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4 March 2015

로마서16:13-20 주 안에서 나누는 문안이란 보화

[들어가는 말]


     인사를 잘 나누어서 행복했던 경험이 있으십니까?
저는 연길과기대를 방문했다가 인사를 잘하는 학생들로 인하여 기쁨과 감동을 받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제가 알기로 연길과기대 학생들은 세계에서 제일 인사를 잘하는 학생들인 것 같습니다.
따뜻하고 친절한 그들의 인사를 받고 복도를 지나가면서 얼마나 훈훈하고 행복하였는지 알 수 없습니다.
    오늘은 이런 훈훈한 인사보다 더한 안부를 올리는 일에 대하여 성경이 가르치는 말씀을 나누기 원합니다.



     1. 안부는 인사 중에 가장 격조 높은 인격의 표현입니다.


    롬 16장에는 16번이나 '문안'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문안하라('아스파사스데')는 명령은 "로마 성도 여러분, (     )에게 문안해주십시오!" 이런 표현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주님의 몸된 교회를 위해 충성한 분들에게 교우 모두가 사랑과 경의를 표현하라 명령형입니다(1:7;고전 1:1-3;고후 1:2;갈 1:2, 3).

     1] 인사는 교회에서 교우들 간에 나눌 수 있는 참 아름다운 사랑의 표현입니다.

     인사를 통해 공동체 안에서 누리는 풍성한 하나님의 사랑을 형제들에게 표현하는 것입니다.
단순한 인사는 누구나 나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나누어야 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안녕하십니까?"
"밤새 강건하셨습니까?"

이런 정도의 예의 바른 인사는 자주 나눌수록 좋습니다.


     2] 이런 인사에 좀더 깊은 존경과 위로와 믿음과 사랑을 담아 친숙하게 표현하는 방법이 '문안'입니다.

     이 문안은 단지 인사치레성 인사가 아닙니다.
오늘 문안하라는 말은 그런 의례적인 인사가 아닙니다.

    [누가복음 1:41]에는 마리아가 엘리사벳에게 문안합니다.
    그런데 그 때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누가복음 1:41+44]

     엘리사벳이 마리아의 문안함을 들으매 아이가 복중에서 뛰노는지라 엘리사벳이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보라 네 문안하는 소리가 내 귀에 들릴 때에 아이가 내 복중에서 기쁨으로 뛰놀았도다

     복중에 있던 아기 세례 요한이 복중에 계시던 아기 예수님 어머니 마리아의 문안을 받았을 때 뛰노는 것이었습니다.


     3] 로마서 16장에서 문안하라고 명함을 받는 사람들은 사도가 특별한 로마 교회 성도들을 향한 것입니다.

    로마교회에는 칭찬과 격려와 감사를 담은 인사를 해야 할 필요가 있었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문안은 구체적인 이름이 불려지고 있습니다.
구체적인 그들의 사역이 적혀 있습니다.
하나님의 문안은 받아야 할 가치가 있는 사람들에게 주신 것입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몇 사람의 일꾼들을 지목하고 그들이 남긴 아름다운 사역을 소개하며 은혜를 받은 그런 사람들 말입니다.

     [로마서 16:3]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들인 브리스가와 아굴라에게 문안하라

       [로마서 16:9]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동역자인 우르바노와 나의 사랑하는 스다구에게 문안하라

     브리스가와 아굴라가, 그리고 우르바노가 얼마나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훌륭한 동역을 하였습니까? 그들은 하나님의 문안을 받아야 마땅한 지체들입니다.

    [로마서 16:5 ]

     또 저의 교회에게도 문안하라 나의 사랑하는 에배네도에게 문안하라 저는 아시아에서 그리스도께 처음 익은 열매니라
 
      에베네도가 문안을 받은 이유는 '저는 아시아에서 그리스도께 처음 익은 열매'이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16:6]

     너희를 위하여 많이 수고한 마리아에게 문안하라

     [로마서 16:12]  

주 안에서 수고한 드루배나와 드루보사에게 문안하라 주 안에서 많이 수고하고 사랑하는 버시에게 문안하라
 
 
     마리아,드루배나와 드루보사에게 문안을 한 것은 주 안에서 성도를 위해 많은 수고를 하였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16:7]

     내 친척이요 나와 함께 갇혔던 안드로니고와 유니아에게 문안하라 저희는 사도에게 유명히 여김을 받고 또한 나보다 먼저 그리스도 안에 있는자라
 
      안드로니고와 유니아에게 문안한 까닭은 그와 함께 갇혔고, 저희는 사도에게 유명히 여김을 받았고, 또한 바울 사도보다 먼저 그리스도 안에 있는자였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16:10]
 
     그리스도 안에서 인정함을 받은 아벨레에게 문안하라 아리스도불로의 권속에게 문안하라
 
      우르바노 스다구 아벨레가 문안을 받은 이유는 동역에 본이 된 자요, 사랑이 넘치는 자요, 그리스도 안에서 인정함을 받는 이유가 분명합니다.



     우리 교회에도 모든 교우들이 귀하고 아름답지만, 특별히 문안을 드리고 싶은 성도들이 있지 않습니까? 그런 원리에요.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어떤 분들을 생명책에 특기 할 수 있는 그런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주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루포 모자는 문안을 받을 만한 자격이 있었습니다.

     13. 주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루포와 그의 어머니에게 문안하라 그의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니라

     루포와 그의 어머니, 그들은 주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분들입니다.

     루포는  막 15:21에 언급되어 있는 구레네 시몬의 아들 루포입니다.

     "마침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비인 구레네 사람 시몬이 시골로서 와서 지나가는데 저희가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우고"

     사실 주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사람은 '구레네 사람 시몬'입니다.
그는 골고다까지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고 가도록 택함을 받았습니다.
그것을 시몬이 원했다는 말은 없습니다.
그렇다고 원치 않았다는 말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 무거운 형틀을 예수님 대신 져야 했고, 그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까지 가야 했습니다.
그것이 비록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 모르지만, 그의 십자가를 진 사건을 그의 생애에서 그가 했던 어떤 일보다 더 아름다운 일이었습니다.
아니 전 인류의 어떤 일보다 아름답고 숭고한 일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 때문에 여러분이 버거운 십자가를 지고 계신 분이 계십니까?
그 일로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이순간 그 십자가를 지라고 여러분을 선택하셨습니다.
감사하시고 즐거운 마음으로 십자가를 사랑하고 지고 가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십자가 지고 가라 내가 십자가 기쁘게 지고 가면 슬픈 마음이 없어지리"


     루포는 그 구네레 사람 시몬의 아들입니다.
루포의 어머니는 구레네 시몬의 아내였습니다.
루포가  그분의 아들로 태어났다는 이 사실 만으로도 그들은 놀라운 택하심인 것입니다.(Harrison, Meyer).

1989년도에 바티칸을 방문해본 적이 있습니다.
오래된 나무 조각 보물처럼 유리 진열장 안에 보관되어 있었습니다.
그 밑에는 예수님께서 못박히신 십자가 나무라고 적혀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예수님 손에 박혔던 못이라 하여 보물로 간직해 진열하고 있었던 기억도 있습니다.
예수님의 몸을 가렸던 천조각
예수님께서 못박히셨던 십자가
그 모든 것들이 진위를 가릴 길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수천 년 동안 바티칸 소중한 곳에 보물 중의 보물로 여겨져 왔습니다.

선택받은 나무들이요
선택받은 못이요
선택받은 천조각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못박히신 그 나무에 손만 대어도 기적을 체험할 것으로 믿는 성물로 인정해 왔던 것입니다.

하물며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까지 오른 구레네 사람 시몬의 아내요, 아들이라니 얼마나 선택받은 사람입니까?

   
     마가는 주로 로마에 있는 기독교인을 대상으로 복음서를 기록하였기 때문에 그가 구레네 시몬의 두 아들을 잘 알아 언급하였고, 로마  성도들은  그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루포는 로마 교인들 가운데 특별히 존경과 칭찬을 한 몸에 받을 가치가 있는 선택받은 존재였습니다.(Lenski).

      따라서 바울 사도가 루포를 '택하심을 입은 자'라고 말할 때, 헬라어 '톤 에클레크톤'은  보통  의미의  '택하신 자'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그의 아버지 구레네 시몬이 겪은 십자가에서의 사건 때문에 로마의  성도들 사이에서 특별한 존재로서의 의미를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주기철 목사님의 막내 아들 주광조 장로님의 증언을 '아들의 고백'이란 DVD에 담아서 가지고 있습니다.
주기철 목사님의 아들만 되어도 여기저기서 모셔가고 그 얼굴이라도 그 음성이라도 듣고 싶어하는 분들이 많은 것입니다.
선택받은 것이지요.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예수님 때문에 고생하는 남편이나 아내나 부모님을 두신 것만으로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선택받은 사람이예요.
그리고 그런 분들에게 안부를 올리시기 바랍니다.


2] 루포의 어머니는 바울 사도에게 또한 특별한 사랑의 사람이었습니다.

"그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니라."

사람이 어떤 경우에 이런 표현을 쓸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구원의 감격에 넘치는 성도들에게 가능한 표현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복음을 전하는 가운데 그분으로 인해 크게 감사하는 사람만이 가능한 표현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분의 사랑을 크게 덧입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일이 언제 어디서 일어났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으나 헤리슨(Harrison)은 추측하기를 수리아 안디옥이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합니다.
바울이 루포를 생각할  때 면 반드시 그의 어머니에 대해서 회상할 만큼 그녀는 바울에게 특별한 사랑을 베풀었던 모양입니다. 루포의 어머니가 바울 사도를 친아들처럼 따뜻한 친절과 사랑으로 돌보아주었던 것으로 보입니다(Godet,  Moule).

     우리 교회의 이정문 장로님은 약 30년 전에 윤혁기 장로님의 어머님으로부터 인해 복음을 영접하는 길이 열렸습니다.


     3] 루포는 더구나 그리스도 안에서의 봉사와 충성이 뛰어난 자임을 알 수 있습니다(Meyer, Godet, Hodge, Murray). 이러한 맥락에서  일부  영역본은 '톤에클레크톤'을 '주님을 탁월하게 따르는 분'(NEB, RSV)으로 번역하였습니다.

따라서 루포와 그 어머니가 당시 로마에 있었다는 사실은 바울로 하여금 특별한 기대와 설레임 속에서  로마 방문을 고대하게 만들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이유에서 바울은 루포의 어머니에게  특별한 친애(親愛)와 존경의 심정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텍사스에 "예인츠”라는 농부가 있었습니다. 정부와 은행으로부터 막대한 돈을 빌려서 거대한 농장을 건설하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1930년도에 미국에 대 경제 공항이 닥쳤습니다.
은행 이자가 갑자기 높아졌습니다.
빚을 감당할 길이 없었습니다.
이자조차 갚을 수 없었습니다.
파산 위기였습니다.
부도나기 직전이었습니다.
그때 마침 석유 탐사대가 예인츠의 농장을 지나가다 그 농장 밑에 어마어마한 석유가 매장되어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입니다. 석유가 펑 쏟아지는 그날 8만 드럼의 석유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그는 빚더미에서 일어나 백만장자가 되었습니다.
언제부터 그는 백만장자였습니까?
이미 땅을 소유했을 때 그는 백만장자였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단지 그가 모르고 살았을 뿐이라구요.

루포의 하나님 자녀로서의 택하심은 이와 유사한 신묘막측한 것입니다.

시몬의 십자가 진 사건은 세상 말로 재수없는 일이었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대속적 죽으심과 부활을 통해 시몬은 가장 소중한 일을 하게 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렇게 볼 때, 루포는
그가 태어나기 전부터 그는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은 자입니다.
그의 아버지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를 올라갈 때, 그는 특별한 택자였습니다.
그리고 그 기초 위에 어머니가 사도 바울을 어머니처럼 귀히 섬겼을 때, 그리고 루포가 그 은혜에 감복하여 하나님께 충성했을 때, 그의 택하심은 어욱 특별한 존재가 되어갔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가 루포와 그 어머니처럼 믿음 안에서 이런 각별한 사랑과 존경을 받을 수 있는 삶과 신앙을 가질 수 있기 바랍니다.

     그러나 이런 특별한 선택함이 없더라도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하나님의 귀한 작품이라는 사실로 인하여 힘을 얻을 수 있어야 합니다.

     얼마 전에 반 고흐의 작품과 피카소의 작품이 몇 점 없어져서 세계 화랑이 발칵 뒤집혀지고 국제경찰들이 나섰다는 뉴스를 접한 적이 있지 않습니까? 대게 그 작품 하나의 값이 얼마쯤 되던가요?
수 백만 혹은 수천 만 달라를 호가하지 않았나요?

     일개 명 화가가 만든 작품도 이렇게 값비싼데 하물며 하나님께서 만든 저와 여러분이 얼마나 존귀한 값비싼 존재이겠습니까?

     문제는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존재를 싸구려처럼 생각하고 자학 자조하며 산다는 사실입니다.

     어떤 여론이 "자기 외모에 비교적 만족하며 사십니까?" 물었습니다.
"그런대로 만족합니다"라고 대답한 사람이 19%정도이고,
80%이상은 "큰 불만을 가지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고칠 수 있으면 고쳐보고 싶습니까?" 물었더니 남자들의 94%, 여자들의 99%가 "고치고 싶다"고 답했습니다.

      죄성입니다. 하나님의 작품에 사람이 손을 대면 더 나은 명작이 된다는 생각은 위험합니다. 자족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은 실수가 없으십니다.

      하나님의 선택하심에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코가 뒤집어서 붙은 사람이 없습니다. 만약 그런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으면 비가 오는 날에는 어떻게 될까요?
     눈썹이 왜 있을까요? 눈썹이 왜 옆으로 비스듬히 났을까요? 땀을 흘릴 때, 눈섭이 그렇게 생기지 않았다면 땀을 옆으로  흘러내리기가 힘들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 귀가 이 세상의 모든 소리를 다 받아들이지 않고 적당한 소리만 듣게끔 되어 있는 것도 하나님의 신묘막측한 창조물임을 말해 줍니다.

     우리는 자신을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작품으로 보는 시각이 필요합니다. 나를 만드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이 일로 인하여 자기 자신에 대하여 자존감을 가지고 살아가야 됩니다.

     그런 인식을 가지고 서로 신뢰와 경외감을 가지고 안부를 나눌 수 있기를 바랍니다.



     3. 문안을 금한 사람도 있습니다.

      17.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배운 교훈을 거슬러 분쟁을 일으키거나 거치게 하는 자들을 살피고 그들에게서 떠나라
18. 이같은 자들은 우리 주 그리스도를 섬기지 아니하고 다만 자기들의 배만 섬기나니 교활한 말과 아첨하는 말로 순진한 자들의 마음을 미혹하느니라

     문안은 아무에게나 하는 인사가 아닐 뿐만 아니라, 해서도 안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아무에게나 문안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0:4]  

     전대나 주머니나 신을 가지지 말며 길에서 아무에게도 문안하지 말며
 
     당시 바리새인들이 문안 받는 것을 좋아하였지만 주님께서는 금하셨어요.

     [누가복음 11:43]  

     화 있을찐저 너희 바리새인이여 너희가 회당의 높은 자리와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을 기뻐하는도다
 

     [누가복음 20:46]
 
     긴 옷을 입고 다니는 것을 원하며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회당의 상좌와 잔치의 상석을 좋아하는 서기관들을 삼가라
 

     또한 로마교회 교인들에게 덕스럽지 못한 사람들에게 문안하라는 표현이 없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사랑과 경의에 찬 문안을 받아야 할 가치가 없기 때문입니다.

     영적 소경에겐 문안을 올리지 않도록 명하셨습니다.영적으로 눈이 먼 사람들에게는 본질적으로 삶에 혼란이 있습니다.

     노벨상 수상작가인 사라마구의 베스트셀러 원작을 스크린에 옮긴 작품 「눈먼자들의 도시」(Blindness)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한 일본인이 어느날 자고 일어났더니 온 세상이 하얀 백지처럼 보였습니다. 어떤 예비조짐도 없었는데 희얀한 눈병이 찾아와 눈이 먼 것입니다. 이 희얀한 눈병은 거리에서 당황해 하는 이 일본인 환자를 도운 행인에게로 옮겨지고 그를 치료하던 안과의사에게로 옮겨지게 됩니다. 이 병에 걸린 사람들이 늘어나자 정부는 환자들을 격리 수용 시킵니다. 이때 의사의 아내는 눈이 멀지 않았지만 남편을 따라 수용소로 들어갑니다. 영화가 끝날 때까지 유일하게 앞을 볼 수 있었던 이 부인은 수용소의 비참한 상황을 걸머지고 괴로워합니다.

수용소는 무서운 혼돈상태로 빠져듭니다. 사람들은 아무데서나 용변을 보고 사람들은 어쩔 수없이 오물 위를 짐승처럼 뒹굴며 삽니다. 아예 냄새나는 옷을 모두 벗어던지고 알몸으로 살기도 합니다. 수용소 안에서의 신뢰는 무너지고 불화가 깊어집니다. 어느날 총을 든 사람이 나타나 자신이 수용소의 왕이 되겠다고 합니다. 배급된 음식을 얻어먹기 위해 이 왕이라는 자에게 가지고 들어왔던 돈, 보석, 패물을 바쳐야 했습니다. 급기야 한끼 밥을 얻어먹기 위해 총 든 왕이 있는 3호실 수용소로 여자들을 상납합니다. 거기 무슨 도덕, 윤리, 인간의 존엄성, 건강한 상식이 있을 수 없었습니다. 보기도 듣기도 민망한 역겨운 장면들이 지나갑니다. 앞을 볼 수 있었던 부인은 총가진 왕을 가위로 찔러 죽입 니다. 곧이어 누군가에 의해 수용소는 불길에 휩싸입니다. 몇몇 사람들이 눈뜬 의사의 아내를 따라 무법천지 수용소를 빠져 나왔을 때에는 온 도시 전체가 눈먼자들의 도시가 되어 있었습니다.

이 영화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눈먼 자들이 가져오는 세상의 모습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눈먼자들의 도시'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눈을 뜨고 있다면 일어날 수 없는 혼란과 범죄와 갈등이 지구촌에서 무섭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런 모습을 오늘 말씀에서 몇 가지 만납니다.

     영적 소경이란 하나님과 그분의 세계를 알 지 못하는 존재입니다.

     1] 교훈을 거스려 분쟁을 일으키는 자들에게는 문안 대신 떠나라 명하십니다.

      17.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배운 교훈을 거슬러 분쟁을 일으키거나 거치게 하는 자들을 살피고 그들에게서 떠나라

     사도는 밖으로부터 들어온  거짓  교사들로 인해 위험에 직면해 있는 로마 교회를 위해서, 본 서신을 끝마치기  전에  분명하고도 직접적인 경고를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너희 교훈을 거스려'란 말은 '너희가  배운 바 그 교훈을 거스려'란 말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이 말은 로마 교회 성도들에게 지금까지 배운 복음의 진리를 상기시킴과 동시에 거짓 선지자들이 진리를 대적하고 있음을 나타냅니다. 그들은 로마 교회 성도들로 하여금 지금까지 배운 바 그 교훈을 거스려 행동하게 하는 목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로마 교회 안에 분쟁을 일으키려 합니다. 본절에서는 그런 자들에게 분쟁을 일으키는 자들이라 선포하고 있습니다. '분쟁'이란 '떨어져서 있는 것', '쪼개진 틈', '분열' 을 의미합니다. 거짓 선생들은 거짓 진리로 성도들을 현혹하여 배운 바 진리에서 이탈하게 하여 교회의 분열(分裂)을 조장하고 획책하였습니다. 교회에 분쟁을 일으키는 사람들에게는 문안이 해당되지 않습니다. 친절이나 존경을 받기보다는 자손 대대로 누구의 자녀라는 표시가 붙어 다닙니다.


      2] 거치게 하는 자들 자들에게서는 문안 대신 떠나라 명하십니다.

     '덫', '함정', '길에 놓아 넘어지게 하는 장애물'이란 뜻입니다. 덫을 놓아 길을'잘못든 사람이 죄에 빠져들게 하는 함정'이라는 의미입니다.
     이처럼 거짓 선생들은 성도들의 분열을 조장하여 교회의 연합을  깨뜨릴 뿐만 아니라 결국은 저희가 가르치는 교훈을 따르게 하여 성도들의 영혼을  치명적인 죽음의 함정으로 빠지게 합니다(Lenski). 이들의 배후에는 하나님 나라를 대적하는 공중의 권세잡은 자, 즉 사단의 세력이 숨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본절에 나타난 거짓 선생들은 구체적으로 어떠한 자들을 가리킬까요?
     (1)  골로새서에 나타나는 영지주의자(Dodd).
     (2)  도덕 폐기론적 자유인(Lightfoot).
     (3)  유대교적 열심분자들(Godet, Hendriksen).

     당시 가장 로마 교회에 치명적인 존재는 유대교적 열심분자들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유대교적 열심분자들은 항상 율법과 복음을 혼합하여 사도들을 대적하고 교회를  어지럽히는 세력으로서 복음 진리를 곡해(曲解)한 자들이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초대  교회 안에는 이런 율법주의자들이 늘 문제가 되었습니다(Lenski).

     성경은 말합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안부를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렇게 명하십니다.

"살피고 저희에게서 떠나라"

거짓 선생들에 대한 성도의 올바른 태도는 '살피고  떠나는'것입니다.  '살피고'의 헬라어 '스코페인'은 목표를 계속 응시하는 것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피하기 위하여 네 눈을 항상 뜨고 있으라'는 뜻입니다. 즉 유혹받을 때  요구되는 경계의 태도로서 거짓 선생들에 대한 본질과 본성을 확실히 깨닫고  주의하라는  것이지요. '떠나고'로 번역된 헬라어 는 '단번에 저희에게서 돌아서라'는 뜻입니다. 이 말은 성도들이 거짓 선생들의 본질과 본성을 알았으면  그들과 함께 하는 것이 본질적으로 불가능한 것임을 알고 즉각 돌아서라는 의미입니다.


     [예화]

     고국에서 초보 운전을 하던 어떤 부인은 사람들이 "운전도 못하면서 차를 몰고 나오지 말고 집에 가서 밥이나 하라"고 소리치는 운전자를 만났습니다.
너무 속이 상한 그분은 차 뒷편에 이렇게 범퍼 스티커를 붙이고 운전을 했답니다.

"왕초보, 집에 밥하러 가는 중"

     내가 섰다하는 교만이 유대주의자와 같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습니까?
약한 형제에게 고통을 주는 것이 믿음 이전에 인격입니다.
그런 사람에게 문안하라는 말씀은 없습니다.

     혹시 나의 의에 의욕이 넘친 나머지 형제 자매를 거치게 하는 것이 없습니까?

회개할 수 있어야 합니다.
 
     거침을 당하는 일이 있습니까? 좀 여유를 가지십시오.

    "왕초보, 집에 밥하러 가는 중"

     이런 여유를 가지세요.

우리 가운데 누구도 자기 배만 섬기는 자는 없습니다.


       3] 우리 주 그리스도를 섬기지 아니하고 다만 자기의 배만 섬기는 자들에게서는 문안 대신 떠나라 명하십니다.

     거짓 선생들을 경계하고 떠나야 할 이유를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Murray).
정말 떠나야 될 사람은 바로 이런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가르) 거짓 선생들은 그리스도 예수를 자기의 주(主)로 섬기지 아니하고 다만 자기 자신을 섬기기 때문입니다.
이단은 자기의 지적 이론과 깨달음을 섬깁니다.
이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교회와 성도들을 넘어뜨리려는 자들로서 순전히 동물적인 욕구에 지배를  받던 자입니다(Dunn).
     여기서 '자기의 배만 섬기나니'의 헬라어는  '자기들의 이익만을 추구하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거짓 선생들은 자기 지적 욕망에 가득차서 복음을 구실삼아 자신들의 사리사욕을 채우는 것이 그들 목적입니다(Bruce).
'섬기나니'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나쁜 의미로서 '자기의 욕망이나 본능을 절대화(絶對化)하여 그 노예가 되어 섬긴다'는 뜻입니다.
거짓 선생들의 이러한 삶의 양태는 세상적이요 정욕적이요 마귀적인 것으로  특징지워집니다(약 3:15).

     이런 우리 주 그리스도를 섬기지 아니하고 다만 자기의 배만 섬기는 자들에게서는 문안 대신 떠나라 명하십니다.


     4] 교활한 말과 아첨하는 말로 순진한 자들의 마음을 미혹합니다.

     공교한 말 은 '유창한 말', '분명하고도  수긍이  갈 만한 말', '멋있고 그럴듯한 말'입니다.
 '아첨하는  말'은  '좋게', '행복하게'의 뜻을 가진, '축복', '아름다운 말', '칭찬'의 의미로 쓰이나 여기서는 '그 자체는 매혹적이지만 진실하지 않은 능변', 또한 '속일 목적으로  듣기에 좋은 말'로 쓰였습니다(Dunn). 따라서 '공교하고 아첨하는 말'은 진실이 없는 거짓말의 의미로 쓰이고 있습니다. 이처럼 거짓 선생들은 감언 이설(甘言利說)로써 성도들을  유혹하여 속이는 데에 아주 능수 능란한 자들입니다(고후 4;2;엡 4:14, Murray).
   이에 반하여 순진한 자들은  '악의와 교활함이 없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그들은 남을 속이고 기교를 부리지 않으므로  타인에게서도 그런 것을 의심하지 아니하는 사람들입니다(J.  Murray).  그들은  자신들의  이 같은 속기 쉬운 약점으로 말미암아 쉽게 기만당할 수 있고 멸망에 이를 수도  있는 사람들입니다(Harrison).
   미혹하느니라는 '완전히 속이다', '사기하다'의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거짓 교사들은 순진한 자들을 명망케  하는 악한 계교를 꾸미며 기만합니다. 그러므로 사도는 이런 자들에게서 즉시 떠나라고 경고한 것입니다.


     교활한 말과 아첨하는 말로 순진한 자들의 마음을 미혹하는 자들에게서는 문안 대신 떠나라 명하십니다.



     4. 진정한 문안은 믿음 안에 순종하는 자 안에서 열매를 맺습니다.

     19. 너희의 순종함이 모든 사람에게 들리는지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로 말미암아 기뻐하노니 너희가 선한 데 지혜롭고 악한 데 미련하기를 원하노라
20. 평강의 하나님께서 속히 사탄을 너희 발 아래에서 상하게 하시리라 ○우리 주 예수의 은혜가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너희 순종함이 모든 사람에게 들리는지라"(16:19)

      바울 사도는 열악한 영적 환경 속에서도 로마 성도들이 헌신하고 신앙을 잘 지킨 것을 높이 평가하고 있습니다(Dunn). 로마 교회가 영적 위기를 극복하는 비밀은 '순종함'(휘파코에)입니다.
로마 교회 성도들은 그 받은 교훈에 굳게 서서 행하는 믿음을 가졌습니다(Lenski). 이것은 순종치 않는 거짓 선생과 엄격히 구별되는 모습입니다.
따라서  로마  교회가

     "너희가 선한 데 지혜롭고 악한 데 미련하기를 원하노라"

      로마의 성도들이 선한 것을 따르는 데에는 '지혜롭고' 악에 이끌리는 데에는 '우둔함'하였습니다.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마 10:16)한
'악에는  어린아이가 되나 지혜에 장성한 사람이 되라'(고전 14:20)

     이런 복된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문안이 있습니다. 그것은 거룩한 입맞춤입니다.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 초대 교회의 성도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는 표로 남자들은 남자들끼리, 여자들은 여자들끼리 입맞춤으로 인사를 나누는 습관이 있었습니다(고전 16:20;고후 13:12;살전 5:26). 당시 초대 교회 그리스도인들 역시 사랑의 표로 이를 실행했습니다(Dunn, Murray). 그런데 초대 교회의 이런 인사법은 사랑의 실천과  거룩한 형제애(兄弟愛)의 구체적인 표현이었습니다(J. Calvin).

     [마무리하는 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를 구원하신 주님으로 영접하셨습니까?
그 주님 안에서 문안을 하십시오.
주 안에서 수고하는 성도들에게 문안하십시오.
찾아가고 존경하고 위로하고 칭찬하고 격려하십시오.
주 안에서 먼저 된 분들에게 문안하십시오.
주 안에서 동역자된 분들에게 문안하십시오.
주 안에서 어머니와 같이 사랑을 해주신 분에게 문안하십시오.
그것은 우리가 성도가 되었다는 아름다운 훈장입니다.
주 안에서 기쁨으로 문안할 수 있을 때,

      평강의 하나님께서 속히 사단을 너희 발 아래서 상하게 하시리라(16:20)

     이 표현은 로마 교회 성도들에게 용기를 복돋아 주는 하나의 약속입니다. 바울사도는  로마 성도들이 주 안에서 문안할 때, 성도간에 하나되는 지름길이 열릴 것을 전하고 있습니다.
성도간에 입맞춤으로 문안할 때 사단과 싸울 영적 군대가 될 것을 전하고 있습니다.
약한 사단의 권세도 이런 문안 속에 결속되는 믿음의 공동체에 굴복할 것을 전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은 '평강의 하나님'(15:33;고후 13:11;빌  4:9;살전 5:23;살후 3:16;히 13:20)이시기 때문이기 때문입니다.
평강의 하나님이란 말 속에는 자기 백성들을 분열시켜 불안을  조성시키는 악한 세력들로부터 보호 하시는 하나님의 권세와 능력이 마침내  승리를  주신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사단을 너희 발 아래서 상하게 하시리라'는 말씀처럼 여자의 후손 곧 그리스도께서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실 것(창 3:15)이라는 말씀의 성취가 될 것을 전하고 있습니다.
사단이 성도들에게 거짓된 교훈을 가지고 올 때 하나님이 성도들이 하나되어 문안할 때 성도의  발 아래서 사단을 상하게 할 것이라는 말입니다(Lenski).
'상하게 하시리라'는 말씀은 '함께 으스러뜨리다', '눌러 으스러뜨리다', '짓밟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평강의 하나님께서 사단에  대하여 궁극적인 승리를 거두실 것이라는 축복된 약속을 강하게 시사합니다(Robertson).

     종말에 믿는 자가 얻는 궁극적인 승리는 믿는 두 가지 요인, 곧 하나님의  요인('하나님께서 상하게 하시리라')과 사람의 요인('너희 발 아래서')에서 비롯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단을 이길 수 있는 충분한 힘을 내려 주시지만 그 힘은 그것을 받아 들이고 사용하는 사람을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Godet,  Harrison).

     이것은 바로 성도들이 입맞춤으로 문안하는 것입니다. 동성애가 극성인 시대에 입맞춤으로 신체적인 입을 맞추는 일은 없겠지만 마음으로 하나되어 문안하는 일은 계속되어야 합니다.



     [성경본문]

13. 주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루포와 그의 어머니에게 문안하라 그의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니라
14. 아순그리도와 블레곤과 허메와 바드로바와 허마와 및 그들과 함께 있는 형제들에게 문안하라
15. 빌롤로고와 율리아와 또 네레오와 그의 자매와 올름바와 그들과 함께 있는 모든 성도에게 문안하라
16. 너희가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 그리스도의 모든 교회가 다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17.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배운 교훈을 거슬러 분쟁을 일으키거나 거치게 하는 자들을 살피고 그들에게서 떠나라
18. 이같은 자들은 우리 주 그리스도를 섬기지 아니하고 다만 자기들의 배만 섬기나니 교활한 말과 아첨하는 말로 순진한 자들의 마음을 미혹하느니라
19. 너희의 순종함이 모든 사람에게 들리는지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로 말미암아 기뻐하노니 너희가 선한 데 지혜롭고 악한 데 미련하기를 원하노라
20. 평강의 하나님께서 속히 사탄을 너희 발 아래에서 상하게 하시리라 ○우리 주 예수의 은혜가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21. ○나의 동역자 디모데와 나의 친척 누기오와 야손과 소시바더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22. 이 편지를 기록하는 나 더디오도 주 안에서 너희에게 문안하노라
23. 나와 온 교회를 돌보아 주는 가이오도 너희에게 문안하고 이 성의 재무관 에라스도와 형제 구아도도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24. (없음)
25. 나의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함은 영세 전부터 감추어졌다가
26. 이제는 나타내신 바 되었으며 영원하신 하나님의 명을 따라 선지자들의 글로 말미암아 모든 민족이 믿어 순종하게 하시려고 알게 하신 바 그 신비의 계시를 따라 된 것이니 이 복음으로 너희를 능히 견고하게 하실
27. 지혜로우신 하나님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이 세세무궁하도록 있을지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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