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17 March 2015

골로새1:9-12 교회를 위한 중보 기도

  [들어가는 말]

    "누군가 날 위하여, 누군가 기도하네."

    우리는 이런 복음송을 들을 때, 가슴에 진한 감동이 밀려 옵니다.
그곳이 내 옆이든 태평양 바다 건너편이든,
그 때가 몇 년 전의 일이든 지금이든
나를 위한 누군가의 기도는 너무 고맙고 가슴을 뭉클하게 합니다.

    이렇게 보면, 인간사에서 누군가를 위해 기도한다는 건 참으로 고귀한 일이란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오늘 설교 본문에는 바울 사도의 이런 감동 어린 기도가 소개되어 있습니다.

    "우리도 듣던 날부터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구하노니"

비록 몸은 감옥에 갇혀 있어도 골로새 교회를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골로새 교회가 비록 자신이 개척하여 새웠거나 그곳에서 사역한 교회는 아닐지라도
그 골로새 교회를 위해 '기도하기를 쉬지 아니'합니다.
바울 사도다운 마음과 기도입니다.

    우리는 오늘 그를 통해 기록하신 골1:9-12 말씀을 듣습니다.



    골로새 교회를 위한 중보 기도 내용이 무었입니까?

1. 하나님의 뜻(꿈)을 아는 지혜입니다.

   (골 1:9)

   이로써 우리도 듣던 날부터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구하노니 너희로 하여금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

    하나님의 뜻(꿈)을 아는 지혜와 총명이 교회에 가득하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1] 지혜와 총명이 좋은 것이지만 찾자고 나서면 세상에 넘칩니다.

    좋은 책들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쏟아져 나오고,
인터넷만 검색해도 원하는 각양지식이 홍수처럼 넘쳐옵니다.
어린 아이들까지도 정말 아는 것이 많습니다.
알지 말아도 될 것까지 잘도 알아서 깜짝 놀라게 하는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2] 그러나 정작 교회에 필요한 지혜와 총명을 만나기는 어렵습니다.

   요즈음 교회를 다니는 분들은 아는 것이 참 많습니다.

   지난 주일에 제가 임시 당회장으로 있는 한 교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교회 목회자가 궐석되고 난 후, 귀한 청빙위원들을 열 사람이나 선정했습니다.
교인들을 대표할 만한 그런 지혜롭고 총명한 분들이었습니다.
이 귀한 분들이 지난 두 달 동안 스무 번 가까이 모여서 후임 목회자 한 분을 선정합니다.
청빙 광고를 신문에 내었는데 40여분의 귀한 목사님들이 신청하였습니다.
연일 머리를 맞대고 지혜와 총명을 모아서 선정작업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한 분을 공동의회에 올렸습니다.
그러나 2/3의 동의를 얻는데 실패하였습니다.
그 원인이야 여러가지로 말할 수 있습니다.
그 중 한 가지 원인은 놀랍게도 그 목사님에 대해서 너무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목사님을 초청하여 설교를 들었습니다. 교재를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목사님은 정말 솔직담백하시고 귀한 분이다 동의하였습니다.
그런데 뚜껑을 열어보니 아니었습니다.
그 중 한 가지 원인은 놀랍게도 그 목사님에 대해서 너무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인터넷을 통해 그분의 이면적 약한 부분까지 다 써핑하다보니 담임 목사로 모시고 싶은 생각이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저는 모든 모임을 마치고 청빙위원들을 모아놓고 한 가지 부탁을 드렸습니다.

    너무 마음을 높은 데 두지 말고 겸손할 것을 부탁드렸습니다.
목회자 청빙은 우리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그 분의 종을 보내주시는 일입니다.
교회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맞는 목회자를 보내주시도록 겸비한 자리에서 기도할 일입니다.

지혜와 총명도 좋지만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리 교회가 잘되는 것은 이사람 저사람 넘치는 지혜와 지식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지혜와 지식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워져 있기 때문입니다.

   (골 1:9)

   이로써 우리도 듣던 날부터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구하노니 너희로 하여금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




   교회를 위한 중보 기도 내용이 무었입니까?

   2. 하나님의 뜻(꿈)을 좇아가는 것입니다.

   (골 1:11)

   그 영광의 힘을 좇아 모든 능력으로 능하게 하시며 기쁨으로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에 이르게 하시고

    어떻게 하나님의 뜻(꿈)을 좇아가는 것입니까?

    1] '그 영광의 힘을 좇아'가야 합니다.

    하나님 '영광의 힘'은 인간의 지성으로는 더듬어 올라갈 수 없는 초월적 영역에서 오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힘으로 할 수 없으나, 사람이 그 능으로 할 수 없으나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 세상에는 가득합니다.

    저는 10여년 전 캐나다 온타리오주의 알공퀸 공원 가을 단풍을 보러 갔습니다. 전망대 위에 서서 저는 한없는 감동 가운데 서 있었습니다.
끝없이 펼쳐진 단풍 숲을 내려다 보며 하나님의영광의 힘을 느꼈습니다.
10여년이 지난 오늘 날까지도 저의 머릿속에는 그 때 본 광경이 남아 있습니다.
    온 인류가 나선들 사람의 힘으로 그 놀라운 모습을 재현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캐나다란 나라 속에만 해도 그런 장관을 수없이 재현해 놓았거든요.

    인간이 살 길은 하나님 영광의 힘을 좇아'가는데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도의 기도는 이 하나님의 권능을 골로새 교인들이 체험할 수 있게 해주십사 하는 것입니다.


    2] 모든 능력으로 능하게 하시며

    골로새 성도들이 그들을 향해 발휘되는 하나님으로부터 임하는 영광의 능력을 지속적으로 좇아 승리하는 삶을 살도록 기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성도들을 그분의 '모든 능력으로 능하게 하'실 때, 우리는
하나님의 꿈을 따라갈 수 있습니다.



   3] 기쁨으로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으로

    '견딤'에 해당하는 말은 정해진 목표 지점을 향해 고난을 무릅쓰며 정진하는 것을 뜻합니다. 경주자가 총력을 기울여 달려가는 것입니다(히 12:1). 유혹과 저항을 물리치고 한 곳 목표만을 향하여 묵묵히 달려가는 것입니다. 또 '오래참음'은 무거운 짐에 눌리거나 실패를 당하여도 좌절하지 않고 밀고 나가는 불굴의 투지(鬪志)를 가리킵니다.

   '따라서, 견딤'과 '오래 참음'은 즐거운 일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을 기쁨으로 감당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합니다.
무덤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일으키신 부활의 능력입니다.
환난 중에서도 기뻐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하나님의 뜻(꿈)에 담긴 하나님의 영광을 알 때, '견딤'과 '오래 참음'은 즐거운 일일 수 있습니다. 그분의 부활 권능을 덧입을 때, 기쁨으로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가능으로 바뀝니다.

 

   교회를 위한 중보 기도 내용이 무었입니까?

   3. 하나님의 뜻(꿈)을 합당히 행하는 교회입니다.
   (골 1:10)

   주께 합당히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시고

   주님께 합당히 행한다는 말이 무엇입니까?

   주께 합당히 행한다는 것은 주님과 주파수가 맞다는 말씀입니다.
코드가 맞는다는 말이지요.

    하나님의 뜻(꿈)을 합당히 행할 때, 아름다운 일이 일어납니다.

    1] 범사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하나님의 뜻(꿈)을 합당히 행할 때, 범사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 일어납니다.



    또한, 하나님의 뜻(꿈)을 합당히 행하게 될 때 일어나는 현상이 있습니다.

   2] 선한 일에 열매를 맺습니다.



    하나님의 뜻(꿈)을 합당히 행하게 될 때 일어나는 현상이 있습니다.
선한 일에 열매를 맺습니다.
'주께 합당하게 행하고 '주를 기쁘시게 하는 성도의 삶이 계속해서 선한 일에 열매를 맺는 것은 아름답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뜻(꿈)을 합당히 행하게 될 때 일어나는 현상이 있습니다.

   3]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랍니다.





    [마무리하는 말]

         우리가 어떤 뜻(꿈)을 가지고 살아가는가는 참 중요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어떤 뜻(꿈)을 가지고 살아가는가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습니다.
인생의 중요한 주제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꿈)이 무엇이냐 입니다.

    [예화]

   양팔과 양다리 없이 두 개의 발가락만 있는 호주 청년 닉 부이치치(28세)란 청년이 있습니다.

   '사지 없는 인생(Life without Limbs)!'

   보통 사람들은 쉽게 넘어지지 않습니다. 넘어져도 일어나면 그만입니다.
그러나 부이치치는 쉽게 넘어집니다. 그리고 넘어진 상태에서 다시 일어나려면 수십 번의 버둥거려야 하고 몸부림을 쳐야 합니다.

   이런 극한적 인생에게 무슨 꿈이 있었겠습니까?
꿈이 있다 한들 그 꿈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는 어린 시절 자살을 결심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목회자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감사하게도 그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였습니다.
그 후에도 그는 넘어지곤 하였지만 그는 반드시 일어나곤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단 한순간도 그를 포기하시기 않으심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장애와 이로 인한 절망이 그를 사로잡아 올 때도 그를 향한 하나님의 뜻은 또 다른 희망의 시작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는 깨달았습니다.
장애와 이로 인한 절망이란 것도 하나님의 뜻을 알고 나면 또 다른 희망의 시작일 뿐임을!

   "양팔과 양다리가 없지만 나는 행복합니다."

   그는 19살 때 한 청소년 집회에서 간증한 이래 미국과 아시아 아프리카 등 순회 간증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부이치치는 절망하는 세상 사람들을 향해 역설합니다.

   "절대 포기하지 마십시오."

  '사지 없는 인생(Life without Limbs)'

   그는 몸이 망가지고 마음이 상한 자들이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위로와 치료를 받기 바라고 있습니다. 그들을 절망과 죽음으로 몰아가는 사탄의 강력한 요새가 무너지기를 소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뜻(꿈)을 가지고 살아가는가는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어떤 뜻(꿈)을 가지고 살아가는가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습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꿈)이 무엇이냐 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
하나님의 뜻을 행할 때,
교회는 하나님의 교회로서의 사명을 다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우리 교회가 지난 12년 동안 축복 가운데 존재한 까닭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 우편에서 중보기도를 감당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때문입니다.
오직 성령께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 간구하신 은혜입니다.
그리고 누군가 말할 수 없이 큰 감사를 가지고 기도한 중보기도 때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중보 기도 가운데서 우리는 '빛 가운데서 하나님의 기업을 얻'었습니다. 곧 교회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세상에서 구원하셔서 성도를 삼아주신 것이 감사한데
하나님의 기업이신 교회를 맡겨 주시고
하나님의 기업을 맡겨주신 것만도 감사한데
그 기업을 감당할 능력까지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기업이신 우리 교회를 위해 기도하는 일에 열심을 내시기를 바랍니다.
다른 교회를 위해 기도하는 일에 열심을 내시기를 바랍니다.


    "내 주의 나라와 주 계신 성전과 피 흘려 사신 교회를 늘 사랑합니다.
이 교회 위하여 눈물과 기도로 내 생명 다하기까지 늘 봉사합니다."(248장)



   [오늘 설교한 성경 본문]

(골 1:9) 이로써 우리도 듣던 날부터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구하노니 너희로 하여금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
(골 1:10) 주께 합당히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시고
(골 1:11) 그 영광의 힘을 좇아 모든 능력으로 능하게 하시며 기쁨으로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에 이르게 하시고
(골 1:12) 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아버지께 감사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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