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25 절과 같음) 27 그리하여 유다와 실라를 보내니 저희도 이 일을 말로 전하리라 28 성령과 우리는 이 요긴한 것들 외에 아무 짐도 너희에게 지우지 아니하는 것이 가한 줄 알았노니 29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멀리 할지니라 이에 스스로 삼가면 잘되리라 평안함을 원하노라' 하였더라 30 저희가 작별하고 안디옥에 내려가 무리를 모은 후에 편지를 전하니 31 읽고 그 위로한 말을 기뻐하더라 32 유다와 실라도 선지자라 여러말로 형제를 권면하여 굳게 하고 33 얼마 있다가 평안히 가라는 전송을 형제들에게 받고 자기를 보내던 사람들에게로 돌아가되 34 (없 음) 35 바울과 바나바는 안디옥에서 유하여 다수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주의 말씀을 가르치며 전파하니라
36 수일 후에 바울이 바나바더러 말하되 `우리가 주의 말씀을 전한 각 성으로 다시 가서 형제들이 어떠한가 방문하자' 하니 37 바나바는 마가라 하는 요한도 데리고 가고자 하나 38 바울은 밤빌리아에서 자기들을 떠나 한가지로 일하러 가지 아니한 자를 데리고 가는 것이 옳지않다 하여 39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서니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배 타고 구브로로 가고 40 바울은 실라를 택한 후에 형제들에게 주의 은혜에 부탁함을 받고 떠나 41 수리아와 길리기아로 다녀가며 교회들을 굳게 하니라
머리말
사람마다 위기의 때를 만날 수 있습니다. 가정에서도 위기의 때를 만날 수 있습니다. 경제적인 위기를 만날 수 있습니다. 신체적이나 심리적인 위기를 만날 수 있습니다. 신앙적인 위기를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醍?위기가 개인이나 가정을 파경으로 몰아가는 것은 아닙니다.
[예화]
칸트란 철학자를 아시지요? 그의 정확한 시간에 산보한 이야기는 알려진 이야기는 유명하지요. 어느날 산보 중에 미친 사람이 달려와 칼을 들이대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 같으면 이 절박한 위기를 어떻게 하셨겠습니까? 칸트는 도망치지 않고 침착하게 그를 나무랐습니다.
"여보게, 오늘이 죽이는 날인가? 내가 알기로는 내일일텐데?"
그의 말에 미친사람이 눈을 몇번 깜박이더니 이내 고개를 푹 숙이고 돌아가더랍니다.
위기(危機)는 '위험(危險)'과 '기회(機會)'라는 말의 합성어입니다. '위기에는 항상 위험이 따르지만 또한 기회도 있다'(닉손)는 말과 같습니다. 위기는 대응하는 자세에 따라 기회일 수도 있습니다.
초대 안디옥 교회는 가장 모범적 교회입니다.
바울과 바나바와 같은 참으로 귀한 사역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섬기는 사역에서 훌륭한 동역의 본을 보였습니다.
교회 역사상 처음으로 선교사를 파송했습니다. 주님의 지상명령에 구체적으로 순종했습니다.
교회 역사상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는 칭찬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안디옥 교회에 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안디옥 교회가 오늘날까지도 우리 교회의 본이 되는 까닭은 위에 열거한 장점 외에도 그 교회 역시 위기가 있었지만 그 위기를 잘 관리하고 극복했다는 것입니다. 안디옥 교회가 이 세상 지상교회에 힘을 주는 까닭은 고난 중에서 위기를 잘 관리하여 믿음의 본을 보인 까닭입니다. 교회의 어려움이 왔을 때 정말 지혜롭게 처리했습니다. 그리하여 엄청난 분쟁의 회오리에 휩쓸릴 수 있었던 교회가 전과 같이 힘있게 복음 사역을 감당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오늘도 그 비밀을 깨달아 가기를 원합니다.
어떻게 안디옥교회가 위기를 극복했습니까?
1. 상회의 결정을 기쁨으로 받아들였습니다.
30 저희가 작별하고 안디옥에 내려가 무리를 모은 후에 편지를 전하니 31 읽고 그 위로한 말을 기뻐하더라
안디옥 교회는 문제가 발생하였을 때, 재빨리 상회 기관에 그 문제를 올렸습니다. 그 일을 감당할 만한 자에게 맡겨버렸습니다. "네길을 여호와께 맡겨버리라!" 그리고 그 결과를 기다렸습니다.
대신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의 모임에서는 열띤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그리고 신중한 결정을 내렸습니다. 이방인들이 구원을 얻는 일에 가장 좋은 결론을 내렸습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음으로 구원을 얻되, 하나님 백성다웁게 살 수 있도록 규모있는 삶을 권면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결정에 대하여 안디옥 교회는 어떤 자세를 보이고 있습니까?
30 저희가 작별하고 안디옥에 내려가 무리를 모은 후에 편지를 전하니 31 읽고 그 위로한 말을 기뻐하더라
자신들이 올려보낸 문제를 깊이 검토한 후, 사도들이 내린 결정을 읽고 좋은 마음으로 받아들여서 기뻐하고 있습니다. 이 점이 안디옥교회가 교회 위기를 극복하는데 큰 강점이 되었습니다. 이것도 못하랴 싶지만 아닙니다.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한사람도 아닌 공동체가 제3의 기관에 순복했다는 사실은 성령의 역사임을 깨닫게 됩니다.
내가 내리지 않은 다른 사람들의 결정에 순복하는 데는 큰 믿음이 요구됩니다. 이 사건의 결정을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자기를 부인할 수 있는 인격과 믿음이 요구되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한 사람이 아닌 온 교회가 사도의 권위를 인정하고 상회가 결정한 바를 기쁜 마음으로 수납하여 화평해질 수 있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안디옥 교회의 위기는 자기자신들의 주장을 부인하고 상회의 결정을 기쁨으로 받아들이는 결단으로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예화]
달을 향해 가던 아폴로 13호는 2만 마일이나 되는 지점에서 고장이 났습니다. 산소통이 터졌던 것입니다. 나아가지도 돌아올 수도 없었습니다. 위기였습니다. 휴스톤 본부에 급히 S.O.S.를 보냈습니다. 휴스톤 본부에서도 별대안은 없었습니다. 다만 '북극성을 기준으로 방향을 잡아 돌아오라!'고 했을 뿐입니다.
미국의 대통령은 모든 국민에게 기도를 부탁했고, 온국민이 함께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아폴로 13호는 태평양에 떨어졌습니다. 구조 함에 오른 우주비행사는 군목의 손을 잡고 감사의 기도를 올렸습니다. 우주비행사 중 한사람인 스위저드린 분은 '우리가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 기도의 힘이었다!'고 고백했습니다.
저는 그들이 구원받은 것은 본인들과 온국민의 합심기도의 힘이었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이유 중 하나를 더 추가해도 된다면휴스톤 본부의 권면을 기쁨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절대위기의 순간에 나나 우리의 결정이 아닌 휴스톤 본부의 권면을 기쁨으로 받아들인 우주비행사의 결단은 위기를 극복한 지름길이었던 것입니다. 권위에 순종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이삭은 부친과 하나님의 권위에 결혼 문제를 맡겨 위기를 극복했습니다. 교회는 문제를 맡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맡은 자로부터 받은 결론을 자기를 위한 해답으로 받아들임으로 위기를 극복했습니다.
2. 안디옥교회에 또다른 위기가 다가왔습니다.
37 바나바는 마가라 하는 요한도 데리고 가고자 하나 38 바울은 밤빌리아에서 자기들을 떠나 한가지로 일하러 가지 아니한 자를 데리고 가는 것이 옳지않다 하여 39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서니
바울과 바나바는 참으로 귀한 사역자들입니다. 그들은 그대로 교회에 머물러 있을 수 없는 사명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선교에 대한 불타는 열정이었습니다.
`우리가 주의 말씀을 전한 각 성으로 다시 가서 형제들이 어떠한가 방문하자'
좋은 의도였습니다. 그렇지만 호사다마란 말이 있듯이 이 좋은 일에는 하나의 위기가 가로막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과거에서 발생한 문제로 바나바의 조카 마가로부터 온 것입니다. 교회지도자인 바울과 바나바가 선교정책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마가를 두고 심각한 의견의 불일치를 보인 것입니다. 이는 안디옥교회가 당면한 또다른 위기였습니다.
성경은 본문에서 불일치를 권면하고 있지 않습니다. 불일치를 옳다고도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모든 면에서 일치할 수는 없었습니다. 불일치는 모든 문제에 있어서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죄 아래 있는 모든 사람들 사이에 어쩔 수 없이 일어나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해도 의견은 항상 일치할 수 없는 것입니다. 양질의 하나님의 사람들에게도 불일치는 존재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불일치란 말의 의미는 '동일한 문제를 다른 관점에서 보는 것'을 말합니다.
교회지도자인 바울과 바나바가 선교정책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어떤 심각한 의견의 불일치를 보이고 있었습니까? 1차 선교여행 때, 도중하차하고 떠나버린 마가를 다시 선교팀에 받아들여야 하는 문제였습니다. 마가를 놓고 바나바와 바울이 다른 견해를 가졌던 것입니다. 누가 옳으냐 그르냐 판단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마가의 선교팀 가입문제를 바나바와 바울이 서로 다른 관점에서 보았다고 말하는 것이 더 옳은 말이지요.
불일치가 이루어지는 원인이 무엇입니까? 우리는 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떤 문제를 만났을 때, 우리는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질 수 있습니다. 서로 다른 의견을 말할 수 있습니다.
먼저 바나바의 생각을 말씀에서 봅니다.
37 바나바는 마가라 하는 요한도 데리고 가고자 하나
바나바는 마가를 어렸을 때부터 돌봐 준 마가의 삼촌입니다. 혈육의 입장에서 볼 때, 마가는 이해가 됩니다. 마가가 건강이나 의지가 약한 사람이었든, 바나바를 편협할만큼 사랑하는 마음에서였든 그는 마가를 데려가고 싶습니다. 그는 누구보다 마가의 장점을 잘 안은 것입니다. 또한 바나바의 '권위자'라는 이름에서 보듯이 '위로'의 은사를 가진 사람입니다. 마가의 연약함이 이해됩니다. 그러므로 그는 선교여행을 다시가겠다고 나서는 마가를 선뜻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나는 마가를 볼 때, 대견스럽기까지 합니다. 바나바는 누구에게나 결정적인 데서 힘이 되어주는 사람입니다.
[예화]
곽선희 목사님의 글을 읽으니까 충격적인 이야기를 소개해놓았습니다. 방탕하고 신실하지 못한 친구 한명이 군대에서 휴가를 나왔습니다. 그는 노는 일에 바빠서 귀대시간을 이틀이나 지나쳐 버렸습니다. 큰 일이 났습니다. 생각다 못한 그는 곽목사님께 돈을 빌리러 왔습니다. 무엇이라도 좀 사가지고 군대에 들어가서 무마시키려 한 것입니다. 그러나 누구도 그의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에 그가 군대에서 자살해 버렸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마지막 순간에 누군가 그에게는 그를 이해하여 주는 자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바나바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저도 목회하면서 절실히 느낀 점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너무나 이해가 잘되는 것을 알았습니다. 성장배경이나 가정배경이 유사할 때, 특히 그렇습니다. 약점은 물론 나쁜 점까지 이해됩니다.
그러나 바울은 다릅니다.
38 바울은 밤빌리아에서 자기들을 떠나 한가지로 일하러 가지 아니한 자를 데리고 가는 것이 옳지않다 하여
바울은 마가와 함께 자란 것도 아닙니다. 그는 어릴 때부터 매사를 철두철미하게 해낸 사람입니다. 마가와는 자란 곳도 다릅니다. 어려움을 극복하려는 의지도 다릅니다. 영적싸움터인 선교지에서 몸이나 마음이 좀 불편하다고 해서 팽개치고 돌아가 버리는 마가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냥 집에 있으라는 것입니다. 사역하기 쉬운 교회에서 봉사 잘하고 지내라는 것입니다. 구태어 고생스러운 선교지에서 자신도 힘들고 남까지도 힘빠지게 하는 일을 왜 구태어 하려느냐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두 사람 모두 다 이해가 됩니다. 두 사람의 의견에 모두 타당성이 있습니다. 다만 서로가 보고 이해하는 관점이 다름을 이해하게 됩니다. 불일치가 일어날 수밖에 없음을 이해하게 됩니다.
그러나 교회로 볼 때는 심각한 위기가 왔습니다. 선교정책에 있어 일대 혼선이 온 것입니다. 더구나 두 사람이 교회에서 갖는 영향력을 생각해볼 때, 이 문제는 반드시 지혜로운 답을 얻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선교 지도자는 모름지기 바나바와 같은 덕장이어야 합니다. 훗날 마가의 눈부신 활약을 보더라도 바나바가 마가를 덕으로 이해하고 함께 데리고 간 것은 잘한 일입니다.
그러나 바울의 강한 제동 또한 옳습니다. 옳은 말이지요. 선교지는 영적 전쟁터와 같습니다. 마가는 전쟁터에서 힘들다고 탈영해버린 탈영병과 같습니다. 세 사람이 싸워 나가는데, 한 사람이 탈영해버렸으니 얼마나 힘빠진 일이었겠습니까? 그런 사람은 분명 점검해야할 부분이 있는 것입니다.
이런 경우에 어떻게 해야 합니까? 누구의 의견을 따라야 하는 것입니까? 바나바가 바울과 계속적으로 아규를 해야 합니까? 내 관점만 고집하면서 말입니다.
어떻게 안디옥교회가 위기를 극복했습니까?
3. 교회는 양쪽을 모두 살렸습니다.
원래 바울과 바나바는 안디옥에서 유하여 다수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주의 말씀을 가르치며 전파하였습니다. 만일 그들이 계속적으로 다투었다면 교회는 엄청난 손실을 입었을 것입니다. 바울과 바나바 모두다 막대한 피해를 입었을 것입니다. 마가 또한 받은 상처가 컸을 것입니다.
'39 서로 심히 다투어'라는 말에서 보듯 그들이 마가에 대한 견해는 당시 너무나 달랐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때 두 사람은 계속적으로 싸우지 않았습니다.
피차 갈라서니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배 타고 구브로로 가고 40 바울은 실라를 택한 후에 형제들에게 주의 은혜에 부탁함을 받고 떠나 41 수리아와 길리기아로 다녀가며 교회들을 굳게 하니라
교회는 양쪽 다 살려버렸습니다.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배 타고 구브로로 선교하러 떠났습니다. 마가란 믿음의 거장이 탄생하는 순간입니다.
40 바울은 실라를 택한 후에 형제들에게 주의 은혜에 부탁함을 받고 (수리아와 길리기아로 다녀가며) 교회들을 굳게 하였습니다. 문제 해결을 위해 교회를 방문했던 실라는 유다와 함께 안디옥 교회에 파송되었던 분으로 여러 말로 형제를 권면하여 굳게 한 장본인으로 바울의 신실한 선교 동역자로 급성장하게 됩니다.
바나바는 바나바 대로 마가란 거목을 살렸습니다. 바울은 바울대로 위대한 선교사역의 발자취를 남겼습니다.
[예화]
수많은 Holyday Inn을 건축한 위리스 존슨이란 분의 이야기를 들어보셨습니까?
그는 40세가 되도록 제재소에서 일한 사람입니다. 불황기가 닥쳤을 때, 그의 소장은 그를 즉각 해고시켰습니다. 그는 위기 속에 내동갱이 쳐졌습니다.
이때 그는 살던 집을 저당잡히고 건축업에 발을 디뎠는데,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후에 그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 그때 나를 해고한 사람을 만나면 감사하고 싶습니다. ... 그것은 나를 위해 계획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셨습니다."
맺음말
요셉에게도 위기는 있었습니다. 형들의 미움을 받아 종으로 팔려갈 때, 보디발의 아내의 모함을 받아 감옥에 들어갔을 때가 최대의 위기였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다가온 위기는 국무총리로 가는 지름길이었습니다. 위대한 기회였습니다.
에스더에게도 위기는 있었습니다. 하만의 모함을 받아 뮤대민족이 몰살당할 위기였습니다. 그러나 온 민족과 함께 금식하며 기도하고 '죽으면 죽으리이다!' 왕 앞에 나아갔을 때, 위대한 기회가 왔습니다. 동족이 구원받고, 자신도 더 사랑받는 왕비가 된 것입니다.
다니엘에게도 위기는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루에 세 번씩 하는 기도와 하나님께 대한 전폭적인 믿음으로 위기를 극복했습니다.
다윗에게도 위기는 있었습니다. 사울에게서 당한 위기뿐만 아닙니다. 아들 압살롬의 배반은 참으로 치명적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신앙으로 위기를 극복했습니다. 다윗은 그에게 다가온 위기를 잘 관리함으로 역사에 빛나는 신앙인이 되었습니다.
당신은 어떠한 위기에 놓여 있습니까? 하나님이 주실 기회를 생각하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십시오. 권위를 받아들이십시오. 그리고 좋은 점들을 서로 살리십시오. "큰 물결 일어나 나 쉬지 못하나 이풍랑 인연 하여서 더 빨리 갑니다"는 찬송 가사처럼 당신에게 다가온 위기는 위대한 기회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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