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는 말]
하나님께서 캐나다 토론토 땅에 사는 한국 디아스포라 백성을 위하여 서머나 교회를 세워주신 지 11년이 되었습니다.
그 동안 하나님께서 우리 중에 베푸신 은혜가 얼마나 귀하고 아름다운지 모릅니다.
서머나 교회가 집중하는 교회 목표를 생각해 봅니다.
예수님을 닮아
1] 진리에 순종함으로.
2] 하나님 가족답게 사랑함으로
3] 세상에 나가 선교함으로
하나님의 꿈을 이루어 가는 것입니다.
왜 서머나 교회는 이 일에 집중하고 있습니까?
1. 하나님의 꿈(말씀)을 이루는 교회가 되고 싶어서입니다.(22-24절)
22. 그러므로 또한 내가 너희에게 가려 하던 것이 여러번 막혔더니
23. 이제는 이 지방에 일할 곳이 없고
또 여러 해 전부터 언제든지 서바나로 갈 때에 너희에게 가려는 원이 있었으니
24. 이는 지나가는 길에 너희를 보고 먼저 너희와 교제하여 약간 만족을 받은 후에 너희의 그리로 보내줌을 바람이라
1] 바울 사도는 주님께서 주신 꿈(말씀)을 따라 살았습니다.
32절]
나로 [하나님의 뜻을 좇아] 기쁨으로 너희에게 나아가 너희와 함께 편히 쉬게 하라
그가 이방인을 위한 사도로 주님께 임명을 받은 후,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전심을 다 기울였습니다.
그리고 소중한 열매를 올려드렸습니다.
"23. 이제는 이 지방에 일할 곳이 없고"
'이 지방'은 복수이므로 '지방들'을 말하며 바울의 지금까지 선교하였던 지역들을 의미합니다.
예루살렘에서부터 일루리곤까지 지중해 동부 지역의 도시들을 찾아다니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에베소, 고린도, 데살로니아, 빌립보, 다메섹 등을 두루 다니면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했습니다(19절).
하나님의 꿈은 바울 사도 일행을 통해 이루어져 갔습니다.
드디어 이 지역에서는 더이상 복음을 전할 새로운 곳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제는, 새로운 지역, 곧 여러 해 전부터 가고 싶어했던 서쪽 땅끝 서바나까지 선교지를 확장할 계획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바울 사도는 주님께서 주신 꿈을 따라 살았습니다.
꿈에 붙잡혀 살았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여러분은 무엇을 따라 살고 있습니까?
세상은 내 욕심을 따라 사는 사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사도는 하나님의 꿈을 따라 살았습니다.
2] 꿈을 이루기 위한 전략을 사도 바울은 가지고 있었습니다.
[24절]
24. 이는 지나가는 길에 너희를 보고 먼저 너희와 교제하여 약간 만족을 받은 후에 너희의 그리로 보내줌을 바람이라
서바나로 가는 것은 하나님께서 바울 사도에게 주신 꿈이었지만,
그는 무작정 그곳을 향해 달려가지 않았습니다.
[전략1] 사도바울은 서바나를 향한 선교 전략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당시에 서바나는 서쪽 변방으로 땅끝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그래서 서바나를 향해 나아가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단지 꿈만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서바나로 건너가는 전략까지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곳으로 건너가기 위한 징검돌(중간 기착지)로 로마를 방문하는 것이었습니다.
서바나에 복음을 전파하러 가기에 앞서 바울 사도는 먼저 로마에 들르기로 선교전략을 세웠습니다. 로마는 서바나를 향한 중요한 요지였을 뿐만 아니라, 로마가 당시 세계의 정치와 문화의 중심지였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꿈을 가지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 꿈을 이루기 위한 전략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전략2] 로마 교인들과 교제하여 하나 되려는 뜻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로마 교회 성도들을 만나 교제하는 것이 사도 바울의 꿈이었습니다.
오랫동안 사모했던 로마 교회 교인들을 만날 뿐만 아니라, 교제를 나눔을 통해서 저들이 바울과 함께 진리위에 굳게 서 있는 것을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바울 사도가 저들의 얼굴 보기를 사모한 것은 그들과 교제하고 싶어서였습니다. 사실 원문에는 '먼저 너희와 '교제하여'라는 말이 없습니다.
'먼저 여러분을 만나'(새 번역),
'여러분을 만나 함께 지내면서'(공동번역),
'먼저 로마에 있는 여러분을 방문하여 교제를 가진 후에'(현대인의 성경)
로마 교회 교우들과 만나 함께 지내면서, 하나님께서 저들에게 베푼 구원의 은혜를 들으면서 저들의 믿음을 확인하고
또한 사도 자신이 주님으로부터 받은 신령한 은사를 나눠주어 그들의 믿음을 견고케 할
즉 선교 계획에 동참하게 하기 전에
저들의 믿음을 확인하고
신령한 은사를 나눠주어
저희를 견고케 하며,
영적인 사귐을 통해 피차 유익을 받고
안위케하려는 전략이 있습니다.
[전략3] 또한 로마 교회로 하여금 하나님의 꿈에 참여시키려는 전략이 있었습니다.
바울 사도는 로마 교회와 교제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꿈 즉, (서바나를 향한) 선교 계획을 알려주어 그들도 참여케 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리하여 피차 안위 받기 원하였습니다(1:11-13).
바울 사도는 자신만 하나님의 꿈을 따라 사는 것이 아니라
로마 교회까지 하나님의 선교 전략에 쓰임을 받을 수 있도록 전략을 세웠던 것입니다.
바울의 확신에 찬 모습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러나 그 확신은 그리스도의 풍성한 은혜와 능력이 바울의 로마 방문에 함께 동반하리라는 확신이입니다
바울 사도에게는 그리스도의 신령한 축복이 충만합니다. 이 보배를 질그릇에 담아가지고 로마 성도를 찾아 갑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너희의 보내줌(프로펨프데나이') 말은 '프로펨포'의 제 1부정 과거 수동태 부정사로서 '너희로 말미암아 보냄을 당하기를' 또는 '너희가 나를 보내줌'이란 뜻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 교회의 파송을 받을 것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사도바울은 선교 사역을 순종함에 있어서 복음을 전함으로 교회를 세우는 일에 쓰임을 받았고, 그 교회 도움의 손길과 지원을 통해서 새로운 선교지로 파송을 받고 복음을 증거하는 방법을 사용해왔습니다.
(행 13:1-4)에 보면, 제 1차 선교 여행을 떠날 때, 안디옥 교회의 파송을 받습니다.
(행15:40)에서도 제 2차 선교여행을 떠날 때, 분위기가 썩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교회의 파송을 받습니다.
"바울은 실라를 택한 후에 형제들에게 주의 은혜에 부탁함을 받고 떠나"
바울 사도는 서바나 선교 계획에 로마 교회가 선교에 참여해야 할 이유를 말합니다.
바울의 로마 방문 목적은 로마 교회와의 교제의 협력과 지원을 힘입으려 함에 있습니다.바울 사도는 로마교회의 기도, 재정적인 도움, 함께 복음 전파에 수고해 줄 조력자 등의 도움을 받아 로마 교회 이름으로 파송을 받아 아직 복음이 전파되지 않은 서쪽 변방까지 복음을 전파하고자 했습니다. 이로 볼 때, 바울 사도의 로마교회 방문 목적은 어디까지나 교회를 통한 선교 사역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J. Murray).
하나님의 꿈을 이루는 일에 세계의 중심지에 자리잡고 있는 로마 교회가 참여하고 쓰임을 받기 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로마 교회를 하나님의 꿈에 접목시키기 위한 배려요 사랑입니다.
[김범규 선교사님의 꿈과 전략]
드디어 교회를 세웠습니다. 그 척박한 이슬람권에 말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에겐 어떤 하나님의 꿈이 있습니까?
그 꿈을 이루기 위한 전략은 무엇입니까?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꿈을 가지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사는 사람은 복이 있는 사람입니다.
서머나 교회는 다음의 목표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닮아
1] 진리에 순종함으로.
2] 하나님 가족답게 사랑함으로
3] 세상에 나가 선교함으로
하나님의 꿈을 이루어 가는 것입니다.
왜 서머나 교회는 이 일에 집중하고 있습니까?
2. 성령의 사랑 때문입니다.(사랑, 30-32절)
30.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고 성령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기도에 나와 힘을 같이하여 나를 위하여 하나님께 빌어
31. 나로 유대에 순종치 아니하는 자들에게서 구원을 받게 하고 또 예루살렘에 대한 나의 섬기는 일을 성도들이 받음직하게 하고
32. 나로 하나님의 뜻을 좇아 기쁨으로 너희에게 나아가 너희와 함께 편히 쉬게 하라
성령의 사랑으로 하나님의 꿈을 이루어간다는 말씀의 뜻이 무엇입니까?
1] 성령의 사랑은 하나님의 꿈과 접목된 사랑입니다.
[15:26]을 함께 읽어봅시다.
"이는...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기쁘게 얼마를 동정하였음이라"
바울이 예루살렘에 가지고 온 헌금은 고린도, 갈라디아, 마게도냐 등 많은 이방인 성도들이 예루살렘 교회를 위해 힘껏 헌금한 것이었습니다(고전 16:1-3;고후 8, 9장);갈 2:10).
'마게도니아와 아가야'는 고린도의 수도였습니다. 그들은 어려운 예루살렘 교회를 돕기 위해서 헌금을 억지로 하거나 마지 못해서 하지 않고 자원하는 마음으로(고후 9:5-15) 기쁘게 사랑의 선물을 바울 일행을 통해서 예루살렘 교회에 보냈습니다.
이런 성령의 사랑이 하나님의 꿈을 이루게 하는 것입니다.
31절]
나로 유대에 순종치 아니하는 자들에게서 구원을 받게 하고 또 예루살렘에 대한 나의 섬기는 일을 성도들이 받음직하게 하고
이방인 교회가 돌아와서 보내 준 성령의 사랑이 유대인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구원을 받게 하는 것입니다.
예루살렘 내에는 이방인 교회의 헌금 받기를 거부하거나 형식적인 감사로밖에 받아들이지 않는 분위기가 얼마든지 있을 수 있었습니다. 구제비를 전달하기 위해 예루살렘을 향하는 바울 사도 일행에게는 상당히 염려가 될 수 있었습니다(E.F. Harrison).
그 이유는
첫째, 예루살렘 공의회에서 이방인들도 하나님의 합당한 자녀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 인정되었지만(행 15:19-29).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교회 안의 바리새적인 유대인 성도들은 바울과 이방인 교회들에 대해 적대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행 15:5)
둘째, 바울의 이방인에 대한 선교 사역과 그의 활동에 관한 잘못된 거짓 소문이 예루살렘 교회에 전반적으로 퍼져 있었기 때문입니다(행 21:20, 21).
바울은 이러한 문제들을 예감하고 예루살렘 교회 방문시 이러한 문제들로 인한 갈등의 소지가 없도록 로마의 성도들에게 미리 기도를 간절히 요청하고 있었습니다.
이방인 교회가 이러한 예루살렘 교회에 대하여 구제 헌금을 보내는 것은 성령의 사랑을 하는 모습입니다.
2] 성령의 사랑은 '자원하는 심령과 의무'로 하는 사랑입니다.
바울이 그렇게 가기를 소원하였던 로마 교회의 방문을 또 뒤로 미룬 채 먼저 예루살렘을 방문하지 않으면 안 될 이유가 무엇이었겠습니까 ?
예루살렘 교회는 모든 교회의 모(母) 교회로서 교회 지도자들 즉 사도들이 있는 교회이지만 지금은 핍박과 어려움 중에 있는 가난한 유대인 성도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위급한 교회를 모든 교회가 협력하여 도와줄 [의무]가 있었습니다. 이것은 모교회에 대해 이방 교회가 지녀야 할 당연한 태도이며 그들이 진 빚을 조금이나마 갚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염두에 두었던 가장 중요한 이유는 예루살렘에 있는 유대인 성도들과 기타 이방 교회의 성도들과의 [화합과 일치]였습니다.
예루살렘 이외의 모든 교회는 대부분 이방인들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유대 기독교들과 이방인 기독교 개종자 사이에는 적지 않은 충돌과 마찰이 있었습니다. 유대 기독교 신자들은 이방인 기독교 개종자들에게 배타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었고 그들 가운데서 일부는 이방인 기독교 신자들에게 구약의 규례들을 따를 것을 강요하는 무리들도 있었습니다(행 15:1, 5).
그리스도 몸된 교회가 하나가 아니었습니다.
이러한 형편에서 바울은 이방인 성도들의 성령의 사랑으로 예루살렘교회에 사랑을 보냈습니다.
이는 예루살렘 교회와 이방 교회 간의 관계가 극복되어 견고한 사랑과 신뢰의 관계가 형성될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이전에도 바울은 예루살렘에 있는 가난한 교인들을 돌보고 어려움을 겪고 있는 예루살렘 교회를 돕기 위하여 바나바와 함께 수리아 안디옥에 있는 성도들로부터 헌금을 거두어서 도와준 적이 있었습니다
(행 11:30;12:25).
그리고 바울은 [갈 2:10]에서도 예루살렘 교회를 도와줄 것을 이방인 교회에 호소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바울의 로마 교회의 방문이 다시 한번 불가피하게 지체되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은 사정을 로마 교회에 알림으로 그들로 하여금 양해를 구하고 있으며 또한 그의 이러한 모범을 따르도록 독려하고 있습니다(John Calvin).
바울은 예루살렘 교회에 대한 이러한 구제의 행동을 '성도를 섬기는 일'이요 성령의 사랑이라 묘사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성도를 섬기는 일'이란 구체적으로 말하면 예루살렘의 가난한 유대인 성도들을 구제하기 위해 마게도냐와 아가야 지방의 이방인 성도들이 모금한 돈을 예루살렘 교회에 전달하는 일을 뜻합니다(고후 8, 9장).
여기서 우리는 사역자 바울이 일을 진행시키는 우선 순위를 배우게 됩니다. 즉 사도가 그토록 보기를 사모했던 로마 교회의 교인들과 만나게 되는 개인적인 기쁨보다는
[1] 우선적으로 어려운 성도들을 도와주고
[2] 그들이 다른 성도들과 서로 사랑 가운데서 연합하여 그리스도의 한몸 의식을 갖게 하는 일에 무엇보다도 먼저 힘쓰는 것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의 사랑입니다.
서머나 교회는 다음의 목표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닮아
1] 진리에 순종함으로.
2] 하나님 가족답게 사랑함으로
3] 세상에 나가 선교함으로
하나님의 꿈을 이루어 가는 것입니다.
왜 서머나 교회는 이 일에 집중하고 있습니까?
3. 빚진 자의 심정 때문입니다.(선교, 27-29절)
27. 저희가 기뻐서 하였거니와 또한 저희는 그들에게 빚진 자니 만일 이방인들이 그들의 신령한 것을 나눠 가졌으면 육신의 것으로 그들을 섬기는 것이 마땅하니라
28. 그러므로 내가 이 일을 마치고 이 열매를 저희에게 확증한 후에 너희에게를 지나 서바나로 가리라
29. 내가 너희에게 나갈 때에 그리스도의 충만한 축복을 가지고 갈줄을 아노라
빚진 자란 '의무를 가진 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나 여기서는 '손해를 준 사람에게 아직 보상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바울은 이 용어를 1:14과 8:12에서도 사용하고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자신의 존재의미를 말할 때, '모든 사람에게 복음의 빚진 자'라고 고백합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무한한 은혜에 대한 채무자적인 자신의 심정을 나타낸 것입니다. 따라서 바울의 사랑은 복음의 빚진 자로서의 사랑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꿈을 이루는 일에 있어서 교회가 힘써야 할 본분이 있습니다. 그것은 빚진 자의 마음 가짐입니다.
어떻게 해야 예루살렘 교회를 향한 이방인들의 사랑이 순수하게 전달될 수 있겠습니까?
"저희가 기뻐서 하였거니와 또한 저희는 그들에게 빚진 자니"
그렇습니다. 빚진 자의 심정으로 사랑을 표현할 때, 그 사랑은 상대편의 자존심을 상하지 않고 아름답게 전달될 수 있습니다.
저는 북한 동족을 위한 사랑을 어떻게 표현하는 것이 옳은가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이 있습니다.
지난 4월 북한 동족을 방문하였을 때, 우리를 안내하였던 안내원 동무가 몇 차례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조용히 도움이 될 수 없는가 왜 그렇게 조그만 일을 해놓고 떠들고 다니는가 하는 말이었습니다. 그런 일들이 얼마나 받은 북한 동족에게 상처를 주는 지 아느냐고 묻는 것으로 생각되었습니다.
우리가 북한 동족에게 빚진 자의 심정으로 형제들을 도울 때, 남북 문제는 실마리가 풀릴 수 있지 않겠는가 하는 적용을 해봅니다.
복음이 북쪽을 통해 먼저 들어왔습니다. 복음은 선교사님들을 통해 들어왔지만 북한을 통해 들어왔다고 보는 것이 옳습니다. 100여년 전에 성령의 바람이 강하게 불어올 때, 그 진원지가 북한이었고, 성령 충만했던 대부분의 교회는 북한에 있었습니다.
평양 신학교에서 배출된 목회자가 우리 한국 교계의 중추적인 위치에서 교회를 일으켰습니다.
이와 같이 북한을 통해 신령한 복음이 우리에게 왔으니 우리가 빚진 자라고 적용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북한에는 과거에 자랑스런 신앙의 거장들이 많았습니다. 산정현 교회나 길선주 이승훈 조만식 등의 기라성과 같은 분들이 성령 운동, 새벽 기도운동, 교회 개척 말씀 사경회 등, 여러 분야에서 모델이 되었습니다.
지금도 신앙의 용사들이 지하에 숨어서 아름다운 신앙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들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드리는 기도에 우리는 빚진 자입니다.
지난 주에 김동규 목사님께서 북한 된장 공장과 두유 공급을 위해 북한에 다녀오시겠다는 편지를 받았습니다.
그런 아름다운 사역이 빚을 갚기 위해서라는 의식을 가지고 일을 추진한다면 어떨까요?
북한 금강산 사업이나 개성 사업을 빚진 자의 심정을 가지고 빚을 갚는다는 심정으로 그들을 만나 섬긴다면 어떻게 일이 진행될까요?
빚진 자의 심정이 선교에서는 매우 중요합니다. 북한 동족을 섬기려면 고압적인 자세가 아니라, 빚진 자의 심정이 선결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정말 사랑할 때, 문제는 녹아듭니다.
믿음의 성도들은 성령의 사랑으로 봉사를 할 때, 복음을 증거하는 삶을 살 때, 채무자적인 자신의 심정을 가져야 합니다.
[마무리하는 말]
한 사업가의 아들이 프랑스로 여행을 갔다가 그곳에서 불의의 변을 당하여 사망했습니다. 그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재산을 정리하였습니다.
죽은 아들을 생각하면서 그 돈을 대학에 기증하려 결심했습니다.
당시 명문이었던 하버드 대학으로 찾아갔습니다.
정문으로 들어가려는데 수위 아저씨가 막았습니다.
초라한 이 사업가를 매몰차게 무시하여 돌려보냈습니다.
그는 훗날 샌프란시스코로 가는 길에 한 꿈을 갖게 되었습니다.
동부에 하버드 대학이 있는 것처럼 서부에도 그런 좋은 대학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의 이름은 윌리엄 스텐포드였습니다. 그가 세운 대학은 그의 이름을 따서 스텐포드 대학이라 정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하버드 대학 총장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지금도 하버드 대학 정문에는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 있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아니하심이니라(롬2:11)"
하나님의 꿈을 따라 살아갑시다.
성령의 사랑으로 사랑합시다.
빚진 자의 심정으로 선교합시다.
이렇게 할 때 예수님이 생각나는 예수님을 닮은 교회가 우리 중에서 이루어 질 줄 믿습니다.
[예화]
주일이 되면 설움의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는 곳이 있습니다. 서울 구로구 가리봉1동에 위치한 사단법인 지구촌 사랑나눔(대표 김해성 목사)이 바로 그 곳입니다.
중국동포교회에서 예배드리기 위해 온 동포, 외국인노동자전용의원에서 무료진료 및 치료를 받기 위해 온 이주노동자, 산업재해와 임금체불 등을 상담하기 위해 온 내담자, 쉼터와 병원에서 숙식하는 이들을 비롯해 이들을 돕는 자원봉사자들로 북새통을 이룹니다.
의지가지 할 곳 없는 이들에게 이곳은 매우 긴요한 피난처입니다. 건설현장 일꾼으로, 식당아줌마로, 가정부로, 간병인으로 일하다 피난처를 찾아온 이들은 갖가지 억울한 사연을 털어놓으며 도움을 청하고 병든 몸을 치료받기도 합니다. 중국동포교회는 이들을 위로하며 눈물을 닦아줍니다. 어두운 세상에서 방황하지 말고 기쁨의 나라를 소망하는 삶으로 변화되기를 기도합니다.
우리도 한 때는 서글픈 이주민이었습니다. 상경(上京)의 물결이 넘실대던 60~70년대, 가난한 고향을 떠나 낮 설고 물 설은 타관 땅에서 사는 일이 얼마나 서글픈지….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호주머니를 뒤지지만 빈털터리 처지. 그 시절 상경한 이주민들이 설움으로 비벼먹던 음식이 바로 눈물의 자장면이었습니다.
낮선 땅에서 겪는 설움 중에서 가장 큰 설움은 배고픔입니다. 끼니 걱정 때문에 눈물 흘려본 사람은 설움의 짜디 짠 그 맛을 잘 알 것입니다. 주일이면 설움으로 얼룩진 이주노동자 700~800여명이 모여듭니다. 이들에게 따스한 식사를 대접하고 싶지만 이 많은 분들을 대접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지구상에는 곡물이 넘쳐납니다. 하지만 굶는 이들이 부지기수입니다. 생명을 살리는데 사용되지 않는 곡물은 식량이 아니라 무기입니다. 무기로 변질된 식량이 인류를 아사지경으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그런 반면 눈물을 닦아주는 생명의 식량이 있습니다. 중국음식점 '상하이궁'(대표 최한수 장로)이 바로 생명의 곳간입니다.
상하이궁은 지난 4월부터 매 주일마다 자장면을 무료로 제공해주고 있습니다. 중풍병자인 정성환씨는 부자유스러운 손으로 자장면을 먹고, 목단강에서 온 팔순의 계원식 할아버지와 환갑을 넘긴 연변 아주머니는 주름진 손으로 자장면을 먹습니다.
자장면 한 그릇으로 성령의 사랑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설교본문]
22. 그러므로 또한 내가 너희에게 가려 하던 것이 여러번 막혔더니
23. 이제는 이 지방에 일할 곳이 없고 또 여러 해 전부터 언제든지 서바나로 갈 때에 너희에게 가려는 원이 있었으니
24. 이는 지나가는 길에 너희를 보고 먼저 너희와 교제하여 약간 만족을 받은 후에 너희의 그리로 보내줌을 바람이라
25. 그러나 이제는 내가 성도를 섬기는 일로 예루살렘에 가노니
26. 이는 마게도냐와 아가야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도 중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기쁘게 얼마를 동정하였음이라
27. 저희가 기뻐서 하였거니와 또한 저희는 그들에게 빚진 자니 만일 이방인들이 그들의 신령한 것을 나눠 가졌으면 육신의 것으로 그들을 섬기는 것이 마땅하니라
28. 그러므로 내가 이 일을 마치고 이 열매를 저희에게 확증한 후에 너희에게를 지나 서바나로 가리라
29. 내가 너희에게 나갈 때에 그리스도의 충만한 축복을 가지고 갈줄을 아노라
30.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고 성령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기도에 나와 힘을 같이하여 나를 위하여 하나님께 빌어
31. 나로 유대에 순종치 아니하는 자들에게서 구원을 받게 하고 또 예루살렘에 대한 나의 섬기는 일을 성도들이 받음직하게 하고
32. 나로 하나님의 뜻을 좇아 기쁨으로 너희에게 나아가 너희와 함께 편히 쉬게 하라
33. 평강의 하나님께서 너희 모든 사람과 함께 계실지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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