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는 한 해를 마무리하는 소중한 주간입니다.
그리고 2000년 전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보내주신 사랑을 감사하는 성탄 주간입니다.
금년 한 해 동안 여러분의 생애에 가장 마음에 남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감사하고 싶은 분은 누구입니까?
바울 사도 생애에 가장 마음에 남는 사람 중에 브리스가와 아굴라 부부가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로마교인들에게 '브리스가와 아굴라에게 문안하라' 권합니다. 사랑을 표현하라는 권면입니다(1:7;고전 1:1-3;고후 1:2;갈 1:2, 3).
왜 이 부부가 이렇게 사도 바울에게 깊은 감동이 됩니까?
왜 이 부부가 바울 사도에게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까?
1.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였기 때문입니다.
"여러 분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인 브리스가와 아굴라!
그들에게 인사하십시오(3).
간단하고 담백한 표현이지만, 신뢰가 담뿍 담긴 아름다운 인사지요?
바울은 그분의 서신서에서 이 부부의 이름이 6번이나 언급하고 있습니다(행 18:2,18,26, 롬 16:3, 고전 16:19, 딤후 4:19).
브리스가와 아굴라는 로마 영토인 본도에서 온 유대인이었습니다. 그들은 49년에 내려진 로마 황제 클라디우스(Claudius)의 유대인 추방명령에 의해 로마를 떠났다가 고린도에서 전도하던 바울을 만난 것으로 보입니다. 그들은 바울과 같은 직업(천막 만드는 자)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고린도에서 바울과 함께 일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같은 직업으로 일했다는 데서 그친 것이 아닙니다.
" 저희는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의 목이라도 내어놓았나니"
하나님의 동역자인 바울 사도의 동역자가 된 것입니다.
바울 사도의 선교사역을 도왔습니다.
[행18:1-4]
1. 이 후에 바울이 아덴을 떠나 고린도에 이르러
2. 아굴라라 하는 본도에서 난 유대인 하나를 만나니 글라우디오가 모든 유대인을 명하여 로마에서 떠나라 한고로 그가 그 아내 브리스길라와 함께 이달리야로부터 새로 온지라 바울이 그들에게 가매
3. 업이 같으므로 함께 거하여 일을 하니 그 업은 장막을 만드는 것이더라
이 세상에서 어떤 일을 하느냐가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 일을 하면서 하나님의 동역자가 일하는 데 있어 하나님의 밭이 되고 하나님의 집이 되어 사역에 동참한다는 것은 너무 중요합니다.
그는 바울이 고린도를 떠나서 에베소로 갈 때에도 바울과 동행했습니다.
" 저희는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의 목이라도 내어놓았나니"
시간과 물질과 삶을 바울 사도의 복음 사역에 동역한 것입니다.
브리스가와 아굴라는 복음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으며, 로마와 다른 교회에도 잘 알려져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곳에서 아볼로를 만나게 되었으며, 후에 그들은 아볼로의 부족한 부분을 바로 잡아 주었습니다
(행 18:24-26)
24. 알렉산드리아에서 난 아볼로라 하는 유대인이 에베소에 이르니 이 사람은 학문이 많고 성경에 능한 자라
25. 그가 일찍 주의 도를 배워 열심으로 예수에 관한 것을 자세히 말하며 가르치나 요한의 세례만 알 따름이라
26. 그가 회당에서 담대히 말하기를 시작하거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듣고 데려다가 하나님의 도를 더 자세히 풀어 이르더라
바울 사도는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여러 교회에서 놀라운 사역을 하였습니다. 그가 그런 놀라운 일을 할 수 있었던 까닭은 그와 온전한 호흡 속에서 손발을 맞추어 일하는 동역자가 곳곳에 포진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 저희는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의 목이라도 내어놓았나니"
브리스가와 아굴라를 비롯하여 디도, 빌레몬, 디모데, 마가, 아리스다고, 데마, 누가가 '자기 목숨이라도 내어 놓고 사도 바울과 더불어 동역한 사람들입니다.
당시 선교사역을 앞장 서 주도하였던 주역들이지요.
54년에 클라디우스 황제가 죽었을 때에 그들은 다시 로마로 돌아갔으며, 그곳에서 바울이 보낸 편지를 받은 것으로 보입니다(행 18:1, 18,26,
그러나 바울 사도는 브리스가와 아굴라에게 이렇게 부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
1] '나의 동역자'란 고백이 나온 배경을 살펴보겠습니다.
'나의 동역자'란
내가 없어도 그만 있으면 내가 있는 것처럼 사역이 잘 되는 경우에 사용하는 말입니다.
내가 없는데도 내가 있는 것처럼, 내 생각처럼 일이 잘 진행됩니다.
내가 있는 것처럼 일이 진행됩니다.
이런 사람이 바로 '나의 동역자'입니다.
브리스가와 아굴라가 바로 그런 사도 바울의 동역자였습니다.
브리스가와 아글라는 로마에 있는데 말입니다.
그들이 사도 바울이 로마에 있어서 일하는 그런 열매가 맺히는 것이지요.
왜입니까?
브리스가와 아굴라가 사도 바울의 '나의 동역자'로 일하였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이전에 로마교회를 방문한 적이 없었습니다.
당시에는 오늘날과 같은 통신망이 없었습니다.
핸드폰은 커녕 전화조차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로마 교회를 한 번도 방문해본 적이 없는 바울 사도가 로마서와 같은 복음을 로마 교회에 보낼 수 있겠습니까?
이 로마서가 기독교 역사에 얼마나 큰 영향력을 미쳤는가를 아는 우리로서는 놀라게 되지요.
바울은 로마교회에 있지 않았지만, 로마교회에 있으면서 사역한 이상으로 그 방대한 영역에서 영향력을 미치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어떻게 그런 힘있는 사역이 가능했을까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인 브리스가와 아굴라"
브리스가와 아굴라가 사도 바울의 '나의 동역자'로 일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거하는 같은 믿음을 가진 동역자
꿈(비전)이 같은 동역자
생각이 같은 동역자
마인드가 통하는 동역자
행동이 같은 동역자
구태어 바울 사도가 로마 교회에 없어도 바울 사도가 목회한 것과 다를 것이 없는 그런 마음과 몸이 하나된
그런 '나의 동역자'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에게는 이런 '나의 동역자'들이 곳곳에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로마서 16:9]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동역자인 우르바노와 나의 사랑하는 스다구에게 문안하라
[로마서 16:21]
나의 동역자 디모데와 나의 친척 누기오와 야손과 소시바더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고린도후서 8:23]
디도로 말하면 나의 동무요 너희를 위한 나의 동역자요 우리 형제들로 말하면 여러 교회의 사자들이요 그리스도의 영광이니라
[빌립보서 4:3]
또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한 자 네게 구하노니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부녀들을 돕고 또한 글레멘드와 그 위에 나의 동역자들을 도우라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
[빌레몬서 1:1]
그리스도 예수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바울과 및 형제 디모데는 우리의 사랑을 받는 자요 동역자인 빌레몬과
[빌레몬서 1:24]
또한 나의 동역자 마가, 아리스다고, 데마, 누가가 문안하느니라
바울 사도는 자기 자신이 하나님의 동역자라는 확신으로 충만했습니다.
그리고 그와 함께 사역하는 동역자들을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일했습니다.
[고린도전서 3:9]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
바울 사도는 이런 충성된 동역자들과 함께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갔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그들을 "동역자"라고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이 로마교회에 이렇게 귀한 '나의 동역자'들을 갖고 있었다는 것,
이것이 하나님의 놀라운 나라를 이루게 한 비결입니다.
아마도 그들은
선교여행 중에 만난 사람들도 있습니다
바울을 통해서 예수를 믿게 된 사람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바울과 함께 선교사역에 참여한 동역자들도 있었습니다.
바울과 함께 감옥에 갇혔던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들은 바울을, 바울은 그들을 생명처럼 사랑했고
그들 또한 바울의 형편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나의 동역자!'
바울 사도는 브리스가와 아굴라를 이렇게 부르고 소개하였습니다.
주님께서 나를 이런 다감한 호칭으로 불러준다면 얼마나 큰 영광입니까?
누군가가 나를 이렇게 인정한다면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우리는 이러한 모습을 통해서 성도와 동역자를 사랑하는 바울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모세에게는 모세의 입과 같은 동역자 아론이 있었습니다.
모세의 손발과 같은 동역자 여호수아와 갈렙이 있었습니다.
다윗에게는 요나단이라는 동역자가 있었습니다.
자기 생명보다 더 사랑하는 동역자가 있었습니다.
다니엘에게는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란 동역자가 있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
저는 이 말을 누구에게 붙여 부르는 것이 어울릴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
여러분은 이런 동역자를 가지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누구에게 이런 명칭을 붙여 불러보고 싶으십니까?
2. 그들은 사도의 목숨을 위해 자기의 목을 내놓는 위험을 감수했습니다.
4절]
저희는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의 목이라도 내어놓았나니
바울의 복음 사역을 조력(助力)함에 있어서 브리스가와 아굴라의 헌신이 어느 정도인지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자기의 목이라도 내어 놓았나니'로 번역된 헬라어 원래 뜻은
'사형 집행자의 도끼 밑에 자기 목을 내어 놓다'
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그들이 핍박의 손길에서 바울의 생명을 구하고자 극단적인 위험을 겪었음을 나타내는 표현이기도 합니다(John Murray, Dunn).
이 사건이 고린도에서 일어났는지(행 23:12),
아니면 에베소나 그 밖의 지역에서 일어났는지
언제 일어났는지는 확실치 않습니다(Godet, Meyer).
아마도 이 사건은 에베소에서 데메드리오와 유대인들이 폭동(暴動)을 일으켜 바울의 목숨을 해하려고 할 때 바울의 생명을 구하려고 온갖 극단적인 위험을 무릅쓴 것을 염두에 두고 말한 것일지도 모릅니다(고전 16:8, 9, 19).
[행19:24-31]
24. 즉 데메드리오라 하는 어떤 은장색이 아데미의 은감실을 만들어 직공들로 적지 않은 벌이를 하게 하더니
25. 그가 그 직공들과 이러한 영업하는 자들을 모아 이르되 여러분도 알거니와 우리의 유족한 생활이 이 업에 있는데
26. 이 바울이 에베소 뿐아니라 거의 아시아 전부를 통하여 허다한 사람을 권유하여 말하되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들은 신이 아니라하니 이는 그대들도 보고 들은 것이라
27. 우리의 이 영업만 천하여질 위험이 있을 뿐아니라 큰 여신 아데미의 전각도 경홀히 여김이 되고 온 아시아와 천하가 위하는 그의 위엄도 떨어질까 하노라 하더라
28.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분이 가득하여 외쳐 가로되 크다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 하니
29. 온 성이 요란하여 바울과 같이 다니는 마게도냐 사람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를 잡아가지고 일제히 연극장으로 달려들어 가는지라
30. 바울이 백성 가운데로 들어가고자 하나 제자들이 말리고
31. 또 아시아 관원 중에 바울의 친구된 어떤이들이 그에게 통지하여 연극장에 들어가지 말라 권하더라
무엇보다 확실한 것은 브리스가와 아굴라 부부가 바울이 고난 가운데 있을 때 그와 함께 일사 각오로 생사 고락을 함께 하였다는 점입니다(Meyer).
" 저희는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의 목이라도 내어놓았나니"
그들은 바울을 위해서 목숨도 아끼지 않고 큰 위험을 감수했습니다. 바울은 에베소에서 다이아나 우상을 만드는 사람들의 선동으로 큰 위험에 빠진 적이 있었습니다. 아마도 그때에 브리스가와 아굴라 부부가 죽음을 각오하고 바울을 도와준 것으로 보입니다.
그들은 고린도와 에베소, 그리고 로마에서(5a) 성도들이 모임 장소로 자기 집을 제공했습니다(고전 16:19).
그들은 복음을 위해서 철저하게 헌신된 제자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편지를 보내면서 로마교회의 성도들에게 그들을 소개하고 인사를 권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4).
브리스가와 아굴라처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가 되어 하나님의 복음 사역을 돕기 위하여 목숨을 아까워하지 않고 자신과 함께 할 때, 깊은 감사를 느끼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었습니까?
복음 사역을 위하여 희생적으로 사역자들을 도운 그리스도인 부부의 아름다운 모범이 아닐 수 없습니다.
(고전 16:17-19)
17. 내가 [스데바나와 브드나도]와 아가이고의 온 것을 기뻐하노니 저희가 너희의 부족한 것을 보충하였음이니라
18. 저희가 나와 너희 마음을 시원케 하였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이런 자들을 알아 주라
19. 아시아의 교회들이 너희에게 문안하고 아굴라와 브리스가와 및 그 집에 있는 교회가 주 안에서 너희에게 간절히 문안하고
1903년 1월 13일 새벽 하와이 호놀룰루 항구에 마중 나온 조지 피어슨 선교사님은 86명의 한국인(남 48, 여,16, 어린이 22)을 영접합니다.
그들은 선교사님의 기도를 받은 후, 기차를 타고 오하우 섬 서북끝에 있는 모쿠라 농장으로 갔습니다.
그들은 인천내리감리교회 교인들로서선교적 사명을 띠고 첫 이민선을 탔습니다.
그들은 새벽 5시에 울리는 고동소리에 잠을 깨야 했고
5시 30분에 조반
6시에 노동 시작
감독관을 루나라고 하였는데요. 그들은 노동자들을 소나 말 다루듯이 채찍으로 다스렸고, 이름 대신 번호로 호칭을 하였습니다.
결근한 사람이 있으면 경찰을 보내어 데리고 왔습니다.
일당은 가장 작은 69센트(여성50)
그중 25센트 독립운동 자금
1/3은 학교설립 운영자금
나머지 20센트로 자기 생활을 하였습니다.
곳곳에서 기도회를 가지다가 1903년 6월, 몰로카이 농장에서 김이제 전도사의 인도로 첫 예배를 드렸습니다.
고국과 주님의 몸된 교회를 위해 목숨이라도 내놓은 저분들의 기도와 헌신이 우리 디아스포라 이민교회 뿌리가 되었던 것입니다.
" 저희는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의 목이라도 내어놓았나니"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동역할 때, 서로 간에 이런 마음을 하나로 하고 희생 헌신하는 아름다운 자세를 가지고 있습니까?
3. 사도 바울뿐 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그에게 감사를 하고 있습니다(4).
저희는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의 목이라도 내어놓았나니 나 뿐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저희에게 감사하느니라 (로마서 16:4)
감사(Praise, Thanks)는 하나님께 대해 백성들이 가지는 태도입니다. 구약의 감사: 히브리어로는 '야다'(yadah)로 '고백하다'는 뜻입니다. 이 단어가 '찬양하다, 감사하다'의 의미로 쓰일 때 목적어는 대부분 하나님입니다(창 29:35; 스 3:11; 시 33:2; 사 12:4).
감사를 하나님께 올리는 것이 마땅합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감사할 때의 동기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대한 믿음이었습니다.
'나의 동역자'를 주신 분도 하나님이시기에 하나님께서 감사를 받으시는 것이 마땅합니다.
[고린도전서 1:4]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인하여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바울 사도의 브리스가와 아굴라로 인한 감사는 특별했습니다.
여기서 브리스가는 통상적으로 브리스길라(행 8:18)라고 불려졌는데 이것은 앗시리아족의 여성을 나타내는 브리스가의 애칭입니다(Robertson). 바울이 그들 부부를 호칭(呼稱)하는 데 있어서 대개 아굴라 보다 브리스가를 먼저 언급하고 있는 것은 '브리스가'가 바울의 사역에 있어서 더 중요한 인물이었으며, 또한 하나님 나라의 진리를 이해하고 믿음의 도리를 가르치는데 있어서 자기 남편, 아굴라보다 더 성숙해 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Bruce). 이는 행 18:23-26에서 나타난 바대로 그들 부부가 요한의 세례만 알고 있는 아볼로에게 믿음의 도에 대해서 자세한 교리를 가르친 것에 대해 '브리스가'먼저 언급된 데서도 유추됩니다.
브리스가와 아굴라는 바울의 선교 여행에 동행하여 에베소까지 갔으며(행 18:18, 19) 거기서 오랫동안 체류하면서 바울의 목회 사역을 돕다가 글라우디오 황제가 사망하자 바울이 로마서를 뵈뵈의 편으로 보낼 무렵에는 로마에 돌아갔던 것으로 추측됩니다(Harrison, Murray, Lenski).
이런 동역이 얼마나 바울 사도에게 감사하였겠습니까?
바울 사도가 에베소에서 많은 열매를 맺었지만, 사실 이런 동역자들의 헌신적인 희생이 이면에 있었기에 그런 희생을 디딤돌로 하여 아름다운 열매를 맺은 것입니다.
눅17장에 보면, 예수님께 감사함으로 칭찬을 받는 사마리아인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나병환자 열 명이 깨끗함을 받다]
11.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에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가시다가
12. 한 촌에 들어가시니 문둥병자 열 명이 예수를 만나 멀리 서서
13. 소리를 높여 가로되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 하거늘
14. 보시고 가라사대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하셨더니 저희가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지라
15. 그 중에 하나가 자기의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16. 예수의 발아래 엎드리어 사례하니 저는 사마리아인이라
17.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18.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고
19.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
감사하는 일은 우리 신앙인들에게 참 중요한 일입니다.
다윗은 생명보다 자신을 더 사랑한 요나단에 대하여 감사한 마음을 늘 가지고 살았습니다.
그리고 그 감사한 마음을 그 후손에게 므비보셋에게까지 표현하고 살았습니다.
저희는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의 목이라도 내어놓았나니 나 뿐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저희에게 감사하느니라 (로마서 16:4)
[예화]
교회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기계로 복사기를 부인하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어른부터 어린 아이까지 남녀노소하고 친숙한 기계가 복사기입니다.
그런데 그 복사기 관리를 누가 해주는 지 아세요?
David 형제입니다.
베트남에서 태어나 이곳 캐나다에 왔고, 두 아들을 둔 참으로 성실하고 착한 아저씨입니다.
그는 서머나교회가 창립한 이후로 11년 동안, 서머나 교회 복사기를 수리해주고 있습니다.
서머나 교회가 새로 성전을 장만하고 이사한 후, 걸맞는 좋은 복사기를 기증한 바로 그 친구입니다.
어제도 복사기가 고장난 소식을 듣고 중고 복사기 한 대를 마련하여 달려왔습니다. 복사기 사용법을 알려주고 이어서 여유분 토너를 챙겨 준 후,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는 우리 교인은 아니지만, 토론토 서머나 교회를 귀하게 생각하고 때를 따라 도움을 주는 친구입니다.
우리는 그 친구에게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 목사님' 성탄을 축하한다면서 예쁜 수건을 선물해 주신 분이 있어서 그것을 우선 그 친구에게 선물로 주었어요.
기도하는 분들을 인하여 감사해야 합니다.
"할아버지 어디 가세요?"
"목포 유달산에 기도하러 가지."
"어떤 기도를 하세요?"
"우리나라 잘되라는 기도를 하러 다녀! 나라가 잘되어야 할 것 아녀!"
"유달산에서만 기도하세요?"
"아니야, 팔공산 동봉에 가서도 하고, 서울 삼각산 각 봉우리마다 올라가서 하고, 부산 금정산, 김해 만장대에 가서도 해. 팔공산 동봉에는 200번쯤 올라갔어!"
연세를 물어보니 76세이다. 이름은 지영권(池靈權)이고, 직함은 개신교 전도사. 1주일에 평균 한두 번씩 산에 가서 기도를 드린다고 한다. 그 덕택에 건강하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이 할아버지의 허름한 배낭 안에는 물병, 빵 3개, 방석, 두툼한 외투, 그리고 잘게 썰어놓은 단감이 비닐봉지에 포개져 있었다.
[마무리하는 말]
또한 여러분은 그의 집에 있는 교회에도 인사하십시오(5(상))."
생명까지도 아끼지 않는 동역을 위해 기도합시다.
그러나 이 모든 일은 감사함에 그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성경본문]
3.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들인 브리스가와 아굴라에게 문안하라
4. 저희는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의 목이라도 내어놓았나니 나 뿐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저희에게 감사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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