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14 March 2015

고후12:1-10 약한 것을 보석처럼 여기는 사랑

고전12:1-10
약한 것을 보석처럼 여기는 사랑

15장 하나님의 크신 사랑
261장 이 세상의 모든 죄를
510장 하나님의 진리등대

[들어가는 말]

자랑하는 것은 어리석다고 합니다.
그러나 불가피하게 자랑하지 않으면 안 되는 자랑이 사도에게는 있었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만이 거짓 사도들에 의해서 오도(誤導)되고 있는 고린도 교인들을 일깨울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세상이 자랑하는 강한 것 대신 약한 것을 자랑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자랑한 약한 것들은 교회를 살리는 보석이 되었습니다.

그가 자랑한 보석들을 살펴보면서 내가 숨겨온 보석들을 소중히 여기는 성도들이 되실 수 있기 원합니다.



1. 약한 것들 외에 자랑하지 아니하리라(1-5)

주의 환상과 계시를 자랑하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체험한 주의 환상과 계시에 대해서 언급하려는 이유를 절제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지금 '자랑'을 절제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을 적대하는 자들의 자랑에 대한 대응책으로 자신이 받은 주의 환상과 계시를 드러내려는 생각이 스쳐갑니다.

바울 사도를 적대하는 자들은 자기들이 참 그리스도의 제자라고 자랑했습니다(11:13).
자칭 권위 있는 추천서를 내밀면서 자기들이 그리스도의 참 제자라고  자격을 자랑했습니다(3:1).
그리고 그들은 자기들이 그리스도의 참 제자의  자격을 갖춘 것처럼 신비적인 경험을 자랑했습니다.
그러니까 사도 바울이 주님로부터 받은 환상과 계시에 대해서 언급하는 것은 그의 적대자들이 신비적인 경험을 짓이겨버릴 수 있는 큰 자랑이었습니다.


그러면 바울 자신은 대적자들의 이런 신비적인 경험에 대해 어떻게 대처하고 있습니까?

십 사년 전, 매우 오래 전의 경험을 되살리면서 십 사년 전이란 구체적인 수치와 사건을 펼쳐보입니다.
그는 인간의 한계를 초월하는, 그래서 언어로는 정확히 묘사할 수 없는 곳 즉 하나님께서 계시는 곳에 가서 말할 수 없는 체험을 환상 중에 했습니다.
우리 신자들이 마지막 날에 들어갈 하늘 혹은 천국일 수 있습니다.

그는 그곳에 자의나 자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불가항력적으로 성령에 붙잡힌 바 되어 끌려 올라갑니다. 즉 성령에 의해 완전히 압도당한 것입니다.
그 환상의 경험이 인간의 오성(悟性)과 관념의 범주로는 포착할 수도 설명할 수도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그 신비를 이렇게 고백합니다.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자기 자신의 경험한, 대적자들의 경우는 흉내조차 낼 수 없는 자랑스런 주의 환상과 계시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표현을 매우 우회적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받은 것이 아닌 냥 '한 사람'이라는 간접적 표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나'라는 말 대신 '그 사람'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그는  '구원받은 자들만이 갈 수 있는 그 낙원'에서 놀라운 소식을 듣습니다.

"말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

사도 바울이 주님으로부터 받은 환상과 경험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능력에 의해서 받은 환상과 경험이 아니라 오로지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얼마든지 더 말할 것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 드러내지 않으려고 합니다.
자기가 지나치게 높이 평가하게 되는 것을 염려하였어요.

이는

적대자들이 그들의 환상 경험을 자랑하되 자신들의 능력으로 그렇게 된 것처럼 말한 것과 대조적입니다.

그는 환상과 계시는 경험하는 자가 자의적으로 하는 것도 아니요 주체적으로 경험하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그는 하나님께서 보여주는 것을 수동적으로 경험하였음을 말합니다.
그는 주의 환상과 계시를 자랑하고 싶지 않은 모습이 역력합니다.
그가 받은 강렬한 자랑의 무기를 겸손하게 내려놓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방언'이나(고전 14:9) '황홀경 체험'에 대해 말할 때(5:13) 교회의 유익을 가장 중요한 것으로 생각했던 것처럼 여기서도 하나님과 바울 자신만의 일을 말하는 것이 교회의 유익을 위해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무엇보다 바울은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을 특별한 존재로 오해하는 것을 방지하고 또 그런 자랑을 통하여 자신의 영광을 얻으려 하지 않았음을 보여줍니다.

이것이 바로 교회의 유익을 우선적으로 도모한다는 바울의 원칙입니다.
그가 말하는 것이 사실이라 할지라도 교회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되면 말하지 않습니다.
또한 바울은 자신이 높이 드러나는 것보다는 예수 그리스도가 영광받고 자신은 오직 사도적 봉사를 통해서만 인정받기를 바랐습니다.

바울사도에게는 교회 중심적이고 하나님 영광 중심적인 분명한 믿음이 있습니다.

약한 것들 외에 자랑하지 아니하리라.

사도 바울은 영지주의자들이 신비한 체험을 자세하게 진술하는 행위를 피합니다. 의도적으로 더 이상 그 환상에 대해 진술하지 않습니다.

그가 취할 영광은 그 환상을 통해서가 아니라 곧이어 언급한 자신의 약함을 통해서였습니다.

사도 바울이 진정으로 자랑하려는 것은 자신의 신비적 체험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는 자신의 약함을 자랑하려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자신의 신비 체험을 말하는 것은 다만 적대자들이 그들의 사도직의 증거로서 황홀경 체험을 말했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런 것이 사도직의 증거라면 바울 자신도 얼마든지 말할 것이 있다는 의미로 환상 체험을 진술했을 뿐입니다.

사도 바울이 결정적으로 자랑하고자 하는 바는 사도로 부름 받은 자신의 약함이었습니다.
적대자들이나 고린도 교인들에게 '약한 것들 외에 자랑하지 아니하는' 걸 주지시키고 싶었습니다.



2.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9)

[고후12:7-9]
7.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8. 이것이 내게서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9.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사도 바울은 일반인들과는 달리 엄청난 계시를 받았습니다. 그에게만 주어진 이 특별한 은총이 그를 한없이 자고하게 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결코 바울이 그런식으로 실족하게 되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사도 바을은 하나님의 세심한 배려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 증거를 하나님께서는 그  육체에 가시로 남겨 두셨습니다.

'가시'에 해당하는 헬라어 '스콜롸스'는 '가시'라는 말 외에 '파편', '말뚝'등의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이 가시를 육체에 지닌다고 할 때, 이것을 Calvin은 그의 복음 사역을 방해하는 적대자로 보거나 거듭나지 않은 영혼의 한 부분 때문에 생기는 육적인 유혹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육체의 가시'는 지속적으로 육체에 고통을 주는 질병이었다고 보는 생각이 대세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것이 육체의 질병이라고 생각할 때, 그리고 이에 대해서는 간질, 두통, 그리고 안질 등으로 보는 견해들이 있습니다.
이 가운데 안질일 가능성은 다메섹 도상에서의 강렬한 빛 때문이라고 보는 것입니다(갈 4:13-15).
간질일 가능성은 바울 자신이 '가시'를 가리켜 사단의 사자로 재설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마 17:14-18;행 9:9;갈 4:14).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아무튼 육체의 가시를 사탄의 사자로 말씀하고 있는 것을 보면, 매우 심각한 장애였음을 생각나게 해줍니다.

'언어의 장애'로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그 근거로 바울이 편지로는 유창하지만 첫 인상이 나쁘고(갈 4:13) 외모나 언변이 보잘것 없다는 것을(10:1, 9-11;11:6) 근거로 제시합니다.

     주께서 이 육체의 가시를 허용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에게는 이런저런 모양의 육체의 가시고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런 쓰라린 아픔을 바울 사도와 같이 하나님 앞에서 받아들일 수 있는 믿음은 매우 우리 신앙을 건강하게 할 줄 압니다.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


     그러나 그는 그 가시를 붙들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하였습니다.

     "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세 번'이라는 숫자는 일정하게 여러 번 반복하여 드리는 기도일 수도 있고 아니면 예수님의 경우에서와 같이 세 번을 뜻할 수 있습니다(막 14:32-42).
어찌됐든 중요한 것은 바울이 그 고통스러운 질고(疾苦)를 벗고 싶어서 매우 진지하고 간절히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주께' 기도하였습니다.
질고를 담당하신 그리스도에게 구체적으로 자신의 질병을 거론하여 기도했습니다.

(사 53:4)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신 주님께서 긍휼히 여기실 줄 우리는 믿고 기도하는 것이 옳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응답은 바울 사도의 기도를 넘어서 왔습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주님의 응답은 바울이 원했던 것과는 상반된 것으로 나타납니다. 혹
어떤 사람은 이것을 가리켜 '매우 친절한 거절'이라고 해석합니다(Bengel).
아무튼 바울은 뼈아픈 '가시'를 그대로 지닐 수밖에 없었습니다.
자족해야 했습니다.

바울 사도는 주님께 넘치는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가 사도가 되고 또 사도로서의 생애를 주님께 바칠 수 있게 된 것은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주님의 날개 안에서 하나님의 울타리 안에 머무는 축복이 그의 사역 가운데는 늘 함께 하였습니다.
사역에 부르심이나 그 사역 가운데 함께 하여 주신 것을 은혜로 이해한다면, 반드시 인간의 고난이 제거되는 것만이 은혜를 뜻하는 것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사람이 짊어지고 있는 아픔 때문에 교만해지지 않고 늘 주님을 의지하고 또 주님께서 은혜로 그가 실족하지 않도록 지켜주신다면 그것이 그 사람에게 더 영광스러운 일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요일4장 말씀을 묵상하면서 무엇보다 바울 사도가 받은 은혜는 그가 받은 구원의 풍성함입니다.

바울 사도가 받은 넘치는 구워이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란 말씀을 받기에 넉넉한 줄 압니다.

바울 사도에게 넘쳐온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란 하나님의 약속은 우리가 하나님께 속하였다는 확신입니다.

이로 인하여 우리는 "세상을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자보다 크심이라"

확고한 정체성과 이로 인한 오는 세상을 이기는 영적 승리를 누리는 것입니다.

[요일4:10]
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요일4:10]
10.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하나님께서 가시를 두신 이유는
"우리를 살리려 하심"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확고합니다.

바울 사도는 하나님께서 주신 이런 은혜로 인하여 서로 사랑하면 성도의 신앙은 완성됩니다.

[요일4:16]
16.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의 안에 거하시느니라


[예화]
오하이오 라이트 주립대학교 음악과 부교수 및 오케스트라 지휘자이신 차인홍 교수님이 계십니다. 그는 장애를 가졌으면서도 미국 대학의 교수 겸 오케스트라 지휘자가 되었습니다.

 “휠체어는 저에게 치명적인 약점이자 어떻게도 감출 수 없는 슬픔입니다. 남들은 그것을 다 이겨내고 역경을 극복한 사람이라고 칭찬을 하지만 내 힘으로 그것을 견딜 수 없음을 너무나 잘 알고 있죠.”
“하지만 장애는 나를 좌절하게 하고 나의 나약함을 경험하게 함으로 하나님께 다가갈 수 있는 축복의 통로가 되었습니다. 나는 너무 잘 압니다. 여기까지 저를 인도한 것은 제 의지가 아니라 모두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바이올리니스트겸 마에스트로인 교수님. 휠체어를 타고 지휘를 한다? 쉽지 않은 일일 것이입니다.
어떻게 이런 기적적인 일이 그의 인생에 일어난 것일까요?
“꿈에도 생각하지 않은 일이었습니다.“하나님은 항상 제게 필요한 것을 준비하시고 필요한 만남도 순간 순간 예비해 주셨습니다. 저는 목표도 희망도 없는 상황속에서 그날 그날 성실함으로 임하기만 했죠. 그러면서 점차 긍정적으로 바뀌어 갔고요. 그것도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예쁘게 보실 만한 것이 없는 아주 많이 부족한 사람입니다. 이렇게 했더니 하나님께서 이렇게 도와주셨다 할만한 내용이 없어요. 그냥 하나님께서 죄인을 일방적으로 이끌어주셨습니다. 그래서 그냥 순종하고 기다렸죠. 그런데 그 때 끝날 것 같지 않았던 어둠의 터널이 끝나더군요. 저는 약합니다. 하지만 제가 약함을 인정하고 모든 것을 내려 놓았을 때, 하나님께서 이끄십니다.

 "제가 보는 세상의 모든 사람은 다 약점이 있습니다. 완전하고 완벽한 사람은 없어요. 다 다치고 약한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약한 사람을 한번도 지나친 적이 없습니다.
원래 하나님의 축복은 고난의 포장지에 꽁꽁 싸여져 있습니다.

“제 아내는 바보 아니면 천사에요. 재활원에서 초등학교밖에 나오지 않은 사람이었던 저를, 배운 것도 없이 가난하고 초라한 저와 7년이나 연애를 했으니까요. 음악을 전공하는 부유한 집안의 장녀임에도 말이죠. 집사람의 집안에서 반대가 굉장히 심했습니다. 그래서 관계는 진전되지 못했고 저는 미국을 가게 되었죠. 미국 유학시절이 2년이 지났을 무렵 어느날 집사람이 갑자기 제 눈앞에 나타난거에요. 대학졸업하자마자 집에는 서울에 다녀온다고 거짓말을 하고 미국으로 온 것이었죠. 그러고는 조촐하게 결혼을 하고 지금까지 살고 있습니다. 지금도 아내에게는 이 말밖에 해줄 것이 없어요. 고마워요. 정말 고마워요.”



3.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고후12:10]
10.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그리스도의 종으로 일어선 사도 바울에게는 수많은 적대세력이 있었습니다.

앞 장에서도 우리가 읽었던 대로

[고후11:23-27]
23,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24.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25.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26.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27.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이 모든 적대세력 앞에서 그는 약한 존재였습니다.
약한 존재였기에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약한 존재였기에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약한 존재였기에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약한 존재였기에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약한 존재였기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약한 존재였기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약한 존재였기에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약한 존재였기에  춥고 헐벗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신들을 위하여 강해지려고 했지만 그로 인해 그리스도는 감추어졌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연히 그리스도가 영광 받는 것이 아니라 인간 자신이 영광을 취하게 됩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종으로서 주인 되신 그리스도가 영광 받도록 철저하게 그에게 복종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것은 연약한 자리에 머무는 것이었습니다.
그 삶의 결과가 인간적으로 볼 때 매우 약하고 비천(卑賤)하게 보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사실 실제로는 바울 사도의 삶과 사역은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충만했습니다.

이삭은 참으로 약하게 보이는 사람입니다.
아브라함을 따라 모리아산에  올라 제단에 뉘이는 모습이 약하게 느껴집니다.

창세기 26장에 우물을 몇 차례나 빼앗기고 파고 또 파는 모습이 너무 약하게 느껴집니다.


[창세기 26:20]
그랄 목자들이 이삭의 목자와 다투어 이르되 이 물은 우리의 것이라 하매 이삭이 그 다툼으로 말미암아 그 우물 이름을 에섹이라 하였으며
 
 [창세기 26:21]
또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또 다투므로 그 이름을 싯나라 하였으며
 
[창세기 26:22]
이삭이 거기서 옮겨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다투지 아니하였으므로 그 이름을 르호봇이라 하여 이르되 이제는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넓게 하셨으니 이 땅에서 우리가 번성하리로다 하였더라
 
[창세기 26:25]
이삭이 그 곳에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거기 장막을 쳤더니 이삭의 종들이 거기서도 우물을 팠더라


이삭의 우물을 수차례 매웠던 블레셋왕 아비멜렉이 이삭을 찾아옵니다.
그리고 언약을 맺자고 요청합니다.

[창26:26-28]
26. ○아비멜렉이 그 친구 아훗삿과 군대 장관 비골과 더불어 그랄에서부터 이삭에게로 온지라
27. 이삭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나를 미워하여 나에게 너희를 떠나게 하였거늘 어찌하여 내게 왔느냐
28. 그들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으므로 우리의 사이 곧 우리와 너 사이에 맹세하여 너와 계약을 맺으리라 말하였노라

하나님께서는 양보하고 또 양보하며 약하게 선 그 이삭과 함께 계십니다.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으므로"

이삭은 늘 연약하게 서지만 하나님께서 약한 그때에 강함이 되어 주십니다.



엘렌은 커쇼와 2010년 결혼 후 잠비아로 신혼 여행을 떠나게 된다.

엘렌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순간 중 하나는 커쇼가 너무 훈련을 하고 싶어했기 때문에 탄생했다. 잠비아에 처음 간 커쇼는 계속 공을 던지고 싶어했다. 그래서 그 아프리카 잠비아 땅에서 커쇼는 캐치볼 훈련을 했다. 그러자 잠비아 아이들이 보빙 헤드(머리가 흔들리는 인형)처럼 필드를 가로질러 왔다. 거리 양쪽에 아이들이 늘어서 있었다"고 당시를 설명했다.

이어 엘렌은 "곧 커쇼가 말 없이 아이들에게 공 던지는 법과 잡는 법을 가르쳐 줬다. 그때가 하나님이 커쇼에게 공을 던지는 능력을 줬고 그것이 아프리카 아이들을 다르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한 순간이었다. 커쇼 역시 자신이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정말 놀라운 순간이었다"고 회상했다.

엘렌은 "난 커쇼가 야구로 이루고 싶어하는 꿈을 지지한다. 커쇼는 내가 인생의 소명의식이라 생각하는 것들을 지지해준다. 난 경기에서 절대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커쇼가 잠비아 아이들에 의해 변할 것이라는 걸 의심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커쇼와 잠비아 아이들이 야구라는 매개체로 서로에게 마음을 열어 서로를 변화시켰다는 것이다.

엘렌은 "커쇼도 처음 잠비아에 갔을 땐 그 어색함을 누그러뜨리기 위한 시간이 필요했다. 그것이 야구였다. 이젠 잠비아에 가면 커쇼는 정글짐이 된다. 아이들이 커쇼 몸을 기어오르기 시작한다. 커쇼도 아이들과 영어가 아닌 냔자 억양(아프리카 냔자어)으로 이야기하려 애쓴다"고 달라진 커쇼에 대해 설명했다.



[마무리하는 말]

조개가 바다 속으로 기어 다닐 때 모래알이 조개 속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러면 그 부드러운 살 속에 모래가 들어가기도 합니다. 눈에 티끌만 들어가도 아픈데 얼마나 아프겠습니까? 그래서 이 조개는 즙을 짜내어 이 모래 알을 감싼답니다. 이렇게 몇 년이 지나는 동안 오랜 세월을 계속해서 조개 즙이 싸이고 감싸면 마침내 둥근 진주가 됩니다.




[성경본문]
1. 무익하나마 내가 부득불 자랑하노니 주의 환상과 계시를 말하리라
2.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그는 십사 년 전에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3. 내가 이런 사람을 아노니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4.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 가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
5. 내가 이런 사람을 위하여 자랑하겠으나 나를 위하여는 약한 것들 외에 자랑하지 아니하리라
6. 내가 만일 자랑하고자 하여도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아니할 것은 내가 참말을 함이라 그러나 누가 나를 보는 바와 내게 듣는 바에 지나치게 생각할까 두려워하여 그만두노라
7.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8. 이것이 내게서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9.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10.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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