩 돌았습니다.
그리고 7일째 되는 날에는 일곱 번 돌았습니다.
그리고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그 때 여리고 성이 무너져내렸습니다(수 6:1-21).
이는 인간의 상식과 이성을 넘어가는 불가능한 일로 보입니다.
누구도 믿음이 없이는 이해가 될 수 없는 사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믿고 그의 명령에 따라 행동으로 실천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현실입니다.
이는 저들의 믿음에서 나온 일입니다
여리고성 무너진 성벽을 고고학적으로 접근한 동영상을 소개해 드립니다.
http://www.youtube.com/watch?v=zhS-B0ykkbE
이것이 오늘 성경 말씀을 보장할 수는 없지만 도움은 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중요한 것은 우리 현실 속에서 여리고성과 같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가로막고 있는 성벽들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성벽들로 인하여 절망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있습니다.
하지만 많은 믿음의 사람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현실을 믿음으로 극복하는 일들이 많습니다.
저의 생애에서 여리고 성을 만난 사람들을 여러분 만났는데 그 가운데 한 분을 소개합니다.
[생의 불꽃]
'뇌종양!' 이 복진 집사님의 집념어린 투병생활을 지켜본지도 4년이 되어간다. 그 병의 위력은 실로 대단했다. 그분 주변을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몰아갔다. 그러나 이복진 집사님이 투병 중에 보여준 신앙은 더욱 강했다.
투병 중 이 집사님이 일구어낸 첫 번째 일은 성경 66권을 손수 필사하는 일이었다. 건강한 사람도 이 작업을 하는 일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닌데, 이 집사님은 힘없고 떨리는 손으로 신구약 성경 66권을 모두 쓰셨다. 쓰셨다기 보다 그리셨다는 표현이 옳다. 4년 만에 모든 성경을 그려내신 것이다. 그만한 열심이라면 정상적이셨을 때는 일 년에 몇 번이라도 썼을 성경이었겠지만, 손의 기능이 마비되어가는 그녀로서는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어머니만 해낼 수 있는 작업이었다고 해야 되지 않을까? 두 아들에게 남겨줄 유산은 바로 이 하나님 말씀이라고 확신하고 있었으므로.
생의 불꽃이 서서히 사위어 가던 황혼녘에 프린시스 마가렛 병원에서 나는 이사야43장01절 말씀을 읽어드린 적이 있다.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조성하신 자가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나는 이 하나님 말씀을 이렇게 꼭 잡고 삽니다."
굳게 쥐신 손을 보여주셨다. 정말 그분에게 그것은 사실이었다. 불편하신 몸으로 성경 66권을 써나가시던 때의 일이다. 병마(病魔)만이 그녀를 압박한 것은 아니었다. 경제적 역경까지 그분 가정을 위협하고 있었다. 캐나다에 불어닥친 불경기가 교민 사회까지 강타하던 때였었다. 십년이 넘게 살아온 주택이라도 처분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형국이었었다. 그러나 주택매매는 수년 째 동면 상태에 있었다. "FOR SALE"을 세웠다 뽑기를 몇 번이었던가!
창세기로부터 쓰기 시작한 성경은 출애굽기를 거쳐 여호수아를 통과하고 있었다. 요단강을 건넌 이스라엘 군대는 이제 여리고성을 돌고 있었다. 한 바퀴, 두 바퀴....... . 칠 일째는 일곱 바퀴를 돌고 있었다. 드디어 돌고 돌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행렬이 멈추었다. 제사장은 나팔을 불었다. 온 백성은 여리고성을 향해 외쳤다.
"이에 백성은 외치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매 백성이 나팔 소리를 듣는 동시에 크게 소리 질러 외치니 성벽이 무너져 내린지라(여호수아6:20)."
여기까지 성경을 쓰시던 이집사님은 조용히 손을 멈추었다. 피곤하고 힘든 탓만은 아니었다. 성령의 감동이 그분을 압도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 여리고 성을 무너뜨린 하나님께서 우리 집 한채 팔아주시지 못하겠는가?'
그녀는 불편한 몸으로 기도하면서 하루에 한 차례씩 집을 돌기 시작하였다. 그러기를 하루 이틀... . 여드레째 되는 날 집이 팔렸다. 왜 여리고성처럼 이레째 되는 날 집이 팔리지 않았을까요 묻는 나에게 그분은 대답했다.
"주일에는 쉬었거든요."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내 앞을 가로 막고 있는 여리고 성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뜻이 있는 길이라면 믿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스가랴 4:7]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네가 스룹바벨 앞에서 평지가 되리라 그가 머릿돌을 내놓을 때에 무리가 외치기를 은총, 은총이 그에게 있을지어다 하리라 하셨고
이스라엘 백성의 믿음을 보시고 여리고성을 무너지게 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믿음을 보시고 우리 앞의 큰 성을 극복하게 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
2. 멸망의 도성에서 구원을 체험했습니다.
[히11:31]
믿음으로 기생 라합은 정탐꾼을 평안히 영접하였으므로 순종하지 아니한 자와 함께 멸망하지 아니하였도다 '
라합은 그 시대에 누구와 견주어도 자랑할 만한 somebody가 아니었습니다. 그녀에 대해서 성경은 간단히 '기생'이라는 말로 소개를 대신합니다. 기생은 창녀란 말입니다(수 2:1). nobody였죠.
그럼에도 라합은 유대인들과 초대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 높이 존경받는 성서적 인물로 나타납니다. 뿐만 아니라 그녀는 사라, 아비가일, 에스더, 룻, 마리아와 더불어 성경의 대표적인 여인 중의 한사람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신약성경에서도 라합의 믿음은 본 절뿐만 아니라 다른 성경에서도 찬양되고 있습니다.
nobody였던 그녀가 God's body일 수 있었던 비밀이 어디 있습니까?
[약2:25-26]
25. 또 이와 같이 기생 라합이 사자들을 접대하여 다른 길로 나가게 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26.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1] 영적 시력때문입니다.
"라합이 사자들을 접대하여"
라합은 기생이었지만 영적인 통찰력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았습니다.
이 하나님을 떠나 부패하고 가증한 여리고성에 하나님이 등을 돌리신 것을 깨달았어요.
그녀는 비록 세상에서 nobody였지만, 소돔과 고모라와 같이 패역한 여리고 성에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녀는 하나님의 사자로 찾아온 이스라엘의 정탐꾼들을 목숨을 걸고 보호하였습니다.
“나의 영적인 시력은 어떻습니까?”
2] 행하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사자들을 접대하여 다른 길로 나가게 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26.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라합이 오늘까지 믿음의 인물로 추앙받는 것은 이스라엘의 첩자를 숨겨준 행함 있는 믿음 때문입니다.
그녀의 행동이 발견될 경우 죽음을 면치 못하게 됨을 알고서도 그러한 행동을 믿음으로 실행하였습니다.
결국 이스라엘이 여리고를 점령하는 데 중대한 공헌을 하였습니다.
이는 목숨을 걸고 믿음을 실천한 행위였습니다(수 2:1-21).
그녀는 하나님의 약속이 담긴 말씀을 100% 믿고 그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행하였습니다. God's body로 내어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라합의 믿음을 보시고 그녀를 God's body로 사용하셨습니다.
3] 결국 라합은 예수님의 족보에 등장하는 영광을 얻습니다.
마태복음 1장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가 나옵니다. 그 족보에는 이방인이거나 타락한 여인들이 4명 나옵니다.
유다의 며느리 다말(창 38장),
모압여인 룻(룻기),
다윗으로 인해 유명해진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사무엘하 11장),
그리고 라합(수 2장)입니다.
그 가운데 라합의 족보는 우리에게 황홀함을 선사합니다.
[마 1:5-6]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 왕을 낳으니라”
라합이 유대계 살몬과 결혼했습니다.
그리하여 낳은 아들이 보아스요,
그 보아스는 룻과 결혼하여 다윗이라는 증손자를 두었습니다.
라합은 창녀라는 천한 신분에서 그리스도의 족보, 로얄 패밀리에 들었습니다.
그 환상적인 룻을 날게 한 보아스가 바로 라합의 아들이었습니다.
할렐루야!
목숨을 건 믿음은 자신뿐만이 아니라 가정을 믿음의 명문가정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족보에 드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라합뿐 아닙니다.
3. 믿음의 열매는 다양합니다.
[히11:32]
32. 내가 무슨 말을 더 하리요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 다윗 및 사무엘과 선지자들의 일을 말하려면 내게 시간이 부족하리로다
본문에는 우리 귀에 익숙한 믿음의 용장들이 등장합니다.
1] 바락은 동역하는 믿음으로 가나안 족속의 압제로부터 이스라엘을 구원한 사사였습니다(삿 4장).
바락은 사사 드보라와 함께 일어나 가나안 왕, 야빈과 싸웠던 장군입니다.
야빈은 20년 가까이 이스라엘을 압제하던 가나안 왕이었습니다.
그에게는 당시 900대의 철병거와 그들을 지휘하던 시스라 장군이 있었습니다. 철병거는 당시 아무나 도전할 수 없는 무적 전차부대였습니다. 이스라엘로서는 대항할 엄두도 낼 수 없는 군대였습니다. 철병거로 무장한 가나안의 압제는 20년 가깝게 계속되고 있었지만 이스라엘은 두려움에 떨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가나안왕 야빈에게 시스라라는 장군이 있었다면, 드보라에게는 바락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시스라에게 철병거가 있었다면 바락에게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바락은 드보라와 동역하는 믿음으로 시스라의 철병거에 맞섰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락을 통해 가나안 왕을 격파합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에게 큰 승리를 안겨 줍니다.
하나님은 바락을 통해 승리를 주셨습니다.
바락은 God's body로 쓰임받았습니다.
바락은 드보라와 동역하는 믿음으로 시스라에 맞서 싸워 이스라엘 구원에 쓰임받았습니다.
2] 기드온은 겸손한 믿음으로 미디안의 군대를 무찌른 사람이었습니다(삿 7장).
기드온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자기는 극히 미약하고 제일 작은 자라고 대답했습니다.
“너는 이 네 힘을 의지하고 가서 이스라엘을 구원하라 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주여 내가 무엇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리이까 보소서 나의 집은 므낫세 중에 극히 약하고 나는 내 아비 집에서 제일 작은 자니이다”(수 6:14,15).
기드온은 하나님께서 내신 첫 번째 시험에 합격했습니다.
아더 핑크는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쏘신 첫 번째 화살이 적중되었다.”
기드온이 자기의 무능함과 연약함을 솔직하게 고백했을 때 하나님은 즉시 기드온과 반드시 함께 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하리니 네가 미디안 사람 치기를 한 사람을 치듯 하리라”(삿 6:16).
자기의 무능함과 연약함을 고백하는 종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축복입니다.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하리라 네가 반드시 원수를 쳐서 이기리라.”
교만하고 자만한 사람에게는 이김과 구원의 은혜가 임하지 않고 겸손하고 낮아지는 사람에게 이김과 구원의 은혜가 임합니다. 기드온은 겸손한 믿음으로 미디안을 극복하였습니다.
3] 삼손은 회개하는 믿음으로 블레셋을 극복한 사사였습니다(삿 13-16장).
삼손은 하나님께서 특별하게 만드신 특제품이었습니다. 범죄한 이스라엘 백성, 심판을 받게 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해 사사라는 인물로 특별하게 만드신 특제품이었습니다. 마노아의 아내는 아기를 낳을 수 없는 여인이었는데 하나님께서 특별한 방법으로 삼손을 잉태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특별한 태아 교육까지 시키셨습니다.
“그러므로 너는 삼가서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찌며 무릇 부정한 것을 먹지 말찌니라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머리에 삭도를 대지 말라 이 아이는 태에서 나옴으로부터 하나님께 바치운 나실인이 됨이라 그가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시작하리라”(삿13:3,4).
특제품으로 사사로 만들어진 강한 사람 삼손이 어떠한 삶을 살았습니까? 고삐 풀린 망아지 같은 ‘무절제한’ 삶을 살았습니다. ‘천방지축의’ 삶을 살았습니다. ‘못 말리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 결과 그는 눈이 뽑히고 짐승처럼 매여 물매를 돌리는 비참에 떨어집니다.
불행과 비극의 마지막 정점에 이르렀을 때 삼손은 하나님을 향해서 부르짖었습니다.
“주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나를 생각하옵소서 하나님이여 이번만 나로 강하게 하사 블레셋 사람이 나의 두 눈을 뺀 원수를 단번에 갚게 하옵소서”(삿16:28).
하나님께서 삼손의 회개하는 믿음에 귀를 기울이셨습니다. 삼손에게 다시 한 번 큰 힘을 부어주셨습니다. 집을 버티고 있던 두 기둥을 삼손은 두 손으로 밀어서 무너뜨렸습니다. 결국 다곤의 거대한 신전이 무너져서 그 집안에 있던 삼천 여명의 블레셋 사람들이 모두 무너지는 집에 깔려서 죽게 되었습니다. 삼손도 함께 깔려서 죽었습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던 블레셋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었고 동시에 정욕에 따라서 무절제하게 제 멋대로 살던 삼손에 대한 심판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박윤선 목사님은 삼손의 죽음을 이렇게 해석했습니다. “그의 타락은 하나님의 벌을 받을만한 것이었다.” 물론 삼손의 영혼은 구원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삼손은 그의 타락에 대한 벌을 받았습니다.
김명혁 목사님은 삼손에 관한 말씀을 이렇게 전하시면서 결론을 맺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받고서도 하나님의 특별한 은사들을 받고서도 육체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을 따라서 무질서하게 제 멋대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바로 오늘의 못 말리는 이야기와 서글픔의 이야기의 주인공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삼손의 타락의 이야기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경고라고 생각합니다. 삼손을 바라보시고 슬퍼하시던 하나님께서 지금 우리들을 바라보시면서도 얼마나 속상해 하시고 얼마나 슬퍼하실까를 생각해 봅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을 불쌍히 여기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서글픔의 대상에서 기쁨의 대상으로 바뀌어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탄식의 대상에서 자랑의 대상으로 바뀌어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심판의 대상에서 축복의 대상으로 바뀌어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멘!
4] 입다는 어려움을 극복하는 믿음의 사사였습니다. 그는 길르앗의 서자(庶子)로서 어려운 환경에서 방랑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잡류들 소위 깡패와 함께 생활합니다. 모두가 가족과 사회의 불만을 품고 집을 나온 사람들입니다. 거기에서 입다는 인생의 중요한 시기를 보내며 밑바닥의 인생을 삽니다. 이것이 성경에서 말하는 입다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이런 입다가 어느 날 하나님을 만난 것입니다. 그러다가 암몬 족속의 위협을 받던 어려운 이스라엘의 부름을 받고 어려움을 극복했던 믿음의 사사였습니다(삿 11-12장).
믿음의 세계에는 어떤 환경도 문제가 되지 않고, 심지어는 운명도, 팔자도 얼마든지 바뀔 수 있습니다.
환경이나 운명이나 팔자가 문제가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얼마든지 팔자를 고칠 수 있고, 운명도 바뀔 수 있습니다.
5] 사무엘은 끝내주는 믿음으로 이스라엘을 인도한 마지막 사사였습니다.
어머니 한나의 기도로 얻은 아들인데 일찍이 엘리 제사장에게 맡겨져 하나님의 율례를 배웠으며 성장 후 이스라엘의 사사요, 제사장적 기능을 담당하는 자로서 쉽게 믿음을 저버리는 이스라엘 백성을 늘 신앙으로 인도한 선지자였습니다(삼상 1-15장).
사무엘은 혼란한 시대를 ‘끝내준’ 사람이었습니다. 자기 소견대로 행하던 혼란한 사사시대를 ‘끝내준’ 사람이었습니다. 사사시대의 특징을 설명하는 성경 구절이 있습니다.
“그 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마다 다 자기 소견대로 행하였더라”(삿17:6,21:25).
사무엘은 자기 소견대로 생각하고, 자기 소견대로 행동하던 혼란한 사사시대를 ‘끝내준’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영적인 새 질서의 시대를 연 사람이었습니다. 사무엘은 마지막 사사였고 최초의 선지자였습니다. 사무엘은 혼란하던 삼손의 사사시대를 마감하고 새 시대인 선지 시대를 연 사람이었습니다
6] 다윗은 선지자 사무엘로부터 기름 부음을 받아 이스라엘의 두번째 왕이 되었지만 사실은 눈물의 믿음으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었습니다(삼상 16:1-13).
다윗이 위대한 신앙의 인물이 되었던 중요한 비결 중의 하나는 다윗이 눈물의 사람이었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었던 중요한 비결 중의 하나도 다윗이 눈물의 사람이었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윗이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이 될 수 있었던 중요한 비결 중의 하나도 다윗이 눈물의 사람이었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눈물이 진실의 상징이고 소박함의 상징이고 순수함의 상징이기 때문입니다. 눈물은 곧 하나님의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세 가지 일 때문에 눈물을 흘리면서 울었습니다.
첫째, 다윗은 자기가 범한 죄 때문에 회개하며 눈물을 흘리면서 울었습니다.
“내가 탄식하므로 곤핍하여 밤마다 눈물로 내 침상을 띄우며 내 요를 적시나이다”(시6:6).
둘째, 다윗은 다른 사람들의 불행을 슬퍼하며 눈물을 흘리면서 울었습니다.
“다윗과 그와 함께 한 백성이 울 기력이 없도록 소리를 높여 울었더라”(삼상30:4). 다윗은 시글락에 살던 자기의 동족이 아말렉 사람들에게 침략을 당하여 사람들이 붙잡혀 가고 온 성이 불 탄 것을 보고 울 기력이 없도록 소리를 내어 울었다고 했습니다
다윗은 시글락 사건 바로 후에는 자기를 죽이려고 하던 사울 왕이 전쟁터에서 죽임을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또 슬퍼하며 울었습니다. 다윗이 슬퍼한 이유 중의 하나는 사울 왕이 하나님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였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다윗은 근본적으로 인정이 많은 사람이었고 마음이 착한 사람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착한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에 들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착한 마음이 바로 하나님의 마음이었기 때문입니다
울 수 있는 사람은 울지 않는 사람보다 용이하게 신앙으로 들어간다. 사람이 울 때에는 그 심령이 부드러워져서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울음이 없는 자는 대부분 심령이 마비되어 있는 자로 판단된다.”(박윤선 목사).
이들 여섯 명의 믿음의 인물들은 저마다 믿음의 열매가 있습니다.
[마무리하는 말]
‘토니 에반스’ 라는 사람이 지은 책 ‘승리하는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방법’에 보면 이런 예화가 나옵니다. “한 아이가 아버지와 함께 동물원에 갔습니다. 사자 굴을 지나갈 때, 포효하며 어슬렁거리며 다가오는 사자에 놀라서 아이는 울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가 ‘얘야 무슨 일이 있니? 라고 묻자 새파랗게 질린 아이가 ’아빠, 저 사자가 보이지 않아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아버지는 ’음, 물론 보이지, 하지만 아빠는 철장도 함께 보고 있단다...‘
우리가 사는 현실은 포효하고 어슬렁거리며 다가오는 사자에 놀랄 수밖에 없는 현실 앞에 놓여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에게는 늘 철장으로 막아주시고 계시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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