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20 March 2015

히12:4-13 징계에 담긴 사랑

히12:4-13

    [들어가는 말]

    어떤 사람이 이런 글 써놓은 것을 보았습니다.

    ‘아이야, 너는 이런 사람이 되거라.
많이 사랑하기 보다는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많은 것을 가지려고 애쓰는 사람보다는 의미있는 것의 가치를 헤아릴 줄 아는 사람이,
산에 오를 때 제일 앞서 가기보다는 뒤에 처진 이와 동행하는 사람이,
억울한 일을 당할 때면 빙그레 웃으며 침묵하지만 불의에 대해서는 뇌성을 발하는 용기를 가진 사람이,
남의 과오에는 한없이 관용을 베풀지만 자신에게는 냉혹한 원칙을 적용하는 사람이,
아이야, 너는 이런 사람이 되거라.
훗날 서로 헤어져 세월이 많이 흐른 뒤에도 눈물 나게 보고 싶은 그리움이 남는 그런 사람이,
무엇인가 좋은 것을 이루려는 사람은 결코 쓰러지지 않는다.’

     부모의 마음은 자녀가 너그럽기를 원합니다.
인격적으로 본이 되길 원합니다.

     그러나 사실 자녀는 대부분 그렇지 못합니다.
이기적입니다.
자기밖에 알지 못합니다.
비인격적입니다.

     훗날 서로 헤어져 세월이 많이 흐른 뒤에도 눈물 나게 보고 싶은 그리움이 남는 그런 사람이 되려면 어느 부분을 많이 바꾸어야만 합니다.

    그래서 부모는 아픈 마음을 가지고 매를 댑니다.

     오늘 매를 드신 부모님, 좋은 작품이 태어나길 바라며 끌을 들고 망치로 작품을 만들어 갑니다.
그것이 자녀 징계입니다.


나아가
우리는 징계를 통해 우리 안에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만나게 됩니다.



1. 부모는 때로 자녀를 징계합니다.

     [히12:7-8]

7.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8.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

아버지는 때로 자녀를 징계합니다.
친아들이라면 징계는 다 받게 마련입니다.

‘하나님의 징계’라는 말을 할 때 가장 먼저 떠올리기 쉬운 것은 ‘벌’의 개념입니다. 벌이라는 것은 아프고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그러므로 징계에서 고통과 아픔만을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피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든 징계를 받지 않기 위해 하나님의 마음에 들어야 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한다는 말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징계를 다르게 생각하는 견해가 있습니다.

브루스 윌킨슨 & 데이빗 콥에 의해서 기록된 ‘포도나무의 비밀’이란 책에는 징계와 가지치기에 대해서 재미있는 글을 남기고 있습니다.

      [요15:1-4]

1. 나는 참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2.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3.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여졌으니
4.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제해버리다’로 번역된 옛 그리스어 ‘아이로’(airo)가 지닌 의미를 아주 구체적으로 깨닫게 해줍니다. ‘아이로’(airo)는 ‘들어 올리다, 집어 올리다’라는 또 다른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포도나무 비유가 말하는 ‘징계’는 징계 이전에 ‘세심한 배려’였습니다.

포도나무 가지는 자랄수록 자기 무게를 지탱하지 못하고 밑으로 쳐져 급기야 땅을 기며 퍼지게 됩니다. 이런 상황을 가만히 놔두면 포도나무 가지에서 나올 잎도 흙을 뒤집어쓰게 될 뿐 아니라 땅을 흡족히 적시는 비 역시 땅과 맞닿은 포도나무 가지와 잎을 썩게 만듭니다. 그렇다면 열매는? 물론, 그런 환경에서 제대로 된 열매를 보기는 어렵겠죠.

“이런 가지는 버려두기에는 너무 귀해요. 우리는 물이 든 양동이를 가지고 포도밭을 돌아다니며 그런 가지들을 찾아요. 그리고 들어 올려서 씻어주지요”
“그런 다음 울타리 주위에 매주거나 그 위에 묶어주지요. 그러면 곧 무성하게 잘 자라요.” (<포도나무의 비밀>, 55-56쪽)

땅바닥과 맞닿은 채 흙을 헤집고 다니는 가지들을 일부러(!) ‘들어올려’ 씻어주고 높은 곳에 매달아 줍니다.

이렇게 볼 때, 가지들을 ‘제해버린다’는 말은 진짜 버린다는 말이 아니라 땅을 기는 못된 습관을 고쳐주어 열매 없는 가지로 열매를 맺도록 하기 위한 의도적인 간섭이요 사랑입니다.

‘가지치기’는 무슨 의미일까요? 무성하게 자라는 습성을 지닌 가지와 잎을 적당히 조절하여 열매를 많이 맺도록 도와주는 게 바로 ‘가지치기’이죠. 가지와 잎을 적당히 그 수를 조절해주면 남은 가지가 오히려 더 풍성한 열매를 맺게 됩니다. 말하자면, ‘가지치기’는 근본적인 조치인 ‘징계’ 다음에 뒤따라오는 상황적 조치입니다.

“징계가 죄에 관련된 것이라면 가지치기는 자아에 관계된 것이다.” (본문 105쪽)

  ‘징계’가 단순히 벌을 주는 의미를 넘어서, 열매 맺지 못하게 하는 상황을 제거해주는 세심한 배려입니다. 성장을 방해하는 상황을 성장할 수 있는 상황으로 변화시켜주는 것이지요.
죄’는 스스로 성장을 방해하는 상황으로 들어가는 ‘못된 습성’입니다.

‘가지치기’는 성장할 조건을 갖추었음에도 불구하고 세심히 관찰하고 조정해주지 못해 애초에 갖고 있던 능력을 발휘하지 못해서는 안 되기 때문에 성장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게 하는 것입니다.
가지치기는 더 많은 열매를 맺도록 자아를 정리해 주는 것이지요. 그래서 가지치기를 자아에 관한 것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1. 열매 맺지 못하는 삶이 계속된다면 하나님께서 징계하기 위해 당신의 삶에 개입하실 것입니다.

2. 약간의 열매만을 맺는 생활을 하고 있다면 하나님께서 깨끗케 하기 위해 당신의 삶에 개입하실 것입니다.

포도나무 비유에 나타난 성장통은 좋은 열매를 위해 축복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을 하나님께서 자녀와 같이 징계하십니다.

    하나님이 징계하신다는 것은 하나님이 살아 계신다는 것을 보여주시는 차원에서 하시는 하나님의 일입니다. 히 12:8절의 '징계가 없으면 사생자'라는 말씀도 하나님의 아들이기에 징계를 통해서 열매 맺지 못하게 하는 상황을 제거해주는 배려입니다. 성장을 방해하는 상황을 성장할 수 있는 상황으로 변화시켜주는 것이지요.

 5.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 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6.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하였으니

     예레미야에게 임한 하나님의 말씀은 유다의 왕과 예루살렘을 방문한 사신들에게 하나님이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을 섬기라고 명하셨습니다.
 바벨론을 섬기지 않으면 칼과 기근과 전염병으로 멸망하게 하겠다는 경고까지 포함되어 있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징계를 받으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이스라엘로 열매맺지 못하게 하는 상황을 제거해주시려는 세심한 배려였습니다. 성장할 수 있는 상황으로 변화시켜주시려는 것이었지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스스로 성장을 방해하는 상황 속에서 살아가는 ‘못된 습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거짓 선지자나, 점술이나 요술을 하는 이들이 바벨론의 왕을 섬기지 말라는 예언과 조언을 하여도 믿지 말고 바벨론 왕에게 복종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들이라 하십니다. 그렇지 않으면 멸망할 것이라는 선언을 하십니다.

예레미야는 유다왕 시드기야에게 이 말을 전합니다. 유다와 예루살렘이 황무지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해 바벨론에 투항하고 바벨론 왕을 섬기게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선지자들을 하나님이 보내지 않은 멸망할 거짓 선지자들이라고 말합니다.




2.  징계는 자녀 유익을 위함입니다.

     [히12:9-10]

9. 또 우리 육신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든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며 살려 하지 않겠느냐
10. 그들은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시느니라

     10절을 보면 “저희는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예케 하시느니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징계를 죄를 범한 자에 대한 하나님의 벌로 오해하기 때문에 징계에 담겨 있는 유익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징계가 신자에게 유익으로 다가오게 되는 것은, 징계가 죄에 대한 벌이 아니라 신자로 하여금 천국을 소망하도록 하기 위해 육을 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징계가 주는 유익은 세상의 헛됨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땅의 것을 아무리 소유한들 그것이 나를 구원할 수 없음을 알게 되는 것이 징계의 유익입니다. 세상의 것이 나를 구원할 수 없음을 알게 될 때 우리의 눈에 그리스도가 보이게 됩니다. 그리스도만이 나의 구원자이심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으로 신자는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녀들을 징계하시는 것은 바르고 거룩하게 하시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기 백성을 향한 징계에는 사랑이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자녀들이 징계 가운데 소망을 갖고 회개함으로써 구원의 은총 안으로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라십니다

1] 나를 가까이 두고 싶어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멀리 떠나 살아도

내버려 둔다면 더욱 하나님을 멀리 떠나 방탕하게 살 것입니다.

징계가 없다면 우리는 육신의 정욕을 좇아 계속 탕자의 삶을 살 것입니다.
누가복음에 나오는 아버지를 떠난 탕자가 다시 회개하고 돌아왔던 것은 기근이란 징계 때문이었습니다.

징계는 우리를 가까이 두시려는 주님의 사랑입니다.

히브리서 12:8에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 하였습니다.

둘째, 징계는 영원히 나와 함께 살고 싶어 하시는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사랑하는 사람과는 항상 함께 살고 싶어합니다.
아버지께서 자녀들을 징계하시는 것은 나와 천국에서 영원히 살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죄 가운 데 살면 나와 영원히 하늘 나라에서 살 수 없기에 징계하시는 것입니다.

나와 얼마나 영원히 살고 싶으시면 마음의 고통을 감수하고 때리시겠습니까?
징계는 하나님의 미움이 아니라 사랑인 것입니다.

셋째, 징계는 더욱 크고 영원한 고통을 면케 하시려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만일 우리가 잘못해도 내버려 둔다면 우리는 죄의 종이 되어 사망을 당해 지옥불에서 영원한 형벌을 당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녀들을 징계하시는 것은 이 세상에서 잠간의 고통으로 영원한 고통을 면케 하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지금 때리지 않으면 죄의 종이 되어 영원한 고통을 당해야 하기에 잠간의 고통을 주어서라도 영원한 고통을 면케 해주시려는 것입니다.

다윗을 하나님께서는 징계하시는 말씀이 나옵니다.

인구조사를 명령했던 다윗이 하나님의 징계를 받는 장면입니다.


[사무엘하24:11 이하]

다윗이 아침에 일어날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다윗의 선견자 된 선지자 갓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가서 다윗에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네게 세 가지를 보이노니 너는 그 중에서 하나를 택하라 내가 그것을 네게 행하리라 하셨다 하라 갓이 다윗에게 이르러 고하여 가로되 왕의 땅에 칠 년 기근이 있을 것이니이까 혹시 왕이 왕의 대적에게 쫓겨 석 달을 그 앞에서 도망하실 것이니이까 혹시 왕의 땅에 삼 일 동안 온역이 있을 것이니이까?

하나님의 징계는 단순히 범죄에 대한 벌이 아닙니다. 징계가 담고 있는 의미는 징계를 통해서 자신의 불의함을 깨닫고 다윗으로 열매맺지 못하게 하는 상황을 제거해주시려는 세심한 배려였습니다. 성장할 수 있는 상황으로 변화시켜주시려는 것이었지요.. 벌이 아니라 사랑인 것입니다.
다윗은 징계에 담긴 하나님의 이러한 마음을 알았기에 여호와의 손에 빠지기를 원한다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징계를 두고 어느 것이 자신에게 조금 이라도 더 유리한 것인가라는 계산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다윗은 어떤 의미로 여호와의 손에 빠지고 사람의 손에 빠지지 않기를 원한다는 말을 할까요?

저는 이 말씀을 대했을 때,

‘회개하면 안됩니까?’

  ‘하나님 징계를 받지 않을 길은 없습니까?’

이렇게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을 충분히 알고 있었을 다윗은 하나님의 징계가 어느 것으로 내려지든 징계를 통하여 궁휼아 크신 하나님의 손에 들어가기를 원합니다.

‘여호와께서는 긍휼이 크시니’
다윗은 징계를 벌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징계를 긍휼이 크신 여호와의 손에 빠지는 것은 경우에 따라 아프지만, 그 안에 담긴 축복이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무서운 진실 앞에 서 있는 것입니다.

다윗의 인구조사는 죄였습니다.
당시 인구의 증가는 왕의 업적으로 평가받던 시대입니다. 많은 수의 인구를 확인함으로써 다윗왕의 힘을 온 천하에 과시할 의도가 있었습니다.

다윗 제국의 건설은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지, 다윗이 이룬 것이 아니라는 것이 하나님 중심적 사고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영광을 자신의 것으로 돌리려던 중심을 하나님께 간파당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드리지 않고, 자신의 업적인 양 드러내고 싶었던 죄는 스스로 성장을 방해하는 상황으로 들어가는 ‘못된 습성’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장을 방해하는 상황을 성장할 수 있는 상황으로 변화시켜주는 것이지요.
열매 맺지 못하게 하는 상황을 제거해주는 세심한 배려입니다.

결국 삼일의 온역으로 인해 칠 만이라는 많은 수의 백성이 죽습니다.

저들도 자신들이 범한 죄대로 심판을 받는 경우이기는 하지만, 이를 통해 다윗과 그 백성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올릴 수 있는. 열매 맺을 수 있는 백성으로 성장하는 것입니다.

징계는 자녀 유익을 위함입니다.



3. 징계에는 열매가 있습니다.

     [히12:11-13]

11.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느니라
12. 그러므로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13. 너희 발을 위하여 곧은 길을 만들어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 하라

1] 하나님의 징계는 즐거워 보이지는 않습니다.
슬퍼 보입니다.

      욥이 징계 가운데 있을 때, 욥이 즐거울 수 없습니다.
슬퍼 보입니다.

누구에게나 징계는 고통으로 다가옵니다.
징계 속에서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고통만을 체감합니다.
자신들에게 성장 통을 주시는 하나님의 마음에는 관심이 안갑니다.

- 피곤한 손
- 연약한 무릎
- 저는 다리

그래서 부르짖습니다.


 2] 그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 자들은 후에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습니다.


우리가 현재 처한 어려운 상황이나 고통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손에 맡기십시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청종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또한 하나님의 간섭에서 벗어나 제멋대로 살아갔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지 않았어요.
자신들의 힘으로도 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열매가 없었습니다.
빈약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지를 들어 손보십니다.
하나님은 주변 여러 민족의 손에 붙였습니다.
그들을 미디안에 붙이시기도 하고,
블레셋에게 붙이기도 합니다.
벌을 주기 위한 것이었을까요?
아닙니다.
자신들의 힘으로는 열매 없음을 깨닫게 하심입니다.
삶이 하나님의 간섭 아래 있을 때 열매가 있음을 깨닫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손아래 있을 때
하나님의 백성은 열매를 맺고
풍성히 맺게 됩니다.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습니다.

[히12:11]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느니라


신자의 강함은 힘의 소유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 피곤한 손
- 연약한 무릎
- 저는 다리

그래서 부르짖습니다.

그로 말미암아 연단을 받습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에 손 안에서 빚어져 갑니다.

결국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습니다.


[적용]

곱게 기르고
해달라는 대로 다해주고
인격대로 따라 주고
그런 아이들이 자라 어른이 되면 부모님의 사랑 몰라주는 경우가 허다해요.
피눈물 나게 해요.
대들고
무례한 경우를 봅니다.

저는 부모님이 어린 자녀를 혹독할 정도로 고집을 꺾고 매를 때려 기르는 것을 보았습니다.
아이들 입장에서 본다면 죽을 맛입니다.

- 피곤한 손
- 연약한 무릎
- 저는 다리

그래서 부르짖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자란 아이들이 어른이 되면 효도합니다.


     [히12:11]

11.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느니라


     [마무리하는 말]

뉴욕 시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라과디아라는 공항이 있습니다. 이 공항의 이름은 뉴욕 시장을 세 번이나 역임한 피오렐로 라과디아라는 사람에게서 따온 것입니다. 그만큼 라과디아는 미국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은 정치인이었습니다. 그는 주위 사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후진을 양성한다는 이유로 뉴욕 시장이 되는 것을 포기한 분이었는데, 그의 유능함과 지혜로움은 뉴욕 시에서 야간판사로 재직할 때부터 널리 알려져 있었습니다.

판사로 재직하던 어느 추운 겨울 날, 한 노인이 빵집에서 빵을 훔친 죄로 경찰관에게 붙들려왔습니다. 가족들이 굶는 것을 보고 있을 수 없어 빵을 훔친 그 노인은 라과디아에게 자신의 힘든 처지를 설명했습니다. '무슨 죄를 지었는지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배가 고파 우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연신 눈물을 찍어내는 노인의 모습은 처량하기 그지없었습니다. 하지만 라과디아는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처지는 딱하지만 법에는 예외가 없소. 그러니 벌금 10달러를 내시오.'  그 말과 동시에 라과디아는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며 말했습니다.  '10달러는 여기 있소. 먼저 이 돈으로 벌금을 내시오. 그리고 이 법정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50센트씩의 벌금을 부과하겠소. 여러분은 이웃 주민이 살기 위해서 빵을 훔쳐야 할 정도로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기 때문이오. 경사, 당장 벌금을 거두어 저 노인에게 주시오.'

경찰은 모자를 돌려 방청객들로부터 거둔 벌금을 노인에게 주었습니다. 믿기지 않는 판결을 받은 노인은 47달러 50센트를 받아 주머니에 넣고 법정을 나섰습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배려입니까? 라과디아는 공의와 사랑을 동시에 충족시켰습니다.

죄와 허물로 죽을 우리들이 하나님의 심판석에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형벌을 부과하실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외아들을 십자가에 내어 주심으로 동시에 그 형벌을 친히 담당하셨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하나님의 공의와 하나님의 사랑을 모두 충족시키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에게 대신 주어지신 징계는 그 사랑을 믿는 우리 안에서 의를 이루시고 평강을 이루십니다.
하나님의 의와 평강이 이루어지는 곳이 바로 하나님 나라입니다.

징계를 통해서 이루시는 하나님의 나라를 우리는 체험하는 것입니다.



4.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흘리기까지는 대항하지 아니하고
5.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 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6.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하였으니
7.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8.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
9. 또 우리 육신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든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며 살려 하지 않겠느냐
10. 그들은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시느니라
11.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느니라
12. 그러므로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13. 너희 발을 위하여 곧은 길을 만들어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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