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4 March 2015

로마서 16:7 믿음 안의 동고동락

 [성경 본문] 로마서16:7절

     내 친척이요 나와 함께 갇혔던 안드로니고와 유니아에게 문안하라 저희는 사도에게 유명히 여김을 받고 또한 나보다 먼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라


    [들어가는 말]

    2009년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선물로 열어주셨습니다.

    고국의 교수 신문에서는 교수 180명에게 설문을 보내어서 2009년에 어울리는 명언을 물었습니다.
응답자의 39%가 和而不同이란 한자성어를 선택하였습니다.
이 말은 공자님께서 군자와 소인의 차이를 대조한 한자성어입니다.

   "君子和而不同, 小人同而不和"

   군자는 다른 사람과 화합을 잘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같지는 않다는 것입니다. 소인은 같아 보이지만 화합을 못하는 속성과 비교되는 말입니다.
근래 한국인들 보수와 진보의 이념 차이가 보통이 아닙니다.
남북은 물론 동서의 갈등이 엄존하고 있습니다.
계층간의 갈등도 큽니다.
노사의 갈등, 빈부의 갈등 또한 밑에서 부글부글 끓고 있습니다.

   이런 때일수록 좀 달라보이는 것을 인정하고 큰틀에서 화합하자는 소원을 그런 성어에 담아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면 2009년, 우리 서머나 교우들에게는 어떤 성어가 바람직하겠습니까?

    저는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同苦同樂'이란 말을 나누고 싶습니다.

     [로마서16:7절]

     내 친척이요 나와 함께 갇혔던 안드로니고와 유니아에게 문안하라 저희는 사도에게 유명히 여김을 받고 또한 나보다 먼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라

    친 형님 같고 누님 같은 안드로니고 형제님, 유니아 자매님!
새해 하나님의 축복 많이 받으세요.
저와 함께 감방에도 다녀오셨고
저보다 먼저 신앙생활을 하고 계시는,
[동고동락]하시는 신앙생활로 인해 사도들로부터도 존경을 받고 계시는 두분께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가 넘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런 인사입니다.

    '안드로니고와 유니아'는 한 평범한 부부로 생각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그들이 하나님 앞에서 귀히 인정을 받고 있습니까?
사도 바울과 동고동락한 그 중심 때문입니다.

   다른 성도들과 기쁨과 슬픔(joys and sorrows)을 나누는(share) 동고동락입니다. ; 달콤함뿐이 아니라 씁쓸한 고통까지 나누는 (share the sweets[pleasures] and bitters[pains] of life)동고동락입니다.

이것은 우리 모든 성도의 중요한 주제입니다.


    1. '친척' 처럼 동고동락하는 일입니다.

    "내 친척이요"

    1] 내 친척입니다 하는 말은 하나님께서 한 배를 타게 해주신 공동운명체란 의미입니다.

    동고동락을 하는 면에서 보면 친척이 남보다 낫다는 말입니다.

동양에서 정치건 경제건 한 사람이 흥하면 그 영향이 온 가족에게 미칩니다.
그러나 한 사람이 망하면 그 여파가 온 가족에게 미칩니다.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께서 같은 배를 태워주셨기 때문이지요.

    이런 동고동락하는 관계 속에서 바울 사도로부터 '내 친척'이라고 부름받는 것은 영광입니다.


    2] 그러나 안드로니고와 유니아에게 내 친척이라고 부름을 받는 것은 남다른  귀한 의미가 있습니다.
   
    본문에서 '친척'에  해당하는  헬라어 '슁게네이스'는 단순한 혈육적인 '친척' 이상의 의미를 품고 있기 때문입니다.

    롬9:3을 봅시다. 폭넓은 의미를 만납니다.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찌라도 원하는 바로라"

    이 경우 '골육의 친척'이란 말은  단치 몇 촌 안에 드는 그런 혈통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동족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영어번역 [KJV]나 [NASV] 성경에서는 '동족의 형제'란 뉴앙스가 강한 'kinsman'으로 번역 하고 있는 것만 보아도 참고가 됩니다.
동고동락하는 혈육이요 동족이란 뜻입니다.
그냥 촌수가 가까운 친척이라기 보다 동고동락하는 친밀한 관계를 강조하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산상수훈에사 하신 말씀을 들으면 더욱 이런 의미는 더욱 일반화됩니다.

    [마5:22-2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23.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 들을만한 일이 있는줄 생각나거든
24.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여기서 형제는 꼭 2촌에 드는 형제가 아닙니다. 우리가 형제님 자매님 부르는 공동체 안에서의 그런 일반적인 호칭입니다.

    따라서 '내 친척'이란 말은 단지 혈육의미보다는 믿음 안에서 동고동락이 중요하다는 의미입니다.

    -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조카 롯과 함께 떠납니다.

동고동락하는 믿음의 조상을 만납니다.

    - 요셉의 형들이 동생 요셉과 동고동락하지 못한 태도는 두고두고 비난의 대상입니다.


    - 임마누엘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통해 우리가 큰 은혜를 받는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보냈을 때, 주신 임마누엘이란 이름 뜻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심'이란 뜻입니다
    육신을 입으시고 죄인들을 찾아오셔서 대신 죽으시기까지 동고동락을 하심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으시고 이땅에 찾아오신 것은 동고동락하시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임마누엘 속에서 동고동락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만납니다.

       
    바울 서신에 보면, 하나님 나라와 복음을 위해 동고동락한 형제 자매들이 얼마나 아름답게 묘하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디도서 2:14]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구속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에 열심하는 친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 저는 선교지로 떠나는 선교팀과 늘 나누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선교란 하나님과 더욱 친밀해지는 것이요
선교란 우리 선교팀원들과 더욱 친밀해지는 것이요
선교란 선교지 사람들과 더욱 친밀해지는 것이다.

    저는 우리 교우들이 예수님과 동고동락하고,
복음 전하는 자들과 동고동락하고,
성도들간에 동고동락함으로,
선한 일에 열심하는 하나님의 친백성이 되기를 기도드립니다.
우리 교우들이 선한 일에 열심하는
하나님의 친 가족이 되기를 기도드립니다.
우리 교우들이 선한 일에 열심하는 일에서 동고동락하는 친구 되기를 기도드립니다.



    2. 함께 고난의 길을 가는 동고동락입니다.

    "나와 함께 갇혔던 안드로니고와 유니아에게 문안하라"

    사도와 함께 감옥까지라도 함께 가는 동고동락입니다.
동고동락하는 신앙정신이 있었습니다.


    누가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입니까?

    1] 주님과 동고동락하는 성도입니다.


   -  예수님께서는 예수님의 꿈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친구로 제자들을 부르셨습니다.

    [마태복음 5:11-12]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 하였느니라

    예수님께서는 동고동락하는 성도를 복되다 하십니다.


    [로마서 8:17]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참된 크리스챤은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도 함께 받는 사람입니다.
    주님과 동고동락하는 성도가 아름답습니다.


    2] 사도와 동고동락하는 성도가 아름답습니다.

    사도 바울은 동고동락하는 신앙자세를 목회 덕목에 첨가합니다.

    [디모데후서 2:3]

    네가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을지니


    3] 모세 신앙의 위대성은 동고동락입니다.

    [히브리서 11:24-25]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모세는 고난받는 동족과 동고동락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는 모세를 귀히 여기셨습니다.

    [예화]

    "흔히 표현하는 ‘가족같은 교회’라는 말을 실천으로 옮긴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다. 뉴저지의 예수마을교회(김진호 목사)는 교인 중에 간암으로 3개월을 선고받은 형제를 위해 그동안 건축헌금으로 모아두었던 10만불을 간이식과 치료비용으로 제공하는 가족사랑을 보여주어 연말연시에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고 있다.

2년전 간경화 판정을 받고 일자리도 그만두고 예수마을교회를 찾아왔던 유현종 형제(45세)는 이 교회에서 세례를 받고 한가족이 되어 교인들의 기도와 도움 속에 병세가 많이 호전됐다. 그러다가 지난 몇 주간 병세가 악화되면서 간암진단을 받고 3개월 시한부를 선고받았다. 간이식을 받지 않고는 더 이상 살 수 없게 된 것이다.

병원 측 코디네이터의 역할을 하고 있는 지헌옥 권사에 의하면 병원에서는 위급한 상황이라 간이식 수술을 해줄 수는 있으나 이식수술 후 장기간의 치료가 반드시 필요한데 이를 위해서는 10만불이 준비되어 있다는 증명이 필요하다고 했다.

간이식 후 치료를 계속하지 않으면 이식수술이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간기증의 경우 확답은 해줄 수 없지만 일주일에도 2-3개의 기증이 들어오는 등 조달은 가능하며 유현종 형제의 경우 상당히 급박한 상황이라 우선순위로 이식을 받을 수는 있다고 했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예수마을교회 교인들과 김진호 목사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교회에 소식을 나누었다. 마침 얼마 전 건축헌금으로 조금씩 모아두었던 기금 10만불을 따로 떼어 새로운 구좌에 넣어놓은 상황이었는데 김진호 목사와 당회는 이것을 내어놓자는 데 마음을 모았고 교인들도 모두 한뜻이었다.

아직도 미국교회를 빌려 주일오후에 예배드리며 그리 크지도 교회에서 이것은 어려운 결정이었지만 즉시 테스크 포스팀을 구성하고 모두가 모금을 위한 머리를 모았다. 현재 교회에서 전적으로 수술 후 치료비와 약값을 지원하겠다는 공문과 함께 계좌현황을 병원 측에 보내고 대답을 기다리는 중이라고 한다.

    연약한 지체들과 동고동락하며 함께 고난의 길을 가는  성도가 아름답습니다.



    3. 그리스도 안에 있는 동고동락입니다.

    "나보다 먼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라."

    1] '나보다 먼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라'는 말씀에서 보는 것처럼 기독교 역사 초기에서부터 교회에 몸담고 있는 보배로운 존재입니다.

    바울 사도보다 먼저 교회에 다닌 분들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사도바울보다 먼저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 생활을 하신 분들입니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직접 체험한 분들일 수 있습니다.
오순절 성령 체험을 한 분들일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 핍박이 있었을 때, 소아시아로 흩어졌다가, 그리스도인을 핍박하는 정권 속에서 함께 감옥에 갇힌 분일 수 있습니다.

    이 정도 되면 얼마든지 교만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의 귀한 점은 단지 그리스도 안에서 몸된 교회에 적을 두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사도들로부터 '유명히  여김'을 받은 일입니다.  

    '유명히 여김'을 받았다는 말은 '도장을 찍은'에서 파생된 말입니다.
도장을 찍은 사도의 권위와 신임을 담아주었다는 말입니다.
복음 사역에 전념하는 저들의 존재와 사역이 사도들에게도 잘 알려졌습니다(Murray).
그래서 안드로니고와 유니아는 바울을 비롯한 사도들의 인정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사도에게 '유명한', 혹은 '뛰어난' 신앙인이었습니다.

    [예화]

    저는 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최화순 권사님이 생각났습니다.
최권사님은 우리보다 먼저 그리스도 안에 계신 분입니다.
우리 서머나 교회에서 최화순 권사님은 유명히 여김을 받습니다.
ㄶ회 목회자들로부터도 유명히 여김을 받습니다.


    2]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 속에는 그리스도와 함께 동고동락하는 사람이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와 함께 동고동락하는 사람에게는 주께서 주시는 축복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에게 가장 귀한 신앙의 표준은  '엔 크리스토스'입니다.
저는 어제 "그리스도 안"에 해당하는 헬라어 '엔 크리스토스'를 서신서에서만 76번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이 '엔 크리스토스'에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이 들어 있습니다.

    [1] 구원이 있습니다.

    [롬3:23-24]

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2] 영생이 있습니다.

    [롬6:23]

    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3] 그리스도 예수 안에는 정죄함이 없습니다.

    [롬8: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4] 그 무엇도 끊을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이 있습니다.

    [롬8:38-39]

    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수 없으리라

    그렇습니다. 바울 사도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구원을 통해 오는 영생과 세상 그 무엇도 끊을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누렸습니다.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안드로니고와 유니아가 그리스도 안에서 사도 바울과 동고동락할 수있었던 이유는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12:5]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이런 놀라운 안드로니고와 유니아가 그리스도 안에서의 삶이,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가는 믿음의 경륜이 자신보다 앞선다는 것은 참으로 귀한 의미를 갖습니다.

     안드로니고와 유니아는 그리스도 안에서 동고동락을 만납니다.




    [마무리하는 말]

    이 한 해를 서로 다른 우리가 어떻게 살 것인가?

서로 다른 가정을 맡기셨습니다.
서로 다른 직장을 맡기셨습니다.
서로 다른 자녀를 맡기셨습니다.
많고 적은 물질을 맡기셨습니다.
서로 다른 재능을 맡기셨습니다.
서로 다른 시간과 기회를 맡기셨습니다.
서로 다른 우리들을 서머나 교회 지체로 부르셨습니다.

   동고동락!

   이 말은 2009년을 맞는 우리 모두에게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정민영 선교사님으로부터 편지 한 통을 받았습니다. 중동 회교권에서 성경이 없는 미전도종족 가운데 사역하는 독신 선교사님의 소천 소식입니다.

    성탄절 전날, 저는 한 동료 사역자의 부고를 접했습니다. 독신의 몸으로 중동회교권의 성경이 없는 미전도종족을 사랑하여 그들의 말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주고자 헌신적으로 일하던 최숙희 선교사가 얼마 전부터 암과 투병하다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먼저 본향으로 떠난 것입니다.

   얼마나 오래 사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무엇을 위해 사느냐가

정말 중요한 인생질문임을 새삼 깨닫습니다.

 “삶을 낭비하지 말라”

는 존 파이퍼 목사님의 외침이 다시 제 귓전을 울립니다.

    우리도 주님 앞에 갈 날이 가깝습니다.

주님께서 부르실 그날까지 어떻게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 생각해 봅니다.

    주님과 동고동락함으로

    신앙의 지체들과 동고동락함으로

    주님을 위한 사역자들과 함께 동고동락하면서
,
주님 안에서 그 나라와 복음을 위해 수고하고,
열매를 맺는 삶은
영원한 가치를 갖습니다.


    이 한 해를 서로 다른 우리가 어떻게 살 것인가?

    [예화]

   플로렌스선교사(Florence E. Root)의 한국이름은 '유화례입니다.

    안영로목사는 1994년 '메마른 땅에 단비가 되어'라는 제목의 책에 유화례선교사의 사역들과 함께 그와의 추억들을 듬뿍 담아냈다. 이 책은 1997년 영문으로도 변역됐으며, 안영로목사는 유화례선교사를 파송해 준 미국북장로교(PCUSA)에 대한 감사함으로 번역본 1천권을 기증하기도 했다.
   교육선교를 펼쳤던 유화레선교사의 사역이 날로 확장되어 가던 시절 전쟁이 터졌다. 당시 각국 선교사들은 일본으로 몸을 피하기 위해 부산항으로 몰려 들었다. 목사와 선교사들을 가만히 두지 않았던 공산당을 우선 피해야 한다는 절박함이 있었다
하지만 유화례선교사는 한국땅을 지켰다. 이유는 하나였다. "일제시대에 신사참배를 반대하다 결국 귀국선에 몸을 실었는데 다시 돌아와 보니 선교지의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었어; 전쟁이 났다고 피하면 또 그런 아픔을 겪어야 할 거야. 난 가지 않겠어."
이렇게 선교지에 남았던 유화례선교사는 고아들을 돌보면서 사역을 이어갔다전쟁 중 공산당에게 쫓겨 죽을 고비를 몇번이나 넘기는 고초를 겪었지만 흔들림없이 선교지를 돌보았다.

1948년, 안종열목사가 23세의 나이로 영광의 면 소재지 무교회 지역에서 목회하던 때였다. "날 처음 보자마자 유 할머니는 '안 전도사는 광주로 나가서 공부를 더하고 오세요'라고 말했다. 이듬 해인 49년에 유 할머니를 따라 광주로 가 호남성경학교에 편입해서 공부를 시작했다.
11살 어린 안영로목사역시 유 할머니와의 인연으로 신학을 하게 됐고 그분이 학비와 생활비를 5년이나 준 덕에 졸업을 할 수 있게 됐지."

유화례선교사와 안 목사 형제는 서로를 어머니와 아들이라고 부르면서 아름다운 교제를 나눴다. 원래 유 선교사는 한국땅에 묻히는 걸 소망했지만 그 꿈을 이루지 못하고 쫓기다 시피 미국으로 돌아갔다. 그게 1978년이다

그녀가 24세가 되던 1927년 한국땅을 밟았으니 무려 51년을 한국을 위해 살았다.

유 할머니가 귀국한 이후에도 안영로목사와 안종열목사는 틈나는 대로 미국을 방문해 남장로교에서 운영하는 양로원에 머물고 있는 유화례선교사를 방문하고 작지만 정성을 담아 용돈을 드렸다
995년 5월 26일 유화례선교사가 별세한 뒤 알게된 이야기란다.
"유 할머니가 우리가 드린 용돈을 모아서 다시 한국의 신학생들에게 보내 줬다는 걸 알게 됐어요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겸허한 신앙인의 모습입니다.
이런 겸허한 동고동락이 사도들로부터 '유명히  여김'을 받은 것입니다.  


   동고동락!

   이 말은 2009년을 맞는 우리 교우 여러분들에게도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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