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13 March 2015

행12:18-25 잘 나가는 안디옥 교회

18 날이 새매 군사들은 베드로가 어떻게 되었는지 알지 못하여 적지 않게 소동하니 19 헤롯이 그를 찾아도 보지 못하매 파숫군들을 심문하고 죽이라 명하니라 헤롯이 유대를 떠나 가이사랴로 내려가서 거하니라 20 헤롯이 두로와 시돈 사람들을 대단히 노여워하나 저희 지방이 왕국에서 나는 양식을 쓰는고로 일심으로 그에게 나아와 왕의 침소맡은 신하 블라스도를 친하여 화목하기를 청한지라 21 헤롯이 날을 택하여 왕복을 입고 위에 앉아 백성을 효유한대 22 백성들이 크게 부르되 이것은 신의 소리요 사람의 소리는 아니라 하거늘 23 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로 돌리지 아니하는고로 주의 사자가 곧 치니 충이 먹어 죽으니라 24 하나님의 말씀은 흥왕하여 더하더라 25 바나바와 사울이 부조의 일을 마치고 마가라 하는 요한을 데리고 예루살렘에서 돌아오니라


머리말

날이 새었어도 군사들은 알지 못하는 일이 있습니다. 철통같이 지키고 있던 베드로가 어떻게 하여 사라져버렸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적지 않게 소동이 일어났습니다. 야단법석이 난 것입니다. 홀연히 베드로가 없어진 사실을 발견하였을 때, 서로 놀라고 당황하였습니다. 곧 그 사실은 헤롯에게 보고되었습니다. 헤롯 궁전 안에는 큰 혼란이 야기되었습니다. 베드로가 없어진 것에 대한 결과로 파수꾼들에 대한 문책(問責)이 이루어집니다. 파수꾼들이 처형을 당하게 됩니다. 베드로의 구출이 헤롯에게 상당히 큰 충격을 주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헤롯이 파수꾼들을 처형시킬 정도였다면 그가 베드로를 체포한 것이 어떤 중요한 목적을 위해서였는데, 이제 그 계획이 수포로 돌아간 것입니다.
이와 같이 날은 대낮처럼 밝아도 세상 사람들은 알지 못하는 일, 그러나 하나님께서 행하신 명확한 일들이 하나님께는 많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그 일을 몇 가지 살펴보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받기 원합니다.

1. 헤롯은 충이 먹어 죽었습니다.

23 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로 돌리지 아니하는고로 주의 사자가 곧 치니 충이 먹어 죽으니라

헤롯은 헤롯 대왕의 손자인 아그립바 1세(Agrippa I, A.D.37-44).를 말합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매우 좋은 기회를 받은 사람입니다. 영광을 하나님께로 돌릴 수 있는 매우 좋은 기회를 받은 사람입니다.
그가 A.D.41년 갈리굴라(Caligula)가 암살당한 후 글라우디오(Claudio)가 황제로 즉위할 수 있도록 공헌한 데 대한 대가로 팔레스타인 지역(유대와 사마리아)의 통치권을 받았습니다.
그는 백성들을 설득시킬 수 있는 대단한 화술도 갖추었습니다.
예수님도 만날 수 있었던 사람이요, 예수님의 제자들과도 얼마든지 교제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하나님께 대한 관심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는 세상적으로 잘 나가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영적으로는 전무한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만일 영적인 축복까지 받을 수만 있었다면 그는 세계를 움직이는 영적 거목이 될 수도 있었던 사람입니다. 얼마든지 복음 사역에 함께 쓰임받을 수 있었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는 세상적으로 잘 나가던 사람이었을 뿐입니다. 사람이 잘 나간다는 것은 외적인 진보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영적인 잘됨이 없이 잘나가는 것은 재앙일 수 있습니다. 모래 위에 지은 집처럼 순식간에 무너질 날이 닥칩니다. 헤롯이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그의 눈에는 오직 세상만 크게 보였습니다. 로마 황제가 크게 보였습니다. 자신이 다스리고 있는 팔레스타인 지역의 영주 자리가 가장 소중해 보였습니다. 그는 그의 정치적 기반을 공고히 하기 위하여라면 무슨 일이나 하였습니다.  친유대교적인 정책이 그렇습니다. 유대인의 환심을 사기 위해 기독교인을 탄압하는 정책이 또한 그렇습니다. 죽던 A.D.44년경까지도 기독교인을 탄압하는 `박해의 손을 뻗쳤습니다. 그는 직접 박해에 나서 사도 야고보를 처형했습니다. 그의 행동에 대해 많은 유대인들이 매우 흡족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기뻐하였습니다. 여론이 호전되었습니다. 이런 유대인들의 반응에 고무되어 헤롯은 베드로에게도 손을 뻗쳤습니다. 베드로가 제자들 중 지도자적 역할을 했으므로 베드로까지 죽이게 되면 유대인들이 자기를 더욱 지지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정말 모든 것이 잘나가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행위는 위태롭기 짝이없는 짓이었습니다.  영적으로 하나님의 눈을 범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지 못했습니다. 영적으로는 되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이땅에서 이어갈 영적 거인들을 죽이고, 옥에 가두고 있었습니다. 그는 자기가 무슨 일을 하는지조차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헤롯은 영적인 파탄자였습니다.
종합적으로 볼 때, 그는 잘나가는 사람이 아니라 파멸을 향해 치닫고 있었을 뿐입니다. 영적으로 우매한 헤롯은 끝까지 우매함을 범하였습니다. 구속한 주님이 보이지 않으니 하나님을 대적하였고, 애꿎은 파숫군들만 공연히 죽입니다.
그에게도 마지막 기회가 있었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원래 헤롯은 두로와 시돈 사람들을 싫어했습니다. 두로와 시돈 사람들 또한 헤롯을 싫어했을 것입니다. 다만 저희 지방이 왕국에서 나는 양식을 쓰는고로 필요상 헤롯에게 아부하고 있을 뿐입니다. 정책상의 필요로 그들은 타협했습니다. 요세푸스의 기록에 따르면 이때 헤롯은 은으로 만든 빛나는 옷을 입었으며 그 옷이 햇빛에 빛나자 아첨꾼들이 그를 신으로 추대하여 소리쳤다고 전해집니다. 헤롯의 연설을 듣고 두로와 시돈 사람들은 칭찬했습니다. 그 백성들이 크게 부르되 이것은 신의 소리요 사람의 소리는 아니라 하거늘. 그런데 자신을 우상화하고 있는 아부성 환호에 23 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로 돌리지 아니하였다! 합니다. 이처럼 영적으로 파탄한 자의 잘됨은 위험할 뿐입니다. 자신의 어리석음을 모릅니다. 자신이 하나님의 진노에 떨어질 줄을 모르는 인생입니다. 이렇게 하여 헤롯은 막을 내립니다.
주의 사자가 곧 치니 충이 먹어 죽으니라!
`심한 통증이 ... 그의 배에서 일어났다'고 역사학자 요세푸스 또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세푸스는 헤롯의 죽음에 대해 상세하게 서술하기를 헤롯이 갑작스러운 복통으로 인해 5일 후에 죽게 됐는데 몸이 썩어 벌레가 생겨났다고 합니다.
더 이상 아무 것도 기대하실 수 없었던 하나님께서 그를 생명 책에서 지워버리십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고 있습니다.

23 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로 돌리지 아니하는고로 주의 사자가 곧 치니 충이 먹어 죽으니라

영혼이 잘된 축복을 받지 못한 사람 헤롯은 하나님으로부터 좋은 기회, 아무나 얻을 수 없는 위치에 있었으면서도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못하고 결국 적그리스도적 인물로 지옥에 떨어져 갔습니다.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영광까지 가로채려다가  주의 사자가 곧 치니 충이 먹어 죽고 말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는 여러분께 묻습니다. 잘나가고 있습니까? 영적으로도 잘 나가고 있는가를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주기철 목사님은 이런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주님을 위해서 열번 죽고 백번 죽어도 좋지만
주님을 버리고 백년 살고, 천년 살면 무얼합니까?"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영적으로도 잘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리하여 영원한 반석 위에 견고히 세워진 집이 되길 원하십니다. 여러분의 삶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기를 원하십니다.


2. 하나님의 말씀은 흥왕하여 갑니다.(23)

   여기 헤롯과 대조적인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컫음을 받게 되었던 안디옥 교회 교인들입니다.

그들은 헤롯과 같이 세상적으로 잘나가지는 못했습니다.  사회적 기반이 없었습니다. 재물도 풍요하지 못했습니다. 세상적으로 내놓을 것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세상적으로 볼 때에 그렇게 잘나가던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런데 안디옥의 시민들이 보니, 무엇인가 그들과는 다릅니다.
- 가치관이 다릅니다.
- 생활양식이 다릅니다.
- 생각하는 사고방식이 다릅니다.

고후6:9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는 자 같으나 보라 ! 우리가 살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10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을 무엇이라 불러야 하는 것입니까?
존재도 없는 사람이다 생각하였는데, 그들처럼 사람답게 사는 사람들이 없습니다. 그러니 그들을 무명한 자라고도 할 수 없고, 그렇다고 유명한 자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가난하니까 가난뱅이들이라 부르면 하지만 누구보다 부요한 삶을 삽니다.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거든요. 그러나 돈이 없으니 부자라고 부를 수도 없습니다.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들입니다.
현실을 들쳐보면, 그들만큼 근심거리가 많은 사람들이 어디 있으랴 싶은데, 항상 기뻐하며 살아갑니다.
참으로 세상이 감당못할 사람들이요, 세상적인 가치관으로 평가할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사람들이 이모저모로 살펴보다가 그들 중에서 공통분모를 하나 발견하였는데, 그것은 그들이 모두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들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는 자기들에게 없는 이름을 붙여 부르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무엇이 아무 것도 없는 그들로 하여금 모든 것을 가진 자처럼 부요한 삶을 살게 했다고 생각하십니까?
무엇이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는  삶을 살게 했다고 생각하십니까?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신대로, 그들은 세상 사람들이 공급받지 못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풍성하게 나누고 살았습니다.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성령체험을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이 그들 가운데 흥왕하였습니다.
24 하나님의 말씀은 흥왕하여 더하더라

그래서 그리스도인이라!는 명칭을 얻었고, 영적인 풍요함이 삶으로 연결되고 있었습니다. 영적으로 잘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말씀 사역이 잘되는 것입니다. 말씀 사역이 잘된다는 뜻은 교회에 영적 양식이 잘 공급되고 있다는 뜻입니다. 성도가 건강하고 교회가 건강하려면 말씀공급이 잘되어야 합니다. 교인이 넘치고, 물질이 넘치면 잘나가는 교회다라고 세상 사람들은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안디옥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의 공급이 잘되었습니다. 그래서  잘나가는 교회였습니다.
우선 사역자가 말씀의 사람이었습니다. 바울 사도의 교회청빙은 안디옥 교회에 말씀 사역이 잘되게 하는 큰 비밀입니다. 그는 하나님 말씀에 사로잡힌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에 포로가 된 종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통해서 13권의 성경을 기록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통해서 소아시아와 유럽의 여러 교회들을 세우셨습니다.
     또한 교인들이 그리스도의 말씀에 사로잡혀 살았습니다.
     잘되기를 원하십니까? 영적으로 말씀 공급을 원활히 공급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서머나 교회가 잘되기를 바라십니까? 말씀 사역자들을 위해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한사람 한사람이 하나님의 말씀 공급을 잘받고 말씀 공급을 잘할는 말씀 사역자들로 성장하는 것이 서머나교회가 잘되는 지름길입니다. 행6:7을 보십시요. 예루살렘 교회가 잘되었던 가장 큰 비밀이 말씀 사역에 헌신한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진데 있었던 것입니다.

행6:7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말씀)에 복종하니라

당시 예루살렘 교회 현장에서 크게 쓰임받았던 베드로는 말씀공급이 중요한 이유를 이렇게 전하고 있습니다.

벧전1:24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25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

베드로는 부활하신 예수님으로부터 말씀 사역자로 특명을 받은 제자입니다. 주님을 사랑하기에 주님이 맡겨주신 양(羊)들에게 말씀의 꼴을 먹여야 하는 사명을 다한 것입니다. 풀과 같고 풀의 꽃과 같은 인간들은 겉으로, 세상적으로 잘되어가는 것 같지만 그 영광은 시들게 되어져 있습니다. 그 육신은 망가지게 되어 있습니다. 시들어가지 않은 영광이 없고, 망가지지 않은 육체가 없습니다. 오직 말씀으로 양육받을 때만 영혼이 영원합니다.

히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13 지으신 것이 하나라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 앞에 벌거벗은 것같이 드러나느니라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 인생이 잘되는 축복을 받을 수 있기 바랍니다. 하나님 말씀의 사역에 동참함으로 가정과 교회가 잘되는 복을 받으실 수 있기 바랍니다.

예화]
서울 어느 목사님은 교인들로부터 `영 몰라, 통 몰라'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부인들이 애써서 남편을 전도해 오면, 그 목사님께서 교회 문에서 인사하는 말씀이 `처음뵙겠습니다!'입니다. 처음이야 처음이니까 그런 인사가 맞지만, 교인이 너무 많으면 많으니까 그러려니 이해하지만, 300명 남짓한 교인을 목회하시는 목사님께서 수차례 나오고 있는 교인들을 볼 때마다 인사하는 말씀이 `처음뵙겠습니다!' 하시니  `영 몰라, 통 몰라'라는 별명을 지어드린 것입니다. 그래도 큰 변화가 없었던지 그 부인들이 몇달 후에는 그 목사님께 목사님의 별명이 늘렸습니다. `영 몰라, 통 몰라. 가르쳐줘도 몰라.'
 김 목사님은 자신이 신고갔던 노란 구두를 남의 구도로 생각하고 덧신만 신고 집으로 돌아온 적도 있습니다.
옆집으로 들어가셔서 남의 집 부인에게 `아니 이 가구 언제 가져왔어?'하셨다가 민망했던 이야기도 있습니다.
 매 주일 교회에 픽업해준 자매가 졸업식장에 와서 축하 해주는데 `처음뵙겠습니다!'하셨던 이야기 등을 진솔하게 적고 있었습니다. 모 교수님께서 그분께 목사님은 의사 안되신 게 천만 다행입니다. 하셨답니다. 수술 가위를 환자의 몸 속에 넣어두고 꿰멜 뻔 해서랍니다.
우리는 이렇게 잊고 살며, 웃으며 살아도 될 일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정녕 잊어서는 안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가 그 김목사님의 건망증을 웃지만, 그분의 인격 자체를 의심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그분이 하나님과 하나님 말씀만은 잊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바빠도 새벽 기도하시는 것을 잊지 않으셨고, 아무리 힘들어도 말씀대로 살기 원하는 그 중심은 흔들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말씀을 전하든지 말씀을 받으십시요. 그리고 그 말씀으로 우리의 삶을 다스리십시요. 세상 일들은 좀 완벽하지 못해도 좋습니다. 잊어도 되요. 그러나 하나님 말씀만은 우리 삶에서 흥왕하게 하십시요. 그 말씀이 우리를 영적으로 잘되게 하고 범사에 잘되게 합니다.


3. 주고 있는 한 잘나가는 것입니다.

행11:28 그 중에 아가보라 하는 한 사람이 일어나 성령으로 말하되 `천하가 크게 흉년 들리라' 하더니 글라우디오 때에 그렇게 되니라 29 제자들이 각각 그 힘대로 유대에 사는 형제들에게 부조를 보내기로 작정하고 30 이를 실행하여 바나바와 사울의 손으로 장로들에게 보내니라

예루살렘 교회가 잘되고 있었을 때, 주는 구제가 활발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에 집사가 세워진 직접적인 원인도 그 구제를 더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서입니다. 잘 주기 위해서였습니다. 주는 일에서 가장 모범적이었던 바나바가 하나님 앞에 귀하게 쓰임받습니다. 그의 헌신은 잘되는 예루살렘 교회가 구제를 효과적으로 수행하는데 큰 기여를 했습니다.
오늘 안디옥 교회는 연약한 교회입니다. 가난한 교회입니다. 아직 모국 교회 성도들을 도울 만큼 자라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이 각각 그 힘대로 유대에 사는 형제들에게 부조를 보내기로 작정했습니다. 작정했을 뿐만 아니라 이를 실행했습니다. 주는 일에 앞장 서고 있는 것입니다. 바나바와 사울의 손으로 장로들에게 보냈습니다.
잘되가는 교회의 모델입니다.

예화] 장기려 박사
우리나라에도 자신의 모든 것을 주는데 사용한 분이 있습니다. 그는 자신이 가진 의료 기술을 가난한 자들에게 아낌없이 나누어 주었습니다. 한 평생을 구제와 무료 진료로 홀로 사셨던 장기려 박사는 집 한채 없이, 고신 의료원에서 병원 옥상에 마련해 준 20평 관사에서 무소유로 살다가 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영원히 살기 위해서 혼자 산다!" 는 명언을 남기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러나 많은 소유와 권력을 양손에 거머 쥐고 살았던 헤롯을 장기려 박사보다 잘나간 사람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주를 섬기다 간 사람' 장박사는 어둡고 차가운 이 세상에서 `별과같이 찬란한 삶'을 살고 간 잘 나간 사람인 것입니다.




맺음말

예수님을 사랑하십니까?
헤롯처럼 세상의 잡다한 것들을 긁어모으는 일에 모든 인생을 낭비하지 맙시다. 권력을 거머쥐려고 몸부림치고, 사람들에게 인기를 거머쥐고, 세상 것만 추구하며 살던 헤롯에게 남은 것이 무엇입니까? 벌레에 물려 죽는 불쌍한 삶뿐입니다. 잘나가는 것 같으나 결코 잘나가는 것이 아닙니다.
바나바처럼, 장기려 박사처럼, 안디옥교회처럼 주는 일에 인생을 기울입시다. 모든 것을 다 내어놓고 안되는 것처럼 보여도 그것이 잘나가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 위에 인생을 세우고, 나를 필요한 자들에게 나를 나누어 주는 삶을 삽시다.
나를 위해 십자가 위에서 몸을 찢기시고 피까지 모두 쏟으신 주님께서 내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를 책임져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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