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13 March 2015

행13:42-52 은혜 가운데 있으라

행13:42-52


42 저희가 나갈새 사람들이 청하되 다음 안식일에도 이 말씀을 하라 하더라 43 폐회한 후에 유대인과 유대교에 입교한 경건한 사람들이 많이 바울과 바나바를 좇으니 두 사도가 더불어 말하고 항상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으라 권하니라 44 그 다음 안식일에는 온 성이 거의 다 하나님 말씀을 듣고자 하여 모이니 45 유대인들이 그 무리를 보고 시기가 가득하여 바울의 말한 것을 변박하고 비방하거늘 46 바울과 바나바가 담대히 말하여 가로되 `하나님의 말씀을 마땅히 먼저 너희에게 전할 것이로되 너희가 버리고 영생 얻음에 합당치 않은 자로 자처하기로 우리가 이방인에게로 향하노라 47 주께서 이같이 우리를 명하시되 내가 너를 이방의 빛을 삼아 너로 땅 끝까지 구원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니 48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49 주의 말씀이 그 지방에 두루 퍼지니라 50 이에 유대인들이 경건한 귀부인들과 그 성내 유력자들을 선동하여 바울과 바나바를 핍박케 하여 그 지경에서 쫓아내니 51 두 사람이 저희를 향하여 발에 티끌을 떨어 버리고 이고니온으로 가거늘 52 제자들은 기쁨과 성령이 충만하니라


머리말

지난 주일 함께 나눈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복음을 들으면서, 우리 말씀을 듣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우리의 구주로 세우셨구나!
이 구원의 말씀을 우리에게 보내셨구나!
사람들이 그를 죽여달라 하여 매장했으나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저를 살리셨구나!
이 사람을 힘입어 죄사함을 얻고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구나!

지금까지 그들이 믿어온 유대교는 인간이 해야 할 일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수없이 많은 계율로 그들을 압박하였습니다. 죽도록 몸부림쳐도 다 지켜드릴 수 없는 율법을 하나님은 요구하고 계신다고 알고 있었습니다. 그 엄격하고 많은 율법들을 행함으로 의롭게 되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바울과 바나바가 전한 복음을 들어보니 하나님께서 인간을 위해 행하신 일들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만족시키기 전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얼마나 놀라운 일들을 행하셨는가를 전해준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 드러내신 은혜와 사랑이 풍성하신 하나님!  비시디아의 안디옥 사람들에게 이 복음은 참으로 충격적이었습니다. 이렇게 좋으신 하나님을 그들은 이제까지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은혜로우신 하나님 구원의 말씀을 누구도 지금까지 전해주지 않았고, 듣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이 놀라운 복음을 전해 준 바울과 바나바 사도에게 다음 안식일에도 이 말씀을 하라고 청하는 것입니다.  안디옥에 내린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이 단비처럼 그들의 심령을 촉촉히 적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그 은혜의 현장을 새롭게 조명하면서 예수 그리스도께 드러내신 은혜와 사랑이 풍성하신 하나님!께서 주신 '항상 은혜 가운데 있으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알기 원합니다.

1. 항상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으라!

'하나님의 은혜'가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시지요. 하나님께서 세상을 향한 사랑과 은혜는 예수 그리스도시지요. 이처럼 사랑하셔서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안디옥에 임하였습니다. '유대인과 유대교에 입교한 경건한 사람들'은 그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바울의 설교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풍성히 내려 주셨습니다. 유대인들로부터 매우 고무적인 반응을 얻었습니다. 유대교인들 중에서 기독교로의 개종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이와같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들에게 바울은 부탁합니다.  '항상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으라!'  
은혜받은 성도가 들어야 할 하나님의 음성이 있습니다. 그것은 지금처럼 항상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으라는 것입니다.  노아가 하나님의 눈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감복하여 평생을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방주를 지은 것처럼 항상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으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항상 있을 수 있습니까?

42 저희가 나갈새 사람들이 청하되 다음 안식일에도 이 말씀을 하라 하더라

1] 이! 말씀 가운데 거하라!는 것입니다.

42 저희가 나갈새 사람들이 청하되 다음 안식일에도 이 말씀을 하라!

이 말씀이 큰 은혜가 되었다면, 하나님께서 큰 은혜이신 예수님을 깨닫게 하신 것임에 틀림 없습니다. 그 큰 은혜이신 예수님은 귀로 즐기는 데서만으로 끝나면 안됩니다. 그분 안에서, 그분의 말씀 안에서 살라는 것입니다. 말씀이신 그분 안에, 그 말씀 안에 거하면 은혜 안에 있다는 증거입니다. 다음 주일에도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전해 주십시오! 이런 갈망이 우리를 은혜 가운데 거하게 합니다. 우리는 다음 안식일에도 이 말씀 예수 그리스도가 만나기 원합니다. 이런 영적 갈망이 그들을 하나님의 은혜 아래 항상 있을 수 있게 합니다. 그들은

설교자가 전해주는 말씀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습니다. 이제 그들은 은혜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살면 됩니다.

누군가(곽선희목사) 말했습니다. 설교를 들으면서 돌을 골라내는 사람이 있고 금을 골라내는 사람이 있다고 말입니다. 설교자를 통해 주시는 말씀 안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납니다. 이것이 설교를 들으면서 금을 골라내는 것입니다.
지금도 말씀을 들으면서 두 사도 바울과 바나바를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실 수 있는 분은 복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다는 아닙니다. 금을 골라냈으면, 그 금으로 삶을 윤택하게 해야 합니다.

항상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으라!

2] 이방 종교의 방종 가운데서 살지 말고 하나님의 은혜 보호, 날개, 법도 가운데 있으라는 말씀입니다. 당시 이방 세계를 연구해 본 사람들은 이방 신을 섬기는 사람들의 방종함에 혀를 내두르고 있습니다. 헬라 문화의 성적타락은 극심했습니다. 종교 행사는 성적부패의 온상이었습니다. 그런 타락한 방종 문화 속에서 피조물의 고통은 극심했습니다.

오늘날도 이런 부패는 더 극성을 보이고 있습니다 1970년 노동절 캔서스 피츠버그 인근 평원 록(Lock)음악의 축제장을 한 양식있는 인사(전 캔사스 주지사요, 미대통령 후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술, 마약, 성적방종은 축제가 아니라 "지옥의 향연"이라고 말입니다.
방종(放縱):  - 땅에 속하여 있는 자의 특징입니다. 하나님께 속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방종(放縱)은 아버지를 떠난 자의 특징입니다. [ 탕자]를 보십시오. 하나님께 속하기를 원치 않습니다. 구속이라는 생각, 부자유라는 생각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건강도, 물질도, 시간도 내 마음대로 쓰기를 원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 영혼을 팔아 그 수익금으로 편히 산다.' (L.P.스미스)는 말이 있습니다. 이 시대의 정곡을 찌른 말입니다.
구 한말의 젊은이들은 나라를 빼앗긴 울분으로 애국을 빙자한 방종 속에 빠져 있었습니다.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 ' 노래하면서 마을마다 젊은이들로 술집이 넘쳐났습니다. 육신의 정욕을 채우면서 이 풍진 세상 탓이라니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때, 도산 안창호 선생님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 잘못한 죄값!'이라 했습니다. '젊음을 탕진하는 것이 죄다!'  했습니다. 그들이에게 필요한 것은 방종한 삶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 아래 사는 것이었습니다.
  항상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으라!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사는 민족은 소망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사는 가족은 소망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사는 사람은 소망이 있습니다

예화]
 Seat Belt를 안해서 법정에 다녀온지가 몇 년이나 됐다고 Seat Belt를 할 때만 되면, 아이가 살살 꾀를 피운다. Seat Belt를 하니까 배가 아프다느니, 한 줄만 하면 안되느냐는 둥의 핑계를 대면서 말이다. 몇 주 전에는 큰 마음을 먹고 위로의 허벅지를 힘껏 꼬집었다.
"자동차 사고로 다치게 되면, 얼마나 아픈지 아느냐?"
위로는 무지하게 아픈 허벅지의 고통을 안고 눈물을 글썽거리면서 대답한다.
"사고 나면, 이보다 더 아픈 거요?"

얼마 전에 예배를 드린 후, 공원에 갔다. 위로가 아이스크림을 먹는 아이들을 보더니 어쩔 줄을 모른다. 먹고는 싶고, 주일에는 사먹는 일을 하지 않기로 한 약속이 있고. 나는 다시 한 번 꼬집어 주었다. 그리고 그 다음날은 위로를 가게에 데리고 가서 아이스크림을 사주었다. 내 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 방종하게 살다가 선악과를 따먹고 에덴을 잃어버린 아담과 같이 되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항상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으라! 는 말씀은
3] 율법 가운데서 살지 말고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으라는 말씀입니다.

(1) 사람이 율법으로는 결코 의롭게 될 수 없습니다
(2) 예수를 통해서만 의롭게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울 사도가 전한 복음의 요지입니다.
예수님은 산상수훈에서 오리를 가자는 사람들에게 십리를 가 주어라는 의미가 바로 그것입니다.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리를 동행하고
    - 마5:41 -
로미인들이 법적 근거를 대고 오리를 강요할 때, 너무나 자존심이 상하고, 힘든 일이지만, 온유함으로 십리를 져주는 것은 결코 지는 것이 아닙니다.  내 욕심은 좌절되는 것 같지만, 하나님의 꿈(목적)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율법을 뛰어넘어 은혜 아래 사는 것입니다.

예화]
지난 Fathers Day에 우리 교회가 소풍을 갔습니다. 위로가 돌아와서 하는 말이 자기 생애에 제일 재미 있는 날이었다고 했습니다.  사실 다른 아이들이 낚시를 하고 있는 동안 위로는 전자오락게임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전자오락게임을 더 하고 싶어했습니다. 이 좋은 자연 속에까지 와서  전자오락게임을 하는 것이 좋지 않아 보여서 낚시 하는 곳으로 데려 갔습니다. 뭐가 그렇게 재미있었느냐고 했더니 물놀이도 재미있었는데 무엇보다 낚시가 재미 있었다고 했습니다. 내 욕심은 좌절되는 것 같지만, 하나님의 꿈(목적)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주어진 환경 속에서 마음껏 누릴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정말 기뻐하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의 고백처럼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 아래 살아야 합니다. 술취하지 말고 성령 충만을 받읍시다. 말씀에 순종함으로,  하나님과 동행함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 아래 살아야 합니다.

2. 영생을 얻음에 합당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 다음 안식일에는 온 성이 거의 다 하나님 말씀을 듣고자 하여 모였습니다.(44절)

그러나 배타적으로 우월감에 빠진 유대인들이 이를 정면으로 거부하고 나섰습니다. 은혜 가운데서 살지 못하는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45 유대인들이 그 무리를 보고 시기가 가득하여 바울의 말한 것을 변박하고 비방하거늘

 무엇 때문에 바울의 말한 것을 변박하고 비방합니까? 그 무리를 보고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헤아려 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헤아려 본 것이 아닙니다. 선민의식(選民意識)으로 인해 우쭐해 있던 그들로부터 군중들이 떠나간다는 그 한 가지 사실이 시기를 불러 일으켰던 것입니다. 유대인들의 시기와 비방은 새로이 형성되는 기독교 공동체가 자기 공동체를 위협하고 있다는 위기감에서 나온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바울과 바나바 일행의 설교가 유대교 회당 중심의 공동체에 위협을 주고 았다고 판단되자 그들을 추방하기 위해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영향력있는 인물들을 이용했습니다. 여기서 언급된 귀부인들은 유대교로 개종하지는 않았으나 회당 예배에 참석하는 이방 여인들로서 사회적 지위가 높거나 영향력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 중에는 지난 주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소식을 듣고 나서 '회개하고 죄사함을 받으라!'는 음성을 깊이 들은 사람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들의 마음에는 시기와 비방의 악한 열매가 맺히자 그들까지 선동하여 악한 영향력 속에 몰아넣고 있는 것입니다. 영생 얻음에 합당치 않은 자로 자처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은혜 아래 거하기를 거부하는 그들을 떠납니다.

46 바울과 바나바가 담대히 말하여 가로되 `하나님의 말씀을 마땅히 먼저 너희에게 전할 것이로되 너희가 버리고 영생 얻음에 합당치 않은 자로 자처하기로 우리가 이방인에게로 향하노라 47 주께서 이같이 우리를 명하시되 내가 너를 이방의 빛을 삼아 너로 땅 끝까지 구원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니

그러나 여기 그 반대적인 반응이 있습니다. 버림받고 소외된 이방인들이 구원의 길로 인도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 자신도 유대인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했습니다. 자신을 반(反) 유대적인 교리를 전파하는 자로 오해하지 않기를 바랬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이 복음을 무가치한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런데  이방인들이 바울과 바나바의 설교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였습니다.

48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49 주의 말씀이 그 지방에 두루 퍼지니라

자신들에게 구원의 길이 열린 것을 깨닫고 기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합니다. 예수님을 믿습니다. 주의 말씀을 두루 전합니다. 영생을 얻음에 합당한 자들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맺음말

우리는 말씀을 마치면서 제자(성도)들 에게서 은혜 가운데 거하는 열매를 만나게 됩니다.

'제자들은 기쁨과 성령이 충만하니라'

여기서 언급된 제자들은 바울과 바나바의 전도로 기독교인이 된 비시디아 안디옥의 거주자들을 가리킵니다. 누가는 그들에게 '기쁨과 성령이 충만'했다는 말로서 그 지역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도들과 동일한 성령을 받았음을 보여줍니다. 동시에(2:4;4:31;10:44) 기독교 공동체가 융성해 갔음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서 살고 계십니까? 그곳에 기쁨과 성령이 충만합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그분의 은혜 아래 사는 사람은 시절을 좇아 기쁨과 성령이 충만한 과실을 맺습니다.

영생을 얻음에 합당한 존재입니까? 그 은혜가 우리 서머나 교회와 그 권속 위에 넘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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