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15 March 2015

고전12:12-26 한 몸 안의 많은 지체, 다른 점이 보배

[들어가는 말]

     현대 자동차 울산 공장 견학을 간 적이 있습니다.

     여러 사람들이 마지막 부품을 조립하며 완성품을 만들어가는 현장이었습니다.
간단해 보이기도 한데 그게 아닌가 봐요.
수백 가지의 볼트, 너트, 피스, 방음재, 전기 장치 등

     엔진 하나에도 수백 가지 부품이 들어간답니다.

     부품 수만. 보통 휘발유차의 부품 수는 3만개, 하이브리드는 3만 5천개의 부품으로 만들어진다고 합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자동차 메이커에서 부품을 혼자 다 만들수가 없고,
하청업체가 수천 개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하청업체들 역시 제2 제3 의 하청업체를 또 보유 하고 있다니 입이 다물어지지 않습니다. 부품 업체에 종사하는 사람들만 175,000명이라니 놀랍기만 합니다.

    수만 개의 파트가 연합되어 자동차가 되는 것입니다.

    제가 캐나다에 와서 현대 자동차를 네 대째 타고 있는데요. 엑셀부터 시작하여 지금은 소나타를 20만 Km 이상 달렸습니다.
    처음 엑셀 때는 91년도였는데요, 머플러를 40,000Km에 한 번씩 갈았던 기억이 납니다.
머플러가 구멍이 나면 소리가 요란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20만 Km 이상 달려도 끄떡없습니다.
아마 영구용인가 봅니다.

파트가 좋고 그 파트들을 잘 연합시켜 놓으니 자동차가 고장이 없습니다.
요즈음 현대차는 정말 멋있고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당당하고 튼튼한 좋은 차가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고린도 교회가 좀 삐걱대는 것을 보면서 건강한 교회가 되려면 파트들과 그 파트들의 건강한 연합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성도들이 연합된 거룩한 공동체입니다.
한 몸 안의 많은 지체가 있는데, 각 지체는 다른 점이 있지만 그 다른 점이 걸림돌이 아니라 보배라는 요지입니다.



1. 성도는 한 몸이신 그리스도의 지체들입니다(18)

[고전12:13]
13.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13. For we were all baptized by one Spirit into one body
-- whether Jews or Greeks, slave or free
-- and we were all given the one Spirit to drink.


     1] 우리가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을 때, 우리는 더 이상 각자가 아닙니다.

     [고전12:13]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성도는 세상에서 서로 다른 PART(혈통과 신분)에 속한 사람들입니다.
같은 지체가 아니었습니다.
유대인일 수도 있었습니다.
헬라인일 수도 있었습니다.
종의 신분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었습니다.
자유인이던 사람도 있었습니다.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면 영적인 정체성에서 변화가 일어납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을 보니, 성령으로 세례받은 것을 '마시다'로 표현하십니다.
성령을 받아 들이는 것을 가리켜 '생수를 마신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요 7:37]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요4:14]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그러나 성령으로 세례를 받음으로 더 이상 혼자가 아닙니다.
더 이상 유대인으로 있지 않습니다.
더 이상 헬라인만은 아닙니다.
더 이상 종이라 할 수 없습니다.
더 이상 자유인이라 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캐나다에 이민 와서 시민권을 얻습니다.
우리는 분명 한국인의 혈통을 가지고 태어났고,
외모가 한국인 그대로입니다.
말도 한국말을 하고, 사고와 행동도 한국인의 틀을 크게 벗어나지 못합니다.
빨리빨리 서두르고 행동합니다.


     그러나 캐나다 시민권을 받으면, 한국인의 혈통도 있고, 근면성도 있을지라도 더 이상 한국인으로 설명할 수 없는 정체성의 변화가 일어납니다.


     2] 하나 인 그리스도의 몸에 속합니다.

     [고전12:12]

 12.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12. The body is a unit,
though it is made up of many parts;
and though all its parts are many,
they form one body.
So it is with Christ.

     신분이나 혈통이 다르던 지체들이, 서로 분리되어 있던 사람들이 곧 하나 된 영적 유기체가 되었습니다.

part들이 모여서 unit로 연결된 것입니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음으로 그리스도와 연합된 자는 모두 다 '한 몸'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지체가 되기 때문입니다.


     3] 지체가 그리스도의 몸이 되어 하나님의 뜻을 따릅니다.

     [고전12:18]

     18. 그러나 이제 하나님이 그 원하시는 대로 지체를 각각 몸에 두셨으니

     열매를 맺기에 적합하도록 지체들은 연결시키십니다.

     [요한복음 15장]

     ‘포도나무의 비유’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15:5)

14. Now the body is not made up of one part but of many.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한 몸의 지체로 공동 사역을 전개해 나갑니다.

     학질 모기가 방에 들어왔어요.
귀가 그 소리를 들었습니다.
눈이 보니 벽에 붙습니다.
두뇌가 잡으라는 명령을 줍니다.
발이 살금살금 움직입니다.
손이 모기를 향해 움직입니다.
손바닥을 펴고, '아니다. 넓적한 파리채가 좋겠다' 모기를 향해 다가갑니다.

와,
모기 한 마리 잡는데 우리 몸의 여러 지체가 합동작전을 펴네요.


     교회에서 우리는 이런 신비를 만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교회에 오기 전에는 전혀 다른 개체들입니다.
그러나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의 몸으로 고백하게 됩니다.
각자가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많은 기능과 역할을 맡게 됩니다.



2. 하나님은 부족한 지체에게 귀중함을 더하십니다.

[고전12:22-23]
22. 그뿐 아니라 더 약하게 보이는 몸의 지체가 도리어 요긴하고
23. 우리가 몸의 덜 귀히 여기는 그것들을 더욱 귀한 것들로 입혀 주며 우리의 아름답지 못한 지체는 더욱 아름다운 것을 얻느니라.


1] 상대 평가하는 세상입니다.

[고전12:15-16]
15. 만일 발이 이르되 나는 손이 아니니 몸에 붙지 아니하였다 할지라도 이로써 몸에 붙지 아니한 것이 아니요
16. 또 귀가 이르되 나는 눈이 아니니 몸에 붙지 아니하였다 할지라도 이로써 몸에 붙지 아니한 것이 아니니

          손과 발을 대비시키고 눈과 귀를 대비시키고 있습니다.
손은 비중있고 가치있게 보입니다.
발은 손과 눈에 비해 덜 눈에 띄고 덜 사랑스럽게 보입니다.
그렇다고 낮게 평가하면 될까요?

     하나님께서는 손보다 발을 낮게 보려는 세상의 관점을 지적해 주고 있습니다.

     [고전12:21]
     "눈이 손더러 내가 너를 쓸 데가 없다 하거나 또한 머리가 발더러 내가 너를 쓸 데가 없다 하지 못하리라."

    이런 예를 들어 고린도 교인들의 세상적인 가치관을 바로잡아 주십니다.

    '발'과 '손' 그리고 '귀'와 '눈' 등은 은사가 각기 다른 사람들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들입니다. 교회 구성원들이 자신의 은사를 다른 사람의 것과 비교하여 우월 의식이나 열등의식을 가지고 상대방에 대해 비난하거나 불평하는 것은 교회의 건덕상 무익하기 때문입니다.


     2] 하나님이 그 원하시는 대로 다른 지체를 각각 몸에 두셨습니다.

[고전12:17-19]
17. 만일 온 몸이 눈이면 듣는 곳은 어디며 온 몸이 듣는 곳이면 냄새 맡는 곳은 어디냐
18. 그러나 이제 하나님이 그 원하시는 대로 지체를 각각 몸에 두셨으니
19. 만일 다 한 지체뿐이면 몸은 어디냐

하나님은 절대평가를 하십니다.

우리 몸의 지체들은 지체별로 차이가 있습니다. 있는 것이 당연합니다.
파트가 같아서 되겠어요?
파트는 다른 것이 당연하지요.
배터리는 배터리다워야 차의 시동을 잘 걸어줍니다.
바퀴는 바퀴다워야 잘 굴러갑니다.
배터리가 바퀴처럼 굴러갈 필요가 없어요.
바퀴가 배터리처럼 전기를 내면 큰 사고나요.

      하나님께서는 지체를 다르게 만드시고 그 肢體들이 서로 도우며 철저하게 유기적 관계를 가지고 충성하도록  특징 있게 만드셨습니다.
서로의 필요를 채워주도록 만드셨습니다.

      좀더 채워져야 할 부분이 있을 뿐이지요.
좀더 자라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지체 가운데는 어른스러워져야 할 지체가 있습니다.

     초등학교 선생님들이 학생들의 시험지를 채점하면서 겪었던 재미있는 몇 가지 에피소드를 몇 가지 소개합니다.

     “만유인력을 발견한 사람은? (어떤 초등학생의 답) 죽었음”

     “부모님은 왜 우리를 사랑하실까요? (어떤 초등학생의 답) 그러게 말입니다”

      어린 학생들의 엉뚱하지만 귀여운 대답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자라면 이런 답을 쓰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런 어린이들이 우리에게는 귀중하고 소중하지요. 그들은 자라게 되어 있고, 우리의 소망이기 때문입니다.

     어린이는 채울 것이 많은 사람입니다. 교사는 그 부분을 채우라고 있는 것입니다.

      많은 지체들이 모여 하나의 유기체를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각 지체는 그 우선순위나 중요도가 덜하다고 하여 그 존재 가치마저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몸에 붙은 모든 지체는 한 몸을 이루는 데에 없어서는 안 되고 한 지체라도 없으면 다른 지체들이 자신의 기능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3] 덜 귀히 여기는 그것들을 더욱 귀한 것들로 입혀주십니다.

[고전12:22-23]
22. 그뿐 아니라 더 약하게 보이는 몸의 지체가 도리어 요긴하고
23. 우리가 몸의 덜 귀히 여기는 그것들을 더욱 귀한 것들로 입혀 주며 우리의 아름답지 못한 지체는 더욱 아름다운 것을 얻느니라

      세상은 약한 것들을 중요도가 전혀 없는 것으로 간주(看做)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덜 귀히 여기는 그것들을, 열등하다고 간주되는 지체들을 더욱 귀한 것들로 입혀 주십니다.
아름답지 못한 지체는 더욱 아름다운 것을 얻게 하십니다.

     거지 나사로를 아브라함의 품에 안기시고 그를 복되게 하시는 주님이십니다.

     허랑방탕하여 아버지의 재산을 허비한 탕자를 맞아들이고 잔치를 베푸시는 아버지의 마음을 보여주십니다.

     수가성 여인에게 생수를 허락하시는 주님이세요.

     삭개오에게 오늘 밤 너의 집에 거하겠다고 생명의 길을 약속하신 주님이십니다.


     지금으로부터 100여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양에는 말할 수 없는 영적 가난함 가운데 있었습니다,

     이 흑암의 땅에는 어두움만 짙게 깔려 있었습니다. 일제는 조금 서구문명을 빨리 접한 것을 무기로 조선 중국 등을 지배하려 마수를 뻗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귀한 것들로 입혀주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서구에서 부흥운동을 일으키시고 그 부흥운동의 힘으로 선교사님들을 중국이나 한국 등에 파송하셨습니다.

     "몸의 덜 귀히 여기는 그것들을 더욱 귀한 것들로 입혀 주며 우리의 아름답지 못한 지체는 더욱 아름다운 것을 얻느니라 "

     우리에게 입혀주신 귀한 분 이야기 하나 나눌 수 있기 원합니다.

      스코틀랜드의 ‘에릭 리들’은 파리 올림픽 400m 계주에서 세계 신기록을 수립, 금메달을 획득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금메달을 걸고 고국에 돌아왔을 때 주님은 그에게 이런 마음을 주셨습니다.

     “네가 받은 메달보다 더 위대한 영광의 메달이 있다. 너는 복음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야 한다.”

     주님의 음성을 마음 깊이 새긴 그는 중국으로 떠났습니다. 사람들은 보장된 출세,안정된 삶…. 중국으로 떠나는 그를 보며 사람들은 미쳤다고 했습니다.

     에릭 리들이 중국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며 그들을 돕자 일본군은 그를 스파이로 몰아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감옥에서도 복음을 전했습니다. 감옥 안에 신앙의 공동체가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42세의 젊은 나이에 감옥에서 숨을 거두었지만 숨질 때 얼굴은 빛이 났습니다.
그는 연약한 선교지 백성들의 약함을 채워주면서 찬양과 경배 속에서 인생을 마무리했습니다.
그에게 복음을 전해들은 사람들은 감옥 옆 작은 동산에 그를 묻었습니다.

    ‘하나님의 영웅, 에릭 리들 여기에 잠들다.’

      하나님께서는 가장 귀한 것을 아무도 귀히 여기지 않은 아름답지 못한 지체들에게 입혀 주셨습니다.



3.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 돌보게 하셨습니다.


[고전12:15]
25. 몸 가운데서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 돌보게 하셨느니라


1] 다름은 분쟁의 씨앗(?)입니다만.

[고전12:14+17]
14. 몸은 한 지체뿐만 아니요 여럿이니
.....  17. 만일 온 몸이 눈이면 듣는 곳은 어디며 온 몸이 듣는 곳이면 냄새 맡는 곳은 어디냐?

     오늘 본문은 고린도전서 12장 4절부터 7절 말씀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직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또 역사는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남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여기에서 다름은 분쟁의 씨가 아니라, ‘다양하다’는 의미입니다.
‘그 근원이 같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영접하고, 그 안에서 거듭난 백성들은‘같은 뿌리에서 나오고’ 또한 ‘같은 뿌리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스도의 혈통을 받아, 하나님의 가문에 편입된 존재임을 전제로 하여 그러나 판박이처럼 같은 존재가 아니라 면면이‘다르다’는 점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형제들은 같은 부모님의 혈통에 속하여 근본이 같지만, 생긴 외모나 성품등 다른 면이 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그 다른 면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갈라디아 5장의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를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는 다릅니다. 서로 같지 않아요. 그런데 ‘아홉 가지 열매들’이란 복수(plural) 대신, ‘아홉 가지 열매’란 단수(singular)로 말씀하고 있음을 봅니다.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는 분명 서로 다르지만 오직 그리스도의 몸을 드러내게 하고,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목적에서 같은 뿌리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몸의 지체들이 같은 근원에 기초한 동일성만큼이나 그 다른 지체의 소중함을 오늘 본문 말씀에서 배우게 됩니다.

다른 지체가 있음을 늘 인식하고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흔히 범하는 착각은 나만 중요한 지체라는 착각입니다.
물론 나는 중요한 파트입니다.
그러나 나만 중요한 지체가 아닙니다.

     국민일보 예화집에 이런 유머가 실려있습니다.

     어떤 목사님이 고속도로 휴게소 화장실에 앉아 있는데 갑자기 옆 칸에서 어떤 사람이 큰 소리로 인사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목사님, 안녕하세요.” 그래서 엉겁결에 “예, 안녕하세요!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속으로 “목사는 화장실에서 일을 보는 중에도 사람들이 알아보는구나! 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옆 칸에서 또 말을 걸어옵니다. “목사님, 점심식사 하셨어요?” “아닙니다. 볼일 보고 나서 식사할 예정입니다.” 잠시 잠잠해지더니 조금 후에 조용한 목소리로 다음과 같이 말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목사님, 이제 그만 전화 끊어야겠습니다. 어떤 이상한 사람이 자꾸 옆 칸에서 말대답을 하네요.”

     세상에 목사는 너무 많은데 나만 목사인 것으로 생각하고 사는 것은 아닙니까?
나만 Somebody가 아니에요.
나만 Somebody라고 생각할 때, 분쟁이 일어납니다.

[고전12:14+17]
14. 몸은 한 지체뿐만 아니요 여럿이니
.....
17. 만일 온 몸이 눈이면 듣는 곳은 어디며 온 몸이 듣는 곳이면 냄새 맡는 곳은 어디냐


     2] 하나님께서는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 돌보게 하셨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어떤 한 지체만 somebody로 지으시지 않았습니다.
그냥 죄 아래 살면 nobody일 수밖에 없는 우리들을 성령으로 somebody가 되게 하셨습니다.
우리 지체들은 홀로 있을 땐 nobody에요.
그리스도 밖에서  nobody에요.

그러나 하나님의 뜻 안에서 서로 돌아보는 지체가 되고 somebody가 되는 것이지요.

(예화) “사랑하는 친구 은인들에게”
(출처: http://news.hankooki.com/lpage/society/200511/h2005113018385721950.htm)
얼마전 인터넷 블로그를 통해 소록도에서 43년 동안 한센병 환자를 보살펴온 두 분의 수녀님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이 두 분의 수녀님은 마리안 수녀님(71)과 마가레트 수녀님(70)인데, 두 분 모두 오스트리아 출신으로 1959년과1962년에 각각 소록도에 와서, 70대 할머니가 되기까지 평생을 한센병 환자들과 함께 하며 그들을 섬겨주었던 분들입니다.
이 두 분 수녀님이 어느 이른 새벽 단지 ‘사랑하는 친구 은인들에게’라는 편지 한 장만을 남기고 조용히 소록도를 떠났는데, 편지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나이가 들어 제대로 일을 할 수 없고, 우리들이 있는 곳에 부담을 주기 전에 떠나야 한다고 동료들에게 이야기했는데, 이제 그 말을 실천할 때가 되었습니다. 부족한 외국인으로서 큰 사랑과 존경을 받아 너무 감사하며, 저희들의 부족함으로 마음 아프게 해 드렸던 일에 대해 이 편지로 용서를 빕니다”
오랫동안 소록도에서 이분들을 지켜보았던 김명호씨에 따르면, “두 수녀님은 살아있는 성모 마리아였습니다. 작별인사도 없이 섬을 떠난 두 수녀님 때문에 섬이 슬픔에 잠겨 있습니다”라고 말할 정도로 이분들의 삶이 참으로 아름다웠음을 짐작하게 합니다.
그래서 소록도 사람들은 꽃다운 20대부터 수많은 한센병 환자들의 손과 발로 살아오신 이분들을 가리켜 ‘큰 할매’ ‘작은 할매’라고 불렀는데, 두 분 수녀님이 오스트리아로 되돌아가는 길에는 소록도에 올 때 가져왔던 낡은 가방 한개씩만 들려 있었다고 합니다.
이 두 분 수녀님은 조용히 소록도와 와서, 묵묵히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신실하게 감당하시다가, 조용히 소록도를 떠나신 것입니다.
이 두 분이 배를 타고 소록도를 떠나던 날, 멀어지는 섬과 사람들을 물꾸러미 쳐다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셨다고 하는데요… 저는 이분들의 삶이 곧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아름다운 지체의 모습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마무리하는 말]

요즈음 리더십의 주제가 서점가의 화두입니다.
그러나 모두가 리더십만 논할 때가 아니라는 말도 합니다.
파트너십이 또한 중요하다는 것이지요.
파트너들의 건강과 그 파트너들의 연합을 잘 끌어낼 수 있는 리더십은 파트너의 건강 속에서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설교 본문]

12.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13.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14. 몸은 한 지체뿐만 아니요 여럿이니
15. 만일 발이 이르되 나는 손이 아니니 몸에 붙지 아니하였다 할지라도 이로써 몸에 붙지 아니한 것이 아니요
16. 또 귀가 이르되 나는 눈이 아니니 몸에 붙지 아니하였다 할지라도 이로써 몸에 붙지 아니한 것이 아니니
17. 만일 온 몸이 눈이면 듣는 곳은 어디며 온 몸이 듣는 곳이면 냄새 맡는 곳은 어디냐
18. 그러나 이제 하나님이 그 원하시는 대로 지체를 각각 몸에 두셨으니
19. 만일 다 한 지체뿐이면 몸은 어디냐
20. 이제 지체는 많으나 몸은 하나라
21. 눈이 손더러 내가 너를 쓸 데가 없다 하거나 또한 머리가 발더러 내가 너를 쓸 데가 없다 하지 못하리라
22. 그뿐 아니라 더 약하게 보이는 몸의 지체가 도리어 요긴하고
23. 우리가 몸의 덜 귀히 여기는 그것들을 더욱 귀한 것들로 입혀 주며 우리의 아름답지 못한 지체는 더욱 아름다운 것을 얻느니라 그런즉
24. 우리의 아름다운 지체는 그럴 필요가 없느니라 오직 하나님이 몸을 고르게 하여 부족한 지체에게 귀중함을 더하사
25. 몸 가운데서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 돌보게 하셨느니라
26.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즐거워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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