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20 March 2015

히11:4 더 나은 제사

[히11:4]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언하심이라
그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지금도 말하느니라


     [들어가는 말]

     히11장에는, 오직 믿음으로 산 분들이 있습니다.
누에가 오로지 뽕잎만 먹고 살듯이
송충이는 솔잎만 먹고 살듯
믿음만 가지고 늘 걸었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히11:2]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선진’은 헬라어로 <퓨레스뷔테로스>라 해서 "장로"란 말입니다.
장로교를 Presbyterian Church라 합니다.
장로들이 믿음으로 증거를 얻었다는 말씀입니다.
‘믿음 있는 장로 이야기’를 이번 주일부터 시작합니다.
외직 믿음으로 살았던 아벨, 에녹, 노아,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모세 장로 이야기입니다.

     이 귀한 인물들을 깊이 생각하여 멘토를 삼고 믿음으로 살아갑시다.


   1. 가인은 믿음 없는 제사를 드렸습니다.

     창세기에는 가인과 아벨에 관하여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창4:1-4]

1. 아담이 그의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하와가 임신하여 가인을 낳고 이르되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니라
2. 그가 또 가인의 아우 아벨을 낳았는데 아벨은 양 치는 자였고 가인은 농사하는 자였더라
3.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4.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아담과 이브 사이에서 아들이 태어났습니다.
감격적이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도움으로 얻었습니다’ 하는 의미를 담아 ‘가인’이라 하였습니다.

     악한 뱀에게 속아 범죄한 후, 에덴을 잃은 아담과 이브로서는 가인을 낳았을 때, 하나님께서 창3:15에 약속하신 “여자의 후손”을 기대하게 하는 설레임이 있었을 것입니다.

     자라서 가인은 “농사하는 자”였습니다.


1] 믿음 없는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제사를 드리지는 않았어요.
가인도 곡식으로 제사를 드렸습니다.
소제를 드렸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그러나 하나님께서 살아계신다는 걸 믿지 못했나 봐요.
하나님은 믿음의 제사를 받으시거든요.

     신앙인은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것이 머릿속에서만이 아니라, 가슴에서, 온몸에서 느껴집니다.

그러나 가인은 아담이 말해주었으니까 제사는 드리지만, 하나님께서 살아서 제사를 받으심을 믿지 않았어요.

     가인이 믿음이 없으니까, 그 소제를 드린 가인과 함께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셨지요.

     제물도 중요하지만 그 제물을 드리는 사람이 믿음이 있느냐가 더욱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불꽃같은 눈으로 하나님께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면서 예배하는 자들을 응시하고, 주목하여, 관찰하십니다. 그리고 어떤 자들의 예배는 받으시고 어떤 자들의 예배는 받지 아니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도 예배드릴 때, 가인이 범하는 실수를 범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가인은 믿음 없이 제사를 드린 사람의 예가 되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삶속에서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내 행동에서, 내 언어생활에서, 내가 사는 삶의 모습에서,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믿는 믿음이 나타나야 합니다.

     믿음으로 살지 않다 보니 가인의 문제는 계속됩니다.


2]  불순종했습니다

자아를 극복할 수 없습니다.

     [창4:5a-8]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6.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찌 됨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찌 됨이냐
7.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8.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에게 말하고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을 쳐죽이니라

     가인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다고 드렸지만 제사를 받으시는 하나님께서는 받고 싶지 않았다는 말씀이지요.

그 결과,

[창4:5]

5.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은 예배에 참석했습니다.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가인의 예배를 하나님께서
'No, thank you!' 하셨습니다.
그 일로 하나님께 속이 좁다느니,
편협되다느니 해서는 안됩니다.
받지 않을 자유가 하나님께는 있습니다.
믿음 없이
피도 없이
그분을 사랑하는 인격도 없이
덥썩 놓인 가인의 예물은
하나님께는 선물이 아니라 모독이니까요

     믿음이 없으니 하나님께서 받으실 수가 없었지요.
     「OK」하고「NO」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이지요.

     자신과 바친 제물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사실을 견딜 수 없어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을 주시지만,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야 할 필요를 느끼지 않은 사람입니다.

  가인은 하나님께서 기쁘시게 순종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던 사람입니다.

시기 질투를 여과없이 했어요.
심한 분노 있는 대로 쏟았습니다.
하나님이 뭐라고 말씀하셔도 그는 그의 방식을 고수했고 불신하고 살았습니다.
아우를 죽이고도 내가 아우를 지키는 자입니까 뻔뻔하게 대들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의에 대한 정당성을 가졌기 때문이지요.
나는 충분히 의롭다고, 자기 행위에서 의를 찾는 사람이었습니다.


     [예화]

     예루살렘 성전을 무너뜨리는 데 큰 몫을 감당한 하드리안 황제 이야기입니다.

     로마로 돌아와서 그는 자랑스럽게 말했습니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나는 유대인이 믿고 따르는 하나님과 싸우고 돌아왔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집을 점령하였습니다. 불태워 버렸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을 포로로 잡아다가 노예로도 삼았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된 것입니다. 이제 그들은 나를 하나님처럼 섬겨야 하고 그들은 내게 복종하여야 합니다」

     이 말을 듣고 있던 한 장관이 정중하게 존경을 표하면서 말했습니다.

    「폐하! 하늘과 땅은 하나님의 궁궐입니다. 폐하는 하나님의 궁궐에 살면서 어떻게 하나님과 싸워서 이겼다고  말씀하십니까? 만일 폐하께서 하늘과 땅을 벗어날 수 있다면 우리는 당신을 하나님으로 섬기겠습니다」

     이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또 다른 장관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바다 위에 조그만 배 한 척이 떠 있습니다. 그 배는 저의 모든 재산과 돈과 모든 가족들이 실려져 있습니다. 강풍이 불어 닥쳤습니다. 갑자기 되어진 일입니다. 나는 이제 모두를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불행한 운명이 다가오고 있음을 나는 느끼고 있습니다. 폐하! 이 배를 해변으로 움직일 수 있으십니까?

하드리안이 간단하게 힘들이지 않고 말했습니다.

“그건 문제 없다. 내 군함들을 동원하여 다가가서 밧줄로 묶어 끌어 오도록 하면 된다”

장관이 말했습니다.

“하나님이시라면 단지 해변 쪽으로 배가 오도록 바람을 불게 하여 주시면 됩니다”

하드리안이 화가 나서 말했습니다.

“내가 어떻게 바람에게 명령을 할 수 있겠느냐?”
“그렇다면 폐하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바람을 창조하시고 바람에게 명령도 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하드리안은 화가 나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자기 아내에게 화나게 한 장관들 이야기를 했습니다.

    “저들이 나를 하나님으로 대우하지 않아.”

     지혜로운 황후가 말했습니다.

     “여보! 당신은 하나님이 되는 것보다 하나님을 섬기는 편이 훨씬 낫습니다. 사람을 창조하시고 섭리하시는 하나님께 복종하는 것이 좋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드리안처럼 하나님의 자리에 앉으려 맙시다.
하나님께서 앉으셔야 할 왕의 자리에서 자아를 내려오십시오.
가인처럼,
사울처럼
하나님께서 앉으셔야 할 왕의 의자에서 내려오기를 싫어하는 우리 자아를 순종하게 할 수 있기 바랍니다.



    2. 아벨은 믿음으로 살았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 중에는 하나님께 열납되는 예배가 있고, 하나님께 열납되지 않는 예배가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예배가 있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는 예배가 있습니다.

     [요한복음 4: 21-24]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니라,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니느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예배는 그리심 산의 예배나 예루살렘 성전에서의 예배가 아니라 ,
아벨이 드리는 하나님께서 열납하시는 예배입니다.

    아벨은 어떻게 예배를 드렸습니까?

    1] 오직 믿음으로

     (히11:4)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드렸으니”

     제물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 제물을 드리는 사람에게 믿음이 있느냐는 더욱 중요합니다. 아무리 좋은 제물이 있어도 그 제물을 드리는 사람이 믿음이 없으면 그것은 제물이 아닙니다.
그래서 성경은『아벨과 그 제물』『가인과 그 제물』이라고 하십니다.

     아벨과 그 제물에는 믿음이 담겨 있었습니다.

     아벨: “양치는 자” 였습니다.
‘아벨’이란 이름에 담긴 의미는 ‘헛됨’입니다. 왜 이런 이름을 지어주었을까요?
이름 짓기의 명수인 아담이 말입니다.
첫 아들 가인에게서 구원을 기대하였지만, 통쾌한 승리를 가져올 줄 알았던 “여자의 후손”(창3:15)을 얻지 못한 데서 받은 허탈감을 표현한 것이 아닐까요?
아담은 가인을 키우면서 죄 아래 있는 인간의 모습과 한계를 깨달았던 것으로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벨은 가인과 달랐습니다.
아담과 이브로부터 들었던 실낙원 역사를 믿음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는  가죽옷을 지어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믿었습니다.
대신 짐승을 죽게 하시기까지 사람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마음을 알았습니다.
아벨은 자신을 양의 첫 새끼와 함께  믿음으로 하나님께 바쳤습니다.

아벨이 드린 제사는 이런 믿음에서 출발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벨은 자신을 생명처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 대한 감사를 믿음에 담아 올려 드렸습니다.

믿음이 없으면 예배는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제자들이 호수 한가운데 배를 타고 있고 예수님은 호수 건너편에 있는데 제자들이 예수님께로 갈려고 하니까 바람이 불어 아무리 노를 저어도 접근이 되지 않아 애를 쓰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뚜벅 뚜벅 바다를 걸어 제자들에게로 오셨습니다. 제자들은 놀랏습니다. 베드로가 "주님 나더러 걸어서 주님께로 오라고 명령 하십시오."라고 했습니다. 자기 믿음으로는 불완전 하니까 예수님의 말씀에 근거해서 자기도 물 위를 걷는 위대한 믿음을 시험해 보고 싶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오너라"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마침내 베드로가 믿음을 가지고 뚜벅 뚜벅 물위를 걸어가서 예수님께로 향하고 있습니다. 순간 거센바람 불어오자 베드로의 마음이 흔들렸고 발이 쑥 빠져 버렸습니다. "주님, 살려 주십시오."라고 소리치자 예수님은 베드로의 손을 잡아 주시며 "믿음이 적은 사람아 , 왜 의심하였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 만 바라고고 발을 옮겼을 때 그는 자기도 모르게 물 위를 걸어갔습니다.


     2] 피흘림이 있는 제물로

     [창4:03]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04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하나님이 살아계시니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제물을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방법대로 바쳤습니다.
     아벨은 가죽옷을 지어 입히신 하나님의 의를 덧입고 싶었습니다.

     (히9:22)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하나님의 의를 덧입는 제사가 열납됩니다.

  가인이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올린데 반하여, 아벨은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여호와께 드렸습니다.

      우리가 우리를 구속하시기 위하여 산 제물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덧입는 것이 중요합니다

     나를 위해 하나님의 의를 십자가 위에서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덧입는 자의 예배는 열납됩니다.



     3] 순종함으로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삼상15:22)”

     아벨은 ‘믿음, 제물(피 흘림)에 인격(순종, 사랑)을 더해 예배를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모든 요소를 갖춘 제사를 드렸습니다.  

가인이 넘겨버린 예배의 3요소를 아벨은 목숨처럼 소중히 여겼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것을
기쁨으로 드리는 예배입니다.
하나님께서 'Thank you!'하시는 예배입니다.

     복종이란 어느 연령층에도 제한되지 않는 미덕입니다. 부모들은 그 자녀들이 순종하지 않고 제멋대로라고 해서 아무리 야단치고 윽박지른다 해도 그들이 보여주는 모범의 천둥소리는 너무너무 크기 때문에 자녀들은 때로 부모가 말하는 것을 실제로는 듣지 못한다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 레오나드 J. 피크 -

     하나님께 인격적으로 순종하십니까?
사울왕이 대단한 인물이었지만, 순종을 못했어요.
평생 자기 믿고 불순종했어요.

     [하나님께 열납되는 예배]가 무엇일까요?

     믿음이 있고
     의롭다함을 덧입고
     순종이 있는 예배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벨이 바친 믿음과 의와 순종의 제사를 어떻게 하셨습니까?(V. 4-5)

     아벨을 그 제사와 함께 기쁘게 받으셨습니다.

     가인은 그 제사와 함께 받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아벨은 그 제사와 함께 받으셨습니다.
열납하셨습니다.

     열납하셨다는 말씀은, '주목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는 제물로 기쁘게 받아들였습니다.
주목할 가치가 있는 사람으로 아벨을 받아들였습니다.

    아벨은 죄악된 세상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며 그분과 깊이 교제하는 참예배를 추구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위대한 삶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오늘 날의 언어로 바꾸어 말하면, 아벨은 바른 예배를 드리기 위해 순교(殉敎)를 각오하였습니다.
순교하기까지 믿고
순교하기까지 하나님 의를 붙들고
순교하기까지 순종한 아벨을 주목하셨습니다.

- 예수님께서는 우리 예배가 이런 열납 되는 예배되기를 원하셔서 우리 대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요4:23-24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사마리아 여인에게 있어서 바른 예배의 대상이신 그리스도와의 만남은 그녀 생애의 중심점이 되었습니다.
바른 예배의 회복은 그 사람의 인생 전체의 회복을 의미합니다.

     (호6:6)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마무리하는 말]

     에드먼드 베이컨이란 분은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한 교회는 그 안에 있는 사람이 위대한 것을 구하기 시작할 때부터 위대해진다”

위대한 일을 앞두고 그 일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일(사명)에 맞는 능력을 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믿는 순간 우리들의 삶은 위대한 일에 접목됩니다.
생각하는 사고의 체계가 달라집니다.

예수님께서 변화산에서 내려오자 귀신들려 불과 물에 던져졌던 한 아이의 아비가 예수님을 찾아왔을 때,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막 9:23)

“가라사대 너희 믿음이 적은 연고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만큼만 있으면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마 17:20)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요일 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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