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어떤 사람들이 유대로부터 내려와서 형제들을 가르치되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얻지 못하리라' 하니 02 바울과 바나바와 저희 사이에 적지 아니한 다툼과 변론이 일어난지라 형제들이 이 문제에 대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및 그 중에 몇사람을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에게 보내기로 작정하니 03 저희가 교회의 전송을 받고 베니게와 사마리아로 다녀가며 이방인들의 주께 돌아온 일을 말하여 형제들을 다 크게 기쁘게 하더라 04 예루살렘에 이르러 교회와 사도와 장로들에게 영접을 받고 하나님이 자기들과 함께 계셔 행하신 모든 일을 말하매 05 바리새파 중에 믿는 어떤 사람들이 일어나 말하되 `이방인에게 할례주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라 명하는 것이 마Η求? 하니라 06 사도와 장로들이 이 일을 의논하러 모여 07 많은 변론이 있은 후에 베드로가 일어나 말하되 `형제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이 이방인들로 내 입에서 복음의 말씀을 들어 믿게 하시려고 오래 전부터 너희 가운데서 나를 택하시고 08 또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와 같이 저희에게도 성령을 주어 증거하시고 09 믿음으로 저희 마음을 깨끗이 하사 저희나 우리나 분간치 아니하셨느니라 10 그런데 지금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여 우리 조상과 우리도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두려느냐 11 우리가 저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 받는 줄을 믿노라' 하니라
머리말
안디옥 교회는 교회 역사상 여러면으로 본이 되는 교회입니다.
교회 성도들이 바른 믿음 안에 있습니다.
환난과 핍박을 믿음으로 극복했습니다.
이방인들을 향한 열정이 있습니다.
성령의 인도함을 받습니다.
진리 안에서 교육을 힘있게 진행합니다.
처음으로 그리스도인들이란 이름을 얻었습니다.
바울과 바나바와 같은 선교사를 파송하였습니다.
이중에 한두 가지만 잘하여도 귀한 교회입니다. 그런데 안디옥 교회는 좋은 교회로서의 조건을 골고루 갖추었습니다. 그런데 이 안디옥 교회에 시험(다툼과 변론)이 일어났습니다. 제일차 선교 여행을 성공적으로 마친 감격이 채 식기도 전에 일어난 사건입니다. 안디옥 교회에는 어울리지 않는 일입니다. 있어서는 안되는 일입니다. 그러나 일어났습니다. 교회가 어수선해졌습니다. 과연 안디옥 교회는 어떻게 이 위기를 극복할 것인가! 이것이 오늘 우리가 받은 문제입니다.
1. 문제를 상회에 올려 보냈습니다.
02 바울과 바나바와 저희 사이에 적지 아니한 다툼과 변론이 일어난지라 형제들이 이 문제에 대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및 그 중에 몇사람을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에게 보내기로 작정하니
문제들이 없을 수 없지만, 성도들이 마음을 합하면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문제를 우리가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다행스러운 것은 우리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도 어떤 사람에게는 매우 쉬운 일일 수가 있습니다.
안디옥 교회가 예루살렘교회보다 힘있게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보다 힘이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문제가 그들을 휩쓸어 왔을 때, 감당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것은 '구원을 어떻게 얻을 수 있는가?'에 관한 문제였습니다. 누구나 한마디 할 수 있는 주제입니다. 그들은 유명한 사도 바울과 바나바 밑에서 교육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문제를 제기한 사람들은 예루살렘 교회로부터 내려온 정통 기독교인들이었습니다. 이를 가지고 토론하다 보면, 어떤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안디옥 교회만으로서는 결정하기가 버거운 문제였습니다. 그들은 사도와 장로들에게 맡겼습니다.
요즈음도 이런 교회의 문제들은 심심치 않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문제들을 자기 힘으로 풀려고 몸부림치는 교회들이 부딪치는 한계가 많습니다. 오히려 서로 치고받다가 상처를 크게 받습니다. 아예 믿음 생활을 포기하는 사람도 나타납니다. 우리가 해결하기 힘든 문제는 안디옥 교회처럼 얼른 그 문제를 상회에 맡겨버리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교회는 기도하면서 하나님께서 그 문제를 잘 해결해 주시도록 기도하는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상회기관에 대하여 잘 알지 못하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교단이 필요한가를 묻습니다. 99.7.17일자 크리스챤 신문에서는 '교단, 그 의미성 잃어가나?' 란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교단 교회에 다니면서도 교단의식이 없다는 것입니다. 교단을 엄격하게 생각하거나 고리타분하게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분은 교단을 목사를 위한 기관으로 오해하고 있는 분도 보았습니다.
어떤 분은 교단을 브랜드네임 정도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요즈음 사람들은 브랜드 네임보다 소비자에게 친근하고 품질이 얼마나 좋은가에 관심을 갖는다는 것입니다. 교회 자체로 좋은 교회가 되는 것이 중요하지 어떤 교단에 속했느냐는중요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일리는 있지만 그들의 말대로 할지라도 좋은 브랜드를 유지한다는 것이 많은 장점을 갖고 있습니다. 브랜드가 있을 때, 저질화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브랜드가 없는 많은 상품들이 무절제 하게 존재하고 저질화될 확률이 너무 많은 것입니다. 제가 아는 분은 유명한 프랜차이스 이름을 가지지 않고도 좋은 커피를 만들어 장사를 잘하는 분이 있습니다. 제가 아는 또 다른 분은 유명한 프랜차이스 이름을 가지고 장사를 잘하는 분이 있습니다. 교회도 그렇게 볼 수 있습니다. 누가 더 옳으냐를 물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제 개인적으로는 특히 영혼을 다루는 교회에서는 더 많은 지혜를 모아서 하나님을 바로 섬기는 것이 좋다는 생각을 합니다. 몇 사람이 잘못됨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이단의 길로 인도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서로 돌아보고, 바른 방향을 찾아가는 교단은 교만을 극복하는 지혜로운 장치라고 생각합니다.
분명한 것은 교단이 예수님보다 더 중요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사랑하고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자리매김을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교단은 교회가 더 효과적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돕는 기관이라는 것입니다.
안디옥 교회는 구원에 관한 문제를 놓고 깊은 갈등에 빠져들 수 있었지만, 사도와 장로들에게 문제의 열쇠를 넘김으로서 그 어려움 속에서 쉽게 해결받을 수 있었습니다.
2. 율법입니까? 은혜입니까?
안디옥 교회가 풀어야 할 숙제는 구원을 얻는 길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율법입니까? 은혜입니까?' 이는 초대교회 전체의 문제였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들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01 어떤 사람들이 유대로부터 내려와서 형제들을 가르치되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얻지 못하리라' 하니
-> 05 바리새파 중에 믿는 어떤 사람들이 일어나 말하되 `이방인에게 할례주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라 명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바리새파 중에 믿는 어떤 사람들이라고 하는 분들의 입장은 율법에 서 있습니다.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얻지 못하리라' 는 것입니다. `이방인에게 할례주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라 명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분들의 주장을 어떻게 생각해야 합니까? 그들의 주장을 우리는 먼저 겸손히 들어야 합니다. 그들이 왜 이런 주장을 갑자기 들고 나왔겠습니까? 그리스도인입니다 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너무 규모가 없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 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가관입니다. 믿는다고 하지만 그들의 눈에는 세상 사람들과 별로 다름이 없었던 것입니다.
식사하는 모습을 가정해 봅니다. 정통 유대교 출신의 기독교인들은 손을 씻고 먹습니다. 십겹살 돼지고기나 새우요리 같은 음식은 먹지 않습니다. 랍스터나 게요리를 먹지 않아요. 그런데 헬라문화권에서 입교한 기독교인들은 너무나 게걸스럽게 먹습니다.
주일을 지키는 일을 두고 보더라도 그렇습니다. 바리새파 중에 믿는 어떤 사람들은 주일성수를 목숨처럼 소중히 지킵니다. 그런데 헬라문화 속에서 입교한 기독교인들은 너무 자유스럽습니다.
요즈음 우리 한국 기독교인들을 보면서 강하게 제기되는 것이 이 율법주의적 신앙입니다. 해도 너무한다는 것입니다. 삼풍사건을 구태어 들지 않더라도 너무 많은 부정 사건에 기독교인들이 연루되어 있습니다. 말만 기독교인들이라고 하지 세상 사람들과 별로 차이가 없다는 것입니다. 믿음도 있고 은혜도 받았는데, '이게 아닌데.... .'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다못한 어떤 사람들이 일어선 것입니다.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얻지 못하리라'
율법주의자들은 말합니다. 우리가 구원받기 위해서는 올바른 행위를 가지고 율법을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방인 선교를 감당해 온 베드로나 바울의 입장은 전혀 다릅니다.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 받는다는 것입니다. 베드로의 주장을 함께 읽어 보십시다.
08 또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와 같이 저희에게도 성령을 주어 증거하시고 09 믿음으로 저희 마음을 깨끗이 하사 저희나 우리나 분간치 아니하셨느니라 ......11 우리가 저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 받는 줄을 믿노라' 하니라
바울은 로마서에서 선포합니다.
롬3:28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그러나 바울이나 베드로가 반율법주의자(극단적인 구원파 신자)들이라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반율법주의자은 우리가 은혜로 구원받았기 때문에 구원받은 사람은 어떤 행동을 하든 상관이 없다는 것입니다. 야고보서는 이런 반율법주의자들의 신앙을 엄하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약2:24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 아니니라
그러면 베드로와 같은 사도들은 율법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졌을까요? 우리들은 율법에 대하여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까?
M.R.디한이란 분은 율법이란 은수저와 같다고 말했습니다. 음식의 상태, 물의 상태를 알려면 은수저를 넣어보라는 것입니다. 음식이 상해 있고 물이 상해 있으면 은수저의 색깔이 변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은수저가 독을 없애주지는 못합니다. 그래서 은수저로 밥을 먹는 사람을 행복한 사람이라고만 할 수는 없습니다. 율법은 은수저와 같이 우리의 영적 상황을 진단해주는 것에 불과합니다. 우리가 죄인인 것을 진단해주는 것이 율법입니다. 그러나 율법이 우리를 의롭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율법이 우리를 천국으로 인도할 능력도 없습니다.
김동호 목사님은 '율법은 X-Ray로 비유하여서 뼈가 부서진 것을 밝혀주는 것과 같다는 표현을 썼습니다. 그러나 X-Ray를 가지고 병을 낫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율법은 X-Ray와 같아서 우리의 죄를 진단할 뿐, 우리를 의롭게 하지는 못합니다.
그러므로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얻지 못하리라' 는 것입니다. `이방인에게 할례주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라 명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말은 옳지않습니다.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 받는다는 베드로의 주장이 복음적인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 우리의 모든 죄를 깨끗케 하실 수 있습니다.
[예화]
아프리카 선교사로 사역한 리빙스톤이 정글에서 길을 잃고 헤멜 때입니다. 겨우 얻은 안내자마저 갈팡질팡입니다. 리빙스톤은 그에게 물었답니다.
"당신은 진자 길을 고 있습니까?"
"여긴 길이 없습니다. 내가 길입니다."
율법은 길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길이십니다. 율법은 길을 찾아가는 자들에게 안내판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율법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러 가는 사람들을 위해 길가에 선 안내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맺음말
그러면 은혜로, 믿음으로 구원을 받은 사람들은 율법을 지켜야 할 의무가 없습니까? 율법입니까? 은혜입니까? 저는 율법의 도움을 성도들이 받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율법을 은수저와 같다고생각하시든, X-Ray로 비유하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러 가는 사람들을 위해 길가에 선 안내판이라고 생각하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필요하니까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율법을 구원을 주는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오직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함을 받기 때문입니다.
대신 믿음 아래 있는 자에게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새법, 곧 생명의 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사랑의 법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사랑에 압도되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일에 열중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롬13:9-10에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라는 말씀을 대합니다. 갈5장에서 그리스도 안에서는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뿐이라는 말씀을 봅니다.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는 말씀을 봅니다.
사랑이 풍성할수록 법은 필요없게 됩니다. 하인이나 아기 돌봐주는 사람에게는 어떤 법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기를 사랑하는 친어머니에게는 아기를 사랑하라는 말이 모욕적인 말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주님을 사랑합니다.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주님을 기쁘게 섬깁니다. 일하고 수고합니다. 율법이 무서워서 주님을 섬기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주님을 기쁘게 섬깁니다. 성령을 좇아 행하십시오.
08 또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와 같이 저희에게도 성령을 주어 증거하시고 09 믿음으로 저희 마음을 깨끗이 하사 저희나 우리나 분간치 아니하셨느니라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에게 왜 성령을 주셨습니까? 믿음으로 분명 구원을 받습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깨끗해진 마음을 가진 성도가 성령으로 하나님을 섬길 때, 장성한 분량에 이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성도는 율법 아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의 인도하심 속에 있는 것입니다.
갈5:16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18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리라
그런가 하면 갈라디안주의라는 것도 있습니다. 우리가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것은 사실이지만 구원받은 다음에는 율법에 절대 순종하여 지켜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구원은 은혜로 받지만 행위로 그 구원이 보존된다는 것이지요. 갈라디아서는 이런 신앙에 대해서 잘 지적해주고 있습니다.
갈3:01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은 율법의 행위로냐 ? 듣고 믿음으로냐 ? 03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 ?
구원문제뿐만 아니라 자신을 보존하는 문제까지도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의존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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