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송할 말씀]
(골 1:3)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감사하노라
[들어가는 말]
성공적인 삶을 산 사람의 생활 방식 중 필수 요소 한 가지는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외식하는 신자는 위급한 때에 하나님께 기도할 줄 안다. 그러나 그 위험에서 건짐 받았을 때는 감사 할 줄 모른다." (칼빈)
"아무리 이해가 깊고 열심이 뛰어난 행동을 한다 할지라도 하나님께 향한 높은 감사하는 마음이 없다면 생명 있는 신앙생활이란 불가능하다."(우찌무라 간조)
"어려운 일을 만났을 때, 우선 감사할만한 것을 찾아 그것에 대하여 정직하게 감사하라."(힐티)
본문을 보니, 바울 사도께서는 골로새 교회 성도들을 생각하며, 감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골 1:3)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감사하노라.
골로새 교회를 향한 감사기도의 내용을 살펴보면서 우리에게도 감사한 마음이 전염되기 원합니다. 나아가 우리도 감사한 사람들을 생각하고 글을 쓰는데까지 나갈 수 있었으면 합니다.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께 감사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1.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교인들의 믿음 때문입니다.
(골 1:4)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너희의 믿음(과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을 들음이요
(골1:3-4)에 있는 `그리스도 안에'(엔 크리스도)는 포도나무 가지가 그 줄기에 붙어있는 것처럼 골로새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에게 붙어있는 `상태'를 뜻합니다.
골로새 교회의 믿음이란 가지 된 성도들이 줄기인 그리스도 예수님께 온전히 접목된 그런 관계였습니다. 그리스도와의 인격적 관계(Bruce)가 형성된 믿음이었습니다.
1) 그리스도 한 분만 순수하게 의지하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골로새는 에베소로부터 60km동쪽에 있는 소도시입니다. 우리 서머나 교회가 이름을 빌려 온 소아시아 지역의 서머나(이즈미르) 근처입니다. 당시엔 상업의 중심지여서 동서 사상적 교류가 많이 있던 곳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이곳에 와서 기적을 행한 적이 없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이곳에 와서 특별한 무엇을 행한 적도 없습니다.
바울 사도 자신도 골로새를 방문하여 무슨 일을 행한 기억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골로새 교회 교우들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잘 믿고 의지합니다.
이런 골로새 교회의 믿음 소식이 옥중(로마감옥)에 있던 사도 바울의 마음을 뭉클하게 합니다. 그리스도 한 분만 의지하는 골로새 교회의 믿음이 감동이 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만으로 만족하였습니다.
[예화: 하나님의 기적을 사러 온 소녀]
"이 집을 팔고 작은 집으로 이사를 해야 할 것 같아요. 앤드류의 뇌 수술비가 턱없이 모자라서..... "
"오직 하나님의 기적만이 우리 아이를 구할 수 있어요."
6-7세 되어 보이는 소녀가 부모님들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렇게도 예뻐하던 남동생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은 하나님의 기적뿐이구나! 이 말을 곧이곧대로 믿은 소녀는 자기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골방에 숨겨놓았던 동전 저금통을 꺼냈습니다. 그것을 품에 넣고 약국을 향해서 걸어갔습니다.
다른 손님과 이야기를 하는데 정신이 팔린 약사는 어린 소녀를 거들떠보지도 않았습니다.
소녀는 동전을 하나 꺼내서 진열장을 똑똑 두드렸습니다.
"무엇을 도와줄까?"
"하나님의 기적을 사러 왔어요. 제 동생이 너무 아파요. 하나님의 기적이 얼마지요?"
"저런, 하나님의 기적은 팔지 않는다. 너를 도와줄 수가 없구나."
그 때 약사와 이야기를 나누던 신사가 소녀에게 물었습니다.
"어떤 기적을 사려고?"
"몰라요, 동생 앤드류 머리 안에서 무엇이 자꾸 자라고 있대요. 수술을 해야 하는데........ ."
"너는 돈을 얼마나 가지고 있니?"
"1 달라 11쎈트요."
"그것 참 잘됐구나. 그 돈이면 네가 필요로 하는 하나님의 기적의 값이랑 딱 맞는구나."
그 신사는 소녀의 손을 잡고 말했다.
"나를 너의 집으로 데려가주지 않겠니? 네 동생과 가족을 만나보고 싶구나. 네가 필요로 하는 하나님의 기적을 줄 수 있을 것 같구나."
그 신사는 동생인 약사를 만나러 시카고에서 온 뇌수술 분야에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칼 암스트롱 박사(전문 의)였습니다.
칼 암스트롱 박사는 수술비로 1 달러 11 센트를 받았습니다.
앤드류는 어린 누이의 순전한 믿음 덕분에 기적적 수술을 받았고 건강을 되찾을 수 있었습니다.
칼 암스트롱 박사는 후일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 수술은 정말로 어려운 수술이었습니다. 수술의 성공이요? 내 실력이 아니고 하나님의 기적이었습니다. 그 꼬마 소녀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의 기적이었습니다."
어린 소녀의 순전한 마음처럼 골로새 교인들의 믿음은 순전하였습니다.
물고기 두 마리와 빵 다섯 개를 가지고 예수님 앞으로 나아온 어린이처럼,
말씀만 하시면, 내 하인이 낫겠나이다 엎드린 백부장의 처럼 골로새 교인들은 순수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골로새 교인들처럼 예수님을, 순수하게 믿으시면 하나님께서 감사한 일들로 채우십니다.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께 감사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2. 교우간의 사랑 때문입니다.
(골 1:4)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을 들음이요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은 골로새 교우들에게 맺힌 믿음의 열매입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영접한 순수한 믿음 속에는 사랑이란 열매가 맺힙니다.
사랑은 믿음의 열매요 증거입니다(Carson).
바울 사도는 골로새 교인들에게 맺힌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이란 열매에 관하여 들으며 하나님께 감사를 올리고 있습니다.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이었습니다.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은 내 마음에 합한 사람들만에 대한 사랑이 아니었습니다.
일부 성도에만 한정된 한정판 사랑이 아닙니다.
아가페적인 사랑이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그 안에 모신 성도의 사랑입니다.
어떻게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을 할 수 있습니까?
1)하나님의 사랑에 접목될 때 가능합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내어주심으로 우리의 무거운 죄 문제를 해결해 주신 하나님의 의를 덧입은 성도의 사랑입니다.
헨리 나우웬이 쓴 <탕자의 귀향>이란 책이 있습니다. 헨리 나우웬이 쓴 <탕자의 귀향>은 빛의 화가로 명성을 날린 렘브란트의 대작 <탕자의 귀향>에서 깨달음을 얻어 쓴 글입니다.
렘브란트의 대작 <탕자의 귀향>은 가로 1.8미터에 세로 2.4미터의 캔버스 유화물감 속에 담긴 그 그림에는 아버지 품에 안긴 둘째 아들과, 그들을 바라보는 첫째 아들, 그리고 그 집안 사정을 멀찍이서 바라보는 두 사람이 그려져 있습니다.
탕자의 모습은 빈 털털이에다 머리까지 빡빡 민 상태이고, 샌들도 다 떨어져 있는, 그야말로 가진 것이라고는 단칼 하나뿐입니다.
렘브란트는 그 둘째 아들이, 바로 젊은 시절 여자와 돈에 허우적거린 렘브란트 자신의 모습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면 그 탕자를 인자한 모습으로 품은 아버지는 앞을 보지 못하는 눈먼 노인으로 그려지고 있는데, 그 또한 힘없이 늙은 렘브란트 자신의 모습이라 말합니다. 물론 오른손은 곱디고운 어머니의 손으로, 왼손은 굵고 강한 아버지의 손을 통해 모성과 부성을 겸하여 그려 넣었다고 이야기합니다.
나우웬은 라르쉬 공동체에 입주하기 전에 이 그림에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라르쉬 공동체에 있는 지적 장애우들을 향한 진정한 아버지를 꿈꾸던 그는 렘브란트의 그림 속에서 눈 먼 아버지롤 모델로 발견한 것입니다.
라르쉬 공동체에는 서로 다른 관심 속에서 자신을 알아주고 받아 주기를 원하는 많은 장애아들이 있습니다.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을 품는다는 것은, 나우웬이 렘브란트가 그린 눈먼 아버지의 사랑을 몸소 실천하여야 했기 때문입니다. 나우웬은 그곳 장애인을 섬기는 사역 중 장애인들의 허물에 눈먼 아버지의 사랑을 실현하려고 힘썼습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은 나의 허물에 눈멀어 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에 접목될 때 가능합니다.
2) 형제의 허물을 용서할 때 가능합니다.(벧전4:18)
그리스도로 인하여 허물을 용서 받은 성도는 나에게 허물을 범한 형제의 허물을 덮어주는 열매를 맺습니다.(골3:13)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를 체험함으로 새로운 인생, 성공적인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 오프라 윈프리 - 는 용서에 대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용서란 상대방을 위해 면죄부를 주는 것도 아니고,
결코 상대방이 한 행동을 정당화 하는 것도 아니며,
내 자신이 과거를 버리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하는 겁니다.
용서란 말은 그리스어로 '놓아버리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있죠.
상대방에 대한 분노로 자신을 어찌하지 못하고
과거에만 머물러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건
자신을 위하는 일이 아니죠.
여러분, 놓아버리세요, 그리고 용서하세요.
나 자신을 위해.....
에바브라는 그 대표적 인물입니다.
1] 에바브라는 에베소의 두란노 서원에서 성경을 강론하던 바울 사도로부터 배운 말씀을 골로새 사람들과 나누었습니다. 교회를 세우고 그곳의 교인들에게 전해주었습니다. 복음을 전해주는 일은 사랑하는 자만이 할 수 있습니다.
2] 에바브라는 바울 사도에게 "우리"요, "사랑하는 자"란 평가를 받습니다.
3] 에바브라를 바울 사도는 나아가 "함께 노예가 된 자"로 부르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과 함께 옥중까지 함께 갇힐 수 있었던 에바브라, 자신의 자유를 포기하고 바울과 함께 매인 삶을 살 수 있었던 에바브라는 사랑의 사람이었습니다.
4] 에바브라는 "신실한 일꾼"으로 불리웁니다. 사랑이신 예수님께 신실한 종이 세상에서 신실한 일꾼으로 나타나는 것은 당연합니다.
5] 에바브라는 "그리스도의 일꾼"입니다. 사랑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속하여, 사랑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인정받는 일꾼이었습니다.
6] 나아가 그는 골로새 교인들을 위한("너희를 위하여") 일꾼이었습니다. 위하는 삶은 바로 사랑입니다.
7] 그는 사도 바울이 골로새 교인들의 신앙과 삶을 도울 수 있도록 골로새 교인들의 형편을 사도와 나누었습니다. 진실로 사랑한다는 말입니다.
8] 에바브라는 사랑의 영이신성령을 따라, "성령안에서" 행한 성령의 사람이었습니다. 성령 안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일이 사랑이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골로새 교회가 사랑의 교회로 나타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예화]
우리 시대에 사랑을 아름답게 실현한 모범적 교회를 말하자면 서울 사랑의 교회를 말하곤 하였습니다.
연변 기술대학을 방문하고, 저는 그곳에서 사랑의 교회에서 기증한 '사랑관'을 보고 감동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역시 사랑의 교회는 멋있다' 탄성이 나왔습니다. 이런 일은 큰 교회라고 쉽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거든요. 참 자랑스럽고 감사했습니다.
그러나 이 사랑의 교회가 2100억을 드려서 서울 노른자위 땅에 교회 신축을 하겠다고 발표한 이후, 세상 사람들로부터 엇갈리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말합니다.
'이제 사랑의 교회는 더 이상 사랑의 교회가 아니다. '사람의 교회'일뿐이다.'
근래 기독교 신문을 보니까 사랑의 교회 오정현 목사님은 기자들과 간담회를 갖고 전체 건축비의 10%를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210억을 세상에서 고난당하는 사람들을 위해 사용하겠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고상하고 귀한 말씀입니까? 아이티 모금 운동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이 모든 것들을 감동적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해도 될만큼 돈이 많은가 보다, 부자 교회의 돈 놀음이려니 정도로 생각합니다.
사랑은 분명 큰 사랑인데 왜 그 큰 사랑을 세상은 별로 크고 가치 있게 생각하지 않는 것일까요?
방승용(용인 새순교회 담임)목사님은 이런 글을 설교신문에 쓰고 있습니다.
"정말 건축이 필요하다면 땅값이 아주 싼 외곽으로 나아가 커다란 깡통 같은 교회를 짓지! 지구촌교회처럼 짓다 만 부도난 학교를 인수하지! 부도난 학교 건물이 없으면 값 싼 땅에 대형 깡통 교회를 짓고 그 옆에는 무료 병원과 무료 쉼터를, 그 옆에는 그동안 제자 훈련으로 다져진 교인들이 봉사할 수 있는 여건들을 만들어 주기나 하지."
참 견해도 다양합니다.
'사랑의 교회'라고 이름을 짓고, 세계적인 성장을 이루는 것도 귀한 일인데 '사랑'을 실천하는 교회로 세상에 나타나는 방법 또한 어려운 일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이런 복잡한 세상에서 골로새 교회가 사랑의 교회로 세상에 나타났으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께 감사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3. 소망 때문입니다.
(골 1:5)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쌓아 둔 소망을 인함이니 곧 너희가 전에 복음 진리의 말씀을 들은 것이라
골로새 교인들은 성도를 위하여 하나님께서 하늘에 쌓아둔 보물을 소중히 간직하는 소망을 가졌습니다.
복음을 믿는 믿음입니다.
골로새 교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믿었습니다.
오직 에바브라를 통해 복음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온전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보았어도 믿지 않는데, 예수님께 직접 듣고도 믿지 않은 사람들이 많은데 보지도 아니하고 듣지도 아니하고서도 예수님을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로, 그리스도로 "복음"을 믿었습니다.
에바브로를 통한 복음만으로도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었습니다.
이 복음이 인종을 넘고,
지역을 넘고
시대를 넘어
골로새 교인들에게 이르렀고
저들의 삶뿐만 아니라
영혼 깊은 곳까지 이르러
구원을 주었습니다.
영접한 사람마다 "열매를 맺어 자라는" 것입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 믿음에서 믿음으로 자라게 하여, 영접한 세계에서 지속적이고 끊임없는 역동적 활동을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힘은 놀랍습니다.
이 귀한 복음을 골로새 교회 성도들은 에바브라를 통해 받은 5-6절에 나오는 말씀처럼
복음을
"듣고",
"깨닫고",
"배우고"
진리의 말씀을 들은 날 부터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은 쌓여갔습니다.
성도들이 이 세상에서 복음을 따라 사랑하는 삶을 살아갈 때, 하나님으로부터 그날에 영광스러운 보상을 받게 될 소망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복음 진리의 말씀"안에 "쌓아둔"(보존한) 영광의 소망을 그 날에 보물처럼 풀어헤치실 것입니다.
'진리' 곧 '복음'은 골로새 성도들을 하늘에 쌓아 둔 소망 가운데 인도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복음은 기쁜 소식이요, 영생의 말씀이요, 소망입니다.
오늘 날 우리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서 진리의 말씀을 듣고, 성도를 위하여 하나님께서 하늘에 쌓아둔 소망을 보물처럼 소중히 간직하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믿음은 '진리' 곧 '복음'을 들음에서,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 곧 복음에서 비롯됩니다(롬 10:17)
[예화: 아나마밈의 노래(아우슈비치 노래)]
2차 세계대전 이후 유대인들은 유월절이 되면 부르는 노래가 있습니다. 아니마밈의 노래, 이른바 아우슈비치 노래입니다.
노래 제목, '아니마밈'은 히브리어로 '나는 믿는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노래는 본래 혹독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작사, 작곡된 노래로 알려져 있습니다.
"나는 믿는다. 나의 메시야가 나를 돕기 위해서 반드시 나를 찾아오리라는 사실을..."
그런데 그들은 자기의 동료들이 비참하게 가스실로 불려나가는 극한상황을 체험하면서 다음 절을 슬프게 불렀습니다.
"그런데 때때로 그 메시야는 너무 늦게 오신다."
그러나 그 수용소 안에 있던 젊은 외과 의사 출신의 한 유대인은 이 노래를 부르기를 거절했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마음에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시 139편을 믿었습니다. 시 139편에 담겨있는 다윗의 고백을 그는 믿었습니다.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음부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나이다. 내가 새벽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할지라도 곧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그는 자신의 삶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 있기에 절대로 죽지 않는다는 확신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그는 수용소에 갇혀 죽을 수밖에 없고 언제 가스실로 데려갈지 모르는 상황 가운데서도 자신을 추스르고 추해지기 쉬운 자신의 모습을 다듬고 또 다듬었습니다.
다른 동료들은 극한 상황을 받아들이고 체념하고 깊이 잠들어 버린 한 밤 중에도 그는 홀로 일어났습니다.
어느 날 우연히 줍게 된 유리 파편 조각 하나를 날카롭게 갈아서 피가 날 정도로 면도를 했습니다.
다음 날 아침에
그 다음 날 아침에도,
죽음의 사자처럼 나치 군병들이 그들의 방을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나치 군병들은 수염하나 없는 창백한 그 청년의 모습을 보고는 차마 그를 죽음의 가스실로 데려가지 못하였습니다.
매번 다른 사람을 데리고 갔습니다. 깨끗한 청년의 모습에서 삶의 강렬한 의지를 보았고, 죽이기에는 너무 아까웠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전쟁이 끝났습니다.
그는 적은 수의 생존자들 중에 하나가 되어 풀려나게 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을 향해 활짝 열려있는 수용소의 문을 빠져나오면서 아니마밈의 노래를 이렇게 고쳐 불렀다.
"나는 믿는다. 나의 메시야가 나를 돕기 위해 반드시 나를 찾아오리라는 사실을,
그런데 사람들은 너무 서두른다. 사람들은 너무 서둘러 믿음을 포기한다."
그 후 그의 일기가 세상에 공개되었는데 그 일기 속에는 이런 글귀가 쓰여 있었다.
"고통 속에서 죽음을 택하는 것은 가장 쉽고 가장 나태한 방법이다. 죽음은 이렇게 서두를 것이 못된다. 죽음 앞에서 살아보려는 부활의 의지, 이것이 새로운 창조이다."
전쟁이 끝나 그는 스웨덴으로 가서 병원을 개업했습니다. 그리고 해마다 유월절이 되면 친척들을 불러 놓고 이 가정만은 전혀 다른 아니마밈의 영가를 불렀다.
우리의 기도가 응답되지 않고 우리의 삶이 막혀 있을 때 사람들은 하나님을 원망과 불평을 합니다. 소망을 포기합니다. 그리고 회의하면서 하나님은 내 삶을 간섭하지 않으시거나 너무 더디 오신다고 결론을 내려 버립니다. 그러나 이러한 절망의 한복판에서도 우리는 유대인 청년처럼 이렇게 노래할 수 있어야 한다.
"아닙니다. 그가 늦게 오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너무 서두르고 있을 따름입니다."
소망은 부끄럽지 않습니다.
[잠언 14:32]
악인은 그 환난에 엎드러져도 의인은 그 죽음에도 소망이 있느니라
[로마서 5:5]
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됨이니
[로마서 8:24]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마무리하는 말]
골로새 교회에
믿음이 있습니다.
사랑이 있습니다.
소망이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편지를 씁니다.
사도가 왜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고 있습니까?
성도들이 믿음과 사랑과 소망의 열매를 풍성히 맺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화] '삼미그룹 전 회장 김현철 씨, 아이티 선교사로 헌신'
“이른 나이에 회장이 되고 삼미가 특수강으로 세계 1위를 넘볼 때만 해도 신바람이 났다”“그러나 95년 노태우 대통령 비자금 사건이 터져 언론에 오르내리면서, 이렇게까지 기업을 해야 하느냐는 생각에 (기업을) 떠나기로 했다”
그가 회장직에서 물러난 뒤 2년 후 그룹은 부도가 났다.
가족들에게도 시련은 닥쳤다. 맏딸은 거식증 치료를 받고 있고 사위는 백혈병 진단을 받았습니다.
장남은 몇 년 전 뇌에 바이러스가 들어가 말도 못했습니다.
김 씨 자신도 지난 2002년 우연히 대장검사를 했다가 직장암 판정을 받았습니다. 얼마 동안 항암제 투약기구를 몸에 달고 다니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그가 하나님을 만나 선교사의 삶을 살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는 “수술하러 가다 ‘암센터’라는 간판을 보니까 눈물이 핑 돌더랍니다”
“수술은 잘 됐습니다. 그런데 일주일 뒤 수술부위가 터져버렸습니다. 그때 하나님께 매달렸습니다”
'살려만 주신다면 남은 인생 당신을 위해 살겠습니다’ 이렇게 맹세했습니다.
뇌에 바이러스가 들어간 아들에게도 하나님의 은혜가 임했다.“아들이 근본적으로 변했습니다. 과거 잘못을 회개하고 진정한 신앙인이 됐습니다. ”
김 씨는 병에서 회복된 뒤 선교사 교육센터에 들어갔습니다. 당시 집이 있었던 도미니카로 돌아가려는데 미국 캘리포니아 얼바인의 한 교회에서 이왕 갈 거면 선교사 파송을 받으라고 권해 선교사가 됐습니다.
그는 삼미그룹 회장 때와 지금 어느 쪽이 더 행복한가를 묻는 질문에 “15년 회장 하면서 행복했던 건 우리가 세계 1위를 할 수 있다는 꿈을 꿨던 잠시뿐이었던 것 같습니다. 나머진 스트레스와 고민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런데 선교사가 되고 나니 반대입니다. 모든 걸 내려놓으니 늘 행복합니다.
"열매맺고 성장"하는 축복이 함께 함으로 하나님의 풍성한 축복을 받으시기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경본문]
(골 1:3)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감사하노라
(골 1:4)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너희의 믿음과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을 들음이요
(골 1:5)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쌓아 둔 소망을 인함이니 곧 너희가 전에 복음 진리의 말씀을 들은 것이라
(골 1:6) 이 복음이 이미 너희에게 이르매 너희가 듣고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 너희 중에서와 같이 또한 온 천하에서도 열매를 맺어 자라는도다
(골 1:7) 이와 같이 우리와 함께 종 된 사랑하는 에바브라에게 너희가 배웠나니 그는 너희를 위하여 그리스도의 신실한 일꾼이요
(골 1:8) 성령 안에서 너희 사랑을 우리에게 고한 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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