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은 누구입니까?
그녀는 영국의 배우이자 모델이었습니다.
좋은 연기로 아카데미상, 토니상, 에미상, 그래미상 등을 받았습니다.
1999년에 American Film Institute에서 선정한 "지난 100년간 가장 위대한 100명의 스타"의 여성배우 목록 상단(3위)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그녀는 말년에 암으로 고통받으면서도, UNICEF의 홍보대사로 활동하며 아프리카 어린이들을 보살피는 사회봉사를 실천하였습니다.
배우로서의 삶 이상으로 현실의 삶 속에 아름다움을 지녔던 것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최근 그녀는 '가장 아름다운 영화 속의 여배우'로 선정되었습니다.
'오드리 헵번'입니다.
그녀는 신인 시절, 감독에게 연속 60회 NG를 받아도 마지막까지 상큼한 미소를 잃지 않으며 촬영에 임했습니다.
자신의 용모와 관련해선 “이런 얼굴로 영화배우가 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조차 해보지 못했다” 고 말했던 적도 있을 만큼 콤플렉스 덩어리였습니다.
그런 그녀가 자신의 콤플렉스를 극복하고서 한층 더 늘어난 매력적인 사람으로 우리 가운데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1929년 5월 4일 (벨기에)에서 태어나 1992.12.27일 세상을 떠나면서 그녀는 아들에게 다음과 같은 '유언'을 남겼습니다.
남겨진 유언은 사람들 사이에 회자되는 명언이 되어 있어서 여기 소개합니다.
아름다운 입술을 갖고 싶으면
친절한 말을 하라.
사랑스런 눈을 갖고 싶으면
사람들에게서 좋은 점을 보아라.
날씬한 몸매를 갖고 싶으면
너의 음식을 배고픈 사람과 나누어라.
아름다운 머리카락을 갖고 싶으면 하루에 한 번 어린이가 손가락으로 너의 머리를 쓰다듬게 하라.
아름다운 자세를 갖고 싶으면
결코 너 자신이 혼자 걷고 있지 않음을 명심해서 걸어라.
'''''''''''
기억하라!
만약 내가 도움을 주는 손이 필요하다면
너의 팔 끝에 있는 손을 이용하면 된다.
네가 더 나이가 들면 손이 두 개라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한 손은 너 자신을 돕는 손이고
다른 한 손은 다른 사람을 돕는 손이다.
로마의 휴일이란 명화로 전후 우리 민족에게도 사랑과 위로를 심어주었던 오드리 헵번의 유언처럼
우리는 우리 자신의 정체성과 걸맞는 삶의 양식으로
하나님 나라의 소중한 인물이 될 수 있습니다.
그를 우리는 '문안 받기에 합당한 인물'로 설정하고
어떻게 하면
그런 소중한 인물이 될 수 있는가를 생각해 볼 수 있기 원합니다.
1.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 안에서 동고동락하는 지체입니다.
[롬16:1-3]
1. 내가 겐그레아 교회의 일군으로 있는 우리 자매 뵈뵈를 너희에게 천거하노니
2. 너희가 주 안에서 성도들의 합당한 예절로 그를 영접하고 무엇이든지 그에게 소용되는 바를 도와 줄찌니 이는 그가 여러 사람과 나의 보호자가 되었음이니라
참된 일꾼의 존재감은 '우리'의식 속에 존재합니다.
"또한 내가 [우리의 자매]인 겐그레아 [교회의 일꾼] 뵈뵈를 추천합니다(1)."
바울이 (롬 16장)에서 가장 먼저 추천한 사람은 뵈뵈였습니다. 뵈뵈는 누구이며 바울이 왜 그녀를 제일 먼저 추천했을까요?
뵈뵈는 로마서 외에 다른 성경에 나오지 않기 때문에 자세한 정보를 알 수 없습니다.
다만 뵈뵈를 단순 호칭으로 부르지 않고 [우리 자매]라고 부르는 것을 통해 그녀의 존재감을 만날 수 있습니다.
바울은 뵈뵈를 "우리 자매 뵈뵈"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바울은 이러한 용어를 사용하여 그녀가 바울의 동역자로서 로마교회 성도들과 한 가족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용어는 바울이 그녀를 그리스도 안에서 동역자요, 한 가족으로 대접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한 바울이 "우리 자매"라고 부른 것은 그녀가 바울과 매우 친밀했으며, 또 성숙한 일꾼이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뵈뵈는 바울 서신을 로마교회에 전달하기 위해서 교회 추천을 받은 여인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로마서가 쓰여질 당시에는 (군인들을 제외하고) 우편제도가 없었기 때문에 개인이 직접 편지를 전달했습니다(행 18:27, 고후 3:1 참고). 이 경우에 편지를 전달하는 사람은 그 편지를 보낸 사람의 위임을 받았습니다.
관례대로 위임장을 소지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경우에 그가 가진 위임장은 편지를 전달하는 사람의 신원을 보증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이러한 관례를 따라서 바울도 자신의 편지를 전달하는 뵈뵈를 "추천"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롬 16:1-2)은 일종의 바울의 위임장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왜 뵈뵈에게 로마서를 위임하였을까요?
'우리'이기 때문입니다.
뵈뵈는 원래 그 이름을 볼 때, 바울과는 '우리가 아닌' 사이였습니다. 이방신 아폴로에게 주어졌던 이름인 "포이보스" (Phoibos )의 여성형입니다. 이러한 이름을 보면 아마도 그녀는 복음을 믿기 전에 이방 신을 섬기던 여인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그녀는 복음을 믿음으로, 겐그레아 교회의 일꾼이 되었고, 바울 사도와 우리란 교회 울타리에 들게 되었습니다.
그 후에 그녀는 교회에서 신임을 받았으며 바울의 편지를 전달하는 임무를 맡게 되었습니다.
뵈뵈는 우리가 됨으로 인해 시간적으로나 물질적으로 희생이 있을 수 있었습니다.
당시 여행의 위험을 생각할 때, 뵈뵈 외에 다른 몇 사람이 그녀와 동행했을 수 있었겠지요. 뵈뵈가 로마까지 가는 여행 경비를 담당했다면 어느 정도 재물이 소모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사도와 우리가 됨으로 그녀는 아주 먼 로마까지 여행의 위험과 물질적 손해를 감수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 서신을 전달하는 일이 오늘날 우리들에게까지 복음을 전달하는 다리가 될 것은 상상도 못했을 것입니다.
뵈뵈 자매는 사도의 위임장 같은 존재로 추천받았습니다.
저는 우리에 대한 두 가지 좋은 추억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는 드보라가 세 살쯤 되었을 때 일입니다. 우리 목사님 어디 있지?
나도 목사다.
너는 목사 아니야.
‘나도 목사인데..... .’ 말씀하시는 목사님들 앞에서 우리 목사님을 찾는 어린 드보라의 모습은 평생을 두고 남을 감동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통해 사례비를 주시는데요. 저는 받을 때마다 많은 감동을 받습니다. 명필은 아니지만 볼펜으로
'우리 목사님'
이라고 봉투에 쓰여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우리가 되는 것은 참으로 기쁘고 감사한 일입니다.
우리는 사도신경을 외울 때
하나님의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를 믿사오니! 고백합니다.
주기도문을 함께 암송하여 봅시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우리가 우리 죄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라고 기도드립니다.
기도할 때, 여러분의 소중한 사람들을 이름 앞에 우리를 넣어서 올려드리기 바랍니다.
우리 남편 [ ]에게 은혜를 주옵소서
우리 아이 [ ]에게 은혜 주옵소서
우리 [ ]집사님,
우리 [ ]장로님,
우리 [ ]성도님,
우리 [ ]선교사님,
우리 고국,
우리 북한 동족
위하여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줄 압니다.
참된 존재감은 바로 그 존재를 우리로 받아들이고 우리로 인정하는 데서 오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나는 지금 성령님과 우리가 되어 있습니까?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님들과 우리가 되어 있습니까?
주님의 몸된 교회에서 충성하는 주님의 일꾼들과 우리 관계입니까?
우리로 충성하는 뵈뵈와 같은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은 우상을 섬기던 한 여인을 변화시켜 이렇게 위대한 일을 위해서 사용하셨습니다. 그녀가 로마교회에 전한 이 서신은 후에 기독교 역사에서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서신이 되었습니다.
[롬16:3-4]
3.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들인 브리스가와 아굴라에게 문안하라
4. 저희는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의 목이라도 내어놓았나니 나 뿐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저희에게 감사하느니라
'나의 동역자'란
내가 없어도 내가 있는 것처럼 사역이 잘 되는 경우에 사용하는 말입니다.
내가 없는데도 내 생각처럼 일이 잘 진행됩니다.
내가 있는 것처럼 일이 진행됩니다.
이런 사람이 바로 '나의 동역자'입니다.
브리스가와 아굴라가 바로 그런 사도 바울의 동역자였습니다.
브리스가와 아글라는 로마에 있는데 말입니다.
그들이 사도 바울이 로마에 있어서 일하는 그런 열매가 맺히는 것이지요.
왜입니까?
브리스가와 아굴라가 사도 바울의 '나의 동역자'로 일하였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이전에 로마교회를 방문한 적이 없었습니다.
당시에는 오늘날과 같은 통신망이 없었습니다.
핸드폰은 커녕 전화조차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로마 교회를 한 번도 방문해본 적이 없는 바울 사도가 로마서와 같은 복음을 로마 교회에 보낼 수 있겠습니까?
이 로마서가 기독교 역사에 얼마나 큰 영향력을 미쳤는가를 아는 우리로서는 놀라게 되지요.
바울은 로마교회에 있지 않았지만, 로마교회에 있으면서 사역한 이상으로 그 방대한 영역에서 영향력을 미치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어떻게 그런 힘있는 사역이 가능했을까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인 브리스가와 아굴라"
브리스가와 아굴라가 사도 바울의 '나의 동역자'로 일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거하는 같은 믿음을 가진 동역자
꿈(비전)이 같은 동역자
생각이 같은 동역자
마인드가 통하는 동역자
행동이 같은 동역자
구태어 바울 사도가 로마 교회에 없어도 바울 사도가 목회한 것과 다를 것이 없는 그런 마음과 몸이 하나된
그런 '나의 동역자'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에게는 이런 '나의 동역자'들이 곳곳에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로마서 16:9]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동역자인 우르바노와 나의 사랑하는 스다구에게 문안하라
[로마서 16:21]
나의 동역자 디모데와 나의 친척 누기오와 야손과 소시바더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고린도후서 8:23]
디도로 말하면 나의 동무요 너희를 위한 나의 동역자요 우리 형제들로 말하면 여러 교회의 사자들이요 그리스도의 영광이니라
[빌립보서 4:3]
또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한 자 네게 구하노니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부녀들을 돕고 또한 글레멘드와 그 위에 나의 동역자들을 도우라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
[빌레몬서 1:1]
그리스도 예수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바울과 및 형제 디모데는 우리의 사랑을 받는 자요 동역자인 빌레몬과
[빌레몬서 1:24]
또한 나의 동역자 마가, 아리스다고, 데마, 누가가 문안하느니라
바울 사도는 자기 자신이 하나님의 동역자라는 확신으로 충만했습니다.
그리고 그와 함께 사역하는 동역자들을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일했습니다.
[고린도전서 3:9]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
바울 사도는 이런 충성된 동역자들과 함께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갔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그들을 "동역자"라고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이 로마교회에 이렇게 귀한 '나의 동역자'들을 갖고 있었다는 것,
이것이 하나님의 놀라운 나라를 이루게 한 비결입니다.
아마도 그들은
선교여행 중에 만난 사람들도 있습니다
바울을 통해서 예수를 믿게 된 사람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바울과 함께 선교사역에 참여한 동역자들도 있었습니다.
바울과 함께 감옥에 갇혔던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들은 바울을, 바울은 그들을 생명처럼 사랑했고
그들 또한 바울의 형편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나의 동역자!'
바울 사도는 브리스가와 아굴라를 이렇게 부르고 소개하였습니다.
주님께서 나를 이런 다감한 호칭으로 불러준다면 얼마나 큰 영광입니까?
누군가가 나를 이렇게 인정한다면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우리는 이러한 모습을 통해서 성도와 동역자를 사랑하는 바울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모세에게는 모세의 입과 같은 동역자 아론이 있었습니다.
모세의 손발과 같은 동역자 여호수아와 갈렙이 있었습니다.
다윗에게는 요나단이라는 동역자가 있었습니다.
자기 생명보다 더 사랑하는 동역자가 있었습니다.
다니엘에게는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란 동역자가 있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
저는 이 말을 누구에게 붙여 부르는 것이 어울릴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
여러분은 이런 동역자를 가지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누구에게 이런 명칭을 붙여 불러보고 싶으십니까?
그들은 사도의 목숨을 위해 자기의 목을 내놓는 위험을 감수했습니다.
4절]
저희는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의 목이라도 내어놓았나니
바울의 복음 사역을 조력(助力)함에 있어서 브리스가와 아굴라의 헌신이 어느 정도인지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자기의 목이라도 내어 놓았나니'로 번역된 헬라어 원래 뜻은
'사형 집행자의 도끼 밑에 자기 목을 내어 놓다'
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그들이 핍박의 손길에서 바울의 생명을 구하고자 극단적인 위험을 겪었음을 나타내는 표현이기도 합니다(John Murray, Dunn).
[동고동락]
'同苦同樂'이란 성어가 마음에 와 닿습니다. 다른 사람들과 기쁨과 슬픔(joys and sorrows)을 나누는(share) 동고동락입니다. ; 달콤함뿐이 아니라 씁쓸한 고통까지 나누는 (share the sweets[pleasures] and bitters[pains] of life)동고동락 말입니다.
위정자들이 백성들과 동고동락하고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동고동락하신 것처럼, 성도들도 예수님과 동고동락할 일입니다.
교우들은 복음 전하는 자들과 동고동락하고,
성도들간은 말할 것도 없고 교회 밖의 사람들과도 동고동락함으로, 선한 일에 열심하는 하나님의 친백성이 되기를 원합니다.
"머라이어 캐리라고 하는 가수를 아세요?" 제가 주은경전도사님께 이렇게 물었더니 모르는 사람은 간첩이예요 하더라구요. 이분은 중학교 들어가기 전에 교회학교 교사에게 자기가 말했대요.
"선생님 나 앞으로 가수가 될래요."
"너 정도로 노래 부르는 사람들은 길가에 수도 없이 많다. 너는 착각하지 말라."
흑인 가운데 앤더슨이라고 하는 분은 인류역사에 백년에 한 명 나올까 말까 하는 최고의 성악가랍니다. 흑인들이 존경하는 분이 마틴 루터 킹과 이 앤더슨이예요. 그녀가 맨하탄에서 음악 발표회를 하니까 음악 평론가들이 하나도 좋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꼭 남자 같다. 남자음성 같다. 앨토 인지 소프라노인지 분간도 못하겠다. 온통 그렇게 말했어요. 그러나 그 어머니만은 위로를 했습니다.
"너는 낙심치 말아라. 하나님이 너와 함께 하시면 훌륭한 인물이 될 수 있다."
사람은 누구나 어려운 때가 있어요. 서로 격려하고 아픔은 함께 나누는 동고동락은 삶의 본질입니다.
제 개인적 바램으로는 우리 민족은 특히 북한과 동고동락하는 일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북한을 일러 거대한 감옥에 갇힌 동족이란 표현에 동감을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여행 중 강도만난 사람처럼 원치 않는 고통을 당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먹을 식량이 부족합니다.
대부분의 서민들은 너무 춥습니다.
생필품의 절대부족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북한 위정자들에 대한 비난의 화살이 보를 이룹니다.
그러면 북미주(미국, 캐나다)나 고국에 사는 우리 동족들은 비난만 하고, 동족의 고통에서 자유해도 될까요? 저는 동고동락이란 측면에서 회개할 것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들의 낭비는 도를 넘습니다. 우리가 필요이상으로 허비하는 음식과 에너지만 절약해 나누어도 북한 동족은 배고프거나 춥지 않을 수 있습니다. 우리 역시 북한 위정자들 못지 않게 비난받아 마땅한 존재라는 점에 몇 사람이나 동의할 것인지........ .
우리가 북한을 편애하는 까닭은 동족인 이유가 크지만, 우리에겐 동고동락한 분들로 인하여 기적을 체험한 역사가 있기 때문입니다. 한 선교사님의 동고동락하신 사례를 나누겠습니다.
[예화]
플로렌스선교사(Florence E. Root)의 한국이름은 '유화례입니다. 안영로목사는 1994년 '메마른 땅에 단비가 되어'라는 제목의 책에 유화례선교사의 사역들과 함께 그와의 추억들을 듬뿍 담았습니다. 이 책은 1997년 영문으로도 변역됐으며, 안영로목사는 유화례선교사를 파송해 준 미국북장로교(PCUSA)에 대한 감사함을 담고 있습니다.
교육선교를 펼쳤던 유화레선교사의 사역이 날로 확장되어 가던 시절 전쟁이 터졌습니다. 당시 각국 선교사들은 일본으로 몸을 피하기 위해 부산항으로 몰려 들었습니다. 목사와 선교사들을 가만히 두지 않았던 공산당을 우선 피해야 한다는 절박함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유화례선교사는 한국땅을 지켰습니다. 이유는 하나였습니다. "일제시대에 신사참배를 반대하다 결국 귀국선에 몸을 실었는데 다시 돌아와 보니 선교지의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었어; 전쟁이 났다고 피하면 또 그런 아픔을 겪어야 할 거야. 난 가지 않겠어."
이렇게 선교지에 남았던 유화례선교사는 고아들을 돌보면서 사역을 이어갔다전쟁 중 공산당에게 쫓겨 죽을 고비를 몇번이나 넘기는 고초를 겪었지만 흔들림없이 선교지를 돌보았습니다.
유목사님은 유화례 선교사님의 후원으로 목회를 행복하게 하고 있습니다. 그 은혜를 담아 미북장로교 양로원을 찾아 노년을 보내는 유화례선교사님께 용돈을 드렸습니다.
그분이 소천하신 후, 그 용돈까지도 한국 신학생 후원장학금으로 보내진 것을 알았습니다.
열악한 한국 민족과 동고동락하며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 이런 밀알들이 계셨기에 오늘 날의 한국과 교회들이 있는 것입니다.
형제간에, 교우간에, 동족간에, 이민족에 이르기까지 동고동락함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넘치게 받는 한 해가 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동고동락하는 일꾼은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그 정체성이 분명하여집니다.
2. 수고하는 일꾼으로 살 일입니다.
6절]
너희를 위하여 많이 수고한 마리아에게 문안하라
12절]
주 안에서 수고한 드루배나와 드루보사에게 문안하라 주 안에서 많이 수고하고 사랑하는 버시에게 문안하라
일꾼은 교회를 위해 수고를 많이 합니다.
[6절]
너희를 위하여 많이 수고한 마리아에게 문안하라
1] 마리아는 로마에 있는 유대인 출신의 기독교인입니다(Robertson, Dunn). 신약성경에는 마리아라는 동일한 이름을 가진 7명의 여인이 나옵니다.
(1) 예수의 어머니(마1:16;막 6:3;눅 1:41),
(2) 막달라 마리아(마 27:56;막 15:40;눅 8:2),
(3) 야고보의 어머니(마 27:56;막 15:40),
(4) 글로바의 아내(요 19:25),
(5) 마르다의 동생(눅 10:39; 요 11:1),
(6) 마가 요한의 어머니(행 12:12),
마지막으로 본절에 나타난 마리아입니다.
신약성경에 나타난 이들은 한결같이 신앙이 훌륭한 여인들이었습니다.
본절에 소개된 마리아에 대해서 '너희를 위하여 많이 수고한'이란 표현 이외에 자세한 언급을 하고 있지 않지만, 이 간단한 소개로도 우리는 마리아의 귀한 점을 알 수 있습니다.
(1) 로마 교회 초창기(草創期)의 한 회원입니다.
(2) 로마 교회가 그녀의 수고와 헌신에 힘입은 바가 큽니다(Murray)
(3) 뵈뵈나 브리스가와 아굴라처럼 활동적으로 바울의 사역에 참여해 왔을 뿐만 아니라 많은 다른 사람처럼 바울의 배후에서 그의 선교 사역을 헌신적으로 지원해왔습니다(Godet).
교회는 이런 수고한 지체들에 의하여 힘있게 발전되어 왔습니다.
[로마서 16:12]에는 주 안에서 수고한 형제 자매들에게 문안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주 안에서 수고한 드루배나와 드루보사에게 문안하라
주 안에서 많이 수고하고 사랑하는 버시에게 문안하라
2] 사도 바울은 어떤 사람보다 주님을 위해 수고를 많이 하였습니다.
[고린도후서 11:23]
저희가 그리스도의 일군이냐 정신 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도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번 죽을뻔 하였으니
3] 사도 바울에게 있어 제자로 인정하는 기준은 주를 위한 수고였습니다.
[빌립보서 2:22]
디모데의 연단을 너희가 아나니 자식이 아비에게 함같이 나와 함께 복음을 위하여 수고하였느니라
[빌립보서 2:25]
그러나 에바브로디도를 너희에게 보내는 것이 필요한 줄로 생각하노니 그는 나의 형제요 함께 수고하고 함께 군사된 자요 너희 사자로 나의 쓸 것을 돕는 자라
4] 주를 위해 수고한 지체들을 귀하게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데살로니가 교회에 주는 편지에도 수고하는 자들을 알아줄 것을 부탁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12]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 가운데서 수고하고 주 안에서 너희를 다스리며 권하는 자들을 너희가 알고
[디모데전서 5:17]
잘 다스리는 장로들을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을 더할 것이니라
5] 하나님께서도 성도의 주님을 위한 수고를 아십니다.
[요한계시록 2:2]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수고는 헛되지 않습니다.
[고린도전서 15:58]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
톨스토이의 세가지 질문
첫째, 일생 중 가장 중요한 때는 언제인가?
둘째, 가장 중요한 사람은 누구이며,
셋째,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인가? 이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답을 하였습니다.
가장 중요한 때는 바로 지금이고,
가장 중요한 사람은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이며,
가장 중요한 일은 지금 하고 있는 일이다.
가장 중요한 일을
가장 중요한 분을 위해
지금
수고할 수 있는 일꾼은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땀흘리며 수고하는 일꾼은 참 매력있고 아름답습니다.
예화]
중국에 선교사로 간 허드슨 테일러가 1847년 고국인 영국으로 돌아왔을 때, 다시는 걸을 수 없을지도 모르는 위험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수개월 동안 침대에 누운 채, 머리맡에 달린 줄을 잡고서야 간신히 옆으로 몸을 움직일 수 있었습니다. 너무도 허약했기 때문에 편지도 쓸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허드슨 테일러는 편지를 받아쓰게 했습니다. 침대 발치 벽에는 커다란 중국 지도를 걸어 놓고,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계획을 구상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허드슨 테일러는, 아직 들어가지 못한 중국 내륙에 있는 9개의 성에서 개척 선교를 할 18명의 선교사 후보생을 모집하였습니다.
누군가와 시간을 많이 보내면, 그 사람의 꿈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매일 하나님과 대화하면서 우리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꿈을 이해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께서 제게 원하시는 꿈은 무엇입니까?
이 세상을 향한 주님의 사역 중에서 제사 감당해야 할 부분은 무엇입니까?'
허드슨 테일러는 하나님과의 견고한 친구 관계를 쌓아 가면서, 그를 향한 하나님의 꿈을 이해하였습니다. 그를 향한 하나님의 꿈이 무엇인지를 알자,
허드슨 테일러는 잘 보이는 벽면에다 이 계획을 붙여 놓았습니다.
어느 것도, 심지어는 병마도, 중국 내지를 복음화하려는 그의 꿈을 막지 못했습니다.
허드슨 테일러의 경우,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하나님의 목표을 추구하는 것이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는 것을 보여준 좋은 모범이 됩니다.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사랑이 자랄수록, 하나님의 관심사는 우리의 관심사가 됩니다.
[예화]
옛날 어떤 부유한 나라에 강하고 지혜로운 왕이 살고 있었다.
이 왕은 아름답고 총명한 자녀들을 많이 두고 있었다.
왕의 최대 관심사 중 하나는
그의 자녀들이
백성들을 사랑하고 그들을 잘 이해하고
그들에게 지혜로운 통치를 베푸는 것이었다.
그래서 왕은 그의 자녀들이 아직 철이 들기 전에
그들을 돌볼 하인 가족을 한 집씩 묶어서
각기 백성들 사이로 가서 살게 하였다.
그들의 신분은 극비 사항이었기 때문에
아무도 그들이 왕의 자녀들인 것을 눈치 채지 못했다.
어떠한 특권도 누리지 못하게 했으며
도리어 평균 이하의 생활수준을 유지하도록 하였다.
때가 되고 기한이 차면
다시 왕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동안 백성들 사이에서 겪었던 일들은
백성들을 사랑하고 이해하고 잘 다스리도록 하는 밑거름이 될 것이었다.
왕이 가장 사랑하는 막내아들도 예외 없이 이 과정에 참여해야 했다.
하방(下方)의 삶은 여느 백성들과 다를 게 없었다.
모든 게 부족하고 도리어 더 불편했다.
특히 어리광만 부리다가 갑자기 하방을 당하게 된 막내 왕자는 더욱 힘들어했다.
어려서 백성들 사이로 들어왔기 때문에 궁궐에서의 기억은 점차 희미해지고 있었다.
수십 년 동안 백성들 사이에 살면서 어느덧 그들의 삶에 동화되고 있었다.
여느 백성들처럼 사소한 이익과 천박한 욕구에 휘둘릴 수도 있었다.
남이 가진 것과 나의 부족한 것을 끊임없이 비교하면서 괴로워할 수도 있었다.
좀 더 나은 옷, 좀 더 맛있는 음식, 좀 더 멋진 집을 가지기 위해
남을 속이고 착취하거나 심지어 희생시킬 수도 있었다.
이 무명의 고리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었지만,
그는 다행히 대체로 그러지 않았다.
딱 한 가지 점에서 막내왕자는 다른 일반 백성과 달랐기 때문이다.
그것은,
아련하지만 결코 지워질 수 없는 왕궁 생활의 기억이었다.
아련히 남아있는 그 기억은 그가 지금 보는 모든 것의 가치를 알 수 있게 만들었다.
백성들이 좀 더 가지고자 비싼 값을 치루는 옷과 음식과 집들은
왕궁에서 공짜로 주어지는 것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나 다름없었다.
좀 더 비싼 집과 좀 더 높은 지위가
왕이 원하는 바라는 거짓 주장은 그를 유혹할 수 없었다.
왕궁 보다 비싼 집이 어디 있으며, 왕자보다 높은 지위가 어디 있으랴.
욕망의 분출에 만사를 맡기면
왕의 지배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터무니없는 야망도
강하고 지혜로운 왕이 통치하고 있는 한 부질없는 것이었다.
막내 왕자의 관심사는 그를 다시 왕궁으로 부르실 왕의 마음이었다.
그가 나를 다시 부르실 것인가?
내가 과연 그의 부름에 합당한 자인가?
나는 그가 원하는 바대로 하고 있는 것인가?
그의 즐거움이야말로 곧 나의 진실한 즐거움이 아니었던가?
만일 내가 인애와 공평과 정직을 베풀기 위해
고통을 당하는 것이 아버지의 뜻에 합당하다면
능히 그 일을 감당하겠다는 마음만으로도 아버지는 기특하게 여기실 터이었다.
아직 어리고 철은 덜 들었지만
그 기억이 그가 취할 태도를 말해주고 있었다.
미래를 약속하는 과거의 기억이 그의 현재 안에 깊이 자리 잡고 있었다.
아무 것도 특별히 주어지지 않았지만
막내 왕자는 그 기억 하나 만으로
백성들 사이에 머무는 동안 삶의 품위를 유지할 수 있었다.
(백종국 / 경상대학교 교수, ; 막내 왕자 이야기)
주 안에서 일꾼에게 일어나는 일이 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라는 정체성입니다.
나에겐 가야할 나라가 있습니다.
이곳에서의 무엇도 그 나라에서의 짝퉁일 뿐입니다.
그는 세상이 이기지 못할 사람입니다.
일꾼이 그리스도 안에 거할 때, 분명한 정체성을 가지고 일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반드시 아버지 하나님 앞에 옳다 인정함을 받게 됩니다.
'나의 복음'
오늘 날 세상에는 헤아릴 수 없는 많은 '나의 복음'이 있습니다.
그것이 중요하다고 생각되기 때문에 신문마다 앞을 다투어 전하는
그래서 그것이 내 삶을 움직이는 그런 나의 복음이 있습니다.
세상은 '나의 복음을 몇 차례고 거듭하여 전해줍니다.
'나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 수많은 돈을 투자합니다.
'나의 복음'을 얻기 위해 수많은 돈을 투자합니다.
'나의 복음'을 위해 해설을 붙입니다.
'나의 복음'을 위해나름대로의 그럴듯한 논평을 붙여요.
그리고 '나의 복음'에 반응합니다.
환율이 출렁이고
주가가 폭락합니다.
작년9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를 위한 환상적인 촛불집회소식을 보았습니다.
경제란 속에서 미네르바란 익명의 사람이 많은 사람들에게 던진 메시지에 많은 사람들이 현혹된 것을 들었습니다.
그 내용이 어떤 것이었든지 간에 그들을 움직인 까닭은 그 소식이 '나의 복음'이 된 결과지요.
행20:24 에는 사도 바울의 비장한 생의 목적이 담겨 있습니다.
"24.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그는 왜 이 복음에 생애를 걸었을까요?
그것을 복음이라고 생각하고 반응하였기 때문입니다.
다메섹에 가는 핍박자로서의 바울은 세상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바울은 [성경]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후, 예수님과 그분의 가르침은 그의 복음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복음을 위해 그의 모든 재물을 내놓았습니다.
그리고 그 복음을 위해 그의 모든 시간을 내놓았습니다.
그리고 그 복음을 위해 그의 모든 건강을 내놓았습니다.
그리고 그 복음을 위해 그의 모든 인생을 내놓았습니다.
그리고 그 복음을 위해 그의 모든 생명까지 내놓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가르침을 '나의 복음'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나에게 있어서 "나의 복음"은 무엇일까요?
나의 복음을 위해 무엇을 투자하고 있는 것일까요?
나의 복음을 위해 나는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 것일까요?
헬렌 G.제퍼슨은 이런 시를 남겼습니다.
때로는 갈라진 구름 사이로
태양의 섬광이 돌연히 비칠 때
커튼은 재빠르게 닫히운다.
태양이 거기 있어 조용히 비칠 때
하늘의 커튼은 기도의 사람을 덮는다.
나타나신 위엄이 하도 눈부시어
사람들은 그 광휘에 참지 못하고
눈을 가리고 만다.
그 영상이 사라질 때
그를 본 사람들은 다시는 그 영상을 의심치 않는다.
태양이 떠오르는 것을 본 사람이 태양의 존재에 반응하는 것같이
예수 그리스도와 그 가르침을 '나의 복음'으로 받아들인 사람은 반응합니다.
[마무리하는 말]
Angela EIwell Hunt의 '세 나무 이야기'(The Tale of Three Trees, 1989) 소개합니다.
"긍정의 힘" ( Your Best Life Now 조엘 오스틴 지음)에서 85p~87p에서 인용한 동화입니다
올리브나무와 떡갈나무, 소나무는 각자 특별한 존재가 되겠다는 큰 꿈을 품고 있었다. 올리브나무는 정교하고 화려한 보석 상자가 되어 그 안에 온갖 보물을 담는 꿈을 꾸었다. 어느날 나무꾼이 숲의 수많은 나무 중에서 그 올리브나무를 선택하여 베었다. 올리브나무는 아름다운 보석 상자가 될 기대에 부풀었지만, 더럽고 냄새나는 짐승의먹이를 담는 구유가 되었다. 가슴이 무너져 내리고 꿈이 산산조각이 났다.자신은 가치가 없고 천한 존재라는 느낌이 들었다.
떡갈나무도 위대한 왕을 모시고 바다를 건널 거대한 배의 일부가 되겠다는 꿈에 부풍러 있었다. 그래서 나무꾼이 자신을 베었을 때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나무꾼이 자신을 조그만 낚싯배배를 만들고 있음을 알았다. 떡갈나무는 슬픔의 눈물을 흘렸다.
높은 산의 꼭대기에 사는 소나무의 유일한 꿈은 언제나 높은 곳에 버티고 서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위대한 창조 섭리를 일깨워 주는 것이었다. 그런데 순식간에 번개가 치더니 소나무를 쓰러 뜨리면서 그 꿈을 빼았아 버렸다. 얼마후에 나무꾼이 쓰러진 소나무를 가져다가 쓰레기 더미에 던져 버렸다.
세 나무는 모두 자신의 가치를 상실했다는 생각에 크게 실망했다. 세 나무의 꿈은 모두 사라졌다. 하지만 하나님은 다른 계획을 갖고 계셨다. 오랜 세월이 흘러 마리아와 요셉이 아이를 낳을 곳을 찾지 못해 혜매고 있었다. 그들은 마침내 마구간을 발견했고, 아기 예수가 태어나자 구유에 누였다. 이 구유는 바로 오리브나무로 만든 것이었다. 올리브나무는 귀중한 보석을 담고 싶었으나. 하나님은 더 좋은 계획을 갖고 계셨다. 올리브나무는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보무인 하나님의 아들을 담게 되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예수님은 키와 지혜가 자라가셨다. 어느 날 예수님은 호수 건너편으로 건너가기 위해 크고 멋진 배가 아닌, 작고 초라한 낚싯배를 선택하셨다. 이 낚싯배는 그 떡갈나무로 만든 것이었디.떡갈나무는 위대한 왕을 태우고 바다를 건너고 싶었으나 하나님은 더 좋은 계획이 있으셨다. 이제 떡갈나무는 만왕의 왕을 태우게 되었다
또 몇년이 흘렀다 몇몇 로마 병사들이 그 소나무가 버려진 쓰레기 더미에서 뭔가를 부지런히 찾고 잇었다. 이에 소나무는 곧 땔감 신세가 되겠거니 생각했다. 하지만 놀랍게도 병사들은 소나무를 작은 두 조각으로 쪼개 십자가를 만들었다. 그리하여 그 소나무에 예수님이 매달리시게 되었다. 이 소나무는 오늘날까지도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사랑과 연민을 보여 주고 있다 "
[설교본문]
1. 내가 겐그레아 교회의 일군으로 있는 우리 자매 뵈뵈를 너희에게 천거하노니
2. 너희가 주 안에서 성도들의 합당한 예절로 그를 영접하고 무엇이든지 그에게 소용되는 바를 도와 줄찌니 이는 그가 여러 사람과 나의 보호자가 되었음이니라
3.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들인 브리스가와 아굴라에게 문안하라
4. 저희는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의 목이라도 내어놓았나니 나 뿐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저희에게 감사하느니라
5. 또 저의 교회에게도 문안하라 나의 사랑하는 에배네도에게 문안하라 저는 아시아에서 그리스도께 처음 익은 열매니라
6. 너희를 위하여 많이 수고한 마리아에게 문안하라
7. 내 친척이요 나와 함께 갇혔던 안드로니고와 유니아에게 문안하라 저희는 사도에게 유명히 여김을 받고 또한 나보다 먼저 그리스도 안에 있는자라
8. 또 주 안에서 내 사랑하는 암블리아에게 문안하라
9.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동역자인 우르바노와 나의 사랑하는 스다구에게 문안하라
10. 그리스도 안에서 인정함을 받은 아벨레에게 문안하라 아리스도불로의 권속에게 문안하라
11. 내 친척 헤로디온에게 문안하라 나깃수의 권속중 주 안에 있는 자들에게 문안하라
12. 주 안에서 수고한 드루배나와 드루보사에게 문안하라 주 안에서 많이 수고하고 사랑하는 버시에게 문안하라
13. 주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루포와 그 어머니에게 문안하라 그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니라
14. 아순그리도와 블레곤과 허메와 바드로바와 허마와 저희와 함께 있는 형제들에게 문안하라
15. 빌롤로고와 율리아와 또 네레오와 그 자매와 올름바와 저희와 함께 있는 모든 성도에게 문안하라
16. 너희가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 그리스도의 모든 교회가 다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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