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5 March 2015

로마서13: 8-10 어떻게 살 것인가?

 [들어가는 말]

    우리는 근래에 고국에서 날아오는 유명 배우들의 자살 소식에 적쟎이  놀라고 있습니다.
그들은 청소년뿐만 아니라, 우리 동시대 사람들에게도 우상과 같은 존재라는 말을 듣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기독교인이었다는 말도 듣습니다.

    저는 최진실이란 분을 잘 모릅니다.
그러나 그녀의 장래식이 국민장을 치루는 것 같았다는 기사를 만나면서,
그리고 주변국가의 사람들로부터도 많은 애도를 받았다는 기사를 보면서
그녀가 대중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은 것 같이 느꼈습니다.

    여러분은 우리 시대의 빚을 안고 떠난 이분의 죽음을 어떻게 생각하셨습니까?

    노재현 칼럼리스트는 그녀를 보내고 '최진실다움' 겉모습이었을 뿐…"나 힘들어" 소리칠수 없었나'란 제목으로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그토록 고통의 심연을 헤매고 있었던 것도 모르고, 껍데기 이미지만 받아들여 만화 주인공처럼 마냥 행복할 것으로, 행복해야만 할 사람으로 여겨왔기에 참 미안하다. 나는 최진실이 언젠가 오드리 헵번 같은 박애주의자 할머니로 거듭날 줄 알았다. 김혜자처럼 곱게 나이 들 줄 알았다. 그게 아니더라도 최소한 김수미처럼 마파도를 휘젓고 가문의 영광을 외치며 나이를 무색하게 만들 사람으로 생각했다. 갓 마흔에 그렇게 힘들게 살고 있을 줄은 몰랐다.   ....   최진실이 진작에 세상에 대고 “나 너무 힘들어”라고 부르짖을 수는 없었을까.

    저 역시 최진실 자매의 죽음을 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녀를 사랑한 사람이 그렇게 많았다는데, 그 많은 사랑 가운데 그녀를 구원할 사랑은 없었는가?
최진실을 향한 환호가 많았다는 데, 그 수많은 환호 가운데 그녀를 향해 날아가는 살인적인 악풀을 막아줄 수 있는 확실한 환호는 없었는가?
이런 안타까운 마음도 스쳐갑니다.

    이런 복합적인 심란한 심사를 안고, 오늘 우리는 롬13:8-10 말씀을 듣습니다.
    그리고 우리 앞에도 동일하게 놓인 삶과 죽음의 문제를 풀어갈 수 있는 구원의 열쇠를 찾고 싶습니다.



    1. 사람은 사랑다운 사랑을 받아들일 때 비로소 삶을 얻을 수 있습니다.

    8절]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사랑다운 사랑이 무엇입니까?

    1] 사랑다운 사랑은 남을 사랑하는 사랑입니다.

    오늘 우리는 싱싱한 화초를 보면서 하나님 말씀을 듣습니다.
이 화초들은 화려한 교회들 강단에 있는 화초들과 좀 다릅니다.
제게 몇 차례 설교를 들으신 분이라면 익히 아는 대로, 이 화초들은 좋으니까 꽃 시장에서 사다놓은 화초가 아닙니다.
사람들로부터 버려졌던 것들이요 죽어가던 것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여러분이 보고 계시는 대로 이렇게 감동적이요 힘있게 자라고 있습니다.
유도화도 이렇게 하얀 꽃이 피어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여름 내내 아침마다 물을 받아 마신 덕입니다.
    화초는 늘 때를 따라 물을 마셔야 합니다. 수국처럼 물을 많이 먹어야 사는 화초도 있고, 난처럼 물에 욕심이 적은 화초가 있지만, 어느 화초나 공통점인 점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물을 마셔야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화초가 물을 마셔야 살 수 있다면,  사람은 누구나 이웃 사랑을 필요로 합니다. 이웃 사랑을 많이 받아야 사는 사람도 있고, 이웃 사랑이 좀 적게 주어져도 사는 사람이 있기는 하지만 공통적인 현상은 누구나 사람은 이웃 사랑을 필요로 합니다. 이웃 사랑이 있어야 사람은 살 수 있습니다.



    저 역시 고 최진실 자매님의 죽음을 여러가지로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녀는 교회를 다닌 사람입니다.
누구보다도 큰 교회를 다닌 사람입니다.
그리고 보통 사람들은 만나보기도 힘든 대형교회 목사님과 몇 차례나 만나서 자신의 세상 속에서 당한 아픔을 상담도 한 분입니다.
그러니까 그녀의 죽음이 좋지 않은 교회에 다녀서 그렇다고 말하지 맙시다.
훌륭한 목사님을 만나지 못해서 그렇다고도 말하지 맙시다.
제가 생각하기에 그녀는 사랑다운 사랑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에 이런 안타까운 길을 갔다고 봅니다.
제대로 된 이웃 사랑을 필요로 했다는 것입니다.

    그녀는 세상에 깊이 들어가서 싸우다가 스스로 승리하지 못했다고 생각하고, 자살이란 극단적인 방법으로 생을 마감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최진실 자매의 자살 기사를 보면서 벤허란 영화에서 본 로마 장군이 생각났습니다. 그는 바다에 로마 군단을 이끌고 적과 싸우기 위해 적진에 나갔습니다. 적과의 무시무시한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수많은 군사들이 전쟁에서 희생되었습니다. 자신이 타고 있는 배 역시 공격을 당하게 되었고, 최선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배는 침몰되고 적은 세차게 공격해왔습니다. 그는 생각하였습니다. 끝났구나! 우리는 적에게 완전히 패했구나! 명예롭게 죽자! 그리고 그는 칼을 빼어 자살하려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는 대로 그는 전쟁에 패한 것이 아닙니다. 사실은 대승리를 거둔 것이었습니다. 다만 자신이 그 전쟁에서 대패했다고 생각했을 뿐입니다. 만일 그가 승리했다는 확신이 있었다면 결코 자살하려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다행스러운 점은 자살 직전에 그가 사랑다운 사랑을 만났다는 점입니다. 이웃 사랑을 만났습니다.
벤허란 사람을 만난 것이지요.
벤허는 목숨을 걸고 그 장군으로부터 칼을 뺏습니다. 그리고 그를 기절시키고 그를 꽁꽁 묶어서 그의 자살을 막습니다.
이것이 바로 사랑다운 사랑입니다.

   

    이런 점에서 저는 고 최진실 자매와 더불어 삶의 전쟁터에서 자살하고 싶은 형제 자매들에게 함께 나누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자살하지 마십시오. 자살은 너무 잘못된 생각입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의 전쟁은 진 것처럼 보이지만 끝난 것이 아닙니다. 더구나 패배한 것은 더욱 아닙니다.
현실에서 고전할 수는 있지만 우리는 승리가 보장된 전쟁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살하고 싶어하는 사람 곁에 있는 형제 자매님들께 부탁드립니다. 벤허처럼 좀 적극적으로 이웃사랑을 하시기 바랍니다.
벤허가 적극적으로 이웃을 사랑하니까 결국 그에게 삶의 길이 열리지 않습니까?
이웃 사랑이 여러가지로 손해보는 것 같지만 결코 손해보지 않습니다.
심는 대로 거두는 것은 자연의 법칙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사랑다운 사랑을 만나십시오.
사랑다운 사랑을 하십시오.
이웃을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사랑의 빚'을 지고라도 사랑은 만나야 합니다.

    빚을 지는 일에 대하여 성경은 부정적입니다. 빚보증을 서는 일에 대해서도 성경은 부정적입니다. 그런데 사랑의 빚만은 막지 않습니다.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말씀하십니다.

    빚을 지고라도 사랑은 받아야 합니다.
빚을 주는 심정으로라도 사랑은 주어야 합니다.
사람은 사랑다운 사랑을 받아야 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사는 데에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사람이 사는 데에는 소망이 필요합니다.
그 중에 제일 필요한 것은 '사랑'입니다.



    2. 무엇보다 사랑다운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저는 요즈음 화초를 교회 안으로 들여놓기도 하고 내놓기도 하면서 고생을 하고 있습니다.
좀 따스한 날씨를 보면 어떻게든지 이 햇볕을 화초에게 누리게 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내놓고 보면 낮은 빨리 지나가고 차가운 밤이 옵니다.
그러면 얼른 화초를 문 안으로 들여 놓습니다.
추운 밤에 죽으면 어떻하나 하는 마음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 어떤 빛보다 햇빛이 화초를 살리는 가장 큰 역할을 합니다.
우리에게 세상이 주는 사랑이 많지만 하나님께서 주시는 사랑을 받아야 제대로 살 수 있습니다.
화초가 햇빛을 받으면 싱싱하게 살아나는 것처럼,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면 우리 인생도 싱싱하게 살아납니다.


    사람도 사랑다운 사랑을 만나야 살아나는데요.
하나님의 사랑이 바로 사랑다운 사랑입니다.

우리는 반드시 이점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를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내어주심으로 2천년 전에 위대한 사랑을 이미 확증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사랑다운 사랑입니다.
우리가 이땅에서 할 일은 그분의 사랑을 알고 누리며 선포하는 일입니다.
사랑다운 사랑을 발견하고 만나십시오.


    성경에 보면,
사랑다운 사랑,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하고 멸망할 수밖에 없는 세상에서 구원의 삶을 살았던 분들이 등장합니다.

    노아는 그 대표적인 신앙인입니다.

    노아 역시 사람인데 어두운 그의 시대에서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을 다 준행할 수 있었습니까?
일이 년도 아닌데, 어떻게 120년 동안이나 방주를 지을 수 있었겠습니까?
노아가 그와 같이 귀한 열매를 맺을 수 있었던 비밀이 무엇입니까?

    그 열쇠를 우리는 창6:8에서 만납니다.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이를 [KJV] 성경에서 찾아 보면,

    8. But Noah found grace in the eyes of the LORD.

    [NIV] 성경에서도

    8. But Noah found favor in the eyes of the LORD.
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노아의 구원은 바로 사랑다운 사랑,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노아가 하나님의 눈 속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하였을 때, 그는 하나님이 명하는 명령이라면 무엇이라도 할 수 있다는 헌신을 이루었습니다.
그로 인하여 구원을 받기에 이르렀습니다.
노아가 노아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하였기에 그 사랑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할 수 있는 힘을 얻었습니다.
노아가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다 준행할 수 있었던 비밀은
노아가 하나님의 눈 안에 있는 그를 향한 사랑을 발견하였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먼저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묻습니다.
그리고 베드로의 마음에서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확인하셨을 때, '내 양을 치라'는 명령을 주십니다.
사랑하는 자가 명령에 순종하는 열매를 맺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요한일서 5:3]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요한일서 2:5]  

누구든지 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그 속에서 온전케 되었나니 이로써 우리가 저 안에 있는 줄을 아노라


    우리는 롬13:1-7 말씀

권위에 복종하라는 말씀을 듣고 많은 생각들을 하였습니다.

    그 가운데 불의한 위정자의 권위 속에도 사랑이 담겨있다는 말씀을 듣고 고민하신 분들이 있었던 것으로 압니다.
불의한 아버지 안에도 자녀를 향한 사랑이 있다는 것을 이해하면서도 말입니다.
    그리고 그런 불의한 권위에도 복종해야 하느냐 하는 고민도 하신 줄 압니다.

    이는 충분히 해볼 가치가 있는 고민입니다. 저 역시 그런 불의한 권위를 부정하고 살아온 적이 있었기 때문에 이해합니다.

그러나 권위에 복종하는 미덕을 잃어버린 이 시대에 무엇으로 권위에 대한 복종을 회복할 수 있다고 봅니까?
권위를 가진 자가 권위를 갖추어야만 권위에 대한 복종이 이루어진다는 논리나, 권위에 복종하라 억압하는 사회논리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 사랑은 이 세상 성도들이 할 수 있는 무엇 이상으로 제사 이상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마가복음 12:33]  

    또 마음을 다하고 지혜를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또 이웃을 제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전체로 드리는 모든 번제물과 기타 제물보다 나으니이다

로마서 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어떤 위정자는 사리사욕을 채우는 권위를 무소불위로 휘두릅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께서는 그 외아들을 내어주시기까지 완전한 권위요
사랑이 충만한 줄 믿습니다.
우리가 복종하면 복종할 수록 복을 받을 그런 권위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권위에 복종하면 하나님께서 일하십니다.

    하나님 사랑은 그러므로 명령입니다.

    마태복음 22:37]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복종이 왜 이루어지지 않습니까?
그것은 우리의 마음 속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5:42]  

다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너희 속에 없음을 알았노라

     사랑다운 사랑인 하나님의 사랑에 내 인생에 접목시킴으로 내 인생에도 참 구원의 길이 열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저는 이 화초를 햇빛이 없는 강단에 들여놓으며 마음이 조마조마 합니다.
여름 내내 하나님의 사랑을 흠뻑 받아들였으니 그 힘으로 겨울을 이길 수 있기 바랍니다.



    3. 사람은 사랑할 때, 열매가 맺힙니다.

    [8절b-9절]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9.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성경에는 일만 달란트 빚을 탕감받은 사람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에게 100데나리온 빚진 동관을 사랑하지 못하는 그 일로 인하여 주인에게 큰 책망을 받습니다.

    [마18:24-31]

   24. 회계할 때에 일만 달란트 빚진 자 하나를 데려오매
25. 갚을 것이 없는지라 주인이 명하여 그 몸과 처와 자식들과 모든 소유를 다 팔아 갚게 하라 한대
26. 그 종이 엎드리어 절하며 가로되 내게 참으소서 다 갚으리이다 하거늘
27. 그 종의 주인이 불쌍히 여겨 놓아 보내며 그 빚을 탕감하여 주었더니
28. 그 종이 나가서 제게 백 데나리온 빚진 동관 하나를 만나 붙들어 목을 잡고 가로되 빚을 갚으라 하매
29. 그 동관이 엎드리어 간구하여 가로되 나를 참아 주소서 갚으리이다 하되
30. 허락하지 아니하고 이에 가서 저가 빚을 갚도록 옥에 가두거늘
31. 그 동관들이 그것을 보고 심히 민망하여 주인에게 가서 그 일을 다 고하니
32. 이에 주인이 저를 불러다가 말하되 악한 종아 네가 빌기에 내가 네 빚을 전부 탕감하여 주었거늘
33.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관을 불쌍히 여김이 마땅치 아니하냐 하고
34. 주인이 노하여 그 빚을 다 갚도록 저를 옥졸들에게 붙이니라

    이 사람의 문제는 무엇입니까?
    평생 갚지 못할 엄청난 사랑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자기가 나누어줄 수 있는 사랑을 하지 못함으로 인하여 열매가 떨어지고 만 이야기입니다.


    지난 주일에 우리가 받았던 권위에 복종하는 열매도 참 좋은 열매이지만 이 시대에서 이런 열매를 누리고 사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권위라면 마땅히 하나님의 권위를 말하는데 이 하나님의 권위에 복종하고 그 열매를 누리며 사는 사람을 말세에 보기란 힘들다는 것이지요.
    하나님의 계명에 복종하는 일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만 할 수 있는 신앙의 열매이기 때문입니다.


    요한일서 3:17]
 
    누가 이 세상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줄 마음을 막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할까보냐

    사랑다운 사랑, 이웃 사랑으로 이웃에게 다가갈 때, 이웃만 살아나는 것이 아닙니다.
다가가는 바로 그 사람의 인생에 사랑의 열매가 맺힙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9.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간음하지 않는 것
살인하지 않는 것
도적질하지 않는 것
탐내지 않는 것
그 외의 여러가지 중요한 계명이 있을 수 있지만
사랑이 전제될 때 그 말씀 가운데 모든 열매가 맺힐 준비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간음이 무엇입니까?
이웃을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오는 죄의 열매입니다.
    살인이 무엇입니까?
이웃을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오는 죄의 열매입니다.
    도적질이무엇입니까?
이웃을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오는 죄의 열매입니다.
    탐욕이 무엇입니까?
이웃을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오는 죄의 열매입니다.


나의 이웃을 내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을 실행하고 있다면 그는 성공한 사람입니다.

   "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마무리하는 말]

    WEG의 창시자 스터드 선교사님의 말씀 가운데 이런 내용이 생각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심이 사실이라면
우리의 헌신은 헌신이 아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사랑다운 사랑을 만난 사람입니다.
이 값진 사랑을 거저 받았으니
이 값진 사랑에 보답하는 삶을 살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이웃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사랑의 열매가 풍성한 가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하고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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