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는 말]
'본이 되는 신앙인'을 깆고 계십니까?
두 사람이 감옥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한 사람은 창살 밖 진흙 땅을 내려다 보면서 인생을 저주하고 원망하면서 나날을 보냈습니다.
다른 한 사람은 창살 밖으로 하늘을 보았습니다. 밤에는 별과 달을 바라보면서 시를 썼습니다. 자신이 저지른 과거의 잘못을 회개했습니다.
두 사람에게 복역 기간은 끝나고 자유가 왔습니다. 저주와 원망으로 나날을 보냈던 사람은 정신병동으로 갔습니다. 시를 쓰며 자신을 돌아보았던 사람은 그 동안 만들어 온 시집을 가지고 출판사로 갔습니다.(강준민)
저는 오늘 하늘을 바라본 사람, '에베소 교회의 오네시보로'란 분을 소개합니다.
그분은 그 이름 의미처럼 '유익을 가져다 주는 바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바울 사도는 이 오네시보로를 칭찬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그에 대해서 많은 부분을 할애하여 기록하지는 않았지만, 바울 사도의 마지막 서신 속에서 본받고 싶은 신앙인격을 만날 수가 있습니다.
순교의 제물로서 죽음을 눈 앞에 둔 바울 사도께서 임박한 죽음을 앞두고 사랑하는 제자 디모데에게 소개하는 한 사람이 누구입니까?
오네시보로의 어떤 점이 사도 바울의 칭찬을 받게 합니까?
오네시보로를 깊이 묵상하면서 본받고 싶은 신앙인을 만날 수 있기 바랍니다.
1. '격려의 사람'입니다.
[16절]
16. 원하건대 주께서 오네시보로의 집에 긍휼을 베푸시옵소서 그가 나를 자주 격려해 주고 내가 사슬에 매인 것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1] 아시아에 있는 모든 사람이 바울 사도를 버렸습니다.
[15절]
○아시아에 있는 모든 사람이 나를 버린 이 일을 네가 아나니 그 중에는 부겔로와 허모게네도 있느니라
아시아에 있는 모든 사람이 바울 사도를 버렸습니다.
그들은 바울 사도를 통해 이루어진 엄청난 이적과 말씀을 받았던 사람들입니다. 수건만 얹어도 병이 나았고, 폭포수와 같이 쏟아지던 말씀 안에서 은혜를 받았습니다.
부겔로와 허모게네가 바로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아시아에 있는 모든 사람이 바울 사도를 버렸습니다.
고난 날에 그는 그가 사랑하던 사람들로부터 이해받지 못했습니다.
2] 하지만 주님께서는 바울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고난에 처한 바울 사도를 부르신 주님은 그와 함께 하셨습니다.
삭개오의 사정을 이해하여 주시고 그의 집에 유하셨던 주님은 바울 사도가 머물던 옥중에 함께 하셨습니다.
정죄할 수 있는 유일하신 분이 정죄의 대상으로 대하신 것이 아니라 사랑의 대상으로 받아 주셨습니다.
우리 성도들의 고난의 길을 갈 때, 무엇이 두렵습니까?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도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함께 하심을 믿을 수 있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바울 사도와 함께 하시면서 행하신 일 중 하나가 바로 이 오네시보로를 옥중에 보내신 일입니다.
3] 오네시보로는 격려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바울은 눅눅하고 음침한 감옥에서 이제 순교의 제물로서 삶을 마감하고 있었습니다.
자신과 복음을 등지고 곁에서 떠나간 사람들로 인한 고통을 견디며 나날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바울 사도 앞에 신앙의 동지 한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그가 바로 '오네시보로'입니다.
그는 낙심할 수 있던 바울을 격려해 주었습니다. 유쾌하게 해 주었습니다. 성경에 구체적인 방법이 언급되어 있지 않지만, 바울 사도가 알 지 못했던 성도들과 그를 통해 세워진 교회들의 소식, 그리고 먹을 것과 입을 것 등을 제공함으로써 격려했을 것입니다.
격려해 주었다는 말씀은 '유쾌하게 하였다, 활력을 불어넣어 주었다, 생기를 주었다, 싱싱하게 만들어 주었다'는 뜻입니다.
옥중에서 고난을 당하는 사도가 침체될 수 있었는데 그는 유쾌하게 하여 주었습니다.
활력을 불어넣어 주었습니다,
생기를 주었습니다.
살맛이 나게 해 주었습니다.
"그는 나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주는 사람이었다"(새번역 성경)
오네시보로는 사도 바울이 로마 감옥에서 실망과 좌절에 빠져있을 때 활력과 용기와 생기를 불어넣어 준 격려의 사람이었습니다.
성령은 곁에 찾아 오셔서 도우며 격려하시는 성령의 사람이었습니다.
곁에 머물며 친구가 되어주는 격려의 사람었습니다.
묵묵히 희생하며 용기를 북돋아주는 격려의 사람었습니다.
[삶에 적용]
한 마디 격려의 말 때문에 운명이 바뀐 사람들이 있습니다.
카르소라는 유명한 성악가를 아시는 분이 있을 줄 압니다. 저도 언젠가 여러분들에게 소개드린 기억이 납니다.
이태리의 어린 시절은 너무 가난했습니다. 어느 공장에서 일을 하면서 음악수업을 받았습니다. 꿈을 가지고 열심히 수업을 받던 그를 테스트 음악 교수가 비관적인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카루소, 너는 음악으로 대성하긴 힘들겠다. 덧문이 바람에 흔들리는 것처럼 덜덜거리는 소리를 내고 있지 않으냐!"
그는 크게 실망을 하였습니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있던 그 아이에게 그의 어머니는 격려하는 사람으로 다가왔습니다.
"카루소, 실망하지 마라. 나는 너를 믿는다. 내가 볼 때 네 실력은 점점 좋아지고 있어. 너는 위대한 성악가가 될 자질을 가지고 있다. 어머니는 그것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
격려하는 어머니의 말씀을 듣고, 어머니의 기도 가운데서 카루소는 모든 좌절과 실망을 딛고 마침내 세계적인 성악가가 되었습니다. 한 세기에 한 사람 나올까 말까 하다는 세계적 성악가가 되었습니다.
격려는 한 인생을 바꿀 수 있습니다.
그는 잠언 25장 13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충성된 사자는 그를 보낸 이에게 마치 추수하는 날에 얼음 냉수 같아서 능히 그 주인의 마음을 시원케 하느니라"
4] 오네시보로의 격려는 끊임없이 계속되었습니다.
일회성 격려도 힘이 됩니다.
그러나 오네시보로의 격려는 끊임없이 계속되었습니다.
부단히 도왔습니다.
주를 위해 옥중에 갇혀
고통받는 사도를 염려해주고 자기의 시간과 물질과 정성을 들여 헌신하였습니다.
[적용]
심리학 용어 가운데 피그말리온 효과라는 것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자신의 업적이나 자질을 인정받을 때 크게 성장한다는 것은 이론입니다.
피그말리온이라는 그리스 왕의 이름에서 나온 말입니다. 누군가에게 어떤 가능성을 인정받고 기대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면 그 사람은 그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 열심히 애쓰고 노력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나중에는 상대방이 기대한대로 그 사람의 삶이 변해 간다는 것입니다.
로젠탈이라는 분과 제이캅슨이라는 심리학자가 이런 실험을 하였습니다.
학기 초에 담임 선생님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학생명단을 넘겨줍니다.
"우리가 조사한 결과 당신에게 넘겨준 이 학생들은 무한한 잠재력을 갖고 있는 학생들이오. 잘 교육시키면 대성할 수 있는 소질을 갖고 있소. 그리고 그 명단을 모든 학생들 앞에서 공포합니다."
1년 후, 다른 학생들에 비해서 성적이 월등하게 올라갈 뿐만 아니라 그들의 삶에 열매가 있더라는 것입니다.
요나단은 곤궁한 다윗을 격려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곧 요나단이 그에게 이르기를 두려워 말라 내 부친 사울의 손이 네게 미치지 못할 것이요 너는 이스라엘 왕이 되고 나는 네 다음이 될 것을 내 부친 사울도 안다 하니라”
바나바는 마가 요한을 격려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마가 요한은 바나바의 격려를 통해 믿음의 거장이 될 수 있었습니다.
최근 다른 사람으로부터 감동깊게 받아 본 격려가 있습니까?
아내로부터, 남편으로부터, 자녀들로부터 어떤 격려를 받았습니까?
형제자매나 직장 상사들로부터 어떤 격려를 받고 있습니까?
최근 누구를 격려하고 있습니까?
나의 따뜻한 격려를 통해 한 사람의 생애가 달라질 수 있음을 기억하십시오.
다른 사람을 격려해 본 적이 언제였습니까?
그들을 어떻게 격려하고 있습니까?
이 세상에 격려가 필요하지 않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한마디 격려로 인해서 죽음 직전의 사람이 살 수 있습니다. 격려는 다른 사람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선물입니다.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장점을 인정하는 격려는 그 사람을 살리는 원동력이 됩니다
"그는 나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주는 사람이었다"
오네시보로는 사도 바울이 로마 감옥에서 실망과 좌절에 빠져있을 때 활력과 용기와 생기를 불어넣어 준 격려의 사람이었습니다.
2. '만남의 사람'이었습니다.
[16-17절]
16. 원하건대 주께서 오네시보로의 집에 긍휼을 베푸시옵소서 그가 나를 자주 격려해 주고 내가 사슬에 매인 것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17. 로마에 있을 때에 나를 부지런히 찾아와 만났음이라
'사슬'이란 극악한 죄수들을 억압하기 위해 결박하는 도구입니다.
1] 바울 사도는 사슬에 매인 것을 부끄러워 하지 않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죄수 아닌 죄수로서 예수 그리스도와 복음 때문에 사슬로 결박을 당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복음 전파로 말미암아 당하는 모든 수치를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기 때문입니다(롬1:16).
[디모데후서 1장 12절]
"이를 인하여 내가 또 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 나의 의뢰한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나의 의탁한 것을 그 날까지 저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
하나님을 신뢰하는 바울의 당당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도 이렇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네가 우리 주의 증거와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된 나를 부끄러워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좇아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딤후1:8).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때문에 고난을 당해보셨습니까?
신앙을 지키기 위해 조롱과 핍박과 억울함을 당해보셨습니까?
예수 때문에 받는 수치는 결코 부끄러움이 아닙니다.
복음 때문에 받는 고난은 우리에게 부끄러움이 아니라 그것이 바로 신자의 영광입니다.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자기와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으로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눅9:26).
2] 많은 사람들이 바울이 사슬에 매인 것을 부끄러워하였습니다.
16절 하반절에 "나의 사슬에 매인 것을 부끄러워 아니하여"란 말씀이 나옵니다.
사도 바울을 통해 이적을 체험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바울 사도를 통해 복음을 들은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감옥에 갇혀버리자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를 외면했습니다.
죄수의 몸으로 로마에 압송되었기 때문입니다.
옥중에 갇힌 사람은 죄수입니다.
죄수를 가까이 하는 일은 보통 사람의 일이 아닙니다.
바울이 죄수로 사슬에 매인 것을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은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바울에게 있어 이런 사람들의 모습은 다 버린 것처럼 생각되었습니다.
2] 그러나 오네시보로는 옥중의 바울 사도를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오네시보로는 바울 사도에게 특별한 사람이었습니다.
"나의 사슬에 매인 것을 부끄러워 아니하여"
복음으로 말미암는 수치를 바울이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처럼 오네시보로도 바울이 지금 당하고 있는 불명예스러운 모습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고난의 길을 가는 바울 사도를 다른 각도에서 보았습니다.
옥중에 갇힌 사도를 평가해주었습니다.
옥중에 갇힌 사도를 인정해 주었습니다.
옥중에 갇힌 사도를 자랑스럽게 생각하였습니다.
3] 찾아와 만났습니다.
그는 부끄러워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찾아가 만났습니다.
17절에 보면
"로마에 있을 때에 나를 부지런히 찾아 만났느니라"고 바울은 오네시보로를 칭찬하고 있습니다.
그는 고난 당한 사도를 찾아가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오네시보로의 만남입니다.
사회적으로 성공했다고 자부하는 사람 100명을 골라서 그들이 성공하게 된 요인이 무엇인가를 조사하여 보았다고 합니다.
그 중에서도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공통점 하나는 그들 모두가 누구를 만나든 어떤 일을 하든지 그 가운데서 가장 좋은 것을 찾아내는 굳파인더(goodfinder)들이었다고 합니다.
만나는 상대방이 갖고 있는 장점이 무엇인지, 또 그가 가지고 있는 훌륭한 자질이 무엇인지를 찾아내 감사하는 그런 만남 속에서 하나님은 일하십니다.
어디까지
어떻게 찾아갑니까?
로마까지 찾아갑니다.
로마가 어디입니까?
에베소에서 로마까지는 교통수단이 오늘날 같지 않던 그 시대에는 육로로 가자면 몇 달을 가야하는 거리였습니다.
큰 희생을 내놓은 결단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공간을 초월한 사랑이 아니고서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뚫고 들어가지 못할 인간의 상황은 없다"(폴 틸리히)는 말이 있습니다.
먼저 베풀고, 사랑하고, 용기를 주고, 이해하고, 염려해주면 어떤 얼음같은 심장도 녹아버립니다. 상대방이 이해할 때까지 이런 모습을 보일 수 있다면 우리는 함께 기뻐하며, 함께 행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4] 부지런히 감당하였습니다.
충성스러운 동역자 오네시보로!
그는 고난 중에 있던 바울 사도를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갇힌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찾아갔습니다.
부지런히 찾아갑니다.
그의 사랑과 충성이 미치는 시공간을 살펴보십시오.
보통 사람의 상상을 넘어갑니다.
그의 봉사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었습니다.
로마에 압송되어 오기 전부터
바울 사도가 에베소에서 사역할 그때부터 줄곧 계속되어오는 일이었습니다.
[딤후1:18]
에베소에서 많이 봉사한 것을 네가 잘 아느니라
오합지졸 가설(Rabble Hypothesis)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상대를 오합지졸
로 여기고 그런 식으로 대하게 되면 아무리 가능성이 뛰어난 사람들이라 해도 나중에는 오합지졸 수준에 머무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15절 하반절 말씀을 보십시오.
"부겔로와 허모게네가 있느니라."
바울이 얼마나 이 두 사람 때문에 가슴이 아팠으면 여기다 그들의 이름을 기록해 놓았을까요?
사도 바울은 그러나 이 오네시보로의 격려에는 감동하여 두번씩이나 그가 보여준 후의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와 그의 가족에게 까지 축복이 임하기를 기원하고 있습니다.
"원컨대 주께서 오네시보로의 집에 긍휼을 베푸시옵소서"(16절)
"원컨대 주께서 저로 하여금 그 날에 주의 긍휼을 얻게 하여 주옵소서"(18절)
그의 격려와 만남은 단지 로마에서만 행해진 것이 아닙니다. 본문에 그와의 만남은 바울이 에베소에 있을 때부터 있어온 일임을 알 수 있습니다. 만약 바울이 힘들고 고통스러울 때 이런 만남을 통해 성도들의 충성스런 격려와 도움을 받았습니다. 사람들이 바울 사도를 외면하고 돌아설 때 위험과 불이익을 무릅쓰고 감옥까지 찾아오는 만남이 있었기에, 위로와 격려를 아끼지 않아준 오네시보로 같은 훌륭한 성도들이 있었기에, 더욱 힘을 얻어 끝까지 자기의 길을 걸어갈 수 있었을 것입니다.
[마무리하는 말]
행복한 사람이 옆집에만 살아도 행복지수가 상승한다고 합니다. 하버드 대학과 UC 샌디에고 공동 연구에 의하면, 행복한 사람이 옆집에 살면 행복 지수가 34% 올라가고, 1마일 이내에 거주하면 14%가 올라간다고 합니다. 또 내가 행복하면 친구도 행복해지고, 친구의 친구에게까지 그 행복이 전해진답니다. 이 행복감을 물질로 환산하면 5천 달러의 돈이 생긴 것과 같다는 군요. 이렇듯 누구를 만나느냐가 우리의 인생에 큰 영향을 주고 받게 됩니다.
본받고 싶은 신앙인, 오네시보로, 그는 격려하는 사람이요 만남의 사람입니다. 그를 인하여 바울 사도는 참 행복하였습니다.
[성경 본문]
15. ○아시아에 있는 모든 사람이 나를 버린 이 일을 네가 아나니 그 중에는 부겔로와 허모게네도 있느니라
16. 원하건대 주께서 오네시보로의 집에 긍휼을 베푸시옵소서 그가 나를 자주 격려해 주고 내가 사슬에 매인 것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17. 로마에 있을 때에 나를 부지런히 찾아와 만났음이라
18. (원하건대 주께서 그로 하여금 그 날에 주의 긍휼을 입게 하여 주옵소서) 또 그가 에베소에서 많이 봉사한 것을 네가 잘 아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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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골 청년이 캔사스 시티에 들어왔습니다. 출판사와 신문사를 찾아다니며 자기가 그린 만화를 실어달라고 부탁하였으나 한군데도 상대해 주지 않았습니다. 마침 주일이 되어 아무 교회나 길거리에 보이는 교회로 들어갔지만 예배내용이 머리에 들어올 리 없고 눈물만 흘렀습니다. 목사님이 청년을 보고 사정을 들은 후 교회 창고에서라도 자겠으면 일을 구할 때까지 묵으면서 교회 일을 해달라고 말씀하시며, "용기를 잃지 말게. 하나님이 자네를 사랑하고 계시다는 것을 잊지 말게"하고 격려 하셨습니다. 그 격려에 힘을 얻어 교회에서 일을 하며 만화를 그리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교회 창고는 낮밤을 가리지 않고 쥐가 많이 나다녔습니다. 먹을 것을 조금씩 주자 쥐들은 도망가지 않게 되었고 쥐를 관찰하는 중 쥐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쥐를 그리게 되었고 세계를 사로잡은 미키 마우스의 아이디어가 탄생한 것이다. 이 먹을 것도, 잘 곳도 없던 청년이 월터 디즈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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