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28 March 2015

(죽으심) 요12:1-13 이 사랑을 위해 난 무얼 할 수 있는가?

[들어가는 말]


2천년 전,
생명을 주시기 위해 오신 분이 계십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생명을 주시기 위해 희생하신 분이 계십니다.
십자가 형틀에서.
하나님께서는 온 인류에게 생명의 봄을 주시려고 아들의 생명을 세상에 심으셨습니다.
오늘은 그 생명이 우리 가운데 피어난 꽃과 열매들을 감사하며 하나님께 호산나! 영광과 찬송을 올려드리는 종려 주일입니다.

    그러나 이 놀라운 하나님의 생명이 임하셨지만 모든 사람들이 이 생명에 접목된 것은 아닙니다.
    오늘 본문에는 두 종류의 반응자가 나타납니다.
    한 사람은 마리아입니다. 마리아는 생명을 적극적으로 영접하였습니다.
    그리고 다른 한 편에는 가룟 유다가 있습니다.
그는 생명에 접목되는 것을 거부하고 자기 힘 만으로 섰습니다.
    그리고 2천년이 지난 오늘 우리는 생각합니다. 이 놀라운 사랑 앞에서 우리는 어떤 결단을 할 것인가? 마리아와 같이 생명을 영접할 것인가? 아니면 생명을 거부하고 끊어질 것인가?
    마리아와 같이 생명을 영접함으로 기념비적인 인생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하나님의 생명에 접목된 인생이 있습니다.

    마리아를 생각하면 값비싼 향유를 주님께 바친 것으로 유명합니다.

    3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씻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

    분명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예수님 발에 쏟아부었습니다. 그것은 그녀의 생애를 쏟아부은 사건입니다. 과부가 자신의 두렙돈을 쏟아부은 것처럼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 쏟았습니다.

    어떻게 이 놀라운 일을 행할 수 있습니까?
제정신을 가진 자의 할 일입니까?
그녀가 한 일이 유다의 지적처럼 막대한 부를 허비한 저급한 행위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생명에 접목된 자만의 기념비적인 행위입니다.


마리아가 하나님의 생명에 접목된 근거가 무엇입니까?

    1]영적 양식을 풍성히 공급받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마리아는 주님께서 자신을 위해 행하신 대속 사랑을 받아들였습니다.
주님께서 그것을 인정하셨습니다.
   
     "저를 가만 두어 나의 장사할 날을 위하여 이를 두게 하라(7)"

     마리아는 예수님의 무릎 앞에 머무는 일을 사랑하는 여인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마리아는 예수님으로부터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예수님의 무릎 앞에서 분명 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매우 사랑하신다는 소식이었습니다.
그 외아들을 주셨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자신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라는 독생자를 주셨다!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을 위한 한 알의 밀알로 심으신다는 말씀이셨습니다.

    마리아는 알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바로 자신을 대신 죽으신다는 사실을!
자신에게 봄날의 따스함을 주시기 위해 겨울의 강추위를 몸으로 받으신다는 그 큰 사랑을!


    2]      나는 이 순간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상의 행위는 무엇일까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상의 것을 주님의 사랑이 담긴 맞은편 저울에 올려 놓았습니다.

    3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씻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

    마리아에게 예수님의 사랑의 무게는 컸습니다. 그녀는 자신에게 가장 무게가 나가는 300데나리온에 해당하는 값진 향유를 올려놓았습니다.
    사랑하신 분의 사랑에 걸맞는 최고의 것을 올려놓았습니다.
그러나 그녀와 하나님 사이에 놓인 저울은 한사코 하나님 쪽으로 기울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위해 주신 사랑의 무게를 당할 길이 없었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 발에 올려 드린 향유 옥합 위에 자신의 가장 소중한,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무게가 나가는 자신의 머리를 올려 놓았습니다.
자신이 바친 가장 무거운 값진 향유의 무게와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머리카락을 합쳐 예수님의 발 위에 올려 놓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위해 심으신 한 알의 밀알에 대한 마리아의 감사가 예수님의 발 위에 흘러넘치고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심으신 한 알의 밀알에 대한 감사를 가지고 계십니까?
2천 년 전에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그분의 아들을 대신 십자가에 내어주신 그 사랑을 마음에 담고 계십니까?
그 놀라운 사랑의 무게에 대하여 어떻게 반응하고 계십니까?
마리아처럼 그 사랑의 무게에 감복하여 여러분이 쏟아 부으신 값진 향유가 예수님의 발 위에 흘러넘치시는 이번 고난 주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이 놀라운 사랑을 받은 내가 주님을 위해 난 무얼 할 수 있는가!
마리아는 값비싼 향유를 주님께 바쳤습니다.


    2] 고난 가운데서도 꺾여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생명을 받아 자라는 마리아는 오라버니가 죽음 가운데 떨어진 극한 상황 속에서도 그 믿음이 흔들리지 않습니다.

    자신 뿐만 아니라 사랑하는 가족을 위한 하나님의 대속 사랑을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마리아도 오라버니 나사로가 죽은 후, 처음에는 예수님께서 나사로를 살리실 수 있으리라고까지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마리아가 예수 계신 곳에 와서 보이고 그 발 앞에 엎드리어 가로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하더라"(요11:32)

    죽은 지 나흘이나 되어 썩은 냄새가 나던 오라버니를 이 세상의 어떤 분이 어떻게 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녀에게 이성을 훌쩍 뛰어넘는 소중한 말씀을 주셨습니다.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11:40)

    "주여, 내가 믿나이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마리아 앞에서 힘있게 무덤 속에 있는 나사로를 향해 부르셨습니다.

    "나사로야 나오라!"

    나사로는 무덤에서 살아 나왔습니다.

    다시 살리시는 주님을 통해서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체험하였습니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감사가 그녀의 믿음 속에서 솟아나고 있었습니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님의 은혜가 놀랍습니다.
그러나 마리아에게는 또 하나의 은혜가 큽니다.
오라버니 나사로를 죽음에서 살려주신 은혜입니다.

         요즈음 은퇴하신 목사님이 아들 목사님께 남긴 편지 한 장이 잔잔한 감동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아들아, 목회는 그리 쉽지 않단다. 모든 교인들을 만족시키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지. 그렇다고 해서 포기하거나 괜히 권위적이진 말거라. 대신 네가 담당해야 할 모든 이들에게 관심을 보여라."

    그는 이어서 이런 귀한 명언을 아들 목사님께 남기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무조건적으로 사랑하듯이 너도 똑같이 사람들을 사랑해라. 사랑은 몇 번이고 반복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단다.”


고난 중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은 하나님의 생명에 접목된 영혼이 누릴 수 있는 은혜요 특권입니다.
   

    3] 기념비적인 헌신을 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생명에 접목된 자의 인생에는 하늘의 양식이 끊이지 않습니다.
고난의 바람이 불어도 가지가 부러지지 않습니다.
나아가 열매가 맺히게 마련입니다. 그 열매는 오늘 헌신으로 나타납니다.
기념비적인 헌신의 열매가 맺힙니다.

    그 향유 속에는 값 이상의 기념비적 헌신이 담겨 있었습니다. 물론 300데나리온이란 장정이 일 년이나 일해햐 벌 수 있는 값이 담겨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 이상의 중요한 평가를 하십니다.

    "저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마26:12)

    "이 여자가 내 몸에 이 향유를 부은 것은 내 장사를 위하여 함이니라"

    마리아의 헌신은 사람이 보기에는 여러가지로 평가할 수 있는 그렇게 커보이지 않는 무엇일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이 일은 기념비적인 반응이었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의 행한 일도 말하여 저를 기념하리라 하시니라"

    마리아처럼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하여 바친 순전한 신앙 속에서 기쁨을 찾으시기 바랍니다.
기념비적인 인생을 만나기 바랍니다.

    그런데 마리아에게 오라버니 나사로는 얼마나 소중한 사람이었겠습니까? 그 소중한 오라버니를 죽은지 나흘이나 되는 무덤에서 살려주시었으니 얼마나 감사하겠습니까?
아마 그 일로 인하여서라도 그녀가 바친 값진 옥합은 조금도 아깝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더 소중한 것은 그 인생이 하나님의 생명에 접목되어 있음으로 인하여 세상의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만큼 주님이 소중하게 생각된 마음입니다. 그 하나님의 사랑이 무겁게 생각되어 세상의 무거운 것들을 내려 놓을 수 있는 그 믿음이 기념비적인 헌신을 바치게 한 것이지요.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 곁에 있는 부모형제 자녀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덧입고 함께 천국을 향해 가고 있다는 것으로 인하여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함께 구원의 길, 천국 길로 갈 수 있다는 것은 말로 다 형용할 수 없는 은혜요 감격입니다.
    이런 감격을 옥합에 담아 나와 부모 형제 자녀들에게 은혜를 주신 하나님께 올려드릴 수 있기 바랍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소중한 헌신의 열매까지 자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마리아처럼 말입니다.



    2. 하나님의 사랑에 바르게 반응합시다.

    1] 가룟 유다는 하나님의 사랑을 충분히 받은 제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에게도 똑같이 성찬을 나누게 하셨습니다.
그를 위해서도 몸을 찢기시고 그를 위해서도 보혈을 흘리셨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손과 발이 되시길 원하셨습니다.
가룟 유다가 하나님 언약에 연결되기 원하셨습니다.
에녹처럼, 노아처럼, 아브라함처럼, 요셉처럼 하나님의 언약에 접목되기를 원하셨습니다.

    2] 가룟유다는 재능이 뛰어난 제자였습니다.

    4 제자 중 하나로서 예수를 잡아 줄 가룟 유다가 말하되
5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예수님의 탁월성을 알고 그런 스승 밑에서 사역을 시작한 사람!
    예수님의 공동체에서 재정을 맡은 제자!
    300데나리온의 가치를 손쉽게 계산해 낼 수 있는 사람!
    가난한 자를 주면 얼마나 좋은가하는 명분을 가진 사람!
   
    인류 역사상 가룟 유다만큼 좋은 조건에서 인생을 경주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3] 주님을 향한 사랑과 감격을 확보했어야 했습니다.

    -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행하신 수많은 이적과 구원사역에 왜 감격이 없었을까요?
   -] 예수님께 향유를 부은 마리아의 사랑이 왜 허비로밖에 생각이 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일까?

    주님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에게 주님을 향한 사랑이 있었다면 값비싼 향유를 발라주었다고 하여 허비란 생각이 들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분께는 값진 선물이 허비로 생각되지 않습니다. 향유를 발라주는 마리아가 사랑스러웠을 것입니다.  자신이 못한 일을 한다고 칭찬하였을 것입니다. 오히려 마리아에게 감사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이 없는 유다에게 주님을 향한 마리아의 사랑과 감사의 표현은 그에게 허비로 생각됩니다. 하나님의 구속사를 떠난 인본주의 적인 사고에 빠져있습니다.

   
    4] 진정한 헌신에 이르지 못하였습니다.

   그가 주님을 이기적인 동기로 찾고 있었다는 것은 아쉽습니다.

   베드로나 야고보 요한처럼 그물을 버려두고 좇은 기록이 없습니다.
그가 자신의 재산을 팔아 삭개오처럼 세상에 내놓은 것이 아닙니다.
마리아처럼 향유를 부은 적이 없습니다.
바나바와 같은 헌신의 모습도 없습니다.

오히려 은 30에 예수님을 넘겨준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은 30은 120데나리온에 해당하는 돈입니다. 마리아가 바친 향유 300데나리온의 반값도 되지 않습니다.
마리아는 300데나리온의 향유를 바치는데 가룟유다는 그 반값도 안되는 은30에 예수님을 팔았습니다.
더구나 그는 예수님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그 많은 사랑을 받고 지낸 제자인데 말입니다.


예수님을 왜 따랐을까 생각이 됩니다.
이기적인 동기도 예수님을 따랐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를 취하는 일에 사용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 가롯 유다와 같이 자신의 목적이 첨가되지 않도록 경성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섬길 때 하나님의 목적만 바라보는 순수한 것이 좋습니다.

    1907년 부흥을 체험한 바 있던 한국교회는, 요즈음 부흥을 갈망하는 은 모임들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부흥은 하나님의 역사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지나치게 인간 중심의 기획에 의존하면 그것은 진정한 부흥일 수 없습니다. 부흥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데서 출발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은 하나님의 성품을 지상의 교회가 실현하는 데 있습니다.
   우리 교회가 이기적인 동기보다 순수하게 예수님의 손과 발이 되는 그래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동기가 살아나야 될 줄 압니다.


    요즈음 반 기독교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들이 인터넷에서 벌 떼처럼 일어나 기독교인들을 공격합니다. 그분들의 말하는 것을 보면, 너무나 옳게 생각됩니다. 그러나 그분들이 말하는 것처럼 살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저는 확신할 수가 없어서 그 말하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옳은 말을 할 수 있습니다. 또 옳다고 생각하는 말을 할 자유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기독교인들은 얼마나 많은 재산을 하나님을 위해, 이 세상을 위해 내어놓는지 모릅니다. 북한 동족을 돕는 80% 이상이 기독교인이라는 통계를 본 적이 있습니다. 기독교인들이 많고 우리 기독교인 가운데 부끄러운 모습이 또한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송구스럽고, 세상 사람들에게도 미안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많은 기독교인들이 자신의 연약함을 회개하면서 마리아처럼 자신의 소중한 것들을 하나님 앞에 바칩니다.
그래서 이런 마리아같은 기독교인들로 인하여 세상에는 살맛나는 일들이 많습니다.

    슬픈 반응, 말은 정말 그럴듯한데 그런 삶을 산다는 것도 아니고, 다른 사람의 선한 일에 야지나 거는 인생의 슬픈 모습을 우리는 가룟유다에게서 봅니다.


   
   [마무리하는 말]

    예수님을 통해 주신 하나님의 사랑!
그것은 생명입니다.
영원한 생명입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
그 놀라운 주님께 어떻게 반응하기 원하십니까?
나사로의 생명을 주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수많은 사람들은 외쳤습니다.

    13 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맞으러 나가 외치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하더라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신 놀라운 사랑을 생각하면서
마리아처럼 예수님을 위해 자신을 열고
왕으로 인해 오시는 예수님을 찬양합시다.

    13 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맞으러 나가 외치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하더라

[성경본문]

요12:1-13

    1 유월절 엿새 전에 예수께서 베다니에 이르시니 이곳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의 있는 곳이라
2 거기서 예수를 위하여 잔치할쌔 마르다는 일을 보고 나사로는 예수와 함께 앉은 자 중에 있더라
3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씻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
4 제자 중 하나로서 예수를 잡아 줄 가룟 유다가 말하되
5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6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저는 도적이라 돈 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러라
7 예수께서 가라사대 저를 가만 두어 나의 장사할 날을 위하여 이를 두게 하라
8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있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9 유대인의 큰 무리가 예수께서 여기 계신줄을 알고 오니 이는 예수만 위함이 아니요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도 보려 함이러라
10 대제사장들이 나사로까지 죽이려고 모의하니
11 나사로 까닭에 많은 유대인이 가서 예수를 믿음이러라
12 그 이튿날에는 명절에 온 큰 무리가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오신다 함을 듣고
13 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맞으러 나가 외치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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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증]

    저에게는 정말 감사한 누님이 계셨습니다.
    천국에 가신지 벌써 4년이 되었지만, 누님은 얼마나 나를 위해 깊은 사랑과 이해를 가졌는지 모릅니다. 교편을 잡는 일이 참 피곤한 일인데 저를 위해 특별히 새벽기도를 날마다 다니셨습니다. 저의 목회를 위해 늘 저축을 하셨던 생각이 납니다. 이런 누님을 천국에 가면 만나볼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지금이라도 천국에 가고 싶어요.

    지난 금요일 밤,
    남녀 선교회, 고등부, 대학부 별로 삼삼오오 모여 기도회를 갖고 있었습니다.
    저도 강단 앞에서 조용한 시간을 갖고 있었습니다. 고등부 모임을 마친 제 아들 위로가 제게 찾아와서 말했습니다.

    "아빠, 내가 아빠를 위해 기도했어!"

    제가 얼마나 힘이 되고 감사한지 이해하실 줄 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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