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는 말]
어떤 사람이 이렇게 말한다면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제가 형제들과 불화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저의 부모님께는 효도를 합니다."
그럴 수 있겠다 싶지만, 모순된 점이 있습니다.
이보다는
"우리는 형제간에 불화합니다. 그러므로 저는 불효자입니다."
이런 말이 훨씬 진솔해 보이지 않습니까?
부모님께 가장 큰 효도는 형제간에 우애하면서, 형제들로 더불어 부모님을 잘 섬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몸된 교회의 지체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성도들의 공동체 생활인 교회 생활에 성공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 형제 사랑은 진실한 믿음으로 인정을 받을 것입니다.
성공적 교회 생활은 주 믿는 형제들 사랑의 사귐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천국의 교제 같으니 참 좋은 친교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믿음으로 구원받은 로마 교인들에게 교회 생활을 성공적으로 잘하도록 주시는 말씀입니다.
우리 교회를 이곳 토론토에 세우시고 우리를 지체로 부르신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형제 사랑을 회복하실 수 있기를 기도드립니다.
1. 모든 지상 교회 내부에는 문제가 있습니다.
당시 고대 사회에는 우상에게 바친 제물이 시중에 많이 유통되고 있었습니다. 그 고기는 싼 값에 유통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상에게 바친 제물인 줄 알면서도 먹는 자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상에게 바친 제물에 먹으면 그 바쳐진 우상에게 참여한다는 의미를 부여하고 있었기에 우상에게 바친 제물을 어떻게 먹느냐고 우상에게 바친 고기를 먹느니 차라리 채소만 먹겠다 하는 자도 있었습니다.
이를 바울 사도는
모든 것을 먹을 만한 믿음이 있는자(먹는 일에 자유함을 누린 사람)와
믿음이 연약하여 채소만 먹는 자로 구별하고 있습니다.
2절]
어떤 사람은 모든 것을 먹을 만한 믿음이 있고
믿음이 연약한 자는 채소만 먹느니라
그런데 이 두 부류의 사람들이 교회 안에서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우상에게 바친 제물을 먹은 사람은 먹지 않은 사람을 믿음이 없다고 업신여깁니다.
먹기를 거절한 사람은 먹으면 어떠냐고 먹은 사람을 어떻게 먹을 수 있느냐고 비판합니다.
모든 것을 먹는 자는 믿음이 연약한 자를 볼 때, [업신여김]이 생깁니다.
믿음이 연약한 사람은 함부로 먹는 사람을 볼 때, [비판]합니다.
이렇게 하여 두 부류 지체 사이에 갈등이 생긴 것입니다.
[업신여김]과 [비판]이란 /저질적/ 무기를 들고 싸우는 형국입니다.
가진 자는 갖지 못한 자를 향해 [업신여김]이란 화살을 날립니다.
아는 자가 알지 못한 자를 향해 [업신여김]이란 화살을 날립니다.
힘센 자는 연약한 자를 향해 [업신여김]이란 화살을 날립니다.
갖지 못한 자는 가진 자를 향해 [비판]이란 화살을 날립니다.
알지 못한 자는 아는 자가 향해 [비판]이란 화살을 날립니다.
연약한 자는 힘센 자를 향해 [비판]이란 화살을 날립니다.
[업신여김]과 [비판]이란 /저질적/ 무기가 난무함을 인하여 지체들이 상하는 것입니다.
[적용]
나는 어떤 무기를 장착하고 있습니까?
그 무기로 주님의 소중한 지체를 상하지 않았습니까?
잠시 /회개하는 시간/을 갖기 원합니다.
"업신여기지 말라.
비판하지 말라!"
[3절]
먹는 자는 먹지 않는 자를 업신여기지 말고 먹지 않는 자는 먹는 자를 비판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이 그를 받으셨음이라
"업신여기지 말고/ 비판하지 말라!"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2. 성공적 교회생활은 '받아들임'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받으셨음!"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받으셨습니다.
"하나님이 그를 받으셨음이라."
하나님의 하인은 하나님께서 받아들이십니다.
집을 나간 탕자를 받아들인 아버지처럼 하나님께서는 그 자녀를 받아들이십니다.
[예화]
3급 시각장애인인 최영 씨는 지난 3년여 동안 책을 읽는 대신 “음성 낭독 파일”을 들으며 사법시험을 준비했고, 결국 제50회 사법시험 2차 합격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사법시험 제도가 시행된 이래 시각장애인으로서는 첫 2차 합격자다.
어릴 시절부터 시력이 나빴던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시야가 점점 좁아지는 ‘망막색소변성증’ 진단을 받았다.
2000년 서울대 법대에 입학할 때만해도 그럭저럭 일상생활을 할 수 있었지만, 사법시험 준비를 시작하면서부터 눈은 급속도로 악화됐다. 시야가 점점 좁아져, 한 줄씩 보이던 글씨가 한 단어씩 그리고 한 글자씩밖에 보이지 않다가, 결국 2005년 무렵엔 아무 것도 보이지 않게 된 것이다.
그는 “‘어릴 적 봤던 얼굴을 이젠 영원히 다시 볼 수 없게 돼 버렸다’는 절망감에 모든 것을 포기하기도 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다시 도전에 나섰다.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는 방 바깥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하는 최 씨를 위해 끼니때 마다 찾아와 식당에 데려다 줬던 친구들이 큰 힘이 됐다. 또 식당일을 하는 어머니와 운전을 하는 아버지의 사랑과 격려에서 큰 용기를 얻었다.
“시각 장애를 겪은 뒤 서로 도와가며 사는 세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한 복지재단의 도움으로 필요한 책을 한자 한자 컴퓨터에 쳐 넣은 뒤, 음성 낭독 프로그램을 돌려 무한반복 해서 들었다.
밥 먹는 시간만 빼고, 듣고 또 들었다.
“단지 기회를 갖지 못한 사람이 있을 뿐, 세상에 버릴 사람은 하나도 없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시각 장애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사법시험 합격의 9부 능선을 넘은 최영 씨는 “어려운 사람들 입장에 선 변호사가 될 꿈”에 부풀어 있다.
최영씨는 보지 못하였을 뿐입니다. 볼 수 없어서 여러가지 연약함을 노출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곁에는 그의 약함을 받아들인 친구와 부모님이 계셨습니다.
그의 볼 수 없음을 비판한 것이 아니라 그의 눈이 되어주고 그의 힘이 되어주신 친구와 부모님이 계셨어요.
그로 인하여 그는 성공스토리를 쓸 수 있었습니다.
인간은 누구도 완전한 자가 없습니다.
장점이 있는 것처럼 단점이 있습니다.
건강한 부분이 있는 것처럼 연약한 부분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12:20]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니
주님께서는 상한 그를 꺾지 않고 꺼져가는 심지와 같은 하인을 받아들이십니다.
우리 믿는 성도들이 형제의 연약함을 받아들이는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를 받으셨음이라"
3. 성공적 교회 생활은 무시하고 비판하는 그가 바로 주님의 지체임을 알 때 시작됩니다.
무시하고 비판하는 형제의 정체성이 무엇입니까?
그 형제는 '남의 하인'입니다.
하나님의 하인입니다.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사랑을 확증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우리가 만나고 있는 형제는 왕같은 제사장이요 택함을 받은 족속입니다.
이 사실을 인정할 때, 우리는
서머나교회 새벽 예배에 무역관장이 한 분 찾아와서 신앙생활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분을 무시하거나 함부로 비판한 것을 본 적은 없습니다. 그분의 정체성 때문이지요.
우리는 형제의 정체성을 알 때, 형제를 무시하거나 비판하는 오류를 범하지 않게 됩니다.
4. 성공적 교회 생활은 저를 세우시는 권능이 주께 있음을 범사에 인정할 때 지속됩니다.
[로마서 14:4]
남의 하인을 판단하는 너는 누구뇨 그 섰는 것이나 넘어지는 것이 제 주인에게 있으매 저가 세움을 받으리니 이는 저를 세우시는 권능이 주께 있음이니라
[예화]
평소에 장자의 학문을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던 한 선비가 어느 날 장자를 찾아와서 말했습니다:
“선생님의 사상은 크고 높지만 쓸모가 없습니다. 마치 저 앞에 서 있는 나무처럼 말입니다. 저 앞의 나무는 크기는 하지만 온통 구부러지고 울퉁불퉁하여 목수들이 쳐다보지도 않거든요.”
장자가 대답했습니다.
“거꾸로 생각해 보게. 저 나무가 구부러지고 울퉁불퉁하기 때문에 오히려 목수들한테 잘리지도 않고 저토록 오래 살아남아 큰 나무가 된 것이 아닌가.”
선비가 지지 않고 대답했습니다:
“그래도 쓸모가 없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아닙니까?"
장자가 다시 말합니다:
“왜 쓸모가 없나? 햇빛이 쨍쨍한 날마다 그 나무의 그늘에서 많은 사람들이 시원하게 쉬었다가 가는데.”
".................... ."
(장자와의 대화”, 206쪽 이하).
우리가 서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넘어질 수밖에 없는 연약한 존재가 인간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연약한 존재를 세워주시고 독수리의 날개치며 올라감 같이 능력 있게 하셨습니다.
"저를 세우시는 권능이 주께 있음이니라"
5. 성공적 교회 생활은 우리 또한 남을 비판할 만큼 완전하지 않음을 받아들일 때 순항합니다.
4a]
"남의 하인을 비판하는 너는 누구냐?"
5절]
어떤 사람은 이 날을 저 날보다 낫게 여기고 어떤 사람은 모든 날을 같게 여기나니 각각 자기 마음으로 확정할지니라
사람은 하나님이 아니어서 완전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치우칩니다.
가진 자는 가진 무게 때문에 기울어집니다.
없는 자는 없는 공복 때문에 기울어집니다.
사람은 하나님이 아니어서 완전하지 않습니다.
성경에 신앙의 용장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그들 누구를 보아도 완전하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이 완전하지 않습니다.
모세가 완전하지 않습니다.
다윗이 완전하지 않습니다.
완전한 사람이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합니다.
"완전하지 못함을 인정할 때 길이 열립니다."
우리는 정말 남을 무시하거나 비판할 만큼 완전하지 않습니다.
부족한 것 투성입니다.
우리 인생 길을 돌이켜 볼 때,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완전하지 못한 우리가 형제를 무시하거나 판단하고 싶은 생각이 들 때, 이런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남의 하인을 판단하는 너는 누구뇨?"
장군의 복장을 한 나아만은 겉으로는 보기에 그럴 듯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속에는 나병균이 득실거리고, 온 몸을 파괴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나아만의 나병을 고치고 그를 구원하시는데, 여러 사람들을 직간접적으로 사용하셨습니다.
어린 여종,
나아만의 아내,
아람의 왕,
이스라엘 왕,
엘리사,
엘리사의 사환,
함께 간 나아만의 종들이 그들입니다.
나아만이 자기 고집, 자기 생각대로 살았다면 나병치료는 없습니다.
백번 실패하고 여호와 하나님을 믿을 수 있는 기회도 놓쳤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나아만이 치료를 받을 수 있었습니까?
하나님이 나아만을 고쳐주시려고 여러 사람들을 일으키셨습니다.
오늘날도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일상에서 만나는 여러 사람들을 통해서 우리에게 향하신 구원의 뜻을 이루시고 계십니다.
부모님,
아내,
남편,
특히 집안의 어린 자녀들
그러므로 그들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일 수 있어야 합니다.
직장의 상사,
선생님과
목사님들의 말도 들어야 합니다.
때로는
직원들이나,
후배들의 말이나,
미화원,
경비원들이 여러분에게 하는 말도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교회 밖에서 믿지 않는 사람들이 우리에게 하는 말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결정적으로 나아만은 마지막 순간에 돌이켜서 자기 종들의 말을 듣고 예언자의 지시대로 따랐습니다.
우리들도 사실 내면을 들쳐보면 나아만 장군과 같이 썩고 냄새나는 존재입니다.
죄악 된 생각과 남에게 드러내기에 더럽고 부끄러운 약점들을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 아닙니까?
죄는 나병보다도 더 무서운 불치의 병입니다.
비판할 만큼 우리는 완전하지도 않습니다.
6. 성공적 교회 생활은 삶의 목적이 주님을 위한 것일 때, 완성됩니다.
8절]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알렉세이 목사님은 이런 글을 남기고 있습니다.
저는 우크라이나 출신이고 믿음의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저의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목사님이셨습니다.
저는 3대째 목사입니다.
저희는 핍박받는 역사의 시대를 살아 왔습니다.
그 때 저희는 다른 모든 사람들이 잠자는 새벽3시에 모여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 시절 많은 믿는 사람들이 복음 때문에 감옥으로 끌려갔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은 다시는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복음을 위해서 추운 시베리아에서 순교한 것입니다.
주님의 것이 된 성도들은 주를 위해서 삽니다.
주 안에서 형제된 이런 귀한 형제들을 비판하는 것은 주님을 욕되게 하는 것입니다.
주를 위해 사는 형제를 주님께서 책임지십니다.
[마무리하는 말]
프란시스코는 이렇게 고백했다고 합니다.
“큰일을 이루기 위해 힘을 주십사 기도했더니, 겸손을 배우라고 연약함을 주셨다.
많은 일을 해낼 수 있는 건강을 구했는데, 보다 가치 있는 일 하라고 병을 주셨다.
행복해지고 싶어 부유함을 구했는데, 지혜로워지라고 가난을 주셨다.
세상 사람들의 칭찬을 받고자 성공을 구했더니, 뽐내지 말라고 실패를 주셨다.
삶을 누릴 수 있게 모든 걸 갖게 해달라고 구했더니, 모든 걸 누릴 수 있는 삶, 그 자체를 선물로 주셨다.
구한 것 하나도 주시지 않았지만, 내 소원 모두 들어주셨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못하는 삶이었지만, 내 맘속에 진작 표현 못한 기도는 모두 들어주셨다.
나는 가장 많은 축복을 받은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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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본문]
1. 믿음이 연약한 자를 너희가 받되 그의 의견을 비판하지 말라
2. 어떤 사람은 모든 것을 먹을 만한 믿음이 있고 믿음이 연약한 자는 채소만 먹느니라
3. 먹는 자는 먹지 않는 자를 업신여기지 말고 먹지 않는 자는 먹는 자를 비판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이 그를 받으셨음이라
4. 남의 하인을 비판하는 너는 누구냐 그가 서 있는 것이나 넘어지는 것이 자기 주인에게 있으매 그가 세움을 받으리니 이는 그를 세우시는 권능이 주께 있음이라
5. 어떤 사람은 이 날을 저 날보다 낫게 여기고 어떤 사람은 모든 날을 같게 여기나니 각각 자기 마음으로 확정할지니라
6. 날을 중히 여기는 자도 주를 위하여 중히 여기고 먹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으니 이는 하나님께 감사함이요 먹지 않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지 아니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느니라
7.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9.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라
10.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비판하느냐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냐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
11. 기록되었으되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살았노니 모든 무릎이 내게 꿇을 것이요 모든 혀가 하나님께 자백하리라 하였느니라
12. 이러므로 우리 각 사람이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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