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28 March 2015

(죽으심) 마가7:24-37 하나님 손에 들린 악기

[들어가는 말]

오늘 종려주일입니다.
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맞아 환호하였습니까?
그분이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아라고 확신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그 시간 저들의 환호는 옳았습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놀라운 소식을 나누기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주셨다는 소식입니다.
캔디 정도를 선물로 주신 것이 아닙니다.
예쁜 목걸이 정도를 선물로 주신 것이 아닙니다.
집 한 채를 선물로 주신 정도가 아닙니다.
요즈음 우리 서머나 식구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성전을 선물로 받아 얼마나 기쁜 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 기쁨 정도가 아닙니다.
외아들을 주셨습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사랑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구원의 주님으로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사랑하신 사실을 이로서 알 수 있습니다.
독생자를 주신 사건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의 정도를 알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더러운 귀신들린 어린 딸이 온전케 됩니다. 어떻게 하여 이 놀라운 일이 일어나게 되었는가? 이것이 오늘 말씀의 핵심입니다. 이 怜퓽?통해 그리스도의 고난까지 묵상하실 수 있기 원합니다.


1. 많은 사람들이 고통 가운데 살아갑니다.

25 이에 더러운 귀신들린 어린 딸을 둔 한 여자가 예수의 소문을 듣고 곧 와서 그 발 아래 엎드리니

본문에는 여러 종류의 고통 가운데 살아가는 사람들이 나타납니다.

더러운 귀신에 사로잡혀 살아가는 일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지 생각을 해보실 수 있겠습니까?
더구나 그런 어린 딸을 둔 어머니의 고통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 사람들과 함께 사는 사람들의 고통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그러나 오늘 우리는 수로보니게 여인의 불행이 그 소중한 딸을 더러운 귀신이 사로잡아 자기 마음대로 사용하고 있다는 점에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아름다운 소녀를 더러운 귀신의 마음대로 사용함으로 이 소녀와 그 어머니와 주변 사람들이 고통 당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누구의 손에 들려 어떻게 사용되느냐가 우리 인생의 모든 것을 결정함을 깨닫게 됩니다.
오늘은 이 비밀을 좀더 심각하게 깨닫기 원해서 지혜 양에게 복음 송 한 곡 연주를 부탁했습니다. 들으시면서 나란 악기는 누구의 손에 들려 연주되고 있는가를 깊이 묵상하는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제가 이 바이얼린으로 연주를 한다면 어떻겠습니까? 안되는 거죠.
우리의 참된 기도제목은 우리란 악기가 하나님의 손에 들려 연주될 수 있도록 기도하는 것입니다.

러므로 사도바울은 죄에 팔려 잘못 연주되는 자신을 바라보면서 이런 한탄을 하였습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그러나 자신이란 악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영께 맡기면서 존재의미를 새롭게 하였습니다.

롬 7:25절에는 이런 말씀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무엇이 죄라고 생각하십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들려주신 악기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연주하지 못하는 것이 죄입니다.

신명기 28:47에는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네가 모든 것에 풍족하여도 기쁨과 즐거운 마음으로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지 아니함을 인하여 …… 필경은 너를 멸절시키리라

이는 참으로 무서운 경고입니다.

우리의 죄는 이런 측면에서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악기를 너무 나쁜 작품을 만들고 있다는 점입니다.
우리 주변에 하나님께서 풍족하게 주신 모든 선물들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라고 주신 악기와 같습니다. 우리는 이 악기를 소중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악기로 명연주를 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주신 남편과 아내와 자녀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좋은 악기일 수 있습니다.
어떤 남편은 아내를 잘 연주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나게 하는 분이 있습니다.
어떤 아내는 남편을 잘 연주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나게 하는 분이 있습니다.
어떤 부모님은 자녀를 잘 연주하여 귀하게 쓰임을 받게 하는 분이 있습니다.

수산나 여사는 그 많은 자녀를 훌륭하게 키워낸 어머니로 유명한데요. 그녀는 날마다 자녀들을 모아놓고 이런 질문을 했다고 합니다.
너는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느냐위대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가 너를 위대하다고 하였느냐?
하나님께서 위대하다고 하셨습니다.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느냐?
역사를 창조하고 있습니다.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느냐?
즐겁게 살고 있습니다.

어떤 성도는 교회를 잘 연주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교회 생활이 천국 생활처럼 누리는 연주를 합니다. 가는 교회마다 시험이 들어 지옥 맛을 보는 사람보다 얼마나 행복하고 좋습니까?
교회를 불평하며 좋은 교회를 소개해 달라는 청년에게 스펄전 목사님께서는 이런 대답을 하였답니다.
당신이 가는 순간 그 교회는 흐려질 것이다!
교회를 잘 연주할 수 있는 사람은 복있는 성도입니다.





2. 예수님께서 그 고통당하는 자들 가운데 찾아오셨습니다.

24 예수께서 일어나사 거기를 떠나 두로 지경으로 가서 한 집에 들어가 아무도 모르게 하시려 하나 숨길 수 없더라

예수님께서는 아십니다.
어두움의 권세 아래 고통당하는 자의 삶이 얼마나 힘든가를 아십니다.
그래서 찾아오십니다.
다만 모르게 찾아오시기에 많은 사람들은 알 수 없을 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게네사렛을 떠나 두로 지경으로 가셨습니다. 이 두로는 지중해 동쪽 해안에 위치하며 이스라엘 땅에서 멀지 아니한 시돈의 남쪽 32km지점에 있는 성읍입니다. 이방인이 사는 곳입니다. 유대인들이 즐겨 가지 않는 곳입니다. 그 낯설고 하나님의 법이 없는 그 땅에 예수님께서 찾아가셨습니다. 예수님!

왜 그 낯선 땅에 가셨겠습니까?

지난 성탄 절기에 몰에 들렀다가 어떤 소년이 조그만 목걸이를 사는 것을 보았습니다. 아, 이 소년이 사랑하는 사람이 있구나 하고 생각을 하였습니다.
어떤 사람이 조그만 쵸콜렛이나 캔디 하나라도 일부러 준비하였다가 누구에게 준다면 그것은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다 체험한 이야기인데요. 어머니가 자녀에게 주기 위하여 좋은 것을 챙기는 것은 자주 체험한 일입니다.
우리 어머니들이 자녀에게 주는 것은 귀하고 좋은 것들입니다.
가장 맛있는 것을 자녀에게 줍니다.
가장 값진 것을 자녀에게 줍니다.
가장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쵸콜렛이나 캔디 정도가 아니라 어떤 사람이 자신의 소중한 것을 준다면 그것은 그만큼 소중한 사랑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방의 땅에서 흑암의 권세 아래 죽어가는 영혼들을 살리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죄와 흑암 속에 죽어가는 사람들의 죄와 고통을 다 아시는 예수님!
죄인을 먼저 찾아오시는 예수님!
죄와 흑암 속에 죽어가는 사람들의 죄와 고통을 치료하길 원하시는 예수님!
이 예수님께서는 천국을 떠나 베들레헴 구유에 오셨을 뿐만 아니라 오늘은 두로와 시돈의 버려진 영혼들을 찾아 오셨습니다.
사랑하시기 때문에 자신의 생명을 주신 예수님으로 인하여 찬양과 감사를 하나님께 올립니다.

사랑은 주는 행위로 표현됩니다.
‘사랑은 오래참고’란 말씀은 참을 수 없는 상황에서 인내를 상대에게 주는 행위를 말합니다. 인내를 상대에게 주는 행위(오래참고)가 바로 사랑입니다.
‘사랑은 온유하고’란 말씀처럼, 분통이 터지는 사건 속에서 모세가 발휘한 것처럼 화를 쏟아내지 않고 분통터지게 하는 상대에게라도 부드러움과 관용을 주는 행위(온유)가 바로 사랑입니다.


오늘도 죄와 사망의 권세 아래서 고통을 당하는 인류의 구원은 먼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우리를 위해 생명을 주심으로 열립니다.



3. 구원 문제를 가지고 예수님을 진정으로 만나는 사람들 가운데서 열매를 맺게 됩니다

그런데 구원을 주시기 위해 찾아오신 사랑의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예수님을 찾아온 한 여인으로 인하여 열매를 맺어 갑니다. 그녀는 수로보니게 여인이었습니다.
놀랍게도 그 주인공은 헬라인으로 수로보니게 족속이었습니다.
그 여인이 예수님을 찾게 된 까닭은 그녀의 가장 사랑하는 딸이 생각하기조차 싫은 몹쓸 병을 앓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그녀의 딸을 사로잡고 있는 귀신은 불순하고 깨끗하지 못한 악령이요, 더러운 영이었습니다(마8:28)

수로보니게 여인이 예수님께 대하여 들었던 소식은 소문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그녀에게 이 소문은 너무 소중한 소문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소문을 마음에 소중하게 담았습니다.
자녀 건강으로 인하여 심각한 문제를 안고 괴로워하던 그 여인에게는 한 줄기 희망의 서광이 비친 것입니다.
수로보니게 여인에게 귀한 점은 예수님께 대한 소문을 듣고 마음에 담는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녀는 소문을 들은 즉시 행동을 취했습니다.
예수 앞에서 취해야 할 바른 태도가 무엇인지 알고 있었으므로 그대로 행하였습니다. 나아가 그녀는 예수님께로 나와서 엎드렸습니다(요20:28).
귀신들을 다스릴 온전한 권세를 가지신 예수님께 엎드렸습니다(F.Hauck).
그리고 간구하였습니다. 기도하였습니다.

26 그 여자는 헬라인이요 수로보니게 족속이라 자기 딸에게서 귀신 쫓아 주시기를 간구하거늘

그러나 이 갸륵한 여인의 딸을 향한 사랑은 냉혹하리만큼 엄숙한 예수님의 말씀 앞에서 이루어질 수 없는 것처럼 생각되었습니다.

27 예수께서 이르시되 자녀로 먼저 배불리 먹게 할지니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수로보니게 여인은 예수님께서 자신과 딸을 개들로 취급한 데 대해서도 그것을 수용하는 태도를 취했습니다. 거기에다가 부스러기라도 먹을 수 있게 해 달라고 간구했습니다.

이 여인이 자신을 개의 위치에 놓을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딸에 대한 순전한 사랑의 표현입니다.
어떤 사람이 자존심이 없겠습니까?
자존심은 사람이 자신에 대하여 가질 수 있는 마지막 자기입니다.
그 자존심을 그 여인은 사랑하는 딸을 위해 주님 앞에 내어놓습니다.

아들 위로가 학교가는 길에 보니, 그의 손톱이 길어보였습니다.
차에 둔 손톱깎기를 내밀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받아든 위로가 말합니다.
"아빠, 이것은 발톱깎기에요."
"???"
의아해 하는 아빠 보기가 민망했던지 얼른 말을 잇습니다.

"지난 번 시험에 제가 이 문제를 틀렸거든요."
"무슨 문제?"
"손톱깎기와 발톱깎기의 차이에 대하여 쓰라는 것이었어요."
"그런데 왜 틀리냐?"
"나는 손톱깎기와 발톱깎기를 구분해서 써본 적이 없거든요."
"하하!"

우리는 많이 웃으면서 학교에 갔습니다.

제 어린 시절이 생각이 났습니다.
가위로 손톱을 깎던 그 시절말입니다.
가위도 없을 때는 연필을 깎던 칼로도 깎고, 그것도 없으면 낫으로도 발톱을 깎던 그 시절이 생각났습니다.

그 고난의 시절이 가고
이제는 손톱깎기와 발톱깎기의 차이를 알아가면서 손톱을 깎는 좋은 시대를 살게 된 것입니다.

신명기 26장 끝에는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18 여호와께서 네게 말씀하신 대로 오늘날 너를 자기의 보배로운 백성으로 인정하시고 또 그 모든 명령을 지키게 하리라 확언하였은즉 19 여호와께서 너의 칭찬과 명예와 영광으로 그 지으신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그 말씀하신 대로 너로 네 하나님 여호와의 성민이 되게 하시리라.

오늘날 우리가 이렇게 아름답고 좋은 환경에서 살 수 있는 까닭은 누군가의 헌신과 희생이 우리를 여기까지 인도한 것입니다.


오늘 수로보니게 여인은 딸을 사랑하기 때문에 자기의 가장 포기하기 힘든 자존심을 가장 사랑하는 딸을 위해 내어놓았습니다.
자기를 포기할 수 있는 사람, 그는 진정 놀라운 사랑의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 귀한 사랑을 귀히 보셨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그 여인의 믿음을 칭찬하시고 그 딸을 치료해 주셨습니다.


마무리하는 말

사랑하는 서머나 교우 여러분,
여러분이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 아직 어두움의 권세 아래서 고통당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를 위하여 여러분은 이번 고난 주간에 무엇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나란 악기는 누구의 손에 들려 있습니까?
나에게 들려주신 악기는 잘 연주하고 계십니까?

생명까지 주시며 우리를 하나님의 보배로운 백성, 하나님의 성민으로 인정하시는 하나님을 감사하고 계십니까?

당시 제자들은 예수님을 따르고 있었으면서도 자기를 내려놓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있지 못했습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가지 못하였습니다.
그런 제자들의 눈에 사랑하는 딸을 위해 가장 소중한 자존심을 내려놓은 수로보니게 여인의 모습은 많은 생각을 주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예수님께서 갈릴리 밖 이방지역으로 여행하신 목적은 복음을 대중에게 전파하려 하심보다는 우선적으로 제자들을 가르치시려는 것으로 생각됩니다(Wycliffe)

수로보니게 여인처럼
예수님께 나아가 자신의 자존심을 헌신해 보지 않으시렵니까?
주님 앞에 온전히 엎드려 주님의 은혜를 간구하지 않으시렵니까?

나의 가장 소중한 자존심까지 다 내려놓고
개가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받아먹는 심정으로
하나님 앞에 엎드리지 않으시렵니까?

[설교본문]

24 예수께서 일어나사 거기를 떠나 두로 지경으로 가서 한 집에 들어가 아무도 모르게 하시려 하나 숨길 수 없더라
25 이에 더러운 귀신들린 어린 딸을 둔 한 여자가 예수의 소문을 듣고 곧 와서 그 발 아래 엎드리니
26 그 여자는 헬라인이요 수로보니게 족속이라 자기 딸에게서 귀신 쫓아 주시기를 간구하거늘
27 예수께서 이르시되 자녀로 먼저 배불리 먹게 할지니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28 여자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상 아래 개들도 아이들의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29 예수께서 가라사대 이 말을 하였으니 돌아가라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느니라 하시매
30 여자가 집에 돌아가 본즉 아이가 침상에 누웠고 귀신이 나갔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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